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라 황석호 -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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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모든 시선이 나에게 꽂혔다. 영오가 굳이 손으로 가리키지 않아도 젊은이들 사이에 아저씨는 나밖에 없었으므로 눈에 확 띄었다. 영오뿐만 아니라 객석에서도 내가 무대로 나갈 것을 종용했다. 피할 수가 없었다. 나는 마지못해 일어나 무대로 나갔다. 영오가 나를 소개했다.
“사진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아직 잘생기셨죠? 석호 플라이에서 베이스를 쳤던 이영기 선배님입니다.”
객석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나는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이영기 선배님이 밴드하실 때 노래도 부르셨거든요. 오늘 이렇게 오신 김에 옛날처럼 노래 시킬 건데 어떠세요?”
박수가 터져 나왔다. 내 이름 이영기가 연호되었다. 거의 30년 만이었다.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하지만 아무런 연습도 없이 노래를 할 수는 없었다.
“연습도 안 하고 어떻게 해. 서로 맞춰보지도 않았는데....”
영오는 마이크를 내려놓고 나에게 말했다.
“늘 하시던 거 하세요. 미리 준비해 뒀어요. 원곡대로 연주할 거니까 그냥 하셔도 돼요. 잘하시잖아요. 베이스 연주 안 하고 노래만 해보세요. 그러고 싶으셨을 텐데....”
영오가 제안한 노래는 나에게 너무나 익숙한 곡이었다. 하나는 석호에게 유작 앨범이 되어 버린 3집 앨범에 실린 곡이었고, 다른 하나는 넥스트의 노래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노래를 불렀다.
석호가 만든 노래는 노래방에도 없어서 앨범 녹음 이후로 한 번도 불러본 적이 없지만 녹음 당시 워낙 많이 불러서 별 어려움 없이 노래가 나왔다. 내가 연습을 할 때 영오도 그 자리에 있었다. 작은 손으로 박수를 치는 영오에게 석호가 했던 말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아빠가 영혼을 갈아 넣고 만든 노래야.”
석호의 영혼을 느끼며 노래를 하고 한숨 돌리려 하는데, 영오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읊조리기 시작했다.
“육교 위의 네모난 상자 속에서 처음 나와 만난 노란 병아리 얄리는 처음처럼 다시 조그만 상자 속으로 들어가 우리집 앞뜰에 묻혔다. 나는 어린 내 눈에 처음 죽음을 보았던 1974년의 봄을 아직 기억한다.”
석호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였다.
내가 어릴 때 국민학교 교문 앞에서 가끔 상자를 앞에 놓고 병아리를 팔았다. 한 마리에 10원이었다. 쌀이 없어서 라면을 끓여먹어야 하는 처지였던 나는 돈 10원이 없어 그것을 살 수가 없었다. 아니 있었더라도 엄마의 잔소리를 감당하지 못해 살 엄두를 못 냈을 터였다. 나는 그저 작고 예쁜 노란 병아리들을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있는 집 자식이었던 석호는 아무 부담 없이 노란 병아리를 샀다고 했다. 종종거리며 방 안을 돌아다니는 노란 병아리가 장난감이었다고, 친구들과 함께 병아리들을 싸움도 시켰고, 며칠 가지고 놀다가 싫증이 나서 내팽개친 후, 오래 살지 못했을 것이 뻔한 병아리가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며 노래를 듣다가 울었다.
“씨.발.... 어렸으니까 철이 없었다고 퉁치기에도 나는 너무나 나쁜놈이야. 해철이 형은 안 그랬는데.... 곱게 묻어주고 이렇게 삶과 죽음에 대한 노래까지 만들었는데.... 나는 해철이 형을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어....”
가사가 주는 울림에 천착했던 석호다운 감성이었다. 가사를 쓰다가 잘 안 풀릴 때면 석호는 통기타를 잡고 조심스레 줄을 퉁기며 이 노래를 불렀다.
그랬던 석호가 조그만 유골함에 들어가 추모공원에 안치되었다. 그렇게나 날고 싶었던 석호가 제대로 날갯짓도 하기 전에 육신을 이 세상에 재로 남겨놓고 영혼만 하늘을 날고 있었다.
N.EX.T – 날아라 병아리
내 영혼과 소망을 담아 노래를 불렀다. 간주가 흐르는 동안 마음속으로 외쳤다.
‘날아라 황석호.... 그렇게 날고 있다가 내가 너에게 손짓을 하면 내 손을 잡아줘. 나도 너랑 같이 날 수 있게....’
