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마도사로 이세계에서 치유사를 하고 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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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그 시기에 딱 맞게 나타났지? 내가 싸일런스를 걸지 않고 그대로 일반 모험가들 처럼 당했다면 성녀가 그때도 나타났을까? 마치 대주교와 메티나가 극한에 몰려 더 이상은 승산이 없다고 여길 수 있는 시점에 나타난 성녀라...’
강혁은 세사람이 성녀에게 다가가 인사를 할 때에도 멀찌감치 물러나 그녀를 살폈다. 성녀 엘리스가 강혁을 발견하고 다가와 인사를 했다.
“여기 이렇게 네 분이 목숨을 걸고 이교도들과 싸우고 계셨는데 그냥 보내기 섭섭하군요. 다들 제 집무실로 가서 차라도 한잔하시죠?”
네 사람은 성녀 엘리스의 집무실에서 담소를 나누며 차를 마셨다.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오고가고 성녀는 유독 강혁에게 관심이 있는 듯 많은 질문을 강혁에게 던졌다. 강혁은 성녀의 질문에 의미없는 단답형의 답변을 했지만 성녀는 끈질기게 질문을 이어갔다. 강혁의 무미건조한 대답에 지친 성녀가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다 문득 카리슈를 본다.
‘특이하군. 금발에 금색 눈동자라...’
한동안 카리슈의 금색 눈동자에 고정된 채 성녀는 카리슈를 뚫어져라 처다보았다. 자신과 같은 금색 눈동자를 가진 성녀를 카리슈는 흘깃 처다보았을뿐 다른 생각은 없었다. 집요하게 자신을 처다보는 성녀의 눈길에 카리슈는 뻘쭘함에 차를 마시다말고 그녀의 집무실을 둘러 보았다. 화려하게 장식된 성녀의 집무실. 무엇하나 최고급이 아닌 것이 없었다. 그러다 문득 책상위에 올려진 물건들을 보다가 그녀가 보다만 서류 뭉치들 사이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 성녀의 책상위에 놓여진 문서에는 분명히 강혁이 보여주었던 ‘별의 그림자’라는 이름의 주문진이 그려져 있었다.
● 에필로그 ●
어느날 금발에 금색 눈동자를 가진 다섯 살 정도의 아이가 마을에 나타났다. 어디서 어떻게 나타난 아이인지 아무도 몰랐다. 피로와 굶주림에 지친 아이를 마그람 수녀가 고아원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아이는 카리슈라는 이름을 얻고 고아원에서 지내게 되었다.
고아원에서 멀지않은 곳에 마커스라는 아이도 살고 있었다. 집이 가난했지만 아이는 어려서부터 집안일이며 동생들을 돌보는 일을 힘겨워하지 않고 묵묵히 해냈다. 그래봐야 아이의 나이 겨우 일곱 살. 아이의 아버지는 막노동꾼이었다. 근근히 일을 받아 겨우겨우 집안을 꾸려나갔다. 아이의 엄마는 함께 일을 하러 나갔다 사고를 당했다. 집안에서만 거동이 가능하고 겨우겨우 집안일을 하는 정도였다. 일곱 살이 된 마커스는 아픈 엄마와 두 명 있는 동생들을 돌보기 위해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았다. 아버지의 수입만으로는 다섯 식구가 먹고 살기도 빠듯했다. 소년은 아침 일찍 일어나 산으로 가 돈이 될 만한 약초를 캐 상점에 내다 팔았다. 약초를 캐다가 먹을 것을 발견하는 날에는 그것으로 끼니를 때우고 그렇지 못한 날은 주린 배를 안고 마그람 수녀가 운영하는 낮은 울타리 고아원으로 갔다. 가끔 나타나는 아이를 발견한 마그람 수녀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아이를 식당으로 데려가 식사를 하게했다. 아이 한 명 늘어난다고 큰일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었으며 눈이 초롱초롱한 아이가 꽤재재한 몰골로 식당 주변을 서성이는 것은 뻔한 이유이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마커스는 처음 카리슈를 만났다. 금발 머리 금안의 아이는 항상 반듯한 태도로 마치 다른 세상에서 살다온 아이처럼 식사를 하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이 배고픔에 허겁지겁 식사를 하는 것과 비교해 카리슈는 너무나도 기품있는 태도로 조용하고 차분하게 식사를 하고 있었다. 하얀 피부와 깊이를 알 수 없는 금안을 바라보고 있자면 자신도 모르게 멍하니 배고픔 마저 잊을 정도로 정신없이 그 아이를 바라보게 되었다. 자신보다 어려보이는 아이였지만 뭔가 범접할 수 없는 기운을 느낀 머커스는 다음 날부터 식사를 하러 가는 이유도 있었지만 카리슈를 보기위해 고아원으로 날마다 찾아갔다.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카리슈에게 말을 걸고 가끔은 아이의 손목을 잡고 자신이 약초를 캐는 산으로도 데려갔다. 두사람은 어느새 가까워졌고 서로는 우정 이상의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저기... 카리슈...”
“무슨 일이야 마커스?”
“곧 있으면 나 성년식이야... 그날... 시간 좀 내줄수 있어? 꼭... 할 말이 있어... 발트로프의 언덕에서 이틀 뒤 날 기다려줘... 주고싶은 것이 있어.”
