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너머의 세상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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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리는 손으로 탁자위에 놓여있는 물잔을 들고 연거푸 물을 들이켰다.

초조함과 긴장으로 가슴이 조여와서 편안하게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나름대로 그런 긴장에서 벗어나고자 입을 벌리고 깊은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두 손을 잡고 문지르면서 여전히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탁자 아래에서는 오른쪽 다리가 자동적으로 떨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시선은 계속 카페의 문가를 주시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 그의 어머님의 모습이 나타날 것이었다. 처음에 취해야 하는 행동과 인사말을 머릿속으로 다시한번 연습하고 있었다. 공손히 일어나서 가능한 밝은 표정으로 미소를 띠면서 등을 굽히고 인사를 하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고 내 자신을 상기시켰다. 그리고 그녀에게 말씀을 드리는 것이다. ‘안녕하세요. 제가 한지석입니다.’

 

다시 한번 손을 뻗어 물잔을 잡는 순간 카페의 문 밖에 그의 어머님인 듯한 중년의 여성이

나타났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슬며시 몸을 일으키면서 나는 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녀를 주

시했다.

 

카페 내부를 둘러보던 그녀의 눈과 나의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그녀는 곧장 당당한 걸

음으로 내게로 걸어왔다.

“니가 지석이냐?” 그녀가 나를 노려보았다.

“예.... 안녕......”

그녀의 표정이 험악해지면서 내 시야에 그녀가 그녀의 오른손을 번쩍 들어올리는 모습이

들어왔다.

순간 눈앞에 불이 튀고 뺨이 얼얼해졌다. 무의식적으로 손을 들어 뺨을 어루만지면서

놀란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머리에 피도 안마른 새끼가 어딜 남의 귀한 아들을 꼬드기긴 꼬드겨!” 그녀의 표정은 얼음장 같았고 목소리는 서리가 낀 땅바닥에 떨어지는 뾰족한 고드름처럼 날카롭고 차가왔다.

“너! 우리 집안이 어떤 집안인지 알기나 해?” 그녀의 손은 마치 다시한번 내 뺨을 갈길 듯이 주먹이 쥐어진 채 그녀의 가슴께에서 떨고 있었다.

“걔 삼촌이 판사고 사촌형이 잘나가는 검사야! 이 쓰레기같은 새꺄!” 그렇게 내 뱉는 그녀의 입술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어디서 개,돼지 같은 게 나타나서 지 주제를 모르고 까불어!” 험악한 표정의 그녀의 눈에서는 불이 튀었고 주변의 사람들의 시선 따위는 그녀의 안중에는 없는 듯 보였다.

“우리 귀한 애한테 어디 한번만 더 그 더러운 꼬리 치기만 해봐! 담번엔 아주 돼지우리에 니 얼굴을 쳐박아 줄 테니까!”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고 살기어린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꼼짝도 못하고 여전에 볼에 손을 대고는 엉거주춤한 상태로 얼어붙은 채 그런 그녀를 바라보았다.

“재수 옴 붙으려니까. 어디 인간 같지도 않은 새끼가 나와서 드런 짓을 해!”

그녀가 말을 멈추고 몸을 돌아서는 듯 하더니 다시 나에게 몸을 돌려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고는 날카롭게 쏘아보았다.

“너! 똑똑히 들어. 이 쌍노무 새꺄! 너 한번만 더 내 아들에게 꼬리치기만 하면, 그 날이 네 제삿날일줄 알아!”

그녀는 다시한번 나를 재수없다는 듯 나를 노려보고는 몸을 돌려 카페의 문을 향해 당당하게 걸음을 옮겼다.

 

 

 

버스에 올라 자리에 앉고 나니 나도 모르게 두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얼마면 돼?‘ 그렇게 물으면서 턱을 뻣뻣하게 들고 테이블 위에 돈봉투를 내 쪽으로 내미는 고고한 자태를 뽐내는 교양있는 척 해 보이는 중년의 아주머니를 내가 대할 최악의 상황으로 예상했었다. 아니면 티비 드라마에서 자주 보듯이 물잔을 내 얼굴에 껴얹는 장면도 상상해 보면서 가능성이 없는 일이라고 피식하고 웃었었다.
 

