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귀 살인 사건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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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내가 성감대 안 다치게 잘 자르고 장인정신으로 한 땀 한 땀 꿰매줄게. 지혈도 잘 해주고, 매일 소독도 해줄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박형사는 선뜻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마음으로는 무조건 거절이었다. 애초에 포경 수술을 할 생각도 없었다. 하려고 했으면 어린 시절 아버지 손에 이끌려 병원에 갔었을 때 했을 것이었다. 울며불며 지킨 노포 자지였다. 게다가 신체 부위 중 가장 소중한 곳을 형수에게 맡길 수가 없었다. 형수의 마음이 언제 또 변할 줄 모른다는 의심이 남아 있는 한 조심해야 하는 일이었다.

  문제는 어떻게 거절을 하느냐였다. 최대한 형수의 마음이 상하지 않게 거절하는 것이 중요했다. 박형사는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내렸다.


  “어릴 때 아버지 따라 병원에 끌려갔다가 내가 떼를 써서 안 했거든.... 그래도 니가 해준다니까 생각해 볼게....”


  박형사의 말이 거절을 뜻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차린 듯 형수의 얼굴 표정이 일그러졌다. 곧 퉁명스러운 형수의 목소리가 방 안에 퍼졌다.


  “불 꺼. 잘 거야.”


  사흘 뒤, 섹스를 하고 나서 형수가 박형사에게 물었다.


  “생각해 봤어?”


  “뭘?”


  “포경 수술 말야.”


  형수가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박형사는 확실하게 해 둘 필요를 느꼈다.


  “아~ 그거? 생각해 봤는데.... 안 할 거야. 지금까지 불편함 없이 살았고, 그냥 있는 그대로 사는 게 좋을 거 같아.”


  형수의 표정이 싸늘하게 변했다. 한참 동안 말없이 박형사를 쏘아 보던 형수는 헛웃음을 한 번 웃고는 박형사에게 또 물었다. 포경 수술과 마찬가지로 다소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너는 차 안 사?”


  “차 필요 없는데....”


  “씨.발.... 몸 대주고 운전도 해주고....”


  박형사는 불길한 예감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아니나 다를까 형수의 입에서 박형사가 늘 불안해하던 말이 흘러 나왔다.


  “니가 차 필요 없어서 안 사는 거면.... 나도 이제 너 필요 없으니까 같이 안 살래. 몇 달 동안 아무 일도 안 생겼잖아. 사마귀 그 새끼도 이제 죽일 만큼 다 죽인 거 같네. 병무 형도 잘 살아 있던데....”


  박형사도 병무에게 들어서 아는 얘기였다. 포경 수술 이야기가 나온 다음날, 형수에게 연락이 왔더라고 병무에게서 메시지를 받은 터였다.


  “너 병무 형이랑 잤지?”


  “아니.”


  “하하하하 아니라고 대답하기 전에 병무가 누구냐고 먼저 물어봐야 되는 거 아냐? 병무 형이랑 연락하고 지내나 보지?”


  박형사는 솔직하게 털어 놓았다.


  “먼저 나한테 연락 왔었어. 만나자고 해서 만났고.... 나는 너를 지켜야 하는 의무가 있으니까.... 한 번 만난 게 다야. 절대로 안 잤어.”


  “신기하네. 나랑 사귄 사람 절대로 가만 안 두는 게 병무 형인데.... 너 아직 살아 있는 거 보니까 병무 형도 사마귀가 아닌 거 같애. 병무 형도 살아 있는 거 보니까 사마귄가 하는 새끼도 병무 형은 못 건드리는 거 같고....”


  박형사는 아무 말을 하지 않고 형수를 바라봤다. 형수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 피식 웃고는 말을 이었다.


  “병무 형이 사마귄 건가. 나랑 사귄 애들은 죄다 병무 형도 따먹었고.... 다 죽었으니까.... 너 빼고....”


  박형사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형수의 말에 토를 달았다.


