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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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모라는 이름의 무게.


며칠전서부터  지숙은 장을 보고 이것 저것 밑반찬을 만들며 음식 준비에 온 정성을 쏟았다.

신이났다.

아들 면회간다는 생각에 엉덩이가 들썩거려 가만 있지를 못했다.

면회를 나오면 입히려고 백화점에 가서 한나절을 쇼핑했다. 

설랬다.


대한민국에서 훈련이 가장 세다는 특수부대.

갈때마다 시커멓게 탄 얼굴과 마른 몸을 생각하면

속이 상했다.

군 생활이 얼마나 힘든지 말을 안해도 알 수 있었다.

언듯 언듯 보여지는 번뜩이는 눈빛을 마주할 때마다 섬뜩했다. 

눈빛이 너무나 시리고 차가워서 가슴이 아팠다.


이제 그만큼 고생했으면 됐다고,

제대해서 다시 하고 싶은 공부나 하라고 설득 할 생각이었다.


수없이 많은 무슨 무슨 훈련. 

이름도 헷갈리는 훈련에 들어간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지숙은 속이 철렁거렸다.

힘들 다던데.…

다쳐서 제대한 경우도 있다던데…

죽는 경우도 있다던데…

면회를 갈때마다  가슴에 단 계급장 주변에 

날개가 하나씩 생겨났다.

선후가 자랑스럽게  그 날개의 의미를 설명 할 때마다 저절로 부처님을 찿게 되었다.

날개 하나 하나가 고생 바가지로 보였다.


‘아이고 부처님 감사합니다. 건강하게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모로서 할 수 있는 건

기도 밖에 없었다.



집에 오지 못하고  밖으로만 떠도는 내 새끼.

서로 마주치지 않으려고 피하기만 하는 부자를

지숙은 이해하면서도 이해하지 못했다.

자존심 때문인가?

아니면 창피해서인가?

선후는 그렇다 치더라도 남편까지 계속 선후를 만나러 가지 않는것은 지숙에겐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못난 사람, 이라고 고개를 끄떡여 주고 싶다가도

불뚝 불뚝 치고 올라오는 갑갑함에  가슴을 쓸어 내려야 했다.

그럴땐 남편이  너무 미웠다.

그런 미운 남편에게 퉁명스럽게 말했다.



“나  내일 선후 면회 갈거야. ”


갑작스러운 지숙의 말에 정우는 당황한듯

마른세수를 했다.


“선후  좋아하는  짱아치랑  소고기 조림도 만들어 놨어. 당신 거는 냉장고에 넣어 놨으니까 꺼내서 먹어.밥도 데피기만 하면돼 .알았지”


정우는 안스러운 눈으로 지숙을 바라보았다. 


“혼자만 먹지 말고 딸도 좀 챙겨줘.

영옥이도 요즘 말은 안하지만 힘들어 하는 눈치더라고”


그제서야 정우는 두 손으로 지숙의 손을 지긋이 잡았다.


“가지마.가도 소용없어.”


“왜.또 작전 뛴데?   뭔 부대가 허구헌 날 애들을 가만히 안둬.응?”


“…………선후 제대했어.”


“잘됐네. .이제 ....뭐? 언제,?”



지숙은 정신이 없었다.


“언제.언ㅡㅡ제? ”


“한 달 정도 됬어. ”


그말을 듣자 지숙은 주먹으로 정우의 가슴을 치며 소리쳤다.


“어떻게. 어떻게. 나한테 안 할 말이 따로 있지 ,          어떻게  그 말을 안할수 있어.내게 .  어떻게 ㅡ.”


정우가 소리치며 부르르 떠는 지숙을 안으려 하자 지숙은 정우를 힘껏 밀쳐냈다.

그리고  안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귔다.

지숙의 울음소리가 문밖으로 흘러 나왔다.



하 ㅡ,정우는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집으로 돌아 오지 않는 아들.

지누나에게  제대했고 여행중이라고 문자를 보낸 아들.

조만간  집에 들리겠다는 아들의 문자에 

정우는 먼저 지숙이  받을 충격이 걱정됐다.

딸에게 엄마에게 말하지 말라고 부탁했다.

