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여우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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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전에 혜원이 할머님에게서 전화 왔었다.”

 

집으로 돌아와 막 옷을 갈아입은 재훈의 방에 그의 어머니가 들어오셨다. 그리고 그의 앞에서 팔짱을 끼시고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너희 둘이 이야기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혜원이에게 물어도 별 대답이 없는 것이 지지부진하다고 도대체 어떻게 할 것인지 답 좀 달라고 하시더라.”

여전히 대답없이 재훈은 책상위에 놓여있는 노트북을 켜고 그의 어머니의 시선을 무시한 채 의자를 끌어다가 앉았다. 그리고 그런 그를 그의 어머니가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혼사준비 같이 시작하자고 말씀 드리려다가 늬 아버지가 그래도 네 대답이라도 듣고 일을 벌이자고 하시길래 너 오기를 기다린거야.”

그의 말에 그제서야 그가 고개를 돌려 그의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 혜원이와 결혼하지 않아요. 어머니.”

?”

그런 그의 말에 눈을 똥그랗게 뜨고 입을 벌린채로 그녀가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내가, 기가 막혀서 정말...”

그렇게 말하고 나서 여전히 자신을 외면하고 노트북의 화면만 응시하고 있는 그의 옆모습을 노려보던 그녀가 손을 들어 노트북의 화면을 닫아버렸다.

어머니!”

놀란 표정으로 그가 자신의 옆에 서 있던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도대체, ?”

그녀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혹시 그놈 때문이냐? 아직도 만나고 다니는거야?”

 

그런 그녀를 올려다보던 그가 고개를 돌리고 화면이 닫힌 노트북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머니 때문이라는 말이 튀어나올 뻔 한 것을 그는 간신히 참고 있었다.

낮은 한숨을 내쉬면서 순간적인 감정을 그가 가라앉혔다.

어머니, 너무 숨막혀요.”

가능한 침착한 목소리로 그가 말을 이었다.

, 집을 나가서 독립하겠어요.”

역시!” 그의 말에 그녀의 입에서 반사적으로 큰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그 놈이 문제였구나!”

그녀의 말에 그가 시선을 그녀에게 돌렸다.

내 눈에 안보이는데서 아예 대놓고 만나려고 하는거지?”

아니예요.”

자신도 모르게 커지는 목소리를 간신히 그가 억누르고 있었다.

헤어진지 오래예요.”

!”

그의 대답에 그녀가 콧방귀를 끼었다.

거짓말 마. 내가 모를 줄 아니?” 그를 노려보면서 냉소적인 말투로 그녀가 말을 이었다.

며칠전에 그 놈하고 종로 술집에서 만난거 내가 모를 줄 알아?”

어머니!”

그녀의 말에 그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제 뒷조사까지 하고 다니신거예요?”

네가 오죽이나 못미더웠으면!”

흥분으로 붉어진 얼굴로 그녀가 그를 노려보았다.

내가 그렇게까지 했겠니!”

 

그런 그녀의 말에 그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고 고개를 돌린 후, 큰 한숨을 쉬었다.

그런 놈들하고 어울리지 마라.”

그녀의 입술은 여전히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절대로 네 인생에 도움되지 않을 놈들이야.”

 

하준이는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돌려 그런 그의 어머니를 빤히 바라보며 그가 입을 열었다.

하준이도 게이예요. 어머니. 어머니도 진작에 눈치채고 계셨던거 아니었어요?”

그의 말에 그녀의 표정이 백짓장처럼 하얗게 변했다.

전에 어머니가 하준이를 저녁식사에 초대해서 하준이가 집에 와서 내 방에 있었을 때, 어머니가 커피가지고 오셨을 때, 그때 어머니 눈치 채신거 아니었어요? 사타구니를 베게로 가리고 있는 하준이를 보고 눈치 빠른 어머니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알고 계신거였잖아요. 아니예요?”

“.......”

그런데도 아직까지 아무 말씀 없으셨던 것은 그 녀석은 이용가치가 많이 있으니 입 다물고 가만히 계시는 거잖아요.”

“.......”

기대하세요. 어머니. 다음번에 그 녀석이 우리집에 다시 오면 그때는 또 어떤 장면을 목격하시게 될지 모르니까요.”

 

양 볼에 경련을 일으키고 있던 그녀가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손을 들어 그의 뺨을 갈겼다.

 

굳은표정으로 그가 입을 꽉 다물고 눈을 감았다. 그녀의 손바닥이 닿았던 그의 볼이 붉은 빛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두 주먹을 꽉 쥐고 그를 노려보던 그녀가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의 방 밖으로 나가버렸다.

 

 

 

 

책상의 모서리에 기대어서 그 옆에 있는 열린 창문을 통해서 한참을 그는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밤중의 선선한 바람이 창문을 통해서 들어와 그의 이마를 가리고 있는 앞머리카락을 마치 쓰다듬듯 스쳐 지나갔다. 창밖에 서 있는 키가 큰 나무의 무성한 이파리들이 마치 그에게 괜찮다는 듯이 속삭이는 듯, 산들바람에 사각거리는 소리를 냈다.

