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남자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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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하기 - 너와 나의 만남
나는 쉬는 날 저녁을 먹고 부지런히 설거지하고 조깅(jogging)에 나섰다. 남산(南山)은 전등의 불빛이 대낮같이 환해 완만한 산책로는 운동하기에 적당했다. 그동안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던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면서 내 나름대로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동하면서 들을 수 있는 MP3도 구입하고 트레이닝복도 여벌로 준비했다.
나는 두꺼운 트레이닝복을 입고 산책로를 운동하는 반면 나무는 충충하고 칙칙한 옷을 벗고 새봄 단장하기에 바빴다. 인간과 달리 자연의 법칙에 어긋나지 않은 봄은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이다. 수령이 오래된 소나무 아래 솔잎이 깔린 곳에 나는 등을 기대고 휴식을 취했다. 도시 전체가 시야에 들어와 감상하다가 새콤맞은 성적 충동을 느끼고 오래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나는 입사 면접하기 위하여 난생처음 양복을 한 벌 사고 구두도 샀다. 평상시 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면서 알람을 맞춰 놓았다. 어느 순간에 깜짝 놀라 깨 보니 새벽 두 시를 넘었다. 한동안 잠이 오지 않아 면접에 대비해 자문자답하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나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들었다. 그런데 어저께 맞춰 놓은 알람 소리를 듣지 못하고 늦잠을 잤다. 면접 장소까지 급히 서둘러 가면 늦지 않을 것 같아 집을 나섰다.
평소에 잘 다니던 택시는 보이지 않아 이리 저리 뛰어다니다 시내버스를 발견했다. 학생들 등교하는 시간이라 발 디딜 틈도 없는 만원 시내버스 안을 비집고 들어가 중학생 옆에 섰다. 오른손은 손잡이를 잡고 왼손을 어디다 둘지 몰라 축 늘어뜨렸다. 그런데 중학생의 지퍼 부분이 왼손등에 닿은 느낌이 왔다. 나는 슬며시 왼손을 젖히고 중학생의 자지를 살짝 쥐었다가 놓았다. 중학생의 자지는 분명히 발기해 있어 나는 천천히 교복 바지 지퍼를 아래로 내렸다. 왼손을 교복 바지 안으로 넣으면서 나도 모르게 속으로 감탄했다.
'아, 좋다!'
나는 시내버스 안에서 그 짓에 빠져 면접은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성욕을 즐겼다. 남의 시선을 피해서 팬티를 사이에 두고 만지는 은밀한 행위는 유별난 묘미를 안겼다.
나의 자지는 지나간 때의 생각만으로도 자극을 받아 트레이닝 바지 앞 부분이 볼록했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서 나타났는지 너는 차림새가 깔끔한 트레이닝복으로 오른손에 플라스틱 의자와 왼손에 밧줄을 가지고 나타났다. 너는 나의 시선은 아랑곳없이 자기 뜻대로 플라스틱 의자를 소나무 아래에 놓고 굵은 가지에 밧줄을 매어 고를 맺었다. 나는 멀뚱멀뚱 앉아 너의 행동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속말했다.
'나를 투명인간 쯤으로 보이나 보지. 내 앞에서 뭐하자는 거야.'
나의 속말이 끝나자마자 너는 플라스틱 의자에 올라 서서 올가미를 목에 걸고 자살하려는 순간이었다. 나는 소리치며 벌떡 일어나 쏜살같이 이동해 너의 몸을 잡았다.
"어어, 뭐하는 거에요?"
"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으니까 놓란 말야."
너는 어찌하여 자살하는지 사유는 알 수 없지만 나의 앞에서 자살하는 것을 내버려둘 수 없어 살살 달랬다.
"그래도 젊은 나이에 그러면 되나요?"
"남의 일에 참견 말고 왜 하필이면 거기를 잡고 난리야?"
나는 너를 다급히 잡는다는 것이 골반을 감싸며 양손이 자지를 압박했다. 그렇다고 위급한 상황에서 달리 자세를 바꿀 수 없어 사유를 밝혔다.
"얼떨결에 잡는다는 것이 그만."
"너무 세게 줘서 아프잖아."
나는 자살하는 사람도 아픈 것을 느끼는구나 생각하고 넌지시 너의 마음을 떠보았다.
