평범한 사람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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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이와 준이가 떠난뒤에도 석이는 좀처럼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영우는 자연스레 옆에 앉는다. 그리고 술을 따른다.
"... 한잔 하자.."
그러나 여전히 돌아보지 않는 석이. 영우는 혼자서 소주를 따라 마신다.
"...왜 나 피해?
... 저번엔 문도 안열어주고...경찰까지 부르고.."
석이는 계속 말이 없다.
"... 나 결혼해..."
"... 들었어...."
".. 지금 같이 왔는데.. 인사나 할래?"
하고싶은 말이 참 많았다. 보고픔에 사무치는 날도 너무나도 많았다.
"... 나중에... 지금 내가 차림이 좀..그래서.."
그때 영우의 약혼녀가 자리로 왔다.
".. 오빠? 안와? 사람들 기다리는데..."
석이는 그제서야 고개를 돌려서 그녀와 영우를 바라봤다. 예뻤다. 영우와 참 잘어울렸다.
".. 어.. 여기는 내 제일 친한 친구 이석이"
석이는 자리에 일어나서 인사를 했다.
"... 영우야.. 담에 보자..
.. 내가 오늘은 좀 취해서...
.. 재수씨.. 반가워요..
제가 오늘은 상태가 좀 그래서요..
담에 한번 봐요.. 제대로.."
석이는 급하게 자리를 빠져나갔고, 영우는 약혼녀에게 몇마디 말을 하고는 석이를 쫓아갔다.
벌써 저만치 멀어져가있는 석이를 향해 뛰더니, 이내 따라잡는다. 그리고 손을 붙잡으며 묻는다.
"... 너 진짜 왜그러냐?
.. 몇달전부터 연락도 안받고..
.. 톡도 다 씹고..
.. 내가 너한테 친구이기는 하냐?
...안볼거야? 우리? 평생?"
언성은 점점 높아졌다. 쌓아왔던 울분이 그만큼 많은것 같았다. 그럴만도 했다. 어릴적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때까지 둘은 늘 붙어다녔다. 영우가 대학교를 서울로 가면서 조금 멀어지기는 했으나, 적어도 한달에 몇번은 꼭 만났다.
영우는 여자들한테 인기가 좋았지만, 좀처럼 여자를 사귀는 법은 없었다. 그래서 석이는 영우가 혹시나 자신과 같은 성향은 아닐까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차마 고백할 용기는 나지 않았다.
".. 무슨 말이라도 좀 해라!!!!"
영우는 답답한 마음에 소리를 지른다.
".. 가.. 재수씨 기다린다..."
"... 진짜 너 나 안볼꺼야?
.. 진짜 이러기냐?
... 너무한다 이석이.."
그럼에도 석이는 흔들리지 않을것처럼 걸음을 내딛는다. 한발자국 한발자국 힘을 꾹꾹 주면서.
찬바람이 둘사이를 가른다. 마치 기다렸다는듯이.
영우는 석이의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소리를 친다.
".. 이석이!!!!! 나는 너한테 뭐냐? "
석이가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혼자 읖조린다. 아무도 들리지 않게 마음속으로 ' 내 모든거..' 그말을 하는순간 더이상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다. 신기한 일이었다. 순간 불타오르는 감정때문에 이성적인 생각도 할수가 없었다. 돌아보니, 여전히 영우는 석이를 애타게 바라보고 있었다.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이 이런것일까. 석이는 영우를 향해 걸었다. 비장한 표정을 지은채로. 그리고 그의 앞에 서서는 입술을 앙다물다가 결심이 섰는지 입을 열었다.
"....널 보고 있으면 심장이 뛰어.."
자신의 심장을 만지는 석이는 말을 잇는다.
"...같이 있으면 모든게 좋아....친구 이상으로..
.. 근데 넌 남자잖아... 나도 남자고...
... 그게 너무 억울해.."
"..벤댕이 속알딱지만한가봐.. 내 그릇이..
..쿨하게 가 잘 안되네..."
영우는 황당한 표정보다는 무언가 끓어오르는 감정을 억누르고 있는듯 보였다.
