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빛깔의 이야기 - 1

작성자 정보

  •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bt024433b37f080403932918f01795f0d8.jpg
 

                             

                                                    빨강……빨간색 트레이닝복 


   남우가 시내 볼일을 보러 다니다가 한길에서 우연히 눈에 총기가 있는 청년을 발견하였다. 세이는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청년으로 빨간색 트레이닝복을 입고 남우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세이는 남우의 눈길을 모르고 그의 곁을 무심하게 지나쳤다. 남우는 뒤를 돌아보고 세이가 어디를 가고 있는지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음을 굳게 다잡아 먹은 듯 종종걸음으로 세이를 쫓아갔다. 

   

   세이가 피시방 안으로 들어가 의자에 앉으려고 하는 찰나 남우가 청년의 어깨를 툭 치며 말을 붙이었다.

"방해가 안 된다면 얘기 좀 할까요?"

"왜 그러시죠? 근데 저를 아세요?"

남우가 뜻밖의 제안하자 세이는 의아하게 생각하고 사유를 물어 보았다. 세이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남우와 눈을 맞추었다. 

"잘은 모르지만 여기서 말하기 곤란하니까 요 옆에 커피숍에서 얘기할까요?"

"예, 그렇게 해요."

세이는 남우가 악의가 없는 것을 알고 선뜻 응했다. 남우의 뒤를 따라가 커피숍 안으로 들어갔다. 남우는 의자에 앉자마자 세이의 얼굴을 바라보고 의향을 물어 보았다.

"우리 뭐 좀 마실까요?"

"어떤 얘긴지 먼저 들어 보고요."

"음, ‥‥ 빨간 추리닝이 잘 어울리네요."

남우는 마음이 선뜻 내키지 않아 이야기를 엉뚱한 방향으로 돌렸다. 세이는 남우에게 확실한 대답을 할 것을 권하였다.

"우물쭈물하지 말고 분명히 말하세요."

"여기요. 아이스커피 두 잔 주세요."

남우는 대답을 지연하려고 손을 들어 웨이터를 소리쳐 불러 아이스커피를 주문하고 세이에게 눈길을 주며 본론을 말했다.

"나랑 함께 해주면 시간당 돈을 줄게요. 그렇게 해줄 수 있나요?"

"왜, 저랑 함께 하고 싶으세요?"

"그냥 빨간 추리닝 입은 모습이 맘에 ‥‥."

남우는 세이와 눈이 마주치자 방긋 웃으며 어물어물 말꼬리를 흐렸다. 세이는 마음을 열고 남우를 안심시켰다. 

"저에게 관심을 가져 주시니 기분이 좋아요. 하지만 정당한 사유를 밝히지 않으시면 아저씨의 요구 조건을 받아들일 수가 없어요."

"내가 사유를 말하면 그렇게 해줄 수 있나요?"

"예."

남우는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세이에게 그럴듯한 사유를 밝히었다.

"그 누구보다 빨간 추리닝이 잘 어울려서그래요."

"으하하-, 저보다 이 추리닝이 맘에 드세요?"

남우가 대답을 대신해서 멋쩍게 씩 웃었다. 세이는 남우의 동기가 순수해 보여 요구 조건을 당장에 거절하지 못하고 양해를 구했다.

"생각할 시간 좀 주세요."

"그래요. 얼마나 기다리면 되나요?"

"한 시간 정도면 될 거에요."

웨이터가 탁자 위에 아이스커피를 놓았다. 세이는 시원한 아이스커피를 단숨에 마시고 밖에 나갔다. 남우는 의자에서 일어나 책꽂이 앞으로 걸어가더니 잡지를 집었다. 의자에 앉아 아이스커피를 마시며 잡지를 펼쳐 보았다. 


