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 (8) - 민석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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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민석이 눈을 슬쩍 치켜뜨고 위를 보니, 손님은 아직 눈을 뜨지 않은 채 민석의 리드에 완전히 몸을 맡긴 채다.
이 정도면 지금까지는 일단 충분히 만족하고 있다는 사인. 묵묵히 애무를 이어가는 민석.
대충 느꼈겠지만, 민석은 스몰토크를 딱 필요할 때만 하는 편이다.
지금처럼 손님이 트랜스(trance) 상태일 때 흥을 깨는 ‘기분 좋으세요?’ 같은 질 떨어지는 질문은 절대 금물.

어느덧 민석의 ‘60분 코스’는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

 

 

*

 

 

민석은 상체를 앞으로 숙여 손님의 오른쪽 옆구리 라인을 위에서부터 아래로 훑고 내려갔다.
귓가에 흘러 들어오는 손님의 만족한 틴식을 들으며 살며시 웃음짓는다. 역시 잘 되고 있군.
 

민석의 왼손은 손바닥으로 손님의 엉덩이를 받치고,
오른팔은 어느덧 손님의 목 뒤에 넣고 팔베개하듯 받친 상태.
전체적으로는 마치 아기를 품 안에 안고 있는 모양새다.

 

보통 이런 자세로 옆구리 쪽에 앉아 있으면, 손님으로서는 손을 뻗으면
얼마든지 민석의 물건을 조물딱거릴 수 있다.

아까 등 뒤에서 마사지할 때 감질나게 만질 때와는 다르게.

한 마디로, 단계적으로 손님의 스킨십을 허용한 그 빌드업이 빛을 발할 순간이라는 의미.

 

그러나 손님은 눈을 감은 채 민석의 물건을 만지지 않고 있다.

민석이 당황할 이유는 없다. 표정으로 보건대 이것도 충분히 민석의 서비스에 만족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민석의 손길 자체에 매우 집중하고 있어서, 민석의 것을 만져야겠다고 생각할 겨를도 없는 것이다. 충분히 있는 일.

그렇게 훑고 내려간 민석의 혀는 이내 손님의 치골, 이어서 사타구니를 핥았다.
혓바닥 전체로 위아래로 넓게 핥다가, 혀의 측면으로 원을 그리듯 하다가, 이내 혀끝을 빠르게 문지르고, 다시 반복.
넓은 범위를 천천히 자극하다가, 점차 좁혀가며 빠르게 자극하고, 다시 반복. 그렇게 계속되는 완급 조절..
몸이 서서히 달아오를 수밖에 없다.
 

여기가 제일 반응의 강도가 강하니까,’

아까 등을 마사지하면서 충분히 탐색했듯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사타구니 부분은 성감대지만
이 손님의 경우 특별히 더 성감대이리라. 더욱 정성 들여서 혀와 손톱 끝을 사용해 자극한다.

마치 기타 연주자들이 소리를 깔끔하게 하기 위해 손톱을 자주 다듬는 것처럼,

마사지사들도 바짝 깎은 손톱으로 손님의 몸이라는 악기에서 최대한의 만족감이 실린 신음이 들리도록 연주하는 것일까.

 

-!’
 

지금까지 중에서 가장 큰 볼륨으로, 손님의 배에서부터 신음이 터져 나왔다.
민석이 손님의 알 바로 옆 사타구니를 핥다 못해 쪽 소리를 내며 빨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소리에 반사적으로 민석이 슬쩍 눈을 치켜뜨고 표정을 보니,

다시 질끈힘주어 감은 눈. 눈을 뜨려다 자극 때문에 바로 다시 감은 듯하다.

이렇게 잭팟 터지듯, 본인의 성감대 진단이 맞아 떨어져서 악기에서 좋은 소리가 나면 연주자로서는 뿌듯할 수밖에.
 

이제 민석은 혀를 내밀어 손님의 알을 핥는다.

마찬가지로, 예의 그 혓바닥 전체로 둥글게 돌려가며 핥다가, 혀 끝으로 간질이다가, 입 안에 알사탕처럼 굴리기.

그렇게 얼마나 손님의 알을 핥고, 빨고, 입 안에서 굴린 것일까.

이제 민석의 혀는 손님의 기둥을 뿌리에서부터 훑고 올라오고 있었다. 그것도 손님의 프리컴이 흐른 자국을 따라.
신음소리가 어느덧 잦아들고 조금씩 새어나오는 것만 들리는 걸 보니, 민석을 내려다보며 이 상황을 눈에 담고 있는 듯.

