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라 황석호 -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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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영오와의 동거는 나에게 새로운 일상을 가져다 주었다. 출퇴근 시간이 달라서 함께 밥을 먹는 게 일주일에 한두 번에 불과했지만 주말 저녁에 함께 밥을 먹을 때는 밥상을 푸짐하게 차렸다. 어릴 때에도 그랬고, 석호와 마지막으로 함께 갔던 제주도 여행에서도 아무 거나 잘 먹던 영오는 반찬 투정 같은 것을 전혀 하지 않았다. 내가 마음대로 해주는 것을 불평 없이 잘 먹었다.
무엇보다 내 일상에서 가장 큰 변화는 기다림이었다. 집을 떠나 혼자 30년을 살아오는 동안 한 번도 느낄 수 없었던 것이었다. 매일 일정한 시간이 되면 집으로 찾아오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매일 내가 설레는 마음으로 살 수 있도록 만들었다.
영오가 집으로 오는 시간은 밤 11시에서 11시 반 사이였다. 처음에는 그냥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으로 돌아오던 영오가 초인종을 누르기 시작한 것은 동거를 하고 몇 달이 지나서부터였다. 그렇다고 내가 문을 열어주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초인종을 한 번 누르고, 약간의 뜸을 들인 뒤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왔다. 나 때문이기도 했고, 영오 본인 때문이기도 했다.
어느 금요일 밤, 밴드 합주를 한 뒤 술자리를 마치고 집에 왔을 때였다. 경수가 늦게까지 나를 붙잡고 늘어지는 바람에 밤 12시를 넘긴 시간이었다. 영오에게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비밀번호를 누르고 조심스레 들어오는데, 영오가 자기 방에서 팬티를 내리고 자위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냥 못 본 척했다. 10대 후반의 영오가 뿜뿜대는 호르몬을 억제하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내가 각티슈와 휴지통을 따로 놓아둔 이유이기도 했다.
나도 영오에게 자위를 하다가 들켰다. 영오가 올 시간이 된 것도 모르고 거실 소파에 드러누워 TV로 야동을 보며 자위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아파트 철문이 열리고 영오가 들어왔다. 아랫도리를 다 벗고 자위를 하고 있던 터라 옷을 입을 경황도 없었다. 옷을 입는 것보다 내가 먼저 한 것은 TV를 끄는 일이었다. 남녀도 아니고, 덩치 큰 남자 둘이서 발가벗고 뒹구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리모컨을 들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게이 야동을 들킬 뻔한 상황이었다. 나는 내가 그랬듯이 영오도 그냥 못 본 척 넘어가 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거실 바닥에 던져 놓은 속옷을 찾아 입는 과정이 너무나 오래 걸렸기에 못 본 척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아저씨도 저랑 같네요.... 죄송해요. 저 때문에 편하게 살지를 못해서....”
나는 부끄러워서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서둘러 TV에서 usb 메모리를 뽑아 내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영오가 한 마디를 더 던졌다.
“그거 저도 보여주시면 안 돼요?”
부끄러웠지만 나도 한 마디는 해야 할 것 같았다.
“절대 안 돼.... 빨리 씻어. 밥 차려 줄게.”
다음날부터 영오는 문을 열기 전에 먼저 초인종을 한 번 눌렀다. 나를 위한 배려가 느껴졌다.
주말 저녁에 가끔씩 찜질방에도 같이 갔다. 구운 계란과 식혜도 사먹고, 함께 목욕을 하면서 서로 등도 밀어주었다. 영오는 석호만큼이나 덩치가 커져 어른 같은 몸이었다. 자기 아빠를 닮아 음모도 무성했다. 자위를 할 때 살짝 봤던 자지도 석호만큼이나 큰 것 같았다. 유전자의 힘은 대단한 것이었다.
여름이 지나고 아침저녁으로 제법 차가운 바람이 부는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온 영오가 밥을 먹으며 나에게 말했다.
“아저씨, 부탁이 있는데.... 내일 저한테 시간 내 주실 수 있으세요?”
나는 영오의 눈을 바라보며 눈빛으로 왜냐고 물었다. 짐작 가는 것이 있기는 했다.
“내일 아빠한테 데려다 주세요.”
