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퍼니 로맨스(Company Romance) -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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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작은방에 누워도 잠이 쉬이 들지 않아 뒤척이는데 살그머니 방문이 열렸다. 나는 현오와 석이 중에 누가 방에 들어오는지 궁금증이 일었다. 석이가 내 옆에 누우며 꼬옥 껴안았을 때 감을 잡았다. 석이의 껴안은 손이 아래로 내려가면서 나의 그 곳에 멈추었다. 석이의 손길을 음미하듯 나는 가만히 있었다. 나는 석이 쪽으로 몸을 돌려서 손을 맞잡았다. 내가 잡은 손에 힘을 주자 석이도 따라서 힘을 주었다. 나는 석이에게 나직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추리닝 벗고 잘래?"

석이는 대답 대신에 트레이닝복을 재빨리 벗어 어둠 속 공간에 던졌다. 나는 석이를 꼭 껴안으며 귀속말했다.

"너를 만지고 싶어."

석이는 마음대로 하라는 듯 긴장했던 몸을 느슨하게 풀고 가만히 기다렸다. 나는 석이의 팬티 속으로 손을 넣고 그 곳을 만졌다. 석이는 절정의 순간에 갑자기 내 손을 팬티에서 잡아 뺐다.

"그만 해요."

석이가 뒤처리를 걱정하는 것 같아 나는 성행위를 멈추었다. 석이의 성(城)에 갇힌 나는 그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낚시 가방을 챙겼다. 우리가 논밭을 가로질러 과수원이 있는 고개를 넘자 저수지 댐이 보였다. 현오와 석이는 환호성을 지르며 샛길을 단숨에 뛰어갔다. 나는 낚싯대를 한 사람 앞에 하나씩 나누어주었다. 현오와 석이가 자리를 잡고 앉아 낚시질하는데 석이가 불만을 표시했다.

"내게 제일 작네."

"정 억울하면 낚싯대 하나 사."

석이는 자기 말이 먹히질 않자 현오에게 낚싯대를 바꾸어 달라고 사정했다.

"형, 내거랑 바꿔서 해."

"그래, 자."

거울같이 잔잔한 수면에 물결이 일고, 떡밥을 먹으러 작은 물고기가 떼를 지어 왔다가 잽싸게 도망가기를 반복했다. 우리는 자연을 벗삼아 낚시를 즐겼다. 나는 점심을 위해 석이에게 물통을 주며 심부름을 시켰다. 

"석이야, 라면 끓여 먹게 물 떠 와."

"회사에서나 반장이지 여기서도 반장인가."

"아주, 니가 현오 백 믿고 나한테 대드는데 아니꼬와서 내가 갔다 오는 게 낫겠다."

나는 물통을 들고 가면서 복수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내가 라면 끓이면 넌 안 줄거야."

현오가 소리 없이 빙그레 미소지었다. 나는 노란 개나리로 담을 둘러쌓인 집 안으로 들어가 물을 얻었다. 버너에 불을 붙이고 라면을 끓여 놓으니까 석이가 먼저 달려들어 먹었다. 나는 누부신 햇살을 피해 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는데 저수지 건너편에 시내버스가 보였다. 시내버스가 이쪽으로 오고 있는 시간에 맞추어 현오와 석이에게 일처리를 지시했다.

"낚싯대 빨리 챙겨, 저 버스 타고 가게."

"조금만 더해요."

석이는 아쉬움이 남아 있어 말을 듣지 않았다. 나는 석이의 요구를 단호히 거절했다.

"안 돼. 다음 버스가 언제 올지 모르니까."

"형, 잡은 고기는 어떻게 해요?"

"도로 놔줘."

현오는 낚싯대를 재빨리 챙기더니 저수지에 물고기를 조심스레 놓아주었다. 우리는 시내버스를 향하여 달음박질쳤다.

  

   나는 회사 식당에서 점심를 먹고 휴게실 의자에 앉아 현오와 커피를 마시며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현오는 내 소개로 회사에 입사하여 일을 배웠다. 나는 일을 차근차근 처리해 나가도록 알려 주었다. 때맞게 석이가 휴게실로 들어와 나와 현오를 바라보았다. 나는 주머니에서 얼른 동전을 꺼내며 커피를 권했다.

"석이야, 커피 한 잔 해."

"조금 있으면 창아가 올 거에요."


석이는 창아와 함께 커피를 마시면서 가끔씩 내 얼굴을 한번 힐끗 보더니 이내 눈길을 창문 쪽으로 옮겼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석이의 행동이 마음에 걸렸다.


