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와이프의 후배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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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고생하세요'
쓱쓱-
등을 털어주는 윤희 앞에서 구두를 신고 있는 재홍. 윤희는 출근하는 남편의 차림새를 점검해주듯 허벅지에 붙은 먼지를 떼주며 말을 잇는다.
'일을 좀 쉬엄쉬엄해 밤에 잠도 안자고 피곤하겠어'
'아 맞다. 이거'
'뭔데?'
그 때, 아내에게 가슴 안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서 건네는 재홍. 고급 호텔 지류 숙박권을 회사에서 받았단다. 그래도 평생 월급 한번 안 빼돌리고 이렇게 회사에서 받는 것도 꼬박꼬박 갖다 바치는 남편이 기특한지 윤희는 미소를 짓고 말을 잇는다.
'나 줘서 뭐해. 주변에 쓸 사람 주는 게 낫지'
'그런가? 알겠어. 간다.'
'예, 조심히 다녀오세요'
그렇게 와이프를 아침이라 잠이 덜깬 무덤덤한 표정으로 바라보다간 다시 안 주머니에 숙박권을 집어 넣는 재홍. 이 부부는 여가 생활에 애초에 큰 관심이 없어보인다. 재홍이 벌이가 소박해서 검소하게 사는 것도 있지만. 애초에 잘 못노는 남편 데리고 놀러다니는 걸 질색하는 아내다. 몇번 같이 여행 갔다가 쌈박질 했던 기억 밖에 없으니까.
그렇게 재홍은 가볍게 손을 들어 인사를 하고, 윤희는 그런 남편에게 조심히 다녀오라며 다시 한 번 배웅 인사를 해준다.
'뭐해?'
그 시각, 태풍의 집. 태풍 역시도 출근 준비를 마친 차림새로 아들 민준의 방에 있는 아내 지윤을 바라보며 말을 건다. 아침부터 큰 여행용 가방에 짐을 싸고 있는 지윤. 어젯 밤에도 우울해하더니 대체 아침부터 어딜 가려는 건지.
'나 민준이랑 집에 좀 갔다 올게.'
'왜 갑자기'
'민준아 외할머니 보러 가자'
아내가 친정집에 가겠단다. 태풍은 갑작스러운 아내의 행동에 놀란 듯 묻고, 그런 남편의 질문에도 그저 아직 침대에서 자고 있는 아들을 부추기며 말을 잇는 지윤. 태풍의 아들 민준은 영문도 모른 채 할머니 집에 간다니 벌떡 몸을 일으킨다.
'으음.. 외할머니네 가는 거에요?'
'응 엄마랑 가서 며칠 자고 오자!'
'아싸!'
'며칠이나?'
며칠이나 자고 온다는 듯한 아내의 말에 놀란 듯이 다시 묻는 태풍. 지윤은 가방에 민준의 옷가지들을 챙기다가는 그제서야 남편을 올려다보며 말을 일는다.
'왜, 안돼?'
'아니. 안될 건 없는데 갑자기 한 마디 상의도 없이 간다니까 그러지'
'당신도 좋지 잔소리 할 사람도 없고. 편하게 쉬고 있어'
'에휴.'
어디서부터 지윤을 달래줘야 맞는 건지 모르겠다. 사실 이 결혼 생활에 대한 모든 의욕이 사라진 요즘. 그저 책임감 하나로 버티고 있는 태풍에게 이런 아내의 모습은 더욱 무책임해보이고 서운할 뿐이다.
더 이상 아내와 대화를 잇는 것 자체가 아침부터 기가 다 빠지는 스트레스라 한숨을 쉬고 말을 아끼며 구두를 신는 태풍. 태풍은 그렇게 아무런 배웅 인사도 없이 집을 나선다.
아침부터 깊은 생각에 잠긴 채 출근을 하는 태풍. 출근하는 루트가 매일 똑같다 보니 몸이 기억하고 있다. 그렇게 태풍은 반쯤 정신이 나가서는 마냥 걷는다.
