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의 숲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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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워지는 창밖으로 지나는 차량들이 하나 둘 씩 미등과 헤드라이트를 켜기 시작하고 지나쳐서 멀어지는 승용차들의 엉덩이 부분에서 발그스름한 브레이크등이 슬며시 밝혀졌다가 사라지곤 하고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아파트의 창문 밖을 내다보다가 그가 재떨이에 담배꽁초를 툭툭 터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검지손가락으로 끝부분을 눌러 비벼대더니 그는 탁자위의 한 쪽에 놓여있는 휴지조각을 집어들고는 손가락을 비비적거리면서 문질렀다.
“그래서 결론은 낸거야?”
“결론이랄게 뭐 있나....” 그가 미간을 찌푸리더니 나를 슬쩍 곁눈질로 돌아보고는 창문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머니가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지 않으실거라고 단단히 벼르시고 계시다면서.”
대답없이 여전히 멍하니 창 밖을 내다보고 있는 그의 옆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초점이 잡혀있지 않은 듯한 그의 눈망울위로 그가 눈을 깜빡일 때마다 가녀린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여자도 온다면서.....”
여전히 그는 아무 대꾸 없이 창문밖의 어딘가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아무도 모르는 광야를 헤매고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길을 잃은 듯 했다.
여전히 요즈음 세상에도 ‘삼대독자’ 타령을 하시는 그의 어머님을 뵌 적이 있었다.
지난 해, 그는 자신의 생일날 뜻밖에 나를 집으로 초대했었다. 불편해 하는 내 표정을 읽으면서도 그는 나를 친구라고 집에 말을 해 놓았다고 했다. 애인이 아닌 친구라는 타이틀이라도 붙여서 나를 그의 부모님께 보여주고 싶다고 내 팔을 잡고 끌었었다.
“민환이라고 했지?”
자상한 눈빛으로 그의 어머니는 거실의 소파에 앉아있는 나를 찬찬히 바라보셨다.
“예...” 부모님을 어렸을 때 여의고 고아원에서 살아왔던 나는 그가 그냥 ‘어머니’와 ‘가족’의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가 말할 수 없이 부러웠다.
사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한 기억이 너무나 가물가물하게 나의 기억속에서 잊혀지고 있었다.
작은 시골의 고아원에서 원장과 보모가 친절하게 대해주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항상 소외되었다고 느끼고 있었다.
작은 산의 중턱에 위치해 있던 그 고아원은 원래는 마을내에 세워지기로 되어있었지만 마을 사람들의 반대에 부딪쳐서 인적이 드문 산중턱으로 자리를 옮길 수 밖에 없었다는 얘기를 커가면서 들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학교에서 반 아이들에게 왕따를 당하거나 몸집이 좀 큰 녀석들이 수업이 끝난 다음에 집단으로 괴롭히는 날이면 저녁시간이 지나고 어두워진 밤에는 혼자 뒤뜰로 나가서 풀밭에 구겨진 채 누워서 하늘을 올려다보곤 했었다. 그리고는 내 말에 귀를 기울이지도 않을, 하늘에 있다는 엄마에게 왜 나를 낳아서 이렇게 고생을 시키냐고 떼도 써보고 잘 떠오르지도 않는 엄마의 얼굴을 생각해 내려고 애쓰다가 급기야는 손으로 입을 막고 소리죽여 흐느끼곤 했었다.
그래서 나의 어머니의 존재가 없다보니 길에서 볼 수 있는 아주머니들이나 내 앞에서 나에게 미소를 짓고 있는 그의 어머니의 모습이 사실 자상한 것인지, 평범한 것인지, 좋은 편인지 아닌지를 가늠할 수 있는 기준이 없었다.
그저 소파의 나의 건너편의 그 옆에 앉아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의 어머니가 현실감이 떨어질 정도로 부러운 존재일 뿐이었다.
“그래, 결혼은 했구?”
“아뇨, 아직....”
“그럼, 여자친구는?”
“예?... 아... 그게... 있긴 있는데요.....” 내 대답에 그의 표정이 순간 바뀌었다. 하지만 나는 얼굴에 홍조를 띄는 그의 어머니에게서 시선을 돌릴 수 없었다.
“그렇게 다 있는 여자가 왜 우리 윤호한테는 안붙는 건지.....” 그의 어머니가 고개를 돌려 그를 향해 혀를 찼다. “인물이 빠지길 해, 그렇다고 배운게 모자라?” 말을 멈추고 다시한번 한숨을 내리 쉬던 그녀가 나에게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혹시, 마땅한 색시 있으면 이 녀석 좀 소개 좀 시켜줘 봐. 벌써 서른 둘인데 저렇게 태평하게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시간만 보낸다니까. 저러다가 총각귀신이 되고 말지 원!” 그의 어머니는 다시한번 그를 슬며시 쏘아 보시고는 자리에서 일어나셔서 탁자 위에 놓여있는 빈 커피잔을 들고 주방쪽으로 사라지셨다.
나에게는 그렇게 부럽게만 보였던 어머니가 그에게는 견디기 어려운 존재였다.