"죽으려고 한 사람이 아픈 건 아네요. 근데 몇 살인데 나한테 말을 놓지……요?"
"스물 여덟이다 왜?"
나 원 참 기막혀서 열받았다. 타고난 성질 같아서는 너가 죽든지 말든지 내버려두고 싶지만 이왕에 시작한거 사람 하나 살리고 보자는 마음에서 윽박질렀다.
"야, 나는 너보다 열 살 하고 두 살이나 많은데 죽으려고 환장하니까 막가는 거냐?"
"그래 죽을 놈이 이것 저것 가리고 죽냐?"
"까불지 말고 내려와. 안 그러면 추리닝 바지를 확 벗겨 버릴테니까."
나의 협박(脅迫)에 너는 풀이 죽어 몸이 축 쳐졌다. 너를 살리려는 굳건한 의지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러나 나는 오줌을 싸게 생겨 다리를 꼬고 너에게 도와 달라고 하소연했다.
"팔 아픈 건 둘째치고 나 급해서 그런데 올가미 풀면 안 될까?"
"아까 풀었는데."
나는 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내동이치고 소나무 아래에 오줌을 누었다. 오줌을 참았던 자지에서 폭포처럼 떨어져 배출의 쾌감을 만끽했다. 너는 슬금슬금 나를 피해 천연덕스레 소나무 반대편에 서서 트레이닝복 바지를 내리고 오줌을 누었다. 나는 소나무 옆으로 고개를 삐쭉 내밀고 비꼬아 말했다.
"왜 오줌 누고 죽게?"
"아저씨 때문에 기회를 놓쳐서 다음에 할 생각이야."
너의 말투가 거칠어도 밉지 않았지만 처음 만난 처지에 말을 놓고 지내는 게 예의가 아니다 싶어 언성을 높였다.
"너 계속 나한테 말 놓을래?"
"한번 말 놓기 시작하니까 '요'자 붙이는 게 죽기보다 싫어."
나는 너의 당돌한 행동과 기분 나쁘지 않게 말을 놓아 눈 딱 감고 다독였다.
"알았어. 그 대신 죽지 말고 이왕이면 형이라고 불러."
"호칭에 대해선 생각해 볼게."
너를 여기서 그냥 보내면 아무래도 마음이 뒤숭숭해서 일이 손에 안 잡힐거 같아 나는 뒷일까지 생각하고 의중을 떠보았다.
"오늘은 나랑 함께 있자."
"왜?"
나의 배려하는 마음을 너가 알리 없다. 서로의 의사는 확실히 전달하고 정확하게 받아들이는 입장(立場)이 필요해 까놓고 말했다.
"또 다시 엉뚱한 짓 할까 봐."
"그럴지도 모르지. 취업도 안 되고 그렇다고 아무 데나 들어가자니 자존심 상하고 더 견디기 힘든건 집에서 눈칫밥 먹는 게 모래알 씹는 것 같아."
너는 나를 따라나설 생각으로 소나무의 가지에 묶인 밧줄을 풀고 플라스틱 의자를 챙겼다. 나는 너의 양손에 있는 밧줄과 플라스틱 의자를 빼앗아 저 멀리 획 던져 버렸다.
나의 아파트에 처음 온 너는 서먹서먹한 기분을 해소하기 위하여 벽에 걸린 액자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 갔다. 나는 처음 산 양복과 구두를 기념하기 위하여 사진을 찍어서 액자에 넣어 벽에 걸었다. 너는 액자 앞에서 아리송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나는 너의 곁으로 가까이 가면서 자랑했다.
"사진 잘 나왔지?"
"이 사진 보니까 우리 옛날에 만난 적 있어."
"언제?"
나의 물음에 너는 골똘히 생각하다가 도저히 생각나지 않자 뒤숭숭해서 참을 수 없는 듯이 말했다.
"음, 지금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언젠가 한번 만난 건 확실해."
"그래? 나중에 생각나면 말해 줘. 그나저나 너 여기서 자면 집에서 걱정 안 할까?"
"독서실에서 밤새워 공부하는 줄 알겠지."
지금 너에겐 백 마디의 위로하는 말보다 그림자처럼 편안한 상대가 더 필요했다. 나는 운동할 때 사용하던 MP3의 이어폰을 너의 귀에 꽂았다. 가사가 있는 것 보다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는 '시크릿 가든'의 음악을 틀었다.
