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나에서 만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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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밤은 석이 마음에 파문을 일으켰다. 석이는 평소에 자위 행위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지냈는데 문득 모질고 독한 외로움이 엄습했다. 성적 충동에 의한 자위 행위와 실제 성행위 사이에서 몸부림치더니만 사우나를 끝내 찾아갔다.

석이는 사우나 안으로 들어가 몸에 물을 뿌리면서 깨끗이 씻은 뒤에 가벼운 옷차림으로 다리를 쭉 펴고 잠을 자는 체하며 반듯이 누워 있었다. 정우는 석이 옆에 누울까 말까 망설이다가 석이가 깰세라 조심조심 누웠다. 석이는 자는 체하는 것이 들통이 날까 봐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석이는 숨소리를 죽이고 정우의 행동에 온 신경을 쓰는가 싶더니 어느새 정우는 다정하게 석이 중심부에 손을 얹었다. 석이가 중심부에서 정우의 손을 떼어 놓으며 성행위에 대해 거부반응을 보였다.

"누가 보면‥‥."

"그럼 저와 같이 나갈래요?"

정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석이는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석이와 정우는 탈의실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사우나에서 나왔다. 정우는 앞서가는 석이 곁으로 성큼성큼 다가가 말을 붙였다.

"저, 이거도 인연인데 통성명이나 하고 지내면 어떨까요?" 

"아, 그래요. 전 정석이라고 합니다."

"전 김정우에요."

"김정우요?"

"예."

"김정우 씨 만나서 반갑습니다."

석이와 정우는 서로 악수하고 통성명을 나누더니 나란히 한길을 걸었다. 정우는 석이와의 거리감을 줄이려고 다정스럽게 굴었다.

"저보도 연상이신 거 같은데 제 이름을 그냥 부르세요."

석이는 대답 대신에 만족감을 나타내고 정우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정우가 손을 높이 치켜들고 지나가는 택시를 잡았다. 석이와 정우는 거의 동시에 택시를 타고 운전자에게 인사말했다.

"안녕하세요?"

"예, 어디로 모실까요?"

운전자가 목적지를 물어 보자 정우는 석이에게 눈길을 보냈다. 석이는 정우의 의도를 알아채고 운전자에게 목적지를 얼른 말했다.

"무지개숲 아파트로 가 주세요."

"예. 알았습니다."


석이는 정우와 함께 집안으로 들어서서 현관문을 잠갔다. 정우가 옷을 벗기 시작하자 석이도 옷을 거침없이 벗어 던졌다. 정우의 알몸이 드러나자 석이가 무릎을 꿇고 정우의 엉덩이를 양손으로 잡고서 중심부를 감칠맛나게 빨아먹었다. 정우는 편하게 서 있는 자세를 취하고 석이의 성행위에 빠져 버렸다. 석이가 성행위에 점점 열을 더해 가는 동안에 정우는 엉덩이에 힘을 주더니 고개를 숙여 나지막한 목소리로 사정을 알렸다.

"그만 나오려고 해요."

석이가 정우의 중심부를 빨다 말고 오른손으로 피스톤의 왕복 운동을 열심히 행했다. 

"아아 더 이상‥‥윽!"

정우는 반달 모양의 몸체를 만들고 신음 소리를 내더니 정액을 내쏘았다. 석이는 티슈를 손으로 뽑아 정우의 정액을 뒤처리한 뒤에 자신을 정우에게 맡겼다.

정우가 석이의 젖꼭지에 입술을 대고 핥으면서 중심부를 뜨겁게 어루만졌다. 석이는 정우의 열정적인 성행위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헉헉거렸다. 

정우가 석이의 중심부를 입 속에 넣고 요리조리 자극을 주자 석이가 슬슬 엉덩이를 뒤로 뺐다. 석이는 중심부에서 전해 오는 절정을 감지하고 정우의 성행위를 제지하려는 순간 석이의 의도와 상관없이 사정하고 말았다.


   휴일 날 아침에 석이는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정우가 잠든 모습을 뚫어지게 보았다. 그리고 삼각팬티를 입은 채 잠자리에서 일어나 쌀을 씻어 밥을 안쳐 놓고 미역을 물에 불렸다. 냄비에 참기름을 넣고 미역을 볶은 뒤에 물을 붓고 국을 끓였다. 

