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비스워커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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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이와 다른 친구들을 피하면서 몇 주를 보냈다.

 

회사일이 바쁘다는 핑계도 여러 번, 집에 일이 있어서 가봐야 한다고 둘러대기도 했고, 존재하지도 않는 친척들도 두셋은 간단하게 영안실로 보냈다.

 

 

그렇게 나는 녀석을 피해 다녔지만 내가 어디에 숨어 있든,  녀석은 어떤 방식으로든 나를 찾아냈다.

 

 

 

 

 

 

녀석을 피해 도망친 곳은 하필 막다른 골목이었다.

 

뒷걸음 치던 나의 등 뒤에 차갑고 눅눅한 시멘트 벽이 느껴졌다.

 

녀석이 느긋한 발걸음을 옮겨 나에게 한걸음씩 다가 왔다.

 

녀석의 차가운 얼굴에 잔인한 눈빛이 번뜩였다.

 

녀석이 한손으로 가볍게 들고 있던 커다란 상자를 내 앞에 내밀었다. 얼떨결에 손을 뻗어 녀석이 내미는 상자를 받아들었다.

 

분명 녀석은 그것을 가볍게 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내 손에 넘겨지는 순간 그것의 무게에 나의 몸은 휘청거렸다.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나는 양팔에 힘을 주었다.

 

이게..... ..?” 공포속에서 녀석을 보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물었다.

 

네가 그렇게 원하는 거...” 녀석이 차가운 눈빛으로 싱긋 웃었다.

 

녀석에게서 시선을 돌려 상자를 내려놓고는 떨리는 손으로 슬며시 접혀진 윗 부분을 풀어서 열어보았다.

 

상자 가득 흙이 담겨져 있었다. 급하게 담았던 듯, 여전히 물기가 배어서 축축한 흙속에는 듬성듬성 거친 돌멩이와 풀뿌리도 섞여 있었다.

 

다시 고개를 들어 우영이를 올려다 보았다.

 

그러자 녀석이 그런 나를 내려다보면서 크게 웃었다. 그의 조소하는 듯한 웃음소리가 골목안에 메아리쳤다.

 

그게.....” 웃음을 멈추고 녀석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내 말을 듣지 않아서 목 줄을 채우고 강제로 끌고 오다보니까 제 멋대로 죽어버려서 말이야.”

녀석이 천천히 고개를 숙여 나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바짝대고 내 눈을 들여다보았다.

 

내가 그 속에 묻어 놨으니 손을 집어넣어서 잘 뒤져봐.”

 

그의 비웃음 속에 숨겨진 눈빛의 살기에 순간 소름이 오싹 끼치면서 나는 뒤로 주저앉아 버렸다.

 

그러자 그가 그의 겉옷의 주머니에서 개의 목줄을 슬며시 꺼냈다.

 

이건 아직 쓸만한데.......” 녀석이 그것을 마치 줄넘기를 손에 잡고 돌리듯 휙휙 소리를 내면서 휘둘렀다.

 

이제 어디에 쓸까? ?” 다시 녀석의 얼굴에 잔인한 미소가 흘렀다.

 

내가 꽉 얽어매서 끌고 다니고 싶은데 말야. 이 줄에 새빨간 피가 흥건하게 배어서 뚝뚝 떨어질 때까지....”

 

목줄을 손에 쥐고 그가 나에게 한걸음 바짝 다가왔다.

 

나는 두 손으로 그의 팔을 잡으려고 했지만 그의 팔의 힘은 나의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나의 목을 두른 그 줄의 끝을 잡고 그는 슬며시 당기기 시작했다.

 

우영아! 제발.....” 공포에 질려 두 손을 뻗어 녀석의 팔을 잡고는 필사적으로 살려달라고 애원을 했다.

 

그가 고개를 들어 골목의 양쪽을 한번 둘러보는가 싶더니, 그의 손에 들려있던 줄을 갑자기 힘껏 잡아당겼다.

 

아악!”

 

비명을 지르며 나는 침대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컥컥거리면서 여전히 놀란 채로 손을 들어 내 목 언저리를 만져 보았다. 온 몸이 흠뻑 땀에 배어있었다.

 

꿈이었다.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그렇게 녀석에 대한 미안함과 두려움 속에서  몇 주가 지난 어느 날, 우영이가 대만으로 출장을 갔다는 소식을 어쩌다가 우연히 한 대리로부터 듣게 되었다.

 

우영이 녀석과의 그 술자리 이후, 나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형과의 만남도 피하게 되었다. 그 녀석과 형의 사이에서 어떻게 처신을 하고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얕은 생각에 그냥 도망치고도 싶었다.

 

솔직하게 모든 것을 형에게 털어 놓을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형을 그쪽 일에 발도 못붙이게 할 수있다는 녀석의 말이 나의 귓속에서 끊임없이 들려왔다.

 

 

 

 

그렇게 나는 그에게 일을 핑계로 그리고 주말에는 군산의 부모님에 일이 있어서 가봐야 한다는 핑계로 그를 가능한 피하고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쌓여있는 회사일에 치이고 야근을 밥 먹듯 하는 나를 알고 있던 그도 나에게 만남을 강요하지도 않았다.

 

 

 

 

 

 

어느 수요일, 퇴근 후에 망설이던 나는 형을 향한 그리움을 이기지 못하고 형의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형을 만날 생각은 없었다.