석호 생각에 울컥 치미는 것이 있었으나 아픔 없는 곳에서 노란 병아리 얄리와 함께 날고 있을 석호와 신해철을 생각하며 억지로 참고 노래를 끝까지 불렀다.
무대에서 내 몫을 다 하고 객석 앞자리에 앉아 영오가 이끄는 밴드의 공연을 지켜봤다. 영오의 자작곡도 공연에 포함되어 있었다. 공연이 끝나고 밴드 멤버들과 함께 뒤풀이 겸해서 저녁을 먹었다. 2차로 간단히 맥주를 마시는 것으로 공연 뒤풀이가 끝이 났다.
나는 영오와 더 있고 싶었다. 영오의 표정도 그렇게 보였다. 나도 그렇지만 영오도 그다지 술을 좋아하는 편이 아닌 듯 술집에 가자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아저씨, 제가 사는 데 가실래요?”
“어딘데?”
“근처 원룸이에요. 혼자 살아요.”
앞장서서 걷는 영오를 따라 나도 발걸음을 옮겼다. 방이 그다지 크지는 않아도 필요한 것은 모두 갖추고 있었다. 책상 겸 식탁으로 쓰는 테이블에 앉아 담배를 피웠다. 영오에게 묻고 싶은 것도, 듣고 싶은 것도 많았다. 하지만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영오가 먼저 나에게 물었다.
“아저씨, 오늘 좀 놀라셨죠?”
“응. 갑자기 이름 부르고 노래를 시켜가지고....”
“그러고 싶었어요.... 아주 옛날부터.... 제 목표가 이 학교 들어가서 밴드 하는 거였거든요.”
나는 그냥 웃었다.
“제가 생각해도 좀 웃겨요.... 근데 오늘 정말 좋았어요. 아저씨가 제대로 노래하는 것도 보고....”
“근데 너 무슨 과야?”
“이번에는 웃지 마세요.... 토목이요.”
웃지 않으려고 해도 안 웃을 수가 없었다. 영오는 석호와 모든 것이 똑같았다.
“웃어서 미안. 근데 너도 내가 웃을 거 알고 있었잖아.... 근데 지금도 여학생이 없니? 아빠가 다닐 때는 한 명도 없었는데....”
“몇 명 있어요. 한손으로 꼽을 정도지만요.”
“다행이네. 학교 다닐 때 우리가 석호 많이 놀렸거든. 여학생도 없는 과에 무슨 낙으로 다니냐고. 철우랑 민구가 나 엄청 부러워했는데.... 내가 다니던 과는 남학생을 한손으로 꼽았으니까.... 오랜만에 학교 오니까 옛날 생각 많이 나네.... 재밌었는데....”
영오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가 뜬금없는 말을 던졌다.
“아저씨, 오늘 주무시고 가세요. 내일 여기서 바로 출근해도 되잖아요.”
“요즘 나 출근 안 해.... 휴직했거든. 20년 넘게 일하다 보니까 몇 달 쉬고 싶어서.... 몇 달 쉰다고 굶어죽는 건 아니니까....”
“그럼 잘됐네요. 주무시고 가세요.”
나는 침대를 슬쩍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싱글 침대는 영오 혼자 누워서 자기에도 작아 보였다.
“나 불편한 거 싫어. 내 집 놔두고 왜 여기서 자. 너도 불편하고 나도 불편한데.... 싱글 침대에서 둘이 잘 수는 없고, 한 사람은 바닥에 자야 하는데....”
“제가 바닥에서 잘게요.”
“그래도 니가 사는 덴데 그래서 되나.... 그냥 너 편하게 자.... 근데 언제부터 기타 친 거야? 아빠만큼 잘 치는 거 같던데.”
“아빠가 연습실에 저 데려다 놓고 있었으니까 저절로 그렇게 됐어요. 아빠가 테일러 베이비 기타를 초등학교 입학 선물로 줬어요. 할아버지 가게에 있는 거 갖다 준 거긴 하지만....”
“연습은 어디서 했는데?”
“할아버지가 기타 못 치게 해서 강가에 나가서도 치고, 고등학교에 밴드실이 있어서 거기서 했어요. 아빠도 아마 거기서 했을 거에요.”
“할아버지가 왜?”
“전에도 말씀 드렸듯이 할아버지가 저 보면 아빠 생각난다고.... 제가 기타 치는 거 되게 싫어했어요. 돌잔치 비디오 보니까 제가 기타 잡았을 때 엄청 좋아해 놓고는.... 고모도 할아버지 고집 이길 수가 없으니까 기타 못 치게 했거든요. 그래서 집 나온 거에요.”