   나는 하루 일과를 마치고 홀가분한 기분으로 현장을 정리했다. 작업 일지를 작성해서 과장에게 제출하고 나면 통근차를 못 탈 때가 있다. 시내버스를 타기 위해 회사 정문을 나서는데 뒤에서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뒤를 돌아보고 가던 걸음을 멈추고 서 있었다. 석이가 내게로 다가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요번 주말에 우리 집에 갈래요?"

"좋지. 이왕이면 같이 나가서 저녁 먹자." 

"전 식당에서 먹고 나왔어요."


나는 석이와 함께 시내버스 타는 데까지 걸었다. 나와 석이가 정류장에 다다랐을 때 시내버스 한 대가 이쪽으로 오고 있다. 내가 시내버스에 오르며 석이의 눈치를 보았다. 석이는 시내버스를 향하여 손을 흔들며 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정류장에 서 있었다.


   토요일 오후에 나는 석이와 함께 시외버스에 올랐다. 시외버스는 대평원이 펼쳐진 아스팔트 포장 도로를 쌩쌩 달렸다. 석이는 들뜬 기분으로 이야기를 하는가 싶더니 어느새 잠이 들었다. 나는 잠결에 시외버스가 흔들리는 것을 알고 눈을 떠 보았다. 시외버스가 터미널로 들어가는 것을 알고 늦기 전에 얼른 석이를 깨웠다.

"석이야, 다 왔어."

"벌써요."


나와 석이는 슈퍼마켓 안으로 들어가 쇼핑카트를 밀고 육류와 과자 그리고 음료를 샀다. 시내버스를 타고 마을 어귀에서 내리자 전형적인 시골 풍경이 눈에 띄었다. 콘크리트 포장이 잘 되어 있는 마을엔 오래된 느티나무가 떡 버티고 서 있고, 그 밑에 넓은 평상도 있다. 석이네 집은 완만한 비탈길 옆에 있어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아무도 없는 듯 조용했다. 석이는 집을 구석구석 둘러보더니 내 손을 잡아끌고 밖에 나갔다.

"아마 밭에 계실 거에요." 

"밭이 멀어?"

"저기 원두막이 보이죠. 거기가 기에요."

초록색 밭에 태양이 원두막을 비추고, 하루의 임무를 화려하게 마무리하듯 서산에 지고 있다. 


   석이 어머니는 나를 위해 푸짐하게 밥상을 차려 주었다. 나는 배불러 더 못 먹겠는데 석이 어머니가 후식까지 챙기는 바람에 꼼짝달싹할 수도 없었다. 나는 배가 꺼지고 나서 깊은 밤에 랜턴을 켜고 원두막에 갔다. 모기장과 얇은 이불, 목침이 있고 간단한 살림 도구도 준비되어 있다. 나와 석이는 어두운 밤 모기장 안에 요를 깔고 나란히 누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도 이다음에 원두막처럼 집 짓고 살아야겠다."

"정말요? 거기서 형이랑 나랑 같이 살면 좋겠다."


침묵이 한동안 흐르더니 어두운 밤을 풀벌레 소리가 지배했다. 나는 석이쪽으로 모로 누워 그 곳에 손을 얹어 놓았다. 석이는 개의치 않고 가만히 누워 있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석이의 트레이닝복 허리끈을 풀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석이가 참외 이야기를 꺼냈다.

"형! 참외 서리하는 방법 알아요?"

"아니, 몰라."

나는 건성으로 대답하고 손을 석이의 팬티에 넣었다. 내가 그 곳을 살살 만지고 있는데 석이는 답을 말했다.

"참외 서리는 발가벗고 하는 거에요."

"왜?"

"궁둥이랑 참외랑 구분이 안 되서요."

나는 웃음을 참지 못해 키드득거렸다. 그리고 석이가 알몸이 되려는 순간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원두막 모기장 안에서 흘러나오는 야릇한 소리와 풀벌레 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회사 휴게실에서 현오와 자주 커피를 마시며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석이도 창아와 잘 어울리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나와 석이는 큰 웃음을 웃으며 서로 신경전을 벌였다. 나는 퇴근 시간에 현오와 함께 걸어 가는 것이 일과처럼 되었다. 석이는 잘 가라고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기숙사 안으로 들어갔다. 


   다음날 아침에 나는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석이를 휴게실 앞에서 만났다. 석이는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반갑게 대했다.

"반장님, 커피 한 잔 해요."

"미팅 때문에 먼저 간다."

나는 탈의실로 가며 뒤를 돌아보니 석이는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석이는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나를 반장이라고 불렀다. 석이는 하루 종일 주어진 일만 하더니 작업 시간이 끝나자 내게로 다가오며 말을 걸었다.

"반장님, 같이 저녁이나 먹어요."

"오, 그래."


나와 석이는 통근차에 몸을 싣고 차창 밖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통근차가 우체국 앞에 멈추어 나와 석이를 내려 주었다. 석이는 내 옆에 바짝 붙어 시내를 걸으며 기분이 좋은 말투로 말했다.

