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와이프의 후배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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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스럭 부스럭-
잠이 오지 않는 어느 밤. 머릿 속이 복잡하고 가슴이 꽉 막힌 듯 답답하다. 통통한 손가락을 불안하게 꼼지락대고 있는 재홍. 불 꺼진 침실, 윤희는 잠들어있고, 재홍은 어둠 속에서 두 눈을 말똥말똥 뜨고는 생각에 잠겨 있다.
-형님은 듬직하셔서 참 멋있으십니다
지금도 귓가에 들리는 듯 생생한 지난 술 자리에서의 태풍의 목소리. 재홍을 바라보며 귀여운 표정을 짓던 그 날의 태풍이 떠오른다. 아, 같은 남자인 태풍이 이젠 귀엽게 느껴질 줄이야. 이목구비도 남자답고 시원시원한 태풍의 얼굴이 자꾸 떠오른다. 재홍은 이 낯선 감정에 두려움과 설렘이 동시에 들고 있다.
-넌 내 꼬추에 왜 이렇게 관심이냐?
-아~ 형님 싸랑하니까요
-나 싸랑하냐?
-어으 당연하죠ㅎㅎㅎ
아무리 술 취한 밤이었어도 너무나도 생생하다. 요즘 재홍은 그저 태풍만을 생각하고 살고 있는 것 같다. 재홍이 태풍의 매력에 제대로 빠져버렸던 그 날. 재홍은 지금 시간이 갈수록 점점 깊어지는 태풍을 향한 감정을 느낀다.
무엇 때문에 재홍의 머릿 속에 태풍이 이리도 제대로 자리를 잡고 들어온 걸까. 아니라곤 할 순 없다. 재홍이 만져본 그 묵직한 태풍의 앞섶. 그 그립감이 너무나도 인상 깊었다. 태풍의 꼬추를 상상해도 괜찮을까. 재홍은 결국 호기심을 넘어 아찔해져오는 기분이 들어 눈을 다시금 번쩍 뜬다. 이거 원 잠을 잘래야 잘 수가 없다.
힐끔-
그러고는 살짝 몸을 돌려 옆 자리에 언제나처럼 잠들어있는 아내를 살피는 재홍. 아내는 잠든 듯 보인다. 그렇게 재홍은 은근슬쩍 몸을 덮고 있던 이불을 걷어낸다. 아내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그 후 침대에서 나오는 재홍. 재홍은 다시 한번 눈을 감고 있는 아내를 확인하듯 바라보고는 조심스레 침실 문을 열고 거실로 나온다.
끼이익-
아주 천천히, 문고리를 돌려서 침실 문을 닫는 재홍. 미세한 덜컥 소리와 함께 침실 문이 닫힌다. 굳이 윤희가 깨지 않게 과하게 조심하는 재홍의 모습. 재홍은 지금 아내 몰래 무엇을 하려는 걸까.
허나 침실 문이 닫히자마자 일부러 감고 있었던 것 같이 두 눈을 번쩍 뜨는 윤희. 방 문 바깥에서 들리는 바닥을 스치는 남편의 발자국 소리. 아무리 조심스레 걸으려 한다해도 이토록 고요한 집 안에서는 소용이 없다. 그렇게 윤희는 손을 올리고 있는 배개를 꾸욱 쥐어잡으며 귀를 열고 두 눈을 감는다.
-나를 떨리게 하나요 그대, 왜 나를 설레게 하나요 자꾸만, 오늘도 잠 못 이루는 밤, 아름다운 그대
-나를 아프게 하나요 웃는 그대, 왜 자꾸 설레게 하나요 하염없이, 오늘 밤 잠이 오질 않네요 보고싶은 그대여~
유명 가수의 최신 발라드가 흘러나오는 차량용 라디오. 여기도 눈을 감고 잠들어 있는 사람이 한 명 있다.
'허욱'
운전석에서 고개를 들고 잠들어있던 태풍이 노래가 끝남과 동시에 몸을 움찔대며 잠에서 깨어난다.
지금 시간은 새벽 두시. 집에 있는 게 불편해서 여느 때처럼 지하 주차장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다가 깜빡 잠든 태풍이다.
'아이씨..'
