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6
작성자 정보
- 작성
- 작성일
본문
다음날 아침,
일찍 눈을 뜬 나는,
차마 그의 얼굴을 마주 볼 수 없었다.
그것은 내 자신에 대한 자괴감이었고,
금기를 범한 자의 앞날에 대한 두려움과
그에 대한 죄책감이었다.
그는 일어났는지 자고있는지 모르게
고요한 숨소리와 함께 눈을 감고 있었다.
아침식사로 먹을 것을 사러 나가려고 신발을 신는데,
그가 입을 열었다.
" 부탁이 있네 "
그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감은 채로 나를 불러 세웠다.
그의 모습이 서글퍼 보였다.
나의 마음이 서글펐다.
그의 그런 모습에 갑자기 눈물이 울컥 나올 것만 같았다.
그는 내게 연락처 하나를 불러 주었다.
" 그리로 전화해서 다만 이렇게만 말해 주게... "
그의 말은 무슨 수수께끼와 같았다.
" '골드는 살아있다'고 말하고, 장소를 묻거든 "
"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아닌, 다른 장소를 말해주게... "
" ... "
" 조금 지나면 사람들이 올텐데, "
" 검은 양복입은 사람들이 승용차에서 내리면 그들이 갈 때까지 그대로 가만히 있고 "
" 캐쥬얼 차림의 한 사람이 나타나면, 그에게 내가 있는 곳을 말해주게... "
그의 목소리가 여느 때와는 달랐다.
체념한 사람의 목소리처럼 그렇게 힘이 없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그냥 마음이 죄여왔다.
지금 그의 이 모습이 내가 보는 마지막이 될 것만 같았다...
마음이 아팠다.
" ... 미... 미안해요... "
" 말씀하신대로 그대로 할께요... "
" ... "
" 건강하세요 "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난 뛰쳐 나오듯 방을 나왔다.
내가 왜이러는지,
내 속에 싹튼 이 낯선 감정은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할런지,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지금의 나는,
오래토록 그리워하고 사랑하던 사람과 헤어지는 이 처럼,
목이 메일 뿐이었다....
" 저... 어떤 분의 부탁을 받고 전화 드리는 건데요.... "
한참동안 마음을 진정시키고난 후,
그가 말해준 번호로 전화를 걸자,
매우 짧고 투박한 목소리의 남자가 수화기를 들었다.
" 저... 그 분이 '골드는 살아있다'라고 전하라시는데요.... "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쪽 편이 소란스러워졌다.
전화받던 남자는 깜짝 놀라며,
잠시 전화기를 막고 주변에 무어라 떠들었고,
곧이어 '형님이 어디 계시느냐'고 나에게 다그쳤다.
" 여기는요....... "
우리가 묵고 있는 여관과는 상당히 거리가 떨어진,
그럴듯해 보이는 여관의 이름을 나는 불러주었고,
그는 다시 내가 불러준 장소를 크게 되불렀다.
그리고는 나에 대해서 물었지만,
난, 그렇게 전화를 끊어 버렸다.
왠지 마음이 불안했다.
그가 걱정 되었다.
무슨 일인지, 어떤 내막이 있는지... 두려운 궁금증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의 말대로 난 그 주변에서 지켜보기로 하였다.
대략 한시간즈음 지났을까...
여러대의 검은 승용차들이 내가 말해준 여관으로 몰려들었다.
승용차에서 나온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은 우루루 여관으로 몰려 들어 갔고,
안에서는 한바탕이 소란이 있는 듯,
그 소리가 밖에서도 언뜻 언뜻 들리곤 했다.
그렇게 30분 즈음 지났을까...
다시 나온 그들은 여관 앞에서 잠시 모여있다가 뿔뿔히 흩어졌는데,
그 모양이, 주변 여관들을 모두 들쑤실 모양이었다.
가슴이 철렁했다.
난 그들의 눈을 피해
하릴없이 등산을 가는 사람처럼 태연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마음은 다급해졌고,
어찌해야할 것인가를 궁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가 그곳을 얼마 벗어나기도 전,
막강한 지원군처럼,
순찰차 두대가 소란이 일어났던 그 여관으로 다가오는게 보였다.
내가 안도의 한숨을 쉰 것과,
몰려온 검은 승용차들이 일제히 그 일대를 빠져 나가는 것이
거의 동시에 일어났다.
순찰차는 그들을 본듯 못본듯
유유히 여관으로 향했고,
그들은 무슨 강력 살충제라도 본 모양으로
골목골목으로 빠져 사라졌다.
순찰차는 잠시 여관에 머물렀다.
무슨 말이 오가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곧 떠나는 것을 보아서 그리 큰 일은 없는듯 해 보였다.
순찰차가 가고,
다시 한끼 밥먹을 시간이 지났을까,
여관으로 돌아가서 방금 있었던 상황을 말해 드려야 하는가를 고민하던 나에게,
승용차 한대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문제의 여관 앞에 선 그 자동차에서는,
삼십대 중반 혹은 초반으로 보이는 단정한 차림의 남자가 나타났다.
바로 여관으로 들어간 그가
금새 다시 나온 모양으로 봐서 주인과의 짧은 대화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두려움이었다.
그러나, 난 그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 저...... "
" ? "
" 저기... "
" 그 분이 어디 계십니까. "
무어라고 말을 꺼내야 할지를 망설이던 나에게
그는 바로 그가 있는 장소를 물어왔다.
가까이서 본 그 단정한 차림의 남자의 인상은
선한 느낌을 주는 사람이었다.
좀전에 소란을 피웠던 사람들과는 다른,
나에게 신뢰을 주는 그런 사람이었다.
" 저쪽 블럭 끝에 있는 여관에 계세요... 방 홋수는... "
홋수를 말하기도 전에 그 남자는 가벼운 목례와 함께 서둘러 여관으로 차를 몰았다.
멀어지는 차를 보면서 난 허탈감을 떨칠 수 없었다.
무엇에인가 끌려가듯, 나 또한 우리의 여관으로 향했고
내 무거운 발걸음이 여관을 저만치서 볼 수 있을 때 즈음에
그가 괴로운듯 입을 굳게 다문 채로 그 남자의 공손한 부축을 받아
승용차에 오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난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그의 마지막 떠나가는 모습을 보았다.
나에게 낯선 사랑을 느끼게 한 그 사람...
그가 조심스런 부축을 받으며 차에 오르고 있었다.
단순한 감정의 소유자라고 자부하던 나에게,
알 수없는 헤어짐의 슬픔을 깨닫게 한 그가 떠나가고 있었다.
한없이 공허해진 마음과 온몸에 힘이 다 빠져나간 모양으로
하염없이 바라만 보고 있는 나의
옆을 스쳐 그를 태운 승용차가 지나가고 있었다.
차 안에서 나를 보는 그의 눈망울이, 그의 모습이,
멈춰진 나의 시선속에서 영화의 필름처럼 지나가 버리고
나는,
그 지나가 버린 바로 내 옆의 맨 아스팔트만을 곰곰히 바라만 보고 있었다...
가을의 햇살은 너무도 풍요로울 뿐이었다.
나는 진정 그게 그와의 마지막인줄만 알았다....
관련자료
-
이전
-
다음
댓글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