"손님이 왔는데 음악으로 대접하는 게 어딨어."
"흐흐, 죽을 때 죽더라도 할말은 하고 죽겠다."
"근데 혼자 살아?"
"응, 가정 불화로 독립했어."
너는 내 대답을 듣는 둥 마는 둥 음악에 심취한 듯 편안한 자세로 눈을 지그시 감고 침대에 큰대자로 벌렁 누웠다. 나는 침대 옆에 걸터앉아 말없이 너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걱정 어린 말했다.
"너 혼자 생각하고 죽으면 부모님 가슴에 못 박는 일이야. 절대 하지 마. 알았지?"
너는 아무 반응이 없어 눈꺼플을 쳐다보았다. 너의 평온하고 부드러운 숨소리가 허공을 들락날락했다. 나는 바람 빠진 공처럼 너의 옆에 누워 잠을 청했다. 이어폰에서 음악이 흘러나와 귀에 거슬려 너의 귀에서 조심스레 뺐다.
나는 잠결에 오른손을 들었다가 잠시 어디에 둘지 생각하다 곧바로 이불에 얹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불 위에 얹은 오른손이 너의 그곳이었다. 너의 반응을 주시하며 나는 다음 행동을 생각했다. 너의 심장 박동이 나의 오른손을 통해 중추 신경계를 지나 뇌에 전달됐다. 나의 심장도 너의 박동에 맞춰 갑작스레 빨라졌다. 나는 남자와 자면 그짓을 하지 못해 안달을 부렸다. 너에게 그짓을 하기에는 엄두가 안 나 성욕을 꾹 참았다. 그러나 참을 수 없는 한계에 다다랐을 때 이것저것 가리는 형편따위는 거추장스러운 존재였다. 일단 일을 저질러 보고나서 나중에 가서 수습하면 됐다. 나는 누가 됐든 한번 건드리면 사정(射精)해야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공연히 건드려 놓고 사정 시키지 못하면 김새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양파을 한 꺼플 한 꺼플 벗기듯이 너의 트레이닝복과 사각팬티를 벗겨 알몸을 만들었다. 너의 온 꺼풀이 벗은 모습은 살아 있어 체온을 느낄 수 있다. 만약에 너가 자살했다면 나는 즐거움이 넘치는 기분을 가질 수 없다. 너와 나는 죽지 않고 숨이 붙어 있으니 천만다행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빼기 - 너와 나의 이별
너는 하룻밤 나와 함께 자고 눈을 뜨자마자 침대에서 일어나 방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팬티와 트레이닝복을 주섬주섬 입었다. 나는 간밤에 한 행위가 떳떳하지 않아 자는 체하면서 너의 행동에 귀를 주고 있다. 너는 침대에 누워있는 나에게 다가와 싱긋 웃으며 귓속말했다.
"어제 밤엔 기분 좋았어."
"정말?"
나는 얼떨결에 질문하고 아차 싶어 눈을 떠 너를 쳐다보았다. 너는 눈을 내리뜨고 나를 보며 대답했다.
"잘 알잖아."
"히, 아침 먹고 가."
너는 대답하지 않은 채 등을 돌려 아파트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나는 침대에서 키드득거리면서 뒹굴다가 느닷없이 소리쳤다.
"아차, 오늘 근무하는 날이지!"
그 일이 있은 뒤부터 너를 만나려 마음에 두고 있어도 만나지 못했다. 너를 기다리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면서 집착심이 완화될 때 뜻하지 않은 시내에서 너를 발견했다. 나는 택시를 오른쪽에 정차하고 안전 벨트를 풀은 뒤 차문을 열고 나왔다. 그런데 조금 전까지 있던 너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너를 찾으러 이리저리 쏘다니고 사방을 둘러보아도 없다.
저녁 무렵에 아침해 아파트에 가는 손님을 동(棟)까지 모시려고 나는 사는 곳을 물어 보았다.
"손님, 몇 동 사세요?"
"102동요."
손님이 사는 102동에 택시를 정차하고 운행 요금을 받으면서 너의 모습이 향나무 사이로 언뜻 눈에 띄었다가 사라졌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어 나는 늦기 전에 얼른 택시에서 내려 앞서가는 너를 한걸음에 따라갔다. 나는 너의 솔잎대강이 뒤통수에 대고 반가운 어투로 불렀다.