시간을 보고 놀라 급히 휴대폰을 들어올리는 태풍. 태풍의 배경화면에는 귀여운 꼬마 남자 아이의 사진이 보인다. 그리고 그 위로 아내에게 부재중 전화가 세통이나 찍혀있다.
'하아...'
결국 다시 한 번 긴 한숨을 내쉬고는 재빨리 휴대폰을 챙겨서 차에서 내리는 태풍. 태풍은 피곤한 얼굴을 손으로 문지르며 엘레베이터를 향해 빠른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한다.
덜컥-
'장난해?'
'...'
역시나 현관문을 열자마자 팔짱을 끼고 태풍을 맞이하는 한 여성. 태풍의 아내 지윤이다. 태풍은 그런 지윤의 시선을 피하듯 살짝 고개를 숙이고는 신발을 벗는다.
'어디 갔다 왔어?'
'민준이는'
'지금 몇신진 알아? 자지.'
'차에 있었어'
'차에는 왜? 내일 출근 안해? 이 시간까지 연락도 안되면 어쩌겠다는 거야?'
'하나만 말해 하나만'
아내의 이 짜증스러운 목소리에는 내성이 생겼다. 6살 아들이 잔다는 말에 불 꺼진 아들의 방 문을 살짝 열어보고는 다시 조용히 문을 닫는 태풍. 그저 덤덤한 대답을 잇는다.
오늘 이 상황은 태풍도 떳떳하진 않다. 매일 헬스를 하고 온다고 집을 나가선 바로 주차장으로 내려가거나, 혹은 정말 운동을 갔다 오고도 아내 몰래 차 안에 한시간씩 틀어박혀 있었는데.
오늘은 그만 깜빡 잠들어 버려가지고 집에 돌아올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결국 대답을 않는 남편에 답답해서 목소리를 높이는 지윤.
'하나라도 대답을 해야 내가 차근차근 말을 하지. 멀쩡한 집구석 냅두고 차에는 대체 왜 박혀있어?'
'조용히 말해. 애 자잖아'
'대화하기 싫지?'
비꼬는 아내의 목소리를 무시하며 정수기에서 찬 물을 한 컵 떠 마시는 태풍. 그리고는 운동을 해서 뻐근한 가슴을 매만지며 안방으로 들어간다. 그런 남편을 가만히 서서 노려보는 지윤. 태풍은 곧바로 침대에 뛰어들어 눕고, 지윤은 계속 남편을 노려보며 안방으로 들어와 문을 닫는다.
덜컥-
'..?!'
딸깍 딸깍!
다시 재홍의 집. 불도 켜지 않고 컴퓨터가 있는 서재에 앉아 있는 재홍. 다 늘어난 면 티셔츠에는 토실토실한 가슴살이 살짝 드러나고, 트렁크 팬티는 허벅지에 꾸긴 듯 말려올라가서 통통한 불알이 뭉쳐있다.
서재 밖에서 어떤 소리가 들린 것 같아서 재홍은 급히 눈을 돌리며 보고 있던 컴퓨터 화면 창을 내리고 의자에서 일어난다.
이 야심한 밤에 재홍이 컴퓨터로 무엇을 하는 걸까. 재홍은 조심스럽게 서재 문을 연다. 빼꼼 눈만 내밀어 바깥을 살피는 재홍. 다행히도 잘못 들은 것 같다. 재홍이 닫은 그대로 굳게 닫혀 있는 침실 문. 그렇게 재홍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시 문을 닫아 잠근다.
딸깍-
'이반시티..'
그러고는 다시 내렸던 인터넷 창을 띄우는 재홍. 도무지 태풍의 생각에 잠 못드는 자신이 이해가 되질 않는다. 호기심이 너무 커져서 게이 이반 등 검색어로 검색을 해보다가 우연히 이반시티라는 사이트를 찾게 된 재홍. 재홍은 아직 이쪽 세계가 낯설기만 하다. 내가 미쳤나 싶을 뿐이다.
태풍만큼 재홍에게 강한 끌림을 준 남자는 여태까지 없었어서, 재홍은 스스로에게 이런 성향이 있을 줄은 여태껏 인지를 못한 채 살아왔다.
