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라 황석호 -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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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클럽 근처에서 알아봐 준다면야 쌍손을 들고 환영할 일이지만 게이바에서는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그동안 게이바를 드나들면서 한 번도 경험해 보지도, 아니 생각조차 않은 일이었다. 석호 플라이가 TV에 나오는 밴드도 아니고, 그저 클럽에서 공연하는 인디 딴따라인데다 나는 메인 보컬도 아니었으니 나를 알아볼 리 만무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놀란 가슴을 가라앉히고 짐짓 모르는 척 했다.


  “사람 잘못 보신 거 같은데요.”


  “아닌데.... 맞는데.... 방금 노래 부를 때 목소리도 똑같았어요. 석호 플라이에서 베이스 치는 분 아니에요? 저 석호 플라이 노래 좋아해서 클럽에 공연 보러 자주 가거든요. 어제도 클럽에서 공연 봤는데....”


  나는 짐짓 모르는 척 웃으면서 말했다.


  “하하하하 전에도 한 번 저보고 석호 뭐시기 밴드 아니냐고 물어보던데, 그 밴드가 유명한가 보죠?”


  “막 유명한 건 아니고, 그 동네에선 그래도 꽤 먹어주는 밴드에요. 노래도 특이하고, 달릴 때 엄청 신나고.... 보컬이 진짜 노래 잘하거든요, 완전 멋지고 딱 내 식인데.... 드럼 치는 사람도 멋지고.... 근데 진짜 석호 플라이 베이시스트 아니에요?”


  “네, 아니에요. 전 베이스 베자도 몰라요.... 근데 제가 많이 닮았나 보죠?”


  “닮은 게 아니라 똑같아요.... 혹시 식성이 뚱이면 석호 플라이 한 번 찾아보세요. 저처럼 반하실 거에요.... 본의 아니게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나는 곧바로 자리를 뜨고 싶었지만 만약 그렇게 하면 내가 석호 플라이의 베이스 주자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 같아 조금 더 눌러 앉아 있다가 계산을 치르고 나왔다. 긴 한숨이 새어 나왔다.


  다음 주 금요일 저녁, 늘 해오던 대로 클럽에서 공연을 했다. 석호가 노래하는 것을 들으며 나도 관객들처럼 리듬에 몸을 맡기고 베이스 줄을 튕기고 있는데, 객석에서 낯익은 얼굴을 봤다. 게이바에서 나를 알아봤던 그 사람이었다. 나는 일부러 헤드뱅잉을 하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여 머리로 얼굴을 가렸다. 거기에 더해 민구와 리듬을 맞추는 듯이 약간 뒤로 돌아서 연주를 했다. 가슴이 두근거려 미칠 것만 같았다. 어서 시간이 지나 무대를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공연이 끝나고 대기실에 들어왔을 때 석호가 나에게 타박을 했다. 민구와 철우도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씨.발, 이영기 너 오늘 왜 그래? 하루 이틀 하는 것도 아닌데, 박자도 놓치고.... 오늘 완전 엉망이었잖아.”


  내가 틀린 것은 무대 아래에서 그 사람을 발견했을 때 잠시였는데, 석호는 그걸 바로 알아챈 것이었다.


  “미안.... 갑자기 확 삘을 받아서....”


  계속 미안하다는 말로 석호를 달래고 클럽을 나왔다. 공연이 끝나면 늘 밖에서 기다리던 은정이가 역시나 기다리고 있다가 석호 옆에 달라붙었다.


  “오빠, 오늘 왜 그래? 기분 안 좋은 거 같은데.... 혹시 영기 오빠가 틀려서 그래?”


  석호의 마음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나불거리는 은정이를 째려보다 고개를 숙이고 담배를 피워 물었다. 누군가 나에게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 사람이었다. 나는 애써 모른 척하며 계속 담배를 피웠다. 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 아시죠?”


  나는 짐짓 모르는 척 자연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낯이 익은 거 같은데.... 우리 공연 자주 보러 오시는 분이죠?”


  나는 최대한 천연덕스럽게 대응했다. 자칫 놀란 표정이라도 보였다가는 큰일이 날 것 같았다.


  “그게 아니고.... 지난 토요일 밤에 저 보지 않으셨어요?”


  “그게 무슨 말씀인지.... 토요일 밤에 저를 보셨어요?”


  그 사람은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나도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나는 쐐기를 박듯 그 사람에게 한 마디를 던졌다.