짐작이 맞았다. 석호의 기일이었다. 기일마다 석호를 만나러 간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영오가 데려다 달라니 그렇게 해야 했다.
“내일 출근했다가 오전 근무만 하고 나올게. 너도 학교 갔다가 조퇴해서 나와.”
“내일 학교 안 간다고 말하고 왔어요. 오전에 일 보시고 오세요. 집에서 기다릴게요.”
다음날, 출근을 해서 반차를 냈다. 그리고 바로 집으로 가는 지하철을 타자마자 영오에게 전화를 했다. 영오는 집 앞에 주차된 내 차 앞에서 먼저 내려와 기다리고 있었다. 영오와 함께 살면서 장만한 새 물건 중의 하나였다.
철우가 스타트를 끊고, 민구가 이어서 차를 장만하자마자 석호도 덩치에 맞지 않는 작은 차를 샀다. 석호가 돈 벌어서 어디다 쓰냐고 나에게 차를 사라고 잔소리를 해대는 통에 거의 나이 마흔이 다 되어서야 운전을 배우고 면허를 땄었다. 그런데 도무지 소용에 닿지를 않아 차일피일 미루다가 영오와 함께 주말에 바람 쐬러 갈 일이 생겨서 산 것이었다. 석호 때문에 면허를 따고, 영오 때문에 차를 산 셈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하기를 정말 잘한 것 같았다.
석호에게 가는 내내 영오와 나는 아무 말이 없었다. 주차장 벤치에서 담배를 피우고, 석호의 유골이 안치된 곳으로 올라갔다. 여전히 영오는 아무 말이 없었다. 한참 동안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나도 영오처럼 가만히 서서 석호의 사진을 보며 마음속으로 말했다.
‘미안해. 온다온다 했는데, 그게 잘 안 되네. 거기는 살 만하니? 아프지는 않아? 나랑 영오랑 같이 사는 거 알지? 너한테 받은 거 영오한테 다 해줄게. 더 이상 아프지 말고 재미나게 놀고 있어.... 사랑해.’
아무 말이 없던 영오가 조심스레 한 마디를 던졌다.
“아빠.... 또 올게.”
주차장에 내려와 차를 타기 전에 또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웠다. 아무 말이 없던 영오가 나를 바라보며 조용하게 말했다.
“아저씨, 고마워요.”
“뭐가 고마워. 당연한 일인데.... 내가 너한테 고맙네. 너 덕분에 이렇게 왔으니까.... 지금까지 한 번도 못 왔었거든. 어쩌면 안 온 게 더 맞겠지. 괜히 옛날 생각나고.... 마음이 아프니까....”
“이해해요. 저도 자주 못 왔어요.... 처음 몇 년은 좀 힘들었는데 이제는 좀 괜찮아요.... 아저씨, 이제는 운전 좀 잘하시는 거 같아요. 아저씨 차 사고 제일 멀리 온 건데....”
“그래도 아직 많이 서툴러....”
집으로 오면서는 영오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운전을 해야 하는 나보다 영오가 말을 더 많이 했다. 주로 석호에 대한 이야기였다. 같이 살면서 일부러 석호 얘기는 꺼내지 않았는데, 기일이라 그런지 자연스러웠다.
“아빠 제사는 안 지내니?”
“네. 할아버지가 못 지내게 했어요. 할아버지도 제사 필요 없다고.... 저희 집에 모든 제사를 다 없앴어요. 명절에 차례도 안 지내요. 아마 아빠 생각나서 그럴 거에요. 저 볼 때마다 아빠 생각난다고 그래서 할아버지 집에도 잘 안 갔어요. 아저씨도 아시잖아요. 할아버지가 아빠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그럴 만했다. 거의 분신처럼 생각하던 아들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떴으니 석호 아버지의 행동이 이해가 되었다. 다시 영오는 말이 없어졌다. 나도 아무 말 없이 운전에만 집중했다. 쉬기도 할 겸 출출한 배도 달랠 겸해서 휴게소에 들렀다가 차를 타기 전 담배를 피우다 석호가 나를 불렀다.
“아저씨....”
“응?”
“결국 밴드 하실 거였으면서 왜 아빠 밴드는 그만 두신 거에요?”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영오에게 거짓말은 하기 싫은데, 그렇다고 해서 사실대로 말을 할 수도 없어서 그냥 말을 돌렸다.
