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라 황석호 -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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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반복되는 일상의 지루함을 날려주는 것은 무언가에 대한 기대감이었다.
5학년 때 윤상호 선생님과 노래를 부르고 피아노를 치는 것이 너무 좋아 그 기대감으로 수업 시간 내내 기다렸고, 힘겹고 짜증났던 고등학교 생활도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되면 끝이 나는 것이었으니 졸업식날만을 기대하며 견뎠다. 재수 생활을 할 때 악착같이 공부를 했던 것도 특별시에 있는 대학 진학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다. 정말 그냥 배웠으면 며칠 하다가 포기했을 베이스 연주도 석호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에 매일 매일 동아리방에 가서 피킹 연습을 했던 것이었다.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기대할 것이 별로 없었다. 그나마 매월 다가오는 월급날에 대한 기대가 가장 큰 것이었다. 하지만 그다지 돈을 쓸 줄도 모르고, 쓸 일도 없는 대다 꽤나 많은 돈을 통장에 넣어 두고 있던 나는 그 월급날도 아주 즐겁지는 않았다. 그래도 지루한 직장 생활을 버텨낼 수 있었던 것은 지루한 일상 속에서 억지로 소소한 기대감을 만들어냈기 때문이었다. 이를 테면 재미나는 드라마가 방영되는 시간에 대한 기대감 같은 것들이었다.
그런데 사이판 여행에 대한 기대감은 나에게 엄청나게 큰 것이었다. 무엇보다 석호와 함께 가는 것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박중훈이 머리에 총을 맞기 전에 사이판에 가자고 외쳤던 영화 게임의 법칙도 다시 보고, 나도 마음속으로 박중훈처럼 사이판 가자고 소리를 질렀다. 미지의 세계이기만 했던 사이판이 이제 나에게 현실로 다가와 있었다.
10년 짜리 복수여권을 손에 쥔 날부터 그것을 책상 위에 올려두고 사이판을 검색하며 살았다. 여행사 홈페이지에서 사이판 여행 상품도 알아보고, 블로거들이 사진과 함께 써놓은 여행 후기도 모조리 살펴봤다.
가장 중요한 것은 머물러야 하는 숙소였다. 검색 결과 해변에 자리 잡은 호텔들이 즐비했다. 석호와 둘이서만 가는 여행이라면 한적한 숙소가 좋을 테지만 영오와 함께 가는 여행이었으니 워터파크가 있는 리조트가 제격이었다. 사이판 남쪽에 두 곳이 있었다. 본격적으로 예약을 할 때 영오에게 둘 중에 하나를 고르라고 하면 될 것 같았다.
제대로 사이판을 즐기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들이 참 많았다. 스노클링 안경, 구명조끼, 오리발 등을 현지 여행업자들이 대여를 해준다 해도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사용한 것을 그대로 쓸 수가 없었다. 이것저것 검색을 해서 장바구니에 담았다.
멋진 풍경을 담기 위해서 카메라가 필요할 듯 했다. 아이폰 카메라는 뭔가 부족했다. 인물이 잘 나오는 카메라를 검색했다. DSLR은 너무 커서 여행에 짐이 될 것 같았다. 때마침 손예진이 광고를 하는 소니 미러리스 카메라가 작고 가벼워서 사용하기도 편하고, 셀카를 찍기에도 좋아보였다. 생각보다 가격이 나가는 것 같았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휴양지에서 하와이안 셔츠를 입고 카메라 한 대는 목에 걸어줘야 진정한 여행자였다. 장바구니에 담았다.
에메랄드 빛 비치에서 물놀이를 할 때 입어야 하는 비치 수영복도 필요했다. 제주도 여행 때 급하게 마트에서 산 것은 너무나 볼품이 없었다. 폭풍 검색질을 했다. 밋밋한 색깔보다는 화려한 색이 좋을 것 같았다. 푸른 바다와 대비되는 붉은색 계통이 좋을 것 같기도 하고, 아예 깔맞춤을 해서 푸른색으로 해도 좋을 것 같았다. 고민을 하다가 그냥 모조리 장바구니에 담았다. 다 사놓고 그날그날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입는 것이 좋을 듯 했다.