“그럼 지금 이 집은....”
“아빠 보험금이요. 고모가 맡아뒀다가 수능 끝나면 준다고 그랬었거든요. 그걸로 학교 졸업할 때까지 먹고 살 거에요. 졸업하면 취직해서 먹고 살면 될 거고....”
“밴드는....”
“아빠처럼 살지는 않을 거에요. 자격증 따서 공무원 시험 칠 거에요. 아저씨 보니까 완전 좋던데.... 토목직 공무원은 경쟁률도 낮아요. 전공이니까 유리한 점도 있을 테구요.... 밴드는.... 아저씨처럼 취미 밴드나 하죠 뭐.”
묻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것저것을 묻고 영오에게 대답도 들었다. 나름 계획이 다 있어서 안심이 되었다. 고딩 스쿨 밴드를 하면서도 알아서 공부를 했으니 공무원 시험도 무난히 통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영오보다 오히려 내 앞가림이 문제였다.
“난 이만 갈게. 그리고 너, 연락도 한 번 안 하고.... 섭섭하드라.”
“아저씨도 안 하셨잖아요. 공연 보러 오라고 제가 먼저 연락한 건데,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저도 섭섭하네요.”
“아우~ 지 아빠 꼭 닮아서 한 마디도 안 지고 지 맘대로야. 하하하하.... 그래, 암튼 가끔 놀러와. 내년 1월 2일에 복직이니까 올해는 시간 진짜 많아.”
“아저씨, 지하철 타고 오셨죠?”
“응.”
“혹시.... 차 파셨어요?”
“아니. 그대로 있어. 나 이제 운전 잘 해. 얼마 전까지 전국을 차 타고 돌아다녔거든. 너 방학하면 한 번 놀러가자.”
영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자고 가라는 것을 뿌리치고 가는 내 마음도 조금 편해졌다.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내게 영오가 작은 상자 하나를 건넸다.
“아빠 유품인데요.... 저보다는 아저씨가 갖고 있는 게 더 어울릴 거 같아서요.”
“뭐야?”
“집에 가서 보세요. 이제 자주 연락드릴게요.”
집에 돌아와 상자를 열었다. 상자 안에는 노트가 몇 권 들어 있었다. 그 중에 한 권은 낯이 익은 것이었다. 내가 일기를 쓰는 걸 보고 석호가 뭐냐고 묻던 그 다음날 내가 석호에게 선물한 것이었다. 별 생각 없이 일기 쓰는 것을 권했는데, 석호는 내 제안을 받아들인 것 같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내가 선물했던 노트의 첫 장을 펼쳤다.
1990년 11월 16일 금요일
영기에게 받은 노트를 이제야 펼쳐 들었다. 아마 자기처럼 내가 일기를 쓰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겠지만 얼굴 표정에서 공대생이 쓰겠냐는 표정이 읽혔다. 그래서 진짜 쓰려고 한다. 근데 뭘 쓰지?
1990년 11월 19일 월요일
오늘 영기가 베이스 연습하는 것을 가만히 지켜봤다. 그 지겨운 피킹 연습을 정말 잘 쉬지도 않고 기숙사 통금 시간까지 했다. 씨.발 진짜 독한 새끼다. 언제 나가떨어질까 불안불안 했는데, 끝까지 계속 할 것 같다. 씨.발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진짜 잘생겼다. 오늘 한참 보고 있으니까 무슨 조각상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
1990년 11월 21일 수요일
영기한테 지겹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전혀 그렇지 않다고 했다. 독한 새끼.... 초콜렛을 영기 몰래 뜯어 먹고 있었는데, 오늘 딱 들켰다. 자기 때문에 붙는 거 뻔히 알면서 초콜렛을 먹는 꼴을 못 봤다. 한 번 들켰으니까 이제 대놓고 뜯어 먹어도 될까? 씨.발년들, 허쉬 말고 다른 것도 좀 붙여주지. 가나가 더 맛있는데.
1990년 11월 24일 토요일
영기는 토요일에도 하루 종일 틀어박혀서 연습만 했다. 내가 밥 먹으러 가자는 말을 안 했으면 밥도 안 먹고 했을 거다. 날씬하고 잘생기면 뭐든 잘하는 건가....
