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층 남자와 위층 남성 -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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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아파트 주위에 새 아파트가 우호죽순처럼 늘어나면서 주차 때문에 마음 편한 날이 없다. 택시가 운휴(運休)하는 전날에 기상 시간을 알려 주는 자명종을 끄고 팔자가 늘어지게 잠을 잤었는데 아침 일찍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나는 전화를 받지 않고 그냥 두었다. 잠시 후 또다시 휴대전화 벨이 울려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이사 서비스입니다."
사람 사는 건 이웃을 잘 만나야 마음 편히 살 수 있다. 309호가 이사를 가기 위하여 택시를 다른 곳으로 옮겨 달라고 하는 전화를 받았다. 나는 트레이닝복 바람으로 밖엘 나와 택시를 멀찍이 주차하고 309호가 이사를 가든지 말든지 남의 일에 관여하지 않았다.
내가 아파트로 이사를 왔을 때 509호는 빈집이라 좋은 점도 있다. 다만 겨울철에 난방비가 더 드는 거 빼고는 위층 소음이 들리지 않아 신경을 쓸 필요는 없다. 다음날부터 309호는 내부 수리를 하느라고 소란을 떨었다.
나는 택시가 운휴하는 날에 309호를 지나치게 의식해 다른 날과는 달리 주차했다. 아무 방해도 없이 늦잠을 잘 속셈이 있었던 건 데 아이참, 택시를 주차한 곳에 이사를 간다고 하여 계획이 틀어졌다.
나의 간절한 소망이 있다면 아파트를 떠나 교외의 아담한 주택에서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오디오 볼륨을 높이고 텃밭을 일구어 채소를 가꾸는 것이였다. 주차 문제를 해결해 언제라도 집 안에 택시를 댈 수 있는 주차장을 마련하여 살고 싶다.
지금은 309호가 얼른 이사를 와 나의 스트레스를 확 날려 주기를 바랐다. 그러니저러니 해도 내가 일하러 나가는 날 이사하면 좋으련만 어째서 내가 쉬는 날에 맞추어 이사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아침 늦게까지 잠을 자고 침대에서 일어나 하품하며 기지개를 켜는데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509호가 이사를 온다고 택시를 다른 곳으로 이동해 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나는 밖에 나가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제발 좋은 사람이나 와라."
우중충한 날에 509호로 이사를 온 사람은 단출한 살림이였다. 가재도구가 1톤 트럭도 채 차지 않아 나는 기대를 걸고 이사에 관심을 가졌다. 나는 택시를 막 이동하려는데 감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성이 빙그레 웃으며 감사의 뜻을 표하는 바람에 멈칫했다. 나는 밝고 환한 얼굴로 택시를 다른 곳으로 이동하며 남성에 대한 기억을 불러일으켰다.
몹시 추운 겨울날 남성이 도로 가에서 택시를 보자 반가이 손짓했다. 나는 택시를 몰고 남성의 곁으로 가까이 갔다. 남성이 허둥거리고 택시에 타는 행동을 보고 출근 시간이 촉박하다는 것을 알았다. 남성은 택시를 타자마자 운행 요금을 먼저 물었다.
"H회사까지 얼마나 나오나요?"
나는 운전대를 왼쪽으로 틀고 남성에게 운행 요금을 일러 주었다. 남성의 눈치를 보니 택시를 타고 갈 모양이였다. 나는 택시를 급히 몰아 남성이 지각하지 않게 도로를 달리는 차량을 앞질렀다. H회사 정문에 당도하여 남성으로부터 택시미터 요금을 받는 순간 나는 남성을 보고 넋이 나갔다. 얼굴이 잘생긴 남성은 순백의 안구에 까만 동공으로 나의 마음을 빼앗았다.
이후에는 택시를 몰다가 보도를 걷는 남성을 보면 앞에서 손을 든 손님을 지나쳐 버리고 홀로 애를 태웠다. 그런데 남성은 오늘 509호로 이사를 왔다. 나는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갖가지 상념에 잠겼다. 그러고 보니 지나온 생활환경을 포맷(format)시켜도 일상생활이 구동(驅動)하면 기억이 부분적으로 다시 실행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309호가 이사를 왔다. 현관문을 활짝 열어 놓고 집들이를 해 나는 층계를 오르며 속이 들여다보이는 짓을 했다. 309호로 이사를 온 사람은 신혼 부부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309호 남자는 키가 크고 인사성이 밝아 층계에서 나와 마주치자 미성(美聲)으로 공손히 인사했다.
