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거리 라이딩(Ri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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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화는 주말 밤에 온라인을 통해 영화를 보았다. 영화에 몰입하여 긴장감이 감돌 때 휴대전화 벨이 울려 깜짝 놀랐다.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발신자를 확인한 뒤에 전화를 받았다. 

"석화입니다."

"형, 저 종호예요. 친구가 자전거 렌터(renta)하는데 라이딩 갈래요."

"너 발상이 참 맘에 든다. 두 명 정도 함께 갈 사람이 있는데 네 생각은 어떠니?"

"그럼, 저야 좋죠."

"알았어. 그쪽 의향을 우선 들어 보고 내가 전화할게."

석화는 종호와 통화를 끝내고 반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 벨이 울리다가 한참 만에 반이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네, 아빠!"

"지금 통화해도 괜찮니?"

"예, 말씀하세요."

"아빠랑 함께 자전거 라이딩 갈래?"

"저는 그냥 집에 있는 게 좋아요."

반이는 석화에게 감정을 품고 자전거 라이딩을 썩 반기지 않았다. 석화는 전화를 끊고 철이를 자기편으로 유도하여 반이를 자전거 라이딩에 끌어들일 속셈이 있다. 그래서 반이와 통화가 끝나자마자 철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철이입니다."

"나 반이 아빤데 그동안 잘 지냈니?"

"예, 아버님은 몸 건강하시죠?"

"응, 염려해 준 덕분에 항상 건강해. 철이야, 우리 자전거 라이딩 갈래?"

"어디로요?"

철이는 자전거 라이딩을 갈 의사가 있는 듯 목적지를 물어 보았다. 석화는 자기의 내심이 드러나지 않게 조심해서 대답했다.

"아무래도 여름은 바다의 계절인 만큼 대천 해수욕장으로 갈 생각인데 철이는 어때?"

"그거 좋아요."

철이는 자전거 라이딩을 가고 싶은 마음이 일어 석화의 제의를 쾌히 승락했다. 석화는 철이 일에 대해서는 한시름 놓으며 반이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 대신 반이 좀 설득해서 우리 같이 가게 해줄래?"

"그 문제는 걱정하지 마세요. 아버님 제가 알아서 할게요."

"그래, 부탁한다."

"예, 그 때 뵈요."


   종호는 만날 시각과 장소를 오전 8시 자전거포로 정하고, 석화는 펜션(pension) 1박을 예약했다. 자전거포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날에 4남자는 일찍이 모였다. 3명의 남성은 각양각색의 트레이닝복을 입었다. 그런데 반이는 녹색 반바지에 노란색 티셔츠를 입고 있어 석화는 못 보던 옷이라 궁금히 여겼다.

"반이야, 그 옷 어디서 났니?"

"형이 사 줬어요."

"형이 널 아예 어린애로 만드는구나."

퍽~

반이가 주먹으로 석화의 명치를 때려 어른에게 버릇없이 굴었다. 석화는 손으로 명치를 쓰다듬으며 아픈 것을 참았다. 철이가 석화 옆에 서서 반이의 행동을 나무랐다.

"반이야, 아버님께 그러면 못써!"

반이가 화가 나서 씩씩거리며 석화를 째려보았다. 석화는 자신이 처해 있는 현실을 직시하고 실수에 대해 반이에게 사과했다.

"내가 모르고 그만 ‥‥ 반이야, 미안! 근데 전에는 안 그랬는데 성미가 좀 거칠어졌다."

"다 아빠 때문이야~."

석화는 안색이 좋지 않은 표정으로 분위기를 바꾸려고 연장자로서 라이딩 책임자를 정했다. 4남자가 의견 충돌했을 때 가장 중립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는 종호가 제격이라서 임무를 맏겼다.

"라이딩을 주선한 종호가 리더(leader)해라."

"예, 그럼 비용 관리는 형이 하세요."

"알았어. 다들 돈 내놔 봐."

반이를 제외하고는 3명의 남성은 돈을 거두어 석화가 그것을 맡았다. 4남자는 자전거 안장 위에 올라타고 페달을 밟았다. 종호가 앞장서고 반이와 철이 그리고 석화 순으로 그 뒤를 따랐다. 석화는 자전거 맨 뒤에 반짝거리는 LED을 달았다. 철이와 반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자전거를 타고 대열에서 이탈하지 않고 재미있게 라이딩을 즐겼다. 

