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는 기차가 없다 - 에필로그 1

작성자 정보

  •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에필로그> Part 1


  학기는 서둘러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 차에 시동을 걸었다. 집에서 회사까지는 약 45km. 보통 한 시간은 족히 걸리는 길이었지만 시내에 들어서기 전에 속도를 좀 올리면 지각은 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학기가 모는 흰색 bmw는 중산간도로를 달리다 비자림로로 빠져들었고, 번영로에 들어서면서부터 속력을 내어 달렸다. 학기가 바쁘게 나올 때면 선택하는 코스였다. 여유가 있을 때면 항상 일주도로를 타고 바다를 구경하며 여행을 하는 기분으로 출근을 했는데, 시간이 촉박할 때는 어쩔 수 없이 빠른 코스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학기는 규정 속도보다 빠르게 달린 탓으로 지각 5분 전에 겨우 사무실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가방을 내려놓고 한숨을 돌리자마자 휴대폰에 알람이 울렸다.


  - 지각 안 하고 잘 도착했어?


  학기는 먼저 간단히 답장을 보냈다.


  - 응


  그리고 시간을 들여 긴 메시지를 보냈다.


  - 밥 잘 챙겨 먹고, 오늘은 너무 무리해서 걷지 마. 시내 나와서 도서관에서 책 보는 건 어때? 저녁 때 밖에서 밥 먹고 같이 들어가도 좋잖아.


  - 잔소리하지 마.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돈이나 많이 벌어와.


  학기는 살짝 미소를 지은 뒤 곧바로 업무에 들어갔다. 바쁘게 올라온 서류를 검토하고 결제를 하는 동안 금세 시간이 지나가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휴대폰에서 알람이 울렸다.


  - 밥 먹고 있겠네? 도서관에 왔어. 이따 퇴근하면 데리러 와.


  학기는 퇴근을 하자마자 도서관으로 달려가 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메시지를 보냈다.


  - 도서관 주차장이야. 빨리 내려와.


  학기는 기다리는 10분 남짓한 시간이 참으로 무료했다. 담배를 피우면 딱 좋으련만 그럴 수가 없어서 살짝 갑갑함이 밀려왔다. 담배를 끊은 지 벌써 2년이 되었어도 가끔 생각이 나는 걸 보면 끊었다기보다는 참는 것에 더 가까웠다. 한 대는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다시 흡연을 부른다는 걸 주위 사람들을 통해 배웠기 때문에 학기는 끝까지 참았다.



  “많이 기다렸지? 미안.”


  메시지를 보낸 지 20분만이었다. 학기는 약간 짜증을 내며 투덜댔다.


  “왜 이렇게 늦게 왔어? 담배 피우고 싶어서 죽는 줄 알았네.”


  “갑자기 화장실에 가느라 그랬어.... 근데 너 죽는다는 얘기 한 번만 더 하면 내가 진짜 죽여 버린댔지?”


  “미안 미안 다시는 안 그럴게.... 손님.... 어디로 모실까요? 뭐 먹고 싶어?”


  “너.”


  “이봐요, 이용주 씨. 지금 그런 말이 나오십니까? 새벽까지 저를 잡수신다고 늦잠 자서 지각할 번한 거 잊으셨나요?”


  말은 이렇게 했지만 학기의 얼굴에는 웃음이 한 가득이었다. 용주가 걷고 말을 하는 것 자체가 학기에게는 무한한 행복이었다.


  정동진 바다에서 생을 마감하려 했던 2년 전의 일이 아직도 생생했다.

  바다 속으로 들어갔을 때만 해도 학기는 절망의 심연에서 헤어 나오지를 못했다. 그러나 완전히 바다에 잠겼을 때는 모든 것이 달라졌다. 숨이 막혀 오는 본능적인 두려움이 학기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학기는 용주를 더욱 끌어안고 발버둥을 쳤다. 그러나 학기의 기억도 여기까지였다. 학기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용주도 옆에 누워 있었다. 구급대원들이 학기에게 물었다.


  “정신이 좀 드십니까?”


  “네.”


  “그런데 이분은 아무 말씀이 없으셔서....”


  학기는 대원의 말을 끊고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원래 그래요.”


  학기는 몸을 일으켜 용주를 내려다봤다. 눈을 뜨고 있었다. 그런데 평소와는 달라 보였다. 눈이 빛났고, 무엇보다 동공이 한껏 오므라져 있었다. 그리고 입술이 꼼지락거렸다.