"오래간만이다."
"어! 여긴 어떻게 알고?"
너는 인삿말 없이 뒤돌아서서 나의 표정을 유심히 관찰했다. 나는 너의 얼굴빛을 보고 마음이 들떠 동문서답했다.
"죽지 않고 살아 있으니까 만나게 되네."
"나 지금 취업 준비 때문에 독서실 가야 돼."
"내가 태워다 줄게."
너는 나와 동시에 택시에 타고 안전벨트를 매었다.나는 택시를 출발하면서 미리 목적지를 생각해 두었다. 너는 독서실로 가는 방향이 아닌 것을 뒤늦게 알고 나를 의아스레 바라보았다.
"어디 가는 거야?"
"교외로 드라이브나 하자."
"지금 시간 없어."
"그래도 오래간만에 만났는데 바람이라도 쐴 겸 나가자."
나의 완곡한 말씨에 너는 거부하지 않고 순순히 따랐다. 동성애가 뚜렷이 부각되지 않았을 때는 아무 데서 남자를 만나도 개의치 않았다. 시내 특유의 안면이 있어 나는 남자를 만나면 인적이 드문 외곽 지대로 나갔다. 택시는 시내에서 십여 킬로미터 떨어진 저수지에 당도했다. 나는 택시에서 내려 '민락정'에 올라 너를 바라보았다. 너는 행동을 느릿느릿해서 마지못해 택시에서 내려 민락정 주변을 서성이었다. 나는 휘파람을 불어 너의 시선을 끌은 뒤 민락정으로 오라고 손짓했다. 나는 계단을 오르는 너의 얼굴을 빤히 내려보고 마음에 담아 둔 말을 내뱉었다.
"나를 너한테 푹 빠지게 만들어 놓고 이제와서 나 몰라라 하면 어떻게 하라는 거야?"
"누가 그렇게 하랬어."
"생명의 은인한테 너무 매정한거 아녀?"
"그래서 유세(有勢)부리는 거야? 더 이상 군소리하지 않겠어. 진득하게 달라붙지 말고 떨어져."
나는 너의 단호히 맺는 말을 듣는 순간 숨이 콱 막혔다. 이대로 호락호락 넘어갈 나는 아니기에 너에게 사유(事由)를 물었다.
"이유가 뭔데?"
"이유랄 게 뭐 있어. 각자 갈 길을 가는 거 뿐인데."
나는 지금까지 이렇게 비굴하게 살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은 살다 보면 옛일이 생각나고 그 대상(對象)이 보고 싶을 때가 있어 여운을 남겼다.
"펜하고 메모지 꺼내."
"그건 왜?"
"내가 불러 주는 대로 적고 필요하면 언제든 전화해. 절대로 내가 먼저 다가서는 일은 없을테니까."
나는 너에게 휴대폰 번호를 불러 주고 나서 하고 싶은 말만 하더니 너를 민락정에 놔두고 혼자 택시를 몰고 왔다. 나의 감정이 격화된 상태에서 너를 태우고 온다면 무슨 일이라도 저질러 화풀이할 것 같았다.
너를 만나고 싶어 할 때는 만나지지 않았다. 너에 대한 미련을 떨쳐 버리려고 마음먹으니까 오다가다 불쑥 나타나 병이 도졌다. 너 아니면 사람이 없을까? 나의 집착심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은 다른 사람을 사귀는 일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너를 깨끗이 잊어버리지 못하고 나의 얼굴에 대문짝만하게 써 놓고 다니는지 새로 사귄 그 사람은 정곡을 찔렀다.
"누군가 품에 간직하고 있는 거 같은데."
"그렇게 잘 알면 길거리에 나서 돗자리 깔아라."
그 사람의 지적(指摘)을 받은 나는 은근슬쩍 넘겨 버렸다. 하지만 그 사람은 나의 마음을 알면서 모르는 척 감싸 주었다. 모든 일이 다 그렇듯이 쉽게 잊혀지고 빨리 다른 환경으로 적응한다면 문제가 없다. 나의 모든 면을 꿰뚫고 있던 그 사람은 너를 대체(代替)해서 사귀는 것을 눈치채고 나를 동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면서 떠났다. 나는 공허한 웃음을 웃는 대신에 이를 악물고 다부지게 결심했다.
