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 -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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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초 구상
발단은
‘마사지하는 동안 마사지사와 손님의 동상이몽’을 풀어보고
싶다는 거였습니다.
둘 다 상대방의 의중을 어느 정도는 짐작하겠지만서도, 더 깊이 파고들면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텐데, 하는?
그 다음으로는 ‘마사지사도 분명 마사지사 이전에 개인으로서 삶이 있을 거고 연애도 할 텐데, 어떻게 하게 될까?
애인이 될 사람한테는 본인이 하는 일을 어떻게 얘기하고, 또 애인은 그걸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까?’ 하는 질문이 있었구요.
그래서 마사지 경험이 없는 남자가 첫 마사지에 그 마사지사의 기술에 홀딱 넘어가서(?) 여러 차례 더 부르다가,
작중에서 은석이 말한 대로 4회차 쯤에 ‘애인 대행’으로 넘어가고, 끝내는 사귀게 되는 이야기… 로 풀려고 했습니다, 원래는.
그런데… 두 가지 문제 때문에 그렇게 풀긴 어렵겠더라구요.
A.
회차를 거듭할수록 새로운 마사지 기술이 출현하고 대화 내용도 추가되므로 디테일에 차이가
있긴 하겠지만,
어쨌거나 큰 틀에서 ‘마사지’의 반복이라서 독자들이 금방 질릴 것
B.
2화 끝에 적은 대로, ‘마사지’라는 소재 자체가 분명히 존재하는 현실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법적으로는 성매매에 해당될 수 있는 것이어서…
일회성이면 모를까 반복해서 나오면 글이 잘릴 것 같다.
그래서 마사지는 처음 한 번만 하고, 그 다음부터는
‘반 동거’하면서
마음을 키워 나가는 스토리로 방향을 바꿨습니다.
문제는 1화를 이미 올린 상태에서 마음을 이렇게 바꿔 먹었다는 거… ㅋㅋ
재영이가 밖에서 은석이 얼굴 이미 다 봐놓고 뒤늦게 경한이 얼굴이랑 비슷하다는 걸 알아채는 게 살짝 이상하다 싶으셨을 텐데 이런 이유입니다… 급 노선변경하는 바람에.
전 애인 같은 거 원래는 없었어요. 그냥 재영이랑 은석이랑 정말 1:1로 좋아지는 거였음…
급조한 캐릭터인 경한이한테는 미안하지만… ㅎㅎ ㅠ
암튼, 마사지 씬으로 유입된 독자 분들이 이후 진행되는 로맨스 스토리에 썰물처럼 빠져나가서 (예상은 했지만) 마음이 아프더라구요 ㅠㅋㅋ
그치만… 대놓고 야한
건 저보다 잘 쓰시는 분들이 많으니까,
저는 심리묘사 위주로 로맨스랑 19금 밸런스 잘 맞춰서 틈새시장 노려보자는 마음으로 계속
썼네요.
2. 갑자기 분위기 CPA?
그런데 이렇게 노선변경하자니 은석이 재영이네 집으로 출퇴근하는 것에 ‘개연성’을 부여하는 게 제일 어렵더라구요.
아마 전체 스토리 중에 이 부분을 제일 고민 많이 한 듯.
여차저차 해서 ‘비싼 스터디카페 돈 안 내고 공부할 수 있어서 → 은석이는 수험생!’으로 캐릭터 설정.
그러면 하고 많은 수험생 중에 왜 하필 회계사냐?
처음엔
‘체교과 출신-임용고시’ 생각했다가, ‘체교과-마사지사’ 설정은
너무 닳고 닳아서 기각.
(이미 ‘만나기 직전에 교통사고’라든가, 헬스장 샤워장에서의 씬이라든가 클리셰가 너무 많아서
이것까지 클리셰를 쓸 수는 없었던… ㅋㅋ)
그
다음으로 생각한 건 공무원이었는데 (늦은 나이에 준비해도 좀 이해되는 직종)
또 생각해 보니 단순히 ‘스터디카페 돈 굳어서’만이
아니라 ‘재영이가 퇴근하고 공부 봐줘서’라는 인센티브가 더
있어야겠더라구요.
