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Way Tick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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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래의 형을 만나다
나는 일년 전에 상처(喪妻)하고 혼자 사는 일상에 익숙해질 무렵 평소처럼 베란다에 있는 화분에 물을 주면서 무슨 생각 끝에 한 전화번호가 생각났다. 화분에 물을 주다 말고 물뿌리개를 베란다에 내려놓고 전화기를 향하여 종종걸음으로 걸었다. 수화기를 들고 오랜 세월 전화하지 않았는데도 자연스럽게 버튼을 꾹꾹 눌렀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기계적인 음성이 들렸다.
"지금 거신 전화는 없는 번호이니 다시 한번 확인 후 걸어 주시기 바랍니다."
뚜뚜-
나는 메시지를 다 듣고 나서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베란다에 나가 화분에 물을 주며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번득 떠오르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물뿌리개를 내동댕이 치고 전화기 앞으로 달려가 전화 번호 안내와 통화했다.
"전에 두 자리 국번이 몇 번으로 바뀌었나요?"
"예,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나는 안내의 친절한 답변 덕분에 설레는 마음으로 다시 한번 전화를 걸었더니 신호음이 몇 번 울린 후에 젊은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잠시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형의 이름을 말하고 젊은이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분은 저의 삼촌인데 전화하신 분은 누구시죠?"
"친군데요. 실례지만 바꿔주실 수 있나요?"
"혹시 양ㅇㅇ 씨 아닌가요."
"예, 맞는데요. 근데 제 이름을 어떻게 알았나요? 그나저나 형은 어디 가셨나요?"
"전화로는 말씀 드릴 수 없는데 한번 뵐 수 있을까요?"
"여긴 좀 먼 데요."
"그건 걱정하지 마시고 자세히 설명 좀 해주세요."
나는 눈부신 햇살이 쏟아지는 바깥 풍경을 보며 한번 여행 삼아 고향을 찾아가야겠다는 마음으로 조카의 의향을 떠보았다.
"제 고향이 어떻게 변했나 구경도 할 겸 제가 가지요."
"아, 그러세요. 조치원에 도착하는 대로 전화 주시면 제가 바로 모시러 갈게요."
"예, 알겠습니다."
열차는 나의 기다림을 싣고 레일 위를 달렸다. 그러나 나의 마음만큼 열차는 빠르게 달리지 않았다. 나는 차창으로 시선을 주었는데 풍경은 눈에 띄지 않고 형의 안부가 궁금했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조카에게 전화로 자세히 말해 달라고 할 걸 후회가 막심했다.
나는 조치원 플랫폼에 내려서 주위을 둘러보았다. 고향은 군데군데 옛 모습을 간직한 채 몰라보게 변했다. 모든 게 낯설기만 한 역전 주위을 둘러보며 찾아간 곳은 형과 함께 차를 마셨던 지하 커피숍이었다.
조카는 내 전화를 받고 커피숍으로 단숨에 달려왔다. 나는 조카를 보자마자 형의 안부를 먼저 물어 보았다.
"어째 혼자 나왔나요?"
"삼촌은 올 봄에 돌아가셨어요. 조금 더 일찍 오시지 그랬어요."
"미안해요. 그런데 제 이름을 어떻게 알고 있었나요?"
조카는 대답 대신에 들고온 종이 상자를 나에게 건네주었다. 나는 무슨 사연이 담겨 있는지 궁금해서 얼른 종이 상자를 열어 보았다. 첫눈에 누렇게 변한 편지 봉투가 띄어 종이 상자에서 꺼내 펼쳐보았다. 편지 봉투에는 하얀 백지가 세월의 흔적을 말해 주듯이 탈색되어 있었다. 조카는 나의 행동을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삼촌 유품을 정리하다가 발견한 건데 편지 봉투 속에 하얀 백지는 무슨 뜻을 의미하나요?"
"예전에 마음이 맞지 않아 싸운 뒤 헤어졌을 때 항복의 뜻도 있지만 다시 시작하자는 의미로 하얀 백지의 편지를 보낸 적 있어요."
"삼촌 친구신데 말씀 낮추세요."
친구? 그래 형만큼 좋은 친구는 없었다. 그런 형을 만나러 왔는데 형을 닮은 조카를 만나다니 과거의 내가 되어 형을 만나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나의 환상은 조카의 음성이 깨웠다.