"운동하고 오시나 봐요?"
"예!"
나는 미소로 답례하고 309호 남자와 어깨를 스치며 지나가다가 버릇처럼 뒤돌아보았다. 309호 남자의 뒷모습을 보고 내 속이 빤히 들여다보였다.
'오, 괜찮은 데!'
그동안 알 수 없는 불안과 초조감이 나를 압박하고 있었는데 이사 문제가 원만하게 해결되어서 너무 기뻤다.
찌는 듯한 더위에 종일 택시를 운전하느라고 파김치가 다 되었다.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조명등이 번쩍하고 전구가 나갔다. 거실등을 켜고 옷을 벗어 놓은 뒤 욕실에 들어가 샤워하며 내일은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올 때 전구를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몸에 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것을 수건으로 닦고 옷장 서랍을 열어 사각팬티를 꺼내 입었다. 노트북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에 접속하여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나는 잠을 자다가 방 안이 훤해지는 것을 느끼고 눈을 슬쩍 떴다. 층계 조명을 지고 아파트 안으로 들어선 사람은 남자라는 것을 알았다. 남자는 현관문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조심 닫고 어둠침침한 방 안을 들어왔다.
나는 정신이 번쩍 들어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남자는 발소리를 죽이고 침대 옆으로 다가왔다. 나는 숨죽이고 귀를 기울여 엿들으며 남자를 그냥 내버려두었다. 사실 나는 고함고함 지르면서 남자를 내쫓아야 마땅한 데 겁에 질려서 온몸이 마비됐다. 남자는 옷을 거침새 없이 벗어부치고 있어 나는 극도로 긴장된 순간에 속말했다.
'왜 옷을 벗지?'
남자는 내가 누워 있는 침대로 다가와 이불을 살그머니 걷어들었다. 나는 갑자기 당한 일이라 정신이 없어 숨이 가쁘고 어깨와 가슴이 벌렁거렸다. 남자는 이불 속을 파고들어 내 몸을 뜨겁게 애무했다. 나는 입을 다물고 끙끙 앓았다. 그러나 나의 자지는 숨막히는 긴장과는 별개로 한껏 부풀어 팽팽했다. 남자가 나를 쓸어안고 가슴에 입을 맞출 때 까끌까끌한 수염이 피부감각을 자극했다.
나는 남자가 어디까지 행위를 진행할지 내심으로는 좋아했다. 남자는 거침없이 내 사각팬티를 잡아당겨 발가락에 끼워 능숙한 솜씨로 벗겼다. 나와 남자의 거친 숨결이 진공 상태를 만들어 폭발적 에너지로 변환했다. 남자는 젊음을 마음껏 발산하여 괴걸스레 굴어 나는 감동적인 느낌을 나타냈다.
"아~!"
나는 철판구이에 고기처럼 육즙이 나오고 피육(皮肉)을 말아 색정이 동했다. 남자는 상체를 바로 세워 나의 자지에 맑은 분비액을 발랐다. 그리고 나의 자지에 남자의 항문을 문댔다. 나는 남자의 행동을 예상하고 다리를 구부렸다. 남자는 내 뜻을 따라서 몸을 뜨겁게 애무했다. 나는 남자의 기분이 상하지 않게 등을 어루만지다가 자지를 쥐고 흔들었다. 나와 남자는 서로의 자지를 잡고 시소를 타 듯이 오르락내리락했다.
'아~, 좋다!'
남자는 나를 수영장으로 착각하고 자유로이 유영했다. 나는 남자의 물장구질에 몸을 바쳐 욕정을 채웠다. 남자는 수영장 바닥을 딛고 서서 사정하듯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남자는 아무 말도 없이 침대에서 일어나 옷을 입고 방을 나갔다. 나는 남자를 가지 못하게 말리고 싶어도 본색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가만히 누워 있다. 남자는 현관문을 열고 나가 층계를 통해 아래로 내려갔다. 나는 남자의 행적을 의아하게 생각했다.
