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회= 커밍아웃(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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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종업원 괜찮다.. 키도 크고, 싹싹하고.. 나이도 좀 어려 보이는데 엑스 동생이나 해
버릴까? 너보다야 키는 작지만, 인물은 훤하네, 너처럼 피부에 여드름 난 것도 아니고.."

"뭐꼬...내가 봐서는 아직 고삐리 같이 보인다마는 누나 나이가 몇 살인데 원조 교제 할
일이 있나? 안 그래도 원조 교제해서 신상 공개되고 난리인데 누나도 끼고 싶나?
"저는 원조 교제했어요..하고 광고 할 일 있나? 흐흐흐. 그럼 참 볼만 하긋다. 처음엔 고등
학생인지 몰랐고, 나중에 관계가 깊어지고 난 뒤에 알았어요. 흐..흑.
그 때 가서는 후회해도 소용 없다는 것 알았고, 그냥 사귀기로 했다고요..훌쩍..훌쩍"
"사랑에 나이 차가 무슨 소용 있나요.. 사랑하면 그것 아닌가요? 전 동생을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 단지 제가 사랑했던 사람이 나이가 어렸던 것 뿐 이예요."
"제발 우리 사랑하게 해주세요..네~에.~~..하하하,,, 그렇게 신파극 찍을 일이 있냐고?"

"어머나, 이놈 봐라 누나 두고 못하는 소리가 없네, 그런 넌 어떤 남자가 좋니?"

"나?... 음.. 뭐랄까 마음이 푸근하고, 옆에 있으면 편안해 지는 그런 남자가 좋아."

"남자?..."

"어...어.. 아니.. 그런 여자가 좋다고.."

남자를 여자로 바꿔서 말하려고 했지만, 이미 사태 진압에는 늦어 버렸다. 누나가 동물원의 원숭이 보듯이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이리 보고 저리 보고 훑어본다. 누나 꾀에 넘어가고 만 것이다. 누나는 뭔가 눈치를 채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어떤 남자를 좋아하냐고 물었던 것이라는 듯 빙긋이 웃어 보였다. 뜻하지 않는 커밍 아웃으로 삶의 무게가 2g정도 무거워져 버렸다. 연신 넵킨에다 손을 비비꼬고 있는데, 누나가 다시 한마디 꺼낸다.

"영호야.. 걱정마라..! 난 진작에 눈치로 긁었다. "
"니가 전화하면서 수화기 너머로 남자한테 언니 하는 것도 이상했지만, 가끔 뜻하지 않게
 니가 자리에 없을 때 책상 위에 핸드폰에 뜨는 이름은 미순이, 영숙이인데, 막상 통화
 내용 들어 보면 남자 목소리가 들리더라.."
"그래서 눈치로 긴가민가하며 살짝 긁었는데, 좀 전에 니가 남자 좋아한다는 말에 다시 한번 물어본
 거야"

 누나 말에 수긍이라도 한다는 듯 연신 고개만 끄덕였고, 그런 누나도 나를 이해한다는 듯 말을 엮어가니 조용히 들을 수밖에 없었다. 성경을 낭독하는 소리도 내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는데 누나의 말 한 마디가 가슴을 난도 질 하듯 여기저기 헤집고 다녔다. 남자로써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이라고 할까? 남에겐 말하고 싶지 않은 비밀을 들켜버렸다는 수치심일까? 그런 것도 아님 드디어 올 것이 오고 말았구나 하는 복잡한 감정들의 뒤섞임으로 인해 지금 이 자리를 피하고 싶어졌다. 그런 누나를 보면서 여자의 육감이란 무서울 만큼 예리하다고 느꼈다. 감수성이 뛰어난 만큼 육감이 빠르고, 논리력 있게 말도 조리 있게 잘 하는 것 같다라는 느낌까지 들기에 더 이상 여자가 좋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고, 여자 앞에서 남자가 좋다는 표현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누나는..

"근데 영호야 니가 지금 남자가 좋다고 한 말을 커밍 아웃이 아니다."
"내가 먼저 눈치를 긁었으니 니가 들킨 거지..."
"네가 좀 전에 나보고 놀릴 때 한말 기억하지? 내가 좋아하던 사람이 나이가 어렸던 것 뿐
 이라고..그 말 기억해라.!~ 누나는 니가 남자를 사랑했다 하기보단, 니가 좋아하고 가슴
 앓이 하는 사람이 남자 였을 뿐이라고 말하기 바라니까...호호"

어느 드라마에서 들었을 법한 말로 누나는 나의 커밍을 받아드렸다. 아니 아웃팅이라고 보는 것이 더 맞는 말인 것 같다. 그러나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를 있는 모습 그대로 좋아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생겼다는 사실이 너무 기뻤다. 비록 1등 복권에 당첨되지는 않았지만, 세상이 다 나의 편이 되어 줄 것만 같은 착각에 살짝 웃음 짓는 누나가 사랑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그리고 때마침 매장 안에서 유승준의 "사랑해 누나"가 흘러나오고 누나한테 피자 값은 내가 낼게 하며, 계산서를 들고 카운터로 옮겼다. 이로써 세상은 언제나 좋은 사람들이 넘쳐 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자신의 주장만 우기고, 남의 개성은 인정해 주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긴 하지만, 그 가운데 몇 몇 안 되는 타인의 성 정체성까지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사실이 천군만마를 얻은 것 보다 기뻤다. 피자헛을 나온 두사람은 이내 영화관으로 가서 자리를 잡고 영화 삼매경에 빠져들었다.

""박찬욱"이란 감독 멋있지 않냐?"
" 분명 더 좋은 영화 만들 사람 같아. 몇 년 후면 헐리우드로 진출할 대한민국 영화감독이
  나오겠는걸..그리고 이영애는 외국말 되게 잘 한다. 지지배 꼭 외국에서 살다온 사람
 같네..스크린에선 저렇게 이쁘게 나와도 실제로는 디게 이상하게 생겼다던데.."
"뭐라드라, 얼굴도 주먹만해서 꼭 외계인 같다고 하잖아..그리고 요즘 연예인들 한두 군데
 고치는데 자신은 자연미인이라는데 그 말 누가 믿겠니.? 안그래?"

"누나는 영화는 안보고 그런 것만 보나?
"암튼 여자들이란 자기보다 이쁜 여자들만 보면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더라. 스크린이나
 텔레비전 브라운관에 여자 연예인들 나오면 잰 코 고치는데 500들었다느니, 눈을 고치는데
 1000만원 들었다느니, 그런 얘기는 왜 하는지 알 수 없어."
"하기사, 그리스 신화에 보면 그렇게 예쁜 비너스도 다른 여자한테 질투심 느꼈다고
 하더니만, 여자는 질투의 산물인 게 확실한 듯 하다..하하하.."

"어머나, 그러는 넌 질투심도 없니, 겉으로만 남자면 뭐하니? 속은 여자면서.. 호호호"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다는 게 맞는 말인가 보다.! 누나 놀려 주려다가 외려 내가 한방 먹은 꼴이 되어 버렸다.. 헤헤.. 그래도 그런 누나가 밉지는 않다. 외려 속 시원하게 날 있는 그대로 받아 주기에 더 편하기만 할 뿐이다. 영화가 끝나고 누나는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으로 갔고, 어느덧 비도 그치고 언제 그랬냐는 듯 노란 별들이 총총거리며 까만 밤하늘에서 뛰어 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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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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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늦었네요..ㅡ.ㅡ^^..다들 잘 보시고 계신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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