누군가 아내를 진심으로 사랑하냐고 묻는다면, 당연하다고 쉽게 입이 떨어지진 않을 것 같다. 아들 민준에게는 그 누구보다 좋은 엄마 역할을 해주는 아내가 고맙긴 하지만. 태풍도 사람인지라 지금의 결혼 생활이 그저 공허하고 외롭기만 하다.
아내 지윤은 계속 둘의 관계가 기우는 이유가 어머니 탓이라고 한다. 태풍도 엄마가 지윤에게 심하긴 하다고 생각은 하지만 나조차도 내 감정에 떳떳하진 못한데, 괜한 엄마를 원망할 순 없지 않은가.
애초에 아내를 위로해주기 위한 근본적인 방법은 태풍이 충분한 사랑을 주는 것일텐데. 그게 정말 쉽게 되질 않는다. 태풍에게는 스스로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구나 하는 쓸 데 없는 확신만 드는 요즘이다.
그렇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회사 건물에 도착하는 태풍. 엘레베이터 앞에 사람들이 많이 서있다. 같은 회사 사람이 있나 한번 눈을 돌려보는 태풍. 아는 사람이 없다.
툭-
그 때, 우연히 출근 시간이 겹쳐 건물에 들어온 재홍은 태풍을 알아보고 태풍을 툭 건드린다. 재홍 특유의 섬유유연제 냄새를 맡고는 곧바로 고개를 돌려 인사하는 태풍. 태풍은 재홍을 보자 근심이 싹 사라진 듯 환하게 웃는다.
'어어 안녕하십니까 형님'
'아침부터 만나네'
찡긋-
재홍 역시도 태풍을 만나서 신난 듯 코를 찡긋하며 인사한다. 서로를 볼 때마다 너무나 좋은 느낌을 받는 두 사람. 그 둘의 대화에 잠시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이 되지만 이내 시선이 흩어진다.
그 때, 주변 사람들 눈치를 보다가 은근 태풍의 옆으로 아주 바짝 달라붙는 재홍. 재홍의 푸근함이 가까이 맞닿는 게 느껴지자 태풍은 달라붙은 재홍의 골반을 괜히 툭 건드린다. 태풍을 웃으며 힐끔 바라보는 재홍. 지금 이 두 남자의 표정은 아까 집에서와는 완전 딴판이다.
덜컹 덜컹-
잠시 후, 도착하는 엘레베이터. 많은 사람들이 몰린 터라 엘레베이터가 금방 가득 찰 것 같다. 태풍은 문이 열리자마자 곧바로 엘레베이터에 탑승해 구석에 달라붙고, 재홍 역시 태풍을 따라 깊숙하게 들어간다. 그 뒤로 계속해서 들어오는 사람들.
삐-
사람들이 계속해서 탑승하자 곧 정원 초과 경고음이 울려 퍼진다. 타고 있던 사람들 사이는 서로 눈치를 보며 더욱 바짝 달라붙는다.
'아 다음꺼 타시지~'
그 때, 굳이 안해도 될 법한 한 마디를 내뱉는 재홍. 태풍은 재홍 형님의 너스레에 다시 웃음이 터진다. 그렇게 한명은 재홍의 위압감 있는 목소리에 머쓱해져 내리지만 끝까지 타고 올라가겠다고 더욱 서로에게 달라붙는 사람듵.
'아아으'
그리고 짜증이 난 목소리를 뱉으면서 몸이 밀쳐져서 벽에 달라붙어 있는 태풍에게 달라붙는 재홍. 그 순간 재홍의 푸짐한 엉덩이가 태풍의 하반신에 맞닿는다.
'어어..'
끅-
태풍은 몸에 재홍의 엉덩이가 닿자 자신도 모르게 살짝 입술을 깨문다. 그러면서도 밀려나는 재홍 형님의 몸을 받쳐주려 두 손으로 재홍의 허리춤을 살짝 잡아주는 태풍. 재홍은 태풍에게 엉덩이가 닿자 당황한 듯 엉덩이를 최대한 앞으로 빼고 태풍을 살짝 돌아본다.
'(왜요?)'
도리도리-
그렇게 겨우겨우 닫히는 엘레베이터 문. 태풍의 조용한 물음에 재홍은 아니라며 고개를 젓고 다시 고개를 돌린다. 이 와중에 당황한 듯한 재홍 형님의 모습이 귀여워서 입꼬리를 희미하게 올리는 태풍.