종호는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하여 자동차 전용 도로를 피해 지방도로 안내했다. 그 덕분에 시골의 정취를 맛보며 지방도를 쌩쌩 달렸다. 그런데 20킬로미터 지점에 이르렀을 때 석화는 다리의 근육에 통증이 오기 시작했다. 아픔을 꾹 참고 페달을 밟아 대열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이제는 더 참을 수가 없어 라이딩을 그만두려고 할 때 반이가 먼저 고통을 호소하면서 포기할 뜻을 표했다.

"종호 삼촌, 더 이상 못 가겠어요."

종호는 자전거를 멈추고 땅에 발을 딛은 채 뒤를 돌아보았다. 반이가 고통으로 얼굴이 일그러진 표정을 짓고 있어 종호는 나무 그늘에서 잠시 쉬기로 했다.

"그럼 여기서 쉬었다 갈까?"

"나 안 갈래요."

반이가 돌연히 라이딩을 중도에 포기하는 바람에 3명의 남성은 앞으로 나아갈 일이 난감했다. 종호는 말없이 석화의 얼굴을 바라보고 반이를 데려가라고 눈짓했다. 현재의 상황을 뒤늦게서야 석화가 파악하고 종호의 뜻을 거슬러 반이에게 아파트로 돌아갈 것을 지시했다.

"반이는 여기서 쉬었다가 왔던 길을 다시 가라. 그리고 자전거 반납하고 집에 돌아가."

석화의 말에 실망하였는지 반이는 오만상을 찌푸리고 대답도 안했다. 철이가 반이의 안전을 고려에 넣고 아파트로 돌아가는 길에 동행을 자청했다. 

"아버님 제가 데리고 갈게요."

"철이의 맘을 모르는 건 아닌데 반이를 남겨 두고 우리는 끝까지 가는 거다."

석화는 철이의 의사를 단호히 거절하고 라이딩을 강행했다. 철이는 어찌할 도리가 없어 멍한 표정으로 상황을 지켜보았다. 석화가 자전거로 그 자리를 출발하자 종호와 철이도 마지못해 페달을 밟았다. 철이는 반이가 걱정스러워 뒤를 돌아보았다. 

석화는 반이로 인하여 잠시 휴식을 취하는 바람에 다리의 통증이 가시고 페달을 밟는 힘이 가볍게 느껴졌다. 3남성은 자전거를 타고 바람을 가르며 달렸다. 그러나 반이를 염두에 두고 있어 마음이 쏠렸다. 


   종호는 한적한 나무 그늘 아래에서 자전거를 멈추고 휴식할 것을 권했다. 석화는 내심 무척 기뻐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3남성은 일렬로 자전거를 세워 두고 잔디밭에 편하게 앉아 음료를 마셨다. 종호가 음료 한 모금 마시더니 석화 얼굴을 바라보고 의외로이 여겼다.

"전 형이 제일 먼저 낙오할 줄 알았는데 반이가 처지네요."

"넌 내가 약골로 보이니?"

"에이, 형 표정을 살피면 반이 때문에 이를 악물고 달리는 거 다 알아요."

"히~, 그러지 않아도 아들 하나 얻기 위해서 아버지의 길이 험난하다는 것을 요즘 들어 뼈저리게 느끼고 있어."

반이가 라이딩을 중도에서 포기하면 석화가 의당히 아들을 데리고 귀가해야 했다. 그러나 석화는 반이에게 포기하는 것을 가르치고 싶지 않았다. 앞으로 자신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세상일에 부닥쳤을 때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는 자신감을 심어 주고 싶어 석화는 반이를 남기고 떠났다. 석화가 종호와 철이와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바람이 진초록의 들판을 가로질러 잔디밭에 앉아서 쉬고 있는 3남성의 땀을 식혀 주었다.


   대학생들이 무리를 지어 자전거를 타고 3남성 앞을 지나가며 손을 흔들었다. 3남성은 손을 들어 답례하다가 맨 나중에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다. 철이는 반이 얼굴을 알아보자마자 바로 반가워했다.

"어, 반이다!"

3남성은 철이의 말이 출발 신호가 되어 늦지 않게 부랴부랴 자전거를 타고 대학생들의 무리를 따라갔다. 철이가 엉덩이를 들고 자전거 페달을 열쌔게 밟아 반이 곁으로 단숨에 다가섰다. 종호도 자전거 속력을 내 2학생과 합류하고, 석화는 힘에 부쳐 도저히 못 따라가고 뒤로 처졌다. 석화와 3남자의 거리가 점점 멀어져 고개 너머로 가물가물 사라졌다. 

