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라 황석호 -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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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클럽에서 공연을 하고 1년쯤 지났을 때였나, 연습실에서 멍하게 앉아 있는 석호에게 노래방에 가자고 한 적이 있었다. 무슨 개소리냐고 타박을 들었다. 하지만 내가 이중생활을 하는 동안 노래 반주 기계의 신통방통함에 한창 고무되어 있던 때라 억지로 석호를 끌고 노래방에 데리고 들어갔다. 내가 먼저 한 곡을 뽑고 석호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반주 사운드가 어떻고 저떻고 말이 많던 석호도 나의 부추김에 한 곡을 뽑았는데, 처음에는 마뜩찮은 표정이었던 석호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났다. 내가 처음 경험한 것과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었다.
“신기하지? 존.나 편하지 않냐?”
“엉. 씨.발.... 나 또 할래.”
그렇게 내가 한 곡 부를 때 석호는 세 곡을 부르면서 신나게 놀다가 노래방을 나올 때 석호가 나에게 말했다.
“나도 노래만 했음 좋겠다.”
석호는 자기 맘대로 하는 성격의 소유자였으므로 합주를 하느라 민구와 철우까지 다 모였을 때 석호는 일방적으로 우리에게 선언을 했다.
“우리 기타 구하자. 나 이제 노래만 할래. 씨.발, 나도 마이크 대 잡고 지랄 떨면서 노래하고 싶어.”
석호가 하는 말이었으니 우리는 석호의 말에 따랐다. 그래서 결국 석호는 자기 마음대로 기타 치는 멤버를 구했다. 90년도에 내가 밴드의 멤버로 들어온 이후 처음 있는 멤버 영입이었다. 소개를 받고 들어오게 된 새로운 기타리스트는 우리만의 연습실이 있다는 사실에 무척이나 고무되어 있었다.
첫 합주 날 서로 인사를 하고, 기타리스트는 석호가 건넨 악보를 보고 한두 번 만에 완곡을 함으로써 우리 앞에서 자신의 실력을 뽐냈다. 석호도 만족한 듯 했다. 합주에 들어갔다. 석호는 소파에 앉아 우리가 합주하는 것을 지켜봤다.
음.... 그저 그랬다. 몇 년을 석호와 마주 보며 연주를 하다가 낯선 사람이 앞에 있으니 어색했다. 그나마 석호가 노래를 시작했을 때는 조금 낫긴 했지만 그래도 뭔가 어긋나는 느낌은 마찬가지였다. 한여름에 찜통 같은 연습실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연주를 해서 그런가 보다 싶었다. 신입 멤버가 아직은 적응을 못했을 테니 우리 모두는 옷을 벗지 않고 더위를 참으며 합주를 했다. 그리고 합주가 끝나자마자 석호와 신입 멤버는 연습실에 남고 나머지 우리는 도망치듯 연습실을 빠져 나왔다.
그 다음 합주에서도 어색함은 계속 이어졌다. 멤버 한 사람의 열기가 더해져서 연습실은 더 더운 듯 했다. 결국 민구가 참지 못하고 고무 다라이에 물을 채우고 팬티 바람으로 들어가 앉았다. 연습실에 고무 다라이가 왜 있는지 의아해 하던 신입 멤버도 웃음을 터트렸다. 합주는 그럭저럭이었다. 그래도 석호가 노래만 부르고 싶다던 소망을 이룬 것 같아 다행이라는 마음으로 합주를 마쳤다. 역시나 석호와 기타리스트만 남고 나머지 우리는 자기 할 일을 찾아 연습실을 떠났다.
그렇게 몇 번 새로운 기타리스트와 합주를 했으나 그냥 합주로 끝이 났다. 클럽 공연이 있던 날, 연습실에 기타리스트가 나타나지 않았다. 당연히 클럽 무대에는 기타리스트가 서지 못했다. 여전히 석호가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새로 들어온 기타 멤버가 나오지 않는 이유는 나는 물론이고 민구와 철우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대략 짐작이 갔다. 아마도 석호가 자기 맘대로 하는 것에 기타리스트가 적응을 못한 탓이 가장 클 것이었다. 시나위의 신대철이나 넥스트의 김세황급 정도는 영입이 되어야 석호를 누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석호가 노래만 하겠다고 선언을 한 것은 아주 잠깐의 해프닝으로 끝이 난 셈이었다.
