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에서 만난 고교동창 -3부(完)- (3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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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마지막회)
순간 본인도 게이라고 고백하는 승수를 향해
“내 말 안들려? 너 방금 전에 뭐라고 했냐고!!!!(목소리를 높이며)”
한번 더 정확하게 확인하고 싶어서 목소릴 높여 몰아붙였다.
“뭘 또 물어..(이제는 승수가 앞에 있는 소주잔을 들어 안에 있는 소주를 조용히 비워내곤) 니가 제대로 들은게 맞어.”
“아니, 말이 안 되니까 그러는거 아냐. 니가 어떻게 게이야. 난 못 믿겠는데?."
“왜 못 믿어. 내가 게이라면 게이인거지.”
"너 만에 하나, 게이도 아니면서 날 그저 동정해서, 내가 그저 불쌍해서 그런말 한거라면.. 너 이거 진짜 선 세게 넘은거고 나한테 엄청 큰 실례 한거야. 알어?”
"내가 게이니까 게이라고 하는거지, 니 말대로 게이가 아닌데 단순히 누군가를 위로하기 위해 나도 게이다 라는 고백을 한다고..? 그런 말도 안되는 발상은 도대체 어떻게 하면 할 수 있는건데?"
꽤나 승수가 진지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못 미더운 척) 그...그럼 니가 게이라는 증거를 대봐...”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야 이창석. 유치하게 왜 그래 진짜.”
“아니 니가 게이라는 걸, 믿을 수가 없으니까 그렇지..”
“오늘 가만히 앉아 술 한잔 하면서 니 이야기를 하나하나.. 천천히 듣는데..마치 니가 내 이야기를 읊조리는 것 같아서.. 진짜 많이 놀라면서도 울컥했다. 사실 지금도 놀라는 중이고..“
“.....(아직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승수를 바라보며)”
“뭐냐 그 눈빛은.. 진짜 이쪽에서 통하는 뭐 은어 같은거라도 대야하는거야? 그런거야?? 난 잭디나 블루드 같은건 안하니 어플을 보여줄 수도 없고.. 아! 이반시티는 종종 들어가. 백일장이나 소설방 글 보러 (웃으며) 그리고 개인적으로 제임스 본찰 좋아해. 뭐 이런거 말해줘야 되는거야? 어? (날 한번 쓰윽 보고는) 이거 아니야?? (내 눈치를 보더니) 설마 탑인지 바텀인지까지 지금 내 성향 까지 이야기 해야되는 건 아니지?”
“미친...함승수....(체념하며) 진짜 이쪽맞구나 너.”
승수의 입에서 너무나 친근한 단어들이 마구 쏟아져 나오는데 너무나 놀래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고 있었다.
“놀란표정 보니.. 이제야 좀 믿는 눈치 같다? (자리에서 갑자기 일어나더니) 나 화장실 좀 잠깐 다녀올게“
그렇게 승수가 화장실에 가고 나서
홀로 테이블에 앉아있는데
사실 이 상황이 너무나 믿겨지지 않아서, 무엇보다 승수가 게이였다는게 정말이지 도무지 믿을 수가 없어서 고등학교 때 처음 승수를 만났었던 그 날부터 기억을 살려 다시금 되짚어보았다.
‘승수에게 그런 거 한 번도 못느꼈었는데....’
‘뭐지....’
‘혹시 그럼, 승수 녀석도 태혁일 좋아했으려나’
갑자기 머릿속이 엉켜진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꼬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생각에 잠겨 있는데 금새 화장실을 다녀왔는지 문이 스르륵 열리더니 승수가 고개만 쑤욱 내밀고는
“그만 일어나자. 창석아”
“어....어...”
그렇게 자리를 정리하고 계산대 앞으로 가서 직원을 부르는데
“여기~ 계산 좀 해주세요~~”
그러자 옆에 있던 직원이 살포시 웃으며
“저기 손님께서 (승수를 가리키며) 이미 하셨습니다”
......
“야 함승수 너 뭐야? 내가 산다고 했잖아! 왜 또 니가 계산하는데? 진짜..욕 나오게 할래??”
“..(신발을 신으며 날 보지도 않은 채로) 그럼 니가 2차 사던가”
자기 할 말만 하고 밖으로 나가버리는 승수.
가게를 나서는데 꽤 늦은 시간이었는데도 명절이라 그런지 사람들로 꽤나 북적이고 있었다.
“그래서 2차로 어디 가고 싶은데...??”