1990년 12월 3일 월요일
오늘 민구를 만나서 밴드 안 할 거냐고 했더니 영기 때문에 동아리방에 가기 싫다고 했다. 기생오라비 같은 새끼가 여자들한테 끼부리는 게 존.나 싫다고 씨부려댔다. 공연 끝난 지가 두 달이 되어 가는데 아직 앙금이 남아 있는 거 같아 질투하지 말라고 존.나 욕을 했더니 철우를 들먹거리면서 자기랑 똑같은 생각이라고 했다. 군대 갔다 오면 영기가 나가 떨어져 있을 테니까 그때 새 멤버 구해서 제대로 하자며 내 어깨를 토닥였다.
씨.발 미친 또.라이새끼.... 민구는 영기를 몰라도 한참을 모른다. 나가떨어지지도 않겠지만 혹시나 그렇다고 해도 내가 가만 내버려두지 않을 거다.
1990년 12월 21일 금요일
영기가 동아리방에 안 온 지 벌써 일주일이다. 시험 끝나고 고향에 내려간 것 같다. 여름방학 때는 안 내려가더니.... 씨.발새끼 내려갈 거면 내려간다고 말이라도 하고 가지. 씨.발 조ㅈ같은 새끼.... 크리스마스 이브날 같이 공연 보러 가려고 했는데.... 당장 내려가서 머리끄댕이 잡고 질질 끌고 오고 싶은데 집은커녕 전화번호도 모른다. 씨.발 내 맘대로 못하니까 존.나 짜증난다.
1991년 1월 7일 월요일
기계처럼 동아리방에 와서 기타를 치는데 재미가 하나도 없다. 기타 치는 게 재미가 없다는 걸 오늘 처음 알았다. 씨.발 이영기 때문이다. 내가 기타 치는 거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영기가 있어야 재미가 나는데....
아직 개학하려면 두 달이나 남았는데 벌써부터 보고 싶다. 뭐하고 지낼까? 베이스 연습은 하고 있는 건가? 방학 동안 연습 안 해서 진짜 나가떨어지면 어떡하지? 씨.발 전화라도 오면 당장이라도 내려갈 텐데 전화번호를 가르쳐 준 적이 없다. 늘 동아리방에서 사는 새끼니까....
씨.발 하루가 존.나 길다.
1991년 1월 14일 월요일
1년이 지난 것 같은데 겨우 일주일이 지났다. 씨.발 시간이 안 가도 너무 안 간다. 이게 다 이영기 때문이다.
1991년 1월 28일 월요일
씨.발 무슨 일기가 이영기 얘기밖에 없다. 그럴 수밖에 없지. 영기 생각만 하니까....
이영기 이영기 이영기 이영기 이영기 이영기 이영기 이영기 이영기
계속 이름을 쓰다보니까 영기를 처음 볼 때가 떠오른다. 영기는 내가 자기를 동아리방에 불쏙 찾아왔을 때 처음 본 것으로 알지만 그렇지 않다는 걸 알면 얼마나 놀랄까. 영기가 일기 쓸 때 이야기 만들 듯이 쓰라고 했으니까 진짜 그렇게 해 볼까.
내가 영기를 처음 본 건 4월이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던 날. 1교시 수업에 늦어서 뛰어가는데 저 멀리 빛나는 것이 있었다. 가까이 갔을 때 그것이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영기였다. 그때 영기는 벚나무 아래에서 밝은 미소를 지으며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있었다. 사람이 잘생기면 빛이 난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4월의 따스한 햇살은 영기를 더욱 빛나게 만들었다. 꽃잎이 바람에 흩날리며 떨어지다 영기의 속눈썹에 내려앉았다. 그만큼 속눈썹이 길어서 더욱 잘생겨 보였다. 오똑한 콧날에 핑크빛의 작은 입술이 너무 매력적이었다. 사람이 저렇게 잘생길 수도 있구나 하는 것도 처음 알았다.
영기를 다시 본 것은 한 달 뒤 축제 공연에서였다. 어두운 하늘 밑에 반짝이는 것이 있어서 내 시선이 저절로 그쪽으로 향했다. 영기였다. 그때는 이름도 몰랐을 때니 그냥 꽃비를 맞던 그 잘생긴 애라고 생각했다. 멀리서도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온몸이 짜릿해졌다. 나는 비와 당신의 이야기 마지막 부분을 더욱 간절하고 애절하게 불렀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저 같은 학교를 다니면서 우연히 마주친 것이라고 생각했다. 영기가 불쑥 동아리방에 찾아왔을 때 나는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빛나는 얼굴이 너무 눈이 부셔 나는 얼른 시선을 피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내 심장소리가 들릴까봐 걱정이 될 정도였다. 말 많은 민구가 영기를 상대하는 동안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애를 먹었다.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리고 영기를 흘낏 바라봤다. 밴드에 들어오고 싶다는 영기의 말에 내 귀를 의심했다. 어떻게 해서든 받고 싶었다. 그런데 명분이 없었다. 피아노를 쳤다는 말에 이거다 싶었는데, 바이엘 소리가 나오자마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너무 미안했다.
