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라 황석호 - 마지막

작성자 정보

  •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마지막> 



  오랜만에 경수에게 연락이 왔다. 석호의 일기를 읽고 영오가 나를 찾아온 지 2주가 지난 뒤였다.


  “형, 내일 저녁에 시간 있어?”


  “응.”


  “그럼 내일 저녁에 합주실로 와. 밴드에 가입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거든. 내일 오디션 보기로 했어.”


  “오디션 없이 그냥 받아주면 안 되냐?”


  “그래도 형식은 갖춰야지. 겸사겸사 얼굴도 보고 술도 한 잔 하고.... 그럼 내일 봐.”


  우식이가 이사를 가고 몇 달 만에 주공밴드의 멤버들이 합주실에서 모였다. 우리끼리 이런저런 수다를 떨고 있는데, 노크 소리와 함께 기타를 맨 사람이 들어왔다. 모두들 반가운 얼굴로 환영을 했다. 밴드의 리더답게 경수가 먼저 말을 건넸다.


  “자신 있는 거 아무 거나 한 곡 하시면 됩니다.”


  합주실에 현란한 기타 소리가 퍼져나갔다. 오디션이라기보다 연주 감상이라는 말이 더 어울렸다. 경수가 내 귀에 속삭였다.


  “형이 오디션 보러왔을 때도 이랬는데.... 존.나 잘 치네.”


  잴 것도 없이 합격이었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저녁을 먹으며 밴드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2차로 이어진 노래방에서 신입 멤버는 노래에도 상당한 실력이 있음을 보여줬다. 이제 40대로 들어선 보컬 담당 철민이가 앓는 소리를 했다.


  “영기 형보다 노래 더 잘하는 사람이 들어왔네. 이러다가 나 쫓겨나는 거 아냐?”


  경수가 웃으며 철민이에게 말했다.


  “그럴 리가 있겠냐? 근데.... 너 다른 데 이사 가도 아무 걱정은 없겠어. 하하하하”


  5월 공연은 물 건너갔지만 신입 멤버가 실력이 좋아 몇 번만 맞추면 바로 공연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아 한 달을 미뤄 6월에 공연을 하기로 결정하고 바로 연습에 들어갔다. 예전처럼 금요일과 토요일 저녁에 모여 선곡을 하고 연습을 했다. 몇 달을 쉬었다가 다시 하는 것이라 멤버들이 모두 신이 나서 연습이 더욱 즐거웠다.

  신입 멤버는 넉살이 좋아 멤버들과 쉽게 동화되었다. 특히 경수가 무척이나 좋아라 했다. 토요일 저녁에 합주가 끝나면 경수는 나랑 신입 멤버를 따로 남겨서 술 한 잔을 더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럴 때면 또 경수는 좋은 데 타령을 했다.


  “형, 진짜 우리 좋은 데 한 번 가자. 요즘 또 사는 맛이 난다니깐.... 이 친구도 진짜 마음에 들어.”


  “그 좋은 데가 제가 생각하는 데 맞죠? 한 번도 안 가봤는데.... 진짜 좋아요?”


  경수가 신입 멤버의 어깨를 토닥이며 신이 나서 말했다.


  “이야~ 젊은 친구가 나랑 좀 통할 거 같네.... 형, 우리 밴드가 정말 젊어진 거 같지 않아?”


  “평균 연령이 확 낮아진 건 맞지....”


  “형, 내가 쏠 테니까 진짜 한 번 가자. 이 친구도 재미 좀 보게 해줘야지. 한창 땐데....”


  리더인 경수가 좋아하니까 나도 좋았다. 나처럼 오십 줄에 들어섰으면서도 한결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경수를 흐뭇하게 바라봤다.

  경수와 헤어지고 나는 신입 멤버와 방향이 같아 함께 걸었다. 무료했던 날들이 이어졌는데, 다시 밴드 합주를 하니까 나도 사는 맛이 나서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뭐가 그렇게 좋아요?”


  신입 멤버가 묻는 말에 솔직하게 대답했다.


  “다시는 밴드 못할 줄 알았는데, 다시 하니까 좋아서 그러지.”


  신입 멤버가 걸음을 멈췄다. 나도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서 얼굴을 바라보며 물었다.


  “왜 그래?”


  “아저씨.... 드럼 치는 아저씨랑 좋은 데 몇 번 갔어요? 아저씨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던데....”


  “야, 황영오.... 경수는 일반이야. 나 그런 데 한 번도 안 가봤어. 내가 그런 델 왜 가냐? 그리고 이제 너도 있는데.... 경수 걔도 진짜 주책이야. 아들뻘인 너한테 못하는 말이 없어. 걔가 딸만 키워서 그래. 니가 이해해.”