꿀꺽-
그렇게 사람이 빼곡히 가득찬 엘레베이터에서 침을 꿀꺽 삼키고 있는 재홍. 엉덩이에 닿은 태풍의 하반신이 느껴진다. 정확하게는 늘 힐끔 훔쳐보곤 했던 두툼하게 불룩한 그 앞섶의 촉감이 느껴진다. 재홍은 결국 고개를 살짝 숙이고 최대한 엉덩이를 빼다가는 힘이 빠진 듯 점점 엉덩이를 다시 뒤로 내민다.
꿈틀-
'..!'
그러다 선 자리가 좁아서 그런 건지 의도한 건지 재홍의 뒤에서 몸을 꿈틀대는 태풍. 결국 재홍의 엉덩이에 닿던 태풍의 꼬추가 재홍의 두 엉덩이 사이로 옮겨진다.
꾸욱-
'ㅎ..웁..'
휙-
그렇게 순식간에 너무나도 민망한 위치로 푹신하게 밀려들어오는 촉감에 다시 반사적으로 태풍을 뒤돌아보는 재홍. 밀려오는 엄청난 당혹감과 무력감. 태풍은 전혀 의도한 바가 아니라는 듯 모른 척 시선을 돌리고 있다. 태풍의 두툼한 무언가가 재홍의 엉덩이를 찌르고 있다.
꿈틀-
재홍은 계속해서 몸을 소심하게 꿈틀댄다. 최대한 엉덩이를 빼면서도 오히려 앞사람의 하체에 자신의 몸이 닿을까 아슬아슬하게 하체에 힘을 주는 재홍. 재홍은 지금 무척이나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다.
'어어 내릴게요.'
그렇게 태풍의 층에 도착한 엘레베이터. 태풍은 먼저 내리겠다고 하반신을 떼고는 인사하듯 재홍의 팔을 매만지며 나간다.
사람들이 꽤 내려서 엘레베이터 안의 공간이 비교적 여유로워졌다. 그제서야 살짝 내려간 바지를 들어올리며 눈을 꿈뻑이는 재홍.
헌데 엘레베이터에서 내린 뒤에도 힐끔 재홍 형님을 바라보는 태풍. 재홍은 지금 얼굴이 살짝 붉어져서는 태풍의 시선을 못본 척 외면한다.
두근 두근 두근-
심장이 요동치듯 쿵쿵댄다. 재홍은 지금 오전 내내 쓸 데 없는 성욕이 올라와서 일에 집중이 되질 않는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늘 훔쳐만 봤던 태풍의 앞섶의 촉감을 처음 몸으로 느끼자 그 여운이 너무 강한 흥분감으로 재홍을 뒤덮는다.
끼익-
결국 안절부절 못하는 눈빛으로 모니터를 바라보다가는 의자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재홍. 재홍의 앞섶도 평소보다 더 불룩하게 튀어나와 있는 것 같다.
치익-
'흐우...'
흡연 구역에 올라온 재홍. 사라지지 않는 태풍의 그 묵직하면서도 물컹한 촉감. 자꾸 그 촉감에 집중하면 숨이 가빠오는 것 같다. 분명히 남자의 꼬추가 몸에 닿았으니 불쾌한 기분이 드는 건데.
지금 이 불쾌함 속에 말로 표현하기 힘든 오묘한 감정이 확실히 섞여있다. 이토록 강한 성욕이 느껴지는 건 정말 오랜만인 것 같다. 마지막이 언제였는지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중요한 건 태풍에게 그런 감정을 느껴버리게 됐다는 것. 재홍은 가슴이 턱 막힌 듯한 이 와중에 담배까지 피니까 더 가슴이 답답해서 표정이 일그러진다.
'형님!'
그 때, 귀신같이 나타나는 태풍. 이 정도면 재홍이 담배피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해도 믿길 정도다. 물론 태풍이 그렇게 한가할 리는 없지만.
'어어.'