  “토요일 밤에는 늘 집에만 있는데.... 혹시 담배 사러 나갔을 때 보신 건가....”


  “그런가요.... 너무 똑같으셔서.... 말투에 신발까지....”


  그 사람은 나를 향해 야릇한 웃음을 짓고 다른 멤버들에게 인사를 한 뒤 사라졌다. 나는 발밑을 내려다봤다. 워커처럼 생긴 신발이 보였다. 집에만 있다가 담배를 사러 나가는 신발이라기에 좀 과한 면이 있는 것이었다. 그 사람은 내가 거짓말을 한다는 것을 알아챈 것이 분명했다. 내가 생각해도 담배 운운한 것은 궁색한 변명이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그 사람의 얼굴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야릇한 웃음이 자꾸만 걸렸다. 팬이라며 석호와 민구에게 악수를 청하면서 나를 흘낏 바라보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내가 게이라고 소문이 나는 것은 그다지 두려운 것이 아니었다. 게이가 게이라고 소문이 나는 것이었으니 억울할 것도 없었다. 나 혼자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석호 플라이의 한 부분이었고, 석호 플라이와 묶여 있었기에 내 문제는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 석호 플라이 전체의 문제였다. 게다가 남말 하기 좋아하는 게이 동네의 특성상 온갖 이야기들이 만들어질 것 같았다.

  이제 겨우 앨범을 내고 이 바닥에서 이름이 조금 알려지기 시작한 우리 석호 플라이가 나 때문에 구설수에 오르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게다가 TV 방송에 출연하고 싶고, 단독 공연도 꿈꾸는 석호를 비롯한 다른 멤버들에게 누를 끼치는 것 같아 마음이 괴로웠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일개 인디 밴드의 베이스 주자 이영기가 게이라는 것이 소문이 나봤자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게 누군데?’ 할 것이며, 그 소문이라는 것도 게이들 몇몇이 시시덕거리는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닐 것이었다.

  그런데 그때 나는 정말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그도 그럴 것이 바로 그때는 배우 홍씨의 커밍아웃으로 시끄럽던 때였다. 시트콤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여러 개의 방송 프로그램을 맡던 배우 홍씨가 게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방송에서 하차를 하며 밥줄이 끊어지는 것을 똑똑히 봤기에 나에게는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나 때문에 다른 멤버들까지 영향을 미치게 할 수는 없었다.


  더 이상 내가 석호 플라이에 있을 수는 없었다. 도움은 못 돼도 방해는 되지 말아야 했다. 석호 플라이의 앞날을 위해서는 내가 사라지는 것이 답이었다.

  주중 첫 합주를 하는 날까지 나는 탈퇴의 명분을 마련하느라 고민을 했다. 정확한 이유를 말할 수 없었으니 거짓 이유를 끌어와야 했는데, 정말 마땅한 이유가 없었다. 10년 동안 합을 맞춰 와서 눈빛만 봐도 서로를 알았고, 갈등이 있긴 했지만 며칠 삐졌다가 웃음으로 퉁치면 그만이었으니 딱히 갈등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나에게 석호 플라이의 멤버들은 정말 소중한 사람들이었다.

  나도 탈퇴를 하기가 죽기보다 싫었다. 석호 플라이에서 나간다는 것은 석호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으니 내가 생각해도 미친 짓이었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석호를 위해서라도 나는 밴드에서 사라져야했다.


  나는 멤버들에게 탈퇴를 하겠다고 말하기 전에 먼저 내 주변부터 정리를 했다. 가장 먼저 내 수입원이었던 모든 과외를 다 끊었다. 고3 학생들의 수업이 이미 끝이 나 있어서 천만 다행이었다. 더 이상 과외를 할 수 없다는 내 말에 학생들은 물론이고 학생의 엄마들까지 놀라서 절대로 안 된다고 했다. 어떤 엄마는 과외비를 올려 주겠다고까지 했으나 나는 정중히 거절을 했다.

  내가 하던 과외가 경쟁력이 있었던 것은 수학과 영어가 기본으로 깔려 있고, 내가 국문과를 나왔으니 국어까지 결합이 된 종합 패키지 과외였기에 나랑 코드가 맞는 학생들이 원스탑으로 국영수를 다 해결할 수 있어서 한 번 팀을 짜서 들어오면 절대로 그만 두지를 않았다. 중간, 기말 시험 때는 다른 과목들의 시험 대비까지 해줬으니 내가 하는 과외는 종합학원인 셈이었다.