   세이는 약속 시간을 잊고 컴퓨터 게임에 몰두했다. 모니터를 뚫어지게 보면서 키보드를 두드리고 마우스를 움직이었다. 1시간이 지나가도 커피숍에 세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남우는 세이를 포기할 수 없어 잡지를 읽으며 청년이 오기를 기다렸다. 남우가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약속 시간이 훨씬 지나서야 세이가 나타났다. 남우는 내심 무척 기뻤지만 겉으로는 담담한 체했다. 세이는 이 얘기 저 얘기 나누다가 자연스럽게 이름을 밝혔다.

"제 이름은 세이에요. 아저씨 요구 조건을 받아들일 테니 약속을 꼭 지켜 주셔야 해요." 

"그건 걱정 말고 나만 믿어요. 그리고 고마워요."


   남우와 세이는 대문이 없는 단독주택 안으로 들어갔다. 세이는 집안을 구석구석 둘러보고 남우에게 사생활을 물어 보았다.

"혼자 사세요?"

"응, 내 집처럼 편하게 지내."

"예."

남우는 세이에게 임의로이 대하고 말을 낮추었다. 세이는 남우의 말을 그대로 믿을 뿐 그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지 않았다. 소파에 편히 앉아 리모컨으로 텔레비전을 켰다. 남우는 그 옆에 앉아 세이와 같이 텔레비전을 시청했다. 세이는 텔레비전을 시청하다가 싫증내고 소파에서 일어났다. 컴퓨터 책상에 앉아 남우의 의중을 떠보았다.

"컴퓨터 켜도 되요?"

"응, 세이 맘대로 해."

   

   남우는 텔레비전을 시청하다 말고 컴퓨터 게임을 지켜보더니 호기심이 생겼다. 세이는 눈치가 빨라 남우의 의향을 물어 보았다.

"아저씨도 해 보실래요?"

"정말? 그럼 좋지."

세이는 남우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거리낌없이 부엌으로 갔다. 남우는 시계를 보고서야 비로소 저녁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세이는 쌀을 씻어서 밥을 안쳐 놓고, 냉장고 문을 열어 안을 들여다보았다. 야채와 육류를 가지고 능숙한 솜씨로 반찬을 장만했다. 식탁 위에 음식을 차려 놓고 남우를 나직이 불렀다.

"아저씨, 저녁 드세요."

남우는 시장기가 들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세이는 말없이 남우의 얼굴을 바라보며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남우가 부엌에 오더니 쥐코밥상에 눈길을 주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야, 이게 뭐야?"

"여기서 자고 가도 괜찮나요?"

남우가 의자에 막 앉으려는데 세이가 뜻하지 않은 질문하는 바람에 멈칫했다. 세이는 남우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확실한 대답을 기다렸다.

"응, 집엔 뭐라고 말할 건데?"

"아저씨랑 함께 잔다고 하죠. 후후-."


남우가 소리 없이 빙그레 미소지으며 밥을 후딱 먹고 세이의 얼굴을 한번 힐끗 보더니 이내 공기를 내밀었다.

"밥 있니?"

"예, 제가 퍼 드릴게요. 앉아 계세요."

남우가 의자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세이가 그를 말렸다. 세이는 공기를 남우로부터 건네받고 밥을 주걱으로 푸었다.

"고맙다. 니가 해줘서 그런가 모든 게 맛있다."

"히-."


   "엄마, 전데요. 친구와 과제 하느라고 집에 못 갈 것 같아요. 그렇게 알고 걱정 마세요"

남우가 저녁상을 서둘러 물리고 설거지하는 사이에 세이는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세이는 어머니와 통화를 끝내고 남우의 안색을 살피었다. 남우는 만족한 표정을 짓고 엄지손가락을 추어올렸다. 세이가 커피를 준비하는 동안 남우는 멀거니 청년의 모습만 바라보았다. 세이가 찻잔을 식탁에 내려놓고 내일 수업 시간이 생각나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아 참, 내일 일 교시부터 수업 있는데 ‥‥."