".. 제발 부탁인데.. 잘살아라.."
석이는 벌써 뒤돌아서 영우와 천천히 멀어지고 있었다.
............
그런날 없어요?
하루 종일 너무 힘들때, 진짜 그냥 주저 앉아서 울고 싶은날. 그런날에는 그냥 좋아하는 사람이 집에 가는길에 활짝 웃으며 나타나줬으면 하는날.
그 사람품에서 향기를 마음껏 맡으며 모든 시름 다 잊고쉬고나면, 몇날 며칠은 거뜬히 버틸것같아.
토닥토닥 거려주면 더 좋을텐데...
그러면 없던 힘이 생길지도 모를텐데...
어디서부터 잘못된걸까?
구걸하는 사람들을 본적이 있다.
왜 그러고 살까?
일이라도 하면 먹고 사는데 지장은 없을텐데..
모든건 다 한끝차이다.
어느순간, 몸과 마음이 딱 굳어버려서 움직이고 싶어도 힘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느낌이 든다.
"나... 한국 갈려고..."
".. 너 그럼 한국 가서 뭐할라고 그러노?"
"... 모르지... 여기서 내 청춘 다 써버렸는데..."
".. 봐라.. 한국에 지금 물가가 얼만지 아노?
.. 돈 좀 모아놓은거 있나? "
"... 뭐.. 어느정도는.. 대충 계획도 세워놨고..."
".. 인간아.. 너...그정도 가지고 가면 안돼..."
최사장은 준이를 죽일듯이 말렸었다.
한국에 온지, 6개월. 이러자고 온것인가? 애초에 왜 왔는지 그 결심도 무엇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지금버는 돈의 3배를 벌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한국에 가자마자 차례로 기다렸다는듯이 망가져갔다.
헉헉... 헉헉...
준이가 거친 숨을 내쉰다.
송골송골 맺힌 땀이 어느새 온몸을 잠식하고 있다.
손에는 큰 캐리어를 들고 서있다.
새벽에도 퇴근후에도, 동네주변으로 배달 알바를 했다.
하지만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고 힘에 부치기 시작했다. 월급날을 며칠 앞두고 거짓말처럼 돈이 바닥이 나버려다.
오늘밤을 밖에서 보내지 않으려면, 배달 몇개는 더 뛰어야했다. 그런데 하기가 싫었다. 악착같이 사는게 비참하게 느껴졌다.
"띠리리리"
하지만 그런 마음을 세상이 알아줄리가 없다.
배달 문자가 떴다. 마침 또 꽤 가까운곳이다.
준이가 힘겹게 캐리어를 끌면서 발걸음을 옮긴다.
이윽고 도착한 아파트 벨을 누른다.
"... 배달이요...."
귀여운 초등학생이 현금을 건네면서 웃는다.
준이가 배달음식과 함께 거스름돈 500원을 준다.
모든것은 순조로워보였다. 그냥 지나가는 일상에 불과해 보였다.
"... 저기요!!"
그때 이 어떻게든 버텨보려는, 무지막지한 애를 쓰고 있는 어떻게든 평범하게 남들처럼 살려고 발악을 하는 사람의 일상을 무참히 깨버린다.
그것은 어떻게든 일어날 일이었으나, 지금이라고는 예상을 할수가 없었기에, 처절하게 옹졸했고, 가슴팍이 무참하게 찢겨져가는것을 바라볼수밖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
".. 거스름돈 주셔야죠?"
".. 아.. 왜? 그냥 내비둬..."
남자의 목소리가 더 얄밉게 들린다.
"... 드렸는데요.. 아들분한테..."
".. 참.. 우리 아들이 그럼 거짓말쳐요?"
여자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귀가를 때린다.
설마설마 이런일이 일어나리라고는 맹세코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 500원이다.. 그냥 와.. 좀!!"
소리를 지르는 남자의 목소리위에, 여자의 목소리가 바로 깔린다.
".... 저러니까 나이먹어서 배달이나 하지...
너!! 공부 똑바로해!! 공부 못하면 저 아저씨처럼 되는거야... 500원가지고 추잡스럽게 구는거라고.."