“저기!? (승수가 손을 들어 한 건물을 가리켰다)”
승수가 가리킨 건물 위에는 MOTEL 이라는 붉은 빛의 영어 간판이 반짝반짝 거리고 있었다.
“(당황하며) 미친..야! 진짜..! 어이가 없어서..너 지금 제정신이야?? 농담으로라도 그런 말 하지 마라...(정색하며)”
“뭐라는거야?? 또..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1층에 PUB 안 보이냐??....너 아까부터 도대체 뭔 생각을 하고 있는거냐??? 어휴..(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아니 그럼....펍 이라고 첨부터 정확하게 말하면.. 됐잖아!! 니가 저길 가리키니까....(쿨럭) 빨리 가기나 해.”
펍을 가자고 한 걸 모텔인줄 스스로 착각해서 괜히 민망해져서는, 크게 한 소리를 내뱉고 앞장서서 걸었다.
그렇게 들어온 PUB 안.
실내는 어두컴컴하면서도 은은한 파란 불빛이 도드라져 보이며 다트판, 홀덤테이블 등도 어우러져 상당히 힙 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난 모히또 넌!?”
승수가 메뉴판을 보지도 않고 모히또를 고르고는 칵테일과 양주 등이 빼곡히 적힌 메뉴판을 내게 건넨다.
“난....(메뉴판을 받긴 받았는데 사실 칵테일 쪽은 문외한이라...대충 스캔을 하고는) 블루 하와이...”
“안주는 간단하게 나쵸세트로 시킨다??”
“어...”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모히또와 블루 하와이가 나오는데 마시기 조차 아까울 정도로 너무나 예쁜 잔에 담겨져 나왔다.
나오자 마자 레몬과 애플민트가 담긴 모히또 한 잔을 조금씩 들이키는 승수.
“후~~~ 역시 깔끔해. 그리고 맛있어!! (술이 달아올라 발그레진 얼굴과 함께 표정이 한 층 밝아지며)”
“진짜 술꾼 다 됐네. 많이 변했다. 함승수”
“뭐래.. 넌 안 마시냐??”
“아니 색이 너무 예뻐서...사진 먼저 찍고...”
“아...진짜. 누가 이쪽 아니랄까봐 아까부터 사진 찍는거 되게 좋아하네. 빨리 찍어라.. 자!! 이왕이면 모히또도 같이 나오게 찍어~~~ (내 쪽으로 모히또를 밀어주며) 그래야 예쁘게 나오지.”
“어...어..”
사진을 찍고 블루 하와이 칵테일을 한 모금 마시는데 마시자마자 시원함과 청량함이, 그리고 그 안에 적절한 럼맛이 쏴~ 하게 퍼지면서 마치 내가 블루 빛 파도가 넘실거리는 하와이 앞 해변에서 럼을 함께 마시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곤 앞에 있는 승수를 바라보는데
“왜..? (손으로 볼과 입주변을 만지며) 내 얼굴에 뭐 묻었어...?”
“아;; 아니...”
“근데 창석아. 아까 태혁이 문자.. 그거 너무 신경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실 나도 오늘 너 만나기 전에 고민 정말 많이 했고, 보여주는 거 정말 원치 않았었는데.. 그럼에도.. 현재 태혁이가 무슨 감정을 갖고 너에게 대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 건 알아야 된다고 생각해서..본의 아니게 상처가 됐다면 미안하다..”
"아냐.. 잘못한 건 난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1학년 때 그렇게 셋이서 친하게 지내고나서, 대학교 이후부터 지금까지 10년이 지나도록 한번도 못 만난거..모든 원인이 바로 나였었네...정말로 미안해”
"야. 내가 미안하다는데 너가 왜 또 미안하다고 하는거야..."
오히려 승수가 내게 미안하다며 사과를 하는데..마치 약을 발랐던 자리가 다 나은 것처럼.. 상처가 조금씩 아물어져가는 느낌이 들었다.
“(승수가 모히또 한 모금을 더 마시고는) 창석아 내 이야기 좀 잠깐 해도 되냐...?"
"응 물론이지..고민 있음 이야기 해봐! 이 엉아가 다 들어줄게!! (밝게 웃으며)"
"난 말야..그래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인데 정말이지 순수한 아이들에게 내 거짓없는 모든 모습을 보여주고 싶거든. 근데 자꾸만 나를 감춰야만 하는 이 현실이 조금은 안타까워..