형도 나에게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자신의 어머니는 ‘교양이 온 몸에 배어있는 분’ 이라고 말이다. 아무리 기분이 상한다고 하더라도 사람들 앞에서 너에게 어떠한 봉변을 줄 그런 분은 아니라고 형은 나를 달랬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의 말과는 전혀 달랐다.

바보같이 다른 사람들이 곁눈질로 나를 흘끗거리는 데도 눈물이 멈추지 않고 볼을 따라 흘러내렸다. 그런 주위의 시선을 느끼면서 나는 오른손을 들어 슬며시 이마와 두 눈을 손바닥으로 가렸다.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돌아가기 전, 정거장 앞의 건물에 있는 화장실에 들어갔다.

 

거울에 비친 나의 몰골은 참혹했다.

세차게 얻어맞은 뺨은 선명하게 그녀의 손자국이 붉게 부풀어 있었고 헝클어진 머리는 마치 자다가 깬 모습이었다.

입안의 볼살이 찢어져 침을 뱉을 때마다 핏물이 배어나왔다.

그제서야 버스의 다른 승객들이 왜 그리 자신을 흘끗거리면서 보았는지 이해가 되었다.

 

슬그머니 형에게 화가 나기 시작했다.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통화버튼을 누른 후 휴대폰을 귀에 갖다 댔다.

“여보세요?”

“형!” 형언할 수 없는 억울한 감정과 함께 화가 치밀러 올라 전화기에 대고 소리를 쳤다.

“형. 어머니가....” 말을 꺼내고 나니 나에게 생긴 일이 어처구니가 없어서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답답해졌다.

“나를....보자마자 다짜고짜로 내뺨을....” 말을 더 잇지 못하고 분함과 억울함이 다시 북받쳐서 두 눈에서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그러길레 내가 만나지 않는게 좋겠다고 얘기 했잖아.” 그가 느긋하고 편안한 말투로 대답했다.

“형!” 그의 예상치 못했던 황당한 대답에 기가 막혀서 다시 그에게 외쳤다.

“형. 지금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얼떨결에 나에 대해서 어머니께 얘기 했다면서! 만나 보시자고 한다면서 괜찮을 거라고 형이 그랬잖아!”

“아무리 그래도...” 그는 여전히 여유로운 느긋하게 그와 관련된 일이 아닌 제 삼자의 입장이 된 것같은 말투로 차라리 슬며시 조소하는 듯한 뉘앙스로 말을 이었다.

“니가 한두살도 아니고 알아서 상황판단을 하는 거지. 내 탓으로 돌릴게 아니고. 그리고 아무리 그래도 우리 어머니가 가만히 있는 너를 그렇게 하셨겠니? 니가 말을 잘못했던가.”

“야!” 그의 말에 분노와 함께 배신감이 솟아 올랐다.

“너 똑똑히 들어. 나! 입 뻥긋도 하기 전에 늬 엄마가 나한테 죽빵을 날렸어. 알어?” 분노에 입술이 떨리고 불끈 쥔 주먹은 그가 앞에 있다면 당장 한 방을 날릴 기분이었다.

“너! 미안하다고 말하고 나에게 싹싹 빌어도 모자란 마당에 뭐가 어째?”

“이 자식이. 너 지금 형한테 말하는 꼬라지가....” 그의 목소리가 커졌다.

“형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나의 뇌리 속에 가득 차 있는 육두문자를 억지로 삼키느라 나는 그 와중에도 ‘참자’ 라는 무언을 말을 되뇌이고 있었다.

“너. 아주 못된 놈이구나? 너 같은 놈!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그의 목소리에 야비한 말투가 배어나왔다.