열대 휴양지에서는 선글라스도 필수였다. 면세점에서 사면 좀 싸게 구할 수 있을 것 같아 인터넷 면세점으로 들어가 이것저것 살펴봤다. 브랜드별로 다양한 상품이 쫘악 나열이 되었다. 그런데 선글라스는 써보고 사야할 것 같아 몇 개를 찜만 해두었다. 특히나 석호가 날아라 슈퍼보드의 저팔계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써보고 사는 것은 필수였다.
이런 것들을 모두 챙겨가려면 가방이 있어야 하는데, 나는 캐리어가 없었다. 가끔 어디론가 떠날 때도 늘 매고 다니는 배낭에 간단한 옷가지들만 넣어 다녔기 때문이었다. 이왕이면 큰 것이 좋을 것 같아 24인치 여행용 캐리어를 골라 장바구니에 담았다.
당장 구매하기 버튼을 눌러 결제를 하고 싶었지만 참고 또 참았다. 여행 날짜가 잡히고, 구제척인 일정이 나오면 하나씩 주문을 해서 배송박스를 뜯으며 여행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높이는 것이 나을 듯 했다. 매일 매일 변하는 내 마음도 한몫을 담당했다.
여행 후기들을 보다보면 새롭게 필요한 것들이 생겼다. 그것들을 추가하고 이미 넣어뒀던 것들도 새롭게 바꾸면서 장바구니를 든든하게 채웠다. 장바구니에 쌓여가는 목록들은 내 기대감과 비례해서 늘어났다.
내가 사이판 여행을 기대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석호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기로 마음을 먹었기 때문이었다. 제주도 여행 때 석호와 섹스를 하는 꿈을 꾼 것은 내 욕망의 산물이었다. 영오를 일찍 재워놓고 석호를 덮칠 작정이었다. 석호가 거부를 하면 자기가 나를 덮쳤을 때를 끄집어내어 끝까지 물고 늘어지려 마음을 먹었다.
그때 내 똥구멍에 니 자지가 반은 들어왔는데, 그것을 너도 잘 알지 않느냐고, 내가 가만히 있었으면 진짜 했을 거 아니냐고, 그때는 그래 놓고 왜 지금에 와서는 거부를 하느냐고, 앞뒤가 안 맞다고 몰아세울 것이었다.
내가 여자로 느껴지지 않는다고 하면, 그래 여자 행세를 할 수 있다고, 엎어져 있으면 여자나 남자나 똑같지 않느냐고, 니가 보지보다 똥구멍이 좋다고 항상 얘기했으니 내 똥구멍도 가능하지 않느냐고, 여차하면 민구를 팔아서 민구도 내 똥구멍에 조ㅈ 박고 엄청 좋아라 했다고 애원할 예정이었다.
씨.발 다른 건 다 참겠는데, 황석호 너를 정말 사랑하는데, 너를 처음 본 순간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그 마음이 변한 적이 없는데, 너한테 내 마음을 말하지 못하는 게 너무 답답하고 괴로우니까 그냥 말을 하겠다고, 진심을 담아 사랑한다고 말을 할 생각이었다. 석호가 받아들이든 아니든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냥 더 이상 속이지 않고 솔직하게, 진심으로 다가서고 싶었다. 머나먼 여행지에서,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에서 내지르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한껏 부풀어 오른 기대감으로 하루하루를 지워나갔다. 석호는 영오를 맡기러 오지 않았다. 공연이 없는 모양이었다. 어쩌면 공연을 할 여유가 없는지도 몰랐다. 음악에 대해서만큼은 결벽증에 가까운 석호가 새로 낼 앨범의 곡들을 세심하게 다듬느라 정신이 없을 것이 분명했다. 앨범을 낼 때마다 제작비를 줄이기 위해 가내수공업 형태로 손수 CD를 굽고, 케이스도 일일이 접어가며 만들었으니 그렇게나 좋아하는 담배를 피울 시간도 부족할 터였다.
