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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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소가 있는 덕적도로 태현이네 아버지가 통통배로 급히 실려간 후, 며칠동안 태현이는 학교에 등교하지 않았다. 어머니와 함께 덕적도에 갔다고 했다.

 

 

어린 마음에 나쁜일을 하면 경찰에 잡혀간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던 나는 곧 마을 이장이 끌려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높은 위치에 있는 무장한 경찰들이 속도 빠른 경찰선을 타고 와서 이장의 팔에 수갑을 채우는 것을 상상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결코 벌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일을 벌인 후에도 기세가 꺾이지 않고 의기양양한 윤희의 아버지는 어깨를 펴고 웃으면서 마을을 활보하고 다녔다.

 

학교가 끝나고 하교길에 논두렁을 지나다가 나와 효식이는 이장이 태현이네 논둑을 괭이로 파내고 있는 것을 보았다. 간신히 논바닥의 벼가 목을 축인 후, 고여있던 물들이 그가 파 놓은 고랑을 통해서 개울로 흘러 내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물줄기들은 그 아래의 웅덩이에서 누렇게 말라서 시들어가는 잡초들 사이로 스며들고 있었다.

 

감히 누구에게 뎀벼, 지까짓게! 아작이 나봐야 정신을 차리지!” 그는 계속 큰소리로 궁시렁 거리면서 논 둑 여기저기에 고랑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

 

 

 

 

저녁 밥상 머리에서 국그릇에 수저를 넣던 어머니가 얼굴을 돌려 아버지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려서, 광주댁 바깥양반은 괜찮대요?”

 

그럭저럭 급하게 응급조치는 했나봐.”

 

다행이네요.” 말을 멈추고 어머니가 혀를 찼다.

 

그러게, 왜 이장님한테 그렸대? 가만 있으면 다 알아서 해주실 양반이 우리 이장님인디.....”

 

어머니가 한심하다는 듯 다시 한번 혀를 찼다.

 

 

 

 

학교에서 쉬는 시간에, 석호가 나에게 슬며시 다가왔다.

 

, 너 태현이가 언제 오는지 아냐?”

 

잘 모르는디....” 나는 그를 올려다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의 표정이 어두워지며 어깨를 늘어뜨리고 다시 자기 자리로 느릿하게 돌아갔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윤희는 새로 산 옷을 친구들에게 자랑하느라 한창이었다.

 

이거, 이거 봐. 이게 요새 서울에서 유행이래. 인천애들도 이런거 입은 애들 몇 없대.” 그녀는 자신의 등뒤에 달린 커다랗고 촌스러운 핑크색 리본을 등을 돌려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 이쁘다. 나두 갖구 싶다.” 주변의 여자아이들은 감탄과 부러움의 표정으로 치마의 위쪽에 붙어있는 리본을 바라보고 있었다.

 

행자가 손을 들어 그 리본을 만져보려 하자 윤희가 빽 하고 소리를 질렀다.

 

손때 묻어. 더러운 손으로 만지지 마!”

 

 

 

 

열흘 정도가 지나서야 태현이는 키도로 돌아왔다.

 

매일매일 그가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던 나는 교실로 들어오는 그를 보자 그의 자리로 후다닥 뛰어갔다.

 

아버지는 괜찮냐?”

 

.”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슬그머니 손을 뻗어 그의 팔꿈치를 만졌다.

 

우리 집 이사갈지도 모른다.” 그가 고개를 들어 나를 올려다보았다.

 

?”

 

여기서는 먹고 살기 힘들 것 같다고, 엄마랑 아버지랑 말하는 거 들었다. 아버지가 완전히 나으시면 정리하고 평택에 사는 고모네 근처로 이사갈거다.”

 

그가 이 섬에서 곧 떠날 것이라는 말에 그 모든 원인이 이장 때문이라는 생각에, 그의 딸인 윤희가 옆자리의 짝과 시시덕 거리는 것이 새삼스레 꼴보기가 싫어졌다.

 

내 자리로 돌아가면서 나는 실수인 척 그녀의 발을 슬쩍 밟았다. 그녀는 냅따 비명을 지르더니 책상에 엎드려서 흑흑 거리면서 울기 시작했다.

 

미안..” 그런 그녀를 내려다보면서 나는 조그맣게 마음에 없는 사과를 했다.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이 교실 앞 문을 열고 눈앞에서 사라지는 순간 뒷통수에서 번쩍하는 느낌이 났다. 머리가 핑핑 돌았다.

 

나는 머리를 감싸 쥐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쌍느무새끼그녀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추수가 끝나면 태현네 가족이 뭍으로 다시 이사를 간다고 아버지가 어느 일요일에 저녁을 먹으면서 말을 꺼내셨다.

 

낮에 태현이네 아버지가 무엇인가를 사러 우리 가게에 들렀다가 아버지와 두런두런 대화하는 것을 들었었는데, 아마 그 얘기를 한 듯 싶었다.

 

가뭄이 심했던 데다가 논에 물도 제대로 대지 못한 태현이네 였지만 그래도 남아 있는 것을 긁어 모아 추수를 끝낸 후에 이사를 갈 계획인 것 같았다.