석이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쌀밥과 미역국과 김치 한 가지만으로 밥상을 간단히 차려 놓고 흡족한 미소를 짓더니 방 안으로 들어가 곤하게 자는 정우를 깨웠다.

"정우야 그만 일어나 아침 먹자."

"예."

정우가 정신을 바짝 차린 군인처럼 벌떡 일어나 말없이 나가 식탁에 앉더니 숟가락으로 밥을 한 술 떠먹고 미역국을 먹었다.

"야, 미역국이 담백하고 입맛에 맞아요! 우리 엄마가 끓여준 거 같아요."

"정말? 칭찬으로 생각할게."

"울 엄마 음식은 정말 형편없거든요."

"으하하-"

석이와 정우는 정답게 마주 앉아 아침밥을 맛있게 먹었다. 정우가 밥을 후딱 먹고 일어서며 자진하여 설거지하고, 석이는 정우가 개수대에서 능숙한 솜씨로 설거지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뒤쪽으로 다가갔다. 정우 엉덩이에 착 달라붙어 석이의 중심부를 대고 사각으로 된 팬티 속에 손을 넣었다. 정우의 부드러운 중심부가 차차 커지면서 강철과 같이 아주 단단해졌다. 석이는 손놀림을 빠르게 움직여 중심부 사정을 시도했으나 정우가 엉덩이를 뒤로 빼고 사각으로 된 팬티에서 석이의 손을 뺐다.

석이는 정우에게서 떨어져 주전자에 물을 담아 가스레인지에 올려 놓았다. 정우와 함께 마시는 원두커피는 대화가 가미되서 석이 혼자 마시는 원두커피보다 훨씬 맛있었다. 정우는 어제 밤에 외박한 것이 마음에 걸려 원두커피를 마시자마자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날 아침 석이가 회사에 출근해서 동료들과 인사를 나누는데 친한 동료가 석이를 보고 의미심장한 말을 건넸다. 

"어째 오늘은 얼굴 표정이 밝고 몸이 가벼워 보여요?"

"그럼 제가 평소에 어두워 보였나요?"

"그건 아니지만 아무튼 무슨 좋은 일 있으신가 봐요?"

"아녀요. 어제 푹 쉬셔 그런가 봐요."

석이는 손사레치며 말로 이리저리 둘러대어 위기를 모면했다. 사실 친한 동료는 석이의 처지를 잘 파악하고 있었다. 정우와 하룻밤 자고 나니 석이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변했다. 석이는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면서 매사에 적극적인 사고방식으로 바뀌었다.


   며칠 뒤 석이는 퇴근길에 한길을 걷는데 갑자기 정우와 한바탕 성행위하던 일이 생각났다. 때가 오기를 기다린 듯 삼각팬티 속에 중심부가 배꼽을 향해 솟았다. 성행위하던 일을 더 이상 진전하면 걷는 것이 불편할 것 같아 딴 생각하고 눈을 들어 하늘을 보았다. 

석이가 한길을 막 건너려고 하는데 바로 그 때 정우가 소리 없이 빙그레 미소지으며 석이를 보고 서 있었다. 석이와 정우는 눈길이 마주치자 서로 인사하고 횡단 보도 한가운데서 대화를 나누었다.

"어디 가니?"

"집에 있는 게 심심해서 그냥 나왔어요."

석이가 자기 집에 가자면서 정우의 손을 이끌었다. 정우는 석이와 나란히 한길을 걸으며 석이 속을 떠보았다.

"그동안 저 안 보고 싶었어요?"

"음, 오늘은 불현듯 정우가 생각이 났지. 근데 내 맘을 어떻게 알았나 신통방통해 죽겠어." 

"전 제가 좋아하는 사람에 관한 일이라면 환히 꿰고 있어요."

"정말?"

정우가 대답을 대신해서 긍정의 표시로 고개를 두어 번 끄덕거렸다. 그리고 석이와 눈이 마주치자 정우는 방긋 웃었다.


정우는 전에 한 번 석이의 집을 왔을 뿐인데 엘리베이터 버튼을 꾹 눌렀다. 석이와 정우가 엘리베이터에서 나와 복도를 걷는데 정우가 석이를 앞질러 현관문 앞에 섰다.

"아주, 제법 기억력 하나는 좋은데."

석이가 현관문을 열고 정우와 함께 집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약속이나 한 듯이 옷을 벗기 시작했다. 석이와 정우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정열적으로 색을 탐했다.