X알은 생각만큼 강력한 성감대는 아니었던 모양. 그러나 잠시 이렇게 숨 고르는코스도 나쁘지 않다.
 

대부분의 마사지 코스에 이런 타이밍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이상한 게 아니다. 보편적으로 성감대이긴 하지만 손님 개인에게는 성감대가 아닌 경우도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오히려, 쉴새없이 몰아치기만 하는 스킨십보다 나은 면도 있다.

이것도 마지막의 극적인 순간을 위해 필요한 완급조절의 일종이라 할 수 있다.

다만, 기껏 올려놓은 텐션이 너무 뚝 떨어지지 않기 위해, 다른 자극을 주는 것도 필요하다. 지금의 경우, 시각적 자극.

 

민석은 입술을 오므려 손님의 기둥을 문 채 마찬가지로 뿌리에서부터 훑고 올라오면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을 손님의 시선을 생각하며 살며시 눈을 뜬다.

최대한 망가지지 않고 귀엽고 매력적으로 보일 것을 의식하면서.

역시나 손님과 눈이 마주쳤다. 이내 그 실눈이 되는 눈웃음을 보여주는 민석.
 

이전 화에서 언급했듯이 마사지의 매력 포인트는 번개와 연애 그 중간 어딘가의 독특한 위치에 있다.

정성스런 마사지(를 빙자한 애무)로 빌드업을 하다가, 번개에 준하는 뜨거운 기술로 몰아치는 것을 기본으로 하되,

지금처럼 완급조절이 필요할 땐 다시 연애 판타지를 자극할 만한 요소를 적절히 배치하는 것이 중요하다.
 

살짝 얼빠진 것 같은 손님의 표정을 보면서, 민석은 손님의 물건에서 입을 떼더니, 천천히 위로 올라왔다.
그러더니 손님의 귀 옆에 자신의 입을 대고,
 

하고 싶으신 거 있어요?’
예의 그 동굴 목소리로 묻는다.
 

기본적으로는 손님이 직접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손님이 좋아하는 요소를 찾아서 자극해 주는 것이 마사지사의 내공이다.

그러나 손님이란 게 각양각색이고, 손님의 스타일에 따라 한 가지로 정해진 플롯에 얽매이지 않는 마사지사는 더 고수다.

따라서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의 원칙을 잠시 깨고, 이 손님에게는 조금 주도권을 주어도 괜찮다.

 

일단 이 손님은 민석의 몸을 만져도 꼭 지저분하게만지는 노 매너 손님은 확실히 아니다.

(이런 종류의 손님에게는 절대 지금과 같은 하고 싶으신 거 있냐는 질문을 해선 안 된다.)

아까 옆구리에 앉아 있을 때 민석의 물건을 마음껏 만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물어보면 아마 아까 아쉬웠던 만큼 민석의 몸을 만지려고 하긴 하겠지만, 선은 지킬 것이다.

아까 짐작하건대 탑일 것 같긴 하지만, 민석의 몸을 적당히 탐구하고
다시 민석의 손길에 자신의 몸을 내어줄 가능성이 큰 타입.

갑자기 손님은 민석의 양 팔을 강하게 잡는다. 그리고 그대로 민석을 눕히고 본인이 위로 올라간다.
이내 민석의 몸을 찬찬히 살펴보는 손님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예상대로 잘 되고 있어, 생각한다.

손님의 시선이 다시 위로 올라와 민석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본다.
최대한 의식하지 않고, 지금 이 상황이 충분히 기분 좋다는 듯한 표정을 자연스럽게 유지한다.
 

그런데손님 눈빛의 떨림이 심상치 않다. 시야각 아래로 보건대 발기도 풀리는 것 같고
눈치 없는 사람이 봐도 뭔가 이상하다고 느낄 정도로 표정이 굳어가니, 눈치 빠른 민석이 그걸 놓칠 리가.

민석의 손을 잡고 있던 제 손을 떼고 몸을 뒤로 빼 무릎꿇고 앉으니, 이건 빼박이다.
 

괜찮으세요?”

아니에요 아무것도.”

누가 봐도 빈말이다. 빠르게 돌아가는 민석의 사고회로.
자기가 리드할 것처럼 하더니 내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다가 갑자기 저렇게 짜게 식는다는 건, 그거네.