"에이, 차라리 그럴 바에 마음 편히 용두질하며 살지!"
나는 쓰라린 아픔을 움켜쥐고 스스로 다짐해도 며칠 안 가서 지랄맞을 정도로 너가 그리워졌다. 살갗이 다친 데는 붕대를 감아 상처가 아물도록 하지만 마음의 상처를 달래는 것은 시간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나의 마음의 문을 열고 들어올 사람은 누구일까?
과연 문을 열고 들어온다 해도 그동안의 움츠림 속에서 날개를 제대로 펴고 넓은 세상을 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이대로 좋지 않은가?
어디 한번 날개를 움직여 보자.
'아, 이 아픔‥‥.'
살아있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하나?
어, 자물쇠 돌리는 소리가 난다.
문의 손잡이가 움직인다. 그리곤 문이 열렸다.
'아 ~ 너는, 너는 악마가 아니던가? 빗장을 거는 건 데‥‥, 빗장을‥‥.'
나누기 - 너와 나의 슬픔
한밤중에 휴대전화 벨 소리에 깜짝 놀라 잠이 깼다. 나는 전화를 받을까 말까 망설이다가 기회를 놓쳤다. 휴대전화를 집어 발신자를 확인하는 순간 왠지 모를 설렘에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너의 반가운 목소리는 누군가 애타게 그리운 듯 했다.
"먼저번에 저수지 민락정에서 왜 혼자 도망 갔지?"
"너 같으면 태울 맛 나겠냐?"
나의 성미는 가식이 없어 진심을 드러냈다. 너는 지난 일에 대해서 아무런 감정을 품지 않고 넉살스레 나의 의중을 떠보았다.
"그거 사과하는 뜻에서 술 한 잔 사줘."
"너를 왜 사줘야 하는데?"
"싫으면 관둬."
너는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나의 속마음은 그게 아닌데 뇌(腦)는 뜻을 잘못 해석하고 거절하는 말을 명령했다. 나는 서둘러 통화 버튼을 눌러 전화를 걸었다. 너의 휴대전화는 통화 중 신호 음이 들리고 나의 휴대전화는 다른 전화가 오는 신호 음이 들렸다. 나는 발신 번호를 확인하고 반가이 전화를 받으며 용건을 말했다.
"어디서 만날래."
"아침해 아파트에 있는 상가로 와."
"알았어. 조금만 기다려."
나는 아파트 주차장에 있는 차를 몰고 가려던 마음을 바꿔 너를 향해 뛰었다. 가는 도중에 서둘러 나오느라 휴대전화를 침대에 두고 나온게 갑자기 생각났다.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는 게 귀찮고 나를 기다리고 있을 너를 위하여 포기했다. 나는 먼길을 한걸음에 달려 아침해 아파트에 있는 상가에 도착했다. 시내의 번화가는 많은 사람과 차량으로 뒤엉켰다. 너와 나는 횡단보도를 사이에 두고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나는 파란 신호등이 켜지자마자 주위를 살펴보지 않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순간 차가 달려드는 느낌을 감지하고 그 자리에 멈칫했는데 갑자기 차가 눈앞에 나타나자 그만‥‥ .
쿵
"안 돼!"
너는 순간적으로 일어난 사고를 보고 목젖이 빠져 나가도록 외쳤다. 나는 길바닥에 쓰러져 오른손을 허공에 허우적거렸다. 너는 단숨에 달려와 나를 부둥켜안고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누가 구급차 좀 불러 주세요. 빨리요."
너의 그 말을 들은 이후 나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은 채 정신을 잃었다. 나는 정신을 잃은 나머지 구급차가 경보를 울리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나는 깊은 잠을 자고 일어나 눈을 뜨자마자 너를 보았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기억을 더듬어 그제야 병원 침대에 누워 있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차에 치여 길바닥에 넘어진 뒤부터 기억이 일부분 사라졌을 뿐 말짱한 정신으로 윗도리를 일으켜 세우며 너를 안심시켰다.
"나 괜찮은거 같으니까 집에 갈래."
나는 침대에서 다리를 옯기려는 찰나에 움직일 수가 없는 사실을 발견하고 너를 쳐다보고 물었다.
"내 다리가 왜 이래?"
"척추를 다쳐서 하반신을 못 쓴데."
