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리 그늘에서 자라는....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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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내가 자수를 하기 위해 경찰서에 들어가기 전에 티비에서 그 놈에 대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담배 한 대 피면서 전화 한 통화 하고 오겠다며 나간 놈이 한참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으니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그 놈의 동행인들도 곧 감지했을 것이다.
경찰에 신고도 하고 또 여기저기 말을 흘려대며 다녔을 것이 틀림없었다.
내가 자수를 한 후, 방송에서는 연일 그 사건을 떠들어댔다.
게이 아들을 살해한 연예인에게 복수한 아버지라니.... 자극적인 화제가 될만한 사건에 굶주렸던 하이에나와 같은 미디어가 얼마나 군침을 흘릴만한 일이었을까.
범죄 혐의가 인정되어 입건이 되었다. 그리고 피의자의 신분으로 경찰에 조사를 받았다.
조사가 일단락 되는 대로 구속영장을 신청할 것이라고 했지만 나는 어짜피 이미 경찰서내의 유치장 안에 있었다.
나에게 달라붙어 흡혈귀나 각다귀같이 피를 빨아 댈 기자들을 피해다니는 것보다 그 곳이 훨씬 마음이 편한 곳이었다.
그 곳에 앉아, 나는 현장검증의 날짜가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나의 머릿속에서 녀석의 뒤통수를 내 양손에 들고 있는 몽둥이로 이미 수백번도 넘게 후려갈겼다. 쓰러진 놈의 옷자락을 움켜잡고 공터에 있는 차로 끌고가는 상상을 하면서 쾌감에 사로잡혀 온몸에 전율을 느끼곤 했다.
변호사 친구 녀석이 그런 나를 찾아왔다.
평상시와 달리, 심각한 표정을 한 녀석이 나와 마주앉아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 놈을 죽인 사람이 정말 너 맞아?”
나의 자백을 모두 듣고 수긍을 했던 녀석이었다.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형량을 줄여보겠다고 그렇게 해달라고 부탁도 하지 않은 나에게 철석같이 약속을 한 녀석이었다.
교도소에서 하루라도 덜 있고 싶은 마음에 도와달라는 부탁을 하려고 자수하면서 녀석을 부른 것이 아니었다.
승우가 그 놈에게 무참하게 목숨을 잃었을 때, 내 정신이 아니었던 나의 옆에서 정신적인 의지가 되어준 사람이 바로 그 녀석이었다.
그렇게 나란 사람을 잘 아는 녀석이었기에 이번에도 나의 일을 녀석에게 털어놓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나의 그런 행동에 공감을 해 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랬던 녀석이 갑자기 상기된 얼굴로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진범이 정말 ‘나’ 인지를 묻고 있었다.
“갑자기 왜 그래?” 그런 녀석의 질문에 터무니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내가 황당하다는 투로 물었다.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어서 그래. 그 놈 죽인게 정말 너냐?”
“그럼 나지. 다른 일도 아니고 죽이지도 않은 사람을 왜 죽였다고 하겠어? 다 말했잖아. 또 누가 그런 일을 할 사람이 있다고...”
“지한이.”
나의 말에 불쑥 녀석이 지한이의 이름을 들먹였다.
“.......”
녀석의 말에 순간 당황했다.
물론 녀석도 승우에게 애인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승우가 목숨을 잃었을 때 지한이는 그 자리에 없었다.
승우가 화장이 된 후, 납골당에 안치될 때까지 나는 내 정신이 아니었다.
그 와중에도 어딘가에서 쓰러져 있는 지한이를 본 기억이 있는 듯도 했다. 하지만 그 당시에도 또 그 이후에도 친구 녀석에게 지한이를 인사라도 시켜주기는커녕 그 친구 앞에서 지한이의 이름을 입에 올려본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그랬던 친구 녀석의 입에서 뜻밖에 지한이의 이름이 갑자기 튀어나왔다.
변호사로 수십여년 잔뼈가 굵은 녀석이었다.
그런 녀석이 나의 표정의 변화를 읽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 놈을 죽인 것은 나였다. 이제는 내 자신도 그렇게 믿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하는거야? 내가 다 자세하게 말했잖아. 나라구.”
그렇게 말하는 나의 얼굴을 녀석이 얼마간 빤히 바라보았다.
“지한이가 자수했다. 진범이 자기라고....” 한참을 나의 눈을 노려보듯 하던 녀석이 입을 열고 그렇게 말했다.
“뭐?”