"저의 어머니는 가끔 제가 하는 짓이 삼촌을 많이 닮았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어렸을 때 저를 캥거루처럼 점퍼 속에 넣고 다니셨데요."
"그 얘기 들으니까 갑자기 형이 보고 싶으네요. 지금 만나러 갈 수 있을까요?"
조카는 지하 커피숍을 나와 승용차 문을 열어주고 운전석에 앉았다. 나와 조카 사이에 침묵이 흐르는 사이에 공원묘지 납골당에 도착했다. 조카도 형을 닮아서 그런지 미리 술을 준비해서 나에게 건네주었다. 형이 살아 있었다면 그간의 세월만큼 할말이 태산같았을 텐데 막상 영전에 술을 따라 주며 말 한마디만 툭 던졌다.
"나쁜 형!"
석양에 타는 놀이 나의 심정을 표시하듯 빨갛게 달아올라 서산으로 넘어가고 있을 때 조카와 함께 공원묘지를 떠났다. 조카는 승용차를 살살 몰며 나의 의중을 떠보았다.
"오늘은 늦었는데 삼촌 집에서 주무시고 낼 가세요?"
"조카가 맘 써 주는 건 고마운데 왕복 차표를 끊어서 오늘 내려가야 돼요."
"제가 환불 받아 올게요."
조카는 승용차를 역 앞에 멈추고 혼자 뛰어나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조카를 기다리는 동안에 주위를 한 바퀴 휘 돌아보았다.
2. 과거로 가는 공책
조카의 남다른 배려에 형이 살던 집에 와 보니 예전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내가 침대에 걸터앉아 손으로 쓰다듬자 조카가 잠자리를 권했다.
"오늘은 여기서 주무세요. 전 다른 방에서 잘게요."
"아녀요. 조카가 괜찮다면 나와 함께 자도록 해요."
"그래도 괜찮을까요?"
"이 참에 삼촌이라고 생각하면 되잖아요."
조카가 멋쩍게 씩 웃어 보이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나는 옷걸이에 겉옷을 벗어 걸은 후에 침대 머리맡에 등을 기대고 공책을 펴서 보았다. 오래간만에 형의 자필을 보니까 반갑기도 하고 격정에 사로잡혀 마음이 착잡했다. 나는 형의 얼굴을 떠올리며 공책에 적힌 글을 읽어 나갔다.
나는 어느 누구보다 한 친구를 좋아했다. 친구와 함께 있으면 몸과 마음이 편안하고, 정신적 부담이 작아 이 세상에 부러울 게 하나도 없었다. 그런 친구가 항상 나와 같이 할 거라 믿었다.
친구의 전화를 받자마자 약속 장소에 나가 보니 여자와 둘이서 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친구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싱긋 웃으며 여자를 소개해 주었다. 나는 미소로 답례하고 친구를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음식을 주문했다.
그 후로 친구와 어울려 다니면 여자 쪽에 너무 치우치는 것이 비위에 거슬렸다. 그리고 친구가 시도 때도 없이 나에게 연락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사람이 살다 보면 별의별 일을 다 겪게 마련인데, 한 여자가 나와 친구 사이에 등장하자 둘도 없는 친한 사이가 점점 멀어지면서 딴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런저런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벨 소리에 깜짝 놀라 전화를 얼른 받았다.
"네?"
"형 난데‥‥."
나는 친구의 혀 꼬부라진 소리에 열을 받아 앙칼진 목소리로 톡 쏘아붙였다.
"지금이 몇 신데 전화질이냐?"
"오래간만에 보고 싶어 전화했는데 너무 하는 거 아냐?"
"야, 넌 날 좋아하는 거니? 여잘 좋아하는 거니?"
"둘 다다!"
그 전화를 끝으로 친구는 연락을 끊었다. 나는 주어진 일상생활에 묻혀 친구를 기다릴 겨를이 없었다. 전부터 알고 지내는 사람으로부터 우연히 친구의 소식을 듣게 되다니 참으로 슬펐다.
화창한 휴일 날 베란다 창문을 활짝 열자 초록색 이파리가 눈에 띄었다. 나는 세탁기에 옷을 넣고 '휘버스에 그대로 그렇게'라는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버튼을 누르는 순간 문득 친구의 얼굴이 떠올랐다. 친구가 노래방에 가면 가장 즐겨서 잘 부르던 노래인데, 지금은 무엇을 하는지 궁금증이 일었다.