1999년 하반기는 여러모로 바쁜 날들이 이어졌다. 새로운 밀레니엄으로 넘어가는 분위기에 더해 우리 석호 플라이는 앨범 제작을 위해 더욱 정교하게 연주를 다듬고, 앨범에 들어갈 노래를 선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물론 석호 마음대로 할 것이긴 했지만 그래도 우리들에게 의견은 물어봤으므로 우리는 우리대로 어떤 노래가 좋을까 하는 행복한 고민을 했다.
대망의 2000년의 해가 밝아왔다. 1999년 12월 31일 금요일 저녁 8시가 우리 석호 플라이의 공연 시간이라 공연을 끝내고 계속 클럽에 남아 모두 함께 2000년 1월 1일이 시작되기 10초 전부터 카운트다운을 했다. 신나는 파티가 벌어졌다. 네 자리 숫자가 모두 바뀌는 신기한 경험이었다. 한 번에 나이를 천 살 먹는 기분이었는데, 겨우 한 살만 먹고 우리 멤버는 31살이 되었다.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하여 나도 내 생활에 변화를 주었다. 10년 가까이 살던 2층 다락방에서 벗어나 근처 2층 독채를 전세 내어 이사를 했다. 월세에서 전세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는 셈이었다. 그동안 주인집 눈치 때문에 연습실에서 가까워도 자주 드나들지 못했던 멤버들도 제법 자주 드나들었다. 특히나 석호가 곡 작업을 하다 막차를 놓치면 곧장 달려오곤 했다.
그리고 2000년 2월에 SUKO FLY의 정규 앨범이 나왔다. 석호가 만들고, 우리 모두가 연주를 한 노래 10곡이 들어간 앨범이었다. 그 중에 두 곡은 내가 불렀다. 두 곡 모두 롹발라드였다. 녹음실에서 마이크를 앞에 두고 노래를 할 때의 그 떨림은 거의 20년이 흐른 지금도 생생해서 그때 생각만 하면 여전히 나를 흥분하게 만든다.
전문 기술자의 도움을 받았지만 앨범 제작의 거의 대부분을 석호가 지휘했다. 뭐 당연한 일이었다. 연습실에 비닐 포장을 뜯지 않은 CD를 쌓아놓고 우리는 각자의 악기를 들고 신나게 달렸다. 그리고 각자 10개씩 가져갔다.
석호는 물론이고 나머지 우리들도 앨범이 얼마나 팔릴 것인지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1990년에 네 명이 처음 합을 맞추고, 딱 10년이 지나 그 네 명이 만든 앨범이었으니 그것만으로 좋았다. 우리에게 이 앨범은 우리가 밴드를 한다는 것을 확실히 알려주는 명함 역할이었다. 또 우리가 앞으로도 계속 밴드를 할 것이라는 사실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기도 했다.
남들 다 하는 뮤직비디오도 찍었다. 주된 배경은 제주도였다. 졸업을 앞두고 떠난 여행에서 너무나 즐겁게 노래를 부르며 다녔으므로 그때의 추억도 되살릴 겸, 앨범 출시 기념으로 멤버들이 다시 한 번 의기투합도 할 겸해서 장소를 정한 것이었다. 물론 석호의 의견에 우리가 따른 것이었다.
앨범이 나오자마자 찍으려고 했던 것을 내가 석호를 말리고 또 말려서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4월로 일정을 잡았다. 한결 가벼운 옷차림으로 제주도의 바람을 맞으며 우리들의 긴 머리를 흩날려야 제대로 된 그림이 나올 것이라는 내 의견을 석호가 받아들인 것이었다.
뮤직비디오의 컨셉은 우리가 연주하는 모습과 멤버들이 재미나게 노는 모습 두 가지를 섞어 만들기로 감독과 합의를 봤다. 연습실에서 합주를 하는 장면도 넣을 계획을 세웠다.
