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아버지 8화

작성자 정보

  •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https://cafe.daum.net/SolarStory  클릭! 바로 고고고!

* 여러분이 눌러 주시는 좋아요! 는 글 쓰는 힘의 원동력이 됩니다. ^^ 







 태철은 집으로 오는 내내 마음속에 뭔가 허전한 것이 하나씩 채워지는 듯했다. 뭔지 몰라도 기분 좋은 그런 느낌이었는데, 상열을 만나고 나면 전해져 오는 좋은 설렘 같은 기분이었다. 아까 상열의 품에 안겨 있을 때 그에게서 풍겨 오는 좋은 냄새가 아직도 태철의 뇌에 남아 살며시 미소를 짓게 하고 있었다.  



 # 리턴 성우


 태철은 그 후로도 상열과 자주 만나 술도 마시며 즐겁게 지냈었다. 상열도 자신을 잘 따르는 태철을 친 조카같이 때로는 아들같이 잘 챙겨주었다. 그러나 서로의 마음속에 가랑비 젓듯 서서히 스며들고 있는 무지갯빛 감정을 차츰 인식하기 시작했다. 


 어떤 때는 둘이 선을 넘을 뻔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상열이 이성을 되찾고 리드를 잘하여 표면적으로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지금처럼 좋은 관계를 이어 가고 있었다.


 태철과 상열은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으나 이런저런 일로 서로의 감정을 자제하며 지내고 있었다. 태철은 술을 마시면 간혹 상열에게 투정 부리듯이 안기기도 했지만, 상열은 죽은 진규를 위해서라도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절대 들켜선 안 되었다. 상열은 자신의 오랜 연인의 아들과 야릇한 감정을 나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며 자신을 자제하고 있었다.


 또한 상열은 태철이 게이라는 것을 확신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게이였는데 아들까지 그럴 리가 없다고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태철이 술을 마시다 좀 오버해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오히려 자신이 그런 태철을 안아 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태철은 시간이 지나면서 반지에 대한 의혹과 미련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다른 건 몰라도 절대로 남자와 사겼다는 것은 아니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렇게 믿고 싶었는지 몰랐다. 또한, 상열은 일반인데 자신 혼자서 좋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상열이 자신을 아들처럼 잘 대해 주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 태철에게 잊고 있던 사람으로부터 문자가 하나 도착했다.


+ 태철 형님,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제가 너무 늦게 답장을 드린 건 아니죠...?


 뜻밖에도 잊고 있었던 성우였다. 성우가 왜 한참을 지나서 연락이 왔지? 태철은 망설여졌다. 이걸 답장해, 말어? 나도 노답으로 복수해? 별생각이 다 들었지만 태철은 자신도 모르게 문자를 쓰고 있었다. 


+ 헐 누구래? 반갑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난 답이 없어 네가 지구를 떠난 줄 알았다!


 그러자 이내 성우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그날은 퇴근해 집에서 저녁을 먹으려고 준비 중이었다. 태철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낮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 여보세요...?

+ 형님, 안녕하세요? 저 성우입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 어... 그래 오랜만이다. 잘 지냈어? (역시 마찬가지...)

+ 네. 형님은 별일 없으셨죠? 그때 아버님 장례식은 잘 치르셨어요? 늦었지만 아버님의 명복을 진심으로 빕니다...

- 그래. 고맙다. 그때는 나도 네게 미안했다.

+ 아닙니다! 불가항력의 일이 벌어졌는데 그걸로 미안해하실 필요 없습니다!

- 하하하! 너 그새 더 어른스러워진 거 같아! 뭘 먹었냐? (태철은 일부러 농을 던졌다)

+ 참, 형님도... 아무튼 답장 주셔서 고맙습니다. 조만간에 우리 지난번에 끊겼던 일 이어가야죠!

- 하하하! 성우 너 성격 좋다! 너 그동안 왜 그렇게 연락이 없었어? 형이 문자 보냈는데 보고도 답이 없더구먼...

+ 네. 자세한 이야기는 만나서 말씀드릴게요. 아무튼 다시 연결되어 반갑고 좋습니다!

- 그래. 다음에 만나서 형 설득 못 시키면 우린 정말 끝이야! 알지?

+ 옛 썰~!

 

 가정의 달 오월과 함께 귀여운 성우가 돌아왔다. 계절은 완연한 봄이라 온 산천을 예쁜 파스텔톤의 녹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태철과 성우는 종로 3가의 별다방에서 다시 만났다. 간만에 보는 성우는 그새 살이 좀 빠져 있는 듯했다. 태철 역시 신경 쓸 일이 있어 그랬는지 얼굴이 썩 좋아 보이진 않았다.


-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 네. 형님도요...? 보고 싶었어요...!

- 하하하! 너 입에 침도 안 바르고 말 잘한다

- 아니에요! 정말입니다. 정말, 보고 싶었어요!

- 그래, 나도 네가 보고 싶었다. 나도 정말이야!

- 그러니까 우리가 서로 잘 어울린다는 말인가요...?