“하! 참!” 그의 말에 코웃음이 나왔다.

“그거 내가 할말이야. 너란 놈 그런 놈인지도 모르고 일년반이나 좋아했다니. 내 감정과 시간이 아깝다. 나쁜 새끼! 너랑 두 번 다시 보는 일 없으면 좋겠다.”

“너가...”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 순간 나는 휴대폰을 툭 하고 끊어버렸다. 그리고 끊자 마자 그의 번호를 차단해 버렸다.

그리고 그를 향한 따뜻했던 감정도 동시에 끊어져 버리는 듯 했다.

 

일년 반.

그 동안 그를 사랑했었다.

그의 웃음과 그의 말투, 그의 모습을 내 뇌리와 마음 깊은 속에 각인 시키고, 그가 나의 진실한 반쪽이라고, 나보다 더 나은 나의 반쪽을 만났다는 사실에 그러한 행운을 나에게 보내준 신에게 감사했었다.

 

하지만, 그렇게 갑자기 뜻 모를 이유로 돌변한 그의 모습은 전혀 그 이전의 그가 아니었다.

바로 오전까지만 하더라도 그의 어머니를 뵙게 된다는 이유로 초조해 하며 어쩔줄 몰라하던 나에게 ‘걱정할 것 없다’ 고, ‘나만 믿고 편하게 뵈어라’라고 말해주던 그가 아니었던가.

그렇게 삽시간에 변한 그의 반응에 마치 지구가 반대 방향으로 자전 하는 듯, 밤이 낮이 되고, 눈이 오는 여름을 겪는 듯한 터무니 없는 현실이 오히려 마치 비현실이 된 듯 했다.

 

 

천천히 화장실 밖으로 걸어나가면서 그런 빙글거리면서 정신 없이 돌고 있는 나의 머릿속에 견딜 수 없는 공허함까지 엄습해왔다.

 

영원할 거라고 생각했던 그와의 관계가 순간의 그의 몇 마디 대화로 끝이 나 버렸다. 가슴 속에서 뜨거운 불덩어리 하나가 툭하고 튀어 올라와 목에 걸렸다. 가슴이 찡하면서 눈에 다시 눈물이 맺혔다.



건물의 밖으로 걸어나오면서 뜨거운 햇볕이 나를 감쌌다. 그리고 그의 그림자 속에서 나의 인생도 벗어나버렸다.

 

그것으로 그는 나의 과거의 ‘그’ 가 되어버렸다.

예전의 그는..... 바로 오전까지의 그는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도대체 그의 마음속에 어떤 변화가 그렇게 그를 바꾸어 버린 것일까?

 

그를 잃었다는 마음속의 고통도 느끼기 전에, 전화를 통해 들려오던 완전한 타인처럼 그의 소름끼치도록 이질적인 모습에 온전한 실연의 아픔을 느낄만한 마음의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로 나는 생소하게 변해버린 낯선 거리 속에서 낯선 공기를 들이마시며 낯선 사람들 사이를 싸늘한 느낌으로 멍하게 걸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서도 그와의 악연이 거기에서 끝이 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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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class="sv_wrap"> <a href="https://ivancity.com/bbs/profile.php?mb_id=dolldoll2" data-toggle="dropdown" title="doll2 자기소개" target="_blank" rel="nofollow" onclick="return false;"> doll2</a> <ul class="sv dropdown-menu" role="menu"> <li><a h님의 댓글

  • <s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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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님의 글을 한꺼번에 읽지 않고 아끼면서 읽습니다.
하루 한편을 오전에 반..
오후에 반..
이렇게요.
내용이 무척 궁금하지만 기다리는 재미가있어요.
마치 오늘 저녁에 근사한 식당에서 예약한가족 외식을 기다리는것처럼 말이지요...
벌써 5편이 오라왔던데 저는 오히려 천천히  올라왔으면 좋겠어요.
몰아치기를 기다리시는분은 빨리 올라왔으면하고 기다리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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