엎어지면 코 닿는 광명시에 사시는 부모님 집에서 일부러 서울의 반대쪽인 상계동으로 그가 혼자 독립해서 이사를 나온 것도 가족의 시선과 관심을 가능한 한 피해보자는 속셈이었다.
그러나, 보수적인 그의 집안에서 삼대독자인 그는 결코 그 그늘을 벗어나지 못했다.
처음에는 어머니의 입으로만 새어나오던 ‘결혼’에 대한 압박이 점점 가족 전체와 친척들이 동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자신의 짝을 찾지 못한다면 가족이 나서서 찾아주어야 한다는 서산에 사시는 그의 조부모의 닦달로 여기저기서 괜찮다는 선이 끊임없이 들어왔고 그는 소개를 받은 여자와 둘이 있게 될 때면 코를 킁킁거리면서 풀었고 일부러 가래도 ‘캬악’ 하면서 뱉었다고 했다.
‘선보는 자리에서 여자 떼어내는 법 1000 가지’ 라는 책을 낼 참이라고 그는 내 앞에서 킥킥 거리곤 했었다.
하지만 그도 나도 알고 있었다.
그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둘 다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나는 그저 상상으로만 느껴야 하는 결혼에 대한 압력이 그에게는 견딜 수 없이 무거운 족쇄가 되어 있었다.
시간이 흐를 수록 나는 그런 그가 진흙속에서 발을 끌면서 힘겹게 내딛는 것을 바라만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는 지난 일요일, 그의 어머니의 생일날에 그의 조부모를 비롯해서 가까운 친척들이 그와 그의 그녀를 보러 오기로 결정을 한 것이었다.
그녀는 처음에는 최소한 그와 나의 세상 속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그런 여자였다.
그런 그녀를 상상속에서 창조해 낸 것이 그와 나였다.
아니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녀를 만들어 낸 것은 ‘그’ 였다. 나는 그저 그 옆에서 방관자로 구경만 한 떨거지 공범자였다.
그녀는 그와 같은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도 근처이다 보니 서로 우연히 몇 번 지나치면서 마주쳤고, 또 그와 내가 저녁을 먹는 식당에서도 우연히 만나게 되어 인사를 하게 되었다.
명랑하면서도 상냥한 그녀는 붙임성도 좋게 우리의 대화에 관심을 보였고, 어쩌다 보니 셋이서 같이 술도 한잔 하게 되었다.
알맞게 취한 우리 셋은 핸드폰으로 서로의 사진도 찍어가면서 킬킬거리고 웃으면서 노닥거렸고 그렇게 안면을 트고 친해지게 되었다.
물론 무의식적으로 내 주위에 든든한 울타리를 치고는 누군가 그 울타리를 뛰어 넘어 올까봐 방어의 자세를 취하는 나 보다는 세련되고 품위 있어보이는 귀공자같은 그에게 그녀가 더 관심을 보인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사실, 나의 주변에 세워진 울타리는 내 자신이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한 방어용이기도 했지만 누군가는 그것을 넘어서 나의 삶속으로 뛰어들어 오기를 나는 갈망하고 있었던 듯 했다.
가끔씩 그가 부모님집을 들를 때와 아들의 집으로 찾아오기도 하는 그의 어머니의 잔소리에 못이겨 어느 순간 그는 그녀와 찍은 사진을 될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충동적으로 보여주었다. 순간적으로 참기 어려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 얼떨결에 나온 행동이었지만 어짜피 벌어진 일로 인해서 그것으로 시간을 벌려는 그의 계산이 맞아 떨어져서 얼마동안을 그는 편안한 듯 보냈지만, 시간은 결코 그와 나의 편은 되지 못했다.
애인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숨겨놓고 있는 아들에게 더 큰 압력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그는 술자리에서 그 사실을 그녀에게 털어놓아 버렸다.
나는 그런 그를 얼굴이 붉어진 채 500CC 맥주잔을 손에 든 채로 멀거니 바라보기만 했다.
그저 친한 친구사이로만 알고 있던 그와 나 사이에서 그녀는 마치 푸른 잎이 늘어진 서늘한 나뭇가지에 앉아서 그 위에 고여있는 단물을 빨아먹는 매미처럼 그 옆에 붙어버렸다.
나의 가슴과 젖꼭지에서 맴돌던 그의 입술이 갑자기 울리는 그의 휴대폰으로 옮겨가고, 한밤중의 무거운 침묵 속에서 그의 몸 아래에 눌려있는 나의 귓가에도 들려오던 그녀의 목소리는 마치 바늘과 같이 내 귓속을 찔러댔다.
어둠 속에서 나를 한번 흘끗 보고는 다정한 목소리로 그녀와 대화를 하는 그의 목소리를 들을 때면 마치 남의 삶을 침투하고 있는 것은 그녀가 아닌 바로 나인 듯 한 자괴감과 허탈감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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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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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적령기에 드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민했을, 고민할, 그리고 바로 눈앞에 현실처럼
벌어진 그런 이야기라서 좀 더 활자를 가까이 하게 된다.
그리고 천천히 서로의 고민을 나누는 것처럼 읽어 나간다.
그럼에도 어느 순간 1편이 끝이 나 있다.
'그겨울'님의 소설이라면 믿고 봐도 후회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