아무래도 초등학생들은 담임선생님의 영향을 정말 많이 받으면서 자라거든.. 부모님 빼고 하루 중에 가장 많이 시간을 보내는게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담임샘 일테니까.
그래서 담임 선생님이 어떤 가치관을 갖고 있는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어떤 종교를 믿고 있는지 사실 이런게 정말로 중요하거든. 게다가 정치적 신념에서 있어서도 보수인지 진보인지..굳이 정치 색을 드러내지 않더라도 이런거 하나하나가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영향을 끼칠 수 밖에 없어서...
게다가 난 남자를 좋아하는 게이인데 혹, 수업을 하다가 은연 중에 내가 동성애를 지지하는 발언을 아이들에게 심어주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그런 고민들이 하나 둘 씩 생기더라구...이야기가 너무 진지했나...? (머쓱해하며)”
“아냐;; 이럴 때 이런 이야기 하는거지. 근데 너가 지금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것 자체가 이미 너가 좋은 선생님이 될 자격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생각해 난..”
“그러냐...? 에잇!! 진지한 거 집어치우고!! 술이나 마시쟈!! (날 지그시 쳐다보다 모히또를 들어 한 모금을 들이키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하며) 이제 나보다 더 잘 마시네..너”
“아니거든~~~~”
“근데..창석아 사실..”
“어??..”
“사실 말야.. 나도 태혁이 좋아했다... 웃기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아까 혼자 있을 때 잠깐 든 생각과 상상으로만 끝날 줄 알았는데 승수가 태혁일 좋아했었다는게 정말로 사실이였다니...
승수의 커밍아웃에 이은 두 번째 충격이었다.
난 아무말도 하지 못한 채 승수를 바라보는데
“성격도 밝고, 운동도 잘하고, 게다가 그 누구보다 남자다운 태혁이가 그 땐 왜 그렇게 멋있게 느껴졌는지..그래서 중학교 때부터 계속 태혁이 옆에 붙어서 짝사랑만 해왔었어.. 바보 같이..물론 지금은 아니야~~~”
“이 정도면 태혁이가 잘못했네....(괜시리 농담을 던지며)”
“그치..? 우리가 아니라 태혁이가 잘못한거 맞지? (내 농담을 맞받아쳐주는 승수)”
“(웃다가) 나쵸나 드세요~~~~~(나초를 집어 승수 입으로 가져다 대며)”
그렇게 승수가 입을 벌려 내가 건넨 나초를 한 입 베어무는데
무얼까....갑자기...해일처럼 밀려오는 이 오묘하면서도 두근거리는 이상한 감정은.
나와 같은 게이라고 커밍아웃을 해서 보다 마음이 쉽게 열리고 있는걸까...
아니야.. 단지.. 그냥 술이 달아올라서.. 열이 올라서..
그런거라고 생각하자..
무엇보다 지금 내 앞에 있는건 다름 아닌 고등학교 동창이자 친구녀석인데
이러면 안된다고 마음 속으로 몇 번이고 외쳐댔다.
칵테일 한 잔을 마시곤 둘 다 배가 부른지 데낄라 작은 샷을 한 잔씩 추가해서 두 번씩 더 마시고는 밤 12시 40분을 넘어가고 나서야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나저나 마지막 데낄라 두 샷이 너무 강해서 그랬을까.
술 기운이 많이 올라왔는지, 아니면 소주, 칵테일, 데낄라 등 여러 가지를 섞어마셔서 취해버린건지 승수가 살짝 살짝 휘청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난 계산부터 하고는 다시 달려와 승수를 붙잡았다.
“많이 마셨다.. 나도 취한다..이제 집에 가자.”
“후.............(고개를 떨구는 승수)”
그렇게 펍을 나와 한 쪽 골목길로 들어서는데 스산하면서도 조용한 이 분위기가 괜히 뻘쭘해서 그랬을까..
무슨 이야기라도 해야 될 것 만 같아서
“승수 넌 내게 있어서, 공부 잘하는 태혁이 친구로만 생각했었는데 오늘 너를 더 깊이 알게 돼서, 그리고 이렇게 오랜만에 봐서 진짜 좋았어 승수야.”
라고 조용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그렇게 진한 알콜내음을 뿜으며 한 걸음씩 천천히 걸어가는데
“창돌아...”
승수가 조용히 말을 꺼냈다.
“어?”
“창돌아...”
“어 듣고 있어 말해”
“있잖아, 나 너 좋아해도 되냐?”