“지금 하는 게 밴드라고 할 수 있나. 그냥 아저씨들이 모여서 취미활동 좀 하는 거지. 너도 공연하는 거 봤잖아. 고딩 스쿨밴드 같은 거.... 석호 플라이 그만 둔 거는.... 그냥 말 못할 이유가 있었어.... 정말 내가 나가야 했던 이유가.... 나도 나가고 싶어서 나간 게 아니었어. 그럴 수밖에 없어서.... 마음 아프고, 석호랑 다른 애들한테도 좀 미안한 일이니까 이걸로 끝.”
석호의 기일에 영오와 함께 석호에게 다녀오기도 하고, 영오가 곁에 있어서 무난히 10월을 보낼 수 있었다.
나이 50은 웜홀에 빠진 것처럼 정말 빠르게 지나갔다. 어느 새 해가 바뀌어 만으로도 50이 되는 때가 되었다. 영오는 방학에도 아침 일찍 나갔다가 밤늦게 들어왔다. 새학년으로 올라가지 않았어도 실질적으로 고3이 되었으니 당연했다.
아무 것이나 잘 먹는 영오였지만 그래도 고3이니까 특별히 대우해 주고 싶었다. 석호가 고3 때 먹었다던 개소주를 해줄까도 싶었으나 영오가 오만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젓는 바람에 포기했다. 대신 수시로 곰탕을 끓였다. 나도 좋아하는 것이고, 아침에 일찍 집을 나가야 하는 영오가 밥 한 그릇을 말아 후루룩 먹고 가기에 딱 좋기 때문이었다.
급식 시간이 되기 전에 배가 고파서 군것질을 하게 된다는 영오를 위해 매일 찹쌀떡과 수제 에너지 바를 챙겨줬다. 에너지 바는 내가 어릴 적 명절 즈음에 쌀을 튀겨 강정을 만들어 먹던 것처럼 현미 같은 곡물에 견과류를 듬뿍 넣어 만든 것인데, 폭풍 검색을 통해 찾아냈을 때 나도 모르게 물개박수를 쳤다. 조금씩 자주 주문을 해서 영오가 등교를 할 때 알아서 챙겨가도록 항상 식탁 위에 올려 두었다. 도라지 꿀물은 석호가 항상 마시던 것이었으니 영오도 먹어야 할 것 같아 항상 같이 준비를 했다. 간식과 함께 먹기에 딱 좋은 것이었다. 개소주 얘기에는 질색을 하던 영오도 도라지 꿀물은 매일 보온병에 담아 챙겨갔다.
금세 봄이 지나고 영오의 여름방학도 끝이 났다. 나에게는 생소한 수시 원서를 쓴다고 하더니 가을도 지나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불었다. 그리고 어느새 수능을 치는 날이 되었다.
혼자서 가겠다는 영오의 의견을 묵살하고 나는 월차를 내서 내 차로 수험장까지 태워다 줬다. 영오가 수능을 치르는 동안 근처에서 대기를 타며 평소에는 믿지 않았던 온갖 신들을 소환하여 기도를 하고 치성을 드렸다. 끝나는 시간에 교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영오가 나오자마자 차에 태워 미리 예약해 둔 숯불 갈비집에서 고기를 먹였다. 영오가 좋아하는 돼지갈비가 아니라 소갈비였다. 나도 영오를 핑계로 비싼 음식으로 배를 채웠으니 서로에게 좋은 일이었다.
이제 수능도 끝났으니 몸도 마음도 편하게 영오와 함께 재미나게 놀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영오는 수능이 끝나고 나에게 고맙다는 말과 안녕히 계시라는 말을 남긴 채 떠났다. 연락도 없이 불쑥 찾아왔을 때처럼 옷가지들을 넣은 24인치 캐리어 가방을 들고, 맥북을 제외하고 내가 장만해 준 것들은 모두 남겨둔 채 집을 나갔다.
붙잡을 수가 없었다. 2년 동안 키워주기로 약속을 했으니 2년을 채우고 가라는 말을 하기에는 너무 찌질해 보였다. 나도 잘 지내라는 말을 하고 영오를 떠나보냈다.
그렇게 영오가 떠났고, 나는 남았다.
