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라 황석호 - 46

작성자 정보

  •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46>



2005년 4월 3일 일요일


  어제 민구 딸 돌잔치에서 영지가 영오 이름 가지고 뭐라 그랬다. 혹시나 영오 이름의 비밀이 나올 것 같아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그러지는 않았다.

  돌잔치 끝나고 영기네 집에 가서 잤다. 요즘 영기를 자주 보니까 자꾸 몸이 달아오른다. 안 된다고 하면서도 몸의 반응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나마 영오 때문에 욕망을 억제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아무래도 또 사고를 치기 전에 남자를 좀 만나고 다녀야겠다. 나도 참을 만큼 참았고, 영오도 이제 제법 컸으니까 마음 편하게 남자를 만날 수도 있겠지....



2005년 6월 18일 토요일


  어제 공연 끝나고 너무 꼴렸다. 몇 년 동안 딸딸이만 치고 섹스를 안 했으니 한계가 온 것 같았다. 내 이성이 마비가 되어서 또 영기를 어떻게 하고 싶었다. 술 핑계를 대고 영기를 덮치기 위해 엄청 마셨다. 그런데 영기가 영오를 안고 자는 모습을 보니 도저히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작은 방에서 폭풍 같은 딸딸이를 치고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영오를 데리고 집에 와서도 자꾸 영기 생각이 떠올라 달아오르는 몸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아무라도 만나서 섹스를 해야 할 것 같았다. 대화방에 ‘WANTBEAR’가 눈에 띄어서 바로 대화 신청을 했다. 나보다 한 살 작은 사람이었다. 나는 일부러 한 살 더 많게 나이를 속였다. 내가 신체사이즈를 말하고, 자지가 큰 편인데 잘 받을 수 있냐니까 그쪽에서 원하는 거라고 바로 만나자고 했다. 내숭도 없고, 시원시원한 성격 같아서 만나기로 했다. 영오를 엄마한테 맡기고 바로 지하철을 탔는데, 씨.발 영기를 만났다. 영기가 연습실에 놀러간다는 말에 도저히 너 먼저 가라고, 나중에 보자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만나기로 한 2번 출구 앞을 지나는데, 속이 상했다. 씨.발 몇 년 만에 하는 섹스라 너무 급하게 서두른 것이 화근이었다. 그냥 영기를 보고 못 본 척했으면 이런 일도 없을 거라는 생각에 후회도 밀려왔다. 근데 영기를 보고 본능적으로 반가워서 모르는 척을 할 수가 없었다. 씨.발 지금 또 후회가 밀려온다. 그냥 여자 따먹으러 간다고 했으면 될 걸 괜한 자격지심에 말도 못하고.... 약속한 사람한테 괜히 미안하네. 얼마나 내 욕을 했을까.

  영기랑 술 한 잔 하고 아무나 만나려고 했는데, 영오 때문에 그러지도 못했다. 씨.발, 영기한테 한 잘못을 조ㅈ 잡고 반성하라는 신의 계시인 것 같다. 조ㅈ 잡고 반성하면서 딸딸이나 쳐야겠다.



2005년 7월 16일 토요일


  드디어 방송 출연 섭외가 들어왔다. 따질 것이 없었다. 무조건 오케이였다. 영기한테도 기쁜 소식을 알렸다. 영기도 무척이나 좋아했고, 축하해줬다.

  씨.발 무대를 찢어 놓겠어. 이 세상에 황석호가 이끄는 SUKO FLY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 보겠어. 오줌 질질 싸게 존.나 열심히 연주하고 노래 불러 보겠어.

  사람들아 기다려라. 황석호가 하늘을 나는 모습을 보게 될 테니까....



2005년 7월 31일 일요일


  잠에서 깨니까 저녁이었다. 아직도 믿을 수가 없다. 내가 뭘 본 건지.... 그 짧은 시간이 내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그냥 모든 게 다 싫다.



2005년 9월 18일 일요일


  추석이다. 차례만 지내고 영오랑 집에 와 있는데, 민철이 형이 찾아왔다. 나한테 동거한다고 자랑이더니 헤어졌다고 했다. 내가 아는 것만 네 명이다. 민철이 형도 잘생겨서 남자랑 사귀다가 헤어졌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바로 또 사귀더니 이제 나이가 들어서 그러는지 바로 애인이 안 생기는가 싶었다.