  “전혀 움직이질 못하세요.”


  학기는 용주의 뺨을 때리고 팔을 꼬집었다. 안면근육이 약간 움직이고 찡그리는 듯도 했다. 그리고 꼼지락거리는 입술에서 가느다란 소리가 새어나왔다.


  “하~~~~”


  용주는 곧바로 가까운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학기는 용주의 셋째 누나에게 연락을 했다. 용주가 깨어났다는 소식을 전했다. 용주는 다시 셋째 매형의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본격적으로 재활 치료가 시작되었다. 무엇보다 용주의 의지가 강력했다. 사람들을 모두 알아봤고, 어눌하지만 의사 표현도 분명했다. 하루하루가 달라지는 모습이 눈에 띌 정도였다.


  “자다 깼는데.... 2년이 지나서.... 혼란스러워....”


  학기는 그저 용주의 가슴을 토닥이며 안정을 시켰다. 그것이 최선이었다. 학기에게도 용주가 잠들어 있던 2년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었기에 그냥 인생에서 지워버리면 되는 것이었다.

  용주는 6개월 만에 혼자서 걷고 말도 곧잘 했다. 1년이 지날 무렵에 학기는 용주와 함께 하늘을 날았다. 제주도였다. 이사할 집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용주의 의견에 따라 성산포 쪽에 있는 아파트를 장만하고, 학기가 발령이 나는 것에 맞춰 이사를 감행했다.

  처음에는 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하다가 학기는 결국 차를 한 대 구입했다. 그랜저 따위는 염두에 두지도 않았으므로 학기가 선택한 차는 bmw였다. 튼튼하기로 소문이 난 볼보를 사려다 너무 늦게 출고가 되는 탓으로 차선책으로 고른 차였다. 학기는 차를 사면서 에어백이 잘 터지는지를 몇 번이나 물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용주는 복직을 희망했으나 학기가 온몸으로 막았다. 혼자 벌어도 먹여 살릴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번다는 것이 명분이었다.


  “그냥 놀고먹으면서 책이나 보고 살아.... 정 심심하면 올레길 걸으면서 여행기나 쓰든지.... 어차피 복직해봐야 곧 정년퇴직이잖아.”


  용주는 학기의 의견을 받아들여 복직을 포기했다. 학기와 같이 하던 집안일을 도맡아 하고, 남는 시간에 사진을 배우러 다녔다. 그리고 블로그를 개설해서 제주도를 소개하는 포스팅을 하기 시작했다.

  주말이 되면 학기는 용주를 차에 태우고 제주도를 누비고 다녔다. 처음 계획보다 몇 년 늦어졌어도 전혀 아쉬울 것이 없었다. 제주도에 기차가 없다는 것도 전혀 문제되지 않았다. 학기에게는 믿을 만한 독일차 bmw 5시리즈가 있었다.


  자동차가 처음 출고된 날, 학기는 막걸리를 사다가 간단히 고사를 지냈다. 미신인 줄은 알아도 처참했던 사고를 경험을 한 터라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치른 일이었다. 운전을 한다는 것이 학기에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트라우마 때문이었다. 그러나 용주를 위해서 극복해야 하는 것이기도 했다. 학기는 용주도 극복하기를 바랐으나 용주는 고개를 저었다.


  그 무엇보다 학기와 용주에게 행복을 가져다주고 살아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게 하는 것은 역시나 섹스였다. 용주가 꾸준한 재활치료를 받으며 어느 정도 몸이 자유롭게 되었을 때, 용주의 손이 학기의 젖가슴을 주물렀다.


  “학기야.... 나 생각해서 안 하는 거면....”


  “형 생각해서 안 하는 거 아냐. 나 생각해서 그러는 거야.”


  용주의 손이 점점 내려가 학기의 속옷 안으로 들어갔다. 용주의 손길에 학기의 자지가 반응을 보였다.


  “이렇게 잘 서는데.... 니가 왜....”


  학기도 몸을 돌려 용주를 바라보며 속옷에 손을 넣고 주물렀다. 용주의 자지도 서서히 발기가 되었다.


  “아직 형이 제대로 남자 구실 못할 거 같아서.... 나 제대로 느끼고 싶어. 선녀하강 지겨워....”


  “그게 무슨....”


  학기는 지난 2년 동안 있었던 일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리고 진심으로 사과를 했다.


  “형 미안해....”


  용주가 껄껄껄 웃으며 말했다.


