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산 도깨비의 장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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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빠르고 정신없이 변해가는 도시와는 한참 떨어진 한 시골 마을. 옛스러운 구조의 집들이 모여있고, 논밭이 펼쳐진 이 곳. 평화로운 낮의 풍경과는 달리, 밤만 되면 여름 밤의 끈적함에도 불구하고 괜시리 서늘하고 으슥한 분위기가 들기도 한다.


여느 때처럼 암흑같은 어둠이 찾아온 밤. 산으로 둘러쌓여진 이 마을 한 가운데로 은은한 푸른 달빛을 따라 내려오니 그래도 사람 사는 곳이라고 주장하는 듯이 쨍하게 환한 불빛이 켜진 전등이 보인다. 


마당에 모여 시끌벅적 술을 마시고 있는 사람들. 막대기로 고정해서 세워둔 전등 주위로는 이런 저런 잡벌레들이 날아다니고 있다.


'그래서 나는 해 지면 뒷산 쪽은 쳐다도 안봐'


마당에 간이 테이블을 깔고 편히 앉아 얼굴 시뻘개지도록 음식에 소주를 마시고 있는 중년 남자 셋. 그 남자들 옆으로 한 남자는 술에 취한 듯 잠들어 있다. 여자 셋은 부엌에 자기들만의 공간을 만들기라도 했는지 부엌일을 하며 숨어들어 수다를 떨고 있기 바쁘고, 나이가 지긋하신 한 할머니는 마루 모퉁이에 앉아 그들을 지켜보고 있다.


'아니, 장씨 형님. 그게 말이 됩니까? 참 장가 못든 핑계도 그럴싸 하시네 허허'


세 남자 중 가장 막내지만 제일 떡대가 좋은 남자가 소주잔을 들고 웃음을 짓는다. 이 남자의 이름은 김경태. 48세, 키가 180cm가 훌쩍 넘고 몸무게도 110키로가 넘는 마을 제일 가는 덩치의 사내다. 적은 나이는 절대 아니지만 그래도 마을 어른 중에서는 가장 어린 편. 힘도 좋아서 이런 저런 마을의 궂은 일을 도맡는다. 


모두 시골에서 농삿일을 하고 사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하나 같이 힘은 좋아보인다. 무더운 여름 밤의 공기에 가랑이까지 걷어 올린 반바지에 드러나는 경태의 굵직한 두 허벅지. 땀에 젖은 티셔츠는 어깨와 가슴에 떡 벌어져있고, 경태는 확실히 키가 커서 그런지 뱃살은 두툼해도 훤칠한 느낌을 뿜고 있다. 


꿀꺽-


이미 얼굴이 붉어졌지만 소주를 한 잔 더 들이키는 경태. 하루 일과를 마치고 이 시골에서 긴 밤을 보내야 하는 이들에게는 이렇게 밤마다 모여서 술먹고 수다떠는 게 재미란다.


'웃기냐?'


'도깨비면 요 머리에 뿔 달리고 외눈박이에 도깨비 방망이 들고, 그러고 있답니까? 푸핫'


경태는 큰 형님 장씨가 허풍이 있다는 듯 술잔을 내려놓고는 장씨 형님의 팔뚝을 툭 치며 놀린다.


'어이씨, 진짜라니까. 그 날 이후로 내가 여자 복이 뚝 끊겼다니까'


'에이 형님. 장가 못간게 대수에요? 괜히 그러시네. 덕분에 어머니 모시고 살고 효자 노릇 잘하고 계시구만. 형님 누님들은 다 서울로 올라갔잖아요'


'그건 그거고. 내가 용기내서 니한테는 처음 말하는 거구만. 왜 내 말을 안믿는거냐? 니도 조심혀. 뒷산은 조심허라고.'


그리고 계속 자신이 30년 전 뒷산에서 도깨비를 본 적이 있다고 말하는 장씨 형님, 이 마을의 큰 형님 장동규의 나이는 62세. 경태보다는 키가 한참 작은 168cm 80kg 정도 되어 보이는 토실토실한 아저씨다.


쳐져있는 순한 눈꼬리 때문에 더 인상이 좋아보이기도 하지만 걸걸한 목소리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있다. 오히려 어릴 때의 인상보다 나이가 들수록 더 얼굴이 동안이 되고 좋아지는 것 같다. 


