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이야기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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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렇게 날 안달 나게 하던 지원이의 얼굴이 내 머리 속에서 희미하게 사라질 때 쯤 소은이에게 전화가 왔다.

신부화장을 위해 출발 하고있으니 나도 1시간 뒤 쯤 준비하라는 것이었다.

 

윤기사님이 결혼식장까지 태워준다 했지만 나는 거절하고 내 손으로 운전을 했다.

사실 소은이 전화를 받자마자 차를 끌고 조금 일찍 나왔다. 그저 바람도 쐬고 싶고... 지원이가 계속 생각나서 드라이브나 갈 겸...

 

몇 십억 짜리 주택들이 즐비한 동네를 지나 제일 가까운 변두리로 나갔다. 몇 년을 산 호주와는 너무 다른 한국의 풍경에 낮설었다. 혼자서 이렇게 차를 끌고 멀리 나와 본 적도 없었다.

 

운전 석 옆에 항상 앉아서 잔소리 해주던 지원이도 없다. 아니 이제는 소은이가 대신해주고 있지...

 

드라이브가 끝나고 결혼식장에 도착했다. 너무 일찍 도착했지만 다행히 전용 디자이너도 마침 일찍 출근했던 터라 신랑 화장을 시작했다.

 

김현수 본부장님 이렇게 뵈니 정말 미남이시네요. 왠만한 배우들보다도 멋있어요. 제가 많은 배우분들도 메이크업 해드렸는데 이렇게 마스크가 깔끔한 건 본부장님이 처음이네요.

 

... 고마워요... 그런데... 혹시 저... 김현중이랑 육성재랑 유아인 섞어 놓은 것 같나요?

 

?... 본부장님;;; 센스... .말 멋.....’

 

... 센스는 아니고... 저한테 푹 빠졌던 친구가 해 준 말이에요.’

 

? 정말요? 그 친구분 참 성격 좋으신가보다.’

 

... 정말 좋았죠. 저를 정말 인간으로 봐 준 몇 안되는 친구였거든요.’

 

참 좋으시겠어요. 그런 친구도 있고, 평생 진실된 친구 하나만 있어도 그 인생 성공이라잖아요?’

 

그러게요. 그런데 지금은 연락이 안되요... 정말 보고 싶은데...’

 

그럼 오늘 결혼식도 못오시는 건가요?’

 

... 연락이 안되고... 그 친구 지금 한국에 없거든요.’

 

디자이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메이크업이 완료 되었고, 슬슬 기자들이 오기 시작했다. 나는 기자들을 피해 호텔에서 마련해준 작은 홀에서 휴식을 취했다.

 

홀이 너무 작고 답답해서였을까? 에어컨을 틀기위해 직원을 찾으러 나가려는 찰나, 홀 복도를 지나 계단으로 가는 한 사람이 보였다.

... 바로 지원이었다!

 

나는 순간 주저앉았다. 그렇게 보고 싶던... 지원이가 지나갔다니... 뒷모습 이었지만 분명 지원이었음을 확신했다.

나는 마음을 추스르고 지원이가 지났던 복도를 지나 계단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 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우리 집안이 나름 유명한 집안이라 언론에 나의 결혼식이 보도되었었고 지원이도 분명히 그 것을 보고 호주에서 여기까지 내 결혼식에 찾아온 것이 분명했다.

 

지원이를 찾아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지원이를 본다면 호텔 까페에서 커피한잔 마시고도 남을 여유가 있었다. 아니 이런 저런 생각보다 우선 지원이 얼굴을 봐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기자들이 오고 있다는 사실도 까마득하게 잊은 채 호텔에서 제공한 작은 홀을 복도를 뛰어다니며 미친 사람처럼 지원이를 부르며 울부짖었다.

 

지원아!!! 지원아!!!’

 

내 모습을 본 비서실장님이 경비팀을 동원해 기자들의 입장을 지연시켰고, 곧이어 도착한 아버지는 구두를 벗어 나의 배를 발로 차서 나를 넘어뜨리시고는 내 배를 짓밟으셨다.

 

지원이? 장난하냐? 결혼식에서 그 애 이름이 왜 나와!!!’

 

‘... 아버지... ’

 

정신차리고 결혼식 준비해라. 이 일 망치면 어떻게 되는지 잘 알지? 웰빙유업과의 관계도 끝이 난다.’

 

‘... 죄송합니다.’

 

아버지에게 짓밟힌 배를 부여잡고 화장실로 가는 중이었다. 화장실 입구로 들어가려는 순간, 지원이가 내 옆을 지나갔다.

 

지원아!!!!’

 

하지만 지원이는 돌아보지 않고 웨딩홀 쪽으로 향했고 나는 필사적으로 지원이를 붙잡았다.

 

지원아!!!’

 

순간 지원이가 뒤를 돌아봤지만... 그 사람은 지원이가 아니었다.

지원이와 닮은 모습을 한 사람이었을 뿐이었다...

