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와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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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태는 잠자리에서 일어나 아침을 먹고 개수대에 빈 그릇을 담아 놓았다. 주전자에 물을 넣어 가스레인지 위에 올리고 불을 붙였다. 양팔을 높이 들고 하품하며 기지개를 켜더니 욕실 안으로 들어갔다.

주전자의 물이 펄펄 끓자 머그 잔에 원두커피를 뽑았다. 머그잔을 들고 방으로 들어가 의자에 앉아 컴퓨터를 켰다. 컴퓨터가 구동하는 동안에 입으로 호호 불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승태는 컴퓨터에 몰두해 있다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창 밖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지 않자 야외 활동복을 입었다. 무선 조종기와 배터리와 물병을 가방에 챙겨 넣고 지퍼를 당겼다. 한쪽 어깨에 가방을 메고 벽에 걸린 모형 비행기를 들고 현관문을 열었다. 

승태가 트렁크에 모형 비행기를 조심스레 넣고 차 문을 열어 조수석에 가방을 던졌다. 승용차의 시동을 걸고 있는데, 반이가 아파트에서 나왔다. 승태는 반이가 승용차 앞을 지나가면 주차장을 출발하려고 기다렸다. 그런데 반이는 승태에게로 다가오며 말을 걸었다.

"아저씨 어디 가세요?"

"모형 비행기 날리러 가는데 가는 길에 학교까지 태워다 줄까요?"

"정말요? 그럼 저야 고맙죠."

반이는 차 문을 재빨리 열고 조수석에 앉으면서 의아하게 생각했다.

"제 맘을 어떻게 아셨어요?"

"연륜이 쌓이면 그냥 감이 와요."

"저한테 편하게 말씀 놓으셔도 돼요."

"학생이 그러길 원한다면 나도 좋지. "

"아차, 저는 반이라고 해요. 실례지만 아저씨 성함은요?"

"나? 남들이 나보고 아저씨라고 불러."

반이는 승태의 얼굴을 바라보며 으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승태는 반이가 웃는 모습을 바라보더니 승용차 출발을 알렸다.

"자, 출발할 테니 안전띠 매."

"예."

"혹시 일 교시 수업 있는 거 아냐."

"맞아요.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지금 시간이면 대충 알 수 있지. 근데 좀 늦었다."

"천천히 가셔도 돼요."

승태는 반이의 심정을 헤아려 승용차를 급히 몰았다. 반이는 차창 밖을 보고 있다가 마음의 변화를 꾀했다.

"저, 아저씨 따라가면 안 될까요?"

"수업은 어쩌고?"

"오늘 하루 무단 결석할래요."

"그러지 말고 휴대폰에 내 전화번호 입력해 봐."

"왜요?"

승태는 반이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전화번호를 말했다. 승태가 부르는 대로 반이는 휴대전화에 번호를 입력했다. 승태는 전방을 주시하고 승용차를 몰며 사유를 밝혔다.

"이따가 수업 끝나고 나한테 전화해. 그러면 그 때 만나서 반이랑 같이 갈게."

"우아, 아저씨 최고다!"

"근데 오늘 수업은 어디서 받지?"

"인문관요."

승용차가 대학교 정문을 지나 인문관 앞에 멈추었다. 반이는 승용차에서 내리려고 하다가 불현듯 궁금증이 일었다.

"어! 여긴 줄 어떻게 아셨어요?"

"궁금하면 오백 원."

"으하하, 아저씨 센스쟁이에요."

"사실은 전에 택시를 운전했거든."

"아, 그러시구나."

"참, 수업은 몇 시에 끝나니?"

"열두 시요."

"그럼 수업 끝나고 전화해."

"예, 아저씨 덕분에 잘 왔어요. 이따가 뵐게요."

반이는 승용차에서 내리자마자 건물 안으로 후닥닥 뛰어갔다. 승태는 승용차의 방향을 바꾸어 대학교를 유유히 빠져 나왔다.

승태는 초조한 마음을 누르지 못하고 방 안을 서성거렸다. 반이를 기다리는 시간이 더디게 가는 것 같아 좋은 방법을 찾았다. 야외 활동복을 벗고 속옷 차림으로 집안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승태는 12시가 되기 전에 외출 준비를 서둘러 아파트를 나섰다. 승용차를 살살 몰고 대학교 주차장에 멈추어 전화가 오기를 기다렸다. 