  집에서 싸온 음식에 둘이서 소주잔을 기울이다가 영오가 잠들자마자 방에 눕혀 놓고 거실에서 바로 했다. 몇 년 만에 하는 섹스였다. 처음에는 엄청 달아올랐었는데, 싸고 나니까 허탈했다. 섹스도 자주 해야 재미가 나는 건데 오랜만에 하니까 별로 좋은 줄도 모르겠다.

  내가 이제 밴드 안 할 거 같다고 하니까 민철이 형이 그럴 거면 자기랑 같이 살자고 했다. 밴드도 안 하는데, 굳이 대도시에 살 필요가 있느냐고, 조용한 곳에서 같이 살면서 영오 키우자고 했다. 형도 아이 키우고 싶었다고....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건 아닌 거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없고, 민철이 형이 벌어다 주는 걸로 살림을 한다는 것도 남자 체면에 웃기는 일이고, 민철이 형이랑 같이 살다가 서로 싸우기라도 하면 은정이처럼 끝날 거 같아서.... 그렇게 되면 오랜 인연 하나가 날아가는 거니까 너무 두렵다. 친구도 거의 없는데.... 무엇보다 영오가 민철이 형이 별로 안 좋은지 가려고 하지를 않는다.

  씨.발 영기 보고 싶다.



2005년 9월 28일 수요일


  민구랑 철우도 이렇게는 못 살겠다고 선언을 했다. 다들 생각이 같았다. 셋이서 뭐 먹고 살까 머리를 맞대고 생각하다가 결론을 낸 것이 학원이었다. 철우는 가끔 하던 피아노 레슨을 본격적으로 할 거라 했고, 민구도 학원 차려서 혼자 하는 게 백 번 나을 것 같다고 했다. 영기가 과외해서 집도 샀는데, 자기네들도 그렇게 할 거라고 했다.

  밴드를 때려 치웠으니 아버지한테 손을 벌릴 명분도 사라져 버렸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버지 가게에서 일 봐주는 것밖에 없다. 그렇게 자연스레 아버지 가게가 나한테 넘어오는 것이 되는구나.... 이름 없는 밴드의 말로는 항상 이런 건가. 아버지가 자기처럼 살지 말라고 적극 후원해 준 건데, 결국 나도 아버지처럼 된 셈이다.



2005년 12월 10일 토요일


  철우랑 민구 개업식에 영기도 왔다. 여름에 보고 처음이었다. 영기한테는 계속 밴드하는 걸 보여주고 싶었는데, 이렇게 돼서 너무 쪽팔렸다. 공연도 없으니까 영오를 맡길 명분도 없고.... 씁쓸했다. 밴드를 천 년 만 년 할 것이라 생각은 안 했지만 이런 식으로 끝이 나니까 허탈하고 참담하기까지 하다. 영기가 현명하게 사는 것이었다.



2006년 3월 4일 일요일


  어제 영기가 너무 보고 싶어서 그냥 영오 데리고 무턱대고 찾아갔다. 왜 왔냐고 물어보면 영오 핑계를 댈 생각이었다. 영오가 보고 싶어했다고.... 내가 핑계를 대기도 전에 영기가 먼저 영오 보고 싶었는데 잘 왔다고 반겨줬다. 씨.발.... 착한 새끼.



2007년 7월 11일 수요일


  하루하루가 너무 무료하다. 철우 학원에서 기타 레슨을 하면 기타를 놓지 않는 거니까 좋을 줄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연습을 하나도 안 하고 와놓고 레슨을 할 때마다 왜 실력이 늘지 않는 거냐고 물으면 한 대 때리고 싶다. 아무리 못해도 하루에 30분 이상은 연습을 해야 한다고 그렇게 말을 해도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연습을 할 시간이 없다고 한다. 씨.발 그럼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레슨 할 때만 기타 잡고 뚱땅거려서 다 될 거 같으면, 전 지구인이 다 기타 잘 치게? 제일 짜증나는 질문은 선생님만큼 치려면 몇 달 동안 쳐야 하느냐이다. 몇 년도 아니고 몇 달. 마음 같아서는 씨.발 이딴 식으로 하면 너 죽을 때까지 쳐도 노래 한 곡 못 칠 거라고 말하고 싶지만 철우를 봐서 억지로 참았다. 철우가 늘 용기와 희망을 줘야 계속 등록을 한다고 해서 자꾸 하다보면 언젠가는 될 때가 있다고 용기와 희망을 가장한 구라를 쳤다.