 

죄송합니다.’

 

, 김현수 본부장님? 언론에서 많이 뵈었습니다. 이렇게 실물로 뵙는건 처음이네요.’

 

... 반갑습니다. 제가 사람을 잘 못 봤네요. 저도 언론에서 많이 뵈었습니다. 저는 급한 일이 있어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네 본부장님, 결혼 축하드립니다.’

 

... 감사합니다.’

 

내가 헷갈렸던 건 아마도 로이전자 막내 자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축하인사를 들은 뒤 화장실로 들어갔다. 너무 정신이 없어 냉수로 세수를 했다.

화장실에서 나오는 길에 대한이 형 아내인 유지누나를 만났다.

 

현수씨~! 이게 얼마만이야. 곧 결혼식 시작인데 세수를 한거야? 메이크업 다 지워졌네.’

 

... 누나 오랜만이에요... 대한이형은 잘 지내요? 겨우 연락 닿아서 결혼식 초대장 보냈는데... 감사하게도 와 주셨네요. 제가 연락 안한지 오래 되어서...’

 

초대장 잘 받았고, 덕분에 나도 이렇게 연예인들 많이 오는 결혼식도 다 와보네. 오빠도 왔어. 이따가 인사하라고 할게. 지금 세아 보느라 정신없어. 아직 돌도 안지났잖아... 그나저나 현수씨 메이크업 어떻게하지? 내가 손 좀 봐줄 까?’

 

... 누나 그래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나는 대한이형 와이프인 유지누나를 작은 홀로 안내 했다. 유지누나는 미용을 전공해서 인지 항상 가방에 간단한 화장도구를 들고다녔다.

 

내가 가방에 이것저것 넣고 다녀서 망정이지 어쩔 뻔 했어!’

 

'고마워요

 

그나저나 왜 식 전에 갑자기 냉수로 세수를 하는거야? 메이크업도 다 지워지고...’

 

그냥 좀 답답해서...’

 

새 신랑이 답답하면 쓰나! 조금만 기다려봐! 이래뵈도 내 전공 미용이라고!’

 

‘... 고맙습니다. 그나 그런데 저 오늘 지원이 봤어요. 혹시 같이 왔어요? 지원이랑?’

 

? 뭔 소리야 지원씨가 왔다구? 그럴 리가 없는데?’

 

분명 봤다구요!’

 

아니...’

 

김현수 본부장님, 손님 맞으실 준비 하셔야 합니다. 가시죠

 

유지누나가 말을 하려는 사이 비서실장님이 오셨고 나는 유지누나와 긴 대화를 이어가지 못 한 채로 간단한 인사만 나누고 결혼식 인사를 준비하기 위해 나섰다여러 유명 연예인들과 기업 자제들이 방문했고 그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손이 닳아 없어지는 기분이었다. 수 백 아니 수 천 명의 사람들과 악수를 했다.

이제 인사를 마치고 식장에 입장할 준비를 하라고 호텔 직원이 와서 이야기 해 주었다.

그 순간 저 멀리서 지원이가 보였다.

 

분명 지원이었다. 나를 보며 미소짓고는 호텔 밖으로 나가려는 듯 엘리베이터를 탔다.

... 아까 봤더라면 커피라도 한 잔 하며 얼굴을 볼 수 있었을 텐데...

난 호텔직원에게 화장실을 다녀온다고 5분만 식을 미뤄달라고 이야기 한 뒤 지원이를 뒤 따라 갔다. 엘리베이터를 잡으려 했지만 간발의 차이로 문이 닫혔고 나는 전 속력을 다해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호텔 입구쪽 밖 까지 뛰어갔을 때 저 멀리서 지원이의 모습이 보였다. 너무 숨이차서 목소리를 내기 힘들었지만 그래도 나는 목 청이 터져라 지원이의 이름을 불렀다.

 

‘... 지원아!!!! , 이지원!!!!’

 

순간 지원이가 날 보고 웃고는 손을 흔들어주었다.

 

야이 씨 발... 내가 널 얼마나 보고싶었는데... 미안해... 연락도 못하고 잠수타서...’

 

지원이는 아무 말 없이 그저 웃고 있었다.

나는 저 멀리 지원이의 모습에 조금 더 가가가고 싶어 빨리 뛰어갔다. 지원이는 예전처럼 여전히 웃으면서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려 주고 있었다.

 

드디어 지원이 앞에 난 설 수 있게 되었다.

 

야 이지원!! 너 어디 갔었어!!! 아까 식장에서 내가 널 얼마나 크게 불렀는데 그걸 못 들어!’

 

‘...’

 

지원이의 눈에 눈물이 고여있었다. 지원이는 여전히 웃으며 아무 말 하지 않았지만 그 표정은 모두 괜찮다 이해한다는 표정이었다.

 

... 씨 발 내가 널 그렇게 불렀으면... 내가 염치없이 너를 불렀으면 그래도 뒤 돌아 봤어야지...’