반이는 12시가 넘어서 승태에게 전화했다. 승태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승태입니다."

"저 반이에요. 지금 수업 끝났어요."

"바로 도착할테니까 거기서 잠깐 기다리고 있어."

"예."

승용차가 이쪽으로 오고 있자 반이는 소리 없이 입만 벌리고 방그레 웃어 보였다. 승태는 반이가 웃는 표정이 마치 어린애 같았다. 반이는 승용차를 타고 마음속을 털어놓았다.

"아저씬 제 맘을 사로잡는 특별한 매력이 있어요?"

"어떤 면에서?"

"그냥 다 좋은 거 같아요."

"그 말 듣고 가만있을 수 없는걸. 그래서 말야 점심 시간도 됐는데 밥이나 먹으러 가자."

"우아, 오늘 아저씨 만난 거 대박이에요."

승태는 미리 식당을 정했지만 일단 반이의 생각을 들어 보기로 하고 그의 의향이 어떤가를 물어보았다.

"뭐 먹으러 갈까?"

"아저씨 드시고 싶은 거 먹어요."

"그럼 한, 중, 양, 일식 중에서 반이가 골라 봐."

"아무거나 다 좋아요."

승태는 승용차를 주차장이 넓은 식당 앞에 멈추었다. 반이는 승태와 거의 동시에 승용차에서 내려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승태가 주인에게 머리 숙여 인사하자 반이는 무심코 승태의 행동을 따라서 했다.

"안녕하세요?"

"예, 어서 오세요. 이쪽으로 앉으세요."

승태와 주인은 전부터 알고 지내는 사이라 주인이 손수 식탁 위에 물병과 컵을 놓으며 친근감을 나타냈다.

"오랜만에 오시는데 그동안 별고 없으셨죠?"

"예, 사장님 염려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사업은 여전히 잘 되시죠?"

"예, 코로나 때문에 경기가 아무리 어려워도 단골 손님이 도와 주신 덕에 잘 되고 있어요. 근데 뭘로 드실 건가요?"

"오삼 불고기로 주세요."

반이가 물병을 들고 물을 컵에 따르더니 승태에게 건네주었다. 승태는 물을 따라 준 반이에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

"고마워. 내 맘대로 시켰는데 괜찮지?"

"예, 전 뭐든지 잘 먹어요."

"반이는 많이 먹고 살 좀 쪄야겠어."

"그러지 않아도 친구들이 제가 먹는 걸 보고 먹는 만큼 살이 안 찐다고 부러워해요."

"그것도 타고난 복이야."

반이는 기분이 좋은 듯 싱긋 웃고는 승태와 얼굴을 마주 보고 사생활을 조심스레 질문했다.

"평일에 쉬시는 거 보면 자영하시나 봐요?"

"그건 아니고 사회 생활을 그만두고 오직 한길만 향해 걷고 있어."

"그게 어떤 길인데요?"

"저승길."

"으하하. 아저씨는 말씀 한 마디 하실 때마다 유머러스해요."

승태와 반이는 식탁 위에 음식이 차려지자 오삼 불고기와 함께 밥을 맛있게 먹었다. 반이는 점심을 먹은 다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승태에게 건네주었다. 

"고마워!"

"점심 잘 먹었어요."

"반이가 잘 먹었다니 내가 기분이 좋으네."

승태가 밥값을 치르는 것을 반이는 뒤에서 지켜보고 주인에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

"지금까지 점심 먹은 것 중에서 젤 맛있었어요."

"어허, 저 학생 땜에 밥값 깍아 줘야겠구먼."

"히. 정말요?"

"당연하지."

승태와 반이 그리고 주인은 서로가 흡족히 여기고 웃음을 터뜨렸다. 반이가 식당을 나서며 훗날 다시 만날 것을 굳게 기약했다.

"담에 제 친구들 데리고 올게요."

"그럼 음료는 공짜다."

"정말요?"

"응."

"사장님, 고맙습니다!"

승태와 반이는 주인과 인사를 나누고 식당에서 나왔다. 반이와 점심을 먹는 사이에 승태는 반이가 좋아졌다. 승태는 승용차 문을 열고 유쾌한 나들이를 미리 내다보았다.

