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사람들 1

작성자 정보

  •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침대에서 쓰러져 자고 있던 준이가  벌떡 일어난다. 

주위는 깜깜하고 커튼틈으로 달빛이 적막하게 비추고 있다. 



 무슨 꿈을 꾼건지. 

오른손을 말아서 주먹을 만들어서 

가슴부위를 몇번을 친다. 



 "... 하...."



 저 깊은곳에서 순식간에 탄식이 흘러나온다. 





 억울했다. 

 시도때도없이 꿈에 나오는 아빠가 밉다. 

언제까지고 이럴수만은 정말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든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오십이 되어서도, 

 분명 오늘처럼 똑같은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컸다. 

준이는 익숙한듯 침대맡에 있던 보드카와 제로 콜라를 따른다. 


그리고 맥주 한컵 정도 되는 양을 벌컥벌컥 마시고는, 

다시 침대에 눕는다. 



억지로 잠을 청하려 노력해보는데...

그때 준이의 핸드폰에 톡이 뜬다. 



 [.. 자냐?]



 최사장이다. 



 준이는 시간을 확인한다. 새벽 1시다. 

 눈을 비비고는 문자를 보낸다. 



 [ 잘려구요...]





 그렇게 과감하게 눕는다. 

하지만 머릿속에는 다시 아빠로 가득찬다. 

그리고 울리지 않는 핸드폰이 서서히 신경쓰인다. 



 다시 일어나 톡을 확인하는데, 

 1은 지워졌다. 



 새벽1시에. 괜히 물어봐서는. 

 마음만 어지럽게 만든다. 


 준이는 [왜요?] 라고 톡을 쓰다가 다시 지운다. 

그리고 [ 무슨 일 있어요?] 를 쓰다가 다시 지우고는, 

몸을 비틀어서 침대에 파묻힌다. 



 다음날, 


동료들은 준이의 생일을 축하한다고 말해준다. 

적당히 친한 사람들부터, 아주 친한 사람들까지. 

소문은 주방에서까지 나서,멕시칸들도 한마디씩 거든다. 



 때마침 한국에서 전화가 온다. 아버지다. 

양해를 구하고 식당 뒷편으로 가서 전화를 받는다. 




"... 여보세요?"


 "... 어.. 준이냐?"


 

 "...네... 아버지..."


 "... 생일 축하한다!!!""



 ... 아들 생일 축하!!"


 엄마가 옆에서 거든다. 



아무리 본인도 하지 않겠다고 작정을 했어도..

나이가 사십이 되도록 아직도 결혼을 하고 있지않다면, 

부모는 평범한 안부 뒤에 꼭 덧붙인다. 진짜 본론을. 




 "...어차피 사는건 다 힘든 일인데, 미국에서 사나...

 ... 한국에서 사나... 다 똑같지 않것냐? "


밑밥들이 쫘악 깔린다. 



 "... 네....."



 "... 뭐... 결혼은 해야 ... 아잇...."



" .... 하지맛!!!!"



 날카로운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다다다닷.....( 날쌘 발걸음 소리..)




" 저 교회 너 고집사님 딸 수민이 알지? 

 ... 너랑 친했잖아..."



 "... 네...."


  "... 아직도 시집을 안갔데...

  ...와서 만나보면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

  .. 강요는 아니고... 생각만 해보라고..."




 이럴땐 그냥 듣고 호응을 해준다. 

괜히 화를 냈다간, 큰 싸움으로 번진다. 


사실 죄송한건 사실이지 않은가. 

앞으로 계속해서 부모님 가슴에 못을 박을거 아닌가. 

가끔 불쌍하기도 하다.  


게이 아들을 낳은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을테니...

돈드는것도 아닌데. 장단 맞춰주는게 뭐 어렵다고. 



 "... 네...."



 준이는 반쯤 겨우 웃으며 대답한다. 

그리고 갑자기 문이 크게 열리는 소리가 난다. 



 ".. 퍼엉!!!"



 "...나.. 바꿔줘!!!"



 엄마의 작은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그리고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린다. 