 

그저 형 집 앞에 있는 계단을 올려다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그 너머에 있는 형의 존재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면서 설레었다.

 

그의 존재의 영향이 미치는 그 곳, 그의 숨소리와 목소리와 웃음이 느껴지기 시작하는 그 곳은 지친 나에게 힐링을 베푸는 힘이 있었다.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괜찮겠지라는 생각과는 달리 곧 비는 폭우로 돌변해 버렸다.

 

가까운 편의점으로 뛰어들어가 가격이 가장 싼 비닐 우산을 하나 사 들고 나왔다.

어두운 구름을 가득 채운 하늘은 더 이상 밝은 빛을 비추지 못하고 갑자기 후두둑거리며 쏟아지는 비가 온 거리를 채웠다.

 

 

 

골목을 빠져나와 형의 집으로 올라가는 계단과 연결된 큰 길로 나왔을 때였다.

 

 

나의 시야에 한 남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쏟아지는 폭우를 고스란히 맞으면서 그는 이미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흠뻑 젖이 있었다.

 

그의 발 아래의 도로위에 쏟아진 빗물이 퍼뜨리는 뿌연 물안개가 그의 발목을 덮고 있었고, 그런 그의 몸 위로 희미한 물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렇게 우영이는 축 쳐진 어깨로 주형이형이 살고 있는 집으로 올라가는 계단 위를 하염없이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정수리와 어깨 위에서 빗물이 튀었고, 그의 옷소매의 끝에서 다시 비가 흘러내렸다.

 

 

그렇게 굳어버린 듯, 전혀 움직이지 않고, 그는 주변을 의식하지 않은 채로 계단 위쪽만 그렇게 주시하고 있었다.

 

그의 그런 뒷모습을 나는 한참 동안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리고 결국 나는 몸을 돌렸다.

 

 

형과 나의 사이를 그렇게 가로막던 그 녀석은 그렇게 끝끝내 형에게 향하는 나의 길을 지금도 여전히 가로막고 서 있었다.

 

 

답답해진 가슴으로 숨을 쉬기가 어려워졌다.

 

 

처음으로 그런 그 녀석에게 미안함 보다는 원망과 미움이 솟아올랐다.

 

다 가졌으면서도.....”

 

참으려고 해도 쏟아져 나오는 감정을 막기 어려웠다.

 

부족한 것 없이 다 가졌으면서도.... 나에게 주어진 딱 하나뿐인 형까지 그렇게 꼭 빼앗아야만 하는 거냐?”

 

머리 위로 쓰고 있던 우산을 접어들고는 길 옆의 벽의 모서리에 마치 배트로 야구공을 치듯 휘둘렀다.

 

손에 저릿한 느낌이 전해 오면서 빗방울이 온몸으로 튀었다.

 

씨-팔!”

 

이를 악물었다.

 

나쁜 새끼!.”

 

 

너덜거리는 나를 닮은 부러진 우산을 길 가에 내던져 버리고 골목을 빠져나오자 휴대폰이 울렸다.

 

지금 어디냐?” 여전히 부드럽고 달콤한 그의 목소리가 나의 귀를 채웠다.

 

회사 끝나고......” 말을 멈추고 이마에서 눈으로 흘러내려 시야를 가로막는 빗물을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직원들하고 회식중이예요.”

 

그런데, 네 목소리가 왜 그래?” 놀란 목소리로 그가 물었다.

 

또 윤대리가 너 괴롭히냐?”

 

아니예요. . 윤대리 이제 내 발에 때만큼도 못돼. 그런 걱정 하지 말아요.”

 

나의 말에 그가 크게 웃었다.

 

갑자기 비가 쏟아지길래 조심해서 집에 들어가라고 전화했지.”

 

그런 그의 말에 코 끝이 찡해오면서 가슴이 저려왔다.

 

회사 책상속에 항상 우산 하나 넣어 놓고 있어요. 걱정 마세요.”

 

그래. 집에 도착하면 전화 하고...”

 

. .”

 

 

!”

 

전화를 끊기 전 다시 그를 불렀다.

 

?”

 

... 아니예요. 나중에 전화 드릴게요.”

 

녀석, 싱겁긴....” 그의 희미한 웃음소리가 귓속에서 아프게 번졌다.

 

 

...” 통화가 끊어진 휴대폰에 대고 중얼거렸다.

 

형을 너무 많이 사랑하는데.....” 눈물이 빗물과 함께 흘러내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형을 보내줄 수밖에 없을 것 같애.”

 

 

손에 쥐고 있던 휴대폰이 떨어져 길에 나뒹굴었다.

 

그래. 네가 이겼다.”

 

눈 앞에 어른거리는 우영이의 젖은 뒷모습을 향해서 중얼거렸다.

 

 

그리고, 옆에 서 있는 전봇대에 슬며시 등을 기대고 힘없이 주저앉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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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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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부 한 문장에 꿈으로 들어갑니다.
아흔아홉석 가진 부자가 한석을 채우기 위해
소작농 핍박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요?
한편으로는 우영이는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게
주형이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물론 주형이를 갖기 위해 자기가 가진 모든 수단을
가리지 않는 냉혈한 모습도 보이기는 하지만
다음편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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