뮤직비디오는 석호도 자기 맘대로 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었기에 고집을 피우지 않았다. 그런데 결국 석호의 자기중심적이고 자기 맘대로 하는 성격이 터져 나왔다. 첫 촬영부터였다.
“베이스 치는 친구가 비주얼이 좋은데, 앞으로 나와서 노래도 하는 걸로 합시다.”
뮤직비디오 감독의 말에 석호가 대뜸 반발을 했다. 어찌 들으면 꼭 화를 내는 듯한 말투였다.
“지금 무슨 말씀을.... 제가 보컬이고, 공연할 때도 항상 가운데 서서 해요. 말도 안 되는....”
감독도 물러서지 않았다. 석호만큼이나 고집이 있는 사람 같았다.
“나도 아는데, 화면이 안 나와요. 덩치도 있는 사람이 가운데에 앞으로 나오니까 구도가 깨진다고.... 뮤직비디오라는 게 결국 화면이 살아야 되는 건데, 베이스 치는 친구가 딱 좋네. 화면도 엄청 잘 받아....”
“됐구요, 원래 자리 그대로 찍어 주세요. 노래도 당연히 제가 하는 거구요.”
석호의 고집에 감독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한 컷을 찍었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 찍힌 화면을 보고 감독은 또 한 마디를 던졌다.
“이거 봐요. 화면이 안 맞잖아. 보컬이 너무 튀잖아요. 균형이 안 맞아, 균형이.... 그리고 제발 카메라 쳐다보지 좀 마요.... 이거 보고도 자리 안 바꾸고 그냥 갈 거에요?”
석호가 잠시 망설이는 사이 내가 끼어들어 감독에게 말했다.
“감독님, 원래 포지션이 정해져 있어서요. 이렇게 10년을 해왔어요. 석호가 리더에 보컬이니까 석호 중심으로 찍는 게 맞아요.... 그냥 저희가 늘 하던 대로 서 있을 테니까 그렇게 찍어 주세요. 전문가시니까 잘 나오게 찍어 주세요.”
내 말에 민구와 철우도 감독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감독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카메라를 여기저기 이동해 가면서 우리를 찍었다.
드럼 세트까지 옮기면서 다녀야 하는 터라 많은 곳에서 찍지는 못하고, 바다와 초원 등지를 돌아다니며 찍었다. 바다에 들어가기는 좀 추운 날씨였으나 자연스러운 웃음을 끌어내기 위해 한 사람을 빠뜨리기로 하고 그 대상을 손가락 투표로 결정했다. 손가락은 두 사람에게 집중되었다. 석호와 내 손가락은 민구를 향했고, 민구와 철우의 손가락은 석호를 향했다. 가위바위보로 다시 결정하려고 했으나 석호보다 민구가 더 가벼웠으므로 철우도 민구가 낫겠다고 판단을 해서 민구로 결정을 봤다. 하지만 한 사람을 제대로 빠뜨리기 위해서는 나머지 사람들도 바다에 들어가야 했으므로 결국 모두가 물에 젖는 결과를 가져왔다.
너무나 즐겁고 재미있는 촬영이었다. 화면의 구도나 퀄리티는 다음 문제였다. 그냥 우리 모두가 나오면 됐고, 우리가 즐거우면 그만이었다.
정식 앨범에 뮤직비디오까지 찍게 되니 석호는 좀 더 구체적인 꿈을 꿨다. 석호뿐만이 아니었다.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TV에도 출연하고 싶고, 혹시나 드라마나 영화의 ost에 우리의 노래가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실현이 되면 좋은 것이고, 아니라 해도 크게 실망할 것은 없었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대중적으로 알려졌으면 싶었다.
이런 꿈을 꾸는 데에는 가끔 우리 밴드에게 섭외가 들어와서 행사를 나가는 적도 있기 때문이었다. 방송 출연 섭외는 한 번도 온 적이 없어서 아쉽기는 해도 우리 밴드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었다.