헌데 그런 태풍을 보고 평소처럼 신이 나기보다는 멋쩍게 눈을 꿈뻑이며 다시 손을 들어 인사를 하는 재홍. 아까 엘레베이터에서도 민망해서 인사를 못했다. 그렇게 재홍은 의자에 앉은 채로 살짝 고개를 돌려 담배를 마저 핀다.
'오늘 점심에 식사 같이 하실까요?'
'점심? 그럴까.'
자연스레 재홍의 옆에 앉으며 점심 제안을 하는 태풍. 재홍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애초에 태풍의 제안을 거절할 생각이 없는 재홍. 다만 지금은 조금 혼란스러워서 태풍이 다소 불편하게 느껴질 뿐이다.
'저 쪽 건물에 콩국수 죽여주는 집 있거든요. 날씨도 뜨거워지는데 한 그릇 하시죠'
'콩국수 좋지.'
'네 이따 같이 가시죠. 근데 형님 무슨 안 좋은 일 있으세요?'
확실히 아침에 1층에서 마주쳤을 때와는 반응이 다른 재홍의 모습을 바라보며 묻는 태풍. 재홍의 혼란스러운 감정이 전부 겉으로 티가 나나보다. 이제와서 보니 태풍에게서 살짝 등을 돌린 채 다리를 덜덜 떨고 있는 재홍. 평소의 그 특유의 무게감과 여유가 많이 사라졌다.
'아니? 무슨 일이 있냐'
'회사에서 오전에 무슨 일 있으셨나 해서요.'
'아니 아무 일도 없다'
'와 근데 땀을 왜이렇게 흘리세요. 정말 괜찮으세요?'
'ㄸ..땀?'
그 때, 재홍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들을 바라보며 다시 묻는 태풍. 지금 오전 내내 몸과 마음이 평생 못접해본 자극에 극도로 불안해졌다 했더만 어느새 식은땀이 나고 있는 재홍.
결국 태풍이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재홍의 땀을 한번 닦아준다. 머쓱하게 땀이 닦인 이마를 한번 문질러보는 재홍. 태풍 앞에서 이렇게 긴장을 한 것도 처음인 것 같다. 나이 차이도 나는 동생 앞에서 이러고 있자니 순간 조금 쪽이 팔려오는 재홍. 재홍은 결국 태풍을 쳐다보며 변명하듯 말을 잇는다.
'이제 더워서 땀이 다 난다'
'이 정도에 벌써 땀을 그렇게 흘리시면 어떡합니까. 아무튼 그럼 이따 열두시에 일층에서 뵙죠'
'그래. 피고 내려가라.
툭툭-
그렇게 먼저 내려가겠다고 의자에서 일어나며 괜히 태풍의 어깨를 툭툭 건드리고 가는 재홍. 태풍은 갑자기 재홍이 이런 어색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는 듯 웃음을 참느라 콧구멍을 벌렁인다. 먼저 흡연 구역을 나가는 재홍. 태풍은 그런 재홍 형님의 토실토실한 뒷태를 그저 빤히 바라보다가 다시 담배를 한모금 빨아대며 가랑이를 괜히 한번 긁적이며 덜렁인다.
'형님 소금이시죠 ? 설마 설탕 뿌려드ㅅ..'
'설탕이지'
'어우우'
점심 시간, 담배를 필 때 보다는 한결 기분이 나아진 재홍을 콩국수 맛집에 데려온 태풍. 재홍은 콩국수에 설탕을 넣는다고 태풍의 손에서 설탕통을 뺏어가고, 소금파인 듯한 태풍은 안 맞는 식성에 얼굴을 찡그린다.
후룩-
'우움. 먹어봐.'
'어우 보기만 해도 달아서 싫습니다'
'맛있다니까 먹어보고 말해 임마'
'형님 맛있게 드십쇼'
후루룩-
언제부터 그랬다고 입맛이 까다로운 듯 구는 태풍을 괜히 한번 노려보고는 설탕을 친 콩국수를 잘도 먹는 재홍. 통통한 풍채 만큼이나 한 입 가득 벌려서 잘도 먹는 재홍 형님의 모습에 태풍은 또 피식 웃음이 터진 채 식사를 시작한다.
후룩-
'여기 콩국수 잘하죠?'