  “그런 논리면 니가 처음에 예상했던 대로 내가 사마귀일 수도 있지....”


  형수는 박형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크게 웃으며 말했다.


  “아니. 몇 달 살아보니까 넌 아닌 거 같애. 니가 사마귀면 병무 형은 벌써 죽었을 거니까.... 자기 발로 찾아간 병무 형을 가만 놔두는 니가 사마귀 일 수가 없지, 안 그래? 칼에 살짝 베여서 피 찔끔 나는 것도 무서워서 벌벌 떠는 놈이 무슨 살인을.... 너는 절대로 모를 일인데.... 칼로 베거나 자를 때 머뭇거리면 안 되는 거거든. 망설임 없이 과감하게 그냥 팍~~~.... 그러고 보면 병무 형이 정말 대단해. 칼 다루는 솜씨가.... 와~~ 진짜.... 내가 병무 형이 닭 토막 내는 거에 반했잖아. 내가 순살 먹고 싶다니까 과감하고 세심하게 살도 발라내고.... 병무 형이 외과 의사였으면 정말 수술 잘했을 거야.... 병무 형 보고 싶다.... 안 본 지 꽤 됐네....”


  “형수야.... 앞으로 내가 더 잘....”


  형수는 이번에도 박형사의 말을 뚝 잘랐다.


  “너 아직 방 안 뺐다고 그랬지? 오늘은 너 거기서 자. 오랜만에 편하게 좀 잘래.”


  박형사는 형수에게 쫓겨 나와 혼자 살던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형수랑 함께 살면서도 자주 찾아와 청소도 하고 그랬으니 낯설지는 않았다. 다만 다시는 형수의 집에 갈 수 없을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아무 일도 없었던 척, 뻔뻔하게 형수의 집으로 다시 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았으나 그렇게 하면 평소 형수의 성격으로 미루어 볼 때 당장 꺼지라는 말을 들을 것이 뻔했다. 다시 오라고 할 때 가는 것이 맞는 일이었다. 그런데 다시 오라고 할지 의구심이 들었다.


  며칠 후 다시 오라는 형수의 연락 대신 병무에게서 연락이 왔다. 박형사의 예상대로 형수는 병무에게 다시 오라고 연락을 한 듯 했다. 박형사는 가슴이 아팠지만 받아들여야 했다. 박형사는 형수에게 두 번째로 버림을 받은 것이지만 병무는 네 번이나 버림을 받고, 다섯 번째의 부름을 받은 것이었다. 수화기 너머로 병무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대뜸 반말이었다.


  “생각보다 오래 걸렸어. 나름 능력 있나 보네....”


  박형사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병무의 말이 이어졌다.


  “형수가 다시 불러서 좋긴 한데.... 또 언제 마음 변할 줄 모르니까 좀 그렇긴 해.... 당신이랑 오래 같이 한 것도 신경 쓰이고.... 빨리 연락이 오게 손을 좀 쓸까 싶기도 했는데 얼마나 오래 가나 시험해 보고 싶더라고.... 그나저나 박장태 당신도 좀 대단한데?”


  듣고만 있던 박형사는 병무에게 한 마디를 던졌다. 박형사도 반말이었다.


  “뭐가 대단한데?”


  “내가 불러내도 절대로 안 나온 거.... 몇 번 연락하면 다 나왔거든. 다들 섹스에 환장을 했고, 나 정도면 어디 가서 빠지지는 않으니까. 다시 한 번 말하는데, 나랑 만나서 재밌게 놀 생각 없어? 형수 때문에 기분 조ㅈ같잖아.”


  박형사는 침묵으로 병무의 제안을 거절했다.


  “진짜 대단한 사람이네. 경쟁의식 느껴져.... 언제까지 버티는지 시험해 보겠어. 그럼 다음에 또 연락할게....”


  전화가 끊어졌다. 박형사는 잠시 휴대폰을 바라보다 병무에게 메시지를 하나 보냈다.