"내가 세이 늦지 않게 학교에 데려가 줄게."

"정말요?"

"그래,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예."

남우는 세이가 아무 걱정 없이 마음을 편히 가지도록 배려했다. 세이가 커피를 급하지 않고 느리게 마시자 남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욕실 안으로 들어갔다.


   세이가 샤워를 마친 후에 물기를 수건으로 닦아 내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남우는 침대에 사지를 펴고 드러누워 코를 심하게 드르렁거리면서 잤다. 세이는 남우가 침대에서 자고 있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픽 웃었다. 세이가 조심성 있게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고 잠을 청하여 보았지만 걱정 때문에 쉬이 잠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모로 누워 남우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남우는 잠을 자다가 깜짝 놀라 깨어 오두방정떨었다.

"누, 누, 누구야?"

"저, 세이에요."

"뭐, 세이? 아차차, 내 정신 좀 봐!"

남우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코를 골며 곤히 잠들었다. 세이는 웃음을 참다 못해 입을 다문 상태에서 코로 터져나왔다.

"킥킥-." 

세이는 이 생각 저 생각 하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다. 남우와 세이가 잠든 틈에 슬그머니 히프노스가 나타나 아름다운 꿈을 주었다.


   다음날 아침, 남우는 운전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매고 승용차의 시동을 걸었다. 세이는 남우 옆에 앉아 안전벨트를 매며 소리쳤다.

"출발!"

승용차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인적이 없는 도로로 접어들자 속력을 냈다. 태양의 정기를 받은 가로수의 잎이 반짝반짝 빛나고, 승용차가 도로를 쌩쌩 달렸다. 


   남우는 승용차를 대학교 앞에 멈추고 비상등을 켰다. 캐비닛에서 봉투를 꺼내 세이에게 돈을 주었다.

"세이와 약속한 거니까 받아라."

"그거 사양할래요?"

"왜?"

"그냥 편하게 먹고 자서 받고 싶지 않아요. 사실 돈도 돈이지만 호기심이 생겨 아저씨 요구 조건에 순순히 응했던 거에요."

세이는 남우와 대화를 나누고 아무 생각 없이 승용차에서 막 내리려고 하다가 별안간 의아하게 생각했다.

"어, 제가 다니는 학교를 어떻게 아셨어요?"

"어제 말하지 않았나?"

"전 일 교시에 수업이 있다고만 했는데요."

"세이야, 수업 늦겠다. 빨리 가 봐라."

세이가 어제 이야기를 꺼내자 남우는 금세 얼굴빛이 변하며 승용차에서 빨리 내리라고 재촉했다. 세이는 숨은 내막을 거니채고 다시 만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아저씨-, 엄벙뗑 넘어가려고 하지 말아요. 우리 또 안 만날거죠?"

"히히-. 사실은 말야. 그전부터 빨간 추리닝을 즐겨 입는 세이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었어."

"흐흐-, 아저씨 진짜 못됐다!"

"으하하-, 우리 다시 만나는 거지?"

"예."

세이가 승용차에서 내려 손을 흔들며 미소를 지었다. 남우는 손을 들어 답례하고 그 곳에 잠시 머물러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나 홀로 지내는 시간과 세이와 단둘이서 지내는 시간은 가는 속도가 전혀 다르구나.'

오늘 따라 세이가 입은 빨간색 트레이닝복이 유난하게 돋보였다. 남우는 한동안 멍한 표정으로 세이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관련자료

댓글 1

<span class="sv_wrap"> <a href="https://ivancity.com/bbs/profile.php?mb_id=Kimys111" data-toggle="dropdown" title="연인들 자기소개" target="_blank" rel="nofollow" onclick="return false;"> 연인들</a> <ul class="sv dropdown-menu" role="menu"> <li><a href="님의 댓글

  • <spa…
  • 작성일
새로운 소설이네요
즐겁게 보고 다음변을 기다려봅니다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