'응 맛집이네 고소하니'
'그렇다니까요. 여기 저번에 회사 사람들이랑 먹는데 저는 형님이랑 꼭 한번 오고 싶더라구요'
'나랑? 왜'
'왜긴요. 저 요즘 매일 형님 생각합니다?'
'참 또 헛소리냐. 먹기나 해라'
속도 모르고 재홍을 설레게 할 법한 멘트들을 잇는 태풍. 사실 태풍은 진심이다. 요즘 태풍이 유일하게 웃는 시간은 재홍과 대화를 할 때 뿐이니까.
이 와중에도 재홍은 아침 엘레베이터에서의 그 사건 때문인지 애써 정색을 한 채 눈도 안 마주치고 그릇에만 얼굴을 박고 있다. 괜히 쌀쌀맞은 말투가 나온다. 하지만 감정을 못 숨기는 그런 형님의 모습이 그저 귀여운 태풍이다.
그렇게 식사를 잇는 두 사람. 잠시 동안 먹는 데에만 집중해서 후루룩 소리만 들려온다. 괜히 국수를 씹으며 식당에 들어오는 다른 직장인들을 둘러보고, 티비에 나오는 재미없는 광고들만 빤히 쳐다보고 있는 재홍. 힐끔 힐끔 태풍을 보기도 하지만 재홍은 지금 태풍과 눈을 마주치는 게 마냥 편하지는 못한 느낌이다. 그 때, 국수를 젓가락으로 들어올리다가 착잡한 목소리로 말을 잇는 태풍.
'저도 요즘엔 좀 휴식이 필요하구나 느껴요'
'엉? 왜'
갑자기 태풍의 분위기가 진지해진다. 재홍은 무슨 일이 있는 듯한 태풍의 목소리에 다시 태풍을 빤히 바라본다.
'결혼 생활이 쉽지가 않네요. 나만 그런가'
'와이프랑 또 싸웠냐'
'딱히 싸운 것도 아닌데 이러니까 문제 아니겠습니까. 현타라고 하죠. 자꾸 현타 오네요'
'... 그럴 때가 있지'
후루룩-
재홍은 자식은 없지만 그래도 결혼 생활 몇년 선배로서 태풍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 것도 같단다. 가끔은 아무 문제 없어 보이는 이 결혼 생활 자체가 버거울 때가 있다. 한 여자와 매일을 함께 붙어서 산다는 게 지루하고 권태롭다. 이 생활의 의미를 찾기가 어렵고 함부로 입 밖으로 내뱉기 어려운 생각들이 떠오를 때가 있다.
그렇게 그저 말 없이 다시 국수를 후루룩 먹는 두 사람. 재홍은 입을 오므리고 국수를 씹으며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두 눈을 올려 태풍을 바라보고 있다. 이런 재홍의 눈빛이 참 좋은 태풍. 태풍은 무던하고 듬직한 재홍 형님과 함께 시간을 보낼 때면 자꾸 어린 아이가 된 것 처럼 모든 걸 불게 된다.
'오늘 이 여편네가 갑자기, 애 데리고 친정 갔다 온다고 그러는 거에요. 며칠동안 있다 온다는데.. 참 갑작스럽죠? 하하. 그럼 나는 밥은 어떻게 해먹으라고? 쯧쯧.. ㅎㅎㅎ'
괜히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을 끝내는 태풍. 하지만 그런 태풍의 능글맞은 웃음에도 재홍은 근엄한 표정을 짓고 계속 태풍의 얼굴을 바라본다. 느껴지는 형님의 염려스러운 눈빛.
평소에는 태풍의 장난에 어쩔 줄 몰라하는 귀여운 모습도 있는 재홍이지만, 늘 느끼듯 재홍의 눈빛은 은근 카리스마가 대단하다. 형님이 진지해지자 괜히 더 목소리 톤을 높이며 말을 잇는 태풍.
'자기는 친정으로 도망가서 쉬고 오면 되겠지. 저는 어디서 쉽니까? 이래서 남자들도 좀 쉴 줄 알고 놀 줄 알아야 돼요 형님. 우리가 평생 돈 벌어다 주는 기계도 아닌데 오히려 마누라들이 역으로 성질내고 하지 않습니까? ㅎㅎ'
'남자들이 다 그러고 사는 거지.
