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라 황석호 -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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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두 달이 넘는 겨울방학이었고, 비가 오는 날을 빼고는 매일 일을 했으니 제법 돈을 만질 수 있었다. 개학하기 일주일 전까지 꼬박 채우고 미련 없이 집을 떠나 특별시로 가는 기차를 탔다.

  동아리 방에 짐을 부려 놓고 자취방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 뛰어 다녔다. 운 좋게 가정집의 다락방을 구했다. 다락방이라고는 해도 거실 한쪽 구석에 있는 작은 계단을 올라가기만 하면 되는 방이었다. 조금 좁긴 했지만 혼자서 잠만 자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주인집과 함께 살아야 했으므로 좀 불편하기는 해도 그닥 문제될 것이 없었다. 보증금이 따로 없이 월세만 내면 되는 집이어서 나에게는 딱이었다. 주인집에서도 들어오는 사람이 잘 없었는데, 운 좋게 방이 나갔다며 좋아라 했으니 서로에게 윈윈이었다.


  군대에 가기 전 1년 동안 머물 집을 마련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하지만 곧 석호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지방 출신인 내가 특별시에 발붙이고 재미나게 살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석호 때문이었다.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내 시선은 항상 석호에게 머물러 있었다.

  솔직히 기숙사 화장실에서 자위를 할 때도 늘 석호를 떠올렸다. 선생님과 어릴 적에 섹스를 한 경험은 내 상상을 더욱 구체적으로 만들었다. 선생님 대신 석호를 넣으면 되는 일이었으니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내 상상 속에서 석호는 섹스 머신이 되어 나를 마음껏 유린했다.

  자위를 한 다음날 석호를 보면 괜히 미안해지는 감도 없지 않았으나 어차피 내 상상 속에서만 벌어진 일이고, 석호는 전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 미안함도 잠깐일 뿐이었다. 석호는 내 상상 속에서 내 애인이었다. 늘 딱 달라붙는 바지만 입고 다니는 석호의 불룩한 앞섶을 보며 어떻게 생겼을까 상상을 하는 것이 하나의 즐거움이었는데, 이제는 그러지를 못할 것 같아 마음이 심란해졌다. 그나마 장씨 아저씨와의 장면이 생생하게 남아 있으니, 자위를 할 때 석호로 바꾸어 상상을 하면 되겠다는 생각으로 심란한 마음을 달랬다.


  아무튼 석호가 이제 군대에 가고 없어서 동아리 방에 가는 것도 그다지 재미가 없을 듯 했다. 학번 별로 멤버를 꾸려 놨는데, 나랑 똑같은 90학번 멤버들은 지들끼리 멤버 구성이 되어 있으니 내가 들어갈 자리는 없었다. 지난 해 말처럼 열심히 연습을 하겠노라 다짐을 했지만 석호가 없는 동아리 방에서 연습이 될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음악이 좋고, 베이스 기타에서 나오는 둥둥거리는 소리가 너무나 사랑스러웠지만 모두 석호가 옆에 있었기에 더욱 즐거웠던 것이 사실이었다.

  짐을 가지러 동아리 방으로 가는 내 발걸음이 무거웠다. 학생회관 앞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워 물었다.


  “야~ 이영기~~~!!!”


  나를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석호가 내 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담배를 끄고 천천히 일어서는 나에게 석호가 달려와 부둥켜안았다.


  “안 그래도 너 언제 오나 기다리고 있었어.”


  “너 군대는....”


  “아직 영장 안 나왔어.”


  “아~ 그렇구나....”


  “야, 너 언제부터 담배 폈어?”


  “방학 때.... 노가다 하면서....”


  “짜식~ 어차피 필 거면서 진작 좀 피우지.”


  석호는 벤치에 앉아 나를 끌어당겼다. 나는 석호 옆에 앉아 또 담배를 피웠다. 석호와 함께 피우니 더욱 맛있었다.


  “동아리 방에 있는 가방 니 꺼야?”


  “응. 방 구한다고 잠시 놔뒀어.”


  “방은 구했어?”


  “응.”


  “어디?”