민구가 좋은 말로 거절을 할 때까지 나는 명분을 생각했으나 떠오르지 않았다. 무턱대고 배짱 좋게 찾아왔으면 끝까지 물고 늘어질 것이지 바로 체념하고 떠나려는 영기를 어떻게든 붙잡아야 했다. 돌아서는 영기에게 급한 마음에 냅다 노래 잘하냐고 물었다. 민구가 말리는 것을 무시하고 노래를 시켰는데 목소리가 트여 있었다. 내지르는 소리는 한 마디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다행히 영기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내 억지를 민구와 철우도 받아들였다.
영기는 밴드에 들어온 동기도 너무나 순수하고 진지했다. 그 열정이 느껴져서 내가 고집을 부린 것도 무마가 되었다. 여자만 밝히는 다른 놈들과는 달라 보여서 더욱 마음에 들었다.
여름방학 때 학교에서 노가다를 하는 것을 알고 매일 영기가 일을 마치고 샤워를 하러 갈 때마다 몰래 따라가서 샤워하는 것을 훔쳐봤다. 얼굴도 잘생겼는데, 몸도 쭉 빠진 것이 예술이었다. 꼬추가 작은 것이 좀 흠이었다. 포경수술을 하지 않은 꼬추가 음모에 묻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너무 귀여웠다.
어떻게든 영기를 밴드에 잡아 두기 위해서는 뭔가를 가르쳐야 했는데 쉽지가 않았다. 기타를 가르쳐서 기타 두 개의 시스템으로 가려고 해도 기타 욕심을 내는 철우 때문에 그러지를 못했다. 철우에게 키보드를 가르치라고 했다. 영기가 키보드에 익숙해지면 철우와 함께 기타를 치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내 마음도 모르고 철우가 화를 냈다. 민구도 마찬가지였다.
내 고민을 영기가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베이스에 관심을 보였다. 나는 당장 가르치기 시작했다. 정교가 멋지다는 말에 울컥 치밀어 올랐으나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영기는 악기를 하는 사람의 자세가 되어 있었다. 조급하게 서두르지도 않았고, 안 되는 것은 될 때까지 무한 반복해서 연습을 했다. 받아들이는 것도 빨라서 한두 달 만에 초보 스쿨 밴드에서 쉬운 곡 정도는 할 수 있을 만큼 늘었다. 뿌듯하고 흐뭇했다. 영기와 함께 무대 위에서 연주하며 노래하고 싶었다. 그러다 문득 그렇게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정교를 재끼면 되는 일이었다. 안 그래도 한 살 많고 의대 다닌답시고 깝치는 게 마음에 안 들고, 합주 때마다 늦게 오는 것도 짜증이 났는데 잘 됐다 싶었다. 정교에게 계속 시비를 걸었다. 늦게 오는 날에는 대놓고 화를 냈다. 겨우 한 살 많은 걸로 거들먹거렸으니 그걸 자극해서 내가 제일 잘하는 욕으로 몰아붙였다. 결국 내 예상이 맞아 떨어져서 정교가 밴드에서 나가고, 내가 박박 우겨서 영기를 밀어 넣었다.
사는 게 행복하고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아버지한테도 잘생긴 애가 새로 들어왔다고 자랑을 했다. 집에서도 기타를 놓지 않는 나에게 아버지가 얼굴 한 번 보자고 데리고 오라고 했다. 무턱대고 아버지한테 데리고 갈 수가 없어서 눈치를 보고 있는데, 영기가 베이스를 사겠다고 해서 냉큼 데리고 갔다. 노가다 하면서 학비를 버는 애니까 베이스 하나만 달라고 해서 아버지에게도 허락을 받아냈다. 내가 하려는 것을 모두 밀어주는 아버지가 너무 고마웠다. 영기에게 내가 치는 기타와 같은 베이스를 선물하고 싶어 일부러 소리를 들려줬다. 영기도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아 다행이었다. 영기가 더욱 좋은 것은 나랑 음악 취향도 같이 때문이다. 영기도 해철이 형 노래를 엄청 좋아했다.
