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옷소매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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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사원이 들어온지 거의 한달이 지나갈 때였다.

이제 업무에 좀 익숙해진 듯 보이는 녀석은 그럭저럭 자신의 일은 곧잘 해 내는 듯 보였다.
그리고 자신의 업무에 신입사원의 뒷바라지까지 해야 했던 지환은 이제야 한숨 돌리고 여유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출근 후, 쌓여있던 일을 끝내고 여유롭게 커피한잔을 마시고 있던 녀석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리고 액정화면에서 발신자를 확인한 녀석은 깜짝 놀랐다.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컴퓨터 모니터를 응시하는 나를 한번 흘끗 보고 녀석은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우안씨.”
열려있는 창문 밖을 바라보면서 지환이 전화를 건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

“어떻게 된 일이예요?  얼마나 찾았는데...”

“미안합니다.”

“그래서 지금 어디예요?”

“......”

그의 질문에 우안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우안씨?”
그런 그를 지환이 다시 불렀다.

“내 말 듣고 있는 거죠?”
“네..”
귀에 간신히 들릴만큼 작은 목소리로 그가 대답했다.

“지금 어디예요?”

“할 말이 있어서 전화했어요.”

“.......”

“그 화재에 관한 일이예요.”

“......”

“그거... 내가 한 거에요.”

이미 지환은 그 화재를 일으킨 사람이 우안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손발이 묶여있는 어린 준하와 집안에서 불꽃이 이는 것을 본 준하가 집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면 남은 사람은 우안 밖에는 없는 일이었다.

“그때 제가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그가 말을 잇지 못했다.  낮은 한숨을 쉬는 소리가 휴대폰을 들고 있는 지환의 귓속에서 희미하게 번졌다.

“술이 만취해서 깨어났을 때, 형이 옆에 없었어요.  간신히 몸을 일으켰어요. 그리고 침대 옆에 있던 테이블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집어들고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왔어요. 머리는 깨질 듯이 아프고 금방이라도 토할 듯 속은 뒤집혔어요.”

“......”

“물이라도 한잔 마시려고 손을 뻗어 거실의 전등 스위치를 찾으면서 형을 불렀어요. 그런데...”

“......”

“어딘가에서 낮은 신음소리가 들려왔어요.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눈이 뒤집혀 버렸어요. 다른 생각은 할 수가 없었어요. 그렇게 이성을 잃고.... 분노에 사로잡혀서...”

“........”

“병원에 누워있을 때 경찰한테서 준하형이 죽었다는 것을 들었을 때.....”

“그 형 죽지 않았어요.”
무의식적으로 지환이 그렇게 툭 하고 우안의 말을 끊었다.

“알아요.”

“.......”

“부모님하고 여동생 찾아왔었다는 말 들었어요.”
그가 다시 낮은 한숨을 쉬었다.

“저 그 경찰한테서 준하형이 죽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형을 잃었다는 괴로움속에서도 혹시라도 그 화재가 나 때문이라는 것이 밝혀질까봐.... 두려웠어요.”

“.......”

“그래서 숨어지냈던거예요. 사실은...”

“.......”

“그러다가 지환씨의 말을 듣고 혹시나 해서 얄팍한 생각에 이제 고개 들고 살아도 되는지, 사건이 종료가 된 건지 알아보려고 했던거예요.”

“.......”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사건은 종결되었다고 해도 내 마음속에는 여전히.....”

“우안씨.”

“누군가에게 자백하고 싶었어요. 내가 한 짓이 용서받을 수 없을 거라는 건 잘 알아요.”

“우안씨. 우선 우리 한번 만나요. 그리고...”

“아니예요.”
단호한 그의 말에 지환이 할 말을 잃었다.

“저.  잘 지내면 안되는데..  그래도 잘 지내요. 지환씨가 고마워서 전화했어요. 지환씨는 진실을 알아야 할 것 같아서...”

그리고 지환이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그는 전화는 끊겨버렸다.






그리고 그의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다.







인혁이 죽은 후로 준하라는 그 녀석은 자기 자신에게 환멸을 느껴버렸다고 했다.

그리고 정치의 꿈을 접고 녀석이 같이 하던 친구들과 떨어져 그만큼 거리를 두고 싶었던 그는 연신내로 이사를 했다.

그리고 인혁이가 마지막으로 부탁한 우안을 만나게 된 것이었다.



그 이후로 입을 다물어버린 준하로부터는 어떤일이 있었는지 정확하게는 들을 수 없었다.

그저 장현이 녀석은 술기운을 빌어 그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한두번 한탄하듯 말을 꺼낸적이 있었을 뿐이었다.

어린 준하를 그의 집으로 배달한 놈들이 그 다음에 정확히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모를리가 없었다.

우안을 끌어들이지 않기 위해서 준하는 녀석들과 타협을 했다.