두 번째 앨범이 나올 때는 그렇다 치고, 이번에 나오는 신곡은 그냥 음원사이트에 풀면 되지 굳이 CD를 만들 필요가 있느냐는 내 질문에 석호는 발끈했다.
“씨.발, 너는 음악을 아는 놈이 그딴 소리를 하냐? 마음 같아서는 LP를 찍고 싶구만....”
나도 알았다. 하지만 세상이 그렇지가 않았다. 노래를 듣는 디바이스가 바뀌어도 한참 전에 바뀌었다. 이제는 mp3도 지나 스마트폰 하나로 모든 걸 할 수 있는 음원 스트리밍 시대였다.
내가 노래를 듣는 방식이 곧 시대의 변화를 말해주고 있었다. 탱크 같은 삼성 마이마이 카세트가 가방 안에서 큰 자리를 차지하다가, 과외를 해서 번 돈으로 산 파나소닉 CDP가 대체를 하고, mp3가 대중화되면서 삼각형 모양의 아이리버 mp3 플레이어가 가방 안이 아닌 내 목에 걸렸다. 512메가밖에 되지 않아 턱없이 부족한 용량이 아쉬웠던 나는 애플 아이팟 나노 3세대가 나오자마자 이쁜 모양과 16기가의 용량에 반해 바로 갈아탔다. 그리고 이제는 아이폰 하나로 모든 것을 해결했다.
내가 사 모았던 테이프와 CD가 여전히 방 한 구석에 제법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오래된 일기장처럼 속절없이 낡아갔다. 일기는 가끔 꺼내어 읽어보기라도 했지만 테이프와 CD는 그냥 자리만 차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다시 꺼내어 들어보려 해도 나는 마이마이도 CD플레이어도 갖고 있지 않았다. mp3 플레이어도 사라진 지 오래였다.
앨범이라는 것도 그다지 의미가 없었다. 음원 스트리밍 시대에는 앨범으로 묶어봐야 어차피 노래 하나하나가 따로 놀았다. 디지털 싱글 음원이 대세일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었다. 편리하기는 했다. 돈도 절약되었다. 이런저런 할인 혜택을 받아 한 달 결제를 하면 음원 사이트의 모든 노래를 들을 수 있었고, 앨범이 나온 경우에도 몇 개만 골라 다운을 받는 데에는 한 곡당 몇 백 원만 투자하면 끝이었다. 어느 가수의 노래 한 곡이 너무 좋은데 그 노래만 살 수가 없으니 앨범을 사야했던 옛날에 비하면 지극히 경제적이고 어찌 보면 합리적이기도 했다.
그런 시대였다. 가수의 노래를 소장하는 시대가 아닌 그저 편하게 소비하는 시대였다. 음반 판매량으로 인기를 가늠하는 시대가 아니라 다운로드와 스트리밍 수로 판단하는 시대였다. 기술이 발달해 편리하게 음악을 듣는 시대가 도래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음질은 갈수록 떨어졌다.
이런 시대에 CD 제작은 정말 팬서비스 차원에 불과했다. 얼마 되지 않는 SUKO FLY의 팬들은 앨범을 사는 것보다 공연 보는 것을 훨씬 더 좋아했으니 2013년에 석호가 CD를 제작하는 것은 실제로 별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석호도 모를 리가 없었다. 하지만 석호가 CD를 만드는 것은 역시 석호다운 일이었다. 끝까지 변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자기가 믿는 대로 사는 것이 석호였기 때문이었다. 독선과 독단은 나이가 들어서도 사라지지 않았다. 처음 봤던 그대로, 절대로 변하지 않는 석호였기에 석호를 향한 내 마음도 변할 수가 없었다. 시대에 따라 달라지며 거기에 적응하는 내가 마음속으로나마 석호를 항상 사랑한 것도 석호의 한결 같은 모습 때문이었다.
제주도 여행 이후로 한 번도 보지 못한 영오가 추석 연휴가 낀 토요일 오후에 찾아왔다. 나는 고향에 내려갔다가 추석 당일 저녁에 다시 올라와 있던 터였다. 추석 연휴 3일 뒤에 주말이 붙어 있어서 5일 동안의 연휴였으므로 조금 심심하던 차에 때마침 영오가 온 것이었다.