  내가 고액으로 과외비를 엄마들에게 뜯어낸 것도 다 이런 맥락이 있어서 가능한 것이었다. 엄마들 입장에서도 내가 하는 과외 수업이 자기들의 필요에 걸맞았다. 학원이 아니라 과외여서 학생들 개개인에게 맞춤 수업이었고, 학원을 보내는 비용보다 많이 비싸도 국영수 세 과목을 따로 과외를 받는 가격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수준이었으니 엄마들에게도 이득인 셈이었다.

  특히나 내가 하는 수업 스타일이 스스로 찾아서 공부하는 방식이었으니 엄마들이 더욱 좋아했다. 이를 테면 학생에게 내주는 과제가 ‘엄마에게 직선의 방정식 이해시키기’여서 학생들은 엄마를 가르치기 위해 공부를 해야 했고, 엄마들은 학생들이 공부하는 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가르치면서 배우는 교학상장의 표본이었다. 내가 가르치면서 더 잘 이해했으니 학생들에게도 그런 과정을 거치도록 한 것이었다. 모두에게 좋은 일이었다.

  내가 앞서 중학교 2학년 때 자습위원의 경험을 다소 장황하게 이야기했던 것도 이것 때문이었다. 그때 깨달은 공부 방법이 내 돈벌이에도 제대로 작용을 한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 내가 과외를 그만 두겠다고 했으니 반발이 심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나도 들이는 노력에 비해 고수익을 올리는 과외를 그만 두기 싫었다. 게다가 소득으로 잡히지 않아서 세금 한 푼 안 내는 현금 수입을 놓치는 것이 뼈아픈 일이었다.

  지금에야 말을 하는 것이지만 그때 내가 과외비로 한 달에 벌어들인 소득은 오백만 원이 넘었다. 밴드 합주를 하고, 공연을 하는 시간을 위해 최소한의 인원으로 수업을 해도 그 정도였으니 본격적으로 학생들을 받아 내 시간을 모조리 사용했으면 천만 원 이상은 우습게 벌었을 터였다. 한 번 소문이 나면 가만히 있어도 돈이 벌리는 뭐 그런 것이었다. 소문이란 게 그만큼 무서운 것이었다.

  나는 반발을 하는 학생들과 엄마들에게 우리 엄마를 팔았다. 건강이 안 좋아진 엄마를 위해 고향에 내려가야 한다는 것이 명분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상 가족의 일에는 관대한 입장이라 모두들 받아들였다.


  합주가 있던 날, 밴드 멤버들에게도 엄마를 팔았다. 차마 밴드를 완전히 그만 두겠다는 말을 갑자기 할 수가 없어서 당분간 엄마를 위해 고향에 내려가 있어야 한다고만 말했다. 모두들 안타까운 표정으로 나를 위로할 것이라 생각했으나 역시 멤버들은 학생들과 달랐다.


  “씨.발, 지랄하네. 어디 개구라를 치고 있어?”


  민구의 말에 철우도 받아서 한 마디를 던졌다.


  “씨.발, 그걸 우리한테 믿으라고 하는 니가 더 웃긴다. 이영기가 엄마 싫어하는 거는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우리가 알고 너도 아는 일인데, 누굴 속이려고....”


  민구가 의심스런 눈빛으로 나를 째려보며 말했다.


  “너 혹시.... 니가 만나는 여자 섹스로 홍콩 못 보내니까 진짜 홍콩 데리고 가려는 거 아냐?”


  나는 멤버들의 의심을 불식시키기 위해 과외 수업까지 모두 그만 뒀다는 것을 알렸다. 그래도 믿지 못하는 멤버들을 위해 휴대폰의 문자메시지를 공개함으로 해서 믿도록 만들었다. 내가 구체적으로 얼마를 버는지는 몰라도 상당한 수입을 올리고 있다는 것은 모두 알았기에 내가 과외를 그만 뒀다는 것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멤버들도 믿기에 충분했다.


  “당분간 내려갔다 올게. 언제 올 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


  석호가 내 어깨를 주무르며 말했다.


  “그래 공연하는 거는 걱정하지 마. 어떻게든 되겠지. 너 없을 때는 당분간 안 해도 되는 거고....”