조만간에 온다니까 올 때 이야기 하자는

아빠의 말에, 딸도 엄마가 걱정 됐는지 

순순히 고개를 끄떡였다

하지만 한달이 지나도 아들은 돌아오지 않았고

소식도 없었다.

감감 무소식 이었다.


이젠 너무나 먼곳으로 날아가 버린 것 같은 아들.

손을 내 밀어도 잡을 수 가 없을 것 같은 아들.


정우는 가슴을 움켜쥐고 쇼파에 앉았다.


가슴에 난 상처에 굳은 살이 배겨서 

딱딱한 돌 덩어리가 되어 버린 것 같은데 

그 위에 또 하나의 돌이 올려진 것 같았다.


돌이라서 무감각해진것 같은데

딱딱해서 아프지 않은거 같은데.

그 돌에서 계속 빨간 피가 베어 나오는 느낌이었다.


“바보같은 놈. 그게 뭐라고” 


모처럼 아들에게 하는 한 마디가 겨우 그거 였다.

그제서야 그 말이 자신에게도 해당 되는 말이란 걸 

알 수 있었다. 


“바보같은 놈. 그게 뭐라고.”


정우는 휑한 눈으로 가만히 화장실로 들어가 문을 잠궜다.

그리고 커다란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며 속삭여 보았다..


“바보같은 놈. 그게 뭐라고.……”


그 말을 자꾸 되뇌이며  정우는  꺼억 꺼억,

목구멍으로 치닫아 올라오는 멍울음을 삼켰다.


“바보같은 놈. 그게 뭐라고.…………………”


끝내 세면대의 물을 세차게 틀어놓고…. 


울었다.





……………………………


“ 당신,선후가  태어난 날 생각 나?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다가 나온 정우의 독백이었다.


“난 너무 좋아서 어쩔줄 모르겠더라 . 

의사가 건네준 가위로 태줄을 자르는데 너무 공포스러웠어. 두렵기도하고 슬프기도하고

감동이기도 했지.

막 눈물도 나왔던거 같아. 

그 작은 얼굴이, 그 작은 손이, 그 작은  발이,

너무 소중해서 아끼고 또 아끼고 만 싶었어.

하지만 아들 이니까.…

 아들이니까 딸보다 조금은 강하게 키우고 싶었어.

그래서 다정다감한 아빠보단 멀직이 서서  지켜보는 

아빠가 된 것 같애

근데 미술을 좋아하네.후후.  

아빠 마음에  미술은 가난하기 딱 좋은 직업이다 싶었어.

그래서 태권도 4단 자격증 따놓으라고 한거야.

삶이 힘들때 태권도장이나 하나 내어주려고 .건강은 덤이고. 

그때까지 미술에 그렀게 진심인지 몰랐지.

난 그냥 평범하게 나랑 같이 어깨를 나란히 하는, 

아니  나보다 조금 더 듬직한 아들을 꿈뀠다고 .

근데  그게 욕심일까?

부산에 간 날을 얼마나 후회했는지 몰라.

그때 왜 출장을 갔는지. .

왜 내가 그 시간에 그곳에 있었는지….

모든게 원망이 되더라.”


정우는 한 손을 올려 눈을 가렸다.


“나도 다시 되돌리고 싶었어.  

그런데 그날  이후 그 녀석과 눈을 마주칠수가 없었어. 

선후의 손을 잡을 수 가 없었어. 

난 아들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할수 없는 아빠가 되어 버렸나봐.

할수 있는 건 더 멀직이 멀어지는것 뿐이었어.

선후가 불편하지 않게,나도 불편하지 않는 거리.

그렇게 난  아무런 말도 행동도 할 수 없었어.”


“아니야. 자신을 그렇게 속이지마. 

그럴수 밖에 없었다고 스스로 위안하지마.

당신이 용기가 있었다면 먼저 다가 가야지.

아빠 잖아.사랑하는 아들이잖아.

아무렇지 않게 다가갈 기회가 얼마든지 있었어.

조금 더 다정 할 수도 있었고

한번 더 칭찬해줄 수 있는  기회가 얼 마든지 있었다고. 

당신 딸한텐 그랬잖아. 

매일 안아주고 뽀뽀해주고. 

사랑한다  말해주고 매일 같이 싸우고 화해하고 그랬잖아. 