나는 세탁기가 돌아가는 동안에 집안을 청소하고, 밀린 일을 마쳤다. 간단한 옷차림으로 집에서 나와 대형 마트로 갔다. 메모지에 적힌 물품을 쇼핑카트에 담으며 매장을 돌아다니다가 꼭 한 번 만났으면 하고 바랐던 친구를 대형 마트에서 우연찮게 만났다.
친구가 아이를 가슴에 앉은 채 나에게 인사하고, 여자는 고개를 약간 까딱하면서 알은체했다. 나는 미소로 답례하고 어색한 분위기에서 벗어나려고 쇼핑카트를 밀고 가는데 친구가 큰 소리로 말했다.
"형! 전화번호 그대로에요?"
친구가 나에게 전화하면 목소리를 듣자마자 끊어 버렸다. 그렇게 몇 차례 매정하게 대하고 나니까 연락이 끊어졌다.
나는 친구에게 매정하게 대했지만 속마음으로는 은근히 좋아하고 있었다. 나는 친구를 좋아할 줄만 알았지 사실 이별에 대한 준비를 하지 않았다.
친구가 나를 떠날 때 다시 오든 말든 왕복 차표를 끊어 주었어야 했는데 친구가 야속하기 짝이 없어 뒷일을 생각하지 않고 편도 차표만 쥐어 주고 사랑하는 친구를 떠나보내며 뒷모습만 지켜보고 있었다.
친구가 내 곁을 떠나면 두 번 다시 생각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어도 며칠이 지나도록 견딜 수 없을 만큼 보고 싶었다. 언젠가 내 잘못을 뉘우칠 날이 있겠지만 세월이 유수와 같이 흘러서 내 등뒤에 산처럼 쌓였다.
나는 글을 다 읽은 후에 조카에게 공책을 넘겨주자 조카는 손사래를 쳤다.
"전 미리 읽어 봤어요. 그리고 그거 주인은 친구 분이신 거 같은데요."
조카는 나를 대하는 마음가짐이 사뭇 진지했다. 그래서 나는 조카를 형으로 착각하고 흠칫 놀라기도 했다. 조카는 소리없이 빙그레 미소지으며 나에게 궁금히 여긴 것을 물어 보았다.
"삼촌을 어떻게 만나셨어요?"
"음, 중학교를 졸업하고 집안 형편이 어려워 회사에 들어갔는데…."
그 때 형은 생산 라인 반장을 맡고 있었다. 나를 유심히 바라보는 눈빛을 보고 형에게 홀딱 반했다. 나는 동료를 통해 형이 혼자 산다는 것을 알고 자주 놀러 갔다.
형은 나와 친하게 지내며 물심양면으로 큰 도움을 주었다. 나는 형을 의좋은 형제처럼 따르다가 연상의 여자에게 빠져 형을 소홀히 생각했다.
나는 식도 올리지 않고 연상의 여자와 동거 생활을 시작했다. 연상의 여자와 동거해도 형과의 인연을 유지하려고 마음먹었는데 나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지금 살고 있는 부산은 생산 공장을 이전하여 자리잡았다. 나는 부산에서 갖은 고초를 숱하게 겪으면서 꿋꿋이 살았다.
나는 조카와 함께 과거로 가는 여행을 하는 동안에 밤이 깊어졌다. 조카는 하품하며 기지개를 켜더니 히프노스(Hypnos)를 이기지 못하고 수면가루에 취하여 잠이 들었다.
나는 이튿날 침대에서 일어나 조카가 밥상을 차려 준 것을 맛있게 먹었다. 나는 가족이 아무도 없어 손수 밥도 하고 빨래도 하는데 이것이 실로 얼마 만의 일인가? 예전에 형이 아침을 차려 주면 나는 기분이 좋은 듯 벙글거리며 맛있게 먹었다.
하루 동안에 형을 대신해서 조카와 지냈지만 나는 형과 함께 한 착각에 빠졌다. 조카는 차표를 끊어 나에게 건네주었다. 나는 조카가 세심한 배려를 해주어 흡족히 여겼다. 조카는 열차가 플랫폼을 떠날 때까지 나를 지켜보고 있다가 머리 숙여 정중하게 인사했다. 조카가 머리를 들고 나와 눈길이 마주치는 순간 마지막으로 형을 본 모습이었다.