마음 한구석에 불안감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마음 약한 녀석이 공연히 다 된 밥에 코를 떨어뜨릴 수도 있을 것 같은 조마조마한 마음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미 모두 끝나가는 일이었다. 진범은 나라고 끝내 주장을 하면 되는 일이었다. 어짜피 여기까지 흘러내려온 강물을 거슬러 되돌릴 수는 없을 터였다.
“담당 형사하고 지한이가 제출한 자수서를 봤어.”
“.......”
“우선은 네가 진범이 맞다고 말했다. 보통일도 아니고 살인인데.. 남에게 말하지 못할 어떤 피치 못할 일이 너에게 있을테니까....”
“.......”
“너한테 들었다고 예전부터 지한이가 우울증을 앓고 있고 정신과 치료까지 받고 있는 것 같다고 둘러대긴 했다.”
녀석이 말을 멈추고 낮은 헛기침을 했다. 하지만 여전히 녀석은 나의 두 눈을 주시하고 있었다.
“뭐, 조사도 거의 다 끝나가는 마당에 담당 형사도 다른 말 나오는 건 골치 아픈 일이지. 게다가 이미 방송에서도 너가 범인이라고 모두 그렇게 떠들어댔는데...”
“그래...” 담담한 표정으로 녀석에게 확신을 주기 위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내가 슬쩍 지한이를 따로 만났는데....” 굳은 표정으로 녀석이 여전히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범행과 관련된 아주 작은 부분까지 말해주더라. 네가 대답하지 않고 어물쩍 넘어간 것까지.”
“........”
“너가 왜 이렇게 까지 하는 걸까 이해하기가 좀 힘들다.”
녀석의 강렬하면서도 서늘한 눈빛에 순간 할 말을 잊어버렸다.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 한마디 속의 아주 사소한 실수가 모든 일을 그르칠수도 있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도대체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녀석이 다시 나를 믿게 되는 것일까? 도대체 지한이는 무엇을 어떻게 이 녀석에게 털어놓은 것일까.
“너가 살인을 저질렀다고 나에게 전화해서 부랴부랴 너와 그 새벽에 만났을 때, 내가 그때 너를 보고 제일 먼저 느낀게 뭔지 아냐?”
“.........”
“무슨 말도 안되는 상황인가 했다.”
그렇게 말을 하고 녀석은 한번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디서 주워 입었는지 터무니 없는 후드 티는 하나 걸치고 와서, 가슴하고 소매는 피로 범벅인데 니 얼굴은 피 한방울 안 튀어있고, 양손은 상처하나 없이 깨끗하고 그 와중에 하의는 정장바지에...”
녀석이 말을 멈추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벌써 방송에서는 그 놈이 원한에 의한 납치를 당한 것 같다고 떠들어 대지, 니 놈이 말하는 것은 그럴싸하지... 내가 또 무슨 귀신에 씌었는지 니 놈이 말하는 걸....그걸 또 곧이 곧대로 믿고 .....”
녀석이 말을 멈추고 낮은 한숨을 쉬었다.
“세상에 어느 미친놈이 자기가 하지도 않은 살인을 저질렀다고 자백하겠냐고... 그래서 미심쩍으면서도 설마하면서 얼른 자수를 하는 편이 낫겠다는 판단하는 바람에 이렇게 사건이 진행되어 오긴 했지만....”
“그 녀석.”
나도 모르게 순간 손을 뻗어 맞은 편에 앉아있는 친구 녀석의 손을 잡았다.
“이제 겨우 스물 아홉이다.”
“그래서...걔가 죽였냐?” 녀석이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아니야.” 간절한 마음으로 녀석의 표정을 살피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죽였어. 그 녀석, 마음이 약해서 지나가는 개미 한 마리도 못 밟아 죽이는 애야. 나이 먹은 내가 고생할까봐 그러는 거야. 그 녀석이.”
여전히 녀석은 내 말을 믿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내가 말을 하면 할수록 점점 더 내 말을 불신하는 듯 느껴졌다.
“상현대 뒷편 갈대밭에 내가 그 놈 쳐 죽인 돌 있잖아. 지문이든 디엔에이든 검사해 보면....” 순간, 생각지도 못했던 터무니 없는 말이 그렇게 입 밖으로 술술 나와버렸다. 설마 종결이 코앞에 있는 사건을 뒤엎기 위해서 그런 일까지 벌이지는 않을거라는 얄팍한 생각과 급한 마음에 그렇게 말해 버렸다. 녀석이 나를 믿어주는 것이 나에게는 그렇게 절실했다.