 

깨닫지 못하던 그의 주변의 작은 존재들이 그의 감정을 가라앉혀주고 있었다.

 

가만히 그렇게 초점없이 창밖을 바라보던 그가 고개를 돌리고 왼손을 내밀어 책상위에 놓여있는 그의 휴대폰을 손에 쥐었다.

 

여보세요.”

일찍 잠자리에 들었던 듯, 몇 번 신호가 간 후에야 그녀의 잠에취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한테 말씀드렸어.”

오른손 검지손가락 끝으로 그가 닫혀있는 자신의 노트북의 모서리를 무의식적으로 문지르고 있었다.

오빠의 말을 가만히 듣고만 계시진 않으셨을텐데....”

괜찮아.”

그가 고개를 돌려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주었다.

그냥 가능하면 내일 아버님 뵙고 말씀드리려고 그러는데....”

그럼...”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 중인 듯, 한순간 그녀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내일 오후에 나와 만나서 같이 아빠회사로 갈까?”

그것보다 차라리...”

말을 멈추고 그가 입술을 입안으로 당겨 슬쩍 물었다. 어두움 속에서도 그의 눈에서 빛이 났다.

퇴근하고 집으로 가자. 너희 할머니가 실세이신 듯 한데, 모두 계신곳에서 내가 말씀 드리는 편이 나을 것 같다.”

괜찮겠어?” 놀란 목소리로 그녀가 물었다.

우리 할머니 보통 분 아니야.”

알고있어.” 그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괜찮아.”

“.....”

괜찮아.” 마치 그녀에게가 아닌 자신에게 타이르는 듯, 그가 그렇게 낮은 목소리로 다독거렸다.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그는 가만히 누워있었다.

 

그가 하지 말았어야 하는 행동의 결과와 했어야만 하는 일을 하지 않은 댓가를 한꺼번에 치러야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어떻게든 그 자신이 책임을 지고 해결해야하는 일이었다. 더 이상의 회피는 그가 감당하기 힘든 더 큰 대가를 치러야한다는 것을 그는 깨닫고 있었다.

 

그렇게 그가 간신히 숨만 쉬고 마치 죽은 사람처럼 꼼짝 않고 있을 때 침대 옆의 탁자위에 놓여있던 휴대폰이 울렸다.

 

힘들게 손을 뻗어 그가 그것을 귀에 갖다 댔다.

여보세요.”
내가 자는 것 깨운 건 아니지?” 그의 귀에 손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야.”

아까 낮에 급한일이라고 너가 전화했었잖아.... 무슨일인가 하고..”

...” 할말을 찾지 못하고 그가 잠시 망설였다.

그거 그냥... 해결됐어.”

“......”

일을 보다가 네가 혹시 도와줄수 있나 하고 전화했던거거든...” 그렇게 그가 회사의 일로 둘러댔다.

너가 하는 일하고 연계된 것이라 전화했던 건데, 그냥 잘 마무리 됐어.”

그래? 다행이다.”

 

손하야.” 잠깐동안 침묵을 지키던 그가 다시 입을 열고 그를 불렀다.

?”

미안해.” 속에서 하고 뜨거운 감정이 솟아올라 자신도 몰래 재훈의 목소리가 떨렸다.

뭐가?” 여전히 따뜻한 그의 목소리가 재훈의 귀 안에서 퍼졌다.

내가 너에게 상처를 준 거.... 그거 다..”

 

그렇게 갑자기 그의 가슴속에서 끓어오른 감정에 그가 말을 잇지 못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가 몸을 돌려 베게에 얼굴을 묻었다.

아직까지... 너에게 상처를 준 것.. 정말 미안해.” 그가 이를 악물었다. 꼭 감은 그의 눈에서 눈물이 배어나와 베게를 적시기 시작했다.

내가 이기적이고 어리석어서 미안해.”

침대의 시트를 손아귀에 붙잡고 그가 힘껏 잡아당겼다. 어딘가에서 실밥이 풀린 듯, 뜯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 행동의 결과조차 책임져 주지 못해서 미안해.”

그가 양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감싸안았다.

 

 

 

형주변에 형이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있기는 한거냐?” 하준의 그 말이 그의 귓가에 다시 들려왔다.

혹시 손하에게 그런 짓을 한 것이 자신의 어머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그런 일을 시킨 것은 아닐까? 아마도?

한달 전 즈음에 종로에서 그가 손하를 만났던 것도 알고있는 어머니였다.

 

그럼 그것을 어머니는 어떻게 알고 있을까?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고 그가 어두운 방안을 뚫어지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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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span class="sv_wrap"> <a href="https://ivancity.com/bbs/profile.php?mb_id=formylife" data-toggle="dropdown" title="그리고함께 자기소개" target="_blank" rel="nofollow" onclick="return false;"> 그리고함께</a> <ul class="sv dropdown-menu" role="menu"> <li><a h님의 댓글

  • <spa…
  • 작성일
흥미롭다.
관계들의 묘한 신경전들
성적 쾌락을 충족하는 소설이 아니지만
게이의 삶을 진지하게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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