얼마나 황당하던지 준이는 아무말도 못하고 있다.
문이 닫히고, 도어락이 닫히는 소리가 난다.
그냥 가고 잊으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오늘같은 날에는 그낭 넘어가고 싶지 않았다. 준이가 다시 초인종을 누른다.
문을 열고 나오는 여자에게 또박또박 말을 한다.
".. 저 오백원 확실하게 아드님에게 드렸어요.."
".. 우리 아들이 거짓말 친다는거예요? "
".. 그럼 제가 다 큰 어른이 500원가지고 거짓말 한다는거예요?"
여자도 화가나서 소리를 질렀지만, 준이도 만만치 않게 소리를 질러대는 통에 아파트 주민들이 너도나도 나와서 싸움을 구경했다.
".. 배달 하는 주제에...."
그때...
".. 저기 아주머니... 말씀이 좀 심한거 아닙니까!
이 사람 대성기업에 제직원입니다.
미국 유학까지 갔다왔어요.."
".. 네?"
".. 아들 주머니 한번 뒤져 봐주시겠어요? "
"네? "
멀찍이 불안해 서있은 꼬마의 눈빛이 불안하다. 여자는 불현듯 불안한 기운을 감지했는지 말꼬리를 흐린다.
".. 아이..뭐 그럼 됐어요..."
문을 닫으려는 여자에게 유부장이 말했다.
".. 사과하세요.."
단호한 목소리로 여자를 압박하는데, 준이가 급하게 자리를 뜬다. 준이는 사과받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냥 지금 이자리를 떠나고 싶을뿐.
그러자 유부장도 빠르게 준이를 따라간다. 뛰어가는 준이는 캐리어가 걸림돌이다. 엘리베이터는 한참을 기다려야해서 계단으로 도망을 치는데 바퀴하나가 애석하게 빠져버린다.
끙끙대는 준이는 계단을 내려오는 유부장을 정면으로 마주쳤다.
".. 한잔 할래?"
금방이라도 울것만같은 준이에게 유부장이 타이르며 말했다. 그리고 다시 말을 이었다.
".. 그동안 나 데려다준거.. 그거 갚는거야.."
언제부터 알고 있었던 것일까..
...........
유부장이 앞장서고, 준이는 뒤에서 캐리어때문에 느린 걸음으로 걷는다.
".. 띠리리리.."
상우다. 최사장 밑에서 같이 일했던 동생이다. 준이보다 몇년이나 먼저 한국에 왔다.
"..여보세요.."
".. 형 왜 안와요? 다들 형 기다리고 있는데.."
워낙에 규모가 컸던 레스토랑이었다. 그만큼 그곳을 거쳐간 사람들도 많았다. 다들 귀국하고도 한반도 모습을 보이지 않는 준이를 보기위해 모인 자리였다.
"... 어... 내가 갑자기 일이 생겨서.. 미안..."
".. 에이... 그러지 말고.. "
어느샌가 다가온 유부장이 준이의 전화기를 뺏어서 끊어버린다. 그리고 돌아서서 다시 앞장섰다.
유부장이 이끈곳은 동네에 조용한 술집이다. 둘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 어색하고 오묘했던 침묵속에서 유부장이 술과 안주를 시킨다.
유부장은 캐묻지 않는다. 준이도 선뜻 아무말도 입밖으로 꺼내지 않는다.
서서히 술병들이 쌓인다.
그때 전화기 소리가 울린다. 유부장은 준이의 전화기를 꺼낸다. 최우성 아빠 라는 글자가 보인다. 전화기를 받은 준이의 눈이 커진다. 전혀 예상치 못한것이었다.
"... 여보세요?"
".. 어.. 그래 나다..."
"... 네... "
".. 왜 삐졌냐? 내가 연락안해서?"
".. 아니... 그런게 어딨어..."
".. 근데 목소리가 와그라노?"
급하게 목소리를 가다듬는다. 유부장은 희미하게 들려오는 최사장의 목소리까지 모조리다 귀에 담고있었다.
".. 잘 지내셨어요?"
".. 나야 슈퍼스타 아니냐...
.. 여자들이 나를 가만 안둔다고...