2월 말부터 다음해 11월 중순까지, 20개월을 조금 넘게 같이 사는 동안 영오가 남긴 흔적은 집안 여기저기에 남아 있었다. 무엇보다 내 머릿속에 남았다. 버릇처럼 밤 11시가 넘으면 벽에 걸린 시계를 봤고, 자동적으로 문 쪽으로 고개가 돌아갔다. 하지만 초인종 소리와 함께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청소기를 돌리다 영오가 사용하던 방에 들어가면 비어 있는 책상과 책꽂이가 눈에 들어와 영오가 떠나고 없다는 것을 실감하게 만들었다.
매일매일 누군가를 기다리고, 주말이면 함께 저녁을 먹고, 가끔 찜질방에도 가는 일상에서 다시 나 혼자 지내야 하는 본래의 일상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오히려 혼자 지내는 본래의 일상이 나에게 훨씬 익숙하고, 편하고, 당연한 것이었지만 같은 공간에서 누군가와 함께 지내는 것이 불편하긴 해도 훨씬 좋은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기에 혼자 남은 나는 다시 무기력해지는 느낌이었다. 영오가 남겨 놓은 흔적 때문에 더욱 그랬다.
솔직히 석호를 쏙 빼닮은 영오를 보고 야릇한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영오가 쓰던 방을 청소할 때, 책상 주위나 침대에 떨어져 있는 음모 몇 개를 볼 때마다 싱긋이 웃음이 났다. 하지만 영오를 통해 석호를 떠올렸을 뿐이었다. 석호를 처음 봤을 때부터 꿈에 석호가 나와 내 애인 역할을 했으므로 그것의 연장선상이었다. 영오 때문에 자주 석호가 꿈에 나타났을 뿐, 미성년자인 영오를 마음에 품은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내가 게이이고, 본능에 충실한 사람이긴 하지만 그래도 친구 아들에게 마음을 품을 만큼 음탕하고 비도덕적이지는 않았다.
영오가 떠난 뒤 더 자주 노래방을 찾았다. 공허한 마음을 채우기 위해서였다. 해가 바뀌고, 주공 밴드에서 기타를 담당했던 우식이가 이사를 가서 대체할 멤버를 채우지 못해 합주를 못하게 된 것도 하나의 이유였다.
가끔씩 연락을 해서 나를 불러내는 경수와 꼬치안주를 앞에 두고 술잔을 기울이는 것이 그나마의 낙이었다. 경수가 필리핀에 여행을 가서 어린애 끼고 질펀하게 놀아보자는 제안을 할 때마다 나는 웃기만 했다.
마음 같아서는 만들어만 두고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여권에 출입국 도장을 찍어보고, 그냥 모르는 척 경수와 함께 필리핀에 가서 경수가 젊은 여자와 섹스를 하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고 싶기도 했다. 흥분이 한껏 달아오른 경수를 여자와 함께 애무를 하고, 경수의 자지 위에 내려앉고도 싶었다. 평소 말하는 것으로 보아 경수는 충분히 받아들일 것도 같았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어 경수의 제안을 거절했다. 달아오른 욕망을 분출하고 났을 때 밀려오는 허탈함이 싫었기 때문이었다.
하루하루 반복되는 일상이 지루했다. 특히나 있던 사람이 사라진 빈자리와 그 흔적을 견디기가 힘들었다. 든 사람은 몰라도 난 사람은 안다는 옛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영오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이사를 결심했다. 한 곳에서 20년 넘게 살았으니 지겹기도 했다. 이사를 하면서 버릴 것은 버리고, 새로운 것으로 채우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질 것 같았다. 내가 샀을 때보다 집값도 엄청 뛰어 있었기에 더 좋은 집으로 이사를 갈 수 있지 싶었다.
하지만 내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다른 곳의 집값은 더 많이 뛰어 있었다. 이사 비용까지 합치면 그냥 돈을 버리는 것과 같았다. 그 돈이면 혼자서 유럽을 다녀와도 될 만한 돈이었다. 그냥 눌러 살기로 마음을 바꿨다.
봄이 되어 아파트에 심어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출근길에 꽃비가 날리는 것을 보고 잠시 멈춰 서서 두 팔을 벌려 꽃비를 맞았다. 대학 시절이 떠올랐다. 대학에 들어가 처음 맞는 봄에 특별시의 공기를 느끼며 꽃비를 맞는 것이 너무나 좋아서 수업도 들어가지 않고 고개를 들어 꽃비가 내리는 하늘을 쳐다봤었다.