뒤적뒤적-
분위기가 너무 심각해지자 또 괜히 장난스러운 한풀이를 뱉는 태풍. 하지만 재홍은 그런 태풍에게 다른 남자들도 다 그렇게 산다며 가볍게 받아주진 않는다. 순간 재홍 형님의 기운에 살짝 눌리듯 머쓱해지는 태풍. 그 때, 재홍은 갑자기 벗어둔 자켓 안주머니에 손을 넣어 뒤적거리기 시작한다.
'이거 너 써라'
그리고 아침에 아내에게 보여줬던 숙박권을 태풍에게 건네는 재홍. 어짜피 재홍도 아내처럼 씀씀이가 크질 못해서 이런 비싼 호텔에서 하루 묵을 일도 없고, 그럴 엄두도 나질 않는다. 그렇게 엉겁결에 숙박권을 받고 열어보는 태풍.
'이게 뭡니까 형님'
'호텔 숙박권인데 여기가서 푹 쉬라고. 회사에서 받았는데 난 쓸 일도 없다'
'아니 아닙니다. 이런 걸, 괜찮습니다 형님.'
갑자기 고급 호텔 숙박권을 주는 재홍에 깜짝 놀라서는 다시 돌려주려 손을 휘저으며 극구 거부를 하는 태풍. 재홍도 이미 준 숙박권을 돌려받을 생각이 없는지 그저 뒤적거린 자켓을 다시 정리하고 있다.
'형이 주면 그냥 받어'
'아아, 이거 부담스러워서..'
'우리 사이에 뭐가 부담스럽냐?'
힐끔-
순간 우리 사이라는 말에 반응하듯 재홍과 눈을 맞추는 태풍. 재홍도 그제서야 자신이 말하고 머쓱한지 살짝 눈꼬리가 내려가며 희미한 웃음기를 보인다.
'우리 사이라서 그러죠. 형님 괜찮습니다. 이거 형님 쓰셔야죠'
결국 끝까지 숙박권을 돌려주려 재홍의 수저 옆에 숙박권을 올려놓는 태풍. 재홍은 굳이 숙박권을 툭 쳐서는 바닥에 버리듯 떨어트린다.
'에이씨 안써 난'
툭-
'푸훕 아 형님 이 비싼 걸 그냥 버리십니까?'
'난 몰라. 내 거 아니야'
'아 ㅎㅎㅎㅎ'
태풍이 자꾸 자신의 선물을 거절하자 오히려 토라졌다는 듯 구는 재홍. 태풍은 그런 형님의 모습에 웃음이 터지며 결국 바닥에 떨어진 숙박권을 줍는다.
후루룩-
괜히 선물을 주고는 민망한지 또 고개를 박고 남은 면을 모아 흡입하고 있는 재홍. 그 때, 태풍이 재홍과 숙박권을 번갈아가며 바라보다가 말을 잇는다.
'그럼 이거 저랑 같이 가시죠'
꿀꺽-
'크훕.. 큼. 너랑 나랑 호텔을 왜 가냐?ㅎㅎ'
'형님 말대로 우리 사이에 안될 거 뭐있습니까'
순간 호텔에 둘이 같이 가자는 태풍의 말에 먹던 채로 어이없는 웃음이 터지는 재홍. 그런 재홍에게 또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숙박권을 흔들며 말을 잇는 태풍.
'호캉스라고 유행하잖아요. 남자끼리 호캉스 한번 해보죠. 형님도 좀 쉬실 겸.'
'호캉스?'
결국 재홍의 눈도 반짝하고 빛난다. 상상도 못했던 태풍과의 호캉스라니. 그렇게 재홍은 이 차가운 콩국수를 먹고도 땀이 난건지 티슈를 꺼내 이마에 맺히는 땀방울을 닦으며 식사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어.. 갑자기 장례식이 있어서. 지금 대구 내려가려고'
치이익-
퇴근 후, 결국 울적하다는 태풍의 마음도 달래줄 겸 당일에 바로 호텔에 온 재홍. 함께 오자는 태풍의 제안에 놀라긴 했지만 역시 태풍의 그 어떤 제안도 거절할 마음이 애초에 없어 보이는 재홍이다.