"자, 점심도 먹었으니 비행기 날리러 가 볼까?"

"예, 좋아요."

반이는 승용차가 출발하기 전에 안전띠를 매며 별안간 승태를 소리쳐 불렀다.

"아저씨!"

"응, 왜?"

"전에 택시하셨다고 했을 때 첨 뵌 분 같지 않았어요."

반이를 오래 전에 한 번 만났을 뿐인데 승태는 용케 반이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 

"난 반이 기억하고 있는걸."

"그렇죠. 제가 휴대폰 잃어버렸을 때 돈도 받지 않고 그냥 주셨던 분이 아저씨 맞죠."

"응. 난 원래 학생들이 분실하면 돈을 안 받거든. 그 때 반이가 가방에서 과자를 꺼내 줘서 고맙게 잘 먹었지."

반이는 승태를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리며 느끼는 바를 이야기했다.

"오늘 아침에 아저씨를 보는 순간 어디서 본 듯했는데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아 마음이 뒤숭숭했어요."

"정말?"

"예, 근데 수업 중에 불현듯이 아저씨 생각이 났어요."

"그랬구나. 어, 얘기하다 보니 벌써 다 왔네."

승태는 승용차를 미호천 둔치 주차장에 멈추었다. 반이는 안전띠를 풀고 승용차에서 내려 주위를 둘러보면서 의외로이 여겼다.

"이런 곳에 모형 비행장이 있다니."

"가다 보면 잔디 축구장도 있는데 사용하지 않아 잡초가 무성하게 자랐어. 저긴 자전거 전용 도로라는 걸 알겠지."

"예. 평일인데도 자전거 타는 사람이 꽤 있네요."

"응. 저기로 가자."

"예."

반이는 승태 뒤를 졸졸 따라가다가 들꽃을 보고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했다.

"세금으로 유락 시설은 잘해 놨는데 관리가 안 되서 엉망이네요."

"내 생각도 그래. 여기가 비행장이야."

"우아, 여긴 잔디 관리를 잘해서 좋네요. 긴 의자도 여러 개 있고 근데 저기 있는 기둥은 뭐에요?"

"비행기 날개를 걸쳐 놓고 손보는 곳이야."

승태는 무선 조종기 스위치를 켜고, 모형 비행기에 배터리를 연결했다. 무선 조종기와 모형 비행기에서 멜로디 소리가 났다. 

"이게 뭔 소리에요."

"조종기와 수신기가 정상 작동하고 있다는 신호야. 내가 먼저 비행하고 나서 반이에게 가르쳐 줄게."

"정말요?"

"응!"

"야호, 신난다! 아저씨 만나길 진짜 잘한 거 같아요."

승태가 만족한 표정으로 소리 없이 빙그레 미소지었다. 모형 비행기의 각각의 보조 날개를 무선 조종기로 움직여 보고 아무런 이상도 없자 오른쪽 콘트롤 스틱을 위로 올렸다. 프로펠라가 돌면서 모형 비행기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잔디밭 좌측에 멈추고 이륙을 준비했다. 

"잘 봐. 이제 비행기가 날아간다."

"예."

승태가 무선 조종기의 오른쪽 콘트롤 스틱을 최대한 위로 올리는 동시에 모형 비행기가 활주로에서 떠올랐다. 모형 비행기가 하늘을 비행하자 반이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우아, 이런 매력 땜에 알시를 하는구나."

"어! 알시를 어떻게 아니?"

"에이,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알아요."

승태는 무선 조종기에서 경고 음이 울리자 모형 비행기 착륙을 위하여 고도를 낮추었다. 모형 비행기가 가볍게 활주로에 내리자 반이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승태에게 궁금한 것을 물어 보았다.

"만약에 제가 비행기 날리다가 추락하면 어떻게 해요?"

"당연히 물어내야지."

"가격이 얼마나 해요?"

"반이 팔아도 못 사."

"에이, 그건 아닌 거 같아요."

승태는 반이가 아무 걱정 없이 마음을 편히 가지도록 신경을 썼다.

"세상일이라는 게 첨 겪을 땐 어려워 보여도 막상 하고 나면 별거 아니니까 맘놓고 해도 돼."