  역까지 배웅을 하겠다는 멤버들을 만류하고 나 혼자 연습실을 나왔다. 한숨이 새어 나왔다. 마음이 무거워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혼자서 여행을 떠났다. 책 몇 권을 들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녔다. 일주일을 떠돌다 다시 돌아와서도 연습실에 가지 않았다. 대신 내가 살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연습실 근처에 사는 이상 마음을 쉽게 접을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변두리 외곽 동네의 신축 아파트를 한 채 구입했다. 가격 때문이기도 했고, 내 인생 자체가 변두리 인생이었으므로 나에게 걸맞은 것이기도 했다.

  베이스 기타를 처음 사러 갔을 때, 통장의 잔고 액수를 몇 번이고 생각하다 큰맘 먹고 석호가 추천하는 것을 골랐을 때와는 달랐다. 20평대의 작은 아파트는 내가 가진 돈의 반도 안 되었다. 거의 3분의 1 수준이었다.


  멤버들 몰래 트럭 한 대를 불러서 서둘러 이사를 했다. 짐도 별로 없었으니 기사 아저씨와 나 혼자만으로도 충분했다. 내 이름으로 된 첫 재산이었다. 내 집이었으니까 내 마음대로 살 수가 있었다.

  냉장고와 세탁기부터 들여놓았다. 늘 사먹기만 하던 밥을 직접 해먹기 위해 밥솥도 샀다. 전자렌지도 사고, 청소기도 샀다. 밥을 해먹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이 정말 많았다. 숟가락 젓가락부터 각종 냄비와 프라이팬 등등 살 것이 너무 많았다. 그릇과 숟가락 젓가락이 있다고 밥을 먹을 수는 없었으므로 요리책을 사서 각종 요리에 필요한 재료들로 냉장고 안을 하나둘씩 채워 넣었다. 하루에 두 가지씩 요리책에 나온 것들에 도전했다. 그다지 음식에 까다롭지 않았으니 그럭저럭 먹을 만했다.


  어느 정도 익숙해지는 데까지 2주가 걸렸다. 과외도 없고, 합주도 하지 않았으니 심심하기도 하고, 어느 정도 삶에 여유를 찾은 것 같아 TV도 장만을 했다. TV라는 게 안 보면 모르는데, 한 번 보기 시작하면 계속 봐지는 것이라 처음에는 채널만 돌리다가 점차 TV의 재미를 알아갔다. TV의 위력이었다.

  집 근처의 노래방도 하나 개척을 했다. 세 곳 중에 서비스 시간을 잘 주는 곳으로 정착을 했다. 늘 혼자 와서 노래를 부르는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던 주인도 자주 가다보니 아는 체를 하고, 시간도 많이 넣어 주고, 어떤 때에는 실론티도 서비스로 줬다. 노래책을 뒤적이다 노래 하나가 눈에 띄었다. 여자 가수의 노래는 잘 안 하는데, 왠지 땡겨서 번호를 눌렀다.

https://youtu.be/SzoNVWfUUG0

박혜경 – 고백


  그랬다. 용기를 내야했다. 후회하지 않게.... 석호가 보고 싶었다.


  2000년도 한 달만 남은 시점에 연습실을 찾아갔다. 한 달 하고 며칠 만이었다. 그동안 휴대폰도 꺼놓고 완전히 잠수를 탔으니 멤버들도 어지간히 애가 탔을 터였다. 연습실에 들어서는 나를 보자마자 모두 달려와 차례대로 부둥켜안았다. 6개월 방위를 마치고 동아리방에 들어갔을 때처럼 나를 엎어놓고 등을 마구 때렸다. 언제나 그랬듯이 민구가 먼저 말을 꺼냈다.


  “씨.발, 너 머리가 왜 이래?”


  스포츠로 짧게 깎은 내 머리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마음을 다잡기 위한 내 나름의 노력이었다. 민구의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한 달 넘게 미뤄오던 말을 폭탄처럼 터뜨렸다.


  “나 이제 밴드 안 하려고....”


  세 사람 모두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내 말의 위력이 너무 세서 말문을 막아버린 것 같았다. 나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엄마가.... 제대로 된 직장 다니는 아들 보고 싶대.... 아들내미가 하나밖에 없는데, 대학 공부 시켜놨더니 취직도 못하는 백수라서 마음이 좀 그런가봐....”


  미리 생각해 놓은 거짓말을 뇌까렸다. 석호가 갑자기 내 손목을 잡고 연습실을 빠져 나갔다. 민구와 철우도 따라 나왔다. 늘 담배를 피우던 곳에서 석호가 먼저 담배 하나를 꺼내 물었다. 나도 그랬고, 민구와 철우도 그랬다. 석호가 긴 한숨을 쉬듯 연기를 내뿜고 한 마디를 던졌다.