나는 하도 놀라서 말이 나오지 않는데 너는 담요를 걷고 기저귀를 찬 아랫도리를 보고 넉살피웠다.
"어디 보자, 다 큰 사람이 오줌 쌌네."
너의 손길이 기저귀를 빼느라 만져도 나는 감각이 마비돼 느낄 수가 없어 병실이 떠나가라 하고 목청껏 외쳤다.
"내 다리가 왜 이러냐고? 의사 선생 빨리 오라고 해."
"흥분하지 마. 나 때문에 다쳐서 속 상한데 그 때 날 죽게 내버려두지 그랬어."
너의 그 말에 나는 입을 꼭 다물었다. 나의 사고를 보고 너는 목젖이 빠져 나가도록 외치면서 달려와 부둥켜안은 모습을 떠올렸다.
몸에 타박상은 시간이 치유해 주는 데 척수에 손상은 회복이 잘 안 돼 나를 절망 상태에 빠뜨렸다. 너는 한결같은 사랑으로 나를 돌보아 주고 맑은 음성으로 대했다.
"오늘 기분 어때?"
"좋아! 너 집에 안 가 봐도 돼?"
"잠자고 있을 때 필요한 거 가지러 갔다 왔어."
병원에서 별다른 치료도 없고 시간을 보내는 병실 생활은 이제는 더 기다릴 수가 없다. 너와 나를 초췌한 모습으로 만들기 전에 여러 가지 정황으로 미루어 보아 퇴원을 결심했다.
아파트로 돌아온 너는 나의 곁을 떠나지 않고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며 의욕적으로 간병했다. 나는 서서히 지쳐 가고 너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막중한 짐을 지었다. 나는 더 이상 살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뒤 너에게 푸념을 늘어놓았다.
"나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
"그래서?"
너의 기탄없이 묻는 말에 나의 가슴이 뜨끔했다. 여기서 물러서면 기약 없이 시간만 가기에 정당한 사유를 밝혔다.
"더 중요한 건 하반신이 마비된 뒤로 성적 충동을 느낄 수가 없어. 이게 사람 사는 거라고 봐?"
"그래도 목숨이 붙어 있는 날까지는 살아야지."
여기서 더 언성을 높여야 너의 마음이 울적할 뿐 큰 도움이 되지 않아 나는 불끈 쥔 주먹을 스르르 풀었다. 너는 나의 차분한 표정을 보고 우스갯소리 했다.
"자살하는 사람 살려 놓더니 내가 필요해서 그랬지?"
"그걸 알고 그랬겠냐? 다 운명이지."
나는 일부러 잠을 자는 척하면 너는 몹시 피곤해 옆에서 그냥 곯아떨어졌다. 너의 자는 모습을 실눈을 뜨고 바라보다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너는 내가 잘 때마다 가끔 식품을 사러 가거나 집을 갔다 오는 지 옷이 바뀌었다.
하루, 이틀, 사흘, 그리고 더 더 ‥ ‥, 나는 근심 걱정으로 몸이 야위어 가고 아랫도리 불구의 몸으로 살아가느니 차라리 죽음을 결심했다. 나 혼자서 행할 수 있는 처지가 못 돼 너에게 간절히 부탁했다.
"소원이 있는데 들어 줄래?"
"뭔데?"
나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너와 얼굴을 마주하고 바람을 떳떳하게 밝혔다.
"나 자살하는 거 도와줘."
"지금 나 보고 살인하라는 거야?"
"자살하는 장소까지만 데려다 주면 돼."
너는 극구 반대하는 입장을 굳혔고 나는 더 이상 물러날 수 없어 떼썼다. 너는 막다른 처지에 놓이자 심한 자책감에 사로잡혔다.
"이게 어린네처럼 떼쓴다고 되는 거야? 내가 나오라고 안 했으면 이러지도 않았잖아."
"모든 게 부주의해서 일어난 일인데 너를 탓하거나 원망하지 않아."
"그런다고‥‥ 이미 벌어진 일들이 원상 복귀 되냐고?"
"내 몸을 맘대로 못하는 심정을 너가 알아? 너가 나라면 당연히 그랬을 거 아녀?"
너는 어이없는 표정을 짓고 나를 등지고 서서 양손으로 머리를 쥐어 감쌌다. 그리고 고개를 들고 자신의 경험을 토로했다.