알리바이가 만들어졌고 우안은 수사망에서 벗어났다.

가장 큰 역할을 했던 녀석이 지환을 협박하러 왔던 그 녀석이었다고 했다.  그 녀석이 사건을 눈감아주고 도와주는 대가로 준하에게 자신의 누나와 계약결혼을 요구했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자신의 아버지의 막대한 부를 온전하게 그가 물려받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법대를 수석으로 졸업할 만큼 총명했던 준하는 그를 위해서 그렇게 꼭두각시가 되었고,  그렇게 그 둘은 서로에게서 필요한 것을 취했다.


사실, 그 어린 준하란 놈의 여친이라고 등장한 여자는 그 자식이 적당히 사건의 종료시기를 연장하기 위해서 사람을 사서 시킨 일인지도 모른다는 말을 장현은 슬며시 꺼냈었다.  부모로부터 완전히 부를 물려받는데 자신이 생각했던 것 보다 시간이 더 걸렸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것을 또한 준하가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아니, 외골수였던 준하는 사건이 종료될때까지 그저 우안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것만 생각하고  만족했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 모든 일이 다 끝나버린 후에,  모든 것이 공허해진 그의 삶 속에서 준하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또 버텨낼수 있을 지 장현은 걱정을 했다.

그런 준하의 성격을 알았기에 그를 아꼈던 인혁이 그가 죽기전에 준하에게 우안을 맡긴 것 같다라는 말을 언뜻 녀석이 비쳤었다. 

자신에게 벌어진 모든 것을 알고 난 후에 좌절할 녀석을 붙잡아 줄 삶의 목표를 만들어 준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녀석이 원한대로 준하와 우안의 삶이 흘러가지 않았고 이제 또 다시 준하는 삶의 목적을 잃어버렸다.









이제 다시 자신의 집으로 이사를 나온 지환이 미처 챙기지 못한 것들을 박스에 담아서 장현이 사무실로 가지고 들어왔다.

“너는 이런 일도 나를 부려먹어야겠냐?”

녀석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피식 웃는 지환을 바라보았다.

“넌 어떻게 시간이 갈수록 뺀질거리면서 나를 부려먹냐? 내가 그렇게 만만해?”

그렇게 투덜대는 장현의 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이 울렸다.

“야! 넌 또 왜?”

“아. 오빠!”

옆에 서 있던 지환의 귀에도 들릴만큼 윤주의 생기 넘치는 목소리가 장현의 휴대폰을 통해서 들려왔다.

“오빠가 혹시 지환이 보고 이제 집에서 나가라고 하신 건 아니죠?”

“야, 내가 너 내쫒았냐?”

휴대폰을 귀에 댄 채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눈을 똥그랗게 뜨고 그가 지환을 돌아보았다.

“어머, 오빠 지금 지환이도 같이 있어요?”

그녀의 놀란듯한 목소리가 들려오고 곧 이어 그녀의 까르르 웃는 소리가 이어졌다.

“아이, 오빠는 참.... 말이 그렇다는 거죠.”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그가 흘끗 지환을 바라보고는 고개를 돌렸다.

“음......”

그녀가 잠시 뜸을 들였다.

“지환이가 있던 방을 계속 지환이에게 싼 값에 빌려주시면 어때요? 그러면 지환이도 월세 절약해서 좋구요.”

그녀의 능청스러운 목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저도 그러면 때 되는 대로 반찬도 해서 가져가고, 맛있는 음식 같이 해먹으면 오빠도 좋잖아요. 물론 재료비는 오빠가 내구요.”

“야, 반찬해주는 아주머니 계시다고 몇 번을 말해?”

“아, 오빠.” 그녀의 비음이 섞인 아양을 떠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성의 클라스가 다르다니까요. 웰빙 시대잖아요. 웰빙.”

그녀의 말에 장현이 픽 하고 웃었다.

“그리고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하잖아요. 오빠도 혼자 생활하던 것보다는 훨씬 좋았죠?”

그녀의 말에 장현이 슬며시 고개를 돌려 지환의 얼굴을 슬쩍 바라보았다.



 




퇴근시간이 지난 후에도 혼자 사무실에 남아  무엇인가 깊은 생각에 잠긴 듯 하던 지환이 마침내 자신의 휴대폰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고는 휴대폰을 귀에 가져다 댔다.


“준하형?  저 지환인데요. 제가 형에게 꼭 부탁할 일이 있어서요.”

녀석의 눈에 빛이 났다.

“이번일은 꼭 좀 들어주셔야 해요.”




녀석이 통화를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가방을 어께에 메고 조용해진 사무실을 한번 둘러본 뒤에 걸음을 옮겨 문가로 향했다.

손을 뻗어 전등의 스위치를 모두 내린 다음 어두워진 사무실을 뒤로 하고 녀석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곧 이어 문가에 서 있던 녀석의 그림자가 복도를 따라서 사라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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