새로운 밀레니엄의 시대가 열렸어도 내가 하던 과외는 계속 이어졌으므로 행사를 나가야 하는 때에는 과외 수업 시간을 조정했다. 나 때문에 밴드의 스케줄이 펑크가 나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한 달에 한 번도 안 되는 섭외 요청이어서 내 돈벌이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 내가 입고 먹는 것과 엄마에게 생활비조로 돈을 보내는 것을 제외해도 3분의 2는 남아서 통장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지난 10년 동안 꾸준히 해왔으니 만약에 우리 밴드가 유명해져서 여기저기서 행사가 쏟아져 들어와 스케줄에 허덕일 때면 미련 없이 그만 둬도 될 만큼 돈이 쌓여 있었다.
앨범을 내고 난 후로 석호는 더욱 신이 나서 창작의 고통을 즐겼다. 철우는 둘째 아이를 만들었고, 민구는 민구대로 파트타임 강사를 하면서 여자를 꼬시고 다니며 즐거움을 누렸다. 나 역시도 가면을 쓴 채 이중생활을 영위했다.
해마다 여름이 찾아오고, 에어컨을 달 수 없는 지하연습실은 여전히 찜통이고, 그곳에서 합주를 해야 하는 우리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팬티 바람으로 혹은 발가벗고 고무다라이에 들어가서 땀을 식히며 합주를 했다. 7,8년을 해오던 일이라 자연스러운 삶의 한 부분이었다.
여전히 석호에게 눈길이 가는 것은 본능이라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해도 옛날처럼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를 당황하게 만들고 눈치가 보이게 만드는 일은 다른 곳에서 발생했다. 말이 가장 많은 민구였다.
“영기 너는 왜 여자친구를 우리한테 소개 안 해?”
세월이 흐르는 동안 철우의 마누라도 연습실에 다녀갔고, 민구도 여자친구를 두 번 데리고 온 적이 있었다. 석호는 한 번도 데리고 온 적은 없었으나 석호를 죽어라 따라다니는 여자가 한 명 있었으니 멤버들 모두 내가 이상하게 보일 법도 했다.
장씨 아저씨를 연습실에 데리고 왔던 내가 어찌 보면 내가 가장 먼저 외부인에게 연습실을 공개한 셈인데, 멤버들은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뭐 당연한 일이었다.
“여자친구가 있어야 소개를 하지.”
“니가 왜 여자친구가 없어? 니가 따먹었다고 말한 애들만 해도 버스 좌석은 다 채웠겠다. 우리가 뭐 어떻게 할까봐 그래?”
“응. 니네들 못 믿는 것도 있고, 나 구속받는 거 싫어. 이년 따먹다 보면 저년 따먹고 싶고 그런데 여자친구를 왜 만들어. 나한테 따.먹어 달라고 다리 벌리고 있는 년들이 줄을 섰는데....”
철우가 대화에 끼어들어 나를 공격했다.
“아~ 씨.발.... 영기 저 새끼는 말을 존.나 얄밉게 해. 존.나 재수 없는데.... 진짜 그럴 거 같애. 씨.발.... 부럽다.”
나는 철우를 향해 혀를 내밀어 약을 올리고는 민구에게 물었다.
“너, 전에 데리고 왔던 애랑 아직도 잘 만나지?”
“만나기야 하지.... 저녁이 되면 의무감으로 전화를 하고, 관심도 없는 서로의 일과를 묻곤 해서 문제지....”
“별로 오래되지도 않았으면서 웬 노래 가사를 끌어 들이냐?”
“아, 몰라. 니들한테 말 못하는 게 하나 있긴 있어.... 씨.발 짜증나....”
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8월 초의 어느 날이었다. 합주가 끝나고 집에서 쉬고 있는데, 밤에 불쑥 민구가 찾아왔다.
“너 집에 안 갔어?”
민구는 고개를 끄덕이며 옷을 벗고 욕실에 들어갔다. 한 달에 두세 번은 드나들었으니 모든 것이 자연스러웠다. 샤워를 하고 방에 들어와 수건으로 몸을 닦으며 민구가 말했다.
“에어컨 좀 틀어봐.”
“전기세 나가. 그냥 선풍기 바람에 말려.”
“씨.발, 에어컨 들여놨다고 존.나 자랑했으면서 너 틀기는 하냐?”