승수의 어깨를 붙잡고 앞으로 걸어가고 있는 도중
‘나 너 좋아해도 되냐’ 는 승수의 그 말에 순간 내 몸이 마비가 된 것처럼 제자리에 멈춰섰다.
“(취한 듯 웃으며) 헤헤..........또 많이 놀랐나보네.........오늘 내가 너 여러번 놀래킨다 그치...? (웃으며) 게이라고 커밍아웃해. 태혁이 문자 보여줘. 내가 태혁이 좋아한거 말해. 그리고 이제는 너 좋아해도 되냐고 ....푸.............(길게 한숨을 내 뱉으며)“
취중고백 인건가?
많이 취해서 그런지 꽤나 정확했던 승수의 발음이 많이 뭉겨지고 있었지만 그래도 승수의 말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귀에 담고 있었다.
무엇보다 승수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음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내 심장 또한 빠르게 뛰고 있었다.
하지만 이 상황을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그러다 정말 승수와의 관계가 여기서 완전히 끝나거나 아니면 오늘 이후로 아예 이 녀석을 못 볼수도 있겠다는 느낌 또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난 본능 대신 이성을 놓치지 않기로 했다.
“승수야.. 너 지금 많이 취했어..”
“야. 나 안 취해꺼든........너. 왜 말 돌려.. 내가 한 말 못 들었어?? 내가 너 좋아해도 되냐고.........”
“들었어... 그것도 너무나 명확하게...근데 승수야 우리 지금 이러는거 술 기운 때문에 좀 달아올라서 그러는거야. 그러니 나중에 술 깨고 다시 이야기 하자“
내 말이 끝나자마자 승수가 부축해주던 내 손을 내팽겨 치더니
“야 이창석. 나 지금 술 기운 아니거든? ... 그리고 달아오르긴 뭐가 달아올라...? 내가 너 지금 좋아한다고 했냐? 아니. 나 그렇게 말 안했거든!!!! (목소리가 커지며 꽤 단호한 목소리로) 나 너 좋아해도 되냐고 물었거든.....내 말을 정확하게 이해하라고~~~~"
그리곤 마침 지나가는 빈 택시를 보곤
“저기요~~~~~~~~~~(손을 흔들어 택시를 붙잡아 멈춰세우곤)”
‘끼익~~~~~~~~~'
택시가 우리 바로 앞에 멈춰선다.
“나 이거 타고 간다. 그리고 이창돌. 너 아까보니 어머니가 많이 걱정하시던데.. 딴데 세지말고 일찍 들어가라. 나 간다~~~~가라~~~~~(내 얼굴을 보지도 않고 손을 치켜 세우곤 흔들더니 그대로 뒷자석에 탑승을 한다)”
난 택시 조수석 앞 문을 열어선
“기사님~ 애가 지금 많이 취해서요~~ 집 까지 잘 좀 부탁드릴게요~~~~~~그리고 이거 요금이요~~멀지 않으니까 만원은 안 나오겠죠!?? 잔돈은 기사님 하세요. (기사님께 만원을 건네며)”
“아이고~~~감사합니다. 친구분들끼리 명절이라 거하게 한 잔 하셨나보네?? 걱정 붙들어 매십쇼~~(밝게 웃으며)”
그렇게 내게서 멀어지는 택시를 제자리에 선 채,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나 좋아해도 되냐는 승수의 떨리는 그 말을 내 귀로 똑똑히 들었으면서도 이렇게 그냥 보내도 되는건지... 내 마음 한 켠이 더욱 더 복잡해지고 있었다.
무거운 발걸음과 함께 집으로 들어가는 길.
그나저나 아까 엄마한테 통화로 너무 크게 짜증낸 건 아닌가 싶어..
집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편의점에 들러 엄마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과 호빵을 집어들고선 집으로 돌아왔다.
새벽 1시가 넘은 시각.
“왔어.. 늦었네!? 어우.. 술 왜 이렇게 많이 마셨어? 적당히 좀 마시라니까..”
“응 조금 마셨어.. 이거..(봉지를 건네며) 늦었는데 지금 먹으면 살찌려나.. 내일 먹어..”
“뭔데...?(봉지 안을 보더니..) 이런 건 뭐하러 사왔어. 내일 니 아빠랑 같이 먹지 뭐”
“그리고. 아까.. 짜증내서 미안...(괜히 챙피한지 휙 돌아서서) 나 씻고 잘게”
“아니다. 우리 아들이 어디가서 사고친 적도 없는데...엄마가 너무 걱정이 앞섰다. 그래 얼른 씻고 자.“
그렇게 엄마가 안방으로 들어가는데 엄마 말에 괜히 또 울컥해져선 울음을 참으려 애꿎은 손만 만지작 거릴 뿐이였다.