 "... 양아버지는 잘 계시냐?"



순간 물음이 막혔던 준이는 가까스로 대답을 이었다. 



 ".................... 네....."



 "... 돈 받은 얘기 해야지..."




 작게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 아.. 니가 보내준돈 잘 받았다... 

   ... 이제 돈 보내지마... 괜찮아... 

 .... 아버지랑  엄마도 ....돈 버니까..."


 준이는 담배를 피우면서 용케도 잘 대답했다. 담배를 아직도 안 끊었냐고 엄마가 저번에 통화했을때 물어 봤던터라, 연기를 내뿜는 소리가 안들리게 하는 요령이 필요했다. 




 통화를 마치고 식당으로 돌아온 준이는 머쓱하게 뭘 해야 되는지 동료에게 묻는다. 너무 많이 시간을 밖에서 보낸건 아닌지 미안해서다. 최사장도 준이가 오랜동안 사라진걸 귀신 같이 알아채고는 눈치를 준다. 




 김매니저가 최사장에게 속닥거린다. 

 가게가 한산해지자 축하파티는 결사코 싫다던 준이에게 

 집이라도 일찍 보내주기 위해서다. 




 "... 준아.. 사장님이 일찍 들어가란다..."




 준이는 고개를 꾸벅이고는, 

술을 같이 마시고 있던 단골 손님들에게 

급하게 미소를 지으면서 잔을 비운다. 


 


 대충 칼과 장비를 챙기고 미안하다는듯한 

미소를 애써 주위의 사람들에게 보낸다. 



 그리고 돌아온 집은 적막하고 쓸쓸하다. 

일이 끝나고 집으로 들어갈때마다 

지금의 감정이 이상하게 절대 익숙해지지 않았다. 



무언가 얹힌 기분이 되게 거슬린다. 



 투명한 돌덩이가 어디 가슴 깊은곳에 자리 잡은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준이는 알고 있다. 

왜 그런지. 다만 애써 빤뻔하게 모른척을 하는것이다. 

어떻게든 해결이 안될걸 알고 있으니까. 



 준이는 자연스레 옷을 벗는다. 화장실 앞에서. 

그리고 핸드폰을 가지고는 욕실로 들어 가는데, 

최사장에게 전화가 온다. 


 ".. 여보세요?"


 ".. 어.. 나다.."


 "... 네... "



 "... 너는 말도 없이 그냥 가버리냐?"



 "... 먼저 가라메......"


 왜그런지 준이의 마음은 짜증이 가득이다. 

하지만 바로 말을 잇는다. 



 '.....피곤 하기도 하고..."


 듣고만 있던 최사장이 답한다. 


 ".. 뭐... 사케 2병밖에 안마셨더만....."


 "... 또 그걸 언제 세셨데?"


 "... 인간아... ... 다 보고 있지... 그럼...."


  "... .... 넌.. 생일인데 뭐 안하나?"


 격하게 아무것도 안하고 싶다고 대답도 하기 전에 

최사장이 싹둑 자른다. 



 "..... 나와... 맛있는거 먹으러 가자..."



 자그만치 15년이다. 최사장과 이런 약속. 

가끔 와이프가 집을 비울때는, 늘 준이를 불러냈다. 



 처음엔 간택 받았다는 기분에 잠시 빠져 산적도 있었다. 

 그래서였는지, 나오라는 말에는 늘 손살같이 나갔다. 


몇번은 ...

밥을 먹었음에도 화장실에 가서 게워내고,

안먹은척 연기를 하고 나가기도 했었다. 



 잠시후, 준이가 먼저 나가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BMW 5 suv 검은색깔 차량의 광택이 밤하늘에 번쩍 빛난다. 


 차에 들어서자, 담배냄새가 난다고 가벼운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어색한 미소라도 보여줄법 하건만, 

준이는 여전히 시무룩한 모습이다. 


최사장이 연설을 멈추고, 급작스럽게 옷에 대해서 칭찬을 한다. 



 "... 옷 이쁘다.... 잘 어울린다.."