속 마음을 모두 말하자면, 재홍도 차마 구체적으로는 상상을 할 수 없지만. 태풍의 벗은 몸을 보고도 싶다. 겉보기에도 육덕진 그 길쭉한 몸매가 알몸일 때는 얼마나 멋있을지 궁금하다. 또한 15센치가 넘는다는 태풍의 그곳도 궁금하긴 하다. 괜히 크기를 알게된 바람에 더 상상이 된다. 다른 남자를 꼬추를 상상하는 것은 남자로서 차마 하면 안되는 행동인 것만 같아서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더 위태롭게 심장이 뛰곤 하는 재홍이다.
사실 남자에게 완전히 처음 끌림을 느낀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학창시절에 아주 잠시 동창생에게 이런 기분을 느꼈던 적을 제외하고는 정말 처음인 것만 같다. 내가 절대 여자같은 사람은 아닌데. 남자답다는 말도 자주 듣는 내가 왜 자꾸 남자에게 호감이 드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그렇게 통통한 두 볼이 붉어져서는 이반시티에 회원가입까지 하고 게시판들을 둘러보고 있는 재홍. 우리나라에 이렇게 게이가 많았나 싶을 정도로 실시간으로 여러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지금 시티를 둘러보는 지금 재홍의 두 눈에는 호기심과 놀라움의 감정이 동시에 드러나고 있다. 사이트 이용법을 잘 몰라 검색창에 임태풍 석자를 검색해보기도 하는 재홍. 뭐 쓸만한 글이 나올 리가 없다.
'아까 어머님 왔다 가셨어'
다시 태풍의 집, 안방의 적막을 깨는 지윤의 목소리가 들리고, 지윤에게서 등을 돌리고 누워있던 태풍이 그 목소리에 반응하며 뒤를 돌아본다.
'뭐? 왜'
'뭘 왜야 민준이 보러 오셨지. 언젠 안그러셨어? 민준이 반찬 또 굳이 바리바리 싸들고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살고 있는 어머니. 태풍의 어머니는 이렇게 불쑥 불쑥 집에 찾아 오곤 한다. 올 때마다 양 손 가득 반찬을 싸들고서. 허나 아내 지윤은 그게 너무 스트레스라는 듯 짜증난 목소리를 잇는다.
'어머님은 변하질 않으셔. 그렇게 자꾸만 아무런 연락도 없이 불쑥 찾아오면 어느 며느리가 좋아한다는 거야? 내가 내 아들 굶기는 줄 알고 그러시는 거야? 내 아들은 내가 알아서 키워'
'그걸 또 그렇게 받아들이냐.'
태풍은 아내가 또 예민하게 구는 것 같다고 다시 잠긴 목소리로 대답하며 고개를 돌려 눕는다. 허나 그저 속모르고 말하는 남편의 한 마디에 다시 남편의 뒷통수를 노려보는 지윤.
'너무 과하시니까 그러지. 내가 하루 이틀 말해? 오늘도 와서 냉장고 다 뒤지시고 한번 엎고 가셨다니까.'
'냉장고는 왜 뒤지셔 아..'
'살림 차린지 몇년이 됐는데, 아직도 이래라 저래라 너무 참견하시잖아'
'아으 그럼 너무 자주 오지 말라고 말 해봐'
'내가 말해봤자 어머님한테 버릇 없다는 소리 밖에 더 들어? 3대 독자 어쩌니 하면서 아들 훔친 도둑년 소리밖에 더 듣냐고. 자기다 말해주면 어디가 덧나?'
'하, 좀 자자 제발'
덥썩-
아내의 목소리가 더 이상 듣기 싫다고 얼굴을 잔뜩 찡그리며 베개로 머리를 감싸는 태풍. 지윤은 그런 남편의 태도에 울분이 터지는 듯 숨을 크게 들이마시곤 말을 잇는다.
'잠이 와?'
'...'
'사람 말을 무시하는 것도 정도껏 해야지'
벌떡!
'아이씨, 발 뭐가 또 문젠데 대체'
결국 계속되는 아내의 목소리에 화가 터져버린 듯 벌떡 몸을 일으키며 큰 목소리를 내는 태풍. 지윤은 그런 남편의 두 눈을 마주보며 따라 일어나서 대답한다.
'왜 욕을 해? 당신이 뭘 했다고? 내가 당신 아들 키워주는 사람이야?'
'아으 또 말을 이딴 식으로 하네. 그냥 내 아들이야? 당신 아들은 아니야?'
