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저씨 5

작성자 정보

  •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아홉시가 되면, 전화를 건다.
형의 목소리. 일상적인 대화들. 열두시가 되려한다.
긴인사를 나누며, 전화를 끊는다.

수화기 건너편에 형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했다.
그 존재감만으로 세상은 다시 살만해 졌다.

겨울이 다 지나가도록 우린 그렇게 전화속의 대화만으로
서로의 존재를 키워나가고 확인했다.
가끔 답답한 마음이 스치듯 지나가기도 했지만, 그 고통 스러웠던 겨울의 초입을 생각하면, 답답함쯤은 아무것도 아니였다. 아니 무서웠다. 건방져 질까봐...
너무 바라게 될까봐... 난 그럴수 없음을 그게 얼마나 형을 나를 옭어맬수 있음을 너무도 절실히 알고 있었 기에....

그러던 어느날 형은 내게 유난히 밝은 목소리로 이야기 했다. 아마 입춘이 몇일 지나지 않았던 날이였 던것 같다.

"진영아. 우리 만날까? 내일 오후에... 어때?"
"내일요?....정말?"
"그래 예전처럼 영화도 보고, 밥도 먹고 그러자."
"하지만... 괜찮아요? 형...."
"짜식 영화보고 밥먹는게 어때서... 예전에도 그랬었쟎 아..."
"그렇지만..."
"뭐가 그렇지만이야... 내일 한시에 종로에서 어때?"

형은 많이 자신감이 붙어있는 목소리였다. 예전의 형과는 분명히 다른 형 목소리에 붙은 이상한 기운....
형. 나 많이 기뻐요. 하지만 하지만....

"그래요. 형 내일 봐요."

형을 다시 본다니... 난 냉정해지려 노력했다.
그래 그냥 영화를 보고, 밥을 같이 먹는거야 그뿐인데...
왜 이렇게 들뜨는 거지... 침착하자 침착하자.
형을 보는 날의 아침까지. 난 주문처럼 침착이란 말을 이미 하늘높이 나르고 있는 마음속에 주사했다.

언제나처럼 북적이는 종로의 햄버거 가게앞 형이 보였다.
사람으로 겹겹이 둘러싸였지만, 형의 모습은 뚜렷이 내 눈안에 들어왔다. 형도 그랬을까? 횡단보도앞에 선 나의 눈은 어느새 형의 눈과 나란히 걷고 있었다. 잠깐 서로의 모습이 어른 거렸다. 바보같이 울면안돼 침착 침착 침착
우린 오래된 연인들이 칼을 들고 날아다니는 무협영화를 보고, 가다랭이 국물이 적당히 짭짤한 모밀국수를 먹었다. 그리고 아주 오래오래 맥주를 마셨다.

"형 나 형한테 할말이 있는데..."
"뭔데 말해봐..."
"화내지 말고...들어봐..."
"뭔데 사내자식이 뜸들이긴...기지배같이..."
"그래...형...난 사내자식인데...사내자식인데 형을 많이 좋아하는거 같아...기지배처럼...
이래서는 안되는데.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가끔씩은 너무 참을 없는거 있지... 나 형 사랑하나봐."

사랑? 난 피식 웃었는데 찔끔 눈물이 나오고 말았다.

고개숙인 내 머리를 쓰다듬는 형의 커다할고 따뜻한 손 형은 조심스레 내 얼굴을 들어올렸다.

"잘들어 진영아... 나 처음 너 만났을때. 참 많이 무서웠다. 니가 참 좋았거든. 아무것도 모르는 니가 처음본 니가 너무 좋아보여서... 곧 지나갈줄 알았는데 내곁에 니가 머물더라. 그리곤 조그만 희망이 생겨 났지... 어쩌면 이아이도 나를 좋아할지도 모른다. 고개를 흔들어 대면서도 어느새 내 마음은 너로 가득차 있었어. 그래 난 너를 많이 좋아하고 있었던 거야. 오래전부터 나를 들쑤셔놓던 욕망이 스물스물 되살아 났지 너를 갖고 싶다고... 하지만 너와 함께 했던 그날밤 난 마누라에게 널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어. 참 괴로웠다 그여자 착한여자인데, 그리고 너 착한아이인데 나 때문에 괴로워 지는거 같아서. 내가 너무 싫어지더구나. 그래서 널 잊기로 했지. 그게 모두를 위해서 좋은 거라고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가슴속의 네가 너무 아프더구나. 그리고 아픔속에서 그런생각이 생겨났어. 나 너랑 같이 살고 싶다고... 내가 태어나서 누구에게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였지. 사랑? 그래 나 그게 사랑이 라고 생각했어. 널 갖고 싶은게 아니라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했지 강해지자고... 내가 잘못한건 없어... 너도 마찬가지고... 만약 우리가 서로 함께 하고 싶다면 그럴수 있는거라고... 그건 잘못. 아니 아니 너무도 기쁜 행운이라는걸..."

이야기를 마친 형의 발갛게 상기된 얼굴은, 그리고 그 얼굴속의 큰 눈은 반짝 빛나고 있었다.

"나 오늘 형하고 함께 있고 싶어요."

그날밤 형과 나는 조그만 삼층 여관의 허름한 온돌방에 함께 누웠다.
그리고 예전 어느 날밤처럼 하나가 되었지만, 건강한 어깨도, 듬직한 허리도, 내 몸을 감싸안는 힘센 팔도 모두 그대 로였지만, 내 몸속에 들어온 형은 그리고 다시 형속에 들어간 나는 그날밤과는 무언가 다른 따듯함이 있었다. 형의 말대로 우리는 서로를 가지려는 몸짓이 아닌 서로를 지키려는 몸짓을 하고 있었다. 더이상 아무것 한테도 서로를 빼앗길수 없다는 약속을 우리는 그렇게 하고 있 었다. 마치 자궁속의 쌍둥이 처럼 흥건한 땀을 양수처럼 끌어안고 형과 나는 잠이 들었다.

이제 아무것도 고민하지도 갈등하지도 않을래...

꿈도 없는 잠

형과 처음 맞이하는 아침은 그렇게 다가오고 있었다.

관련자료

댓글 1

<span class="sv_wrap"> <a href="https://ivancity.com/bbs/profile.php?mb_id=linic" data-toggle="dropdown" title="라비앙로즈 자기소개" target="_blank" rel="nofollow" onclick="return false;"> 라비앙로즈</a> <ul class="sv dropdown-menu" role="menu"> <li><a href=님의 댓글

  • <spa…
  • 작성일
ㅜㅜ 왜 이리 슬픈지. 왜 이리 아름답지. ㅜㅜ 이런일은 현실이 아니었음 좋겠어요 ㅜㅜ. 너무 아름답지만..슬퍼보이자나요..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