“아빠는?”
“CD 만들고 있어요.”
“여기까지 혼자 온 거야?”
“네. 아빠랑 같이 CD 만들다가 내가 지겹다고 하니까 아빠가 아저씨한테 가라고 해서요.”
“진짜 니네 아빠 간도 크다. 어린애를 혼자서....”
“저 어린애 아니에요. 지하철 한 번만 갈아타면 되는데요.”
영오의 말이 맞았다. 나도 영오의 나이에 버스를 한 번 갈아타고 가야하는 외갓집에 혼자 심부름을 다녀온 적도 있고, 그 나이에 섹스까지 했으니 5학년이면 혼자서 웬만한 것은 다 할 수 있는 나이였다.
“그래 그래. 니네 아빠가 너 다 키웠구나.”
“아빠가 키운 게 아니라 제가 큰 거죠. 아저씨, 저 배고파요.”
밤이 이슥하도록 석호에게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CD를 만드느라 정신이 없는 석호에게 나도 연락을 하지 않았다.
영오가 옆에 있어도 심심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책을 챙겨왔으면 같이 공부라도 할 텐데, 몸만 달랑 온 영오와 함께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침대에 기대 앉아 TV를 보다 가끔 수다를 떠는 것뿐이었다. 저녁을 먹고 났을 때도 석호는 연락을 하지 않았다.
“영오야, 자고 갈래?”
“네.”
“심심하다 그치?”
“네.”
“아저씨가 차가 있으면 어디 놀러라도 갈 텐데.... 너 데리고 노래방에 갈 수도 없고....”
“아저씨 노래방 가는 거 좋아해요?”
“응. 심심하면 혼자서 가끔씩 가. 아저씨가 유일하게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이야.... 아저씨는 설거지나 해야겠다.”
설거지를 마치고 다시 방으로 들어와 담배 한 대를 피워 물었다. 영오가 있든지 말든지 석호가 스스럼없이 피우니 나도 저절로 그렇게 되었다.
“아저씨, 우리 찜질방 가요.”
“찜질방 가고 싶어?”
“네. 검색해 보니까 이 근처 찜질방에 노래방 기계도 있네요. 계란도 까먹고.... 그냥 거기서 자요.”
딱히 할 일도 없던 차에 좋은 대안이었다. 영오를 데리고 집을 나섰다. 탈의실에서 옷을 벗을 때 옛날 생각이 났다. 윤상호 선생님과 함께 목욕탕에 다니던 기억이었다. 선생님과 함께 목욕을 하고부터 부쩍 가까워졌으니 영오와도 그렇게 될 것 같았다. 영오는 제법 뜨거운 탕 안에서도 가만히 잘 앉아 있었다.
“오랜만에 오니까 좋아요. 아빠가 밴드 안 할 때는 목욕탕 자주 왔거든요.”
“하하하하 석호가 탕 안에 들어앉아 있는 거 좋아하지.... 너도 아빠 닮아서 좋아하나 보네.”
“네.... 근데 아저씨 너무 웃겨요.”
“뭐가?”
“아저씨가요.”
“내가 왜 웃겨?”
“아저씨 볼 때마다 아빠보다 훨씬 젊어 보여서 되게 신기했거든요. 아빠는 흰머리 많으니까요. 제가 어쩌다 한 번씩 수십 개는 뽑아요. 근데 아저씨는.... 아니에요.”
“궁금하게 왜 말을 하다 끊어? 아저씨는 뭐?”
“아저씨가 물었으니까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마세요.... 아저씨는 꼬추에 흰털이 나서.... 아빠나 아저씨나 똑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거 아저씨 컴플렉슨데.... 아빠한테 절대로 얘기하면 안 돼. 알게 되면 분명히 아저씨 엄청 놀릴 거니까. 절대 비밀. 알았지?”
“네.... 근데 아저씨는 왜 결혼 안 하세요? 혹시 아빠 때문이에요?”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 나는 애써 표정관리를 하며 뭐라 답을 해야 할지 머리를 굴렸다. 영오가 말을 이었다.
