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빛깔의 이야기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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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황……메신저
똑똑
- 어디서 만날까요?
똑똑
- 집에서 가까운 교차로나 큰 건물을 알려 주면 지금 곧 그리 갈게요.
똑똑
- 죽림 교차로에서 1시간 후에 만나요.
똑똑
- 알았어요. 참, 우리 만나서 맘에 안 들면 없었던 일로 해도 되나요?
똑똑
- 예, 그렇게 해요.
반이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20살의 꿈 많은 청년, 그러나 뭇 남성들에게 자기의 몸을 제공하는 대가로 돈을 벌었다. 반이는 집에서부터 죽림 교차로까지 걸어가는 것을 어림쳐서 계산하고 빈둥빈둥 시간만 보냈다.
석호는 메신저가 끝나자마자 평상복을 훌훌 벗어 버리고 욕실 안으로 들어갔다. 제일 먼저 양치질하고 샤워를 마친 뒤에 외출복으로 갈아입었다. 석호가 외출을 위하여 준비하는 동안 치원은 의아스레 바라보았다.
"아빠, 이 시간에 어디 가세요?"
"응, 지금 뭐라고 했니?"
"어디 가시냐고요?"
"누구 좀 만나기로 했어."
석호가 승용차의 시동을 걸고 기어를 넣었다. 핸들을 돌려 아파트를 출발하며 반이를 만날 걸 생각하니 마구 가슴이 설레었다. 승용차가 도시에서 벗어나 인적 없는 도로를 쌩쌩 달렸다. 석호는 전방을 주시하고 반이를 머릿속에 그려 보았다.
반이는 트레이닝복을 외출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집을 나서며 어머니에게 도서관에 간다고 거짓말했다.
"엄마, 공부하고 올게요."
"언제 올거니?"
"늦으면 전화할게요."
"일찌감치 들어와."
반이는 대답을 피하고 현관문을 열었다. 집 밖을 나서자마자 싱그러운 아카시아 향기가 코에 스며 상큼했다.
반이가 죽림 교차로에서 석호가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에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런데 바로 그 때 반이의 휴대전화 벨이 울려 얼른 받았다.
"반이입니다."
"나, 석혼데 교차로 쪽으로 다가가거든 지금 어느 쪽에 있나요?"
"제가 손 흔들고 있는 거 보이나요?"
반이는 손을 높이 치켜들어 석호에게 자신의 위치를 알렸다. 석호는 반이의 모습을 알아보고 흥분한 목소리롤 말했다.
"아, 보여요. 신호가 떨어지면 그리로 갈게요."
"예."
석호는 교차로 신호등을 따라 승용차를 살살 몰고 반이 앞에 바짝 다가갔다. 반이는 앞 문을 열고 승용차를 얼른 타면서 석호에게 다정스레 인사말했다.
"안녕하세요?"
반이는 석호가 인사말에 대답하지 않자 무언가 암시하는 듯한 예감이 들었다. 그래서 석호의 표정을 살피고 궁금히 여겼다.
"왜 그러세요?"
"음, 우리 만나서 맘에 안 들면 없었던 일로 한 거 생각나나요?"
"예."
"미안하지만, 차에서 내려 줄래요?"
반이는 석호의 말이 얼른 납득이 가지 않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석호는 자신의 직설적 표현에 대해 반이에게 거듭 사과했다.
"미안해요. 그럼 잘 가요!"
반이는 승용차에서 내려 물끄러미 허공만 바라보았다. 석호는 승용차를 몰고 반이 곁을 스르르 빠져 나갔다.
신호등에 빨간 불이 들어오자 석호가 승용차를 정지선 앞에 멈추려고 하는 찰나에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석호는 신호등만 바라보고 의식적으로 휴대전화를 받았다.
"석호입니다."
"반인데요. 저에게 돈 주지 않아도 되니까 다시 돌아오세요."
"정말요?"
"예."
"오, 그래요."
석호가 한참 만에 승용차를 몰고 반이 앞에 돌아왔다. 반이는 승용차를 타자마자 대뜸 석호에게 사유를 물어 보았다.
"제가 어디가 맘에 안 드세요?"
"사람마다 이상이 달라 반이는 단지 내 맘에 들지 않은 거뿐이에요."
반이는 석호의 돌연한 대답에 적이 당황하고 앙칼진 목소리로 톡톡 쏘아붙이며 딱딱하게 대했다.
"듣기 거북하게 말씀 높이지 말고 편하게 대하세요."
"정말? 그래도 되니?"
"예, 일단 여기를 벗어나면 안 될까요?"
"오케이!"
석호는 교차로를 떠나 승용차를 살살 몰면서 반이의 눈치를 보았다. 반이는 말없이 창 밖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석호는 입가에 미소를 띠고 센스 있게 속내를 털어놓았다.
"내가 어떤 말 해도 화내지 않는다고 약속해 줄래?"
"뭔데요?"
"우선 예, 아니요 대답부터 해줘."