 ".... 아빠가 사줬잖아...."



 "... 내가 보는 눈이 있어... 그렇지?"



 만족스러운듯 입꼬리를 올리며 괜히 준이의 눈을 한번 올려다본다.



 "..아까는 왜 밖에 오래 있었노? 무슨일 있어?"


 운전만 집중하다가 한참있다가 다짜고짜 묻는다. 

아마 아까부터 진즉에 물어 보고 싶었을거다. 



 "... 아버지한테 전화가 와서..."



 ".. 어.. 그래..."




 순간 최사장의 어조가 부드럽게 바뀐다. 

무엇을 상상했던건지는 모르지만. 




 ".. 뭐... 부모님은 잘 계시고? 건강하시지?"




 "... 네.....뭐... "




 "... 야!!! 근데...


   젊은 놈이.. 뭘 그렇게 죽상이노!!

  ... 그렇게 죽상 때리고 있으면 

  ....어느 여자가 너를 좋아 하겠냐!!! 

  ....나라도 너 안데리고 가겠다!"




 ".. 아.. 그냥 생각할게 있어서.."




 가라앉은 준이의 말투때문이었는지,

 왠일로 장난스러운 잔소리 대신, 

 아무말도 하지 않고 눈치를 살핀다. 




  "... 뭐.. 먹고 싶냐? "



 서로 아무말도 하지않고 한참이 지나서야,  

최사장이 먼저 침묵을 깼다. 



 "... 그냥... 아빠.. 먹고 싶은거..."



 "... 너는 항상 내가 먹고 싶은거만 먹겠다고 하노..

 .... 너 먹고 싶은걸 얘기 하라고...

  ... 오늘 니 생일 아니가!!"




 준이는 대꾸도 하지 않고

창가에 기대어서 눈을 감아 버린다. 


그러자 최사장도 더이상은 묻지 않았다.



....................



찬바람을 맞으면서 준이와 최사장은 

술집 야외에 자리를 잡았다. 


최사장이 준이의 눈을 굳이 마주치면서, 

환하게 웃으며 묻는다. 



 "... 어떠냐? 나오니까 좋지 그래도?"



 벌써 몇번이나 딱딱하게 굴었음에도,

최사장은 분위기를 살피며 기분을 맞춰준다. 

거기다가 아찔한 미소까지 띄운다. 



 준이가 피식 웃어 버린다. 



 "... 나오니까.. 또 괜찮네...."



제 아무리 꽁꽁 싸매여져 있다고 한들, 

결국에 어떤식으로든 마음이 안풀릴리가 없었다. 




"... 와.. 완전 상전이다.... 상전 납셨다..."



 최사장도 그제서야 정말 편하게 웃어 보인다. 


 

둘만 있을땐 뭔가 특별한 기분이 든다.

15년 정도 됐으면 이젠 익숙해질만도 한데, 

매번 둘만 있을때 마다 그렇다.



50명중의 종업원중에서, 

가장 애정을 받는 사람이라는게,

준이에게는 그렇게 뿌듯한 일인가보다. 



 최사장은 오늘따라 유독 말이 많다. 

귀가 입에 걸리도록 열심히 드립을 쏟아낸다. 



뭣이 그렇게 즐거운건지.

딱히 힘든게 없는 사람. 항상 즐겁고, 행복하고. 

얼굴에 그늘이 없는 사람. 

고민이란게 있을까 싶은 사람.



 최사장이 꼭 그랬다. 



 옷은 늘 젊은이들처럼 꾸미는걸 좋아했고, 

유쾌하고 젊은이들과 어울리는게 

딱히 이상하지 않는 사람. 



   결혼을 하고 나서도 한동안 애를 갖지 않다가 

뒤늦게 40대 중반에 애를 둘씩이나 얻었고, 

이쁜 마누라와 큰 규모의 사업체와 부동산. 

더 이상 바라는게 이상한 사람. 




 그때.. " 쾅" 하고...




 준이의 머리가 테이블에 내려 앉았다. 