  - 혹시 포경 수술 했어?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답장이 왔다.


  - 노포 자지 좋아해? 형수가 포경 수술 공짜로 해준다고 하던데 안 한다고 해야겠네.


  박형사는 답을 하지 않았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병무에게서 다시 메시지가 왔다.


  - 형수 등살에 언젠가는 할 것 같으니까 빨리 연락해. 존.나 쑤.셔줄게.


  박형사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 셈이었다. 하지만 옛날처럼 마음이 아프거나 하지는 않았다.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기도 했다. 한 편으로는 마음이 가볍기까지 했다. 이제 더 이상 사수 김형사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지 않고 본연의 업무에 충실할 수 있어서였다. 하지만 박형사는 형수를 완전히 놓지는 않았다. 병무도 마찬가지였다. 퇴근을 하고 집에 머무는 밤시간에는 습관처럼 형수와 병무의 차량에 부착해 둔 추적기를 통해 두 사람의 위치를 확인했다.


  박형사에게 병무로부터 다시 연락이 온 것은 형수에게 쫓겨나고 한 달이 지날 무렵이었다. 메지지의 내용은 간단했다. 만나서 질퍽하게 섹스를 하자는 말이었다. 박형사는 메시지를 읽기만 하고 답장은 하지 않았다. 곧바로 메시지가 또 도착했다. 역시 병무였다. 무시해 버리기에는 심상치 않은 구석이 있는 내용이었다.


  - 오늘이 마지막이야.


  박형사는 짧게 답장을 보냈다.


  - 뭐가?


  병무에게서 메시지 대신 전화가 왔다. 박형사는 응답 버튼을 누르고 휴대폰을 귀에 갖다 댔다. 곧바로 병무의 말이 들렸다.


  “내일 포경 수술하기로 했거든. 하도 졸라서 말야. 수술하면 당분간 섹스도 못하니까 형수 만나기 전에 너 만나서 존.나 박고 싶어서 그래. 너 야외에서 섹스 하는 거 좋아한다며?”


  박형사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다시 병무의 말이 이어졌다.


  “씨.발 딱 내스타일이야. 나도 차에서 하는 거 좋아하거든. 차에서 하다가 불편하면 차문 열고 나가서 존.나 박고....”


  박형사는 병무의 말을 끊었다.


  “형수랑 할 거라면서 나는 왜?”


  “어제 형수가 니 얘기하면서 내 염장을 질렀거든. 내가 조ㅈ은 더 잘 박는데, 애무는 니가 수준급이라나 어쨌다나.... 그래서 니가 얼마나 애무를 잘하는지 느끼면서 배우려고 그래. 너도 나한테 조ㅈ 박히면서 배우면 서로 윈윈이잖아. 서로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섹스. 딱 좋잖아. 우리 둘이 존.나 박 타고 있을 때 형수가 오면 너는 형수 애무하고 나는 조ㅈ 박고.... 형수한테도 나쁘지 않은 일이잖아. 혹시 알아? 그게 우리가 공존하는 길인지....”


  박형사는 병무와 통화를 끝내고 긴 한숨을 쉬었다. 사실 카섹스나 야외 섹스를 좋아하는 것은 박형사가 아니라 형수였다. 형수와의 첫 섹스도 차 안에서였고, 형수와 다시 만나 함께 지낼 때도 종종 형수의 차를 타고 외곽 지역으로 나가 섹스를 즐겼다. 형수는 차량 통행이 뜸한 곳을 기가 막히게 잘 알고 있었다.


  박형사는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병무와의 통화 때문에 머릿속이 복잡했다. 김형사에게 계속 지청구를 들었다. 퇴근을 한 뒤에도 박형사는 병무와의 통화가 마음에 걸렸다. 꼭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았다. 시간이 점점 밤 시간에 가까워질 때는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늦은 밤 시간, 박형사는 휴대폰을 들어 병무의 위치를 확인했다. 병무의 차량은 다섯 번째 사건이 벌어졌던 장소에 계속 머물러 있었다. 언론을 극도로 싫어하는 김형사가 기자들에게 사정사정을 하여 살해 장소는 알려진 적이 없었기에 우연이라고 보기에는 의심스러운 것이 많았다.