  씨.발 내가 가르친 사람 중에 내 신경을 건드리지 않고 보람을 느끼게 한 사람은 영기밖에 없다. 영기가 하던 반에 반만큼만 연습을 해도 1년 안에 제법 친다는 소리를 들을 텐데.... 그러고 보면 영기가 진짜 독한 새끼다. 나도 기타 처음 칠 때 영기만큼 연습 안 했는데.... 씨.발새끼.... 보고 싶다.



2007년 7월 14일 일요일


  어제 영기랑 영오랑 같이 찜질방에 갔다. 씨.발 오랜만에 영기 벗은 거 보니까 또 꼴렸다. 나이는 못 속이는지 매끈하게 잘 빠졌던 영기도 군살이 좀 붙어 있었다. 얼굴도 세월의 흔적이 묻어났다. 씨.발 그래도 잘생긴 건 여전하다.

  볼일을 보는 척 화장실에 가서 딸딸이를 쳤다. 씨.발.... 좋아하는 사람을 앞에 두고 좋아한다고 말도 못하고 화장실에서 딸딸이나 치는 내 인생.... 정말 조ㅈ같다.



2008년 1월 1일 화요일


  씨.발 벌써 39살이다. 내년이면 40살.... 세월이 존.나 빨리 간다.

  영오도 벌써 7살이다. 씨.발 뭐가 그리 마음에 안 드는지 걸핏하면 잔소리다. 엄마 말로는 내가 7살 때 하도 말을 안 듣고 자기 맘대로 하려고 해서 내다 버리려고 했었다고, 아마 영오도 그럴 거라고 나한테 각오하라고 했다. 각오할 것도 없이 벌써부터 그러고 있다.

  근데 이 새끼가 정말 웃긴 게 영기한테만 가면 완전히 순한 양이 된다. 영기는 영오가 너무 순해서 나한테 키우기 편하겠다고 하고.... 황영오 이 새끼 내 아들이지만 존.나 가증스럽다.



2008년 9월 12일 아니 13일 새벽 토요일


  할 일이 없고 잠도 안 와서 TV 채널만 돌리고 있다가 영화를 봤다. 즐거운 인생. 씨.발 보는 내내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이런 영화가 있는 걸 왜 몰랐을까. 완전 내 얘기였다.

  씨.발 나도 주인공처럼 밴드 다시 하고 싶다. 존.나 하고 싶다. 영기도 이 영화를 봤을까? 이 영화 보여주면 나처럼 밴드 다시 하고 싶어 하지 않을까?



2008년 9월 21일 일요일


  오늘 민구랑 철우랑 같이 연습실에서 미친 듯이 연주를 하고 노래를 불렀다. 몇 년 만에 오르가즘을 느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민구랑 철우도 몸을 부르르 떨었다. 우리는 다 늙은 나이에 옛날처럼 발가벗고 연주를 했다. 씨.발 방송에서 옷 벗은 놈들 때문에 밴드 때려치웠는데, 다시 하니까 우리가 벗고 있었다.

  영기도 다시 우리랑 같이 하기를 바랐는데.... 씨.발 영기도 어느새 공무원이 다 되어 있었다. 공무원이 그렇지뭐. 씨.발 공무원 새끼들이 영기를 복지부동 공무원으로 만들어 놓은 것 같아서 존.나 짜증난다. 그래도 나는 영기를 믿는다. 이 새끼도 언젠가는 반드시 다시 밴드를 할 거다. 밴드는 마약이라서 끊을 수가 없는 거니까. 씨.발 뽕쟁이들한테 뽕 구해서 영기를 뽕쟁이로 만들어 버릴까.... 대마초는 구할 수 있는데.... 진짜 내가 미쳤나 보다.



2009년 1월 1일 목요일


  씨.발 벌써 나이를 40살이나 처먹었다. 밴드 다시 안 했으면 존.나 우울했을 텐데 정말 다행이다.