.. 바쁘지.. 인간아..
... 그래.. 너는 한국에서 잘 지내냐?
.. 직장은 잡았고? 어떻게 살만 하십니까?"
"... 잘 ..지내고 있죠.. 대..기업 ..취직도 하고...."
준이는 떨리는 목소리를 들키지 않으려 최대한 담담하게 말했다. 아무일도 없다는듯이.
".. 그래? 어.. 그건 그렇고..
.. 상우 전화번호 아냐?"
".. 상우 전화번호요...
.. 네 찾아서 금방 보내드릴게요..."
".. 그래... "
늘 끊기전에 넣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추임새같은 말.
준이는 억장이 무너진다. 그렇게 기다렸던 최사장의 연락이었다. 하지만 속시원히 다 모든걸 말할수가 없었다.
".. 네..."
목소리를 듣는것만으로도 가슴이.떨
하지만 결국 최사장이 필요했던건, 상우의 전화번호였다.
".. 어!..알았어..
.. 저기.. 내가 나중에 내가 전화할게...
.. 가봐야 될거 같아..."
대답도 하기전에 전화가 끊긴다. 그러자 10년을 함께한 세월도 함께 뚝 끊기는 기분이 들었다.
그때 매섭게 유부장이 테이블을 두손으로 내리치며 일어섰다. " 탕!!" 진심으로 소리를 지른다.
".. 너 정말 바보야? 머리가 어떻게 된거야?
.. 도대체 언제까지 그럴껀데?"
준이는 고개를 숙인다. 자꾸만 흘러나오는 눈물이 야속하다. 최사장이 미운게 아니었다.
".. 굳이 그렇게 까지 왜 하는거냐고!!
.. 서로 사랑해줄수 있는 사람을 만나라고!!
.. 니 또래를 만나던지..
.. 가망없는 그거... 언제까지 붙잡고 있을거냐고!!"
갑자기 말이 끊긴다. 그리고 내뱉는 큰 한숨.
쿡쿡 예고도 없이 가슴에 칼이 날이 바짝 선채로 들어온다.
준이는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한채로 나지막히 말을 한다.
"..부장님.. 제가 지금 가라 앉는중이거든요..
...가끔은 코에 물이 들어가고, 숨도 잘 못쉬고 그래요..
.. 그러다가 그냥 딱 눈감고 계속 가라 앉아버릴까도 싶어요.."
유부장은 준이의 형체를 흐릿한 눈으로 담는다.
"....근데... 말할 사람이 없었어요..아무에게도..
...평생을...가라앉고 있었는데..."
흐릿한 눈빛으로 온몸에 힘이빠진채로, 멍하니 툭툭 내뱉은 말들은 두사람의 사이의 적당한 거리를 계속해서맴돈다. 그탓인지 유부장도 한참을 움직이지 않았다.
감정들이 여기저기서 휘몰아치면서 스멀스멀 올라온다.
"..부장님이 처음 이거든요..
제 모든 실체를 아는 사람... 그러니까..
숨만좀 쉬게.. 나 좀 살려주면 안돼요?"
준이가 그제서야 고개를 든다.
"....아무말도 하지 말고..
.. 그냥.. 나 좀 안아주면 안돼요?"
아무말도 없이 바라보는 유부장의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작은 동요는 조금씩 커지더니, 마음속 큰 폭풍우를 일으켰다.
"..가..보..겠..습니다..."
울먹거리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결국 울먹거리고 말았다.
준이는 캐리어를 끌고서 가게를 나간다. 반면 유부장은 정신이 흐릿한 사람처럼 허공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가게를 나오자 준이는 뛰기 시작했다. 한쪽 바퀴가 빠진 캐리어가 마구잡이로 이리저리 튄다.
얼마나 뛰었을까. 멀리서 희미하게 들리는 소리.
유부장은 정신을 차리고 가게를 나오는데, 준이가 저만치 멀어지고 있다.
".. 뛰지마!!!"
소리를 지르며 유부장은 전속력으로 따라간다. 두사람은 참 열심히도 뛰었다. 그때, 다른데 정신이 팔려있던 준이는 이리저리 튀는 캐리어를 손에서 놓쳐버리고 만다.