“장식용이고, 자랑용이야.... 근데 집에 안 가고 왜?”
“요즘 좀 마음이 그래서....”
“너 술 마셨냐? 혼자?”
“응.”
“지랄 궁상맞게 혼자 술을 왜 마셔. 나랑 석호한테 같이 가자 그러지.”
“그래서 왔잖아.... 에휴~~~~”
“왜 그래.... 니가 한숨을 다 쉬고....”
“요즘 내가 좀 그래.... 그래서 말인데.... 우리 한 번 하자.”
3년 만이었다. 클럽에 오디션을 하러 가는 날에 했었으니 기억하기도 쉬웠다. 나는 짐짓 모르는 척 민구에게 물었다.
“뭘?”
“씨.발, 너는 알면서 꼭 그러더라.... 섹스. 됐냐? 오랜만에 한 번 하자. 나 지금 존.나 꼴렸어.”
민구의 자지는 팽팽하게 발기가 되어 있었다.
“말 안 해도 알겠네. 근데 내가 왜? 너 변태냐? 진짜 게이 아냐?”
나도 하고 싶었다. 멤버들 몰래 이중생활을 한다고 해도 나이가 서른이 넘어가면서부터 그나마 오던 추파도 끊어진 지 제법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안 팔린다기보다 내가 섹스를 기피하는 것이 더 컸다. 민구와는 몇 번의 경험도 있고, 민구 정도라면 내 식성에도 맞는 사람이고, 나름 섹스도 열심히 잘 하는 대다, 먼저 다가오는 데에 내가 마다할 것이 없었다. 섹스를 하는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섹스 후에 밀려오는 허무함이 너무 싫었다.
“내가 그딴 거 신경 안 쓴댔지. 씨.발 너도 좋아했잖아.”
“좋기는 뭐가 좋아? 니가 하도 애원해서 내가 친구니까 부탁 들어준 거지. 진짜 기분 조ㅈ같단 말야.”
“이 새끼 또 거짓말하네. 내가 몸은 거짓말 못한댔지? 씨.발 하기 싫다면서 또 왜 세우고 있냐?”
씨.발.... 이놈의 자지가 문제였다. 정말 마음과 몸은 따로 놀았다. 참담했다. 어쨌든 민구를 달래야 했다.
“나는 진짜 니가 이해가 안 돼.... 너 나 말고 딴놈이랑 섹스해 봤냐?”
“아니. 나도 내가 이해가 안 돼. 딴놈들은 징그러운데 이상하게 너는 꼴려....”
“잡소리 집어치우고 집에 가든지 자빠져 자. 정 꼴리면 딸딸이나 치든지.... 우리도 이제 서른이 넘었어. 장난이라기에는 좀 그렇잖아.”
“난 장난 아닌데.... 내가 니들한테 말 못하는 사정 있다고 그랬지?”
민구는 말 못한다는 사연을 나에게 털어놓았다.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먼저 실토를 했다.
“나 요즘 공들이는 애가 하나 있거든....”
“그럼 걔랑 하면 되지 나한테 이러냐?”
“그게 안 되니까 그러는 거지. 나도 철우처럼 해 보려고.... 벌써 4년째야.... 올해 빼고 앞으로 2년 남았어.”
“뭐가?”
“임신시키는 거.”
나는 아무 말 없이 민구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민구도 나를 바라보다 말을 이었다.
“너 따라서 분필 잡고 학원 출근하는데 눈에 딱 띄는 애가 있는 거야. 존.나 이쁘고 공부도 잘 했어. 초짜인 나한테 선생님 선생님 하면서 질문도 하고 나한테 친한 척을 하는데 이뻐 죽겠는 거야. 진짜 걔 때문에 내가 열심히 공부해서 수업했잖아. 작년에 대학 갔어. 우리 학교 간호학과.... 합주 끝나고 잠깐 만나서 커피 마시고 집에 보냈어. 존.나 따먹고 싶은데 그럼 안 되는 거잖아. 철우처럼 해야 되니까.... 내가 추근대지 않아서 너무 좋대....”