  박형사는 늦은 밤에도 잠이 오지 않았다. 자꾸만 휴대폰 화면에 시선이 갔다. 병원에 머물고 있던 형수의 차량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동 방향은 집이 아니라 다른 곳이었다. 박형사는 휴대폰 화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형수의 차량이 점점 병무의 차량 가까이 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어느새 두 개의 점이 하나로 합쳐졌다.

  박형사의 머릿속에는 형수가 옷을 모두 벗고 차에서 내려 병무에게 다가가 엉덩이를 내미는 장면이 스치고 지나갔다. 곧이어 병무도 차에서 내려 커다란 자지를 형수의 항문에 문지르다 한 번에 꼽아 버리는 장면으로 바뀌었다. 박형사는 쌍욕을 하며 휴대폰을 집어 던졌다. 한참을 씩씩거리던 박형사는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자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리고 까무룩 잠이 들었다.


  이른 아침에 울리는 휴대폰 벨소리에 박형사는 잠에서 깨었다. 늘 그렇듯이 이른 아침에 오는 전화는 김형사로부터였다. 그것은 곧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전화를 받자마자 김형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씨.발.... 사마귀야.”


  “어딥니까?”


  “5차 때 거기.”


  박형사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 김형사는 보이지 않았다. 도착 전인 것 같았다. 사건 현장으로 달려오는 내내 불안하던 마음이 현실로 다가오자 박형사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폴리스 라인이 쳐진 안쪽에 주차된 차는 바로 병무의 것이었다. 박형사는 주위의 눈치를 살피며 차량 아래쪽을 더듬어 추적기를 떼어 냈다. 괜한 의심은 피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차량 안에서 발견된 피해자는 차량의 주인 병무였다. 바지와 팬티가 무릎까지 내려진 상태였고, 성기 주변으로 피가 낭자했다. 예전의 사건과 똑같이 성기가 잘려나간 자리에 연두색 종이로 접은 사마귀가 놓여 있었다.


  김형사는 감식반과 함께 현장에 도착했다. 한두 번이 아니었으므로 감식반도 크게 놀라지 않고 예전과 똑같이 차량 곳곳에서 지문을 채취했다. 보나 안 보나 병무와 주변 사람들의 지문이 발견될 터였다.

  제법 오랜 동안 사건이 발생하지 않아 언론의 관심도 사라지고 없었기에 김형사는 기자들이 냄새를 맡지 못하도록 엄격히 통제했다. 그래도 새어나갈 것이 분명하긴 했지만 최대한 그 시간을 늦출 수 있도록 팀원들에게 엄중 경고했다.


  지난 몇 달 동안 해체되었던 전담반이 다시 꾸려졌다. 차량에서 수집한 증거물도 5차 사건 때와 비슷했다. 피해자의 성기를 자른 것으로 추정되는 커터칼이 이번에도 발견되었다. 감식 결과 혈액은 피해자의 것이었고, 불상의 남성 dna도 검출되었다. 곧바로 5차 사건 때 발견된 dna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정확히 일치했다. 검출된 dna와 일치하는 남자가 곧 범인이라는 사실이 더욱 분명해졌다.

  남은 것은 또 험난한 cctv 확인 작업이었다. 5차 사건 때에도 허탕을 쳤으니 이번에도 허탕을 칠 것이라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그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김형사 때문이었다.


  그러나 박형사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사건이 터진 다음날 김형사를 찾아갔다.


  “김형사님.... 이거....”


  박형사는 김형사에게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김형사는 봉투에 적힌 글귀를 보자마자 바로 구겨서 박형사에게 집어 던지며 화를 냈다.


  “너 미쳤어?”