"자살하는 건 순전히 자기 생각만 하는 거야. 살아가면서 그깟 시련 이겨 내지 못할거면 아예 엄마 뱃속에서 수 억 대의 경쟁할 때 뒤에 처졌어야지."
"너 진짜 나쁜 놈이다. 맘대로 해 앞으로 아무 것도 안 먹을테니까."
삶과 죽음 사이에서 몸부림치는 나는, 너의 가슴을 갈가리 찢어 헤뜨렸다. 나는 너에게 짐이 되는 것 보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모든 상처는 세월의 명약이 치유해 주어 한순간만 견디면 편하게 살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곱하기 - 너와 나의 기쁨
나 혼자 자살하는 데 쓰는 밧줄치고는 너의 손에 잡은 양이 적지 않다고 생각했다. 너는 예전에 내가 던져 버린 플라스틱 의자를 찾아와 소나무 아래에 놓고 밧줄을 풀어 묶었다. 나는 너의 행동을 지켜보다가 트레이닝 바지 앞 부분이 눈에 띄었다. 너는 나의 시선을 의식했는지 밧줄을 매다 말고 오른손으로 아랫도리를 긁적거렸다. 나는 침통한 표정으로 너의 아랫도리를 쳐다보며 속말했다.
'죽으면 만질 수 없겠지.'
그런데 소나무의 가지에 묶인 밧줄을 보고 나는 너의 속셈을 들여다보는 듯이 큰소리로 물었다.
"왜 밧줄이 두 개지?"
나의 물음에 너는 묵묵히 밧줄에 고를 맺어 올가미를 확인하기 위하여 여러 번 잡아당겼다. 너는 플라스틱 의자에서 내려와 나를 멍하니 보고 있어 나는 너를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밧줄이 왜 두 개냐고 묻잖아? "
"어차피 여기서 자살하려 했던 곳인데 함께 죽으려고."
"부부도 한 날 한 시에 죽지 않는 데 너는 하지 마. 나 혼자 죽게 내버려둬."
너는 나를 번쩍 들고 가슴에 안아 올가미 아래로 가 섰다. 나는 너를 밀치고 발버둥쳐도 아랫도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나의 뇌에서 몸부림치라고 명령해도 아랫도리는 복종하지 않았다. 나의 몸뚱이 반은 신경을 끊은 채 액세서리(accessory)처럼 매달렸다. 너는 모든 것을 체념해 버려 나의 온갖 발악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무덤덤하게 받아들이고 곧 죽을 듯이 말했다.
"혼자 죽으면 저승 갈 때 외롭잖아."
"그런다고 저승에 가서 내가 걸어갈거 같아?"
"그래서 내가 업고 가려고."
"너, 진짜 나쁜 놈이다. 아무리 그래도 나는, 너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어."
"그냥 있으면 돼."
나는 양손으로 너의 목을 와락 껴안아 턱을 어깨에 걸치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나 죽는 게 사실 무섭고 너 없인 못 살거 같아."
"그 말 진심이지?"
나는 무의식적 행동으로 너에게 입맞춤했다. 너는 나를 안은 채 올가미 아래에 가만히 서서 말이 없다. 나는 한참만에 정신을 차리고 너가 힘들거라는 생각에 조용한 목소리로 부탁했다.
"휠체어에 내려 줘."
"휠체어는 필요 없어. 앞으로 걸을 때까지 안고 다닐래."
"너 진짜 나쁜 놈이다."
"그런 줄 알면 빨리 걸으면 되지."
나는 아랫도리가 마비됐지만 너라는 특별한 친구를 얻었다. 그리고 나는 슬픔이 너무 벅차거나 기쁨을 감추지 못하면 눈물샘이 감응(感應)에 억눌려 눈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불현듯이 너와 함께하면서 궁금했던 일을 물어보려 하다가 자꾸 잊어 먹은 것을 들춰냈다.
"너는 내거 발기하지 않은 데 왜 만지고 그러냐?"
"감각도 없으면서 그걸 어떻게 알아?"
"기저귀 갈 시간치고는 오래 걸리니까."
나의 물음에 너는 대답을 피하고 잊어버렸다가 생각난 듯이 대화를 엉뚱한 방향으로 돌렸다.