그렇게 동규는 메리야스만 입고선 땀에 젖은 채 살짝 쳐진 가슴과 뱃살을 툭 내민채로 무더운 밤 술기운에 붉어진 속살을 답답하다고 벅벅 긁어대며 경태를 노려본다. 경태는 갑자기 엉뚱한 도깨비 타령을 하는 장씨 형님을 놀리는 데 재미가 들리기라도 한듯 계속 짓궂은 목소리를 뱉는다.


'믿을 만한 말씀을 하셔야 믿죠. 도깨비가 어딨어'


'이 자식이 끝까지 안믿네. 아, 어무니! 나 도깨비 봤잖어요'


결국 경태가 끝까지 믿지 않는 눈치이자, 저만치에 앉아 계시던 노모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동규. 노모는 이제는 60대가 된 노총각 아들에게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혼잣말을 한다.


'그걸.. 뭐 자랑이라고.. 휴우.. 쯧쯧쯧'


'그래서 지금, 이 형님이 저어~기 뒷 산에서 30년 전에 도깨비를 봤고. 그래서 뭐 홀려가지고. 여자들이 다 도망가고. 그래서 형님도 여자들 꽁무니 쫓아다니기도 재미없어지고. 그래서 그러다가 이렇게 세월이 흘렀다 이거지? 에이. 씨.팔 매일 똑같은 레파토리. 난 이 얘기 한참 들어서 이제 재미없어 으ㅎㅎㅎㅎㅎ 다방.년들한테 먹힐 소리를 왜 자꾸 하시는겨'


그 때, 가만히 안주를 주워먹으며 경태와 장씨 아저씨의 유치한 말다툼을 듣고 있던 용이가 그제서야 끼어들며 더 걸걸한 목소리로 얄미운 소리를 뱉는다. 


그러다가 아내가 들으면 좋을 거 하나 없는 동규 형님과 시내에 나갔다가 다방에 갔던 사실을 홧김에 불어버렸나 싶어 급히 눈을 이리저리 흘기기도 한다.


결국 용이까지 나무라자 동규는 제 편 하나 없다며 억울한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입술을 깨물고. 경태는 장씨 형님이 술을 많이 잡쉈다는 듯 담배를 하나 물려드린다.


'담배나 한대 피시죠'


'예이씨 잡것들이'


자기보다 한참 어려서 업어 키우고 놀아준 동네 꼬맹이들이 이제 다 큰 자녀들을 둔 어엿한 중년이 되니 혼자 장가를 못든 자신의 처지에 괜한 피해의식이 생길 법도 하다. 경태는 그런 장씨 형님의 마음을 이해는 하지만 도깨비니 뭐니 여름 밤에 헛소리는 이제 많이 했으니 그만 하고 담배나 피란다.


치익-


'어이! 여보. 이제 이거 치우고 수박이라도 내와. 내가 아까 사왔잖어'


'참나. 아저씨는 손이 없어요 발이 없어? 어휴 어휴..'


그 때, 플라스틱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대며 부엌 쪽으로 바라보고 큰 목소리를 내는 용이. 용이의 나이는 55이고 동규와 비슷한 작은 키의 체형이지만 얼굴이고 몸매고 꼭 돌쇠같은 딴딴한 외형이다. 짧은 팔다리는 농촌 생활에 근육이 차올랐고 전체적으로 토실토실 살이 올라 힘 좋아보이는 전형적인 시골 아저씨.


'여편네가 따박따박 따지기는 이씨. 서방님이 내오라면 내오는거지. 괜히 이게 바깥이라고 앙칼지게 튕기고 있어잉'


'크하하'


'어휴 저 꼴통 쯧쯧쯧...'


'뭐이씨? 넌 이따가 밤에 집에서 보자 푸핫 내가 혼꾸녕을 내줄테니까'


시골이다보니 여전히 가부장적인 듯한 마을 분위기. 허나 여자들도 이제는 시대도 시대인지라 가만히 당하고만 있는 분위기는 아니다. 흥분해서 뭐라뭐라 빽빽 소리를 지르는 남편을 뒤로 하고 부엌으로 들어오는 용이의 아내 숙이. 밖에서는 용이의 거침없는 발언에 남자들이 웃음이 터진 모양이다. 숙이도 부엌에 들어와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가도 자신을 돌아보는 같은 처지의 언니들을 보니 피식 헛웃음이 나서 작은 목소리를 뱉는다.