- 뭔 말이야! 말이 그렇다는 거지! (일부러 반색하는 태철...)


 둘 사이에 잠시 어색한 기운이 또 살짝 머물고 있었다. 금요일의 종로는 언제나 인파로 인해 북적거린다. 별다방에도 자리가 없을 정도여서 조금만 늦어도 자리에 앉지 못했을 뻔했다. 성우가 커피를 두 잔 가지고 자리에 다시 앉았다.


- 와! 일본에는 별다방이 비싸서 사람들 이렇게 많지 않은데 한국은 대단하네요! 자리가 없어요...!

- 하긴, 별다방은 동네마다 다 장사가 잘되는 거 같아! 우리 아파트단지에도 항상 바글거려...


 그렇게 또 잠시 침묵이 흐르는데 성우가 견디지 못했던지 먼저 말을 꺼냈다.


- 제가 지난 시간 어떻게 지냈는지 안 궁금하세요...?

- 궁금하지...

- 근데, 왜 아무것도 묻지 않아요?

- 뭐 네가 때가 되면 말하겠지 싶어서...

- 흠... 오랜만에 보니까 형님이 코를 좀 드시네요! 흐흐흐... 형님도 그렇게 잘한 건 없는 거 같은데...?

- 뭐라는 거니! 나야 집에 큰일을 치러서 정신이 없어 연락을 빨리 못했던 거지... 근데, 넌 왜 이제야 연락을 한 거야?

- 형님, 그렇게 궁금해하면서 어떻게 지금까지 참았어요? 하하하!

- 헐...! 얘가 형을 갖고 노네!

-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제가 어떻게 형님을... 웃자고 하는 거지요...

- 그게 그 말이지!


 이상하게 태철은 성우의 페이스에 말리는 느낌이 들었다. 생글생글 웃으며 침착하게 또박또박 말을 하는 성우에게 뭔가 알 수 없는 매력이 느껴졌다. 그래도 성우가 하는 행동과 말이 밉상이 아니고 그저 귀엽기만 했다. 앞에 앉아 있는 성우의 바지 앞섶이 볼록하게 튀어나온 게 눈에 띄었다.




이거 마시면 오늘

우리 집에 못 간다!



 # 진규와 상열


 강진규, 그는 30년을 넘게 서로 사랑한 상열의 오랜 연인이었다. 진규에게 외동아들이 한 명 있다는 말을 들었고 어릴 때는 사진으로 간혹 보긴 했었다. 그러나 아들이 성장하면서 아들 사진을 절대 보여주지 않았다. 아마도 가족을 보호하려는 의도인 듯했다. 그랬기에 상열도 더 이상 보여 달라고 하지 않았다.



 진규와 상열의 만남은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진규가 마흔 가까이 되어 영애와 어쩔 수 없이 결혼하고 생각지도 않게 아들 태철이 태어났었다. 진규는 결혼하기 무섭게 자신을 닮은 자식이 태어날까 싶어 재빨리 정관수술을 하였으나 늦었었다. 영애가 이미 임신을 한 것이다.


 진규는 일찍부터 자신의 성 정체성이 동성애라는 것을 알았기에 결혼도 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당시 시대상으로 장남이 결혼하지 않는 게 얼마나 견디기 힘든 것인지 알기에 결국, 부모의 뜻에 따라 영애와 맞선을 보고 이내 결혼하고 말았다.


 그렇게 아들이 태어나고 정도 없이 살다가 40 중반쯤에 상열을 만났었다. 당시 상열은 결혼하지 않은 30대의 총각이었다. 진규는 젊은 사람을 좋아하였고 상열은 연상을 좋아해서 둘은 안팎으로 잘 맞았다. 더군다나 속궁합까지 완벽했다!



 현재, 나이가 든 상열이 어디에 나가도 빠지지 않을 외모였기에 젊은 시절의 상열은 인기가 더 많았었다. 그러나 평범하면서 나이에 비해 약간 귀엽게 생긴 진규는 말재주도 없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는 무뚝뚝한 성격이라 우연히 인천의 술집에서 본 상열에게 말도 제대로 한 번 붙이지 못했었다.


 당시 인천의 부안역 주변에는 게이바가 두 군데 있었는데, 딱히 선택의 여지가 없어 좋든 싫든 두 곳 중에 골라서 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술집에서 몇 번 보긴 했으나 말 못하고 속앓이만 하고 있었는데, 자신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을 눈치챈 상열이 어느 날 먼저 다가왔었다.


- 저... 맥주 한잔하시겠어요?

- 네...? (진규가 너무 놀라며...)

- 하하! 왜 그리 놀라세요?

- 아... 아닙니다. 네, 맥주 한잔해요...

- 여기에 자주 오시는 거 같은데... 저에게 관심 있으신 거죠?


 초면인데 농담인 걸 알지만 짓궂게 대놓고 묻는 바람에 진규는 당황해서 마시던 맥주를 약간 흘리고 말았다.