  “이해할 것도 없죠. 남자는 다 그런 건데.... 좋은 데 한 번 가보고 싶다.... 아저씨, 경수 아저씨랑 같이 한 번 가요.”


  “너 미쳤냐?”


  그랬다. 신입 멤버는 영오였다. 영오가 사는 집이 나랑 같은 집이었으니 영오가 주공 밴드에 들어오는 것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당분간은 밴드 멤버들에게 비밀에 부치기로 해서 서로 모르는 척을 할 뿐이었다.

  어떻게 된 일이냐면.... 영오가 석호의 일기를 전해주고 나를 찾아와 함께 저녁을 먹고 술 한 잔을 하면서 내가 완전히 뻗어버린 날, 꿈에 석호가 찾아와 섹스를 했던 것은 사실 꿈이 아니었다. 내가 술과 잠에 취해 있었기에 꿈에 석호를 만난 줄로만 알았던 것이었다.


  꿈인 줄로만 알았던 섹스가 끝나고 오랜만에 느끼는 무게감에 나는 몸도 마음도 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아저씨, 너무 빨리 쌌어요. 오래 하고 싶었는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 위에서 나를 짓누르고 있는 사람은 석호가 맞는데, 석호가 아니었다. 영오였다. 아래쪽을 가득 채우고 있던 것이 천천히 빠져 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야, 너 뭐야?”


  영오가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봤다.


  “아저씨, 뭐에요? 그럼 지금까지 제정신이 아니었던 거에요?”


  꿈인 줄 알았는데 꿈이 아니었다. 영오와 술을 마시고 엎드려 잔 것까지는 기억이 났다. 그 뒤로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영오를 살짝 밀어내고 몸을 일으켰다. 내 방, 내 침대였다. 나는 발가벗고 있었다. 꿈에서 느꼈던 오르가즘은 꿈이 아닌 것이 분명했다. 영오도 발가벗은 채로 누워 있고, 영오와 내 배 위에는 정액으로 추정되는 것이 흥건했다. 번들거리는 영오의 자지가 보였다. 아래쪽에서 묵직한 통증이 느껴졌다. 꿈이 아닌 현실에서 벌어진 섹스였다. 석호인 줄만 알았던 사람은 영오였다. 영오가 나를 다시 눕혔다.


  “아저씨, 그럼 제가 한 말 기억 안 나요?”


  나는 아무 말 없이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아저씨, 이제 정신 차렸어요?”


  나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벌어진 것 같아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영오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저씨 술 취했어도 내 말 다 듣고 있는 줄 알았는데.... 제가 아저씨 업고 집에 왔어요. 진짜 기억 안 나요?”


  영오를 볼 면목이 없었다. 영오를 등지고 돌아누웠다. 영오가 뒤에서 나를 끌어안고 말을 이었다.


  “아빠는 정말 바보에요. 아저씨랑 며칠 살아보니까 아저씨가 게이인 거 바로 알겠던데.... 결혼도 안 하고.... 만나는 사람도 없고.... 혼자 딸딸이만 치고.... 남자끼리 하는 야동 보고.... 아저씨가 어떤 스타일 좋아하는지도 단번에 알았는데.... 아저씨도 아빠처럼 바보에요. 아저씨도 아빠 사랑했으면서 말도 못하고.... 둘 다 똑같애....”


  “영오야, 우리가....”


  “제가 아빠처럼 살지 않을 거라고 그랬죠? 처음에 저도 혼란스러웠어요. 물어볼 데도 없고.... 아빠 일기 보고 그제야 알았어요. 저도 아빠랑 똑같은 게이라는 거. 그리고 아저씨한테 마음이 있다는 것도....”


  “영오야, 나는....”


  “뭐 어때요. 저도 이제 성인인데.... 근데 웃기죠? 아빠도 게이고 아들도 게이고, 좋아하는 사람도 똑같고.... 소설보다 더 소설 같지 않아요? 현실이 그런가 봐요. 우연의 연속인 거.... 제가 먼저 말 안 하면 아저씨는 절대로 안 할 거 같아서 제가 먼저 아빠 일기 보여준 거에요. 솔직히 공연하던 날, 아저씨한테 자고 가라고 했을 때 그때 아저씨 따먹으려고 했었는데....”