'서방님 혼꾸녕을 좀 내보세요 제발'


'푸하하핫. 그게 뭔 소리야 숙이는'


'언니들. 나야 말로 뭔 도깨비에 홀렸는지 저런 놈한테 시집을 들어서 평생 술 안주나 만들어주고 있어야 되는지 몰라. 여자로 태어난 게 죄지. 자.지 달린 게 뭐라고'


'저 놈의 자.지들이 진짜 자.지라도 튼실하면 내가 싹 입다물고 섬기지'


'깔깔깔. 그러니까. 어휴 요놈은 참 크고 좋네 짭.'


그래도 남편이 내오라 커다란 수박 한 통을 자르려는 듯 식탁에 올리고는 입맛을 짭 다시는 숙이. 그런 숙이의 모습에 숙이와 대화를 하던 경태의 아내가 말을 잇는다.


'푸핫. 숙이 웃기다니까. 용이 아저씨는 별 볼 거 없나봐?'


'뭐가 없죠. 저 봐요. 매일 술 처먹고 들어와서 코골고 자는 게 일상인데 뭐가 있겠어요? 그래도 언니네 경태 아저씨는 마을 제일가는 힘꾼인데 사정 좀 낫지 않나'


'덩치가 산만하면 더~ 없어 보이는 거 모르지? 말도 말어. 요즘은 아예 밤에 힘도 못써 어이고 내 팔자야.'


'푸하하핫. 거기도 그래요? 이 마을에 진짜 무슨 악귀가 꼈나 하나같이 요즘 왜들 그런담?'


두 여자가 자기 남편 자.지 흉을 보듯 한마디씩 거들고 있는 대화 수위도 남자들에 절대 밀리지 않는다. 평생 가부장적인 남자들에게 당하고 산 스트레스를 이렇게라도 푸는 듯.


숙이와 경태 아내의 대화를 들으며 같이 웃어대던 젖이 이만치나 쳐진 한 아줌마도 설거지를 하다가는 음식물쓰레기를 정리하며 말한다.


'푸하핫 용이 아저씨가 그래도 수박은 튼실한 거 잘사왔네. 나도 비실~비실한 것들은 아주 지겨워가지고 끅끅끅'


'성주네도?'


'성주 아빠요? 말을 마세요. 용이 아저씨랑 경태 아저씨는 힘이라도 좋지 우리 아저씨는 딱 봐도 키만 장승같이 커서 매가리 없잖아. 저 또 밖에서 잠들었지?'


'피곤하겠지. 오늘 시내 나갔다 오셨잖아.'


'울 아저씨만 갔어? 용이 아저씨도 갔다 왔잖아. 아저씨는 수박도 사오고 하는데. 우리 아저씨는 영'


'우리가 남자 복은 없나보다. 오 이거 봐 무척 달겠다 이거. 딴딴~하고 커다란 게 맛도 좋고 제일이지'


쫘악 쩌억- 탁!


그렇게 숙이가 의미심장한 단어들을 뱉으며 힘을 줘서 누르자 쩌억 하며 벌어지는 수박. 이내 새빨갛게 차오른 속이 드러나고, 용이의 아내 숙이는 그래도 수박은 잘 골라온 듯한 남편의 선택이 나쁘진 않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술을 내민다. 


그 속을 칼로 도려내서 시뻘건 수박을 언니들에게 건네는 숙이. 그렇게 신세 한탄을 하면서도 웃음이 섞여있는 여자들의 대화가 이어진다.


'ㅋㅋㅋ수박이나 잡수시라고'


'오우 달다 달어.'


숙이는 금방 수박을 썰어서 그릇에 이쁘게 담아가지곤 부엌을 나가려 한다. 또 미우나 고우나 정 든 남편인데, 수박 잡수겠다 하면 잘라줘야지. 그렇게 혼자 독백하듯이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부엌 문 앞에 뒤돌아 서선 언니들을 바라보며 가냘픈 목소리로 말을 잇는 숙이.


'우리 서방님도 옛날엔 달디 달았는데 그 시절이 그립네요 서방ㄴ..'


'어이! 여보! 수바악!!'


'에이.씨 저 꼴통.새끼.. 잘라가지고 가잖아 가!!'


그러다가 부엌 밖에서 들려오는 술에 거나하게 취한 남편의 목소리에 혼자만의 상황극을 끝내며 인상을 찡그리는 숙이. 숙이는 그렇게 재촉하는 남편에게 수박을 내주러 나가고, 경태 아내는 그런 숙이가 그저 웃기다가 키득대면서 혼잣말을 잇는다.