3남자는 칠갑산 어귀에 먼저 도착해서 휴식을 취하며 석화가 오기를 기다렸다. 시간을 한참이나 넘기고서야 석화가 헉헉거리며 나타났다. 3남자는 석화를 보자마자 자전거를 끌고 비탈길을 올라갔다. 석화가 자전거에서 내려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야, 니네들만 쉬고 난?"

3남자는 석화의 말을 들은체만체하고 가던 길을 걸어갔다. 석화가 붉게 상기된 얼굴로 3남자 뒤를 따라가며 혼자서 중얼중얼했다. 반이가 뒤를 돌아보고 통쾌하게 보복한 듯이 혀를 쑥 내밀었다. 석화는 반이와 싸워서 지지 않으려고 가운뎃손가락을 치켜들고 서양식 욕을 했다. 반이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2남성에게 이야기를 하자 종호와 철이의 웃음소리가 크게 칠갑산에 메아리쳤다. 

산 중턱에 다다랐을 때 반이는 석화를 힐끗힐끗 훔쳐보고, 석화는 땅에 시선을 두고 힘겹게 비탈길을 올라갔다. 홀로 길을 걸어도 힘겨울 판인데 자전거를 끌고 가니 힘이 빠졌다. 반이는 2남성에서 벗어나 석화에게로 다가오며 용기를 북돋우어 주었다.

"아빠, 힘내세요."

"오, 그래! 반이 몸 상태는 괜찮니?"

"예, 아까는 못 갈것 같았었는데 지금은 아무렇지 않아요."

반이는 라이딩을 통해 인내심을 배우고, 석화는 아버지의 강한 의지를 보여 주기는커녕 오히려 동정심을 유발했다. 

4남자는 칠갑산 정상에 올라 주위를 살펴보며 수려한 경관에 탄성을 질렀다. 반이는 자전거를 타고 내리막길로 내려갈 생각에 기분이 좋아 손을 높이 치켜들고 소리를 질렀다.

"야호~, 신난다!"

"반이야, 아래로 내려갈 때도 걸어가야 돼."

"왜 또?"

반이의 속셈을 철이가 환하게 알고 그에 대비해 자전거 타는 것을 제지했다. 철이는 경험에 비추어 자세히 설명했다.

"자전거는 산에 오르는 것보다 내려가는 게 더 위험해."

"에이 씨, 좋았다 말았네."

반이는 산을 내려가다가 철이의 곁으로 가까이 다가서서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불렀다.

"형!"

"응, 왜 불러?"

"줄무늬 수박과 줄무늬 없는 수박 부부가 아이를 낳았는데 호박이 나왔어."

"또 수박 얘기냐? 요번엔 뭐가 문젠데?"

철이는 눈을 흘기고 반이의 말을 가로챘다. 반이는 문제의 요점을 철이가 알아듣기 쉽게 또박또박 설명해 주었다.

"호박을 줄무늬 없는 수박으로 치더라도 맛은 변하지 않잖아. 이걸 어떻게 해야 되지?"

"에~.그게 그러니까 ‥‥."

철이가 머릿속에 줄무늬 수박 더하기 줄무늬가 없는 수박은 호박을 그리며 뜸을 들이다가 적절한 답을 찾지 못해 마땅찮은 표정을 지었다. 

"에이, 골치 아프게 만드네."

"그건 말야. 호박 속을 파내고 수박 속을 채우면 되는 거야."

"으하하~, 너 한 대 맞아야겠어."

"왜?"

"너 땜에 내 머릿속에 수박이 들어 있는 것 같아."

"히히~."

4남자는 라이딩 중에 이 얘기 저 얘기 나누다가 대화의 주제로 자연스럽게 짝을 지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석화는 종호 편에 서고, 반이는 철이 편에 서서 자기 말이 옳다고 주장했다.


   모든 일은 순조롭게 되어 4남자가 아무 탈 없이 대천 해수욕장에 도착하자 페달을 힘차게 밟아 무서운 속력으로 달렸다. 4남자는 자전거를 타고 바다에 뛰어들 듯이 소리를 질렀다.

"야~, 드디어 바다가 보인다~!"

반이는 해변에 도착하자마자 자전거를 냅다 팽개치고 옷을 훨떡 벗어젖혀 알몸으로 바다에 뛰어들었다. 석화가 반이의 돌발적인 행동을 막으려고 소리쳐 불렀다.

"반이야!"

석화가 이름을 부르는 소리보다 앞서 반이가 바다에 풍덩 빠졌다. 반이의 행동을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격려와 함께 비명 소리가 났다.