  아~ 이제 영오도 학교에 들어가는구나. 잘 적응을 할까. 나처럼 말썽 피워서 선생님이 부모님 모시고 오라면 얄짤 없이 내가 가야 되는데.... 씨.발 마음을 비우자. 나 닮은 새끼니까 당연히 내가 학교 갈 일이 생기겠지. 1년에 딱 한 번만 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2009년 2월 15일 일요일


  어제 발렌타인데이라고 영기한테 초콜렛을 받았다. 씨.발 남들 다 받는 초콜렛을 나는 나이 40을 처먹고서야 처음 받았다. 남자한테 받아서 기분 조ㅈ같겠지만 그래도 그냥 넘어갈 수 없다면서 영기가 줬는데, 씨.발 너무 좋아서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사랑하는 사람한테 초콜렛을 받는다는 것은 정말 가슴 떨리게 좋은 일이었다.

  지금 영오가 책가방을 열었다 잠갔다 하고 있다. 영기가 영오한테 입학 선물로 사준 것이다. 영오 말로는 같이 백화점에 가서 샀다고 했다. 2월 말에 사주려고 했는데, 영기가 먼저 챙겨줘서 너무 고마웠다. 영기 덕분에 영오가 한글도 쉽게 떼고, 선물도 사주고.... 내 인생에서 영기만큼 소중한 사람이 또 있을까 싶다. 공연 핑계로 영오 맡길 때마다 영기가 영오를 좀 가르쳐 줬으면 싶은데, 내 욕심이겠지.... 영오가 영기한테 배우면 진짜 잘 할 건데....



2009년 3월 1일 일요일


  영오한테 입학 선물로 기타를 안겨줬다. 연습 끝날 때까지 기다릴 때 영오가 기타줄을 튕기는 것이 예사롭지가 않다. 진짜 나를 닮았다면 기타도 곧잘 칠 거 같다. 영오 체구에 맞는 베이비 기타를 갖다줬는데, 엄청 좋아라 한다. 영오도 영기처럼 재미가 들려서 연습을 많이 하면 얼마나 좋을까.



2009년 6월 21일 일요일


  어제 영오가 받아쓰기 100점 받은 걸 나한테 보여주면서 자랑을 했다. 다 영기 덕분이다. 씨.발 이제 초딩 1학년한테 겹받침에, 나도 ‘안 돼’인지 ‘안 되’인지 ‘않 돼’인지 헷갈리는데 이딴 걸 하고 있으니, 진짜 그걸 가르치는 영기나 또 그걸 다 맞는 영오나 대단하다. 아우~ 내 새끼. 귀여워 죽겠어. 기타도 곧잘 치고, 받아쓰기도 잘 하고 이뻐 죽겠다.



2010년 3월 1일 월요일


  오랜만에 영기도 끼어서 넷이 함께 저녁도 먹고 술도 한 잔 했다. 우리는 다 늙었는데, 여전히 젊음을 유지하는 영기 때문에 민구랑 철우가 한 마디씩을 했다. 민구가 나한테 늘 푸념을 하는 말을 영기에게도 늘어놓았다. 살찌는 게 죄도 아니고 뭐 어때서. 나는 세 자리 찍은 지 오래 됐구만.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맛있는 거 맘대로 먹고 사는 게 행복이지. 마누라 잔소리를 안 듣고 사는 것은 그나마 게이의 행복이 아닐까 싶다. 씨.발.... 그래도 민구랑 철우가 부럽다. 마누라랑 하고 싶을 때 하고 사니까.... 씨.발 딸딸이나 쳐야겠다. 게이 인생은 정말 딸딸이 인생이다. 그나저나 영기는 결혼을 왜 안 하지? 씨.발 얼굴이 잘 생겼으니까 나이가 들어도 여자 끊어질 날이 없나 보다.



2010년 10월 29일 금요일


  퇴원을 하고 집에 오니까 진짜 살았구나 싶다. 병원에서 눈 떴을 때 영오가 우는 게 보여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었다. 지금 생각해도 소름이 돋는다.

  씨.발 살 빼고 운동해야겠다. 담배도 끊을 수 있으면 끊고...



2011년 2월 27일 일요일


  주말에 오랜만에 영기를 봤다. 살이 빠진 모습을 보고 영기가 몸짱이 되겠다고 응원을 해줬다. 고마웠다. 더 열심히 노력해야겠다.