출근을 하기가 싫었다. 그렇다고 그냥 쨀 수는 없어서 일단 출근을 하고 이런저런 것들을 처리한 뒤 바로 퇴근을 했다. 이런저런 것들이란 휴직 신청과 책상 정리였다. 홀가분했다.
집으로 오는 길에 커다란 캐리어 가방을 샀다. 도착하자마자 옷가지들을 챙겨 자동차 트렁크에 넣었다. 그리고 떠났다. 일정도 계획도 없었다. 그냥 여기저기 돌아다닐 작정이었다.
영오를 위해 장만한 차를 오로지 나를 위해 사용했다. 나이 50이 넘어도 운전 경력이 턱없이 짧아 초보딱지를 붙이고 서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갔다. 땅끝마을을 찍고 남해안을 따라 끝으로 갔다가 동해안을 따라 끝으로 올라와서 동서를 가로질러 집으로 돌아왔다. 거의 한 달이 지나 있었다.
영오에게 다시 연락이 온 것은 전국 투어에서 돌아온 지 며칠 지나지 않아서였다. 간단한 문자메시지였다. 날짜와 시간, 그리고 장소가 전부였다. 어차피 놀고 있었으니 시간은 남아 넘쳤다. 내 눈길이 간 곳은 메지시의 내용 중에 장소였다. 석호와 내가 졸업한 학교의 학생회관 소극장이었다. 그곳에서 영오가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었는데, 나는 일부러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냥 그곳에 가서 무엇을 하는지 보면 그만이었다.
영오가 말한 그 날 그 시간에 맞춰 집을 나섰다. 차는 놔두고 지하철을 타고 갔다. 수시 원서를 쓸 때 어느 학교에 지원을 하느냐고 내가 물어도 그냥 웃기만 하던 영오는 결국 자기 아빠가 나온 학교를 선택해 들어간 것 같았다.
정말 오랜만이었다. 입학을 하고 졸업을 할 때까지, 아니 그 이후로 석호 플라이 활동을 할 때까지 10년 동안 눌러 살던 곳에 20년 만에 가는 것이었다. 내 젊은 20대의 세월을 보낸 곳에는 그 흔적이 별로 남아 있지 않았다. 학교 앞 가게들의 간판이 모조리 바뀌어 있었다. 내가 잘 가던 밥집도 사라지고 없었다.
그나마 학교는 그다지 변한 것이 없었다. 새로 세운 건물이 눈에 띄긴 했지만 예전 그대로의 건물들이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나를 맞이했다. 학생회관도 그대로였다. 하지만 석호와 내가 늘 앉아서 담배를 피우던 벤치 주변에 금연 팻말이 붙어 있었다. 흡연구역을 찾기 위해 고개를 돌려봤으나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영오가 말한 시간이 다 되어 있었으므로 어쩔 수 없이 그냥 소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객석은 다 차지 않고 2/3 정도 채워져 있었다. 나는 뒤쪽 빈자리에 가서 앉았다. 무대 가운데 뒤쪽에는 드럼 세트가, 그 앞에는 기타와 베이스, 키보드가 놓여 있었다. 밴드 공연인 듯 했다. 나는 웃음이 나왔다. 피는 못 속이는 법이었다. 석호의 유전자를 고스란히 물려받고, 돌잡이 때 장난감 기타를 손에 쥐었던 영오도 결국 밴드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곧이어 밴드 멤버들이 무대에 서서 각자의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영오도 보였다. 역시나 영오는 기타를 잡았다. 별 소개도 없이 신나는 곡으로 두 곡을 달렸다. 목소리까지 석호를 닮아 노래를 꽤나 잘했던 영오는 노래를 부르지 않고 기타만 쳤다. 노래를 끝낸 보컬이 멘트를 날렸다.
“저는 그냥 분위기 띄워주러 온 객원 보컬 김혁태입니다. 그럼 밴드 정식 멤버에게 마이크 넘기겠습니다.”
보컬이 무대에서 사라지고 영오가 마이크를 잡았다. 객석을 이리저리 둘러보던 영오는 뒤쪽에 앉아 있는 나랑 눈이 마주쳤다. 영오의 얼굴에 웃음이 피어올랐다.