'저 사람이 어디에 사는 거지?'
10분 후 사람이 층계를 오르는 소리가 들리고 509호 현관문이 열렸다. 509호 남성이 발을 디딜 때마다 천장이 쿵쿵 울렸다. 나는 침대에 누워 남성의 발길을 따라서 신경을 곤두세웠다. 욕실에서 수도를 틀어 물이 솨솨 흐르는 소리와 함께 309호 현관문이 조용하게 닫히는 소리가 층계를 통해 들렸다. 나는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뒤범벅이 되어 어지러운 형편을 뒤로 미루었다. 침대에서 일어나 발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걸어 욕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수건을 물에 적셔 몸을 닦았다.
길가에 죽 늘어선 자동차 사이를 쌩쌩 달리는 저 택시는 이른 아침에 누구를 태우고 어디로 가는 걸까? 나를 보고 밤사이 남색에 빠졌다고 볼 사람이 있을까? 나의 색정은 한쪽 구석에 처박혀 있어 묵적했다. 그러나 소설에 있을 법한 남자의 육체적 행위를 맛본 색정은 일을 뒤로 미루고 사각팬티 안에서 요동질했다.
하루 종일 택시를 몰며 길거리에서 만난 나의 이상에 맞는 남자들은 실제로 육체적 접촉만 없을 뿐이지 상상으로 성적 접촉을 당했다. 홀로 욕정을 채우는 남색은 김빠져서 일을 못 하겠다. 나는 일찍이 택시 운행을 마치고 아파트에 돌아와 베란다에 쌓아 둔 재활용과 쓰레기를 버렸다.
나는 509호 남성이 아파트에 돌아온 것을 확인하고 일부러 현관문을 안 잠갔다. 남성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침대에 누워 잠을 이루지 못하고 엎치락뒤치락했다. 자정이 넘어 남성이 외출하는 소리에 관심을 가지고 어디를 가고 있는지 궁금증이 일었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노트북 컴퓨터를 켜고 남성을 기다리며 시간을 보냈다. 1시간, 2시간 ‥‥ 나는 기다리다 지쳐 침대에 푹 쓰러졌다.
남자를 가슴에 안으면 안은 만큼 육체적 쾌락에 시달리며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다. 그러나 남자를 자유로이 놓아주면 가슴은 허전해도 마음이 편안했다. 남자가 올 때를 마음을 졸이며 기다리다가 밤을 뜬눈으로 지새웠다. 하지만 정신적인 고통을 꿋꿋이 이겨 내면 색정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몸이 됐다.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믿었던 남성마저 외박하다니 다소 실망스러웠다. 내가 남성의 사생활을 간섭하는 건 좋지 않지만 배신감이 들어 왠지 마음이 서글퍼졌다. 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출근 준비를 서둘렀다. 현관문을 열고 아파트를 나서려는 순간 감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509호 남성과 마주치는 바람에 소스라뜨리며 물러서 비명을 질렀다.
"으악, 깜짝 ‥‥!"
"죄송해요. 저 때문에."
"아, 아녀요."
나는 말없이 509호 남성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509호 남성은 내 태도를 이해할 수가 없다는 듯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고 층계를 올랐다.
나는 택시를 운전하며 거미줄처럼 뻗은 도로망을 누비고 다녔다. 얼굴 생김새가 남성과 비슷한 사람을 보면 택시를 도로가에 멈추어 멍하니 차창 밖을 보고 성행위를 회상했다.
남자는 농익은 자두처럼 나의 자지를 쪽 빨아먹었다. 입아귀가 터지게 자지를 밀어 넣고 입을 오므려 질(膣) 속에 삽입하는 성행위했다. 같은 동작을 몇 번이나 되풀이 해도 번번이 새로운 감이 들었다. 나는 철판구이에 고기처럼 육즙이 나오고 색정이 동하여 사정할 조짐이 보였다. 성행위가 무르익어 가는 도중에 헤살놓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내 몸이 침대 위에 둥둥 떠내려가는 것을 남자는 골반을 부여잡고 색욕에 빠졌다. 나는 더 기다릴 수가 없어 남자가 하려는 것을 제지했다.