'내 아들이니까 이러고 있는 거야. 내 인생 포기해가면서. 민준이 하나 보고. 그건 알기나 해?'
'나도 똑같아'
'그러면 당신도 좀 나서. 왜 내가 어머니한테 그런 소리까지 들어야 되냐고. 도둑년이다 뭐다'
'넌 그 얘기를 대체 몇년 째 해? 엄마도 그 때 이후로 안했잖아'
지윤은 남편의 냉담한 반응에 더 울분이 터지는 듯 보인다. 눈시울이 붉어지는 지윤. 태풍은 그런 아내를 바라보며 자신도 답답해서 미치겠다는 듯 고개를 들어올리며 한숨을 내쉰다.
몇 해 전 명절. 아들 민준이 갓난 아기였던 시절, 본가에 찾아간 태풍 내외. 태풍의 어머니는 지윤을 애초부터 마음에 들지 않아 했다. 그저 결혼에는 크게 관심이 없어보였던 아들이 결혼을 하겠다니까. 심지어 결혼도 하기 전에 속도 위반을 한 두 사람이었어서. 금이야 옥이야 키운 아들을 향한 믿음 하나로 지윤을 며느리로 받아들였었다.
'까꿍~'
평소에는 무뚝뚝하기만 한 태풍의 아버지. 아들이 데려온 손자 앞에서는 애교스러운 목소리를 자처하며 아이를 돌본다. 아니, 사실 민준을 독차지한다. 아들이라 그렇게 좋단다.
거실에서 들려오는 그런 시아버지의 낯선 목소리를 들으며 부엌 바닥에 앉아 있는 지윤. 전을 부치는 지윤의 옆에는 지윤을 찡그린 얼굴로 바라보고 있는 태풍의 어머니가 보인다.
'얘는 전도 제대로 못뒤집네? 다 탔잖아'
'아.. 제가 많이 안해봐서요.'
'어휴 한심하긴. 그래가지고 무슨 살림을 하겠다고. 얘, 저기가서 설거지나 해라. 쯧쯧 내 아들 굶기지는 않을까 걱정 되네.'
거의 반 강제로 지윤의 손에서 뒤집개를 뺏으며 상처되는 말을 뱉는 어머니. 지윤은 순식간에 표정이 굳으며 쭈뼛쭈뼛 자리에서 일어난다.
쿵-
잠시 후, 설거지를 마치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태풍의 방으로 들어오는 지윤. 오랜만에 본가에 와서 자신의 방 침대에 누워 잠들어 있던 태풍이 잠에서 막 깬 얼굴로 말을 잇는다.
'왜. 무슨 일 있어?'
'무슨 일 있냐고?'
'뭐야 왜 목소리가 또 날카로워'
'당신은 팔자 좋아. 누구는 한심하다 소리 들어가면서 기름 뒤집어 쓰고 일하고 있는데, 지금 잠이 와?'
'아이씨, 엄마는 또 무슨 말을 한거야'
어머니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남편에게 풀려고 하는 듯한 지윤의 모습. 태풍은 그저 뒷머리를 긁적이며 짜증난 듯 지윤을 바라본다.
'전 조금 태웠다고 한심하대 내가 당신 굶기진 않을까 걱정되신대. 말이 심하신 거 아니야? 나라고 최대한 잘하려고 노력 안해? 내가 당신 굶겼어?'
'아니지 그건 아니지.'
'그럼 어머니한테 나가서 당신이 좀 아니라고 해. 요즘이 어떤 시대인데 왜 내가 여기와서 이런 시녀 취급 당하고 있어야 돼? 여자가 꼭 명절에 일 다 해야돼? 당신은 그냥 잠이나 퍼질러자고 있고?'
덜컥-
'뭐야? 무슨 취급?'
그 때, 방 문 밖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갑작스레 문을 열고 들어오는 어머니. 깜짝 놀란 태풍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고, 어느새 자기 화를 못이기고 눈물이 고인 아내는 어머니를 바라본다. 매우 성이난 어머니의 모습. 태풍은 어쩔 줄을 몰라서 당황한 표정으로 어머니께 다가간다.
'얘, 내가 널 시녀 취급했니?'
'...'
'이거 대답 안하고 버릇 없는 거봐라. 여자가 명절에 전부치는 게 시녀 취급이야?'
'...'