“아빠가 결혼해도 외롭게 사니까 혹시 아저씨도 아빠처럼 될까봐 그런 거에요?”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아빠한테 아저씨는 왜 결혼 안 하냐고 물으니까 아빠가 괜히 결혼해서 나처럼 되지 말라고 그랬다고 하던데요? 진짜 그래서 결혼 안 하시는 거에요?”
“니네 아빠는 별 얘기를 다하네. 그냥 혼자 사는 게 편해서 그래. 너 민구 아저씨랑 철우 아저씨가 자기 마누라한테 잡혀 사는 거 봤지?”
영오는 아무 말 없이 그냥 나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아저씨는 그게 싫어서. 결혼하면 내 맘대로 못하는 게 많으니까. 민구 아저씨나 철우 아저씨도 젊을 때는 지들 맘대로 살았던 놈들인데.... 그러고 보니까 아빠 때문에 결혼 안 한 게 맞네. 마누라 없으니까 자기 맘대로 하고 살잖아. 나도 그렇게 살려고....”
영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린애가 다 이해했다는 표정이었다. 귀여웠다. 자기를 닮은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삶을 다시 한 번 사는 것 같다던 철우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철우는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을 키우면서 다시 한 번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었다.
영오가 사춘기를 지날 때 석호가 받을 스트레스를 생각하니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다. 고집이 센 아빠와 아들이 맞붙는 모습은 아이가 없는 나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다. 다만 엄청난 갈등이 예상되었다.
영오와 계란도 까먹고, 여기저기 방들을 돌아다니며 땀도 흘렸다. 작은 방에 틀어박혀 노래를 부르는 것이 싫어서 노래는 생략했다. 연휴가 길어서인지 사람들이 몰려와 있는 통에 그냥 집으로 돌아와서 잤다.
다음 날 저녁 무렵에 석호가 집으로 찾아와 함께 저녁을 먹었다. CD 작업을 하느라 정신이 없는지 석호의 안색이 그리 좋지 않았다. 그럴 때는 기대감이 또 하나의 약이 될 수도 있었기에 석호에게 무심한 듯 여행 이야기를 꺼냈다.
“겨울에 사이판 가는 거 맞아?”
석호가 해맑게 웃으며 답했다.
“당연하지. 앨범 작업 다 끝나면 바로 알아볼 거야. 영오 방학까지 기다리기 귀찮으니까 그전에 가자. 늦어도 11월 중순쯤에. 학교 며칠 빠진다고 뭐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닌데.... 영기 너도 이제 슬슬 여권도 만들고 준비해.”
나는 여권은 벌써 발급 받았고, 쇼핑몰 장바구니 안에 필요한 것들을 다 담아놨다고 말을 하지 않았다.
“예약하면 그때 준비하면 되지.... 그깟 사이판이 뭐라고 벌써부터 부산을 떨어....”
“아냐, 예약할 때 여권 필요해. 미리 준비해야 돼. 신혼여행 갈 때 보니까 은근 챙길 거 많더라. 옷 몇 개 빤스 몇 개 들고 가는 제주도 여행이 아냐.... 씨.발 존.나 기대돼....”
“아빠 나두 기대돼.”
“영기 너도 존.나 기대되지?”
나는 속마음을 감추고 젓가락으로 밥을 다지면서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응.”
석호는 영오를 데리고 집을 나서면서 인사 대신 한 마디를 던졌다.
“지금은 정신이 없으니까 앨범 작업 끝나면 연락할게.... 나중에 여행 계획 같이 짜자. 그럼 갈게....”
“그래.... 영오야 잘 가~”
빨라도 12월 말에나 갈 줄 알았는데, 한 달 넘게 앞당겨진 만큼 내 기대감도 증폭되었다. 더욱 열심히 검색을 했다. 장바구니에는 여러 물건들이 빠졌다 채워졌다를 반복했다.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퇴근을 해서 집으로 돌아오면 새로 발급받은 여권을 어루만졌다. 깨끗한 여권에 처음으로 스탬프가 찍히는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9월이 가고 10월이 왔다. 아침저녁으로 제법 차가운 바람이 살랑 불었다. 일교차가 심하니 건강에 유의하라는 말이 기상 캐스터의 입에 자주 오르내렸다.