2012년 3월 25일 일요일


  씨.발 1차 예선에서 떨어졌다. 전국에 내로라하는 밴드가 600팀이 넘게 모여서 그 중에 99팀을 뽑는데, 내가 걸릴 리가 없지. 이름만 들어도 잘 아는 밴드들이 참가를 했는데 내가 무슨 수로.... 근데 왜 자꾸 아쉬움이 남는 걸까. 옛날만큼 목소리가 나왔으면 어땠을까 하고 자꾸 아쉬움이 남는다. 몇 번이나 영상을 찍어도 마음에 드는 것이 하나도 없었는데, 결국 탈락이다. 고음을 낼 수가 없으니 당연한 결과가 아닌가 싶다.

  씨.발 다시 살을 찌워야 하나.... 앨범 내기 전에 예전의 목소리를 찾았으면 좋겠다.



2012년 11월 29일 목요일


  녹음한 것을 들어보니까 옛날 목소리를 찾은 것 같다. 다행이다. 결국 살을 뺀 것이 문제였다. 내 목소리는 다 살에서 나온 것이었는데. 이제 절대로 안 빼야겠다. 밴드 보컬이 목소리를 잃는다는 건 죽는 거나 다름없으니까. 영기도 다시 돌아온 내 목소리를 듣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역시 사람은 나이를 못 속이는 건가. 영기도 목소리가 변해 있었다. 근데 나랑은 달리 영기는 목소리에서 세월이 느껴졌다. 생긴 거랑 다르게 묵직한 목소리가 영기의 장점이었는데, 거기에 더해 삶의 희로애락이 다 담겨 있는 듯해서 소름이 끼칠 정도로 좋았다. 영기에게 사랑한다는 말도 못하고 끙끙 앓으며 살아온 내 인생을 솔직하게 만든 노래인데, 영기는 그 감정을 어찌 그리도 잘 표현하는지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그냥 바로 녹음을 해도 될 것 같은데, 영기는 자기 것이 될 때까지 연습해서 마지막에 녹음을 하고 싶다고 했다. 영기가 그렇게 하려 한다면 당연히 그렇게 하도록 해야 하는 게 내 의무다.



2013년 7월 7일 일요일


  오늘 영오랑 같이 샤워를 하고 영오 먼저 내보낸 뒤에 나도 샤워를 하고 나왔더니 영오가 발가벗은 채로 침대에 누워 꼬추를 만지고 있었다. 꼬추를 잡고 흔드는 모양이 영락없이 딸딸이를 치고 있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모르는 척 해줬어야 되는데, 처음 봤을 때는 너무 놀라서 이놈시키 지금 뭐하는 거냐고 했더니 너무나 태연하게 계속 꼬추를 잡고 흔들면서 이렇게 하면 기분이 좋다고 했다. 그딴 건 어디서 배웠냐니까 나한테 배운 거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내가 샤워할 때 자지 흔드는 거 보고 자기도 따라해 봤는데 좋았다나 어쨌다나. 진짜 이 새끼는 정말 대책이 없다. 하나부터 열까지 나를 닮았다. 아니 나보다 더한 놈이다. 나는 중학교 들어가서 민철이 형한테 겨우 배운 건데, 이놈은 겨우 초딩 5학년 나이에 딸딸이를 친다. 씨.발 중1 때 처음 치나 초딩 5학년 때 처음 치나 어차피 칠 거 신경 안 쓰기로 했다. 아빠보다 2년 빨리 친다고 뭐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닌데....

  딸딸이는 혼자 치는 거니까 혼자 있을 때 하라고 하니까 같은 남자끼리 뭐 어떠냐고 그런다. 진짜 내 아들이지만 대책이 없다. 그래서 타협을 한 게 절대로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하지 말라고 했더니 알았다고 한다. 성교육을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씨.발 영오 팔자도 참 안 됐다. 하필이면 게이 아빠를 둬서....

  근데 영오가 싸는 걸 보니까 마음이 뿌듯하다. 다 키운 거 같아서. 내가 키운 게 아니라 지가 알아서 큰 거나 마찬가지지만....



2013년 7월 20일 토요일


  녹음이 모두 끝났다. 내가 영혼을 갈아 넣어 만든 노래를 영기가 혼신의 힘을 다해 불러줘서 고마울 따름이다. 어린 영오도 영기가 노래하는 것을 듣고 박수를 쳤다. 진심을 담은 노래는 모든 사람을 감동시키는 모양이다.