"고놈 알몸으로 수영하다니 배짱 한번 두둑하네."

"이야~, 뉘 집 자식인가 보기 좋다!"

"꺅, 쟤 뭘 잘못 먹었나 왜 그래?"

소녀가 얼굴을 붉히며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자 해양경철이 이쪽으로 단숨에 뛰어와 반이의 행동을 제지했다.

"학생, 이리 나와 봐."

"왜요?"

반이가 해변으로 당당하게 나오자 해양경찰이 위아래를 훑어보고 가족을 찾았다.

"부모님 어디 계셔?"

"저기요?"

반이가 손가락으로 석화를 가리키자마자 해양경찰이 그쪽을 바라보았다. 해양경찰이 석화 쪽을 바라보는 바람에 그는 기겁하여 달아나며 손으로 허공을 휘저어 손사래를 쳤다.

"아녀요. 나 모르는 얘에요."

종호와 철이는 석화의 반응이 하도 뜻밖이라 얼떨떨한지 뒷걸음질하며 위기를 벗어나려고 동시에 달음박질로 그 곳에서 벗어났다. 반이는 3남성의 모습을 멀거니 바라보고 불만을 표시했다.

"에이 씨, 치사하게 나만 떼어놓고 도망 가는 게 어딨어요."

반이는 해양경찰에게 꾸벅 인사하고 여기저기로 흩어진 옷을 주섬주섬 입은 뒤에 3남성의 뒤를 따라갔다. 3남성은 도망을 가며 웃음보를 터뜨리었다. 석화는 목소리에 웃음기가 들은 채로 자신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반이 때문에 나 아빠 그만둘까 보다. 언제 시간 나면 유전자 검사를 받아 보던가 해야지 나 원 참!"

"킥킥~ 근데 거기서 왜 도망치셨어요."

철이는 웃음을 참다못해 입을 다문 상태에서 코로 터져 나오며 옆에서 한마디 거들었다.

"반이 혼자 창피 당하는 게 낫지 않나?"

"저는 반이가 알몸으로 바다에 뛰어들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반이가 화제의 도마 위에 올라 3남성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잠시 뒤에 3남성의 곁으로 다가선 반이는 붉으락푸르락 어찌할 바를 몰라서 씩씩거렸다. 철이가 목소리에 웃음기가 들어 반이에게 잘못을 지적했다.

"여기가 어디라고 빨가벗고 수영을 하니?"

"수영복을 안 가져왔으니까 그렇지."

"야, 그럼 팬티라도 입고 바다에 들어가던가 하지."

"급하게 옷을 벗다 보니 한꺼번에 벗겨지는데 도대체 나더러 어쩌라고 그래? 아무튼 내 맘대로 하지도 못해?"

반이가 넉살 좋게 말을 받아넘기는 바람에 3남성은 아까 일을 상기하며 환하게 웃었다. 반이는 자신의 돌발적인 행동에 대하여 아무런 거리낌없이 동기(動機)가 순수했다. 석화는 '하늘색 꿈'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4남자는 대천항에서 생선회와 매운탕을 먹고 부두를 걸어서 펜션으로 향했다. 펜션 앞 마당에 자전거를 세워 두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 여기저기로 흩어져 벌렁 드러누웠다. 석화가 제일 먼저 샤워하고 실내에서 팬티을 입은 채로 지냈다. 3남자는 번갈아 샤워하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갈아 입었다. 


   4남자는 오락 프로를 시청하면서 휴식을 취했다. 저녁은 각자 취향에 맞게 전화로 음식을 주문해 맛있게 먹었다. 깊은 밤에 잠을 잘 시간이 되어 반이가 어린애 같은 발상을 냈다.

"우리 손바닥으로 짝을 정해 자기로 해요."

"그거 참 좋은 생각이다."

3남자는 반이의 의견에 동의하고 동시에 손바닥을 내밀었다.

"엎어라 제쳐라~."

반이 의도는 좋았으나 결과가 나쁘게 되었다. 석화와 반이가 한 조에 속하고, 종호와 철이가 한 조가 됐다. 당면 과제는 어느 조가 거실과 방으로 나누어 잠을 자는 결정이 남아 있다. 4남자는 한결같이 가위바위보로 결정을 짓기로 마음을 정했다. 석화는 먼저 반이에게 가위바위보를 지시했다. 상대편은 철이가 팔을 겉어붙이고 대응했다.

"가위바위보!"

"아이고, 분해~!"