“어떻게 지가 가르친 제자를.... 와~ 지금 2학년이면 너랑 10살 차이네. 씨.발 도둑놈 새끼....”
“걔도 내가 좋대. 나도 걔 좋아하고....”
“그럼 너도 철우처럼 걔는 지켜주고, 걔 모르게 양다리 걸치면 되잖아. 철우 따라한다면서 왜 그런 건 안 따라하고 나한테 추근대냐? 씨.발 변태새끼야.”
“나도 양다리 걸치지.... 클럽 오는 애들 중에 오늘만 사는 것처럼 자유분방한 애들이랑도 자고 그러니까.... 나만 그래? 너도 그렇고 석호도 그러잖아. 마누라 있는 철우도 그러는데....”
나는 안 그래 라고 얘기해야 했으나, 해봐야 소용도 없고 게이라고 이실직고를 하는 것밖에 되지 않아 그냥 잠자코 있었다. 나의 침묵을 허락의 의미로 받아들인 건지 민구가 갑자기 내 팬티를 벗겼다.
“씨.발 안 한다니깐~! 너 만나는 년들이랑 해.”
“오랜만에 똥구멍 맛 한 번 보자. 나 똥구멍에 조ㅈ 안 박은 지 오래 됐단 말야. 씨.발년들이 안 줘.”
“그년들도 안 주는데 나는 왜 너한테 줘야 돼? 진짜 웃기는 새끼네.”
“넌 나랑 똑같잖아. 씨.발 너도 나랑 하면서 은근히 즐겼잖아. 여자도 아닌 게 빼고 그러냐? 그냥 한 번 하면 되는 걸 가지고....”
그랬다. 그냥 한 번 하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게 또 아니었다. 정기적으로 자주 하는 것도 아니고, 가끔 하자고 그래놓고 2, 3년에 한 번씩 발.정이 나면 나를 찾는 것이 좀 기분이 나빴다. 석호도 내 뒷모습을 뚫어지게 본다고 민구가 전에 말을 했기 때문에 일부러 석호에게 살짝 엉덩이를 내밀곤 했었는데, 전혀 반응이 없어서 실망을 하던 터였다. 그런데 민구는 가끔 나에게 요구를 하니 민구가 좀 특이한 성향을 가진 사람이 아닌가 싶었다.
“야, 너 진짜 좀 이상하지 않냐? 니가 좋다고 해서 나도 하긴 했었는데.... 그래도 남자끼리 이러는 건 좀 아닌 거 같아.”
나는 민구를 달래듯이 말하면서 다시 한 번 떠 보았다.
“씨.발 너도 나한테 똥구멍 대줘.”
나는 민구가 당연히 거부를 할 줄 알았다. 하지만 민구의 반응은 내 예상을 빗나갔다.
“그러든지.... 나도 좀 궁금하긴 했어. 샤워할 때 내 똥구멍에 손가락 넣어보니까 기분 묘하더라. 크크크크....”
지금 생각해 보면 민구는 좀 특이한 성향인 것 같다. 워낙에 섹스를 좋아하고, 거기에 애널 섹스의 느낌도 알아버렸으니 항문에 집착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섹스에 대한 호기심과 성욕이 너무 강해서 남자인 나랑 섹스를 하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어린 마음에 넘치는 욕구를 참지 못하고 제주도 여행 때 한 번을 경험했으니 그 이후로는 크게 문제될 것이 없어 보였다. 그래도 나를 제외한 어떤 남자에게는 이끌리지 않고, 또 나에게 요구를 자주 하지 않은 걸 보면 일반이 분명한데, 애널 섹스에 대한 강렬한 욕구로 선을 넘어와 나에게 요구를 한 것 같다. 한 번 선을 넘는 것이 어려운 것이지, 선을 넘기만 하면 그 선은 사라지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민구가 그 선을 넘는 데에는 내 긴 머리도 한 몫을 단단히 했을 것이었다.
“넌 자지 달린 똥구멍에 조ㅈ을 박고 싶냐? 난 이해가 안 돼.”