'진짜 슬슬 이제 남자들이 다 남자구실 못하는 거야'


'언니 우리도 아저씨들도 늙어가지고 그래. 남자 늙으면 그냥 애야. 하하. 우리도 이제 집 들어가자고. 울 남편은 저기서 자다가 입돌아가겠다'

























또르륵-


'어으으. 지겹습니다. 그만하셔유 형님'


술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동규 형님의 도깨비 타령이 심해진다. 평소 같았으면 그만할 때가 됐는데, 동규 형님은 뭐가 그렇게 억울한지 경태가 믿어줄 때까지 계속 도깨비 타령을 할 생각인가보다. 머리가 지긋지긋 아프다고 술 취한 몸이 점점 풀어지며 자신의 잔에 소주를 따르는 경태. 경태가 동규를 노려보고, 용이는 진작 아내가 내온 수박을 다먹고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반쯤 누워서 배를 내밀고 수박 껍질을 갉아먹고 있다가 말을 잇는다.


'근데 이 형님 말하는 게 매번 달라지지 않는 건 있지. 일관되면 또 아닌 말은 아닌 거고'


'처음에는 요상하게 생긴 돌덩어리가 있어서 구경을 하고 있는데, 그게 갑자기 커다란 도깨비로 변하더니 아예 내 몸이 안 움직이더라니까.'


'어떻게 생겼는데?'


'뭐가 돌덩어리가? 사람 자.지 처럼 생겼다고. 남근석.'


'우리 뒷산에 남근석이 어딨습니까 형님'


'그러니까 기묘한거지 이 자식아'


'도깨비는?'


'걔도 그냥 커다래. 사람같이. 얘 경태같어'


용이가 관심 없는 척 딴짓하고 있다가 자신의 편을 들어주는 듯 말하자 눈동자가 밝아져서는 다시 자리를 잡고 앉아 대화를 잇는 동규. 경태는 이 두 형님이 대체 왜 이럴까 싶은 듯한 표정으로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있다.


'알겠씁니다. 예. 내가 도깨비다. 아니 도깨비가 저기 뒷산에 있다 오케이!'


'드디어?'


'예 드디어. 도깨비 무섭네. 어우 사람 잡겠네 진짜 크으'


드르륵-


그리고 이제는 지긋하고 피곤하다며 집에 들어가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는 경태. 비꼬며 말하는 것 같은데 동규는 경태가 드디어 인정을 했다고 속이 후련해진듯 남은 소주를 마시고, 용이는 괜히 경태의 기분을 살피려는 듯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경태를 올려다 보고 있다.


'그럼 전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적당히 잡수시고.'


'그래 내일을 위해 이제 자야지'


'형님 이거 냅두고 일단 들어가 자세유. 내일 내가 와서 치울테니까'


'그르냐? 알겠다'


세 남자가 소주를 몇병을 깐 건지 모르겠다. 몇시간 내내 별 주제도 없는 이야기만 하다가 술자리가 마무리 된다. 그래도 이렇게 잡소리라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게 재밌단다. 그렇게 일어서니 더 덩치가 좋은 경태는 살짝 비틀대며 장씨 형님 동규의 마당을 나오고, 용이도 뒤따라서 일어나며 대충 앉은 자리를 정리한다.


'나는 수박을 많이 먹었더니 방광이 터질 것 같어'


'저기 오줌 싸고 들어가던지'


'아녀. 집 가서 싸면 돼. 예 형님 나 갑니다'


그렇게 동규도 갑자기 술 자리가 정리되니 술기운이 올라오는 듯 방으로 들어가려 한다. 헌데 들어가다가 갑자기 뒤를 돌아 용이를 바라보고 말을 잇는 동규.


'용이 집가기 귀찮으면 내 방에서 자지'


'에이 조금 걸어내려가면 집인데 왜 요기서 자'


'아니 술 먹고 이 밤중에 돌아다니면 도깨비 본다 임마'


'도깨비 오라해. 씨름 한 판 하지 뭐 그럼'


'너 도깨비 보면.. 아, 아니다.'


용이도 동규의 도깨비 타령을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나 보다. 도깨비든 뭐든 다 덤비라는 듯이 주먹을 불끈 쥐는 용이. 동규는 그런 용이를 바라보며 어딘가 아쉬움이 묻어나는 듯한 표정을 짓다 무슨 말을 하려던 걸 멈추고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그렇게 홀로 남은 용이는 뭐 놓고 가는 것은 없나 돌아보듯 마당을 한번 둘러보고는 동규네 마당을 나온다.