 

내 얼굴이 전 애인이랑 닮았나 보다.’

역시나 빠르게 진실에 도달한 민석. .. 이미 힘들게 쌓아올린 무드는 폭망했고, 다시 끌어올리기는 힘들어 보이는데

제대로 시간 채우긴 보아하니 글렀다. 이럴 땐 차라리 선수쳐서 돈을 안 떼이는 게 중요.

 

“… 혹시 별로셨다면…”
아아, 아니에요 그건 아닌데.”
 

머뭇거리는 손님. 잠깐 생각할 타이밍을 준다. 너무 길면 안 되고.

잠시 에어컨 돌아가는 소리와 블루투스 스피커의 피아노 소리만 방을 메우고.

 

“… 괜찮으시면, 계속할까요?”

당연히 괜찮을 리가 없다.
그렇지만 너무 길게 생각할 시간을 주면 그새 생각 정리하고 딴 소리하면서 돈 안 주려 들수도 있는 걸. 그건 안 되지.


눈치 빠른 분 같아서 말하자면 그냥 내가 뭐가 좀 떠올라서 그래요. 본인 잘못 아니에요.”

“…….”
 

잔액이얼마죠? XX,XXX원이죠?”
, 아뇨 괜찮습니다. 시간도 다 못 채웠고마무리하지도 못했는데요.”
“…
아니에요 받으세요. 요 근래 가장 좋았어요. 정말 만족하고, 당신이 못한 게 아니니까 받을 자격 있어요.”
요 근래? 전에 마사지 받아본 적 있나? 전혀 그런 것 같진 않은 반응이었는데.

그래도…”
 

손님이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옷걸이에 걸린 외투에서 제 지갑을 꺼낸다. 마침 잔액만큼의 현금이 지갑에 있다.
 

여기 잔액이에요. 정말 부담 갖지 마요. 최선을 다해 주셨고 전 만족했어요.
내 문제고, 괜찮으니까 가 보셔도 돼요. 정말로.”

애써 괜찮은 듯 지어 보이는 손님의 표정.
최대한 온건한 목소리로. 이에 마지못해 돈을 받는 민석.
“…
그럼실례했습니다.”
“…
, 고마웠어요.”
 

손님은 바닥에 굴러다니는 제 것이 아닌 옷가지들과 작스트랩을 주섬주섬 줍는다.

, 제가 직접 할게요. 괜찮아요.”
민석은 그 옷가지를 건네받고, 나머지 옷도 주워 말없이 입는다.
다시 그 섹시한 빨간색 작스트랩에 쏙 들어가는 민석의 물건. 그 위에 통 넓은 검은 반바지, 회색 언더X머 윗옷.

그리고 민석은 (드디어) 블루투스 스피커를 끄고, 널브러진 오일 등등 가지고 온 물건들도 마저 키트에 담고는,
현관문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손님도 그 뒤에서 성큼성큼 걸어가, 앞장서서 현관문을 열어준다.

“…
고마워요, 오늘 즐거웠어요.”

말없이 고개 숙여 인사하는 민석.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내 뒤돌아 터덜터덜 계단을 내려간다.

 

*

 

 

확실히, 몸도 나쁘지 않고, ‘노 매너손님들과는 다르게 마사지사를 충분히 배려하는 말투와 손짓.

좋은 사람이고, 손님으로 다시 봐도 좋을 타입이다.

 

그렇지만예상대로 내 얼굴이 전 애인의 모습과 겹쳐 보여서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거라면,

아마 다시 나를 찾지는 않겠지. 아니 애초에 마사지 자체를 안 할 것 같은데.

반응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마사지 경험이 없거나, 최대로 쳐야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사람이다.

그런 경험치인데 마사지사를 통해 전 애인을 떠올렸다면어디 죄책감에 다시 하겠어.

 

그나저나 도대체 어떻게 헤어졌기에 그런 표정을 짓는담.’

, 길게 생각하지 말자. 어차피 다시 내 손님이 될 가능성도 낮겠다. 지나가는 인연 하나하나에 신경 쓸 필요는 없지.

어차피 내 몫의 돈도 다 받았고.

 

‘6시 반저녁이나 먹고 들어가야겠다.’

터덜터덜, 민석은 다시 독서실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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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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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기하듯 민석의 시선 속에서 다시 곱씹어 보는 재미가 있네요.
작가님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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