무뚝뚝한 마커스가 요즘들어 카리슈를 처다보면서 얼굴이 자주 붉어진다. 그리고 말을 더듬는다. 카리슈는 대충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짐작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무엇을 주려는지도. 얼마전 시장 어귀에서 바쁘게 지나가는 마커스를 따라가다 그가 잡화점에서 반지를 사는 것을 보았다. 그 반지를 받을 사람은 자기밖에 없다는 것을 카리슈는 알고 있었다. 반지를 주며 고백을 하려는 것을 짐작한 카리슈는 자신 역시도 그에게 선물을 주고 싶었다. 성년식 선물로 그동안 모아둔 용돈을 모두 털어 카리슈의 손에 맞는 반지를 그 역시 준비하고 있었다. 구리로 만든 아무런 무늬도 없는 싸구려 반지. 두 사람은 서로 상대방에게 반지를 선물하면서 마음을 고백하기 위해 마커스의 성년식을 손꼽아 기다렸다.
마커스의 성년식 전날. 용사가 나타난다는 신탁이 내려왔다. 성회는 신탁을 받고 매우 분주하게 움직였으며 신탁이 내려진 용사를 찾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어두운 밤. 마커스의 집 앞에 후드를 깊게 뒤집어 쓴 사람이 나타났다. 마커스의 집 주변에 무언지 알 수 없는 마법진을 바닥에 그리고 손을 내밀었다. 하얗고 가녀린 손이 로브를 뚫고 나와 황금빛 물결의 마법 인장을 손 끝에 맺었다. 다음날 마커스가 깨어 났을 때 집안의 모든 사람, 마커스를 제외한 그의 부모님과 두 동생들의 얼굴은 까맣게 피부가 죽어들어가며 겨우겨우 숨소리만을 거칠게 이어가고 있었다. 마커스는 절망에 빠졌다. 밤사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그는 정신없이 마을로 달려가 의원을 데려왔다. 의원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그의 집을 떠났고, 다시 마커스가 정신 없이 달려 길드에 있는 치유사를 데려왔지만 치유사 역시 고개를 흔들며 집을 떠났다. 마을에 어떤 사람도 병명을 알지도 못하는 몹쓸 병에 걸린 그의 가족들. 이상하게도 마커스만은 어느 한곳도 아픈 곳이 없었다. 가족들의 병세는 급격하게 빠르게 진행되었으며 밤이 되자 그들은 거의 숨을 헐떡이며 금새라도 숨이 끊어질 듯 거칠게 호흡을 하며 마커스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말할 기운도 없었던 가족들은 그렇게 눈으로 마커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었다. 더 이상 어떠한 방법도 없다는 것을 느낀 마커스가 참고 참던 울음을 터트리고 그 울음소리가 집밖으로 퍼져나갈 만큼 커졌을 때, 누군가 그의 집 문을 두드렸다.
“똑똑똑!”
울음소리에 묻혀 노크소리는 사라지고 급기야 누군가 문을 열고 조용히 발소리를 내며 집안으로 들어섰다. 가족들의 죽음을 눈앞에 둔 마커스가 눈물 범벅이 된 얼굴로 뒤 돌아 보았을 때 그곳에 온몸에서 하얀 빛을 흘리는 금안의 성녀 엘리스가 자애로운 표정으로 서있었다.
“마커스! 불쌍한 나의 용사여... 가족들을 살리고 싶나요?”
한껏 자애롭고 우아한 그녀의 말에 고개만 끄덕이는 마커스를 바라보며 엘리스가 다시 입을 연다.
“그럼... 당신은 나에게 무엇을 줄 수 있죠?”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드리겠어요! 제발 나의 가족들을 살려주세요. 흑흑”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주겠다는 마커스의 말에 성녀 엘리스의 평온하고 자애로운 얼굴에 비릿하고 잔인한 미소가 슥 그려지더니 차갑고 무거운 말이 그녀의 입에서 나왔다.
“나의... 노예가 되어라!”
무표정하고 야비한 그녀의 얼굴을 접한 마커스는 무언가 크게 뒷통수를 맞은 듯 충격에 빠졌지만 그의 가족을 살릴 방법은 그녀밖에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당신의... 노예가 되겠어요! 제발 나의 가족들을...”
그 순간 마커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성녀의 오른손이 빠르게 움직이더니 마커스의 뺨을 후려쳤다.
“대답이 틀렸다 꼬마야! 나를 아니 이 성녀 엘리스님을 주인님이라고 불러야지!”
성녀에게 뺨을 맞은 마커스가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을 때 그는 보았다. 악마처럼 일그러지고 비릿한 미소를 흘리는 진짜 성녀의 얼굴을.
다음 날. 마커스의 성년식날. 마커스의 몸에 용사의 표식이 나타나며 거대한 빛이 지붕을 뚫고 솟아 올랐다. 때마침 등장한 성녀와 그를 따르는 수많은 사제들이 용사의 표식이 나타난 그를 데리고 성회로 돌아갔으며, 발트로프 언덕에서 홀로 그를 기다리던 카리슈는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야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언덕을 내려와 고아원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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