당신은 도망친거야. 싸워보지도 않고 아들 한테서 도망친거야.

왜 도망쳤는지는 당신만이 알겠지.

내겐. 당신말이 전부 핑계로 들려.”


“………그러네.   모두핑계였네”


“그냥 받아들이자. 있는그대로 받아들이자.

우리가 만든거잖아. 내 속에서  나온 거잖아 .

동성애가 죄라면  그렇게 낳은 부모도 죄라고.

동성애도 내가 낳은거라고. 동성애도 우리둘이

만든거라고.”



…………………


정우의 젖은 목소리가 촉촉했다


“책에서 봤는데 아빠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한것이 동성애의 윈인이란 논문이 소개 되 있더라.. 

그래서 찿아서 읽어 봤어. 

어렸을때부터 아빠의 폭력에 노출되서 아빠에게 강렬한 증오심을 갖거나, 아니면 아빠의 사랑이 충분치 못해서 결핍이 생긴 아이들이 동성애자가 된다는 논문 이었어.

그게 맞다면 모든게 내 탓인가 싶어서. 

강하게 키운다는게 외려 병들게 키운게 아닌가 싶어서 .  

안아주지 못 한게,  사랑한다 말하지 않은게 

이렇게 한스러울줄 몰랐어. 

그때 그때 필요한 양분을 받지 못하고 

비 바람에 그대로 노출이 되어

시들어 버린 새싹같아서  선후가 안스러웠어.

사랑하는데 더없이, 한없이 사랑하는데

 난 한번도 사랑한다 말 하지 못한 아빠가 됐네.”


정우의 얼굴에 한줄기 눈물이 흘렀다.

 


“난 어땠을거 같애?  

 공무원인  남편의 박봉에 선후 낳고 곧바로 어머니한테 핏덩이를 맡기고 일하러 나갔어. 

 그 어린것이 내가 일하러 나 갈 때마다 내 치맛자락 붙잡고, 눈치보면서 “엄마. 일하러 안가면 안되?”  라고 물을때 난 가슴이 타들어 갔어.

그래도 그 어린 손을 뿌리치고 꿋꿋이 일하러 나갔지.

그런데 아들이 동성애자래. 

내가 잘못 낳아서. 내가 잘못 키워서....…….

그리된거 같아서.

그때. 일 안하고 곁에 있어 줬더라면……………

그때 돈벌어야 한다는 내 욕심때문에 저렇게 된거 같아서. 

지나온 시간들이 매일 매일 후회가 돼.


지숙의 눈 빛은 공허했다 .텅빈 동굴처럼 스산했다.


“너무 우울하고 힘들어서 죽을 것 만 같았어.

 돌아 보고 둘러 봐도 이 이야기 할 데가

 없는게 가장 힘들더라고 .

그래서 신경외과에 가서  상담을 받았는데...

의사가 자꾸 “그래서요” 란 질문만 

하더라고


아들이 동성애자래요ㅡ

그래서요?

제가 죽을거 같아요.

누가요?

제가요.

그래서요?

아들이 동성애자래요.



가서 이야기하면 풀릴줄 알았는데 더 쌓이더라고.

그래서 정말 이러면 다음부터 안온다고 그랬지.

그러니까 의사가 묻더라.


“여기와서 아들이야기 밖에 안했어요.

내 고객은 지숙씨 아들이 아니라 지숙씨입니다.

아들이 동성 애자라고  밝힌게  남에게 피해를 입힌 행동인가요?”


“아니요.”


“그럼 아들이 동성애자라고 밝혀서 지숙씨가 힘든가요?”


“네”


“그럼 아들이 이제부터 이성애자라고 선언하면 

괜찬아 지겠네요.”


“네?ㅡ”


“자 그럼 제가 선언할께요. 지숙씨 아들은 이성애자 입니다”


“선생님ㅡ!”


“편해 지셨나요? 제 역활은  지숙씨를 편안하게 하는게 목표입니다

아들이 동성애자인걸 싹 지우거나 ,

아님 받아들이거나 해야 목표가 달성되는데

지숙씨는 둘 중 어느것도 받아들일 준비가 안된것 같네요.”


“”선생님.!”


