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만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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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숫자
너는 나에게 어떤 숫자를 좋아하냐고 물었다.
“난, 팔 자를 좋아해.”
“왜요?”
내가 8자를 좋아하는 것은 옆으로 놓으면 무한대가 되고, 뒤집어도 똑같은 숫자가 되며 시험을 볼 때마다 수험표에 항상 8자가 들어가고, 주민등록번호에도 세개나 있어서 나와 인연이 있는 숫자로 생각하고 좋아한다. 그러나 너에게는 아무런 설명도 없이 대답했다.
“팔자니까.”
“팔자 좋지!”
너는 씩 웃으며 나를 한 방에 보냈다.
너는 합리적인 숫자라며 3자를 좋아했다. 조물주가 창조해낸 삼색인종, 인간이 만든 삼색 스포츠 메달, 안정적인 삼각형, 내기할 때 삼세번, 양다리 걸치는 삼각관계 등 너는 누가 들어도 이해할 수 있는 그럴듯한 이유를 달며 3자를 예찬했다.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오후 길을 걷다가 31아이스크림 간판을 보고 내가 너에게 말했다.
“우리 아이스크림 먹자.”
“싫어.”
너는 내가 무엇을 먹자고 제안할 때마다 싫으면 "싫어."라고 말하고, 좋으면 "맘대로 해."라고 대답한다. 나는 너가 진짜로 싫어하는 줄 알고 다시 한번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
“아이스크림 싫어? 내가 살게.”
“············”
너는 대답하지 않고 가던 걸음을 계속 갔다. 나는 생각이 없나 싶어 그냥 아이스크림 가게를 지나쳤다. 한참을 걷다가 너는 불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한번만 더 물어 보면 못 이기는 척 대답하려고 했는데.”
"그럼, 지금 다시 물어볼까?"
너는 화가났는지 아플 정도로 나를 때렸다.
2. 질문
나는 너의 생일날 케이크와 함께 붉은 장미 세 송이를 덧붙여서 주었다. 너는 케이크를 받으며 고맙다는 말 대신에 붉은 장미 세 송이를 준 의미를 물었다. 나는 농담처럼 대답했다.
“한 송이는 니거, 또 한 송이는 내 거.”
“나머지 한 송이는?”
너의 질문에 마땅히 대답할 게 없어서 재치있게 대답한다고 서슴없이 말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 거.”
“그럼, 남자 거네.”
너는 나를 보고 웃으며 능청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너는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나는 심술이 나서 엉뚱한 질문을 만들어 너의 마음을 떠볼 심산으로 물어 보았다.
“나와 아빠 중에 한 사람을 선택하라면?”
“당연히 형이지.”
너의 당돌한 대답에 내가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며 다시 반문했다.
“왜?”
“아빠의 사랑은 변함없지만 형은 언제든 변할 수 있으니까.”
너는 소년답지 않은 어른스러운 대답해서 나를 무안하게 만들었다.
3. 내숭
너는 심심하다며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랐다. 나는 너의 입장을 생각해서 덜 야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너는 시선을 내게 고정시키고 이야기를 귀담아 듣더니 한마디 툭 던졌다.
“저질!”
“왜, 이야기를 다 듣고 그런 말해.”
너는 어떻게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표정까지 지으며 실망했다는 투로 언성을 높였다.
“순진한 나한테 그런 걸 이야기해.”
"그럼 처음부터 싫다고 말하지."
며칠 뒤 너의 친구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하다가 내가 해준 야한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신기한 생각이 들어서 너의 친구에게 물었다.
“그 얘기 어디서 들었어?”
“쟤가 해주던데.”
나는 기회다 싶어서 너를 똑바로 쳐다보고 앙갚음하듯이 말했다.
"저질 곱빼기!"
너는 가던 길을 멈추고 뒤로 처지면서 힘들다고 나에게 엎어달라고 했다. 나도 더위에 지쳐 있어서 아무리 좋아하는 너라도 엎어 줄 엄두가 나지 않아 핑게를 댔다.
“이런 훤한 대낮에?”
“낮이면 어때서?”
너의 반문에 어떤 이유를 달아서라도 업어주지 않을 의양으로 다시 맞받아쳤다.
“남들이 보잖아.”
“그럼, 내가 엎어줄게.”
너는 골이 난 표정으로 나에게 대들듯이 어깃장을 놓았다. 나는 환하게 웃으며 뛸듯이 기뻐했다.
“정말!”
4. 배려
나는 다른 사람을 만나서 읍내를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길에서 너를 만났다. 나에게 다가오는 너를 보며 어떻게 할 줄 몰라 망설이고 있는데 너가 먼저 말을 다정스레 건넸다.
"형, 어디가?"
"LO에가서 햄버거나 먹을려고, 너도 가자."
내가 죄지은 사람처럼 안절부절 하며 너에게 같이 가서 먹자고 제안하자 너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난, 됐어."
"이왕 만난김에 같이 가자."
내 손을 뿌리치고 종종 걸음으로 멀어지는 너를 바라보고 있다가 뛰어가서 다시 잡았다. 너는 웃는 얼굴로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나 신경쓰지 말고 둘이 맛있게 먹어."
"그럼 이따가 전화할게."
"맘대로 해."
너는 가던 걸음을 멈추어 서서 오른손을 흔들며 대응했다.
너는 길을 걷거나 나와 함께 있을 때 콧노래처럼 M/C 노래를 흥얼거리며 잘 불렀다. 나는 음반 상점이 눈에 띄길래 너에게 M/C CD를 사 주었다. 너는 기분이 좋은 듯 바짝 붙어 걸으며 말했다.
"이 가수 좋아하는 거 어떻게 알았어?"
"맨날 불렀잖아."
너의 기분 좋은 표정을 보니 나도 따라서 왠지 기분이 좋았다. 기분이 좋으니까 걷는 발걸음도 가볍고 경쾌하게 느껴지는데 너는 나를 툭 치며 말했다.
"나는 경제적으로 도움은 못줘도 정신적으로 도움을 줄게"
너가 말하는 정신적인 도움이 무엇인지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너와 나 단 둘이서 이렇게 한길을 걷고 있으면 발걸음이 가볍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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