석호에게 문자 메시지가 온 것은 10월 중순이었다. 부고 메시지였다. 장례식장과 방번호만 달랑 있었다. 퇴근을 하자마자 옷을 갈아입고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석호 부모님은 아직 정정하시니까 친척들 중에 한 분이 돌아가신 것 같았다. 장례식장에 도착해서 봉투에 오만 원짜리 지폐 두 장을 넣고 뒷면에 황석호 친구 이영기라고 썼다.
석호가 보낸 문자메시지에 적힌 112호는 한산했다. 빈소에는 영오가 무릎을 세워 고개를 박고 벽에 기대 앉아 있었다. 내가 신발을 벗는 것을 느꼈는지 영오가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봤다. 빈소 바깥에 앉아 있던 석호 부모님이 일어나 나를 맞이했다. 정작 나를 이곳에 부른 석호는 보이지 않았다. 영오가 달려 나와서 나에게 안겼다.
“영오야, 아빠는?”
영오가 고개를 들어 나를 올려다봤다. 영오의 눈에서 한줄기 눈물이 또르르 흘러 내렸다. 영오의 손에 이끌려 들어간 빈소 안쪽에 석호가 있었다. 국화꽃에 휩싸여 해맑게 웃는 모습으로 나를 맞이했다. 어떠한 말도 없었다. 두 줄기 검은 띠에 갇혀 그저 나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현실 앞에서 나는 우두망찰해 서 있기만 할 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석호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젯밤에 갔다. 이번에는 수술도 소용이 없다더구나.... 아무한테도 연락하지 말랬는데 그건 아닌 거 같아서....”
가슴이 답답해서 숨을 쉬기조차 힘들었다. 주먹으로 가슴을 때려도 답답함이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가슴 한 구석이 더욱 죄어오는 느낌이었다. 석호는 세상을 등질 때에도 자기 마음대로였다.
“영기야.... 이만 절해라. 밥도 먹어야지....”
동갑내기 친구에게 절을 하는 것은, 그것도 두 번이나 절을 하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다. 무릎을 꿇고 숙인 상체가 바닥에서 잘 떨어지지 않았다. 겨우 겨우 일어나 영오와 맞절을 했다.
밖으로 나와 담배를 피웠다. 손에 들고 있는 담배가 연기를 피워 올리며 타들어갔다. 그 연기 너머에 석호가 서 있는 듯 했다. 내 마음도 타들어갔다. 담배를 피워도 피워도 피운 것 같지가 않았다. 이제 다시 석호를 볼 수 없다는 것이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사이판 여행을 위해 반납했던 휴가를 석호의 장례식에 썼다. 이상하게 눈물이 나지 않았다. 아버지가 세상을 떴을 때와 마찬가지였다. 영오처럼 무릎을 세우고 앉아 얼굴을 파묻고 꼼짝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숨이 가빠져 오면 밖으로 나가 하늘을 보며 담배를 피웠다. 철우와 민구도 실감이 나지 않는 듯 수업이 끝나면 장례식장에 찾아와 나와 함께 멍하니 앉아 있었다.
삼일 째 되는 날, 영오가 해맑게 웃고 있는 석호의 영정 사진을 들고 앞에 섰다. 석호의 관은 철우, 민구, 나 그리고 석호의 처남이 들었다. 석호 아버지가 관 위에 낡은 CD 플레이어를 올려놓았다. 석호의 유언인 듯 했다. 플레이 버튼을 누르자 노래가 흘러나왔다. Bee Gees의 ‘Holiday’였다.
Bee Gees - Holiday
석호의 육신은 재가 되었다. 살아서는 거구였던 석호는 그리 크지 않은 유골함에 들어가 납골당에 안치 되었다. 또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이 매어왔다. 하지만 눈물은 나지 않았다. 이상했다.