  어이도 없고, 뭐라 할 말도 없었다. 영오의 말이 다 맞았다. 내가 게이인 것도, 석호와 내가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고 바보같이 산 것도 모두 맞았다. 아빠가 게이인데, 어떻게 아들까지 게이일 수가 있냐고 의심을 품는 것도 웃긴 일이었다. 누군가 나에게 왜 게이냐고 묻는 것은 게이니까 게이라고 답을 할 수밖에 없는 어리석은 질문이었다. 마찬가지로 영오가 게이라는 것도 이유가 없는 것이었다. 아빠를 닮았으니까 남자 좋아하는 것도 닮아야겠다고 영오가 자기 맘대로 선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나는 영오에게 넌지시 물었다.


  “내가 게이인 거 표 많이 났어?”


  내 질문에 영오가 박장대소를 했다.


  “네. 완전요. 목욕탕 가면 아저씨가 안 보는 척 하면서 제 자지 흘낏흘낏 쳐다봤잖아요. 아저씨랑 길 가다가 아저씨 고개가 돌아가는 곳을 보면 여지없이 저처럼 뚱뚱한 사람이 있었어요. 아저씨 게이라는 거 느끼고 아빠가 정말 바보라는 생각을 더 했어요. 뻔히 보이는 걸 왜 못 봤나 싶어서.... 하긴 그랬으니까 제가 태어난 거지만.... 암튼 아저씨 저한테 게이라는 거 인정했으니까.... 우리 사귈래요?”


  갑자기 훅 들어오는 질문에 나는 대답 대신 영오에게 다른 말을 했다.


  “나는 아빠 친구고.... 너랑 서른 살이 넘게 차이 나는데....”


  “아저씨 진짜 저 욕 나올라 그래요. 씨.발.... 친구 아들이랑 사귀면 안 돼요? 나이 차이가 무슨 상관이에요? 그런 식으로 따지면 음양의 원리에 따라 남녀가 사랑해야지 남자끼리 섹스해도 되는 거에요? 아저씨가 그러니까 애인도 없이 혼자 사는 거에요.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되면 할 수 있는 게 뭐에요? 그렇게 이것저것 따지고 눈치 보다가 사랑하는 사람 놓친 거 아니에요. 진짜 답답해.... 싫음 관두세요. 저 인기 많아요. 어플에 사진 올려놓으니까 엄청 메시지 오던데 그 중에 고르면 되죠.”


  영오가 침대에서 일어나 벗어놓은 옷을 챙겨 들었다.


  “어디 가?”


  “씻으러요.”


  욕실 물소리가 방에까지 들렸다. 나도 영오가 싫지 않았다. 돌잔치 때 처음 나에게 안겼을 때부터 줄곧 좋아했고, 2년 가까이 같이 살면서 통하는 것도 많았다. 석호를 빼다 박았으니 나에게 완벽한 식성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정을 하고 났는데도 전혀 허탈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침대에서 일어났다. 영오는 욕실 문을 열어놓고 샤워를 하고 있었다. 조심스레 들어가 칫솔에 치약을 묻혀 이를 닦았다. 거울로 영오를 바라봤다. 거울 속에서 영오와 내 눈이 마주쳤다.


  “아저씨.... 물어 볼 게 있는데....”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영오가 자기의 몸을 문지르며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저 처음이었는데....”


  내가 놀란 눈으로 바라보자 영오가 말을 이었다.


  “진짜 처음이었어요. 근데 저 잘했어요? 너무 빨리 싸서 좀 민망하고 그러네요.”


  나는 치약을 뱉어내고 거울에 비치는 영오와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처음해서 그런 걸 거야.... 아~ 씨.발 쪽팔리는데.... 너 나랑 하니까 좋았어?”


  “네. 완전 좋았어요. 야동 보면서 상상 많이 했는데 실전은 진짜 다르네요.... 그래두 뭐 이제 해봤으니까 다른 사람이랑 할 때는 잘할 수 있을 거 같아요.”


  “하지마.”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온 말에 내가 놀라서 영오의 시선을 피했다. 영오가 단호하게 말을 던졌다.


  “할 거에요. 저도 이제 성인이니까 제 맘대로 막 하고 살 거에요.”


  “내가 하지 말랬지. 아저씨 말 들어.”


  “싫어요. 아저씨가 뭔데....”


  고개를 돌려 영오를 바라봤다. 그리고 영오의 말을 끊었다.


  “딴놈이랑 하지 말고 나랑 해. 나도 이제 바보 같이 안 살 거야.... 나 너 좋아해....”


  내 고백에 영오가 기쁘게 웃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영오는 샤워기를 잠그고 말없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저씨.... 전 진짜 아저씨가 좋아요. 아저씨는 제가 기억하지 못할 때부터 저를 봐왔으니까 더 잘 알잖아요. 제가 기억이 나는 정말 어릴 때부터 저 아저씨 좋아했어요. 아빠랑 아저씨 집에 오는 거 정말 좋았어요. 아저씨랑 같이 있으면 몸도 마음도 편했으니까요. 아빠가 못해주는 거 아저씨는 저한테 많이 해줬잖아요. 맛있는 것부터 시작해서 선물도.... 아저씨도 저 좋아하는 거 아저씨 눈빛만 봐도 알아요....”