"예. 아저씨 덕분에 많은 것을 경험하게 생겼네요. 제가 항시 느끼는 거지만 아저씨께 어떻게 고마움을 표시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오히려 내가 더 고마운걸. 그동안 나 혼자 했었는데 젊은 친구와 함께 노니까 마냥 좋기만 한데."

반이는 마음에 만족함을 느껴 입을 반쯤 열고 연하게 웃었다. 승태는 무선 조종기를 반이에게 주고 사용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조종기를 보면 오른쪽 스틱은 내려와 있고 왼쪽 스틱은 중앙에 있지."

"예. 이건 왜 그런 거에요?"

"항공기 조종기라그래. 쉽게 말해 공중을 비행하는 건 후진할 필요가 없는 거야."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어요."

"에이, 그냥 넘어가자."

승태는 반이에게 모형 비행기에 배터리를 연결하는 것을 시켰다. 반이가 능숙한 솜씨로 단자에 배터리를 연결하자 승태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오, 잘하는데."

"이건 대충 알 것 같아요. 담은 어떻게 해요."

"처음이니까 이착륙할 때만 내가 도와 주고 조종은 반이 혼자서 해."

"예."

승태가 반이 뒤에 서서 콘트롤 스틱에 양손을 겹쳐 놓고 무선 조종할 자세를 취했다. 반이는 입가에 미소를 띠고 우스갯소리했다.

"뭔가 엉덩이를 찌르는 게 있어요."

"아주, 이 상황에서 여유 있네. 정신을 집중하지 않으면 몇 십만 원 날려보내는 거니까 알아서 해."

"알았어요."

"우선 비행기를 활주로로 천천히 이동한 후에 스로틀을 위로 냅다 올리면."

"우아, 이륙했어요."

승태는 모형 비행기가 적당한 높이로 솟구치자 수평을 유지하고 각각의 보조 날개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했다.

"왼쪽 스틱을 내리면 비행기가 올라가고, 반대로 올리면 내려가는데 스틱의 움직임을 스무드하게 조종하도록 해. 또 스틱을 왼쪽으로 밀면 왼쪽 방향으로 비행기가 진행하고, 오른쪽으로 밀면 같은 방향으로 바꿔. 오른쪽 스틱은 위아래로 움직이면서 비행기 속도를 조종하고, 비행기가 한쪽으로 기울었을 때 수평을 잡으려면 좌우로 움직여 주면 되는데 비행기를 보는 시점에 따라 좌우가 바뀌니까 주의 깊게 바라보고 실수가 없도록 해. 자, 이젠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대충 감 잡았지."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킥킥. 하긴 첨부터 많은 정보를 받아들인다는 게 무리긴 해. 아무튼 저 비행기의 운명은 반이에게 달렸으니까 맘대로 해 봐."

반이가 모형 비행기의 무선 조종을 전적으로 맡고 승태는 한 걸음 물러섰다. 반이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모형 비행기를 무선 조종하느라 여념이 없다. 


   승태는 밤중에 컴퓨터 모니터를 마주하고 앉아 마우스를 클릭하는데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승태는 발신자 번호를 알아보고 얼른 전화를 받았다.

"응, 반이야 왜?"

"비행기 때문에 잠이 안 와요."

"그런 핑계 대지 말고 사실대로 말해 봐."

"지금 놀러 가도 되나요?"

"그래, 진작 그렇게 말할 것이지."

반이는 승태를 놀리듯이 꺼불거리며 웃었다. 승태가 전화를 끊은 후에 얼마 있다가 현관문을 조용히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승태는 현관문을 열어젖히고 반이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너 그게 무슨 꼴이니?"

"심야에 누가 보겠어요. 옷 입고 나오는 게 귀찮고 해서 그냥 왔어요."

"아무리 배짱이 두둑하기로서니 팬티 바람으로 밖엘 나온단 말야."

"외국에선 이렇게 다니는 게 비일비제해요."

"그래? 아무튼 보기는 좋다."

반이가 소리 없이 입만 벌리고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승태는 냉장고에서 음료를 꺼내 반이에게 건네주었다.

"고맙습니다! 잘 마실게요."

"반이 기말 시험 끝나고 방학할 텐데 뭐할 거니?"

"비행기 한 대 사서 아저씨랑 같이 다닐려고 해요."

"정말?"

"예, 그 전에 알바해서 돈을 좀 모으고요."