예상치 못했던 어머니의 등장에 말이 없어진 지윤. 그저 표정이 굳은 채로 고개를 숙이고 서 있다. 태풍이 어머니를 말리려 붙잡지만, 어머니는 지윤에게 삿대질을 하며 흥분한 목소리를 잇는다.
'얘 너 우리 집안이 어떤 집안인지 알고, 내 아들이 어떤 아들인지 알아? 이쁨 받을려면 이쁨받을 짓을 해. 너가 우리 집 와서 한 게 뭐가 있는데? 살림을 제대로 해, 아니면 시애.미한테 싹싹하기를 해? 이뻐할 구석이 없어.'
'엄마, 지윤이한테 말이 좀 심ㅎ..'
'저도 어머니한테 이쁨 받고 싶은 마음 크게 없어요. 어머니도 애초에 그럴 마음 없으시잖아요.'
그 때, 가만히 듣고 있던 지윤이 폭발해버린다. 어머니의 두 눈을 마주보며 남편의 말을 끊고 대답하는 지윤. 어머니는 말 문이 막혀서 눈을 땡그랗게 뜨고 아들과 며느리를 번갈아 바라본다.
'아들 얘가 지금 뭐라니?'
'아..'
'어짜피 저 만족 안되시잖아요. 제가 밥 할려고 얘랑 결혼했어요? 이 새끼가 저 임신 시켰잖아요.'
'ㄴ.. 너 지금 말 다 했니?'
'아뇨 다 안했어요. 이 집안이 뭐 얼마나 위대한 집안인데요. 그렇게 치면 저도 우리 집에서는 공주에요. 평생 손에 물 한방울 안묻히고 이쁨받으면서 살았구요. 그런데도 저 어머니 비위 맞춰드릴려고 노력하고 있잖아요. 어머니는 밥 못하면 며느리 자격없다고 하시는 거죠? 그럼 그게 며느리를 시녀 취급 하시는 거지 뭐에요?'
'야. 김지윤. 너도 말이 좀 심하다'
꽈악-
휙!
그렇게 극에 달하는 고부갈등. 남편 태풍까지 자신의 편을 들어주진 못할 망정 자신을 나무라자 결국 지윤은 남편의 손길을 뿌리치고 서러움에 방을 뛰쳐나간다. 그런 며느리에게 다시 삿대질을 하며 소리를 지르는 어머니.
'ㅁ..뭐가 뭐 어째? 저거 완전 도둑년이네. 야 니년이 애초에 내 아들한테 꼬리 안쳤으면!!! 너 같은 며느리 볼 일도 없었어!!!!! 니가 태풍이한테 가당키나 해????!!!'
'끄흑!'
쿵!
결국 울음이 터져버리며 집을 나가는 지윤과 어쩔 줄 몰라하다 급히 지윤을 따라 달려나가는 태풍. 아버지는 이런 난리법석 소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그저 누워있는 어린 손주만을 바라보며 해맑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는 평생 그 때 못 잊어'
지윤에겐 평생 남을 상처란다. 다시금 떠오르는 그날의 기억. 그 때 태풍은 이대로 짧은 결혼 생활이 끝나는 줄 알았다. 고부갈등 많이 들어는 봤지만, 아내와 엄마가 그렇게 모든 걸 드러내며 다투고 사이가 안좋아질 수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으니까.
한 번 그렇게 싸우고 나서 오히려 서로에게 어색해진 아내와 엄마. 그게 다행이다 싶다. 나름대로 싫은 티 안내려고 서로 노력하려고는 하는 것 같으니깐. 하지만 어머니가 한 번 집에 왔다 가는 날은 그 때의 트라우마로 이렇게 더 예민해지곤 하는 지윤이다.
'우리가 애초에 결혼한 게 잘못한 건가 싶다.'
'나도 이제는 그렇게 생각 해'
애초에 태풍은 지윤을 사랑한 적이 없다. 민준이 생겼던 그 날, 지윤은 혼자서 감정이 불타올라 있었고, 태풍은 너무나도 취해있었다. 지윤의 임신 소식을 알게 된 이후, 어쩌면 태풍도 당시 할 수 있었던 가장 편한 선택을 했던 걸지도 모른다. 대를 이어야 한다는 평생의 숙제와 아이를 향한 죄책감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그 선택이 바로 지윤과의 결혼이었다.