  “학교에서 좀 멀어. 걸으면 한 15분?”


  “그 정도면 가까운 거지. 차 안 타고 다니는 게 어딘데....”


  석호와 함께 가방을 하나씩 나눠 들고 내가 구한 방으로 향했다. 서로 방학 때 무엇을 했는지 이야기하며 걷는 길은 너무나 즐거웠다. 말이 적은 편은 아닌 석호였으나 석호가 하는 얘기는 대부분 합주와 관련된 것이었다. 나랑 둘만 동아리 방에 있을 때도 거의 대부분 베이스 주법에 대한 이야기였기에 석호가 지난해와는 달리 좀 살갑게 구는 것이 어색하긴 했지만 나에게는 좋은 일이어서 나도 방학 동안 일어났던 일들을 신나게 주절댔다. 물론 장씨 아저씨 얘기는 하지 않았다.


  2학년 새 학기가 되어서도 1학년 때처럼 매일 동아리 방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다. 석호가 있기 때문이었다. 베이스 기타를 잡고 열심히 피킹 연습을 했다. 검지와 중지의 힘이 달라 소리가 미묘하게 차이가 나는지라 같은 소리가 나도록 힘 조절 연습이 주를 이뤘다. 하루에 몇 시간씩 매일 연습을 몇 달 동안 한 결과 웬만한 테크닉은 구사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내가 속했던 멤버들이 군대에 갔으니 합주를 할 수 없어 아쉬울 뿐이었다. 그나마 석호와 둘이서 연주를 하며 아쉬움을 달랬다.

  2학년이 되면서는 91학번 신입회원들을 뽑는 오디션도 참관을 했다. 석호가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으니 신입회원을 뽑는 것도 석호의 의견이 많이 작용을 했으나 가끔 내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석호는 신입회원뿐만이 아니라 2학년이 된 90학번 멤버들의 연습에도 관여해서 정말 피가 나도록 혹독하게 시켰다. 5월 축제 공연을 위해서였다. 그러나 석호는 그 공연을 볼 수 없었다. 군대 영장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어린이날 바로 다음 날이 입소였다.


  석호가 군대에 가기 전 금요일에 밴드 동아리 차원에서 송별회가 열렸다. 복학을 한 예비역 선배들도 모였다. 석호가 입학을 하기도 전에 군대에 갔던 선배들이었지만 가끔 동아리 방에 들러 석호의 노래와 연주 실력을 본 터라 석호의 군입대를 무척이나 아쉬워했다.

  군 입대 송별회인데다가 예비역 선배들까지 모인 자리였기에 처음부터 화제는 군대 얘기였다. 당연히 예비역 선배들이 먼저 시작을 했는데, 석호는 그다지 표정이 좋지 않았다. 입대를 앞두고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석호는 입대 전부터 군대 얘기를 듣는 것이 싫었던지 화제를 음악 이야기로 돌렸다. 밴드 동아리답게 금세 음악 이야기로 전환이 되었다.


  송별회가 끝나고 석호와 헤어지는 것이 아쉬워 나는 석호를 붙잡았다. 석호 때문에 밴드에 가입했고, 석호 때문에 동아리 방을 드나들었고, 석호 때문에 열심히 연습을 했고, 석호 때문에 학교생활이 즐거웠는데, 오랜 동안 석호를 보지 못한다는 현실 앞에서 조금이라도 더 석호와 함께 있고 싶었다.

  이런 내 마음을 석호는 아는지 모르는지 동아리 방에 들어서자마자 카세트테이프를 넣고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석호와 나, 둘이 있을 때만 듣던 신해철의 Myself 앨범이었다. 나온 지 한 달 남짓 되어 따끈따끈한 노래들이었다. 석호와 나를 이어주는 것이었다. 소파에 나란히 기대고 앉아 노래를 따라 불렀다. 한 달 동안 줄기차게 들어서 가사를 줄줄 외우고 있었기에 자동적으로 노래가 터져 나왔다.