"아아, 그만!"
딸깍~
택시의 뒷문이 열리고 손님이 불쑥 승차했다. 나는 자세를 바르게 하고 예의를 갖추어 손님을 맞이했다.
"안녕하세요? 어디로 모실까요?"
"대학가 원룸요."
나는 리어미러를 통해 뒤 좌석에 앉은 남학생을 힐끔 쳐다보았다. 남학생은 수수한 옷차림으로 나에게 좋은 인상을 주었다. 나는 택시를 운전하며 머릿속에 떠오르는 509호 남성을 풍선처럼 펑 터뜨리고, 뒤 좌석에 앉은 남학생의 자지를 머릿속으로 그리는 상상하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는 무의식적 행동으로 택시를 운전하다가 원룸에 가는 길을 지나쳐 버렸다. 남학생은 깜짝 놀라 눈이 동그래졌다.
"기사님, 저기로 가야하는데요."
"아 참, 죄송합니다."
남학생은 리어미러로 내 얼굴을 바라보고 느낀 바를 밝혔다.
"무슨 고민이라도 있으세요?"
"아뇨. 내가 그렇게 보이나요?"
"뭣을 골똘히 생각하시는 것 같아서요."
나는 남학생의 마음씀씀이가 눈물겹게 고마워 택시미터 요금을 안 받았다. 나는 남학생과 원룸 앞에서 헤어지고 택시를 운전하면서 남학생의 좋은 인상이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나는 택시를 아파트에 주차하고 슈퍼마켓을 가다가 309호 부부를 길거리에서 만났다. 부인이 나에게 머리 숙여 상냥스레 인사하고, 나와 남자는 묵례를 주고받았다. 나는 부부의 옷차림을 보고 행선지를 알아보았다.
"두 분이 어디 가세요?"
"오늘 결혼 기념일이라 집사람과 외식하려고요."
"네, 행복한 시간 가지세요."
"고맙습니다!"
나는 부인의 배가 볼록하여 임신한 걸 직감으로 알았다. 부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뜻밖에 509호 남성의 얼굴이 문득 떠올랐다. 남성은 석이를 닮아 사람을 끄는 마력이 있다. 슈퍼마켓 매장에서 식품을 사며 세월이 흘러도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 떠올랐다.
"난 너를 좋아하지 않아 니거 만지는 걸 좋아해."
"알고 있어요."
나는 석이의 당돌한 말을 듣는 순간 어이없는 표정을 짓고 격한 어조로 다구쳐 물었다.
"날 떠날거면 처음부터 끝까지 못 만지게 했어야지?"
"그걸 알았으면 그랬을거예요."
나는 격했던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석이를 살살 달랬다.
"여자와 관계를 가진다 해도 난 상관 안해."
"내가 싫어요."
석이는 나의 말을 거침없이 받아넘겼다. 나는 차분하게 앞뒤를 헤아리지 않고 화가 불끈 치솟았다.
"니가 떠나면 매일 불행하게 해 달라고 기도할거야."
"맘대로 해요."
"씩씩~."
나는 참는 것도 한도가 있어 석이를 힘껏 껴안고 둘이서 죽고 싶었다. 나 자신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거늘 하물며 석이를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등을 돌렸다. 석이가 내 모습을 보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걸음걸음이 부자연스러웠다. 지금이라도 석이가 단숨에 뛰어와 내 어깨를 손으로 잡으면 일순간에 격한 감정이 무너질 것 같았다. 석이에게서 아무 반응이 없어 나는 궁금하여 뒤돌아보고 싶었지만 아픔을 꾹 참고 가던 걸음을 계속해서 걸었다.
나는 아파트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도 방 안이 허전하다는 것을 느낀 적이 없었다. 지금은 외로움이 엄습하고 공허감으로 겹겹이 쌓여 파도처럼 밀려와 한숨을 지었다. 사람의 명이 다하면 아무리 후회해도 소용없는데 내 뜻대로 되면 좋으련만 어째서 안 되는 것일까? 나는 옷걸이에 옷을 벗어 걸고 멍하니 창 밖을 보고 있다.