3. 편도 승차권
나는 부산역에서 나와 집으로 가는 길에 문방구점에 들러 편지지와 봉투 그리고 우표를 샀다. 길가에 늘어선 파라솔에 앉아 조카에게 편지를 써 우체통에 넣었다.
편지를 보낸 이후 조카로부터 기다리던 답장을 전화로 받았다. 조카는 나를 임의로이 대화할 수 있는 삼촌처럼 대했다.
"삼촌, 저에요."
"그래 그동안 잘 지냈니?"
"예, 삼촌 생각이 쉽사리 떠나지 않네요."
"으하하, 조카는 말주변이 좋네."
나는 조카와 통화하면서 또다시 형을 만나는 착각에 빠졌다. 조카는 나의 마음을 알고 있는 듯이 지체 없이 앞으로의 계획을 전했다.
"삼촌, 여름 휴가 때 놀러 갈게요."
"정말? 그러면 고맙지."
"가면 맛있는 거 사주는 거죠?"
"당연한 걸 어렵게 말할 필요 없지."
찌는 듯한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여름날의 오후, 나는 조카를 데리고 제일 먼저 해운대로 갔다. 바다의 정취보다 인산인해를 이뤄 사람을 구경하러 온 듯 했다. 나는 조카를 바라보며 수영할 의사가 있는지 물었다.
"수영복은 준비했니?"
"아뇨, 어렸을 적에 삼촌하고 왔을 때 저기서 수영했어요."
조카가 오른손 검지로 바다를 가리키며 웃음을 머금은 표정이 흡사 형이라도 대하는 것처럼 얼굴 모습이 닮았다.
나는 조카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부산의 여기저기 구경을 시켜 주었다. 태종대에서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 조카에게 바닷바람에 실어 그 때의 심경을 털어놓았다.
"예전에 내가 부부 싸움하면‥‥."
술을 마시고 낭떠러지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기도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했다. 그때 마다 아버지가 없는 어린것을 생각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마음을 다잡아 새 출발을 다짐했다. 나는 그렇게 하고 나면 우울했던 기분이 풀려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사실 지난 시절을 돌이켜 보면 처자식과 함께 먹고살기 바빠 형을 그리워한 적 없었다.
조카는 나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보니 수긍이 가는 투로 응했다.
"저도 삼촌을 잊고 지내다가 뭔가 연관된 것을 보면 생각나곤 해요."
"사람 사는 게 다 똑같지 뭐."
나는 조카를 데리고 자갈치 시장에 갔다. 조카는 많고 많은 바닷물고기 중에서 붕장어를 원했다. 여러 가지 먹는 것 보다 한 가지 풍미를 즐길 수 있고 맛이 좋았다. 나는 조카와 함께 택시를 타고 아파트로 돌아왔다. 조카는 창 밖을 내려다보고 그때의 일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듯이 이야기했다.
"제가 초등학교 때 삼촌이 가족을 태우고 부산에 왔어요."
삼촌은 수영보다 백사장 여기저기 구경을 다녔다. 나는 가족과 함께 큰 튜브에 몸을 맡기고 출렁이는 파도를 즐기다가 육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삼촌은 진녹색의 소매가 없는 셔츠와 반바지를 입고 백사장을 구석구석 둘러보며 걸었다.
삼촌은 가족과 함께 충동적으로 부산에 왔다. 숙박 시설을 예약하지 않아 에어컨이 설치된 숙소는 다 찼다. 그해의 여름은 살인적인 무더위가 계속되고 있었다. 그래도 삼촌은 숙박업을 샅샅이 뒤져 용케 방을 두 개 잡았다. 가족은 무더위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고 삼촌은 어디를 갔다 왔는지 표정이 굳어진 모습으로 새벽에 돌아왔다.
조카는 그 수수께끼가 이제야 풀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소파에 앉아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
"이젠 삼촌의 진심을 알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러니?"
나는 조카의 말에 물음의 뜻을 나타내고 형과 잠자리를 함께 한 지난 일을 들려주었다.
"난 형과 헤어지기 전에‥‥."