석이는 샤워를 끝내고 아무런 일도 없던 것처럼 거실에 마구 널려 있는 옷을 옷걸이 걸었다. 정우가 샤워하는 동안에 석이는 삼각팬티만 입은 채 전자레인지에 밥을 데우고, 가위로 김치를 잘게 썰어 큰 그릇에 담고 참기름과 고추장을 넣고 쓱쓱 비볐다. 

정우가 샤워를 끝내자마자 물기로 수건으로 닦고 사각으로 된 팬티를 입었다. 석이와 정우는 거실에 마주 앉아 비빕밤을 맛있게 먹은 뒤에 사지를 펴고 벌렁 드러누웠다. 석이는 욕정을 채우고 배고픔을 해결하고 나니 몸이 나른해 정우와 같이 잠자리에 일찍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석이는 아침을 간단하게 먹고 출근 준비를 서둘렀다. 집을 나서기 전에 식탁 위에 메모지와 현관문 열쇠를 놓고 정우의 모습을 한번 힐끗 보더니 이내 회사에 출근했다. 

석이가 회사 동료들과 아침 인사를 나누는 가운데서도 친한 동료는 석이의 마음속을 귀신같이 알아맞혔다. 

"어제는 좋은 일이 있었나 봐요?"

"그걸 어떻게 알았어요?"

석이가 반문하자 친한 동료는 대답을 망설이지 않고 미소 띤 얼굴로 대응했다.

"요즘 들어 부쩍 싱글벙글하는 걸 보면 알 수 있죠. 근데 우렁 각시라도 생겼나요."

"그런 건 아녀요."

"그럼 마음에 맞는 친구라도 만났나 보네요."

"그 말뜻은‥‥."

"저처럼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사람만이 알 수 있다고 봐야죠."

석이는 입을 꼭 다물고 바쁘다는 핑계로 부서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불현듯 지나온 일이 머릿속에 지나갔다. 

석이가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한 동료를 좋아했다가 뜻하지 않게 직장을 잃고 마음고생이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였기에 친한 동료의 말을 흘려들었다. 


   석이는 퇴근길에 현관문 열쇠를 찾으려고 아파트 경비실에 들렀다. 경비가 석이를 반가이 맞이하며 안부를 물었다.

"그간 별일 없으셨죠?"

"예,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혹시 제 아파트 열쇠 맡겼나요?"

"잠시만‥‥없는데요."

"그럼 전 가 보겠습니다."

"예."

석이는 정우가 현관문 열쇠를 그냥 가지고 집에 갔나 보다 생각하고 집안으로 들어섰다. 집안에서 맛있는 냄새가 풍기더니 정우가 인기척이 나자 얼굴을 내밀었다.

"어! 지금까지 있었니?"

"배고프죠? 얼른 씻고 밥 먹어요."

"응. 알았어."

석이는 놀라움과 반가움이 교차하는 사이에 정우의 말을 고분고분 따랐다. 옷걸이에 옷을 벗어 걸고 욕실 안으로 들어가 손을 깨끗이 씻었다. 정우는 석이가 손을 씻는 동안에 밥상을 차려 놓았다. 석이가 의자에 앉으며 정우에게 궁금한 것을 물어 보았다.

"오늘 하루 종일 뭐했어?"

"음, 자고 일어나 보니까 대낮이더라구요. 그래 청소를 대충하고 저녁 준비했어요."

석이는 의자에서 일어나 집안을 구석구석 둘러보더니 그제야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그리고 식탁으로 다가오며 정우를 매우 칭찬했다.

"정우 너 나무랄데가 없어서 아주 잘 만났어."

"정말요?"

"응, 이 은혜는 잊지 않고 꼭 보답할게." 

"그런 말만 들어도 기분이 좋아요."

석이가 소리 없이 빙그레 미소지으며 밥을 한 술 떠먹고 김치찌개를 먹었다. 매일 혼자 밥상을 차려 먹다가 정우가 석이 자신을 위해 준비한 음식을 먹게 되니 가슴이 뿌듯했다. 

"지금껏 먹어 본 중에서 젤 맛있어."

"에이, 그건 뻥이다."


석이는 저녁을 먹은 뒤에 생일 선물로 친한 동료에게 와인을 받은 것을 자랑했다. 정우에게 감사의 표시로 코르크 마개를 따서 와인을 잔에 따라 주었다. 정우가 미소 띤 얼굴로 석이로부터 잔을 건네받고 기분이 좋아 와인을 단숨에 마셨다.