나는 침대에 누워 이런저런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데 갑자기 천장이 쿵쿵 울렸다. 잘은 모르지만 아마 남성이 용두질하는 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나는 잠을 자는 체하면서 위층에서 들려 오는 소리에 귀를 주고 자연스레 자지를 만져 보았다. 나의 자지는 성에 대한 욕구를 채우지 못해 안달복달했다. 위층에서 변기의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려 나는 왠지 허탈하고 쓸쓸했다.
'에이, 저럴거면 나랑 하던가 하지.'
나는 속말하며 침대에서 일어나 추리닝을 주섬주섬 입고 현관문을 조심조심 열었다. 도둑고양이처럼 발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계단을 올라 509호 현관문 앞에 섰다. 현관문을 똑똑 노크를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아 도로 왔다. 나는 욕구를 해소하기 위하여 노트북 컴퓨터를 켜고 야한 동영상을 재생해 남성을 떠올리며 용두질했다. 사정한 후에 몰려 오는 텅 빈 마음을 달래기 위하여 산책을 나섰다.
사람들은 낮에 일하고 밤이면 잠을 자는 줄로 알았다. 한밤중에 공단의 조립식 건물은 대낮 같이 전등불로 어둠을 밝히고 아파트에 조명등이 드문드문 켜 있다. 왕복 4차로를 주행하는 자동차의 소음은 적막한 밤을 저 밖으로 몰아냈다. 불현듯이 공포감이 나의 마음을 휩싸 검은 망토를 두른 지구에 홀로 서 있는 듯이 밤하늘을 우러러보았다.
나는 깊은 잠을 자다가 밖에서 쿵쾅거리는 소리가 크게 들려 잠을 깼다. 309호 남자가 술을 마시고 밤늦게 귀가해 부인이 몹시 화나 현관문을 열어 주지 않은 듯 했다. 남자는 한참 동안 현관문을 두드리더니 화풀이로 발길질하며 목청이 터지도록 소리쳤다.
"야, 문 열어~."
나는 남자의 행위에 잠을 못 이루고 울화가 치밀었다. 그런데 내가 사는 아파트 현관문이 열리면서 남자가 거실에 고꾸라지는 소리가 났다.
"아이코, 머리야!"
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전등을 켜고 거실을 보았다. 남자는 방바닥에 큰대자로 벌렁 드러누워 코를 골았다. 나는 남자를 깨워 밖으로 내보려고 노력해 보았다.
"이봐요, 여기 우리 집이에요. 얼른 일어나요."
"드르렁드르렁~."
나는 곤하게 자는 남자를 깨우다가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남자는 주사(酒邪)가 심하지만 않으면 내 마음이 쏠려 함께 자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았다. 나는 장롱에서 담요를 꺼내 남자를 덮어 주었다.
나는 자고 일어나 눈을 비비고 남자가 없는 것을 알았다. 아파트에서 나와 택시의 시동을 걸고 309호를 쳐다보았다. 베란다에 낯익은 담요가 난간에 널렸다. 그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나는 하루 종일 택시를 몰며 길을 오가는 남자들 그곳에 눈독들이고 입을 허 벌렸다. 남자가 택시를 타면 나는 일부러 남자에게 이야기를 꺼내 친근감을 표하고 자신의 외로움을 돌려 말했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남자가 없자 일할 의욕을 잃어 택시 운행을 일찍이 마치고 대중목욕탕에 갔다. 남자들의 그곳을 눈요기만 해도 위안이 됐다. 나는 탕(湯)으로 들어가 이 남자 저 남자를 훑어보다가 시선이 마주치면 고개를 얼른 돌렸다.
일상에 지친 나를 추어올리고 아파트에 돌아왔다. 509호 남성이 불시에 들이닥치기를 바라며 현관문을 안 잠갔다. 천장이 쿵쿵 울리지 않은 것을 보면 남성이 아파트에 돌아오지 않은 모양이였다. 배는 고픈데 입맛이 없어 두유를 벌컥벌컥 들이켜다가 멍하니 서서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는 만사 제쳐놓고 옷을 입은 채 침대에 벌렁 드러누웠다.
째깍째깍~
세상사 고민을 해결하는 건 잠만큼 좋은 처방은 없다. 어쩌다가 현실에서 바라고 바라던 일이 꿈속에서 이루어지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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