형과 나는 한 이불을 덮고 나란히 누웠다. 형은 다정하게 나의 배 위에 왼손을 얹었다. 나의 자지는 서서히 발기를 일으켜 표를 내지 않으려고 얼른 엎드려 누웠다. 형은 오른손으로 안 들어가는 틈을 억지로 파고들어 두더지가 땅을 파는 느낌이 들었다. 형은 나의 자지를 가까스로 정복하자 모로 누워 왼손을 팬티 속에 넣어 엉덩이를 뜨겁게 애무했다. 나는 양쪽으로 성감을 형에게 자극을 받아 심장이 터질 듯 하여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윽!"
"헉헉."
형은 거친 숨을 몰아쉬어 성욕에 자신이 푹 빠졌음을 암시하고, 나는 형의 유혹적인 행위에 마음이 요감했다. 형은 나의 성감대를 잘 아는 듯이 여유 있는 태도로‥‥.
조카는 이야기를 듣다 말고 느닷없이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나를 보고 즉각 반박하고 나섰다.
"우리 삼촌 그런 분 아녀요."
"알아."
"근데 우리 삼촌을 왜 욕되게 하죠? 저 그만 갈래요."
조카는 거실을 가로질러 현관문을 열고 나가는 것을 아무리 못 가게 말려도 막무가내였다. 조카는 형을 닮아 아집을 꺾지 못해 나는 부산역까지 따라나서며 깊은 상념에 잠겼다. 조카에게 형에 대해서 말해 줄 게 있고 무덤까지 함구할 게 있다는 진리를 깨달았다. 그래서 삶은 항상 후회라는 부산물을 양산했다. ※ 공교롭게도 부산 위에 양산이 있다!
그나저나 이 시간에 조치원에 가는 열차가 있을 지 자못 궁금했다. 조카는 부산역에서 기다렸다가 새벽같이 떠나는 열차를 탈 생각이었다. 나는 대합실 의자에 조카와 정답게 마주 앉아 형의 사고를 물었다.
"삼촌은 어떤 사고로 돌아가셨니?"
"삼촌은 여러 곳에서 통증이 심해 어디가 아픈지도 몰랐어요."
조카는 삼촌에 대한 이야기 도중에 자신의 생각을 덧붙였다.
"사실 삼촌이 그 고통을 어떻게 참고 견딜 수 있었는지 정말로 놀랐어요."
"그래서 계속 얘기해 봐."
삼촌은 이유를 알 수 없는 증세로 계속해서 피가 모자랐다. 의사는 피가 빠져 나가는 부위를 알기 위하여 정밀 검사한 결과는 대장암이었다. 삼촌은 원기가 부족하여 늦지 않게 부랴부랴 대장을 수술했다. 나는 입원 가료하는 삼촌을 시간이 나는 대로 문병하러 갔다.
"삼촌, 아들 왔어."
"니가 왜 내 아들이냐?"
"이제부터 아들 할거야. 근데 삼촌 언제 집에 가?"
삼촌은 묻는 말에 대답은 하지 않고 능글능글 웃기만 하다가 우스갯소리했다.
"니거 보여 주면 금방 일어나 가지."
"히히, 정말?"
"그럼, 어릴 적에 삼촌이 씻겨 주면서 만져 보았는데 이제는 많이 컸지?"
나는 삼촌에게 여자가 있다는 것을 은근히 자랑했다.
"여자 친구가 자기 외에는 아무도 보여 주지 말라는데."
"으으."
"삼촌, 많이 아파?"
"아니 갑자기 통증이 와서."
나는 삼촌의 고통스러운 표정을 보고 자신의 자지를 보여 주면 병이 다 나을 수 있는지 물었다.
"삼촌, 내거 보면 진짜 일어날 수 있어?"
"그래. 근데 너 여자 친구하고 그거는 할 줄 아니?"
"으하하, 그건 안 가르쳐 줘도 본능이잖아. 삼촌 기분 좋을 때 사진 한 장 찍자. 자, 여길 봐."
찰카닥
때맞게 병실에 들어온 간호사가 삼촌의 오른팔에 고무줄로 묶어 놓고 피를 뽑자 역정냈다.
"비싼 돈 주고 맞은 피를 왜 뽑아 가는지 모르겠네."