"와, 와인이 이렇게 단 줄은 몰랐어요. 한잔 더 줘요."

"그래? 술이 달게 느껴지면 큰일인데. 그리고 이건 맛을 음미하면서 마셔야 돼."

정우가 멋쩍게 씩 웃으며 잔을 내밀자 석이는 정우의 얼굴을 바라보고 서로의 우정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석이가 잔에 와인을 따라 주고 나서 옛날이야기를 정우에게 들려 주었다.


   신라 선덕여왕 11년 (642년) 대양주(大梁州) 전투에서 신라군은 백제군에게 참패하여 신라장수 품석과 그의 아석이 전사하였다. 품석은 신라 재상 김춘추의 사위였다. 애통한 김춘추는 장군 김유신과 굳은 맹세를 했다. 강한 백제와 싸워 이기려면 고구려에 구원을 청하러 가야했는데 만일 고구려가 딴 마음을 먹고 김춘추를 돌려보내지 않는 일이 생긴다면 김유신이 신라 정예군을 이끌고 김춘추를 구하러 가겠다는 약속이었다. 굳은 맹세를 하기 위해 두 사람은 손가락을 베어 피를 내었다. 

옛부터 우리 민족은 충절을 맹세할 때 피를 내보이는 관습이 있었다. 때로는 피를 내어 여럿이 나누어 마시며 굳은 맹세를 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정우는 석이의 옛날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우아, 멋지다! 우리도 와인에다 해요."

"정말?"

정우가 승낙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석이는 정우에게 반문하더니 어느새 바늘을 찾으려고 서랍을 열었다. 정우는 잔에 와인을 따르고 석이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석이는 가스라이터로 바늘을 소독하고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찌르려고 하다가 행동을 멈추었다.

"으으- 나 못하겠어."

"그럼 제가 해줄게요."

"너무 세게 바늘로 찌르지 마."

"알았어요."

석이는 정우 앞으로 오른손을 내밀고 고개를 외로 돌렸다. 정우가 바늘로 석이의 새끼손가락을 찌르자마자 석이는 이를 악물고 아픔을 참았다. 석이는 새끼손가락에서 나오는 피를 와인이 담긴 잔에 떨어뜨렸다. 정우는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바늘로 찌르고 피가 나오는 즉시 석이와 똑같이 잔에 떨어뜨렸다. 석이는 잔을 흔들어 피가 섞이도록 한 뒤에 정우와 함께 와인을 나누어 마시고 의형제를 맺은 것을 다짐했다.

"우리는 이로써 피를 나눈 형제나 다름없는 거다."

"예. 그 말에 기꺼이 동의해요! 근데 아까 집안 청소하다가 앨범 보니까 저랑 동갑이던데요."

"으하하- 난 결코 나이 속인 적 없어. 정우가 선입관을 가지고 존대해 줬을 뿐이야. 그럼 지금부터라도 말 놓고 지내도록 해."

"갑자기 그러기가 좀 뭣하니까 차차 그래 볼게요. 그나저나 왜 그렇게 나이 들어 보여요."

"내가 볼 때는 정우가 나이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 것 같은데."

"흐흐- 칭찬으로 생각할게요."

석이의 말은 모두 진심에서 우러나왔다. 정우는 28세의 나이인데도 여전히 동안이고, 걸음새가 당당하고 도저하며 착한 마음씨를 가지고 있어서 누구를 막론하고 한번 빠지면 벗어날 수가 없었다.  


   석이는 정우와 사귀고 있는 중에 사생활을 우연하게 알고부터 마음에 걸렸다. 둘이서 단짝 친구처럼 어울려 다니면 좋기는 하지만 정우가 외아들이라 거리끼는 점도 있었다. 정우는 부모는 물론 가정 생활에도 아무런 문제도 없고, 중심이 바로 서 있었다.

정우가 발걸음이 한동안 뜸하더니 요즘 들어 잦아졌다. 석이는 정우 문제로 고민하며 갈피를 못 잡았다. 정우를 섣부르게 다루다간 결국에 가서는 서로의 상처를 입힌 채 석이와 헤어질 것이 번했다. 석이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을 겪고 있었으나 조금도 내색하지 않았다. 그러나 정우는 시간이 갈수록 석이의 마음을 빼앗아 갔다. 석이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가부간에 결단을 내렸다. 