“아들이 동성애자라는걸 지울수 없다면 

그때 아들이 한 말을

지숙씨란 한 여자로 들은건지

 아님 엄마로서 들은건지 한번 생각해보세요.

지숙씨는여기와서 계속 본인이 힘들다고 했습니다..

그럼 엄마로서는 힘들지  않겠네요?

해답을 얻으면 더는 오지 않아도 됩니다.

고민해도 계속 힘드시면 다른 신경외과를 추천해드리겠습니다.”



돌아오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그 어리고 여린놈이 그 말을 엄마에게 하기까지 얼마나 고민했을까,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런데. 난 그말을 듣자마자 아빠한테이야기 하지 말라고 감추기에 급급했어.

내가 조금 더 성숙한 엄마였다면. 내가 좀 더 괜찮은 엄마였다면 아이를 따라 올라가서 안아 주었을거야.


“우리아들 그동안 힘들었지?

용기내줘서 고마워.

엄마한테 이야기 해줘서 고맙다.

우리아들 어떤 모습이든 엄마가 사랑한다고…

가슴으로 꼬옥 안아주며…

그렇게 이야기 해 주었어야 했는데

어깨를 토닥여 주었어야 했는데…

난 고작 당신이 알까봐 벌벌 떨기만 했어.

당신이 세상 전부인 것 처럼 굴었어."


그 순간이 너무 가슴이 아파.…

안아주지 못한게. 괜찮다고 말해주지 못한게

이렇게 가슴에 멍울이 들 줄 몰랐어.


무의식적으로 알았던거 같애.

 누가  그 사실을 알까 두렵고 소문 날까 두려워서 벌벌 떠는  나였단 걸.

그래 그때 난 선후의 엄마가 아니었어.”


“………………”


“여보. 우리 이혼하자.

나 이제  더 이상 후회하며 살고 싶지 않아.  

난  여지것  당신 아내로 충실히 살았으니까, 

이젠 우리 아들 엄마로 살고싶어.

당신 때문에 선후가 집에 못 온다면 내가 가야지.

집에서 아들 따뜻한 밥 해서 먹이는게 내 소원이야. 

소원..”



… … … … … 



 “엄마 아빠 이혼 한데.  말려 줘 선후야. 

엄마가 제정신이 아니야. 

엄마가 많이 아픈거 같아.

선후야 제발.  집에와서 엄마 좀  말려 줘.”


여행  중,

누나의 전화에 선후는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당분간 집에 들어 오지마.란 아빠의 말이

아예 집에 들어 오지 말란 주문으로 들려 왔었다.

10년의 시간들이 그 말속에 녹아들어 갔다.


도저히 그냥 들어 갈 수 없어서 집 근처 선술집에서 술을 마셨다.

시간은 점점 흘러 늦은 밤이 됬지만 선후는 일어날줄 몰랐다.

시간이 흐를 수록 술 병만 쌓여갔다.



… … … …


선후는 비틀거리며 미용실을 지나 계단을 올라갔다.


이층집 문 앞에서 도어록 버튼을 눌렀다.


티릭. 신호음에 선후는지난 10년의 세월이 사라진거 같았다.


문 소리도 그대로

비밀번호 그대로 ..

모든게 집을 떠나 있기 전 그대로..

그대로인거 같았다.


중문을 열고 들어가니 어두운 거실에서 아빠가 쇼파에 앉아  tv를 보고 계셨다.


놀란 아빠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선후는 비틀거리며  그 자리에서 쓰러지듯 큰절을 올렸다.


그리고 일어나지 않은 체, 무릎 걸음 으로 아빠에게 다가가  ,발목을 부여 잡고 얼굴을 묻은 체 울음을 터트렸다.


  “으흐흐 흑 ㅡㅡㅡㅡ”


사내놈의 묵직하고 탁한 울음 소리에 

엄마가 나오고 ,

누나가 나오고 

불이 켜졌지만.

선후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여전히 아빠의 발을 움켜 쥔 체    

얼굴을 묻고

길고 긴 울음을 멈출 수 없었다 .

  

"   흐흑,흑흑ㅡ   "


모두가 울었다.


그렇게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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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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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마음 아프지만 사랑하는 만큼 그런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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