잘생긴 영기만 보면 자지가 꿈틀댔다. 자지 얘기만 나오면 학을 떼는 영기에게 너무 부끄럽고 미안했다. 내가 남자, 특히 영기처럼 잘생긴 남자에게 끌린다는 것을 알면 나를 다시는 보지 않을 것 같아 조심을 한다고 하지만 몸의 반응은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내가 짐승 같아서 너무 싫다.
가을 축제 공연 때도 그랬다. 여학생들이 영기를 보고 환호성을 지르는 것까지는 당연하니까 이해했는데, 영기가 그 환호에 반응하는 것을 보고 질투가 났다. 질투라기보다는 짜증이었다. 나는 영기를 좋아하면서도 그걸 숨기느라 고생인데, 여학생들은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부럽기도 하고, 영기가 또 그걸 즐기는 것 같아서 부아가 치밀었다. 영기를 나만 바라보게 하고 싶은데, 내 옆에만 있게 하고 싶은데 그러지를 못해서였다. 동아리방까지 따라오는 년들을 확 죽여 버리고 싶었다. 저 년들 중에서 영기가 하나를 골라 같이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연애를 하고.... 나랑은 절대로 할 수 없는 섹스를 할 거라는 생각에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이 세상에 여자는 다 죽여 버리고 남자들만 남겨 놓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래야 영기가 나를 바라볼 테니까....
이영기 이영기 이영기 이영기 이영기 이영기 이영기 이영기 이영기 이영기 이영기
보고 싶어 죽겠다. 처음에는 그냥 잘생긴 영기를 보고 내가 본능적으로 끌리는 것으로 생각했다. 옛날에 민철이 형한테 끌렸던 것처럼. 영기가 민철이 형처럼 잘생겨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근데 그게 아닌 것 같다. 민철이 형은 그냥 딸딸이 칠 때만 떠올랐는데, 영기는 그게 아니다. 늘 떠오른다. 머릿속에 온통 영기 생각뿐이다. 안 보면 멀어진다고 하는 말은 틀린 말이다. 안 보니까, 못 보니까 더 떠오른다. 보고 싶어 미칠 것 같다.
이런 게 사랑인 건가....
1991년 2월 8일 금요일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국문과 사무실로 찾아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자책을 했었다. 학과사무실에서 영기의 전화번호를 알아내면 되는 일이었다. 조교에게 이런저런 사정을 둘러대고 전화번호를 알아낸 것까지도 좋았다.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공중전화기에 동전을 잔뜩 집어넣고, 영기 고향 지역번호와 함께 번호를 눌렀다. 신호가 가자마자 떨리는 마음으로 무슨 말부터 할까 고민을 했는데, 내 노력과 고민은 아무 쓸모가 없었다. 내가 친구 황석호라고 먼저 말한 뒤 영기를 바꿔 달라고 했을 때 그런 사람 없다고, 어디에 전화를 했냐고 그쪽에서 도리어 물었다. 나는 영기네 집에 전화를 했으니 영기네 집이 아니냐고 물었는데, 전화를 받는 사람이 집이 아니라 사무실이라고 했다. 나는 번호를 다시 한 번 확인해서 물었다. 번호는 맞는데 아니라고 했다.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혹시나 내가 전화번호를 잘못 적은 것이 아닌가 싶어 학과사무실에 가서 다시 확인했다. 맞았다. 내가 제대로 적은 것이었다. 조교도 뭔가 이상한 것을 느꼈는지 나에게 건네줬던 학생명부를 확인하더니 나에게 말했다. 학교 번호라고, 끝자리만 다르다고 했다.
나는 다시 공중전화에서 내가 적은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지역번호는 빼고. 학교 기숙사 관리실이었다. 허탈했다.
씨.발 씨.발 씨.발 씨.발 씨.발 이영기 이영기 이영기 이영기 이영기 이영기 씨.발 씨.발 씨.발
보고 싶어 죽겠다. 나는 정말 이영기 때문에 제명에 못 죽을 것 같다.
1991년 2월 21일 목요일
영기가 왔다. 처음에는 아닌 줄 알았다. 담배를 피우고 있어서였다. 그런데 내 눈에 빛이 나는 모습이 보였으니 영기가 확실했다.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영기에게 달려가 끌어안았다. 너무 반갑고 좋기만 했다. 영기 자취방까지 알아냈으니 확실하게 붙들어 매어 놓을 것이다.
씨.발 이영기. 넌 내 꺼야.
-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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