  영기한테 제주도에 같이 가자고 했다. 영기도 오케이를 했다. 떠나는 날 비행기가 모두 만석이라서 일단 대기를 걸어놓기는 했는데, 될지 모르겠다. 취소하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영오도 영기랑 같이 가고 싶어서 지금 온갖 신들을 다 찾으면서 기도하고 있다. 



2013년 8월 5일 월요일


  제주도 여행 마지막 밤이다. 정말 3일이 금세 지나갔다. 나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영오가 너무 좋아라 해서 더 좋았다. 영기 얼굴에도 3일 내내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지금 영오가 영기 가슴에 손을 얹고 자는 모습이 보인다. 씨.발 부럽다. 나도 저렇게 영기를 껴안고 자고 싶은데.... 아들한테 부러움을 느끼는 걸 보면 나도 참 대책이 없는 놈이다.

  근데 진짜 3일 내내 정말 행복했다. 같이 밥 먹고, 같이 자는 게 너무 좋았다. 영기도 늘 혼자 살아서 심심했는데, 같이 여행하니까 정말 좋다고 했다. 영기랑 셋이 같이 살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이렇게 매일 매일이 행복일 텐데.... 미친 척 하고 영기한테 같이 살자고 해볼까. 싫다고 하면 농담이었다고 하고.... 영오 앞에서 영오 핑계 대면 영기도 어쩌지 못할 거 같은데....

  씨.발 나는 정말 나쁜놈이다. 아들 팔아서 내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니까.... 근데 이렇게 같이 여행 오니까 좋은 걸 어떡해.



2013년 8월 6일 화요일


  무슨 3박 4일이 이렇게 빨리 끝난 건지. 좀 전에 집에 돌아왔는데 또 가고 싶다.

  겨울에 사이판 가기로 했으니까 그때까지만 참자. 앨범 작업 하다보면 금방 시간이 가겠지. 영오랑 영기랑 셋이서 스노클링 할 생각을 하니까 벌써부터 설렌다.



2013년 9월 13일 금요일


  앨범 작업이 지겨울 때면 여권을 꺼내 만져본다. 출입국 도장이 찍혀 있는 내 여권이랑 만든 지 얼마 안 된 영오 새 여권을 만지다보면 사이판에 와 있는 것 같다. 셋이서 하루 종일 물놀이 하다가 깜깜한 밤에는 새섬에 가서 쏟아지는 별을 볼 생각을 하면 후반 작업의 지루함도 금방 날아간다.

  사이판에 가면 영기한테 같이 살자고 할 계획이다. 함께 즐거운 날들을 지내다 보면 영기도 쉽게 허락할 것 같다. 솔직하게 내가 게이라는 것도 밝히고, 그때 일을 꺼내어 사과를 할 거다. 강제로 시도한 것은 정말 미안한데, 진짜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고백을 할 거다. 내 고백이 받아들여지든 말든.... 어차피 비행기 탈 때까지는 같이 있어야 되니까, 영오도 있으니까 영기도 내 고백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것 같다. 진심은 통하기 마련이라는 게 내 믿음이다. 눈 딱 감고 나랑 한 번 섹스를 하면 그 어느 여자보다 더 만족할 수 있을 거라고 진심으로 말할 거다. 자신 있다고.... 똥구멍으로 받는 것이 힘들 것 같으면 내 똥구멍에 조ㅈ을 넣으라고, 그동안 지켜왔던 내 똥구멍을 영기한테 내줄 거다. 나는 영기를 진짜 진짜 사랑하니까. 영기를 만나고 지금까지 한 번도 그 마음이 변한 적이 없으니까....



2013년 9월 21일 토요일


  영오를 영기한테 보냈다. 나도 지겨운데 영오는 얼마나 지겨웠을까. 아들내미 하나 있는 거한테 내가 별일을 다 시키고 있다.

  오늘 또 가슴이 쮜어짜듯이 아팠다. 올해 들어서 벌써 몇 번째다. 오늘은 너무 아파서 숨도 못 쉴 거 같았다. 겨우 정신을 차리니까 밤 11시가 넘어 있었다.

  영오랑 영기한테 연락이 없는 걸 보니 자고 오는 것 같다. 혼자서도 잘 찾아가니까 영오 정말 다 키운 거 같다.