  나는 아무 말 없이 영오의 눈만 바라보며 서 있었다. 영오의 말이 이어졌다.


  “근데요.... 아저씨 눈빛이 지금도 저 어릴 때랑 똑같아요. 아저씨는 제가 아저씨 친구 황석호 아들이라서 좋아하는 거잖아요. 저는 아빠 친구 이영기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그냥 이영기를 좋아하는 거에요.... 아까 섹스 할 때 저를 석호라고 부른 거 기억 안 나시죠? 전 아빠 아들이지만 아저씨한테 아빠 대타가 되기는 싫어요. 전 황영오거든요.”


  영오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 눈빛에는 당당함이 서려 있었다. 주저하지 않고, 자기 생각을 명확하게 밝히는 남자가 내 앞에 서 있었다. 짧게 깎은 머리, 부리부리한 눈매, 둥글넓적한 얼굴, 탄탄한 가슴, 튼실한 허벅지와 단단한 종아리, 포피가 벗겨져 귀두를 훤히 드러내고 하늘을 향해 단단히 발기된 커다란 자지의 소유자가 늠름한 모습으로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영오야....”


  “네?”


  “너.... 여기서 살아. 나랑 같이.... 바보 같은 아빠한테 질투하지 말고.... 내 앞에 있는 건 황영오 너니까....”


  영오가 나를 끌어안았다. 나도 영오의 듬직한 몸을 끌어안았다. 영오의 뜨거운 입술이 내 입술에 와서 닿았다.


  “황영오....”


  “네.”


  “사랑해....”


  “저도 사랑해요.... 아저씨, 우리 또 해요. 이번엔 제대로 잘 할 거에요. 저 자신 있어요....”


  그렇게 하루 종일 영오와 섹스를 하고 사랑을 속삭였다. 그리고 영오의 원룸에 있던 짐들을 하나둘씩 가져왔다. 작은방에 있는 더블침대를 내 방의 싱글침대와 맞바꿨다.


  영오가 주공 밴드에 들어온 것도 나의 계략이었다. 경수에게 신입회원 모집 전단을 붙이게 해서 자연스레 영오가 연락을 하게 만들었다.

  딸만 둘을 키우는 경수에게 영오는 살갑게 다가가서 아들이 있었으면 하던 경수의 마음을 휘어잡았다. 같이 목욕탕에 가서 등을 밀어주며 교감을 쌓은 것이었다. 영오도 나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무언가를 경수에게서 느끼는 듯 했다. 나는 전적으로 영오의 편이었으므로 영오가 자기 마음대로 살 수 있도록 배려했다. 한 집에서, 한 침대에서, 한 이불을 덮고 자는 것만으로도 나는 더 없이 행복했다.


  그러나 영오가 대한민국 남자라면 그 어느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신체검사를 하러 갈 때에는 내 마음도 흔들렸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었으나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내 행복을 잠시 내려둬야 한다는 사실은 당장 군대에 가는 것도 아니었지만 생각만으로도 괴로운 것이었다. 영오를 신체검사장까지 태우고 가는 내 마음을 영오는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웃고만 있었다.


  “자기야, 오늘따라 왜 그래?”


  어느 순간부터 영오는 나에게 말을 높이지 않았다. 나도 그것이 편했다. 아저씨라는 호칭은 거리감이 느껴졌었는데, 자기라는 호칭은 내가 영오의 애인이라는 것을 느끼게 만들었다. 물론 나는 너무 닭살스러워서 그렇게 부를 수가 없었다. 나에게 영오는 그냥 영오였다.


  “내 팔자도 참.... 씨.발 이 나이에 애인 군대 보내게 생겼으니....”


  “그것 때문이구나..... 그럼 젊은 애인 두는 게 쉬운 줄 알았어? 신검 끝나면 내가 알아서 갈 거니까 자기야는 먼저 집에 가.”


  집에서 영오를 기다리는 동안 청소를 하고 반찬도 여러 가지를 만들었다. 군대에 가기 전까지 잘 먹이고, 더 잘해주고 싶었다. 신검을 마치고 돌아온 영오는 여전히 싱글벙글한 얼굴로 반찬들을 평가하며 밥을 먹었다. 나는 복잡한 마음을 애써 누르고 조심스레 물었다.