그렇게 태풍은 먼저 들어가 체크인을 하고 있고, 재홍은 담배를 피며 아내 윤희에게 전화를 하고 있다.
-그래?
'응 대구서 자고 내일 회사 갔다가 집에 들어갈게'
-그래 그럼.
헌데, 전화기 너머의 어딘가 무미건조한 아내의 목소리. 굳이 태풍과 호텔을 간다고 말하기엔 스스로 찔려서 거짓말을 하려니까 죽겠다. 괜히 아내 기분이 더 안좋게 들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무슨 일 있어?'
-아니 무슨 일은, 없어.
'뭐야.'
이 아줌마가 왜 이래. 힘이 다 빠진 아내의 목소리에 재홍은 담배를 피다가 괜히 귀에 붙인 휴대폰을 내려 화면을 한번 바라본다. 아내가 컨디션이 안좋나.
'암튼 그런 줄 알고. 내일 봐.'
-그래. 밥 챙겨 먹고.
'어잉'
뚝-
재홍은 전화를 끊고 순간 자신이 뭘 잘못한 게 있나 돌아본다. 대체 여자들이 화를 내는 이유는 알 수가 없다. 분명히 재홍 느낌에는 지금 아내 기분이 몹시 안좋아 보이는 게 분명한데.
'형님! 다 됐습니다.'
그 때, 체크인을 마치고 카드 키를 받아서 나오는 태풍. 재홍은 그렇게 태풍의 얼굴을 보자마자 입을 굳게 다물고 고개를 끄덕인다. 태풍이 그런 재홍에게 말을 잇는다.
'윤희 누나한테 말씀 드렸어요?'
'야, 태풍아 나 거짓말 했다. 장례식 간다고'
'왜요? 왜 거짓말을 하세요ㅋㅋ 저랑 호텔 오면 어때서'
'그럼 이 사람 삐져'
도리도리-
거짓말을 했다는 재홍에 입꼬리가 올라가서는 왜 거짓말을 했냐고 묻는 태풍. 와이프의 남자 후배와 호텔에 온 게 떳떳하진 못해보이는 재홍은 얼굴을 찡그리고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다.
'이야 호텔 죽여주네!'
그러다가 고급 호텔 시설을 둘러보며 감탄한 듯이 외치며 경이로운 표정을 짓는 재홍. 태풍은 그런 재홍 형님의 행동에 그저 웃음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그 시각. 재홍의 집. 서재 방 컴퓨터 앞에 윤희가 앉아있다. 남편과 전화를 끊고는 무척이나 차가운 눈빛으로 휴대폰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윤희. 이내 윤희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다시 모니터를 바라본다.
꽈악-
그러다가는 손을 들어 자신의 머리카락을 살짝 쥐어잡아 넘기는 윤희. 해탈한 듯한 윤희의 눈빛이 풀려있어서 더 무섭다.
윤희의 앞에 놓여진 모니터. 그 모니터 화면에는 지난 새벽 남편이 들렀던 사이트들의 방문 기록이 고스란히 띄워져 있다.
이반시티. 단지 실수로 들어온 것 같지 않다. 게이들이 이용하는 사이트를 남편이 새벽 늦게 일어나 방 문 잠그고 한시간 넘게 보고 있을 이유가 뭐가 있을까.
일 때문이라고 했는데, 순 거짓말이었다. 남편이 굳이 거짓말을 했다는 건 지금 눈 앞의 방문 기록들을 보며 내가 촉으로 느끼는 것들이 전부 사실일 것이라는 뜻이겠고.
내 남편은 게이일까. 윤희는 충격에 빠졌다. 하지만 그저 호기심이려니 하고 넘어가기엔 더 심각한 이유는 남편이 임태풍 석자를 이반시티에 검색해봤다는 것이다.