  “그게 뭐가 미안해. 내가 고마워해야 할 일이구만.... 난 그것도 모르고 잠만 자고 있었네.... 학기야....”


  “응?”


  “나 할 수 있어.”


  “아직 좀 불편하잖아. 나 제대로 하고 싶다구.”


  “제대로 할 수 있어.”


  용주는 학기의 몸을 애무하고 아주 천천히 학기의 몸 안으로 들어가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참아왔던 사랑의 씨앗을 학기의 몸에 주입했다. 그것이 학기의 몸 안에서 자라나지 않더라도 아무 상관없었다.


  “미안해.... 너무 오랜만이라 빨리 쌌어.”


  학기는 팔과 다리로 용주의 몸을 꼭 끌어안고 말했다.


  “아니야. 너무 좋았어.... 형....”


  “응?”


  “우리 제주도 가서 살자. 좋은 공기 마시면서.... 그래야 형도 빨리 좋아지지....”


  학기는 그동안 운이 좋게 순환 근무를 하지 않고 한곳에서만 일을 했으므로 다른 곳에 발령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승진 시험에서 한 번도 낙방하지 않고 진급을 하여 부장 자리까지 오른 학기는 제주도에서의 첫 출근이 꼭 신입사원이 된 것처럼 낯설고 긴장도 되었다. 하지만 일을 하는 공간만 달라졌을 뿐 하는 일은 똑같았으므로 빨리 적응할 수 있을 것이라 자신했다. 부하직원들과 거리를 좁히는 것이 급선무라 생각했다.


  환영회를 겸한 부서 회식자리에서 학기는 맥주잔을 들고 건배사를 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밝혔다.


  “환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생긴 거는 말술을 마실 것 같지만 전혀 그러지를 못합니다. 딱 이 잔만 비우겠습니다.....”


  제주 흑돼지를 주메뉴로 한 식사가 끝난 뒤 2차로 간 노래주점에서 학기는 자리에 앉아 사이다만 마셨다. 부장급이 되어서도 학기는 회식 분위기를 띄우는 역할을 충실히 했었지만 새로 발령을 받은 곳이라 나름 부장이라는 직함에 걸맞게 점잖을 부렸다. 노래가 몇 곡 흐르고 직원들이 부장님 노래를 듣자며 성화를 부려서 학기는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르기 전에 한 마디를 던졌다.


  “이 자리에 서니까 처음 회사에 들어온 신입사원이 된 것 같습니다. 그때 생각하면서 신고식으로 한 곡 불러 보겠습니다.”


  학기는 직접 번호를 눌렀다. 신입사원이던 시절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불렀던 유승준의 열정이었다. 워낙 오래된 노래라 별 반응이 없었지만 직원들이 전혀 예상치 못한 춤사위가 나오자 반응이 뜨거워졌다. 노래가 끝나고 학기는 다시 멘트를 날렸다.


  “나이가 들어서 몸이 말을 잘 안 듣네요. 그래도 낄낄빠빠는 아는 사람이니까 딱 한 곡만 더 부르고 빠지겠습니다.”


  학기는 이번에도 번호를 직접 눌렀다. 직원들은 모니터에 노래 제목이 뜨자마자 눈을 의심한 듯 학기를 바라봤다. 학기는 전주가 나오자마자 춤사위를 시전했다. 나온 지 몇 년이 지난 노래였지만 가수들이 워낙에 세계적으로 핫했으므로 전혀 오래된 느낌이 나지 않았다. 학기는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불렀다.


  “첫눈에 널 알아보게 됐어 서롤 불러왔던 것처럼 내 혈관 속 DNA가 말해줘 내가 찾아 헤매던 너라는 걸....”


  역시나 용주 덕분이었다. 장기자랑에서 1등을 한 이후로 용주는 자기반 학생들과 함께 춤을 추며 장기자랑에 참여했고, 연습을 할 때마다 쪽팔린다는 이유를 들어 학기도 참여시켰다. 학기로서도 용주와 함께 춤추고 노래하는 것이 즐거웠기에 매번 같이 연습을 했다. 방탄소년단의 DNA는 용주와 함께 춤을 춘 마지막 노래였다. 그래도 학기는 용주가 깊은 잠에 빠져 있을 때도 혼자 병실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다. 절망에서 빠져 나오려는 몸부림인 셈이었다. 거기에 더해 용주는 노래 가사처럼 학기에게 주어진 운명의 증거였다.