은석의 과거 사연상 안 지 얼마 안 된 사람 집에 드나드는 걸 그렇게 쉽게 결정할 수는 없으니, 그 정도 추가 인센티브는 필요했던.
그러자니 공무원은 막상 시험과목이랑 실제 직무랑 하등 상관이 없잖아요?
그러다
보니… 실무와 시험이 괴리가 물론 있지만 그래도 다른 수험보다는 적은,
전문직종.
그 중에 대표 격인 회계사를 선택하게 됐습니다.
저도 회계사 세계를 잘 아는 건 아니어서… 고증이 허술했다면 (혹 있었는지 모를) 현직자 독자 분께는 죄송합니다.. ㅋㅋ
3. 로맨스-19금 간 밸런스
사실, “을이 갑의 집으로 출퇴근하고 갑은 을의 동의 하에 그걸 카메라로 볼 수 있음”이라는 설정은
야하게 풀려면 정말 야하게 풀 수 있는 설정이지요… 하우스 섭/돔이나, ‘알고 보니 감금 SM’이나, 관음증이나…
사실
처음에 그렇게 풀까 싶기도 했는데, 그러면 너무 개연성도 떨어지고,
무엇보다 그새 재영이랑 은석한테 정이 들어서인지 그런 식으로 캐릭터를 소모하고 싶지 않더라고요.
앞서
말한 것처럼 다른 작가 분들처럼 야한 걸 잘 풀 자신도 없고 ㅋㅋㅋ
마사지는 그래도 ‘대충 이렇지 않을까’ 상상이라도
하겠는데
섭/돔, 감금,
관음증 이런 거는 너무 생각도 경험도 안 해본 세계라 글맛이 안 날 것 같았던.
그래서 그냥 최대한 현실에 있을 법한 얘기로, ‘동거에 대한 로망’을 풀려고 했습니다.
대신에
또 판타지를 자극해주는 ‘19금 씬’이 너무 없으면 기왕
앞서 몇 화를 소모해 가며 개연성을 부여해서 이런 ‘절호의’ 상황을
마련한 게 아까우니까,
그래서 재영과 은석이 각각 서로가 없는 시간대에 서로를 상상하며 ㄸ치는 장면을 넣었네요.
(그것도 같은 장소에서 같은 자세로… ㅎ)
사실 그 ㄸ치는 장면도… 뺄까 했었습니다 서로 인격적인 것 이전에 단순히 ‘몸이 좋아서’ 끌리는 것처럼 묘사될까 봐.
그렇지만
앞에서 서비스씬이 많이 없었기 때문에 (마사지도 감질나게 끝냈으니…)
고민 끝에 넣었고,
대신 (서비스씬을 고대하던 독자 분들은 답답했겠지만) 앞선
나날들에 둘 사이에
일상적으로 꽁냥대는 모습을 최대한 묘사하는 선에서 정리했습니다.
로맨스랑 19금 사이에서 밸런스 맞추는 게 참 어렵더라구요…
4. 너무 재영이 중심으로 전개된 거 아닌가?
후반부는 재영과 은석의 시선 교차가 점차 의미가 없어지지만, 초반부에는 그게 유의미했습니다.
그런데 재영의 시선을 먼저 쓰고 은석의 시선은 재영의 시점에서 알 수 없었던 부분을 보충하는 식으로 쓰다 보니,
아무래도 비중을 동일하게 가져가려던 최초의 바람과 달리 재영의 시선이 더 깊이 있게 표현이 된 것 같아요.
게다가 후반부에선 은석보다 재영의 사연이 훨씬 구체적으로 풀렸고, ‘갈등 해소-성장’ 서사도
가져갔죠.