2013년 9월 22일 일요일


  영기를 보니까 더 빨리 사이판에 가고 싶어졌다. 영오가 방학할 때까지 못 기다릴 것 같아서 앨범 작업 끝나자마자 가자고 했다. 별 마음이 없는 척 하지만 영기도 나처럼 엄청 기대하고 있다는 걸 잘 안다. 20년을 넘게 봐왔는데 그거 하나 모를까. 자기도 기대하니까 나한테 겨울에 사이판 가는 거 맞냐고 먼저 물어본 거지. 씨.발 이영기야, 니 마음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다 내가.... 사이판 가서 진짜 행복하게, 하늘을 날게 해줄게. 조금만 기다려.



2013년 10월 1일 월요일


  영오가 성에 대해 부쩍 관심이 많아져서 자꾸 질문을 한다. 학교에서도 배우는 것으로는 호기심이 충족되지 않는 모양이다.

  오늘은 대뜸 자기가 어떻게 태어났는지에 대해서 물었다. 선생님이 아빠랑 엄마랑 사랑을 해서 아이들이 태어났다고 한 모양인지, 내가 지 엄마를 사랑했냐고 물었다. 헤어진 이후로 한 번도 은정이를 본 적이 없으니 영오의 기억에는 아예 엄마라는 존재 자체가 없으니 의구심을 가질 만 했다. 영오한테 너무 미안했다. 사랑이라는 거는 시간이 지나면 변할 수 있는 거라고, 그래서 엄마랑 헤어졌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아직 어려서 그런지 잘 받아들이지 못했다.

  영오가 나중에 커서 더 많은 것을 알게 되면 내가 게이라는 것도 눈치를 챌 것 같았다. 사이판에서 영기한테 고백을 하고, 혹시나 같이 살게 되면 더 빨리 알게 될 것 같아 미리 가르쳐야 할 필요성이 느껴졌다. 철이 들어서 받을 충격을 아직 잘 모를 때 미리 말해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영오한테 사랑이라는 것이 꼭 결혼을 하는 남자와 여자 사이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세상을 살다보면 누구에게나 가질 수 있는 감정이라고, 항상 보고 싶고, 같이 있고 싶은 마음이 사랑이라고 둘러말했다. 영오가 내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자기는 영기가 늘 보고 싶고 같이 있고 싶은데, 그것도 사랑이냐고 물었다. 초점에서 벗어나긴 해도 아니라고는 할 수 없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어렵게 말을 꺼내는 것보다 영오가 영기한테 같이 살고 싶다고 말하라고 시켜도 될 것 같다. 내 아들 황영오는 아빠 황석호랑 사람 보는 눈도 똑같다. 하긴 영기가 영오한테 그렇게 잘해 주는데 영오가 사랑을 안 느끼면 그게 이상한 거지. 인간 이영기는 이 세상에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니까.



2013년 10월 9일 수요일


  요즘 자주 가슴이 아프다. 병원에 간다간다 하면서도 시간이 지나면 또 안 아프니까 자꾸 미루게 된다. 병원에 갔다가 또 수술하라고 그러면 앨범 작업이고 사이판이고 다 물 건너가는 건데....

  10월까지만 버티자. 다음 주까지 앨범 작업 끝내고 바로 떠나자. 사이판 갔다 와서 입원을 하든 수술을 하든 하면 되니까.

  하느님, 부처님, 예수님, 알라신이시여.... 한 달만 몸 건강히 버티게 해 주세요. 전지전능하니까 제 마음 알잖아요. 사이판 갔다 와서 꼭 병원 갈게요. 제발.... 제발요....




-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관련자료

댓글 1

<span class="sv_wrap"> <a href="https://ivancity.com/bbs/profile.php?mb_id=fame69" data-toggle="dropdown" title="아메니 자기소개" target="_blank" rel="nofollow" onclick="return false;"> 아메니</a> <ul class="sv dropdown-menu" role="menu"> <li><a href="ht님의 댓글

  • <spa…
  • 작성일
저도 5년전 협심증으로 좀 위험한 상황전까지 간경험이 있어
석호의 현상황이 안타깝네요! 감정이입의 강도가 더해집니다.
잘 읽었습니다. 다음편도 기다리겠습니다.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