"오늘 저녁은 제가 살게요."

"석이한테 처음으로 밥을 얻어먹겠네."

"반장님, 어디로 갈까요?"

"그건 석이 씨가 정해요." 

석이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빙긋 웃었다. 우리는 중국집 안으로 들어가 먼젓번에 앉았던 의자에 앉았다. 석이는 내 의사는 물어 보지도 않고 잡채밥을 시켰다. 그리고 물을 컵에 따르며 어제 일을 들먹이었다.

"어제는 뭘 했어요?"

"현오랑 피시 방에 갔다가 집에 늦게 왔어."

"회사에서도 현오 형이랑 함께 있는 일이 많잖아요."

"그건 현오가 자재를 담당해서그래."

"미팅 때 다 얘기하지 않나요?"

석이가 시시비비를 조목조목이 따지는 바람에 나는 말문이 막혀 할말을 잊었다. 내가 잘못을 저지르고 심문을 받는 기분이 들어 반박하고 나섰다.

"넌 요즘 들어 이상해 진 거 같더라."

"좋아하는 감정은 숨기려고 해도 저절로 배어 나와요."

"난 널 좋아하지 않아."

석이는 표정이 없는 얼굴로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나는 음식값을 지불하고 중국집에서 나와 주위를 둘러보아도 석이가 보이지 않았다. 


   다음날 회사에 출근해서 석이가 보이지 않자 문득 어제 일이 떠올라 창아를 휴게실에서 만나 물어 보았다. 

"창아야, 석이 기숙사에 안 들어왔니?"

"예, 반장님하고 밥 먹는다고 나간 뒤로 안 들어왔는데요."


나는 불안한 마음으로 별의별 상상하고 있는데 과장이 석이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반장, 석이 집에 전화해도 전활 받지 않네."

나는 석이 일이 걱정되어 일손이 잡히지 않았다. 과장에게 조퇴를 신청하고 회사를 나섰다.

회사에서 곧바로 택시를 잡아타고 터미널로 향했다. 


시내버스에서 내려 석이네 집을 찾아갔다. 집안에는 인기척이 없어 종종걸음쳐서 밭으로 가는데 멀리서 석이가 나를 알아보고 이쪽으로 다가왔다. 나는 분함을 꾹 참고 석이를 살살 달래었다.

"나랑 같이 가자."

"반장님, 저 그만둘래요."

"정 그만두고 싶으면 사직 신청하고 사람이 올 때까지 다녀."

나에게 뜻하지 않은 말을 듣고 석이는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반장님 꼴 보기 싫어서 안 갈래요."

"그럼 내가 그만두면 올래?"

석이는 입을 꼭 다물고 집으로 들어서서 냉장고에서 음료를 꺼내 주었다. 나는 마루에 걸터앉아 먼산만 바라보고 허공에 대고 말했다.

"석이야, 속마음을 어떻게 다 표현할 수 있겠니. 그냥 나와 같이 가자."

"생각할 시간을 줘요."


나는 석이 부모를 대할 면목이 없어 집에서 나왔다. 정류장 벤치에 앉아 석이의 집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이려는 순간 석이와 함께 했던 지난날이 그리워졌다. 정류장에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파란색 줄무늬가 있는 시내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훌쩍 떠났다. 


나는 벤치에서 벌떡 일어나 석이네 집으로 향했다. 석이가 태도를 결정하는 것을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어 당장 확답을 받고 싶었다. 석이 부모가 있거나 말거나 방문을 확 열고 독단적으로 말했다.

"야, 쓸데없는 고집 부리지 말고 지금 당장 날 따라나서든지 아니면 니 맘대로 해."

나는 할말만 하고 석이 집에서 나와 터벅터벅 정류장으로 돌아갔다. 정류장 벤치에 앉아 허허벌판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인기척이 들렸다. 석이는 내 곁으로 오지 못하고 갈까 말까 머무적거렸다. 나는 입가에 엷은 미소를 머금고 석이를 다정하게 불렀다.

"거기 서 있지 말고 내 앞으로 와 봐."

석이는 내 앞에 서서 눈길을 돌렸다. 나는 석이를 힘껏 껴안으며 속내를 털어놓았다.

"내 속을 썩여야 니 직성이 풀리냐? 아무튼 고맙다!"

내 품에 안겨 있는 석이는 마음속으로 녹아 들어 갔다. 막차가 라이트를 켜고 이쪽으로 오고 있다. 석이는 시내버스를 타고 전방을 주시할 뿐 말이 없다. 쟁반같이 둥근 보름달이 구름과 나무 뒤에 숨었다가 다시 나타나며 도로를 달리는 시내버스를 따라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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