"검사하는 데 꼭 필요해요."
"그래도 조금만 뽑지."
"호호."
일 년 후, 나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여자 친구와 데이트를 즐겼다. 바지 주머니 안쪽에 있는 휴대폰의 진동을 느끼고 손을 넣어 꺼내 보았다. 발신 번호가 어머니라는 것을 알고 지체 없이 받았다.
"엄마, 왜?"
"아들, 삼촌한테 빨리 와라."
어머니의 다급한 음성을 들으면서 삼촌의 병세가 위급한 상황에 있다는 걸 나는 직감으로 알았다. 나는 여자 친구와 헤어지자마자 택시를 타고 병원에 도착했다. 삼촌은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고 색색 숨을 쉬었다. 그러나 시간을 한참이나 넘기고서야 불치의 병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삼촌은 끝내 숨을 거두어 영원한 잠에 들었다. 나는 삼촌을 부둥켜안고 목놓아 울었다.
"엉엉, 삼촌, 안 돼! 죽지 마."
나는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나 허리띠를 풀어 바지와 팬티를 내리고 자지를 보여 주며 삼촌을 깨웠다.
"삼촌, 눈 뜨고 내거 보고서 일어나 봐. 엉엉."
어머니는 흑흑 흐느껴 울면서 나의 팬티와 바지를 입혀 주고 호되게 꾸짖었다.
"아들, 이게 무슨 정신나간 짓이야."
"삼촌이 내거 보여 주면 집에 갈 수 있다고 했어."
중환자실은 울음바다가 되어 병원의 고층 건물을 뒤흔들었다. 그리고 긴 시간이 흘러 삼촌을 떠나보낼 채비를 착착 진행했다.
나와 조카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대합실에 들어온 사람들이 모여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리 어름에 조카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침묵을 깼다.
"참, 삼촌이 돌아가시기 전에 찍은 사진이예요."
조카는 휴대폰을 열어 작은 액정으로 형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형은 피골상접하여 예전의 모습은 찾을 수 없고 다만 우수에 가득 찬 눈을 보고 감정이 복받쳤다. 열차표를 파는 창구가 열리고 조카는 나보다 먼저 의자에서 일어났다. 나는 조카의 옷을 잡고 열차표 사는 것을 만류했다.
"내가 차표 끊을 수 있게 해 주지."
"예, 그렇게 하세요."
나는 열차표를 파는 창구에 서서 아무 생각 없이 말을 꺼냈다.
"형을 만나러 가게 표 한 장 주세요."
매표원은 입가에 미소를 띠고 나에게 목적지를 물어 보았다.
"그 분이 어디 사시는데요?"
"조치원요."
나는 조카에게 열차표를 건네주면서 지금의 기분을 알고 싶어 물었다.
"내가 삼촌 얘기를 들먹여서 속상했니?"
조카는 사심을 버리고 아무도 모르는 비밀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살짝 귀띔했다.
"아녀요. 사실인 줄 알면서 그걸 부인하려는 제가 싫었어요."
"그래, 도착하면 꼭 전화해라."
"예, 그럴게요."
열차는 출발할 시간이 다가왔다는 신호로 기적을 울렸다. 나는 조카와 헤어지려고 하니 마음이 울적하고 세상을 다 산 사람처럼 모든 것을 포기하는 듯이 암담했다.
"언제 다시 놀러 올래?"
"이젠 삼촌이 조치원에 올 차례인 거 같은데요."
"글쎄, 내 몸이 따라줄지 의문스럽네."
나는 조카를 태운 열차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플랫폼에 서서 우두커니 바라보았다. 부산역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일기장과 다이어리 그리고 공책 중에서 어느 것을 살까 고민하다가 두꺼운 공책을 두 권 샀다. 나의 한평생을 두 권의 공책에 다 적을 수 없겠지만 앞으로 생각나는 대로 적어나가기로 작심했다.
지금까지 이 세상을 떠날 때 왕복 승차권을 끊은 사람은 없었다. 한번 떠나면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편도 승차권만 끊은 채 떠났고 다만 떠날 때 누군가의 마음에 새겨 두고 영영 가 버렸다. 이 세상을 떠나는 편도 승차권은 돈을 주고 사는 것이 아니고 떠날 준비가 다 되었으면 하늘에서 자동으로 발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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