  박형사는 담담한 목소리로 김형사에게 말했다.


  “안 미치려고 이러는 겁니다.”


  “씨.발 겨우 가르쳐 놨더니 제발로 나간다고? 내가 너 보내줄 것 같아?”


  “김형사님이 보내주시든 말든 상관없습니다. 제가 그만 둘 거니까요.”


  “이 판국에 그만 둔다는 얘기가 나와? 한 번만 더 이딴 거 나한테 내밀면 다시는 형사밥 못 먹게 할 거니까 빨리 꺼져.”


  박형사는 주머니에서 다른 봉투 하나를 꺼내 김형사에게 다시 내밀었다. 겉면에 큰 글씨로 세 글자가 적혀 있었다. 사직서였다. 봉투를 받으려 하지 않는 김형사에게 박형사가 웃으면서 말했다.


  “감사합니다. 더 이상 형사밥 못 먹게 해주셔서....”


  스텝이 꼬여 버린 김형사는 박형사가 내민 사직서를 찢어발기고는 박형사를 설득했으나 박형사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


  “야~ 박장태. 그럼 너 뭐 먹고 살 건데?”


  “아무 거나 먹고 살기만 하면 그만 아닙니까?”


  “너 당장 그만 두면 대책은 있어?”


  박형사는 김형사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박형사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눈빛이었다.


  “네. 고향에 내려가서 살 겁니다.”


  “고향이 어딘데?”


  “제주도입니다. 고등학교까지 거기서 나왔습니다. 바닷바람 쐬면서 피비린내 없애려구요. 몸뚱아리 하나 튼실하게 태어났으니 부지런히 움직이기만 하면 굶어죽지는 않을 겁니다.”


  박형사는 사흘 만에 정리를 끝냈다. 짐이라 봐야 옷 몇 벌과 노트북 하나가 전부였다. 월세 보증금은 방이 나가는 대로 차후에 받기로 하고 모든 것을 마무리지었다. 박형사는 커다란 가방 하나만 달랑 들고 제주도로 떠나기 위해 공항으로 향했다.

  비행기에 오르기 전, 박형사는 형수에게 연락을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이내 마음을 접었다. 이렇게 형사 생활을 접은 것도 모두 형수 때문이었으니 형수를 향한 마음도 접는 것이 상책이었다. 김형사에게 말했던 대로 제주도의 바닷바람을 맞으며 그동안의 모든 기억들을 날려 버리고 싶었다.


  장태는 해안가 작은 마을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에 둥지를 틀었다. 당장 머물 곳이 없어 며칠을 기거하던 중에 따로 사는 주인으로부터 관리인 제안을 받고 딱히 할 일도 없었던 장태가 수락하면서부터였다. 주인이 제시한 월급은 보잘 것 없었지만 머물 수 있는 방이 있고, 손님이 그다지 많지 않아서 관리할 것도 그다지 없었으므로 삶의 여유를 찾고자 했던 장태로서는 마다할 일이 아니었다.

  장태에게 주어진 관리 임무는 체크아웃을 하고 떠난 손님들이 머물렀던 방을 청소하고 침구를 정리하는 일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리고 체크인 시작 시간인 오후 3시부터 손님을 맞이해 방을 배정하는 것이 나머지 관리 임무였다. 2층 침대 두 개가 들어간 도미토리 룸 두 개에 2명이 사용할 수 있는 커플룸 두 개, 1인용 객실 하나가 전부인 게스트하우스여서 인원이 가득 찬다고 해도 13명이었다. 주말에도 가득 차기가 힘들었으니 평일은 말할 것도 없었다. 예약과 결제는 주인이 맡아서 했으므로 장태는 신경 쓸 것이 별로 없었다.