여자들은 이미 한참 전에 집으로 돌아 갔고, 먼저 마당을 나선 경태는 어딜 갔는지 보이질 않는다. 시간도 벌써 밤 12시가 넘은 시간.


용이는 가로등도 몇 없어서 어두컴컴한 시골 길을 혼자 아무 생각 없이 비틀비틀 걷고 있다. 집까지 오줌을 참고 걸어가려 했는데 결국 오줌보가 터질 것 같은지 어디 노상방뇨를 하려는 듯 주변을 둘러보는 용이.


그러다가 뒷산 아래로 수풀이 무성하게 자란 구석에 대충 자리를 잡고 바지를 내리는 용이. 바지 안에 움츠러들어있던 꼬추를 꺼내 몇번 문질러주자 이내 콸콸콸 소리를 내며 오줌이 터져나오고, 용이는 참았던 오줌이 뿜어져나오자 옅은 호흡을 뱉으며 고개를 들어올린다.


콸콸콸-


'으아...'


시원하다. 이제서야 좀 정신이 든다 싶어 술에 취해 반쯤 뜨고 있던 눈을 꿈뻑이는 용이. 평생을 살아온 마을이라 가로등 불빛 없어도 집까지 걸어가는 건 문제도 아닌데, 술 취해 시야가 흐릿흐릿하긴 하다.

 

콸콸콸-


그렇게 계속해서 오줌을 싸며 눈을 꿈뻑대고 있는 용이. 바지 위로 토실토실한 엉덩이엔 힘이 바짝 들어간 게 보인다. 


그 때, 갑자기 흐릿한 시야로 수풀 속을 빤히 응시하던 용이에게 보이기 시작하는 흐릿한 파란 불빛. 저게 뭐지 싶어 용이는 두 눈썹을 찡그린다.


'으음?'


파란 불빛을 마주치자 몹시나 낯선 느낌이 든다. 동시에 오줌발이 끊기고, 용이는 꼬추를 탈탈 탈고는 바지를 다시 올려입는다. 그리고는 자신도 모르게 수풀 속 낯선 파란 불빛을 향해 인상을 쓴 채 더 고개를 내밀어보는 용이.


화아악!


'어억!'


그러자 순간 불길이 커져올라서 사람 기겁을 하게 만들고는 다시 동그란 모양으로 뭉쳐져 이리저리 흔들리는 파란 불빛. 용이는 순간 두 눈이 동그래져서 팔을 들어 얼굴을 막다가는 다시 입이 벌어지며 수풀 속을 응시한다.


'도깨비불'


그리고 그제서야 저게 바로 소문으로만 듣던 도깨비불이다 하는 생각이 드는 용이. 진짜 동규 형님 말대로 뒷산에 도깨비가 있었던 건가. 술이 다 깨고 등골이 오싹해지는 용이. 허나 이상하게 뒤돌아서 달려 도망갈 생각은 들질 않고, 바짝 긴장한 몸이 굳어가며 주먹만 불끈 쥐어진다.


그 때, 갑자기 용이의 귀에 바짝 들이댄 듯한 거리에서 크게 들려오는 낯선 남자의 목소리.


'용이.'


'으허어?'


용이는 깜짝 놀라 주변을 돌아본다. 허나 이 시간 어두운 마을에 누가 있을 리가 없다. 다시 수풀 속 도깨비불을 빤히 바라보는 용이. 무더운 여름 밤의 공기에 용이의 이마에 식은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용이.'


'ㅇ..예?'


'용이.'


'ㅇ..왜 불러'


'이리 와봐.'


용이를 세번이나 부르고는 그제서야 용이가 자신도 모르게 대답을 하자 자신에게 가까이 와보라는 듯한 낯선 남자의 큰 목소리가 이어진다. 이 정도 목청이면 자던 사람들 다 깨어날 것만 같이 큰 목청이다. 그리고 이 마을 사람 목소리라면 다 알텐데, 태어나서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목소리다.


'어어..어...?'


'이리 와봐.'


'이리 와봐.'


결국 용이는 놀란 얼굴을 한 채 무언가에 홀린 듯 수풀 속으로 발을 내딛기 시작한다. 작은 키에 돌쇠같은 몸매로 주먹을 바짝 쥐고 있는 용이. 허나 용이가 다가 갈수록 저만치 수풀 속에 보이는 파란 도깨비불이 점점 선명해지는 듯 하면서도 멀어지기 시작한다. 