“그 날 새벽에 거기 비왔다.”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면서 녀석이 입을 열었다.
“그 날 밤새 폭우 내려서 거기 지문이나 디엔에이는커녕 시체 주위에 핏자국 흔적도 없었다고....”
“........”
“너 그거 다 알고 지금 나한테 그렇게 말한거 아니야?”
그렇게 빤히 나를 바라보던 녀석이 낮은 한숨을 내쉬고 나를 외면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밤새 악몽에 시달렸다.
칠흙같이 깜깜한 통로를 간신히 손을 뻗어 더듬거리면서 지나고 있었다.
그런 어둠 속에서 손을 뻗어 한걸음씩 앞으로 발을 내딛었다.
어디인지도 알 수 없는 그런 어둠 속에서 두려움이 엄습해오기 시작했다.
심장은 쪼그라들어 정신없이 뛰고 있었다. 악마의 끈끈한 촉수가 어딘가에서 튀어나와 나를 휘감고 내 영혼까지 빨아들일 것 같았다. 공포에 사로잡혀 허둥거리는 나의 손가락에 무엇인가 만져지는 것이 있었다. 문 손잡이 였다.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미친 듯이 문을 당겼다. 그리고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어렸을 때 살았던 집의 툇마루였다.
마루 한쪽 끝에는 누군가 잠자리에 든 듯 요와 이불이 곱게 펴져 있었다.
무릎을 꿇고 손을 뻗어서 거대해져 버린 신발을 허우적거리면서 간신히 벗었다. 툇마루에 오르려고 하지만 다리가 너무 무거워서 들리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발을 내려다 보았다. 분명히 벗어 놓았건만 그 괴기스러운 신발은 마치 사냥꾼이 놓은 덫 마냥 나의 발을 삼킨 듯 다시 여전히 나의 발에 매달려 있었다.
공포에 사로잡혀 온몸이 떨려왔다.
엎드려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있는 힘을 다해 엉금엉금 기어가기 시작했다. 온몸에 소름이 돋고 등에 식은땀에 배어나왔다. 간신히 이불의 한 끝을 잡고 속으로 기어들었다.
어딘가에서 가냘픈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몸을 일으켰다. 섬뜩한 그 소리는 여전히 어딘가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이불의 끝을 잡았다. 그리고 한 순간 손에 힘을 주어 이불을 획 하고 걷어버렸다.
그 속에는 아무도 없었다.
가족은 아무도 없이 나 혼자 그 어두운 집안의 마루 위에 버려져 있었다.
어느 한 순간 그 낮은 신음소리가 비명소리로 바뀌면서 집안을 가득 채웠다.
소스라치게 놀라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깨어 벌떡 일어났다.
온 몸이 식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유치장의 창살 밖에 서서 나를 보고 있는 경찰관이 눈에 들어왔다.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그는 고개를 돌리고 걸음을 옮겼다.
여전히 놀란 가슴을 손바닥으로 문지르며 크게 한숨을 쉬었다.
오후가 되자 변호사 친구 녀석이 다시 나를 찾았다.
“가자.” 밑도 끝도 없이 녀석이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어디를?” 그런 녀석을 보면서 놀라서 물었다.
“집으로....”
“영훈아.” 녀석이 하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녀석을 바라보면서 긴장으로 침을 삼켰다.
“네가 한 짓 아니라는 결정적인 증인 나왔다.”
굳은 얼굴로 그런 나를 빤히 바라보면서 녀석이 입을 열었다.
“니가 스토킹한다고 신고했던 그 여자야.”
“.........”
“네가 그 날 이천에 있었다고 오전에 경찰서에 와서 진술했다.”
“그 여자가 거짓말을 하는거야.”
“자기 운전사도 너를 같이 봤다고 했어.”
“.........”
“너가 이천을 떠난 시간은 여섯시 반이야. 중간에 도로 옆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지?”
“.........”
“고속도로가 점점 막히고 혼잡해져서 중간에 네 차를 놓친 시간이 아홉시가 좀 넘은 시간이라고 했어. 그 여자 차의 블랙박스에 네 차 번호가 찍혀있고...”
“.........”
“그 놈이 납치되서 끌려간 시간이 아홉시인데 네가 같은 시간에 두 장소에 있을 수는 없잖아.”
하얗게 질려있는 나를 보면서 녀석이 손을 뻗어 슬며시 나의 손을 잡았다.
“이제 그만해라. 한수야.”
얼어붙은 듯 꼼짝 못하는 나를 내려다보면서 녀석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경찰이 사건 조사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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