  “.... 우린 완전 달라 baby 운명을 찾아낸 둘이니까 우주가 생긴 그날부터 계속 무한의 세기를 넘어서 계속 우리는 전생에도 아마 다음 생에도 영원히 함께니까 이 모든 우연이 아니니까....”


  전세계에 아미는 어디에나 존재했으므로 학기가 근무하는 사무실이라고 해서 다를 게 없었다. 50대 아저씨인 학기가 부르는 노래에도 정체를 숨기고 있던 아미들은 학기가 부르는 노래에 추임새를 넣고 열성적으로 반응했다.


  “.... la la la la la 우연이 아니니까 DNA”


  학기가 팔뚝에 손가락으로 점을 찍으며 노래를 마치자 직원들이 박수갈채를 쏟아냈다. 학기는 마지막으로 마이크를 잡고 한 마디를 던졌다.


  “자~ 이제 꼰대 부장은 빠질 테니까 재미나게 노십시오.”


  그러나 학기는 직원들에게 붙잡혔다. 빠지는 때가 아니라 낄 때라는 것이 명분이었다. 학기는 사이다만 마시며 거나하게 술이 취한 것처럼 직원들과 함께 재미나게 놀았다. 살아있음을 감사하게 느끼는 순간이었다.


  “너 요즘 가끔 멍할 때가 있더라. 왜 그래?”


  용주의 말에 학기는 지난 2년의 회상에서 되돌아왔다.


  “너무 행복해서.... 형이랑 다시 사는 게 진짜 꿈만 같아.”


  “나도 그래.... 암튼 너 오늘 지각 안 했잖아. 또 부장이 지각 좀 하면 어떠냐? 직원들도 너 좋아한다며.”


  “그래도 부장 체면이 있지.... 뭐 먹을래? 갈치조림 먹을까?”


  용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집 근처에서 먹자. 시내는 너무 복잡해. 제주도에 산다는 느낌이 전혀 안 들어.”


  학기는 차를 몰고 일출봉이 보이는 식당으로 향했다. 용주가 좋아하는 곳이었다.


  “나는 왜 이런 맛이 안 나지....”


  용주는 갈치조림을 먹으며 자신이 하는 음식에 대해서 불평을 늘어놓았다.


  “형이 한 것도 맛있어. 아무나 이런 맛을 내면 식당 차려야지 안 그래?”


  식사를 마치고 학기와 용주는 광치기 해변을 따라 산책을 하다 스타벅스에서 일출봉을 바라보며 디저트로 커피를 마셨다.


  “학기야.... 담배 피우고 싶지 않니?”


  “피우고 싶지.... 근데 참아야 하지 않겠어?”


  “그래.... 참아야지.... 너 또 병수발하게 할 수는 없으니까....”


  “그런 말 하지 말랬지?”


  “미안....”


  “형.... 우리 주말에 어디 갈까? 자전거 가지고 우도 들어갈까?”


  “오케이. 서빈해안에서 멍 때리다 오자.”


  학기는 제주도 동쪽에서만 놀았다. 용주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래도 서쪽은 학기건 용주건 피하고 싶은 곳이었다. 학기가 운전을 한 지 1년이 다 되어 가지만 차를 타면 절대로 말을 하지 않았다. 항상 앞만 보며 달렸다. 용주도 말이 없기는 매한가지였다.

  언제까지 피할 수만은 없겠지만 당분간은 서쪽으로 차를 모는 것은 피하고 싶었다. 학기는 서쪽으로 가는 때를 운전하면서 말을 할 수 있을 때로 정했다. 그때가 되면 운전이 익숙해질 테고 용주도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여름의 끝자락에 경수에게서 연락이 왔다. 개학을 하기 전에 제주도에 오겠다는 소식을 전했다. 토요일 아침, 학기와 용주는 공항으로 마중을 나갔다. 학기는 경수를 태우고 시계 방향으로 제주도를 돌았다. 산방산에서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셨다. 경수는 제주도가 처음도 아니면서 감탄을 토했다.


  “제주도는 언제 와도 좋아.... 나도 제주도 와서 살까?”


  용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쁘지 않지.... 근데 너 혼자 무슨 재미로?”


  경수는 택진이와 헤어지고 오랜 시간을 혼자 지내고 있던 터였다. 헤어진 이유가 너무나 현실적이었다. 용주가 잠들어 있을 때, 택진이는 자기도 학기와 같은 처지에 놓일 수 있다는 것이 두렵다는 이유로 경수를 떠났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경수는 그런 택진이를 붙잡을 수 없었다.