추모공원 주차장에서 석호의 가족들을 배웅했다. 고모네 집에서 살 거라는 영오가 나에게 다가왔다.
“아빠가 아저씨한테 주라고 했어요.”
영오는 곱게 접은 쪽지 하나를 내 주머니 속에 넣어 주고 차를 타고 떠났다. 철우가 바래다 줄 테니 차에 타라는 말에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철우와 민구를 먼저 보내고 혼자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웠다.
가을 하늘은 너무나 푸르렀다. 오후의 햇살도 따뜻했다. 어제도 그랬고, 그제도 그랬다. 일주일 전에도 그랬다. 세상은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이 세상이 완전히 다르게 보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보는 풍경도 내 눈에는 삭막하게만 보였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렀지만 넓은 이파리의 나무들은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려 마른 잎을 떨구고 있었다.
아파트 입구에서 잠시 머뭇거리다 집 대신 노래방으로 갔다. 답답한 가슴을 풀어내기 위해서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야 할 것 같았다.
항상 내가 들어가는 구석방이 비어 있었다. 10년이 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주인아저씨는 10년이 넘게 꾸준히 찾아오는 나에게 언제나 그랬듯이 재떨이를 가져다주었다. 법이 바뀌어도 주인아저씨와 나 사이의 암묵적인 약속은 깨지지 않았다.
담배를 주머니에서 꺼내는데 무언가가 툭 바닥에 떨어졌다. 영오가 준 쪽지였다. 조심스레 펼쳐 봤다. 제법 큰 글씨였다. 그런데 세로로 길쭉한 석호의 필체가 아니었다. 삐뚤빼뚤 하고 가로 세로 획도 쭉 뻗지 못해 떨리고 있었다. 쪽지의 내용은 단 두 개의 단어가 전부였다.
미안해
사랑해
미안한 걸 알면 끝까지 살아야지 왜 숨을 멈춰서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지 석호가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사랑한다는 말은 석호에게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다. 내가 죽으면서 석호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남기는 것은 내가 게이니까 이치에 맞는 일이었지만 석호가 나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건 이치에 맞지도 않고 너무나 상투적이었다. 오히려 나를 놀리는 것 같아 저절로 욕이 튀어나왔다.
“황석호 이 씨.발새끼야.... 개조ㅈ같은 새끼야....”
마이크에 대고 크게 소리를 질렀건만 내가 욕을 하는 소리는 작은 방에서만 울려 퍼질 뿐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그제야 이 세상에 석호가 없다는 것이 실감이 되었다. 석호는 내가 아무리 소리를 크게 질러도 들을 수 없는 곳에 가 있었다. 눈물이 쏟아졌다. 주인아저씨가 방문을 잠시 열었다가 울고 있는 나를 보고는 바로 닫았다.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소매로 닦아도 닦아도 계속 흘러내렸다.
노래방에 왔으니 노래를 불러야 했다. 그래야 갑갑한 마음도 슬픈 마음도 달랠 수 있을 것 같았다. 졸지에 친구를 떠나보낸 나를 위로해 줄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었다. 나 혼자 알아서 달래야 했다. 리모컨을 들고 노래를 찾았다. 그리고 시작 버튼을 눌렀다. 화면에 제목이 뜨고 전주가 흘러나왔다.
박상민 - 멀어져간 사람아
내게 사랑한다는 말하고 멀어져 간 사람아 사랑이 무언지도 모르는 그대여 내게 안녕이라 말하고 멀어져 간 사람아 그대여 나만 홀로 외로이 서 있네 머나먼 저 바다로 가면 찾을 수 있나 머나먼 저 하늘 위에는 있지 않을까 어두운 저 창문 밖으로 누군가 있지 않나 쳐다봐도 가로등만 외로이 서 있네..,, 멀리 떠나버린 그대여 저 하늘 위에 사랑이 있다고 말하지 마오 멀리 떠나버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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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호가 어떻게 세상을 영기를 두고 버렸을까
그리고 편지 "미안해, 사랑해" 영기를 마음 속에
영기 처럼 사랑을 했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 됩니다.
다음 편도 기대하며 잘 읽고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