반이가 철이와 가위바위보해서 지자 석화가 자신 있는 태도로 나섰다.

"야, 형을 힘으로 못 이기면 가위바위보라도 이겨야지? 철이, 덤빌테면 덤벼 봐."

"가위바위보!"

"이야~, 우리 팀이 단번에 이겼다."

철이 혼자 가위바위보해서 부자(父子)를 이겨 환호성을 질렀다. 석화와 반이는 기가 꺾인 채로 거실에서 잠을 자고, 종호와 철이는 방 안으로 살며시 들어가 침대에 누웠다. 반이는 잠자리에 들어 잠을 못 이루고 뒤척거렸다. 석화는 반이의 속마음을 낌새채고 의중을 떠보았다.

"방에 들어가 잘래?"

"그래도 괜찮겠어요?"

"응, 아빠는 혼자 자는 게 더 편해."

반이는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잠자리에서 재빨리 일어났다.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가 이불 속을 파고들어 2남성의 가운데에 누웠다. 2남성은 자리를 조금씩 비워 주어 반이가 침대에 편하게 눕도록 해주었다. 철이가 모로 누워 반이 얼굴을 바라보고 낮에 있었던 일을 들추었다.

"아까 니 모습 누군가 사진 찍어 인터넷에 알몸을 올리면 스타 될거야."

"에이, 설마 ‥‥ 그래도 얼굴은 가려 주겠지?"

반이는 뜻하지 않은 말을 듣고 걱정이 되어 스스로 안심하는 투로 말했다. 종호가 2학생 곁에서 대화를 듣고 있다가 상황이 불리하다는 것을 전했다.

"나 같으면 얼굴을 모자이크해야 할지, 거기를 모자이크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겠는걸."

2남성은 반이의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여 배꼽을 쥐었다. 반이는 2남성의 웃음을 따라서 환하게 웃었다. 방 안에서 웃음소리가 흘러나와 석화의 귀에 들렸다. 석화는 무리한 탓으로 몸이 몹시 피곤하여 스르르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펜션 관리인이 현관문을 다급히 두드려 석화가 잠이 깼다. 관리인은 늦장부릴 시간이 없다며 퇴실을 요청했다.

"열 한 시까지는 퇴실해 주셔야 저희가 청소 끝내고 다음 손님을 받을 수 있어요."

"예, 알았습니다."

석화는 관리인과 현관문 앞에서 헤어지고 문을 열어 방 안으로 들어가 3남자의 모습을 보았다. 남자들이 잠자고 있는 모습이 하나같이 가관이라 눈뜨고 볼 수 없어 싱겁게 픽 웃으며 소리를 버럭 질렀다.

"기상~!. 열 한 시까지 펜션을 비워 줘야 하니까 빨랑빨랑 일어나."

"아이고, 온 삭신이 쑤 셔 자전거 못 타겠어요."

"아빠, 더 잘래요."

3남자는 잠이 덜 깬 상태로 약속이나 한 듯이 몸이 아파 죽는소리했다. 석화는 모든 일을 원만히 수습하고 결국은 용달차를 펜션으로 불러 자전거를 실어 보냈다. 4사람은 식당에서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종호가 궁리 끝에 대중 교통을 이용하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형, 우리 버스 타고 가면 어떨까요?"

"그건 중간에서 버스를 갈아타야 하는데 괜찮겠어?"

석화의 반문에 철이와 반이는 이구동성으로 종호의 의견에 찬성했다. 4남자는 식당에서 나와 자동차에 올라 맨 뒤 좌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종호와 철이와 반이는 시외버스가 보령을 출발하자마자 그냥 곯아떨어졌다. 석화 홀로 자동차에서 밀려가는 경치를 바라보다가 색다른 감회에 젖었다. 석화 자신이 자동차를 운전할 때는 전방을 주시하느라 경치를 제대로 바라볼 기회가 없었다. 지금은 자연과 접해 보지 못한 도시 어린이처럼 차창 밖 풍경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못했다. 자동차가 바람을 가르며 아스팔트 포장 도로를 쌩쌩 달리더니 4남자가 시외버스를 갈아타야 하는 터미널 안으로 들어갔다. 석화는 장난이 발동을 하여 3남자가 시외버스에서 자도록 내버려두고 단독으로 자동차에서 내렸다. 


   시외버스 종점에서 승객이 내리고 운전사는 차내를 살펴보았다. 뒤 좌석에 잠을 자고 있는 3남자가 자동차에서 내리지 않아 운전석에서 일어나 곤하게 자는 그들을 깨웠다.