석이는 정우가 만나러 오자 예전처럼 친하게 대하지 않고 싫은 내색을 보였다. 정우도 석이의 눈치를 보니 무슨 사연이 있는 듯했다. 그러나 적극적인 태도를 취해 짐짓 모른 채했다. 정우는 좀처럼 석이로부터 멀어질 것 같지 않았다. 석이는 최후의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친한 동료를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첫눈이 펑펑 내리던 날 석이는 공연히 마음이 싱숭생숭해 친한 동료와 퇴근길에 동행했다. 석이와 친한 동료가 아파트 입구에 다다랐을 때 정우는 석이를 발견하고 그쪽으로 다가가 인사말했다

"안녕하세요?"

"예, 안녕하세요?"

석이는 기본적인 예의를 갖추어 인사하고 정우 옆으로 지나갔다. 석이가 친한 동료와 함께 집안으로 들어서기가 무섭게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석이는 전화를 걸은 사람을 확인하고 휴대전화 전원을 끈 뒤에 친한 동료의 눈치를 살폈다.

"저, 죄송한데요. 갑자기 볼일이 생각나서 오늘은 이만 가 볼게요."

"왜요? 차 한 잔 하고 가요."

"아녀요. 그럼 낼 뵈요."

석이는 친한 동료가 떠나고 나니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기 짝이 없어 멍하니 창 밖을 보고 있었다. 이제 영락없이 석이 혼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우가 석이에게 전화하면 석이는 무뚝뚝한 말투로 공연히 핑계를 대고 전화를 끊었다. 석이는 마음에 없는 언행이 몹시 괴로웠고, 정우는 마음을 의지할 만한 석이가 함께하기를 거부해 죽고 싶은 심정이 들었다.

석이가 아파트를 막 들어서려는데 정우가 앞을 막는 바람에 멈칫했다. 석이는 정우를 차가운 눈으로 바라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속마음으로는 정우에게 달려들어 성행위를 마음껏 하고 싶었다. 석이와 정우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흐르더니 마침내 정우는 입을 떼기 시작했다.

"외람된 말이지만 잠깐 술 한잔 할래요?"

"응, 그래! 어디로 갈까?"

"가까운 데로 가요."

"알았어."


석이와 정우는 가로등이 밤거리에 흐릿한 빛을 던지고 있는 한길을 천천히 걸어 술집 안으로 들어가자 정우가 주인의 관심을 끌었다.

"손님, 죄송하지만 신분증 좀 보여 주세요." 

정우는 기분이 상해 이맛살을 찌푸리고 주인에게 주민 등록증을 신경질적으로 보여 주었다. 석이는 정우가 부러운 듯이 술자리에 앉으며 우스갯소리를 했다.

"나 원 참 똑같은 나이인데 누군 주민 등록증 보여 달라고 하고 난 거들떠보지도 않는단 말이지."

"정 억울하면 저랑 얼굴 바꿀래요?"

석이가 정우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니까 미소년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정우는 석이에게 눈길을 주고 자기의 의도가 명료하게 나타나 있는 질문을 석이에게 던졌다.

"요즘 들어 저를 왜 자꾸 피하죠?"

"왠지 정우가 싫어졌어."

"그건 왜죠?"

"난 끈기 없는 놈이라 누구든 깊이 사귀지 않는 편이라 그래."

"우린 피를 나눈 의형제잖아요?"

정우가 반격을 가하는 바람에 석이는 말문이 막혀 할말을 잊었다. 석이와 정우 사이의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석이는 무슨 말을 하려다 정우를 보더니 주춤했다. 정우는 석이의 행동을 알아채고 그에 대비해 넌지시 석이의 마음을 떠보았다.

"석이 씨 속생각을 허심탄회하게 얘기해 보세요."

"사실 난 정우를 통해 성적 욕구를 채우려고 한 것뿐이야."

"그건 저도 마찬가지니까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봐요."

정우는 자신의 뜻을 위해서라면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는 듯이 굳건해 보였다. 석이는 아무리 궁리해도 정우를 벗어날 길이 없었다. 그래서 마음을 독하게 먹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동안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던 친한 동료와 관계를 가지고 있어. 그러니까 정우가 이쯤에서 내 길을 막지 말고 물러나 줬으면 좋겠어."

"알았어요. 그 말한 거에 대해 후회 않할 자신 있죠?"

"응."