  “니네들이 있잖아. 설마 나 모르는 척 할 거 아니지?”


  학기가 웃으며 말했다.


  “형도 올 수 있으면 와. 진짜 매일 여행 온 느낌이야. 둘만 사는 것도 심심하니까 형도 와서 같이 살면 좋지.”


  경수가 밝게 웃으며 말했다.


  “그치? 진짜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겠어.... 학기야, 나 bmw 한 번 몰아 봐도 돼?”


  학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경수는 운전석 문을 열고 학기와 용주에게 말했다.


  “니네 둘이 뒤에 타. 내가 니네 운전 기사할게. 그러려고 제주도 온 거야.”


  경수는 학기와 용주를 뒷자리에 태우고 차를 몰았다. 산방산은 학기와 용주가 차를 몰고 오는 끝이었기에 다시 되돌아가는 것으로 생각했으나 경수는 계속 시계방향으로 돌았다.


  “형.... 반대로 가야돼....”


  경수는 학기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계속 차를 몰았다. 송악산을 지나 모슬포항을 거쳐 차귀도 부근 수월봉 전망대 앞에 차를 세웠다. 제주도에 온 지 1년이 넘도록 학기가 한 번도 와 보지 못한 곳이었다. 경수가 담배를 꼬나 물고 심드렁하게 말했다.


  “용주 블로그 보니까 죄다 동쪽이어서 말야.... 제주도는 서쪽이 더 좋다는 거 보여주려고 온 거야. 학기야 어때 좋지?”


  학기는 경수를 끌어안고 볼에 뽀뽀를 했다. 경수는 다시 학기와 용주를 뒷자리에 태우고 차를 몰아 협재에서 비양도를 바라보며 담배를 피웠고, 계속 시계방향으로 해안도로를 따라 차를 몰았다. 용주가 약간 거친 숨을 몰아쉬며 학기의 손을 꼭 붙잡았다. 경수는 그것을 예상했다는 듯이 무심하게 한 마디를 던졌다.


  “용주야.... 이겨내야 돼.... 다락쉼터에서 쉬자.”


  학기는 용주의 손을 꼭 붙잡고 경수에게 모든 것을 맡겼다. 점점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벌써 여러 해가 지났지만 결코 잊을 수 없는 것이었다. 경수의 차가 속력을 조금 줄이며 달렸다. 학기의 숨도 조금씩 거칠어졌다. 머릿속에 흰색 그랜저가 처박혀 있던 모습이 그려졌다. 하지만 경수가 몰고 있는 학기 소유의 bmw는 너무나 조용하게 그곳을 지나 무사히 다락쉼터까지 달려가 학기와 용주를 데려다 놓았다.


  “그만 궁상 떨고 내려. 담배 한 대 피고 가자.”


  경수가 먼저 내려서 학기와 용주를 끌어냈다. 그리고 벤치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담배를 피워 물었다.


  “남자새끼들이 겁은 많아가지고.... 오래 지났잖아. 이제 별 거 아니지?”


  학기와 용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눈가에 살짝 눈물이 맺혀 있었다. 경수가 또 놀리듯이 말했다.


  “다 늙은 아저씨들이 눈물은.... 혹시 니네들 나한테 감동했어?”


  학기와 용주가 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경수가 학기와 용주의 어깨를 감싸 안고 말했다.


  “bmw니까 괜찮아.... 이제 학기 니가 운전해.... 정기사 출발~~~!!!”


  학기는 차를 몰고 해안도로를 달렸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용주에게 말했다.


  “형.... 앞만 보고 달릴 테니까 맘대로 구경해....”


  용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학기야.... 조금만 더 가면 목욕탕 있어. 너 처음 왔을 때 우리가 가자고 했던 데.... 나 지금 거기 가고 싶어.”



- 에필로그 Part 2로 이어집니다


관련자료

댓글 1

<span class="sv_wrap"> <a href="https://ivancity.com/bbs/profile.php?mb_id=konan66" data-toggle="dropdown" title="GTman 자기소개" target="_blank" rel="nofollow" onclick="return false;"> GTman</a> <ul class="sv dropdown-menu" role="menu"> <li><a hre님의 댓글

  • <spa…
  • 작성일
부산맨님 반갑습니다.
학기와 용주 이제 편안한 사랑하는 모습 보니 넘넘 부럽네요.
물론 지나온 길들을 보면 힘든 시간이었지만,  경수의 맘 씀씀이도 흐믓하기만 하네요.
다음 이야기도 기다립니다^^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