 

순간 나는 감정에 복 받쳐 눈물을 흘렸다. 나도 모르게 지원이 앞에서 다리에 힘을 잃고 무릎을 꿇고 말았다.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지만 눈물이 앞을 가렸고... 태어나서 이렇게 울어본 적이 없는 나는 왜 울면서 소리를 지르는지를 처음으로 알게 될 정도로 흐느꼈다.

하지만 나는 울음을 꾸욱 참으며 지원이에게 이야기 했다.

 

지원아...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나 결혼하지 말까? 아니, 결혼 안할래!!! 우리 그냥... 호주가자. 아니... 캐나다도 좋고 뉴질랜드도 좋아... 우리 같이 살자... ? 너도 내가 보고 싶어서 여기까지 온 거잖아?!!!’

 

무릎을 꿇고 흐느껴 우는 내 앞에서 지원이도 같이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는 두 손으로 내 눈물을 닦아 주었다.

 

순간 비서실장님과 유지 누나, 대한이형이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고 나는 뒤를 돌아 봤다.

 

현수! 현수야!

 

현수씨!! 뭐해, 빨리 식장 입장해야!!’

 

그들을 보고 난 후 다시 지원이를 보았을 때 이미 지원이는 가고 난 뒤였다.

 

지원이가!! 지원이가 왔었어! 유지누나! 대한이형!!’

 

본부장님 얼른 올라가세요... 회장님께서 많이 노하셨습니다.’

 

아니 씨 발~! 회장님? 울 아빠가 회장이건 뭐건 내 인생 내가 사는건데!!! !!’

 

난리는 치는 내 앞에 유지누나가 내 손을 꼭 잡아주었다. 유지누나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있었다.

 

현수씨, 난 현수씨 맘을 잘 알 것 같아... 하지만 현수씨도 알잖아... 지원씨랑... 이루어 질 수 없다는거...’

 

왜 안되는데... 아무도 모르는데 가서 살면 되는거 아니야? ... 이딴 기업 회장 아들이 뭐라고... 외국 나가면 내가 어디 누구인지 알지도 않는다고! 내 맘대로 사랑도 못해... !!!’

 

울부짖는 나를 유지누나가 꼬옥 안아주며 이야기 했다.

 

... 왜 지원씨가 현수씨를 그렇게 좋아했는지 잘 알겠네... 둘이 완전 딴 판이네 성격이...

 

‘....’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내게 대한이 형이 다가와서 등을 다독여 주었다.

 

‘...’

 

대한이 형이 날 안아주었을 때 난 더 이상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걸 느꼈다. 거짓말처럼 사라진 지원이가 어디로 갔을지도 모른 채 나는 경호팀 직원들의 부축을 받고 식장 입장을 위해 홀로 이동했다.

 

그렇게 십 분 정도를 넋 놓고 쉬었던 것 같다.

그 십 분이란 참 일 년 같았다. 그 만큼 많은 생각을 하게 된 시간이었다. 왜 지원이가 호주에서 여기까지 날 보러 왔고... 제대로 된 인사도 없이 가버렸을까... 지원이가 지은 미소는 무엇이었을까?...

한 가지 확실 한 것은 지원이는 내 눈물을 닦아 주면서 미소 짓고 있었다는 것이다.

 

난 알 수 있었다. 지원이의 미소에서 느껴지는 성숙함을...

지원이는 어떠한 현실의 벽도 넘은 채로 살아갈 수 있는 아이라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나보다. 어쩌면 세상이 만든 시선 속에 체념하게 되었을 수도 있나보다. 작년의 나와 지원이는 그만큼 어렸으니 세상을 몰랐을 수도 있다.

 

그리고 난 지원에게 묻고 싶다. 사랑을 버리고 비겁하게 도망친 날 왜 용서 해주는 것이며... 지원이 네가 생각하는 사랑이란 무엇이냐고...

 

생각을 마쳤을 때 쯤 유지누나와 비서실장님이 찾아왔고 유지누나가 메이크업을 다시 해 주었다. 그리고 곧이어 방송 소리가 들려왔다.

 

자 여러분이 기다리고 기다리시던 미남 신랑분이 입장하십니다. 대한민국 자웨이 전자 김윤철 회장님의 장남! 김현수군을 큰 박수로 맞아주세요!!!!‘

 

수많은 사람들이 날 축하해주고 있었다. TV에서나 보던 유명인들도 많았고, 리그에서 활동하고 있는 몇 몇 축구 선수들도 보였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진심인지는 모르겠지만 결혼식장에 입장하는 나를 보는 대한이형과 유지누나의 표정이 꽤나 슬퍼보였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입장하는 순간 멀리 구석에서 지원이가 날 보며 웃으며 박수를 쳐주고 있었다.

나는 지원이를 보고 힘껏 미소지은 뒤 예식장에 입장 했다.


지원아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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