소주 4병이 파르르 떨리고,

최사장이 놀래서 두손을 뻗는다. 

하지만 준이의 머리를 받치는것까지는 역부족이었다. 




이윽고 차 두대와 대리기사 2명이 왔다. 

최사장은 준이를 업고 있었다. 




 차를 안내하고 뒷자석에 준이를 눕힌다. 

그리고 차문을 닫고, 반대편으로 돌아 걸어간다. 


대리기사가 미리 열어놓았던 앞차석 차문을 닫더니,

뒷자석 문을 연다. 준이의 머리를 받치고

최사장의 무릎위에 조심히 올려 놓는다. 




집으로 가는동안, 최사장은 준이의 등을 토닥토닥 다독거린다. 





 얼마후, 준이의 집에 도착한다. 

최사장은 익숙한듯 준이를 업고서 걷는다. 

살짝 흔들어 보았지만 전혀 일어날 기미가 없어서였다. 

현관문에 키를 꼽고서 집안에 들어서서 불은 킨다. 



 덩그러진 소파와 회색빛 카페트.

 적막한 기운만 감돈다. 



 준이를 업은채로 신발을 벗으려는데, 여의치가 않다. 

그대로 안방을 향해서 걷고 문을 열고 

준이를 침대에 눕힌다. 



 그제서야 참았던 땀을 닦아낸다. 

그리고 달빛에 비춘 준이를 조용히 바라본다. 




한참후에, 최사장이 돌아서서 발걸음을 옮기는데, 




 "... 아.. 흐...."




 이상한 소리와 함께 

준이는 한쪽 다리를 올리며 몸을 돌리는데,





그 와중에 소리를 듣고 돌아서던 최사장의 등을 치게되고...

그만 중심을 잃어버린다. 




그렇게 처음으로 두사람은 포개진다. 




 서로 맞닿아 있을때 느끼는 감촉들이 

여기저기서 느껴지기 시작한다. 



 어느 누구도 움직이지 않는다. 



 한참을...



 그러나... 그 감촉들은 서서히 아무런 느낌이 없어진다.




 원래 하나였던것처럼.




 시간은 흐른다. 계속해서. 조금씩 조금씩. 

들리는건...  초침소리...뿐이다.




 그리고...  다른게 반응하기 시작할때쯤...




 최사장이 몸을 먼저 움직인다. 




 이불이 사사삭 소리를 낸다. 

때마침 최사장이 침대에서 빠져 나오는중이다. 

그리고 조심히 발걸음을 옮기는데...




 ".. 아빠...."





 돌연듯 준이의 반쯤은 목메인 소리가 들린다..



 슬금슬금 걸어나가던 최사장이 애써 허리를 꼿꼿이 세운다. 





 ".... 왜?"





 최사장이 침을 꼴깍 삼키자,

준이도 침을 꼴깍 삼킨다. 




 "... 나... 한국 가려고....."





 최사장이 바로 얼려져버린다. 

 그 자리. 그 자세 그대로.





 ".. 너.. 이제 사십이나 됐는데.. 


.....한국 가면 뭐할려고?"





 준이는 한숨을 크게 내쉰다. 

어두운 표정은 금방이라도 잿빛처럼 타버릴것같다.




 "...결혼을 먼저 하라고...


  .. 여자가 그렇게 없나?


  ... 돈있겠다.. 차 있겠다.. 유머러스하지..


  .. 뭐가 부족하노?"




 준이는 묵묵부답에 아무런 표정변화도 없다. 

 최사장도 항상 하던 소리라는걸 금새 깨닫는다. 




"... 니 사십에 한국가면 누가 널 써주노..

   ... 봐라.. 100세 시대라고...

  ... 딱 10년정도 돈 모아서 가는거는 오케이...라고..

  ... 근데...지금 간다? 뭐해서 먹고 살꺼고?"

 ... 니가 지금 버는 이돈 작은게 아니라고..


 ... 한국에 가면 이돈 벌수 있겠나?"




  그걸 몰라서가 아니었다. 