  “군대 언제 갈 거야? 요즘은 대학 가는 거 보다 군대 가는 게 더 어렵다던데....”


  “자기야처럼 공무원 시험 치려면 줄기차게 공부하는 게 좋으니까 빨리 처리해야지.”


  내가 생각한 것보다 빨리 군대에 갈 예정인 듯 싶었다. 아무리 기간이 짧아지고 편해졌다고는 하지만 제법 오랜 기간을 떨어져 있어야 하는 사실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자기야, 나 군대 가는 거 싫지?”


  “당연하지. 씨.발 이 나이에....”


  “내가 나이 얘기하지 말랬지? 남들 다 가는 군댄데.... 나도 가기 싫어. 나 군대 가면 자기야랑 섹스 못 하잖아. 자기야가 바람 피울까봐 존.나 불안할 거 같애. 밴드 멤버 없어서 경수 아저씨랑 술 마시다가 눈 맞을 거 같고....”


  “난 일반 안 건드려. 진짜 이런 말은 안 할라고 그랬는데.... 니네 아빠가 일반인 줄 알고 안 건드렸단 말야. 그때 확 그냥 건드려가지고 너 안 태어나게 했어야 했는데....”


  “자기야가 그때 아빠 건드렸으면 지금 자기야 과부야, 과부. 내가 태어났으니까 지금 자기야가 행복하게 사는 거라고.”


  “너 말 다했어? 틀린 말은 아닌데 존.나 열 받네.... 안 그래도 마음 복잡하고 무거워 죽겠구만....”


  “아빠 얘기가 나왔으니까 말인데....”


  영오가 뜸을 들였다. 나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영오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말을 기다렸다.


  “지금 아빠는 하늘에서 우리 바라보고 있겠지?”


  나는 물음에 대답을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석호에게 괜히 죄를 짓는 기분이었다.


  “아빠가 얼마나 배 아파하고 있을까.... 자기야, 나 계속 아빠 배 아프게 할 거야. 하늘나라에 있으니까 배가 안 아프려나.... 자기야.”


  “응?”


  “자기야는 진짜 바본 거 같애.”


  “내가 왜 바보야? 너랑 떨어지기 싫어서 그러는 건데....”


  “나도 알아.... 그러니까 쓸데없이 걱정하지 마.... 아빠가 하늘나라에서 자기야랑 나랑 알콩달콩하게 사는 거 계속 보게 할 거야.... 나 자기야랑 한 시도 안 떨어질 거야.... 나 같은 사람은 나라 지키면 안 돼. 나라 안 지키고 자기야 지킬 거야.”


  “말은 고맙고 감동적인데, 그게 니 맘대로 되냐? 아이~ 씨.발 몰라. 밥이나 먹어.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되지 뭐.”


  “자기야.... 나 많이 사랑하는구나?”


  “그걸 말이라고 해?”


  “나두 자기야 사랑해.... 그래서 자기야한테 줄 게 있어.”


  “뭔데?”


  “이 나라에서 받은 선물.”


  “무슨 선물? 요즘은 신검 가면 선물 주니? 근데 니가 받은 걸 왜 나한테 줘.”


  “자기야한테 더 소중한 거니까.”


  “뭐 받았는데?”


  “나한테 군대 가지 말래. 안 가도 된대. 나라 대신 자기야 지키래.”


  “너 어디 아픈 데 있었어?”


  “진짜 존.나 짜증나네.... 이쯤하면 좀 알아 들어라. 나 면제야. 나 부모 없는 고아라고. 무슨 고아가 군대를 가냐? 난 당연히 알고 있을 줄 알았는데....”


  나는 정말 바보 멍청이였다. 영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벌떡 일어나 영오를 끌어안고 키스를 퍼부었다. 영오도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안아들었다. 그리고 방으로 들어가 나를 침대에 던졌다. 영오는 옷을 벗어던지며 말했다.


  “자기도 빨리 벗어. 오늘 밤새도록 해줄게.”


  영오의 육중한 몸이 내 위로 올라왔다. 무게감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나를 팔과 다리로 영오를 끌어안고 영오에게 속삭였다.


  “사랑해.”




- 끝


관련자료

댓글 1

<span class="sv_wrap"> <a href="https://ivancity.com/bbs/profile.php?mb_id=jjg7306" data-toggle="dropdown" title="Coco123456 자기소개" target="_blank" rel="nofollow" onclick="return false;"> Coco123456</a> <ul class="sv dropdown-menu" role="menu"> 님의 댓글

  • <spa…
  • 작성일
와우 선플 1빠
정독하면서 여기까지왔네요 잘 볼께요
그동안 수고 하셧습니다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