“처음에 뒤에서 박을 때는 몰랐다가 앞에서 박으니까 니 조ㅈ 때문에 좀 그렇긴 하던데, 뭐 어차피 달린 거 어떡해. 뗄 수도 없고 그냥 하는 거지. 니가 내 조ㅈ 빠는 게 신기했었는데 나도 빨아보니까 별 이상하지도 않더만. 너도 나랑 똑같은 거 같아서 마음도 편하고.... 니 조ㅈ이 진짜 조ㅈ만해서 별 부담도 없었어. 석호 조ㅈ만했음 당연히 못 빨았지..... 석호 그 새끼도 조ㅈ 빨리는 거 존.나 좋아한다던데.... 석호랑 내가 비슷한 게 많아. 생긴 것도 그렇고, 조ㅈ 빨리는 거랑 똥구멍 박는 것도 그렇고.... 씨.발 석호도 존.나 꼴릴 거야, 요즘 곡 작업한다고 안 한 지 꽤 됐다던데....”
나는 옛날처럼 다시 민구에게 은근히 물었다.
“석호가 너랑 비슷하면.... 석호도 너처럼 남자 똥구멍에 조ㅈ 박을까?”
“석호가 미쳤냐? 우리 중에 제일 여자 밝히는 새낀데.... 또 모르지. 며칠 전에 나한테 똥구멍에 조ㅈ 박고 싶다고 난리를 쳤으니까 존.나 꼴려서 박을지.... 석호랑 섹스하는 년들은 정말 좋을 거야. 큰 조ㅈ으로 보지랑 똥구멍을 막 쑤.셔 줄 건데 얼마나 좋겠어. 공연 때마다 와서 석호 쫓아다니는 은정이 있잖아. 걔도 뭔가를 아는 거지. 솔직히 얼굴이랑 몸매 반반한 거 보고 너한테 달려드는 년들 많은데, 그년들은 뭘 모르는 거고....”
갑자기 민구가 깔깔깔 웃었다.
“왜 웃어?”
“신은 공평한 거 같아서....”
“무슨 말이야?”
“신이 너한테 잘생긴 얼굴은 줬는데 조ㅈ은.... 크크크크.... 너 얼굴 보고 달려든 년들이 섹스하고 나서 너한테 뭐라고 안 하냐? 크크크크 조ㅈ 작은 걸 반전 매력으로 볼라나....”
“씨.발새끼 죽을래? 섹스를 조ㅈ 크기로 하냐? 테크닉으로 하는 거지. 씨.발 내가 얼마나 잘하는지 볼래?”
“그럼 나랑 하는 거지? 나도 오늘 너한테 똥구멍 대줄게....”
그렇게 민구의 계략에 말려 3년 만에 또 섹스를 하게 되었다. 애무를 하고 정말 오랜만에, 어릴 때 이후 성인이 되고 나서는 처음으로 자지를 똥구멍에 넣었다. 민구는 정말 섹스에 호기심이 많은 건지 별 거부감 없이 자지를 받았다. 하지만 내가 문제였다.
“씨.발 변태새끼.... 남자 조ㅈ 받으니까 좋아?”
“색달라서 재밌긴 한데.... 별로 안 좋아. 니가 따먹은 여자들이 불쌍하네.... 씨.발 엎드려....”
어릴 적 윤상호 선생님이 내가 천상 마짜라는 말이 맞는 것 같았다. 민구의 똥구멍에 처음 찌른 사람이 나였을 텐데, 별 감흥도 없고 재미도 없었다. 민구가 내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나는 신음을 토했다. 좋아서였다. 하지만 민구가 먼저 사정을 하고 난 뒤에도 나는 사정을 하지 않았다. 허탈함과 허무함을 피하려는 내 나름의 조치였다.
땀으로 범벅이 된 민구와 나는 서로 먼저 씻겠다고 난리를 피우다 에어컨을 틀어 놓고 함께 샤워를 했다. 여전히 내 자지가 발기된 것을 보고 민구의 자지도 다시 발기가 되었다. 민구는 나보다 큰 자지를 자랑하며 장난을 치듯 몸을 씻었다. 먼저 다 씻은 민구가 수건을 들고 욕실을 나갔다. 그때였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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