- 맞는구나! 정말 제게 관심 있는 게 맞네요! 하하!


 상열은 특이하게 웃음을 길게 내지 않고 짧게 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 두 번의 하하! 가 진규에겐 더욱 매력으로 들렸다. 사람이 맘에 들면 모든 게 다 좋아 보여서 그런 걸까? 이제 상열의 모든 게 다 좋아 보였다. 가까이서 보니 상열은 부드럽게 생긴 외모에 귀티 나는 인상으로 정말 한 번이라도 안아 보고 싶게 하는 충동을 일으켰다.


- 제가 형님이라고 불러도 되죠?

- 아... 네...

- 말씀 편하게 하세요. 저보다 한참 연배 같아 보이는데...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저는 서른다섯입니다.

- 보기엔 그렇게 안 보이는데 많이 먹었네... (진규가 조심스럽게 말을 놓으며...) 난 마흔다섯이야. 나보다 딱 열 살 아래네...

- 와! 형님도 무척 동안이세요! 이쪽 사람들이 대부분 동안이긴 하다만... 형님도 만만찮으세요! 이런 말 하긴 뭣하지만 형님 무척 귀여우세요...!

- 그런가... (쑥스러워하며...) 난, 강진규라고 해. 여기 인천이 고향이고...

- 네. 반가워요. 전 이상열입니다. 서울에서 사는데 친구가 인천에 몇 있어 자주 옵니다.

- 사실... 예전에 우연히 자네를 보고 마음에 들어 주말에 나오면 여기저기 다 찾아다녔다네!

- 그러셨어요? 그럼 오늘도 저쪽에 갔다가 여기 오신 거네요?


 저쪽이라 하면 인천에 게이바가 두 개 있는데 다른 한곳을 말하는 것이다. 진규가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하는데,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어느 한 곳을 들렀다가 그곳에서 처음으로 상열을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상열을 보기 위해 거의 주말마다 이쪽저쪽을 다 순례하고 있었다.


- 하하! 우리 형님 다시 봐야겠네요! 고가 점수 올립니다!

- 그게 무슨 말이야...? 고가 점수라니!

- 하하! 형님도 참 순진하시긴요... 그냥 마음에 들어 좋은 점수 드린다는 겁니다

- 아! 난 또...

- 형님은 결혼하셨어요? 아님, 싱글이세요?

- 난 결혼했어... 어린 아들도 하나 있고

- 그러시군요. 전 아직 싱글입니다

- 그렇게 보여. 총각이라... 좋겠다!

- 왜, 부러워 보여요? 

- 나야 어쩔 수 없어 결혼했었지... 부모님의 성화에... 더군다나 장남이라...

- 그러시구나... 전 막내라 그런 부담은 없어요! 그래서 전 결혼 안 하려고요!

- 뭐 여건이 되면 안 하는 게 낫겠지!

- 하하! 이 형님, 결혼 한 거 후회하시는구나! 그렇죠?

-...

- 아니, 뭐예요! 정말 그렇구나!


 둘은 그렇게 처음 만나서 많은 대화를 나누며 정을 쌓기 시작했다. 그 후로 진규는 인천에서 서울로 외박을 자주 하러 갔었다. 일을 핑계를 대고 서울로 더 자주 가게 된 것이다. 한 달에 두 번 서울에 가면 상열은 반대로 인천으로 와서 만나곤 했다.


 그렇게 둘이 만난 지 일 년이 되던 날, 진규는 상열을 데리고 보석방엘 갔었다. 백금으로 각자의 이니셜을 넣어 기념 반지를 맞춘 것이다. KJG와 LSY. 진규가 백금을 구입할 때 순금보다 비싸지만 팔 때는 순금보다 가격이 낮았다. 


 진규가 상열에게 다이아몬드를 해주고 싶어도 남자에게 다이아몬드는 아니었기에 금보다 더 비싼 백금으로 한 것이다. 그만큼 상열을 많이 좋아했었다.


 일 년이 되면서 둘은 정식으로 연인이 되었다. 물론, 이 전에도 연인 관계였으나 이 바닥에 공공연하게 서로가 사귄다는 것을 선언한 것이다. 이렇게 시작한 둘의 관계가 30년이 넘도록 이어질 줄 서로가 몰랐다. 그리고 그 결말은...


 만나서 서로 좋아하고 사랑할 때는 끝까지 영원하다고 다짐과 맹세를 하지만 어디 사람 사는 일이 그런가. 물론, 둘 사이에 그동안 아무런 일도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지만 서로가 노력하며 계속 연을 이어 왔었다. 


관련자료

댓글 1

<span class="sv_wrap"> <a href="https://ivancity.com/bbs/profile.php?mb_id=tmvlzj1414" data-toggle="dropdown" title="멜롱멜롱 자기소개" target="_blank" rel="nofollow" onclick="return false;"> 멜롱멜롱</a> <ul class="sv dropdown-menu" role="menu"> <li><a hr님의 댓글

  • <spa…
  • 작성일
오늘도 잘 읽고 갑니다. ^^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