'가까이 와봐.'


부스럭- 부스럭-


'허어.. 허어어..'


그렇게 용이는 파란 도깨비불을 향해 걸어가며 뒷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대체 저 파란 불의 정체가 뭔질 모르겠다. 용이는 그저 무언가에 홀린 듯 눈을 뜨고는 계속해서 수풀을 헤치고 걸어 올라간다. 그러다가 용이의 앞 저만치에 보이기 시작하는 요상한 돌 덩어리. 그렇게 용이는 온 몸은 땀에 젖어 들어간다.






















쿵쿵쿵-


'저기요 언니... 경태 아저씨.. 계세요?'


쿵쿵쿵-


'으으 뭐야?'


'응? 숙이 목소린데?



아침 동이 트지도 않은 새벽 다섯시. 자다가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에서 깨는 경태와 아내. 경태는 잠을 얼마 자지도 못해 술 기운이 머리를 찌르는지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는 거구의 몸을 일으키고, 아내도 대충 머리를 매만지고는 잠에 취한 채 문을 열어주러 방을 나선다.


끼익-


'왜? 숙이? 이 시간에'


'죄송해요. 주무시고 계셨죠. 경태 아저씨 안에 있어요?'


'왜요 그럼 이 시간에 집에서 자고 있었지'


경태도 뒤늦게 나오며 자신을 찾는 숙이에게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어딘가 놀란 듯 불안해보이는 숙이의 표정에 무슨 일이 일어났나 싶은 경태다.


'우리 아저씨가 아직 집에 안들어와서요'


'응?'


'용이 형님이? 아니, 나는 먼저 일어나고. 그 다음에 용이 형님도 일어났는데'


'저도 자다 깼는데, 아직 안들어왔길래 저번처럼 어디 길바닥에서 잠든 건가 싶어서 이곳 저곳 돌아다녀봐도 보이질 않아요'


'아니 이 형님은 또 어디서 나자빠진 거야'


오늘따라 형님들이 아주 말썽이다. 경태는 급히 신발을 신고 집을 나서고, 경태의 아내는 놀란 숙이를 달래주듯 부축하고는 그런 남편의 뒤를 쫓는다.


큰 형님은 하루죙일 도깨비 타령을 하지 않나, 용이 형님은 술과 음식을 그렇게 먹어대더니 이 시간까지 집에 안들어가고 어디 나자빠져 있는 건지. 그렇게 동이 트기도 전인 이른 새벽부터 세 사람은 용이를 찾으려 집을 나선다.


















'여보!!!'


'용이 아저씨~!!!!!'


'용이 형님~~~~~!!!!!!!!!!'



어느덧 아침 해가 떠오르고, 날이 밝았다. 마을을 죄다 둘러보아도 용이는 어딜 갔는지 발견되지 않고, 세 사람은 어느새 뒷산 초입까지 올라와서 용이를 부르고 있다.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세 사람. 별 일은 없겠지만 숙이는 점점 불안감이 커지는 듯 보이고, 경태도 당황스러운 건 마찬가지인 듯 하다.


'아니 이 형님이 어딜 간거여 대체?


'경찰에 신고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지금 시간이면 경찰도 자지. 그리고 분명히 형님 어디서 자고 있을텐데 경찰들한테 망신 보일 일 있어. 내가 여기 뒷산만 한번 둘러보고 올테니까 집에 들어가 있어들'


'그래, 아저씨 집에 들어왔을 수도 있잖아. 집에 가보자 숙아'


남편이 눈빛을 보내자 알겠다며 숙이를 이끄는 경태의 아내. 숙이는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고, 경태는 그제서야 뒷산을 홀로 오르기 시작한다.










'용이 형님~~ 이 형님이 어디서 주무시고 계실까'


예전에도 한번 용이가 술을 먹고 길바닥에서 나자빠져 있던 적이 있다. 이 마을에서 평생을 함께 살아온 사람들인데 이제는 안봐도 뻔하다. 했던 짓이 있으니 경태는 혹여나 형님에게 무슨 안좋은 일이 일어났을까 불안하지도 않아보인다. 


'용이 형님~~! 어..!'