 

 

막상 태현이네 가족의 이사계획이 동네에 알려진 얼마 후부터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태현이네 아버지가 이사를 간 다음에 뭍에 있는 경찰서에 이장을 고발 하려고 한다는 말부터 예전부터 이장이 잘못한 비리를 알아내려고 일단 이사를 간 뒤에는 그 이전에 섬에서 쫒겨 나간 사람들을 찾아다닐 것이라는 말도 떠돌았다.

 

뭍에서 사업이 망해서 돈 한푼 없이 섬으로 기어들어 온 주제에 나가도 기댈 곳 한군데 없을 것이라는 말도 그래도 태현이네 먼 친척 중에는 장관을 모시는 사람도 있다는 말도 또한 떠 돌았다.

 

여튼, 태현이네가 마을을 떠나면서 이장에게 복수를 하려고 단단히 벼르고 있을 것이라고 이웃집 아주머니와 엄마가 대화하는 것을 들은 적도 있었다.

 

그래도 우리 이장님 만한 인물이 어디 있간?” 엄마가 이웃집 아주머니의 말에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지었다.

 

누가 뭐래도 우리는 올해에도 먹을 만큼은 거두잖여. 덕적을 봐. 올 겨울에 죽으로 때우게 생겼다잖여.”

 

그려. 이장님 아니면 뭐 또 다른 인물이 우리 마을에 있기나 하남?” 이웃집 아주머니가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그러는 사이에 추수가 끝나가고 있었다.

 

마당에 쌓아놓은 벼 낟가리를 탈곡 할 때가 되어서 한참 분주한 때였다

 

11월로 넘어가면서 날씨는 싸늘해지고 낮 동안의 일조 시간도 눈에 띄게 짧아져 있었다. 탈곡기를 꺼내 놓고 하루 종일 아버지를 도와서 탈곡기의 발판을 밟아 댔다. ‘드드드드드드낟알들이 벼에서 떨어져 나가는 소리가 경쾌했고 그 사이에 공기를 채우는 먼지가 콧속을 매콤하게 채웠다.

 

아버지, 우리 먹을 만큼 쌀 나오면, 태현이네도 좀 나눠줘?” 나는 슬며시 옆에서 낟알들이 잘 여물었는지를 확인하고 계시는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는 나를 보시고는 내 뒷통수를 한번 쓰다듬으셨다. 그러나 아무 말씀 하지 않으셨다.

 

 

 

 

왜 그려요?”

 

한밤중에 엄마의 목소리에 잠이 깨었지만 잠결에 피곤함으로 눈을 뜨지는 않았다.

 

아녀. 손님이 왔나 봐. 그냥 자.”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가끔씩 급하게 물건을 사야 한다거나 할 때에는 그렇게 늦은 시간에도 가게 문을 두드리는 마을 사람들이 간혹 있었다. 그럴 때마다 귀가 밝은 아버지는 일어나 옷을 갈아입고 손님을 맞이하셨다. 이번에는 또 누가 이리 늦게 무엇을 사러 왔는가 하고 생각하고는 나는 다시 잠이 들었다.

 

 

불이야!”

 

사람들의 아우성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꿈속에선지 잠결인지, 아니면 현실인지 구분이 잘 되지 않았다.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켜 보니 어머니도 벌써 옷을 챙겨 입으시고 문을 열고 나가고 계셨다.

 

넌 그냥 여기 있어.” 어머니가 일어서는 나를 뒤돌아 보시고는 문을 닫으셨다.

 

문 밖으로 나온 나의 눈에 건너편 언덕빼기에 있는 집에서 불길이 솟아 오르고 있는것이 보였다. 태현이네 집이었다. 달도 없어 칠흙같이 어두운 논바닥을 발을 헛디뎌 빠져가면서도 냅다 뛰어서 논둑을 건너고 언덕을 뛰어 오르기 시작했다.

 

동네 사람들이 점점 더 모여들고 사람들은 웅성 거렸지만 막상 불을 끄려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바싹 마른 싸리나무 담장과 동네에서 유일하게 초가집이 었던 태현이네 집은 온동네를 대낮같이 밝히도록 타들어 가고 있었다.

 

아이고 어쩐댜. 아무도 못나온거 같은디!‘ 한 아주머니가 외쳤다.

 

그러는 사이에 아저씨들이 한 둘씩 샘에서 물을 길어 퍼 날라오기 시작했지만 한번 타오르기 시작한 불은 걷잡을 수 없었다.

 

아아아! !” 나는 머리를 부여잡고 무릎을 꿇고 앉았다. 저 안에 태현이가 자기 부모님과 함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머릿속이 혼미 해졌다. 어린 마음이었지만 가슴이 깨어지고 억장이 무너지는 것이 느껴졌다. 무릎을 꿇고 기다시피 불을 향해 손을 뻗어보았다.

 

큰손이 내 뒷덜미 옷을 잡아 낚아채며 뒤로 잡아당겼다.

 

불속에서 태현이의 고통스러워하는 얼굴이 보인 듯했다. 울음을 터뜨렸다.