옛 애인 생각에 (비록 무의식에 묻어뒀지만) 6년간
아무도 안 만나다 그 마음을 씻어내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또 그 사람을 건강하게 서포트해줄 수 있는 어른으로 성장한 재영.
사실 원래는, 은석이
본인은 쿨한 척했지만 마사지샵에서의 일이 알고 보니 트라우마였고
그걸 무의식에서 해결하는 방식이 마사지였다… 라는 서사를 부여할까 했었습니다.
은석이가 재영이의 트라우마를 이겨내게 도와준 것처럼,
재영이도 은석이에게 ‘네 잘못이 아니다’ 등등
따뜻한 말로 그걸 이겨내게 해주면 딱 좋겠다.
범죄심리학에서 말하기를, 성적으로
학대받거나 트라우마가 있는 피해자가
나중에 오히려 성 관련 업종에 종사하는 일이 실제로 많이 있다고 합니다.
제3자 입장에서는 선뜻 이해가 안 되겠지만, 가해자에게
직접 보복할 수 없는 답답함에 대응하여,
본인이 통제할 수 있는 대상인 ‘자기 자신’의
신체를 해하거나
소위 ‘몸을 함부로 굴리는’ 자기 파멸적인 방법으로
정신적 충격을 완화한다는 해석이 있고,
깊이 들어가면 케이스에 따라 그 이유는 더 다양하다고.
(그렇기 때문에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논하며
손가락질하는 건 절대 금물.
출처: 팟캐스트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영화 프로파일’)
그런데… 그건 정말
무거운 주제라서, 제가 그 쪽 전문가도 아니고 들어서 아는 분야인데
함부로 풀면 읽는 누군가에게 혹여나 상처가 될 수도 있겠다 싶어서 그 부분은 뺐습니다.
마사지샵 사연을 일부만 묘사하고 나머지는 나레이션으로 처리한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은석이 아무 일 아닌 척 그냥 지나가서 그렇지 얼마든지 성추행이고 성희롱으로 보일 수 있는 일을,
독자들의 성적 판타지 실현을 위해 상세히 묘사한다? 캐릭터에 애정이 생겨 버려서 그렇게는
못하겠더라구요.
취재를 좀 해서 소재를 묵혀 뒀다가 나중에 제대로 풀어볼까? 싶다가도, 거기까진 체력이 안 될 것 같아서
그냥 제 역량 부족으로 인정하고 재영이 중심으로 풀게 됐네요.
5. 글을 너무 빨리 다 풀어버림…
사실 최대한 많은 독자들이 보시게 하려면 주간연재 하듯이 어느 정도 시간차를 두고 조금씩 풀어야 하는데…
성격상 또 그게 안 되더라구요. 글쓰기 이전에 평소에도 머릿속에 있는 건 일단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 ㅋㅋ
거기다 8월 중순부터 생업이 바빠질 예정이라… 머릿속을 차지하고 있는 이걸 빨리 다 풀고 일에 집중해야겠다 싶어서 조금 무리해서 달렸습니다.
출퇴근
지하철에서 문장 떠올려 놨다가 퇴근하면 바로 옮겨적고,
쉬는 날이나 주말에 아침부터 내리 앉아서 글 쓰고 ㅎㅎ
다음
작품은 시나리오랑 설정을 얼추 짜놓긴 했는데 분량이 ‘그 여름’ 보다는
훨씬 길 것이라서 일단 보류…
다음 주부터 한동안 생업이 바쁠 예정이라 차기작으로 돌아오려면 오래 걸리겠다 싶습니다
(찍어내듯이 급하게 글 쓴 이유+막판 전개가 다소 급전개가 된 것도 그런 이유…
급전개에 읭? 싶으셨다면 진도 빨리 빼고 마무리 지으려던 제 불찰입니다 ㅠㅜ)
급하게
마무리 지으려다 보니 여러가지로 아쉬움이 남는데
부족한 글 재밌게 읽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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