"히히, 자꾸 말한다고 하다가 잊어먹었는 데 그 날 내가 왜 전화했는지 알아?"
"맞아, 안 만날 듯 하다가 왜 전화했지?"
"사실은 말야 액자에 있는 사진을 볼 때는 생각나지 않았는데 한밤중에 수음하려고 옛일을 회상하다가 알아내고 전화했어."
너의 수음이 나의 사진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내심 기대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그러니까 중학교 삼 학년 때 ‥‥."
시내버스가 승강장에 막 도착했다. 나의 허둥거리는 모습을 너는 차창으로 쳐다보고 늦잠으로 출근이 늦은 줄 알았다. 나는 뛰어서 시내버스에 간신히 승차했다. 학생들 등교 시간이라 발 디딜 틈도 없는 만원 시내버스 안을 헤집고 들어가 새근발딱거리며 너의 앞에 섰다. 나는 오른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왼손을 축 늘어뜨렸다. 그런데 시내버스가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너의 자지 부분이 나의 왼손등에 닿았다. 나는 슬며시 왼손을 제쳐 너의 자지를 살짝 쥐었다가 놓았다. 너는 그 순간 알 수 없는 전기가 온몸을 통해 짜릿짜릿한 감정을 느꼈다. 나의 손장난을 즐기면서 너는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너와 나는 시선을 마주치지 않고 은밀히 그 짓을 즐겼다. 시내버스가 학교 앞 승강장에 다다르자 너는 더 멀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아 있다.
나는 너의 말을 다 듣고나서 새삼스럽게 느끼 듯이 키드득거리며 질문했다.
"키득키득, 그 학생이 너란 말야?"
"그래,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네."
"그 때 지퍼를 올려 주지 못했는데 어떻게 했지?"
"지퍼? 히히, 나도 모르고 있다가 교실에 들어가 애들이 남대문 열렸다고 해서 알았지."
"나는 그 때 ‥‥."
너가 무슨 마음먹고 나의 행동을 아무런 거리낌없이 받아 주었는지 의아하게 생각했다. 너와 나는 전혀 모르는 사이인데 시내버스 안에서 은밀한 행위의 즐거움을 느끼며 주변에는 아무도 없는 듯이 행했다. 나는 너가 학교 승강장에서 내려 걸어가는 뒷모습을 쳐다보다가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시내버스를 잘못 탄 사실을 알았다. 나는 다음 승강장에서 서둘러 내려 대기하고 있던 택시를 타고 면접 장소로 향했다. 이미 때가 늦었지만 중도에 포기하기에는 너무 억울해 되든 안 되든 가 보기로 했다. 회사 정문에서 경비원이 잡은 손을 뿌리치고 면접 장소에 들어갔다. 면접관은 나를 보고 첫 질문이 지각과 관련됐다.
"지각하셨네요?"
"네, 입사 시켜주시면 두번 다시 지각하지 않겠습니다."
면접관은 나의 대답을 듣고 방긋 웃으며 직무에 관하여 질문했다. 나는 면접을 보고 나서 기념으로 사진관에 가 사진을 찍었다.
나의 말을 다 들은 너는 힘이 드는지 안고 있는 나를 한번 추썩거리고 의미심장한 말했다.
"그 때 아쉽게 헤어져 잊혀지지 않나 봐."
"그러게 말야."
나는 너의 말에 맞장구치면서 지금까지 마음속에 담고 있었던 진실을 털어놓았다.
"나 ‥‥, 너를 죽을 때까지 만지고 싶어."
"그 전처럼 돌아오면."
"만지지 말라고 하는 말 보다 더 무섭네."
말끔하게 갠 하늘에 낮 달이 떠서 너와 나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너의 아름다운 마음이 나의 몸을 개화(開花)하였고, 너는 자살 한 번 시도하고 삶을 터득한 듯이 덧붙이었다.
"자살에 대한 충동은 그 순간만 벗어나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어. 그리고 자살하는 사람들 독하다고 봐."
"그것도 그렇지만 살아 있는 사람들이 희희낙락하고 사는 게 억울해서 악착같이 살아야 돼."
"으하하"
너의 호탕한 웃음을 봄바람이 훔쳐 가 남산을 휘돌아 감았다. 그리고 저기 대나무 꼭대기에 매달은 백색과 빨간 깃발이 봄바람을 따라 춤을 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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