석이는 정우의 얼굴을 마주 보고 당당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술좌석에서 먼저 일어나며 본심을 드러냈다.

"정 만나고 싶으면 여자와 결혼할 때 초대해. 그러면 내 기꺼히 초대에 응해 주지."

정우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맥이 풀려 멍하니 앉아 있었다. 석이는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술집에서 나와 우두커니 깜깜한 밤하늘만 쳐다보았다.


   그 일이 있은 뒤로 석이는 정우를 잊고 지낼 속셈으로 친한 동료와 어울려 다녔다. 석이와 친한 동료가 아파트 가게 앞을 지나갈 때 석이는 정우가 보고 있는 것을 알면서 모르는 체했다. 

석이는 주말 밤을 친한 동료와 육체적 관계를 가지면서 정우의 얼굴이 문득문득 떠올랐다. 친한 동료와 함께 있어도 정우를 생각하면 마음에 걸려서 도저히 편할 수가 없었다.


석이는 휴일의 여유을 만끽하며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잠을 자는데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잠이 덜 깬 상태로 휴대전화 발신 번호를 확인하고도 일부러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런데 석이 옆에 자고 있던 친한 동료가 뒤척이자 휴대전화를 얼른 들고 거실에 나가 전화를 받았다.

"정석이입니다."

"잘 잤어요?"

정우의 맑고 고운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석이의 귀청을 울렸다. 석이가 무슨 용건으로 전화를 걸었는지 정우에게 물어 보려는 순간 정우가 먼저 사유를 밝혔다.

"남쪽 베란다에서 밖을 보고 있어 봐요."

"그건 왜?"

"그냥 보고 있으면 알게 될 거에요."

"지금 베란다로 왔어."

"석이 씨 안녕!"

"이게 무슨 말이지?"

석이의 묻는 말이 끝나자마자 오싹하고 온몸에 소름이 끼치는 고요함 속에서 휴대전화 수화기를 통해 센바람 소리가 나더니 석이의 망막에 상이 맺히기도 전에 사람이 옥상에서 떨어졌다. 석이는 자지러지게 놀라 비명을 지르면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4월의 화창한 봄날이었다. 아파트 정원에는 벚꽃이 만개하고, 겨울 색을 지우고 봄의 색으로 아름답게 치장하기 위해 새싹이 돋아나는 시기에 석이는 바닥에 주저앉아 몸부림쳤다. 친한 동료는 세상 모르고 자고 있다가 석이의 외마디 비명 소리에 깜짝 놀라 잠이 깼다. 석이가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 친한 동료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베란다로 갔다. 친한 동료는 석이의 모습을 보고 난간에 기대어 서서 밖을 내려다보았다.

"어! 사람이 떨어졌는데 누구지?"

친한 동료가 말하지 않아도 석이는 정우라는 것을 알기에 넋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앉아 있었다. 정우는 석이에게 멍에를 메어 주고 이 세상을 떠났다. 아파트에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지고 나서 적막감이 감돌았다. 


   석이가 제 몸 하나 추스를 즈음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다. 석이는 경찰과 통화하면서 경찰서를 방문하기로 약속 시간을 정했다. 경찰은 석이 얼굴을 마주 보고 정우의 이야기를 꺼냈다.

"사망자와 마지막으로 통화했는데 공교롭게도 석이 님이 사시는 아파트네요."  

석이는 모든 것을 운명에 맡기고 담담한 어조로 자신의 치부를 드러냈다. 경찰은 석이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사람을 대하는 요령에 대해 조언했다.

"사람을 만나서 함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헤어지는 것은 더더욱 중요한 거에요. 안 그런가요?"

"예, 맞습니다."

"친구 간에도 서로의 의사는 확실히 전달하고 정확하게 받아들이는 입장(立場)이 필요한 거에요. 아무튼 바쁘신데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젠 집으로 돌아가셔도 됩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석이는 경찰서에서 나와 지친 몸을 이끌고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감정이 복받쳐 눈물이 앞을 가렸다. 물고기는 쉽게 얻을 수 있는 먹이가 어구(漁具) 안에 있다는 것을 모른다. 석이는 정우를 쉬이 잊을 수가 없기 때문에 자신의 삶을 고통스럽게  만든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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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pa…
  • 작성일
잘 읽고 갑니다.
석이는 앞으로 정우를 평생 잊지 못하겠네요.
만남 과 헤어짐
심사숙고하여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말아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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