진즉에 분수는 파악할 정도는 되었다. 

 나이를 사십이나 먹었는데,

사람구실 못한다는 소리까지 들을수는 없었다. 


 그래서였다. 

싫든 좋든, 미국에 끝까지 남으려 했던것도


그러나 허전한 마음은 돈으로 채워 지는게 아니었다. 




 "... 언제까지.. 불체자로 살수도 없는거고..."



 준이는 한마디를 겨우 내뱉는다.




 "... 그러니까.. 시민권 있는 여자를 잡으라고.."



 

일장연설을 시작하려는 최사장이 말을 하다가 만다. 



갑작스럽게 이상한 마음이 소복하게 내려 앉는다.  

그리고 한참을 그냥 서있던 최사장에게 준이가 묻는다.





  "...우리가 언제부터 아빠 아들 했지?"





 "... 모르지... 오래됐지..."




  어떤이들은 참으로 시기질투, 뒷담화를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최사장의 아들로 불리는게 참 좋았다. 

 뭔가 특별한 사람이 된다는 기분. 



 사람들은 서로를 이용하고 있는거라고도 했다. 



믿을만한 인력이 필요했던 최사장의 입장에서는 

아들로 삼아서 필요한만큼 쓰는 것이고, 

준이의 입장에서는 혹시나 뭐 떨어질 콩코물을 기다리는것이라고 했다.


 서로가 다 아니라고 했지만, 

사실 그 속내는 다 알수가 없는거였다.




"..... 왜?"




 대답이 없는 준이. 최사장이 다시 말을 잇는다. 



"..조금만 좀 참아라 인간아.. 


.. 내가 그렇지 않아도... 생..."




 "... 숨이 안쉬어져서 그래... "




 떨리는 목소리에, 간결하지만 명료한 목소리가 덮힌다. 




 "... 나.. 숨 좀 쉬게...."



 이윽고, 최사장이 걸음을 옮기자,

준이는 그대로 쓰러져 잠이 들이 들었다. 




............





다음날 술이 덜 깬 상태로 잠이깬다. 



발걸음을 겨우 질질끌며 물 한잔 마시기위해서 

거실에 나왔는데, 잠시 멍하니 서있는다. 



 깨끗해진 집안. 고소하고 따뜻한 냄새가 난다. 

그리고 소파위에 놓여있는 명품 쇼핑백. 

가스렌지 위에는 정체불명의 냄비가 놓여있다. 



 준이는 애써 외면하며 냉장고를 향해서 걸어가서는, 

찬물을 벌컥벌컥 마신다. 



 며칠뒤, 준이는 한국가는 비행기표를 예약하고,

마지막 월급을 받으러 가게에 간다. 



 최사장과 같이 지금의 차를 같이 보러갔던 시간이 

천천히 떠오른다. 



 준이는 시동을 끈다. 

두손으로 볼을 몇번 따귀를 때리며, 머리를 흔든다. 



 가게 문을 열고, 최사장이 있는 사무실로 들어간다. 




 ".. 어 왔냐?"



 반기는건지, 아닌건지. 애매한 톤의 인사가 전해진다. 




 ".. 네...."




 평온해 보이기까지 하는 표정으로 최사장이 월급을 건넨다. 

 준이 역시 평온하게 두손으로 받는다. 



 ".. 감사했습니다..."




  "... 어... 그래...."






 준이는 한편 남짓한 사무실을 나간다. 

그리고 최사장은 다음 월급 받을 사람을 태연하게 맞이했다. 




............





준이는 멍하니 고개를 한쪽으로 치우친채 있다. 

비행기의 잔잔하고 꾸준한 소음은 여전히 귓가를 맴돈다.

머릿속으로는 지난 시절 미국생활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억울하다....

무엇이 그렇게 억울할까?

준이는 곰곰히 따져본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렇게 억울할것도 없다.

확실하게 성공했어야 했다.



큰형이었다.



매일 매일 열심히 사는데도 전혀 나아지지 않는 사람.

매일 매일 열심히 살아서 자꾸만 넘쳐서 성공하는 사람.