그렇게 뒷산을 오히려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아침 산책하듯 걸어다니며 주변을 두리번 대는 경태. 그 때, 경태의 눈에 저만치 수풀 아래로 사람 다리 같은 것이 보인다.


'용이 형님???!'


순간 저 다리가 용이 형님 다리가 맞다는 직감이 들어 급히 길이 나지도 않은 수풀로 내려가보는 경태. 용이가 오줌을 싸던 그 길가에서 그리 멀리 올라오지 않은 높이에 용이가 그대로 드러누워 있다.


'허어억!!!!!'


헌데 용이를 발견하고는 무척이나 놀라서 입이 벌어지는 경태. 웬만하면 이렇게 놀라지도 않을텐데,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알몸이 되어서 수풀 속에 누워있는 용이 형님. 


주변으로는 입고 있던 티셔츠와 바지가 이리저리 나뒹굴어 있고, 형님이 입고 있었던 팬티는 망측하게도 미처 벗겨지지 않은 채 발목에 끼어져선 다 구겨져 있다. 심지어 흙바닥을 얼마나 뒹군 건지 땀에 흠뻑 젖은 퉁퉁한 알몸에 흙먼지가 가득하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그리고 경태를 더 놀라게 하는 건 벌거벗은 채 잠들어 있는 용이 형님의 자세. 똑바로 누운 채 두 다리를 활짝 벌리고는 민망한 자세로 기절해있는 용이 형님. 형님의 꼬추가 노골적으로 드러나있다. 수북하게 자라난 꼬추 털에는 하얀 정액이 지저분하게 엉겨 있고, 쪼그라든 형님의 시뻘개진 꼬추는 알 수 없는 액체에 빤질대고 흙먼지가 가득 묻어 있다. 심지어 용이 형님의 두 팔은 위로 만세하듯 번쩍 들어올려져서는 겨드랑이 털을 민망할 정도로 다 드러내고 있다.


술에 취해 자다가 벗는 것까진 이해한다 쳐도 살면서 스스로 뿜어낸 정액에 더럽혀진 형님의 알몸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심지어 수풀 안에서 뭘 하고 있었던 건지 형님의 숨겨둔 취향이 있기라도 한 걸까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경태는 그저 직감적으로 형님이 누군가에게 겁탈을 당한 듯한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심지어 형님의 젖꼭지부터 알몸 구석구석에는 뭔가에 자극을 받은 듯한 시뻘건 자국들이 가득하니까. 그게 사실 일반적으로 이 마을에서 중년 남자에게 벌어질 만한 일은 절대 아니지만 말이다.


'형님!!!!! 용이 형님! 일어나봐'


흔들흔들-


번쩍!


'푸후어어어억!!!'


그 때, 아무리 불러도 깨어나질 않던 용이의 어깨를 경태가 흔들자, 용이가 번쩍 눈을 뜨고는 갑자기 허리를 일으켜 앉으며 그대로 앞으로 토를 내뱉는다.


'허억'


그런 형님의 모습에 깜짝 놀라 손을 떼고 살짝 뒷걸음질을 치는 경태. 용이도 토를 쏟아내고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듯 말도 안되는 모습으로 산 속에 누워있던 스스로를 내려다본다. 


'허어어어억!!'


'형님..? 뭡니까?'


그리고는 경태를 보고는 깜짝 놀란 듯 기겁을 하는 용이. 아무래도 경태를 뭔가로 오해한 듯 하다. 그리고 이내 경태를 알아보고 잠잠해지는 용이. 자꾸 자신의 꼬추를 내려다보며 숨을 헐떡인다.


'..허어어...'


'괜찮으세요?'


'ㄷ..도깨비. 내가 도깨비한테 제대로 당했다.'


그러다 한다는 말이 또 다시 도깨비. 도깨비에게 당했다는 용이. 용이는 그대로 입을 벌리고 더 이상 아무 말도 잇지 못한다. 경태와 눈이 마주치자 불안하게 흔들리는 용이의 눈빛. 경태는 도깨비에게 봉변을 당한 듯한 용이 형님의 지금 이 모습을 직접 보고 나서야 어젯 밤 장씨 형님의 도깨비 타령이 다시금 떠오른다. 도깨비가 진짜 있다고? 경태는 그렇게 주변을 경계하듯 두리번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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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새로운 소설로 연재를 시작합니다.
앞으로 열심히 써볼테니 댓글도 많이 남겨주세요.

다음 카페 '이삼이삼구 소설집'에서는
제 지난 소설들을 모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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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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