“안녕하세요, 황영오 밴드 기타 황영오입니다.”
나는 또 웃음이 나왔다. 누가 황석호의 아들 황영오가 아니랄까봐 밴드 이름이 황영오 밴드여서였다. 아마 자기 마음대로 이름을 붙였을 터였다.
“밖에는 유명한 사람들이 와서 공연을 하는데, 그것 말고 여기 와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좋은 노래로 보답하겠습니다. 먼저 저희 멤버들을 소개할게요.”
멤버 소개를 마친 영오는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나랑 몇 번 갔던 노래방에서 부르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석호가 다시 살아온 것 같았다.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영오는 석호의 모습과 똑같았다. 소름이 끼쳤다. 석호처럼 넥스트를 좋아하는지 넥스트의 노래도 불렀다.
N.EX.T – 해에게서 소년에게
노래 두 곡이 끝나고 불이 꺼졌다. 무대 뒤쪽에서 스크린이 내려오고 화면이 비춰졌다. 세월이 묻어나는 사진이었다. 너무나 익숙한 사람들이 사진 속에 있었다. 스포트라이트가 영오를 비췄다. 영오는 마이크를 잡고 말을 시작했다.
“사진 배경이 낯이 익죠? 우리 학교입니다. 사진 속 저분들은 우리 학교 출신 밴드 석호 플라이의 멤버들입니다. 근데.... 거의 30년이 다 되어 가는 사진 속에 지금 스무 살인 제가 있네요.”
객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제 아빠입니다. 지금은 세상에 없지만 저렇게 사진 속에서는 여전히 살아 있네요. 아빠 말로는 학교 다닐 때 정말 유명하고 인기도 많아서 공연할 때에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와서 방방 뛰고 그랬대요.”
사진들이 여러 장 바뀌었다. 야외 가설무대에서 공연을 하는 모습이었다. 무대 앞 관객들의 모습도 보였다.
“제가 우리 학교에 입학을 하고, 이렇게 기타를 잡고 있는 것도 모두 아빠 때문입니다. 아빠와 함께 살았던 10년 동안 제 기억 속에는 아빠가 기타를 치는 모습으로만 남아 있어요.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밴드만 했거든요.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그냥 밴드하는 게 좋았대요. 방금 노래했던 곡 ‘해에게서 소년에게’도 아빠가 저한테 항상 들려주던 노래였어요. 제가 초등학교 들어갔을 땐가.... 그 노래 들려주면서 남들 눈치 보지 말고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라고 그랬거든요. 아빠도 그렇게 살았다고.... 정말 아빠는 자기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다가 갔어요. 아마 하늘나라에서도 자기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있을 거에요.”
장내가 숙연해졌다. 스크린에 대학 시절의 사진이 다시 떠올랐다. 그리고 내 사진이 얼굴만 크게 화면에 떴다. 여자들이 탄성을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영오가 멘트를 이어나갔다.
“하하하하 그럴 줄 알았습니다. 엄청 잘생겼죠? 석호 플라이의 비주얼 담당입니다. 아빠 말로는 학교 다닐 때 여학생들한테 엄청 인기가 많아서 동아리방에 매일 초콜렛이 붙고 그랬었대요. 그런데.... 이렇게 잘생긴 사람도 세월을 이기지는 못해요....”
영오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갑자기 내 이름을 불렀다.
“이영기 아저씨~~~”
나는 너무 놀라 몸이 얼어붙었다. 불이 꺼져 있어서 다행이었다. 영오의 말이 이어졌다.
“이분이 지금 여기 와 계시거든요. 아저씨~ 무대로 나오세요.”
나는 그냥 가만히 앉아 있었다. 당황하기도 했지만 너무 쪽팔렸다. 스크린에 사진이 사라지고 소극장 전체에 불이 켜졌다. 영오가 내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다시 외쳤다.
“뒤쪽에 저분입니다. 아저씨~ 무대로 나오세요.”
-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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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부터 텀에 길들여진 영기는 성인이되어 만난 석호에게 향한 그 마음이 게이의 사랑, 그 무게감이 느껴진다는
내 경우라면 또 다른 석호를 찾아 다녔을 지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