  오로지 잠만 자고 가는 것에 목적을 둔 게스트하우스였으나 가끔 휴게실에서 술을 마시고 진상을 부리는 손님들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장태가 큰 기침을 몇 번 하고 눈을 부라리면 조용히 방에 들어가 잠을 잤다. 주인이 장태에게 관리를 제안한 것도 손님으로 있던 장태가 꼬장을 부리는 다른 손님을 큰 덩치와 부리부리한 눈으로 단번에 제압을 했기 때문이었다.

  별로 힘들 것도 없는 관리 임무는 시간도 얼마 들지 않아서 장태에게는 남는 것이 시간이었다. 장태는 운동 겸 산책을 하거나 새로 장만한 자전거를 타고 해안도로를 달리며 바람을 맞는 것이 하루 대부분의 일과였다.


  장태가 제주도에 온 지 두 달 가까이 될 무렵, 객실 청소를 금방 해치우고, 체크인 시간까지 3시간의 여유가 있어서 자전거를 타고 제법 멀리까지 달리고 있을 때였다.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장태는 자전거를 멈춰 세우고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김형사였다. 늘 그랬듯이 장태가 응답 버튼을 누르고 여보세요라는 말을 하기도 전에 김형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 뭐하냐?”


  “자전거 타고 있었습니다. 바닷바람 맞으면서요.”


  “씨.발 좋겠네....”


  “딱히 좋을 건 없고.... 그냥 경치 좋은 것만 바라보고 사니까 그건 좋습니다.”


  “내가 왜 전화 했는지 알아?”


  “설마 아직도 사직서 수리 안 했으니까 다시 오라는 말씀은 아니죠?”


  “짜식아~ 자기 복 차고 나간 놈한테 내가 그딴 말을 내가 왜 하냐?”


  “제가 무슨 복이 있었다고....”


  “잡았어.”


  “네?”


  “씨.발 사마귀 잡았다고.”


  “잘 됐네요.”


  “씨.발 반응이 그게 뭐야.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누구보다 잘 아는 놈이 잘 됐다가 끝이야? 씨.발 너도 그냥 두 달만 더 버티고 있었으면 2계급 특진인데.... 씨.발 약 오르지? 그만 둔 거 존.나 후회되지?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까....”


  “이미 끝난 일인 걸요. 김형사님 특진 축하드립니다. 이제 현장에서 일하시지 말고 편하게 보고 받으면서 사세요.”


  “나는 진짜 너를 이해할 수가 없어....”


  장태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김형사가 말을 이었다.


  “근데 넌 범인이 누군지 궁금하지도 않아? 우리가 그렇게 잡고 싶어 했던 놈인데.”


  “누군데요?”


  “의사야. 존.나 착하게 생긴 외과 의사. 너도 봤지만 칼질이 남달랐잖아. 딱이야 딱.”


  “어떻게 잡았어요?”


  “이제 너도 좀 궁금해지지? cctv 존.나 팠어. 의심 가는 차량이 있어서 조사하다가 딱 걸린 거야. 머리카락 뽑아서 dna 대조. 99.9999....% 일치. 끝. 내일 서장이 생중계로 브리핑 할 거니까 너도 봐. 나도 TV에 나올 거니까. TV 시청 인증샷 찍어서 나한테 보내.”


  “네. 그렇게 할 게요. 다시 한 번 특진 축하드립니다.”


  “그래 조만간 휴가 받으면 당장 제주도로 날아갈 거니까 손님 맞을 준비 단단히 해둬.”


  “네.”


  장태는 전화를 끊고 한동안 바다를 바라봤다. 무표정하던 장태의 얼굴에 살짝 입꼬리가 올라가면서 미소가 지어졌다. 장태는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한참을 내려다보고는 바다를 향해 힘껏 던졌다. 그리고 다시 자전거 페달에 발을 올리고 해안도로를 달렸다.


  장태가 잠시 머물렀던 곳에 연두색 종이로 접은 사마귀 하나가 바람에 날리다 검은 현무암 사이로 사라져 버렸다.




-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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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pa…
  • 작성일
헑 마지막 사마귀가 왜 장태에게서?? 궁금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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