 

아이고 어째.” “어쩐댜.”

 

주변에서 사람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불은 아침이 다 되어서야 꺼졌다.

 

 

당신 어디 있었어요?” 아침 밥상 머리에서 엄마가 아버지에게 물었다.

 

어제 불나서 동네 사람들 죄다 다 나와서 있었는데, 당신 안보이던디....”

 

어머니에 말에 아버지는 대꾸를 하지 않은 채 계속 수저만 놀리고 계셨다.

 

걱정혔잖애요.”

 

나도 거기 있었어.” 아버지가 투박하게 대답했다.

 

나는 못봤는디요.”

 

거기 있었다니깐.” 아버지가 수저를 내려놓고 어머니를 빤히 바라보았다.

 

잠시 입을 다물고 있던 어머니가 다시 아버지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외투는 어따 버렸어요? 어제 입고 나가는 걸 봤는데 왜 속옷 차림으로 들와요?”

 

허어, 아버지가 다시 어머니를 빤히 바라보았다.

 

불끄느라고 벗어놨었지. 나중에 찾아보니까 불에 탔는 지 없더만!”

 

엄마 눈치만 보면서 부운 얼굴로 수저만 깔짝 대다가 밥상 위에 내려 놓고 물잔을 손에 들었다.

 

너 왜 아침 안 먹어?” 먼저 수저를 내려 놓은 어머니가 나를 보시면서 핀잔을 주셨다.

 

 

외투를 생각하면 아까운 마음에 아버지에게 무엇인가 한마디라도 하시고 싶었겠지만 그 화살은 그렇게 나에게 돌아왔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마음 속에서는 그저 태현이가 불속에서 겪었을 죽음의 고통을 생각하고 있었다. 얼마나 뜨거웠을까. 얼마나 뜨거웠을까. 그 뜨거움 속에서 얼마나 고통스러워야 죽는 것일까. 태현이는 어떻게 그것을 겪었을까.


양쪽 눈꼬리 끝으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턱에서 잠시 멈췄던 눈물은 큰 덩어리가 되어 내 손등위로 떨어졌다.

 

내가 죽으면 그리 울어봐라. 이그!” 어머니가 짜증을 냈다.

 

여보, 애가지고 별 소리를!”

 

 

 

그렇게 막 아침을 끝내고 어머니가 밥상을 들고 일어서려는 순간 밖에서 누군가가 창문을 두드렸다.

 

왜 그려요?” 아버지가 창문을 열었다.

 

석호가 안 보인다는 구만?” 건너편 이장의 옆집에 사는 할아버지셨다.

 

석호가 누구여요?” 여전히 밥상을 들고 문쪽에서 창문쪽으로 몸을 돌리시면서 어머니가 물었다.

 

, 이장 아들 있잖여. 자는 줄 알았는디 아침에 일나 보니까 없다네. 혹시 종수네 놀러 왔나 해서 여기 와본겨. 지금 이장집은 발칵 뒤집혔어. 애 찾느라고. 아침부터 어디 갈 애도 아닌디 말여.” 할아버지는 주름이 가득한 눈을 똥그랗게 뜨고 아버지와 어머니를 번갈아 보았다.

 

나가서 찾아봐야 쓰겄네.” 아버지는 어머니를 한번 돌아보시고는 고개를 돌려 빈 벽걸이를 보시고 흠흠 하고 헛기침을 하시고는 장롱을 열고는 낡은 외투를 꺼내셨다.

 

 

마을 사람들은 그날 하루 종일 석호를 찾아서 섬 전체를 이잡듯이 뒤졌다.

 

아버지도 낡은 통통배 하나를 띄우고 하루종일 해안가를 수색하셨다. 바닷물에 빠졌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는데, 초겨울에 그것도 밀물로 가득 밀려온 물가를 새벽부터 애들이 갈 일이 없을 듯 했다.

 

그리고 섬주민 모두가 섬 전부를 뒤졌는데도 끝끝내 보이지 않았다. 바다에서도 시체는 떠오르지 않았다.

 

 

이튿날에는 화재소식을 전해들은 덕적도에서 조금 높은 경찰들과 보건소에서 사람들 몇이 와서 타고 남은 태현이네 집을 조사하고 돌아갔다.

성인둘에 아이 하나. 그들은 태현이의 부모님과 태현이의 타다 남은 뼈를 발견했다고 말했다. 화재 원인은 밤중에 태현이가 촛불을 켜놓고 책을 읽다가 잠들어 버린 것 같다고 했다.

 

 

이미 마을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는 태현이 가족은 밀려나 있는 듯 했다.

 

그들은 이장집에 모여서 그들 부부를 위로했다. 시체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은 석호가 아직 살아있을 수도 있는 거라고 누군가는 말했다. 덕적도에도 사람이 보내지고, 인천을 오가는 여객선을 통해서도 석호의 사진이 뿌려졌다.

 

그러나 그를 보았다는 사람은 결코 나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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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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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pa…
  • 작성일
설마 아버지와 화재가 관련있는건 아니겠죠? ㅜㅜ
재밌습니다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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