"알았어요. 화 안 낼게요."
반이는 석호의 제안을 선선하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석호의 마음이 선뜻 내키지 않아 잠시 뜸들이자 반이가 말을 빨리 하라고 몰아댔다.
"어유, 답답해! 제 맘 변하기 전에 얼른 말하세요."
"사실은 말야. 반이가 진짜 맘에 들어 배짱 한번 튕겨 봤어. 그리고 돈 주고 하룻밤 자는 게 싫었거든."
"으하하-. 하도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와요."
"지금 말만 잘하는데."
"저 여기서 내리게 차 좀 멈춰 줘요."
반이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가시더니 냉랭한 어투로 말했다. 석호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반이가 했던 약속을 되풀이했다.
"조금 전에 화 안 낸다고 했잖아."
석호와 반이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그러나 반이가 분을 삭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으으-. 이걸 어떻게 복수해야 하나?"
"킥킥-. 나 미워!"
"지금 저 놀리는 거에요?"
"아냐-! 반이가 마냥 좋기만 해서그래."
석호는 핸들을 놓고 손사레를 치며 부정의 뜻을 표했다. 반이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석호를 흘겨보며 땅이 꺼지게 한숨을 쉬었다.
"후유-!"
석호는 승용차를 편의점 앞에 멈추었다. 반이는 석호 뒤를 졸졸 따라가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 석호는 반이가 기대하는 것과는 다르게 우유 1팩을 달랑 들고 계산대 앞으로 걸어갔다. 반이는 석호가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에 과자를 등뒤에 감추었다. 석호가 계산대 위에 우유를 놓자 반이가 과자를 잽싸게 덧붙여 놓았다. 석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과자를 제자리에 갖다 놓으려고 하는데 아르바이트 학생이 말을 붙였다.
"아드님의 눈매가 아빠를 쏙 뺐어요."
"네?"
석호가 뜻밖의 말에 어리둥절하여 반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반이는 석호의 얼굴을 마주 보더니 멋쩍게 씩 웃어 보였다. 석호는 울며 겨자 먹기로 우유와 과자 값을 치렀다. 반이가 손에 비닐 봉투를 들고 편의점에서 나와 승용차를 타며 불만을 표시했다.
"체, 내가 어딜 봐서 아저씨를 닮았다고 하나?"
"너 그렇게 말하면 이 과자 도로 물린다."
석호는 반이의 말을 듣자마자 대뜸 엄포를 놓았다. 반이가 틀어진 마음을 돌리고 아양떨면서 자신의 과장된 표현에 진저리쳤다.
"알았어요. 우리 똑 닮았죠? 아빠!"
석호는 반이와 함께 승용차를 타고 편의점을 출발하지 않았다. 반이는 의아하게 생각하고 석호의 얼굴을 한번 힐끗 보더니 시선을 창문 쪽으로 옮겼다. 석호는 반이의 행동을 알아채고 다정히 불렀다.
"반이야!"
"왜요?"
"너도 건전한 아르바이트할 생각 없니?"
"제 생각은 이래요. 우주에서 하나 밖에 없는 자신의 몸뚱이를 팔아 살아가는 것도 동기가 순수하다고 봐요."
반이는 석호의 조언에 대해 즉각 반박하고 나섰다. 반이는 잠시 말을 멈추고 입을 앙다물더니 석호를 매서운 눈으로 노려보았다. 그러나 반이는 붉게 상기된 표정으로 열에 받쳐서 열변을 토했다.
"사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사람이 살다 보면 별별 일을 다 겪게 마련인데, 제 자신의 욕구를 채우고 돈을 번다는 걸 인정해요. 물론 서로 사랑하지 않은 성행위를 한다는 게 마음에 걸리지만 ‥‥, 저에게 돈 주고 하는 그런 사람은 본전을 뽑으려고 열정을 쏟아 성행위를 해요. 그리고 저는 격정에 사로잡혀 육체를 탐하는 것을 좋아해요."
반이가 지금의 솔직한 심정을 말하자 석호는 한동안 멍한 표정으로 말을 잃고 앉아 있었다. 반이는 붉으락푸르락 어찌할 바를 몰라 주의가 산만했다. 석호는 반이의 노여운 마음을 진정하려고 분위기에 걸맞지 않은 말을 했다.
"내가 우스운 얘기해 줄까?"
반이가 뽀로통한 얼굴로 대답하지 않았다. 석호는 반이가 대답을 하거나 말거나 우스갯소리를 시작했다.
"건망증 심한 택시 기사가 있었는데, 중년 여인이 택시를 타고 격식을 갖추어 목적지를 말했어. 기사님, 첫마을 아파트로 가 주세요. 택시 기사는 자동차를 거칠게 몰다가 교차로 신호등에 빨간 불이 들어오자 정지선 앞에 멈추었거든. 근데 눈을 들어 리어 미러를 보니 중년 여인이 뒤 좌석에 앉아 있는 거야. 그래서 택시 기사는 중년 여인에게 목적지를 점잖게 물어 보았어. 손님, 어디로 모실까요? 그랬더니 중년 여인이 깜짝 놀라며 이렇게 말했어.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어디 간다고 말 안하고 있었네."