승태는 말없이 반이 얼굴을 바라보다가 음료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반이의 의향을 물어 보았다.

"반이 생각이 정 그렇다면 내가 미리 사 줄게 돈 벌면 갚어."

"정말요?"

"응, 내가 실없는 소리할 사람처럼 보이니?"

"그게 아니고 너무 좋아서 그래요."

"반이가 좋다니까 난 더 좋은데."

승태와 반이는 얼굴을 마주 보고 방그레 웃어 보였다. 승태는 컴퓨터 책상을 바짝 당기고 반이와 함께 침대에 걸터앉았다. 반이가 컴퓨터 모니터를 보고 무선 조종기와 모형 비행기 모델을 검색하느라고 정신이 없다. 반이는 묵묵히 검색하고 있다가 한참만에 입을 열었다.

"아저씨 거랑 똑같은 걸로 할래요."

"그럴래."

"제 맘에 드는 건 값이 비싸고, 그렇다고 싼 건 맘에 들지 않아서 아저씨 거와 똑같은 게 젤 낫겠어요."

"그래, 반이가 결정한 걸로 하자. 이젠 내가 컴퓨터를 할게 잠깐만 기다려 봐."

"예."

반이는 승태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무선 조종기와 모형 비행기 대금을 결제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승태는 물품 대금을 결제하고 마음이 들썽거렸다.

"반이 거 사는데 내가 왜 이리 설레지?"

"아마 아저씨 거 사는 거처럼 생각하셔서 그런 거 아닐까요?"

"그럴지도 모르지. 이젠 뭐하지?"

"잠도 안 오는데····."

반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승태가 먼저 선수를 쳤다.

"자, 속이 출출한데 어디 가서 밤참이나 먹을까?"

"제가 그 말 할려고 했어요."

"바람도 쐴 겸 밖에 나갈 건데 그렇게 하고 나갈 거니?"

"에이, 설마 이렇게 하고 밖에 나가겠어요."

"왜, 보기 좋은데 한번 나가 보지그래."

"남들이 절 흉보는 게 아니고 아저씨를 욕해요. 그러니까 아무거나 입을 거 주세요."

"알았어. 내 추리닝하고 티만 하나 걸치고 밖에 나가자."

승태와 반이는 아파트 근처에서 밤참을 먹고 야식집에서 나와 한길을 느릿느릿 걸었다. 반이가 눈을 들어 깜깜한 밤하늘에 무수히 반짝이는 별을 보고 감정의 변화를 일으켰다.

"언제 밤하늘을 봤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해요. 별을 보니까 밤 풍경이 아름답네요."

"반이 그러다가 시인 되겠다."

"킥킥. 무뚝뚝한 말투를 보니 아저씨는 아저씨네요."

"내 이름이 원래 아저씨라고 했잖아."

"음, 오늘은 아저씨를 힘껏 껴안고 자 볼까나?"

"그거 정말이니?"

"예, 근데 왜 그렇게 좋아하세요?"

"그냥."

승태는 대답을 대수롭지 않게 하고 몇 발짝 앞으로 가다가 반이에게 의혹을 품었다.

"반이 여자 친구 없니?"

"아뇨. 고등학교 때 친구의 소개로 여자 친구를 알게 됐는데 지금까지 사귀고 있는 중에요."

"그래, 그럼 아파트에 종종 놀러 오겠네."

"예. 하지만 저랑 함께 잠은 자지 않아요."

"반이가 좀 서운하겠다."

"예. 그래서 제가 가다가 한 번 씩 골부림을 하면 여자 친구가 맛있는 거 사 주기도 해요."

승태는 소리를 내지 않고 실없이 어리석은 듯하게 자꾸 웃었다. 그리고 반이가 선심을 쓰는 것을 여유 있게 맞받아쳤다.

"혹시 애정 결핍으로 나랑 잘려고 하는 거 아니니?"

"그건 절대 아녀요. 아저씨가 외로워 보여서 말동무가 돼 줄려고 그래요."

"나 하나도 안 외롭다."

"에이, 거짓말하지 마세요. 모형 비행기로 외로움을 달래시잖아요."

"그래, 나 외로워 미치겠다. 그래서 반이의 비단결같은 맘씨에 감격의 눈물을 흘리려고 한다."

"정말요?"

"응, 밥 사 준 걸 잘했다는 생각이 불끈 치솟는다."