  노래들이 이어지다 B면 마지막 곡,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길 위에서’가 흘러나왔다.


https://youtu.be/98iJont-YR8

신해철, '길 위에서'

'

  나는 따라 부르지 않았다. 첫 가사부터 지난날에 내가 방황을 했던 때가 떠올라 들을 때마다 울컥했기 때문이었다. 1절을 따라 부르던 석호가 간주 없이 시작되는 2절은 부르지 않고 나에게 넌지시 물었다.


  “넌 이 노래는 꼭 안 따라 부르더라.”


  “옛날 생각이 나서....”


  “언제?”


  “고등학교 다닐 때.... 이 노래 들으면 자꾸 그때가 생각나서 괜히 울컥해.”


  “방황하던 거?”


  “응. 근데 또 많이 위로가 돼.... 넌 울컥하는 노래 없어?”


  “글쎄.... 울컥한다기보다 내 심장을 후벼 팠던 노래가 있지.”


  “무슨 노래?”


  “Bee Gees, ‘Holiday’.... 우리 고3 때 탈주범 인질극 생중계 됐었잖아. 너도 봤어?”


  “아니. 보지는 못하고 얘기만 들었어. 너는 봤어?”


  “응. 일요일 아침에 독서실 가려고 밥 먹다가.... 그날 아무 것도 안 하고 노래만 들었어. 그냥 좋은 노래네 하던 게 완전히 다르게 들리더라. 그날부터 Holiday는 나한테 레퀴엠 같은 노래로 남았어....”


  석호와 나는 한동안 아무 말 없었다. 석호나 나나 같은 심정이었을 터였다. 석호는 자기 때문에 숙연해진 분위기를 바꾸려고 그랬는지 나를 일으켜 세워 동아리 방을 나왔다.

  학생회관에서 교문까지 어두운 교정을 걸으면서 우리는 여전히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의 숙연했던 분위기에 석호가 군대에 가는 현실까지 더해져 기분이 더욱 가라앉아서였다.


  교문을 나와 버스정류장 쪽으로 방향을 잡았을 때, 나는 그냥 이대로 석호를 보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영 헤어지는 것도 아니고, 휴가를 나오면 다시 볼 수가 있겠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남았다. 나는 침묵을 깨고, 석호의 이름을 불렀다. 그런데 석호도 내 이름을 불렀다. 거의 동시였다.


  “니가 먼저 말해.”


  “아냐, 너 먼저 말해.”


  “군대 가는 니가 먼저 말해.”


  석호는 내 눈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나.... 집에 가기 싫어. 나 좀 재워주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석호와 나는 방향을 돌려 내 자취방 쪽으로 향해 걸었다. 또 아무 말 없이 그냥 걷기만 했다. 자취방에 거의 다다랐을 때 석호가 침묵을 깼다.


  “너 아까 하려는 말이 뭐야?”


  “아냐, 아무 것도....”


  “뭐야, 사람 궁금하게....”


  “내일.... 자고 일어나서 내일 말할게....”


  나는 밤늦은 시간이라 조심스레 소리를 죽여 현관문을 열고, 발뒤꿈치를 든 채로 석호와 함께 계단을 올라가 방으로 들어갔다. 술도 어지간히 취한데다 귀찮기도 하고 주인집에 민폐를 끼치지 말자는 핑계로 석호와 나는 씻지도 않고 그냥 방에 널브러졌다. 그래도 옷은 갈아입어야 할 것 같아 청바지를 벗고 추리닝 반바지를 입었다. 석호도 편한 옷으로 갈아입혀야 되는데 마땅한 것이 없었다.


  “뭐 찾아?”


  “너 편하게 입을 옷....”


  “됐어. 니 옷이 나한테 맞겠냐? 그냥 벗고 자면 되지.”