성공은 미국에만 오면 다 되는줄 알았다.

적어도 남겨진 사람들보다는 잘 사는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게 있을줄이야.


성공이 아무것도 아닌것일수도 있겠다고.


 준이는 그때 처음으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잠잠히  잠에 빠진다.






비행기는 어느새 인천공항에 도착하고 있었다.




스튜디어스의 목소리가 들리고

웅성거리는 소리가 합쳐지자,

드디어 준이가 잠에서 덜 깬채로,

핸드폰의 비행모드를 제거하는데,

수두룩한 카톡들소리와 함께 전화소리가 들린다.




".. 여보세요?"




".. 형!!! 도착했어?




"... 어.."




"... 어떠십니까!!! 오랜만에 한국의 향기는..."



현이는 미리 제작한 특수 풍선들을 찾으러 왔다.


".. 네... 이현이요..."


 점원은 목록을 찾더니 이내 봉지에든 분홍색 풍선들을 건네준다.



".. 실감이 나는거 같기도 하고..."



.".. 아. 형이 공항에 나오지 말라고 해서..

... 진짜... 내가 제일 먼저 나가려고 했는데. ."



"... 뭘... 너 힘들게...

  ... 어차피 내가 내려갈건데..."




"... 터미널은 몇시 도착이야?"



".. 일단 터미널 가보고...연락줄게..."



"... 알겠습니다.. ...

  ... 좀이따 봡겠습니다....형님.."



"... 석이 이새끼는 아직도 안온거야?"



핸드폰이 안끊겼는지.

희미하게 현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준이는 웃으며 전화를 끊는다.



그리고 조심스럽고 간절하게 한참을

핸드폰을 뒤져보는데,

얼굴에 금새 그늘이 드리운다.



축 늘어진 어깨를 겨우 이끌고 공항을 빠져나오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불현듯 날라와서

진한 중년 남성들의 향기가 코끝을 스친다.




등산복을 입은 흰머리와 검은 머릿칼이

적당히 범벅인채로 유유히 걸어가는 아저씨.


출장을 가는지 곤색 정장을 빼입고

캐리어를 끌면서 서있는 아저씨.

앞섬마저 봉긋이 튀어 나와있다.



곱상한 아저씨.

귀여운 아저씨.

남자다운 아저씨.



준이의 눈이 바쁘다.

수많은 얼굴과 비밀스런 그곳에

수없이 몰래몰래 꽂힌다.



미소가 저절로 새어나온다.



정신을 잃고 미친 사람처럼 앱을 깔고는,

마음에 꼭든 아저씨 한명을 선발해내고,

서울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싣는다.




서울에 도착후, 전화를 건다.



"... 어.. 형... "



목소리를 내기도 전에,

신호음이 들리기도 전에,


현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 어.. 있잖아...

  ...나 친한 친구가 다음날 출국이라고,

  ...오늘 꼭 만나자네......"




"... 진짜?"


현이는 실망스러운 목소리다.



"... 미안... 내일 내려갈게..."



"... 어.... "



현이는 특수 제작한 마지막 풍선을 붙혀놓고,


거실 한가운데, 푹 주저 앉아버렸다.




돌아와서 고맙고 사랑해 형!

Welcome home!



"... 엄마!! 형 내일 온데..."




잡채에 참기름을 뿌리고 있던 엄마에게

현이가 멈추라며 말했다.

그리고 집안에서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던

아버지도 석이도 그말을 듣고는 모두 잠시 멈췄다.

약속이나 한듯이.





준이는 전화를 끊고도 머리를 창문에 기대면서,

흐르는 네온 사인의 불빛에

자신의 눈과 생각들을 비추어 본다.


핸드폰을 껐다가 다시 켜기를 몇번을 반복한다.

하지만 원하던 연락은 여전히 깜깜 무소식이다.


그리고 머리속에 떠오르는 가족들.

큰아들이 좋아하는 파김치를 담궜을 엄마. 

집은 또 얼마나  깨끗하게 치웠을 아버지. 