반이가 한밤중에 입을 크게 벌리고 큰 소리로 호탕하게 웃었다. 승태는 반이가 웃는 모습을 바라보고 다짜고짜로 질문했다.

"반이 너 아빠 안 계시지."

"어,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그럼 어머니는?"

"재혼해서 따로 사세요."

"그래서 원룸 아파트에 혼자 사는구나."

"예."

승태와 반이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두 사람이 발걸음을 옮기는 소리가 밤의 정적을 깨뜨렸다. 반이는 무슨 말을 할 듯 머뭇머뭇하다가 그만 입을 다물었다. 승태는 반이의 행동을 알아채고 넌지시 물어 보았다.

"무슨 할말이라도 있니?"

"아저씨는 왜 혼자 사세요?"

"그건 특급 비밀."

"에이, 제가 어렵사리 말을 꺼냈는데 아저씨한테 실망했어요."

"왜, 실망해."

"저에 사생활은 다 얘기했는데 정작 아저씨는 말씀 안 하시잖아요."

"시간이 가면 알게 될 거야."

"전 궁금하면 잠 못 자는데 어떻게 하죠."

승태는 반이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지름길로 앞질러 갔다. 반이는 승태의 뒤통수에 대고 배짱 있는 태도를 취했다.

"아저씨가 말씀 안해 주시면 이제부터 입 꼭 다물래요."

"고놈 참! 예전에는 나도 온 가족이 모여 오순도순 재미있게 살았었지. 마누라는 입버릇처럼 늘 내가 먼저 죽고 자신은 나중에 죽을거라고 해놓고 야속하게도 먼저 가 버렸어."

"아저씨 아픈 상처를 건드려서 죄송해요."

"아냐! 사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나도 마누라 뒤를 곧장 따라갈려고 맘먹었는데 막상 떠나려고 하니 악착같이 살아야겠다는 오기가 생기더라."

"왜 자식하고 안 사세요?"

"어차피 난 사지가 멀쩡하니까 자식들 눈치 안 보고 살려고 마음이 홀가분하게 독립했어."

"그러시구나. 아드님께서 아저씨를 닮았으면 얼굴이 잘생기셨겠네요?"

"오홉다! 그래서 잘생긴 반이는 말도 참 멋지게 하는구나. 대체 뭐가 먹고 싶은 게냐?"

"전 진심을 말한 건데요."

승태는 걸음걸이를 늦추어 반이와 나란히 골목길을 걸었다. 아까와는 다르게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아도 승태는 반이와 함께하는 동안에 그가 좋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승태와 반이는 사이 좋은 부자처럼 욕실에서 번갈아 샤워하고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반이는 승태 얼굴을 한번 힐끗 보더니 이내 시선을 천장 쪽으로 옮겼다. 승태는 드디어 반이에 관하여 입을 열었다.

"넌 잘 때 그렇게 자니?"

"예."

"나도 그런데."

"그럼 아저씨도 팬티 벗고 주무세요."

승태가 멋쩍게 씩 웃으며 눈을 감고 잠을 청하여 보았지만 반이 때문에 쉬이 잠이 오지않았다. 반이가 조용한 목소리로 승태의 마음을 떠보았다.

"잠이 안 오세요?"

"응, 사람 살을 맞대고 자 본지가 언제인지 모르겠네."

"저도 그래요. 물론 여자 친구 손은 잡아 보긴 했어도‥‥."

"난 이해가 안 가는 게 요즘 젊은이들은 성행위를 마다하지 않고 하는 걸로 알고 있거든."

"다 그런 건 아녀요. 반신반의하시겠지만 육체적 쾌락을 추구하는 친구가 있는 반면 개중엔 안 그런 친구도 많아요."

반이가 말을 멈추자 야심한 시각에 어디를 가는지 열차의 둔중한 소리가 들려 오고 있다. 승태는 이 생각 저 생각하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다. 반이는 승태와 함께 꿈나라로 가는 열차를 타고 희열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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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pa…
  • 작성일
꾸준히 변함없이 올려주시는 글 늘 감사한 마음으로
읽고 있습니다.~~^^
이 글도 잔잔하니 ~~~읽고 나니 마음이 편해 지네요^^
글 잘 읽고 갑니다. 더위에 건강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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