한참을 가서야 캐리어가 없어진걸 알아채고 뒤돌아 서는데, 캐리어 옆에서 유부장이 숨을 헐떡이고 있다. 그때 준이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준이는 가슴을 움켜쥔채로 천천히 캐리어가 있는데까지 걸었다.
그리고 두사람은 쉽사리 눈도 마주치지 못한다. 그렇게 말이 없이 서로를 바라본다. 그때 준이의 핸드폰이 다시 울렸다.
또 다시 상우다. 준이가 전화를 받는다.
".. 여보세요?"
".. 아.. 형 진짜 안올거예요? 지금 다 모였어요...
".. 쭌이 너 너무 비싸게 군다..."
" .. 쭌아! 정아누나도 왔다..."
".. 정아 누나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 결혼식도 못가보고.. 임신 했다며?"
".. 그래.. 니 얼굴 보고싶어서..
..왔는데.. 진짜 안올꺼가?"
".. 어... 그게.. 내가 급한 일이 생겨서..."
준이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유부장이 핸드폰을 빼앗는다.
".. 아... 저 영업1팀 유승만 부장인데요...
저희가 이번에 엄청 큰 프로젝트때문에요...
야근에 야근을 하고 있습니다..."
".. 네..."
"...지금도 야근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지금 엄청 바쁘거든요...
또 저희 준이 사원이 일을 워낙에 잘해서..
급하게 데려가야해서요 .."
"..다음번 모임 때는 내꺼 반차 줘서 보낼테니까..
... 오늘은 이해 좀 해줘요."
유부장은 대답이 들리기도 전에, 전화를 끊어버렸다.
준이는 전화기를 돌려 받으면서 생각했다. 지금의 이상황을 어떻게 해야하는건지. 그때. 유부장이 입을 연다.
"... 살려달라며?"
준이의 눈이 뚫릴것만같다. 유부장의 눈빛은 그만큼 강렬하다.
하지만 준이는 고개를 숙이며 힘없이 캐리어를 다시 끌고 뒤돌아 간다.
그러자 앞을 막아서는 유부장은 두손까지 옆으로 뻗는다.
".. 살려 달라며? 숨좀 쉬고 싶다며?"
준이는 참지 못하고 결국은 터져버린다.
흘러나오는 눈물들은 내려오다가 바로 흩어진다.
앞뒤로 흔들거리는 얼굴 때문이다.
그리고 힘겹게 말을 잇는다.
"..차라리 병이였으면 좋겠어요..약먹고 낫게.."
"..그런데 웃긴게 뭔줄 알아요?
가족들에게 거짓말까지 치면서, 부장님 처음 본날
무슨 생각 한줄 알아요? "
차마 뱉어지지 않는 말은 고요히 흐르는 정적이 대신한다. 유부장도 더이상 묻지 않고 가만히 있는다.
"...나같은 쓰레기는.. 그냥.."
그때, 유부장이 준이를 안았다.
하려던 말을 준이는 멈췄다. 그만큼 따뜻했고 든든한 품이었다. 나에대해서 모든걸 알고 있는 사람. 하루 종일 너무 힘들때, 진짜 그냥 주저 앉아서 울고 싶은날에 그렇게 그사람에게 안겼다. 몇날 며칠은 거뜬할것 같았다.
원래 이렇게 인생이 힘들어요?
나이 사십을 먹었는데도...
되는게 하나도 없어...
집도 없고, 돈도 없고...
가진건 아무것도 없고...
나도 결혼도 하고 싶고..
애도 낳고 평범하게 좀 살고 싶어...
근데 안된다고요... 안돼...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그렇게 한참을 안고 있던 유부장은 늦게서야 축 쳐진 준이를 인지하고서, 준이를 급하게 깨운다.
".. 준아.. 준아!!"
그때 준이의 전화가 다시 울렸다.
최우성 아빠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보인다.
그러자 유부장은 준이의 핸드폰을 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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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진언 목소리 듣기 편하군요..
너무 큰 그림은 영화 시나리오로 만들어야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