그리고 모든걸 진두지휘하고 있을 현이.

늦게 와서 싫은척을 다 내면서

열심히 하고있을 석이까지..



준이는 약속장소의 모퉁이 창가에 자리를 잡고 기다린다. 어떤 떨림과 무슨 설레임인지 가슴을 몇번이고 쳐낸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확인한다.



그때..가게문이 열리는 "따르릉" 소리에

준이의 시선이 뺏긴다.



중후하고 정말 사진과 꼭 빼닮은.

아니, 어쩌면 실물이 훨씬나은 중년 남성이

슬로우 비디오로 걸어온다.



그렇게 멋있는건 정말로 오랜만이다.

준이의 침이 꼴깍하고 쌈켜진다.



남자는 가까이 다가오자,

가벼운 목례와 억지가 다분히 섞인 미소를 하면서

자리에 앉았다.



스치듯 오는 불안감은 개나줘버리고,

모든건 긍정적으로.

불안요소따위는 문제가 전혀 되지 않다는듯.

준이도 일어나서 목례를 하고 앉았다.



준이는 기다렸다.

꼭 정해진건 아닌건 알았지만,

상대방이 먼저 말을 시켜주고 리드를 해준다면

정말 환상일것 같았다.



그러나 남자는 말이 없었다.

적극적인 모습은 찾아 볼수도 없었다.



억지스럽다고 느꼈던 예감이 적중한것이다.




"... 제가 맘에 안드시나봐요...."




"....아니요.. 그게 아니라....."



남자는 머뭇거리며 말을 쉽사리 잇지 못한다.




"... 저기요!!"



남자는 소주 4병을 먼저 시킨다.

그리고 뒤늦게 무슨 안주를 먹을지 물어본다.



일단은 안심이다.

술을 마시겠다는건  싫지는 않다는 뜻이다.



하지만 기다리던 시간속에는 소주 4병이 전부였다.



안주는 식어가지만,

누구하나 먹는 사람이 없었고,

대화를 기다리던 준이와,

말없이 술만 마시던 남자는

결국 소주 4병을 비워내고 5섯병을 마실쯤에...



남자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는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요?"



준이는 말문이 막힌다.

어이가 없기도 했지만,

생각보다 질문이 상당히 난이도가 있어서였다.



" .......남자를.. .......

  ......그것도 .......

.....나이도 많은 아저씨를 왜 좋아하는 걸까요?"



피하거나 방어할 틈도 없이 질문이 쏟아진다.



남자의 눈빛도 함께 예상치 못했던 비수도,

준이의 가슴 한복판에 꽂힌다.



  준이는 다시 핸드폰을  확인한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 혹시 이거 뭐 취재그런건가요?

방송국에서 나오셨어요? "




준이는 그래도 최대한 예의를 갖춘다.

하지만 남자는 그걸 알아챌리 없다.

그저  쌓아놓았던 물음들을 날것 그대로 쏟아낸다.




"...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수는 없었습니까?"




남자는 여전히 숨을 거칠게 쉰다.

얼굴에선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는게

적나라게 드러난다.




"...무슨 이야기를 듣고 싶으신거예요? "



  준이는 큰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숙여서 내뱉는다.

  그리고 남자를 노려보며 말한다.




"...부모님한테 말은 했습니까?"




순간 준이의 머리가 하얘진다.

그러자 주위의 모든 사물들이 다 사라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급작스럽게 내리는 눈물 한방울을

손등으로 닦아내고 울먹거리며 말한다.





https://youtu.be/CKKaLhd_zMg





".. 어떤걸 말할까요?"





"... 제가 남자를....

  그것도 아버지뻘 되는 분들만 좋아한다고 할까요? "




"..그분이 졸업식때 만났던 양아버지라고 할까요?"



담담하고 또박또박 들리는

준이의 물음에 사람들의 시선이 몰린다.



".... 십년인데요 그러면.. "



남자도 조금은 당황한 기색이다.




  "...10년동안 양아버지를 좋아했다고 어떻게 말해요?