"킥킥-."
반이가 웃음을 참다못해 입을 다문 상태에서 코로 터져나왔다. 석호는 한시름 놓고 반이의 기분 상태를 물었다.
"이제 기분이 좋아졌니?"
"아직요."
"그럼 기분 전환할 겸 드라이브나 할까?"
"아뇨. 그냥 모텔로 가요."
석호와 반이는 부자처럼 스스럼없이 모텔에 들었다. 그리고 2사람은 옷을 입은 채 침대에 반듯이 드러누워 멀뚱멀뚱 천장을 바라보았다. 석호가 모로 누워 다정하게 반이의 배에 손을 얹었다. 반이는 냉담한 반응을 보이며 손을 밀쳤다.
"그냥 잠만 잘래요."
"우리 한번 하자고 만났는데 그러면 정말 섭섭하잖아."
"저하고 정 하고 싶으면 돈을 주세요."
반이는 자신의 처지를 앞세워 정정당당한 태도로 석호에게 돈을 요구했다. 석호에게 돈을 받지 않는다고 하더니 반이의 태도가 싹 돌변했다.
"에라, 잠이나 자자."
석호가 성행위를 멈추고 돌아눕자 반이는 별안간 성적 충동이 일었다. 반이의 성기가 팽팽하게 발기하여 주체할 수가 없는 지경이 됐다. 그래서 석호의 완강한 태도를 의아하게 생각했다.
"아니 왜 아저씨가 배짱을 튕기죠?"
"왜냐하면 난 반이를 무지무지 좋아하니까."
반이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석호의 말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궁금히 여겼다.
"절 좋아하면 꼭 그래야 하나요?"
"응, 반이에게 돈 주고 그걸 하기가 진짜로 아깝거든."
"으하하-. 아저씨 단수가 보통이 아니다. 좋아요! 누가 이기나 어디 한번 해 봐요."
석호가 윗몸을 일으켜 세우고 반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석호는 무슨 말을 할 듯 머뭇머뭇하다가 그만 입을 다물어 버렸다. 반이는 석호가 과감하게 말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것을 알아채고 그에 대비해 말하라고 재촉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해 보세요."
"반이야!"
석호는 잠시 뜸들이다가 반이를 나직이 불렀다. 반이는 석호에게 나긋나긋한 태도로 웃으며 대답했다.
"예. 왜요?"
"나 사실은 치원이 아빠야."
"네?"
반이는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의외의 상황에 말문이 막혀 할말을 잊었다. 석호와 반이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흐르더니 반이가 의구심을 가졌다.
"근데 절 왜 만났어요?"
"아까 반이를 첨 만났을 때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아 집으로 돌아가던 참이었는데 전화하는 바람에 맘을 다잡아 돌아왔어."
석호는 잠시 말을 끊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 방 안에 무거운 정적이 흐르고 있다가 석호의 목소리가 다시 공간에 울렸다.
"언젠가 몸이 아파 일찍 퇴근하는 길에 행길에서 우연히 아들을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는데 이 녀석이 지 아비에게 한 번도 눈을 주지 않고 앞에 가는 두 남자를 따라가더라. 그래서 나도 아들 뒤를 밟아 보았는데 바로 그 때 두 남자가 모텔 안으로 들어가는 광경을 지켜보던 아들이 나와 시선이 마주쳤어. 그 녀석의 낙심한 표정을 보는 순간 두 남자 중에 한 남자를 좋아하고 있다는 걸 난 직감으로 알았어. 내가 보기엔 그게 반이였어. 아무튼 반이 덕분에 동성애에 대해 좋은 경험했고, 또 내 아들의 진실을 반이에게 얘기하고 나니 마음이 홀가분하다."
"아저씨 맘 편하자고 꼭 그래야만 하나요?"
반이는 당차고 다기진 청년답게 말에 가시가 돋쳤다. 석호는 일이 잘못된 것을 갑자기 깨닫고 구구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아빠라는 사람이 오죽하면 반이를 찾아와서 이런 말을 했을까?"
반이의 귀에 벽시계의 초침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 왔다. 그리고 반이는 드디어 무거운 침묵을 깨고 그 일에 관해 입을 열었다.
"치원이 만나러 먼저 나가 볼게요."
"그래, 고맙다! 참, 과자와 우유 가지고 가라."
"예."
반이는 손에 비닐 봉투를 들고 복도에 나가며 석호에게 꾸벅 인사했다. 석호는 손을 들어 답례하고, 반이를 다정스레 불렀다.
"반이야!"
"예."
"우리 아들보다 반이가 더 잘생겼다."
반이는 석호를 보더니 소리 없이 빙그레 미소지었다. 석호는 반이의 처지도 아랑곳없이 자기 뜻대로 밀고 나간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석호는 반이가 현명한 판단으로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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