심지어 중년 게시판이니, 우리 동네의 게시판이니, 여기저기 치밀하게도 둘러본 남편의 방문 기록이 더 현실감 있어 놀라울 뿐이다. 윤희는 그렇게 휴대폰을 다시 들어 임태풍의 전화번호를 띄운다. 전화를 걸려는 걸까. 그렇게 윤희는 한참 동안 생각에 잠긴다.
'어어 형님 거기 두고 나가 계세요. 제가 계산할게요.'
'아니 됐어 내가 살래'
'아니에요. 형님 그 때 술값에 오늘 방값에 저한테 너무 하시는 거 아니에요? 심지어 이거 술 몇병 얼마 한다고. 저도 염치가 있어요.'
그렇게 술이나 주전부리 할 것들을 사러 편의점에 들른 두 남자. 재홍이 또 계산을 하려고 하자 태풍은 오히려 그렇게 나오시면 서운하다고 대답을 한다.
'아. 그런가..'
'제가 내일 조식도 사드립니다'
'조식은 무슨. 라면이나 먹고 출근해. 여기 엄청 비싸다'
재홍은 태풍을 너무 좋아하는 마음에 오히려 오버한 건가 싶어 알겠다고 주머니에서 손을 꽂는다.
'나가 계세요. 나가'
그렇게 아예 나가 있으라고 손을 휘젓는 태풍. 재홍은 태풍에게 쫓겨나듯 민망한 표정을 짓고 머쓱하게 편의점을 나선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재홍이 또 담배를 피는 듯 담배에 불을 붙이자, 술이 수북히 쌓인 계산대로 걸어오다가 다시 진열대로 들어가는 태풍.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이 열심히 바코드를 찍어대고 있다.
삑- 삑-
툭-
그 때, 진열대에서 계산대에 콘돔을 툭 하고 내려 놓는 태풍. 재홍 몰래 콘돔을 사려는 태풍이다. 알바가 콘돔을 가져온 태풍에 깜짝 놀라서 태풍을 쳐다본다. 그런 알바의 시선은 신경도 안쓰고 그저 지갑을 열어 카드를 꺼내는 태풍.
'이것도 같이 하시는 거에요?'
'네. 왜요. 콘돔.'
'아, 아니에요.'
알바는 유리창 너머에서 담배를 피고 있는 재홍을 힐끔 본다. 무척이나 놀란 표정을 애써 숨기며 태풍이 올려놓은 콘돔을 찍어 봉투에 넣어주는 알바.
중년 아저씨 둘이 호텔에 온 것 같은데 태풍이 콘돔을 몰래 슬쩍 끼워사자 이 광경이 낯설어 놀랄 법도 하다.
알바가 당황한 게 재밌다는 듯이 웃기까지 하며 대범하게 카드를 건네는 태풍. 알바가 카드로 결제를 하는 도중에 태풍은 봉투에 들어간 콘돔을 꺼내 자신의 주머니에 쑤.셔넣는다. 그런 태풍의 행동에 또 다시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태풍을 훑어보는 알바. 카드를 건네며 말한다.
'결제 되셨어요.'
'예. 감사합니다~ 수고하십쇼'
그저 능글맞게 눈썹을 씰룩이며 봉투를 들고 인사를 하는 태풍. 알바는 고개를 꾸벅이고는 편의점 밖으로 걸어가는 덩치 좋은 태풍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두 사람. 태풍이 나오자 재홍이 봉투 하나를 뺏어 든다. 태풍은 그런 재홍에게 웃어보이며 자신도 담배를 꺼내 피기 시작한다.
두 아저씨가 서로 대화를 하다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빵 터진다. 그와 동시에 자연스레 재홍의 등 뒤로 손을 올려 재홍을 감싸는 태풍. 재홍은 태풍보다 키가 작아서 마치 쏙 안긴 듯 서서 대화를 잇는다.
그렇게 알바는 콘돔을 사서 나간 두 아저씨가 신기하다고 계속해서 힐끔대며 유리창 밖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그 순간 재홍을 감싼 채 유리창 안으로 시선을 힐끔 돌리는 태풍. 알바는 태풍과 눈이 마주쳐서 깜짝 놀라며 시선을 돌리고, 태풍은 그런 알바에게 장난을 치듯 다시 한번 눈썹을 씰룩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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