그러다 스마트폰을 들어, 씻기 전에
[집엔 잘 들어갔어? 지금 쯤, 집에 잘 들어가서 니 방 침대 위라고 믿고 있는다!!?]
승수에게 문자를 보내놓곤
샤워를 다 마치고 나왔는데도 따로 답장은 오지 않았다.
그렇게 술에 취한 몸을 침대 위에 몸을 눕히는데..
온수샤워를 해서 몸이 따끈한데도
이상하게 잠이 오지 않았다.
그리고 자꾸만 아까 승수의 그 말이
메아리처럼 반복해서 귓가에 울렸다.
‘나 너 좋아해도 되냐?’
‘나 너 좋아해도 되냐?’
.....
다음 날 아침.
뜨끈한 콩나물 국이 상 위에 올려져 있었다.
그리고 명절에 남은 음식과 함께 언제 또 새로 했는지 내가 좋아하는 어묵볶음과 계란 말이.
그렇게 아침을 먹는데 엄마는 뭐가 그리 바쁜지 내가 싸가지고 갈 반찬을 만든다며 계속 주방 안에서 혼자 분주할 뿐이였다.
난 천천히 아침을 먹고 있는데, 그러는 도중, 갑자기 문자알림이 울렸다.
승수 였다.
[창석아. 어제 데낄라 두 잔이 쎄긴 했나보다... 갑자기 훅 취해버렸네.]
[이제 좀 정신이 드냐!??? 얼른 해장부터 해라]
[어... 머리 아파 죽겠다. 그래도 이번 명절에 정말 오랜만에 너 만나서 술도 한잔 하고 진짜 좋았어.]
[뭐래냐.. 오글거리게.]
[넌 오늘 서울 올라가?]
[응. 이따 오후에]
[그렇구나. 그래 ~ 조심히 잘 올라가고~ 조만간 서울에서 한번 보자. 내가 밥살게]
[니가 어제 청담이상 쐈거든요~~~~~ 암튼 알겠다. 서울에서 한 번 보자]
그렇게 승수와 문자를 마치곤 집에서 조금 쉬다가 서울에 올라 갈 시간이 다 돼서 내 짐과 엄마가 해 준 반찬을 싸들곤 집을 나서려는데
“반찬 가자마자 냉장고에 바로 넣어. 그리고 요새 물가도 비싼데 밖에서 사먹지 말고. 반찬이랑 밥이랑 해서 하나하나 해 먹구.”
“아니 뭘 또 이렇게 많이 쌌어...?;; 조금만 하라니까..”
“조금이야. 택시는 불렀어? 엄마가 운전면허라도 따 둘걸. 차로 너 역까지 태워주면 얼마나 좋아.”
“아이고~~~~~ 손 여사님~~~ 됐습니다~~~ 이거나 받아~~ (봉투를 꺼내며)”
“(봉투를 보곤) 됐어 됐어~~ 누나랑 니 매형한테 이미 용돈 받았어..”
“아이구... 그건 그 쪽 돈이고, 내 것도 받어...이거 안 받음 남매 차별이야 이거...”
“(봉투를 받으며) 잘쓸게 아들. 조심히 올라가. 도착하면 아빠한테 전화한번 하구~~”
“알겠어~~ 도착해서 연락할게~~~ 10월 말이나 11월 즈음에 한번 더 내려올 수 있음 오고~~”
“그래~~~얼른 가라. 차 시간 늦겠다. 아!!! (갑자기 뭐가 생각났다는 듯) 그리고 주식이나 코인같은거.. 그런거 절대로 하지말고~~”
"하이고...알았어요~~ 알았어~~~~~~ 나오지마~~~나 간다~~"
그렇게 강릉역에 도착 후 시간에 맞춰 KTX를 타기 위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면서 어플을 열어 5호차 3A 창측 좌석을 확인하곤 5호차를 향해 걸음을 옮기는데
“어우 반찬 진짜 조금만 싸라니까...무거워 죽겠네.”
잠깐 들었는데도 무거운 반찬 때문에 괜히 투덜거리며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고 있었다.
KTX에 올라타 무거운 짐은 위에다 싣고 반찬은 흐트러지지 않도록 내 발 아래 가지런히 모셔뒀다.