'그래도 민준이 대학갈 때까지는 버티자 했잖아'
'근데 그럴라면 지금 이렇게는 안 돼. 너무 모잘라. 당신은 우리 가정 지키려는 마음이 없어보여.'
'당신은 내가 하루종일 놀고 있는 것처럼 보여?'
태풍도 힘들다. 그저 지윤에게 알게 모르게 드는 애잔한 마음과 아들 민준을 향한 책임감으로 버티고 있다. 하지만 태풍은 가장이라는 무게가 너무 무거워 지금 당장이라도 무너져버릴 것 같다.
'누가 돈 벌어오는 거로 얘기해? 내가 당신 월급 갖고 뭐라고 한 마디라도 한 적 있어?'
'...알겠다. 노력할게. 노력하자.'
결국 자신에게 사랑 받지 못함을 인정하고, 어느새 이 현실에 익숙해진 지윤도 지금 얼마나 힘이 들지 이해가 돼서 지윤을 토닥여주는 태풍. 지윤은 남편의 위로에 그저 착잡한 표정으로 조금이나마 한풀이가 됐는지 고개를 돌려 침대에 눕는다. 살짝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그런 지윤의 옆으로 다시 눕는 태풍. 그렇게 서로를 등지고 누워있던 두 사람 사이 잠시 적막이 흐르다가 지윤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요즘 여자 생긴 건 아니지'
'헛소리 말고 자자'
'일단 가정에 충실해. 절대 나 좋자고 이런 말 하는 거 아니니까'
'알아 무슨 말인지'
그렇게 대화가 끊어지는 두 사람. 태풍은 힐끔 아내의 뒷모습을 바라보더니 다시 고개를 돌려 눕는다. 긴장감을 푸는 듯 입을 살짝 벌리며 눈을 감는 태풍. 그저 이대로 아무 생각 없이 스르륵 잠에 들고 싶다.
'크흠..'
다시 재홍의 집. 어두운 방 안에서 밝은 모니터를 보고 있으니 점점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이반시티에는 은근 기대했던 태풍의 흔적은 없지만 재홍처럼 결혼을 한 유부남들이 원나잇 파트너를 찾는다던가, 남자에 대한 호기심으로 같은 고민을 공유하는 글이 너무나도 많다.
그 글들을 하나씩 일일이 전부 읽어보고 있던 재홍. 재홍은 처음으로 자신과 같은 감정을 가진 사람들을 보고, 사연들을 읽으며 한결 마음이 홀가분해진 듯 보인다. 다시 잠이 몰려오는 듯 눈을 꿈뻑이면서도 열심히 글을 읽는 재홍이다.
덜컥 덜컥!
'허억!'
그 때, 갑자기 돌아가는 서재의 문고리. 심장이 철렁 내려앉은 재홍이 깜짝 놀라서 이반시티를 꺼버리고, 다행히도 문을 잠궈놓아서 문이 열리진 않았지만 아니나 다를까 방 문 밖에서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지금 시간은 새벽 세시가 다된 시간.
'여보 안에 있어? 뭐해 대체, 이 밤 중에?'
'어어, 어, 아냐. 뭐 검색할 게 있어서.'
그렇게 후다닥 컴퓨터를 끄고 태연한 척 일어나 문을 여는 재홍. 아내 윤희는 수상한 듯 방 안을 살펴보고, 때마침 꺼지는 컴퓨터 본체와 함께 재홍이 방 밖으로 나온다.
'자다가 어디 갔나 했네. 근데 뭘 그렇게 놀래?'
'아, 아니야. 일 관련돼서 갑자기 떠올라서 잠이 안오길래'
'당신이 언제부터?'
'ㄴ..내일까지 해야되는 게 있어서. 자자. 다 했어. 하암..'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다. 문을 안잠궜으면 큰 일이 날 뻔했다. 야밤에 이반시티를 보고 있는 남편이라. 생각만 해도 아찔했던 상황에 재홍은 애써 더 어색하게 하품을 쥐어짜며 먼저 침실로 걸어들어간다.
'...'
그리고 그런 남편의 뒷모습을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윤희. 남편이 수상하다. 윤희는 그렇게 남편의 펑퍼짐한 엉덩이를 바라보며 남편을 따라 침실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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