"손님, 다 왔어요. 일어나세요."

"앗, 한 사람이 없다!"

3남자는 안 떠지는 눈을 억지로 뜨고 운전사 얼굴을 바라보더니 좌석을 이리저리 둘러보고 잠이 확 달아나는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3남자는 자동차에서 후닥닥 내려 반이가 휴대전화를 들고 석화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거신 전화는 전원이 꺼져 있어 다음에 다시 걸어 주시기 바랍니다."

반이의 난감한 표정을 보고 2남성은 대충 감 잡았다. 종호는 상황이 불리하여 철이에게 도움을 청했다.

"철이야, 너 돈 가진 거 있니?"

"어제 아버님께 다 맡기고 없는데요."

반이는 궁리 끝에 기가막힌 묘안을 생각해 냈다. 그래서 2남성에게 좋은 생각을 제안했다.

"형, 우리 택시 타고 가자."

"택시비는 어떻게 하고?"

"아빠가 어디 가서 돈 떨어지면 무조건 택시를 잡고 사정하라고 했거든. 내가 알아서 할게. 자, 나만 믿고 따라와 봐."

반이가 택시 승강장에 가자면서 2남성의 손을 이끌었다. 그리고 택시 운전사쪽으로 다가가 선뜻 말을 붙였다.

"기사님, 조치원까지 얼마나 나와요?"

"한 육 만 원 정도 나올걸."

"저희가 지금은 돈이 없어서 그런데 조치원에 가서 드리면 안 될까요?"

"좋아! 어서 차에 타."

택시 운전사는 반이와 2남성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반이가 올차게 생겨 그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택시 운전사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3남자는 자동차에 타며 웃음지었다. 반이가 앞 좌석에 앉고 2남성이 뒤 좌석에 앉자마자 택시 운전사는 자동차의 기어를 넣어 승강장을 출발했다.


   석화는 터미널에서 시외버스가 오기를 기다리며 3남자의 얼굴을 떠올렸다. 3남자에게 통쾌하게 골탕먹여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시외버스를 한참 기다린 끝에 조치원으로 가는 직행버스가 터미널에 도착하여 손님이 내렸다. 석화는 시간이 급해 지체 없이 직행버스를 타고 출발하기를 기다렸다. 혹시나 하고 떼어놓았던 3남자가 나타날까 조바심했으나 다행히 낯익은 얼굴들이 뜨이지 않아 좌석에 편하게 앉았다. 


   택시가 자동차 전용 도로를 쌩쌩 달려 차량들을 앞질렀다. 반이는 앞 좌석에 앉아 차창으로 비켜 가는 시외버스를 지켜보았다. 종호는 일행이 무사히 조치원에 도착하면 돈을 융통해서 택시 요금을 지불할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반이가 고개를 들어 직행버스를 유심히 바라보더니 환호성을 올렸다.

"야호~, 아빠가 저 버스에 탔어요."

"이야~, 우리 애기 신통해라."

철이는 반이의 수단을 눈치채고 대견하게 여겼다. 그러나 반이의 약점을 말하는 바람에 주먹으로 한 대 맞았다.

퍽~

"아이코, 아파라!"

종호는 웃음을 참지 못해 킥킥거렸지마는 반이의 예상이 들어맞을지 의구심을 가졌다. 택시 운전사는 눈치가 빨라 일의 진행이 순조롭도록 액셀을 지그시 밟았다.


   석화는 직행버스에서 내려 터미널 출입문으로 나가려는 찰나에 소스라치게 놀라 눈이 등잔만했다. 3남자가 택시 옆에 서서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어 다음 상황을 상상하지 않아도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번했다. 반이가 석화를 향해 당연하다는 듯 돈을 요구했다.

"아빠, 택시비 빨리 주세요."

"아이고, 저 웬수~!"

종호와 철이의 환희에 넘치는 웃음소리가 석화의 귓전을 스쳤을 때 스스로 무덤을 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석화는 부끄러워 얼굴이 빨개져 공연히 핑계를 댔다.

"난 너희들에게 재밌는 추억거리를 만들어 주려고 그랬던 거야."

"알고 보면 흉악한 악마야~!"

3남자는 석화 말을 믿기는커녕 오히려 비아냥거리는 투로 말했다. 석화는 택시 운전사에게 돈을 주면서 3남자의 환심을 사려고 온갖 수단을 다 동원했다.

"야, 날 색안경 쓰고 보지 마. 내가 한턱 쓸 테니 모두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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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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