그렇게 기차가 출발하기만을 기다리는데 명절이라 분명히 매진이였는데 아직도 내 옆자리는 비어있다.
‘없으면 나야 편하게 가고 땡큐지~~~~’
그렇게 출발 1분 전.
어떤 한 남자가....허겁지겁 걸어들어오더니 순간 풀썩 하고 내 옆자리에 앉는데...
뭐지...?
내가 지금 꿈을 꾸는건가...?
아니면 어제 먹은 술이 덜 깬건가..?
손을 내려 허벅지 한 쪽을 꼬집어 보았다.
‘현실이었다’
그리곤 그 남자를 향해 말을 내뱉었다.
“야 함승수....니가 어떻게....”
“아니 뭐야?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이창석. 니가 어떻게 또 옆자리야??????? 이거 실화냐?? 하 근데 잠깐만.. (거친 숨을 내몰아쉬며) 나 늦어서 못 탈뻔.. 숨부터 좀 돌리자..”
난 가방에서 물을 꺼내 그에게 건넸다.
“이거 마셔..”
“(물을 받으며) 어 땡큐 땡큐”
「고객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우리 열차는 청량리역까지 가는 고속 열차입니다. 저희 승무원은 고객께서 편안히 여행할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하겠습니다.」
물을 다 마셨는지 내게 물병을 건네곤
“창석아, 나 ABC 초콜릿 있는데 좀 먹을래?”
“응!”
승수가 주섬주섬 가방에서 초콜릿을 꺼내더니 내 손에 ABC 초콜릿 3개를 건네준다.
그리고, 동시에 KTX 열차가 빠른 속도로 내달린다.
청량리 역까지 약 1시간 30분 동안 달콤하면서도 설레는 길이 될 것만 같다.
난 초콜렛 하나를 입에 넣고 혀로 녹여가며 기분 좋은 마음으로 창 밖을 바라보는데
그 때 갑자기,
내 손 끝에 무언가의 감촉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타닥 타닥..'
어디서 전기가 타는 것처럼 내 마음 속 불꽃이 튀는 것 같은 이 느낌.
수많은 좌석 중에서 그것도 두 번이나 바로 옆자리에서 만나게 된 걸, 승수도 나와 인연이라고 생각했던걸까.
그리곤
살포시..
그것도 아주 살포시
내 오른손 위에 그의 왼손이 포개지더니
이내 꽉지를 낀다.
그리곤 꽉지를 낀 상태에서 손가락 끝으로 내 손을 부드럽게 매만지는데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지금 내가 KTX가 아닌 행복열차라도 탄 걸까. 내 기분이 실로 극한 행복에 달하고 있었다. 사실 이번 명절은 어김없이 반복될 잔소리 걱정에 어디 여행이라도 다녀올까 싶었었는데..고향으로 내려 가는 길, 고교동창이었던, 게다가 이쪽인 줄은 꿈에도 몰랐던 승수를 KTX에서 만나게 된 건 정말이지 내게 큰 행운이었다.
그리곤 어제 승수가 내게 했던 질문이 다시금 떠올랐다.
'나 너 좋아해도 되냐..'
그 질문에 대신 대답하듯 난 승수의 손을 더욱 더 꽉 잡았고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빠르게 달리는 KTX열차 안.
좌석 앞 윗쪽에 보이는 전광판 헤드라인 뉴스 밑으로 이 열차의 최종 목적지가 청량리임을 알리는 문구가 보였지만, 지금 타고 있는 이 KTX열차의 종착역은 청량리가 아닌 어쩌면 승수와의 미래라는 역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은 고난과 역경도 있겠지만 꽤 기대가되는,
혹 두렵기도 하지만 생각보다 재미있을것 같은,
그런 두근거리는 상상의 나래를 머릿속으로 펼쳐본다.
승수와 손을 맞잡은 채, 고개를 돌려 창 밖으로 바라 본 가을 풍경이 오늘 따라 너무나 아름답다.
-THE END-
================
원래는 1편으로 묶어서 올리려고 했는데 쓰다보니 조금 길어지는 것 같아서 3부작으로 올리게 되었습니다. 추석 이후 오랜만에 찾아 온 긴 연휴, 그리고 다음주에도 3일 연휴가 기다리고 있어서 기분 좋네요.
오늘 비도 내리고, 요즘 제법 날씨도 쌀쌀해졌는데 다들 건강 유의하시길!! 소설 읽어주시고, 댓글 달아주시고 추천 눌러주신 모든 분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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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또 좋은글 기대해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