   .... 사람새끼라면!!!!!"




"... 망하기까지... 했는데..."




급작스러운 소리를 지르던 준이를 보면서

당황하던 남자는 한참을 가만히 있다가 말을 잇는다.


가지고 있던 모든것들이 흔들리고 있다는 듯이. 



"...그런것들이 사랑같은것에 관심이나 있는줄 알아?

다 지만 생각하는 쓰레기같은 것들이여...




준이는 눈을 감으며 주먹을 쥔다.



"....안 그런 사람도 있어요....



....비록, 오늘 한국에 도착했지만,

....전화 한통도 없고..

... 문자도 없고...



....  잘 가라...

..... 그동안 고생많았다..


... 그 흔하디 흔한 말을...

..... 가는 날까지 못들었어도....


...사람들이 너 이용하는거라고...

.. 정신차리라고 했어도...



... 난... 끝까지.. 믿어요..."



말을 할수록, 감정에 북 받치는지 마지막 말은 거즘 울다시피 말했다.



남자는 어느새 경직된 얼굴을 풀고있었다.

그리고 한없이 애잔한 표정으로 물었다.



".... 쉬운길 놔두고...

.... 왜들 그래요....."



  "... 안그럼... 내가 너무 불쌍하잖아요....

  ... 안쓰러워서... 미안해서...

  ... 무슨 면목으로 봐요...."



준이는 울부짖으며 외치고서는 자리를 황급히 떠난다.

남자는 눈을 감고 오열을 하는지 꿋꿋이 눈물을 참아내고 있었다.



남자는 급히 계산을 하고는 준이를 따라 나서려는데,

가게문을 열자 갑자기 거짓말처럼 비가 쏟아진다.




그리고 준이가 급하게 뛰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 뛰지마!!!!!!!"



남자가 미친듯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뛴다.

준이가 깜빡 하고간 명품백을 들고서.


  몇번이고 준이에게 들릴때까지 외치지만,

빗소리 때문이지 준이는 계속해서 뛴다.



뒤늦게 뛰어오던 남자는 다행히,

빨간등인 신호등앞에서 멈춰서있는 준이를 발견한다.



비를 쫄딱 맞고 신호등앞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남자는 다른 사람들 틈으로 가서 우산을 꺼내서, 준이의 비를 막아준다.



이윽고 점차 빗소리가 둔탁하게 들리자,

준이의 핸드폰이 지지 않겠다고 요란한 소리를 낸다.



순간 놀래서 전화기를 꺼내려는데,

그만 중심을 잃어버린다.



갑자기 "빠앙" 하고 화물차 경적음이 크게 울린다.



준이의 눈과 빗속을 순식간에 뚫어버리는,

화물차의 황색 라이트가 부딪히고 있는데....



남자가 준이를 힘껏 끌어 당긴다.




빗속에서..준이와...남자가..겹쳐진다. 

모두의 시선을 받은채로.


그리고 준이의 핸드폰에서 소리가 난다. 



 "... 이준이!! 문자 봤어?

  ... 장범이... 우리 돈 들고... 잠수 탄거 같은데...."


 




....  친한 ...친구들 처럼..... 좋은 여자 만나서,


....똑 닮은 자식들 낳고...남들과 비슷하게....평범하게 살고 싶어요....


... 부모님도 행복할테고....... 동생들도... 그럴테고....


 ... 다 좋잖아요......


.....근데요........ 쉬운길 놔두고.... 굳이....


... 병,신같이...........아저씨들한테만....


..... 내 마음이 뛰어요..... 아무리 진정시키는데도....


.... 뛰어요.........속절없이....  




...........





관련자료

댓글 1

<span class="sv_wrap"> <a href="https://ivancity.com/bbs/profile.php?mb_id=Innerspring1" data-toggle="dropdown" title="삼손깨철이 자기소개" target="_blank" rel="nofollow" onclick="return false;"><img src="https://ivancity.com/data/member/In/Innerspring1님의 댓글

  • <spa…
  • 작성일
ㅜㅜ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