  석호는 방바닥에 누운 채로 입고 있던 청바지를 벗었다. 석호는 벗고 자는 것이 괜찮을지 몰라도 내가 괜찮지 않았다. 자위를 할 때마다 석호를 떠올리는 내가 석호를 팬티 바람으로 재운다는 것은 내가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다. 옷 바구니를 뒤적거리는 나를 석호가 끌어당겨 자기 옆에 눕혔다. 파란색과 노란색이 겹친 줄무늬 삼각팬티를 입은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청바지 앞섶이 불룩했던 이유가 더욱 생생하게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머릿속에서는 눈을 뜨고 보라고, 그토록 보고 싶어 하던 것이지 않느냐고 또 다른 내가 속삭였지만 차마 뜰 수가 없었다. 안 보는 것이 석호와 나를 지키는 유일한 길이었다. 그래도 계속 감고 있을 수는 없어 시선을 아래로 내리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며 겨우 눈을 떴다.

  그런데 석호는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티셔츠마저 벗었다. 두툼한 가슴살과 언저리에 난 털이 보였다. 나는 다시 눈을 감으려 했으나 이어지는 석호의 행동이 내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게 만들었다. 석호는 티셔츠를 발밑으로 던지고 바로 이불을 덮으며 말했다.


  “뚱뚱한 거 쪽팔려.”


  턱 밑까지 이불을 덮고 있는 석호가 귀엽게 느껴졌다.


  “빨리 불 꺼. 나 이불 덮고 못 잔단 말야.”


  나는 불을 끄고 석호 옆에 누워 나도 이불을 끌어당겨 덮었다. 석호는 이불을 가슴께까지 내리고 손을 곱게 가슴에 포갰다.


  “영기야....”


  “응?”


  “잘 자....”


  “너도 잘 자....”


  잘 자려고 했으나 잠이 들지 않았다. 당연히 석호 때문이었다. 온갖 상상으로 유린하던 석호가 팬티 바람으로 바로 내 옆에 누워 있다는 사실이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었으니 잠이 올 리가 없었다. 잠이 안 오는 것은 석호도 마찬가지인 듯 했다. 잠자리가 바뀌어서 그런 모양이었다.

  석호와 나는 엎드려 누워서 서로의 얼굴을 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주로 음악에 관한 내용이었다. 나에게는 다행스런 일이었다. 그렇게 창문이 밝아올 무렵에야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잠이 들었다.


  12시가 되어서야 일어난 우리는 학교 앞 분식집에서 볶음밥을 먹었다. 석호를 보내기 싫었지만 더 이상 붙잡을 수가 없었다. 가족들과도 시간을 보내고 본격적인 입대 준비를 해야 했다. 하지만 이대로 보내기는 너무 아쉬웠다. 지난밤부터 담아두고 있던 말을 석호에게 꺼냈다.


  “석호야....”


  “응?”


  “나 너 따라갈래.”


  “어딜?”


  “너 입대할 때 같이 간다고.... 원래 군대 갈 때 친구들이 따라가는 거잖아.... 괜히 부모님 마음 아프게 하지 말고 나랑 같이 가자.”


  “안 돼. 절대 안 돼.”


  석호의 목소리는 너무나 단호했다. 내 마음을 몰라주는 것이 야속하기도 하고, 도무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어 나도 약간은 격앙된 목소리로 물었다.


  “왜? 왜 안 되는데?”


  석호는 내 눈을 한참 바라보더니 심드렁한 목소리로 그 이유를 말했다.


  “어색해진 짧은 머리를 보여주기 싫어서....”


  노래 가사를 인용한 대답에 어이없는 웃음이 새어나왔지만 곧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깨 너머까지 오는 치렁치렁한 머리를 다 밀어야 했으니, 그 어색함은 노래 가사에서 풍기는 그 이상일 것이었다. 석호가 빡빡머리를 한다는 것은 나로서도 상상조차 하기 힘든 것이었다. 그래도 아쉬움은 많이 남았다.


  “그 이유 말고.... 손 흔드는 사람들 속에 나 혼자 남겨두기 싫어서라고 얘기해 주지....”


  나는 농담인 듯 서운함을 담아 석호에게 말했다. 석호는 또 내 눈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 시선을 돌리고는 말을 던졌다.


  “버스 온다.... 편지할게.... 나 간다....”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꾹 참고 있는 나에게 석호는 손을 한 번 흔들었다. 그렇게 석호는 입영열차가 아닌 시내버스를 타고 내 곁을 떠났다.




-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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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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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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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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