  “니가 벌어서 대학 다닌 거잖아. 취직 안 했어도 너 과외해서 돈도 많이 벌었잖아. 씨.발, 그 돈으로 집도 샀겠다.”


  석호의 말이 맞았다. 과외해서 번 돈으로 등록금을 내고 다녔고, 그 돈을 모아서 집도 샀으니까.


  “내가 말했잖아, 우리 외갓집 식구들이 대단들 해서 자식 자랑 존.나 많이 한다고.... 울엄마도 내 자랑 하고 싶겠지.... 나도 아들 된 도리로 그렇게 해주고 싶고....”


  “니가 언제부터 엄마 걱정했어? 집 식구들 싫어서 도망쳐 온 새끼가.... 엄마 핑계 대지 말고 솔직한 이유를 말해.”


  내가 석호한테 온갖 말을 다 한 것 같았다. 너무나 나를 잘 알았다. 거짓말이 통하지가 않았다. 그렇다고 사실대로 말을 할 수는 없었다.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낳았다.


  “지금까지는 그랬지.... 오랜만에 울엄마 보니까 많이 늙었더라.... 늙고 병 드니까 많이 안 돼 보이더라고.... 나도 서른 넘으니까 철이 드는지 엄마 소원 들어주고 싶어졌어.... 그동안 내 맘대로 하고 살았잖아....”


  석호가 큰소리로 말했다.


  “자기 맘대로 사는 게 어때서? 계속 니 맘대로 살면 되잖아. 진짜 내 맘대로 사는 나는 불효자식이라서 죽어야 되겠네.... 그래, 엄마 소원 들어준다고 쳐. 제대로 된 직장이 뭔데? 너 밴드 안 하고 뭐할 건데?”


  “공무원.... 공무원 시험 칠 거야. 국가의 녹을 먹고 사는 게 제대로 된 직장인 거지.... 사촌형처럼 행정고시는 못 치더라도 그 비슷한 거라도 해야지.... 공무원, 안정적이고 좋잖아. 딱 울엄마가 바라는 삶이야. 나도 그렇고....”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온 말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참 대견한 순발력이었다. 또 거짓말이 튀어 나왔다.


  “공무원 학원도 벌써 등록해 놨어. 제대로 공부하려고 머리도 잘랐고....”


  난 쐐기를 박듯 한 마디를 더 던졌다.


  “그동안 정말 좋았어. 너희들 덕분에 좋은 추억도 많이 쌓고....”


  석호가 말이 없어진 대신 민구가 말을 걸었다.


  “공무원 시험 치는 거랑 밴드 안 하는 거랑 무슨 상관이야? 지금까지 과외랑 밴드랑 동시에 잘해 왔으면서.... 공부하다가 가끔 시간 내서 합주하고 공연하면 되잖아. 24시간 공부할 것도 아니면서....”


  민구의 말도 맞았다. 결국 내가 핑계를 대는 것은 모두 거짓말이어서 명분이 없는 셈이었다. 하지만 나는 거짓말에 거짓말을 덧씌워 명분을 만들어내야 했다.


  “내려가서 공부할 거야.... 나 벌써 방 빼서 짐 내려 보냈어. 전화로 말하기는 좀 그래서 오늘 너네들 마지막으로 보러 온 거야.”


  내 말에 세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줄담배를 펴댔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철우가 담배 불똥을 튕겨내고 말했다.


  “이왕 온 김에 원 없이 달리고 가라. 그냥 너 보내기는 좀 그래....”


  나도 그랬다. 10년 동안 동고동락하며 합주를 했으니 이대로 그냥 가기는 너무 아쉬웠다. 그런데 그랬다가는 애써 결심을 한 것이 한 번에 무너질 것 같아 참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냥 갈래.... 괜히 그랬다가 마음만 더 아플 거 같아서.... 너희들한테도 미안하고.... 이만 갈게. 시험 합격하면 연락할게.”


  이번에는 민구가 나를 붙잡았다.


  “씨.발, 그냥 이렇게 보내는 건 아니지. 송별회는 해야 될 거 아냐. 술이나 마시러 가자.”


  “아냐.... 기차표 끊어놨어.... 다음에.... 시험 합격하면 다음에....”


  민구가 나를 끌어안았다. 철우도 그랬다. 석호도 나를 끌어안고 등을 토닥여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러지를 않았다. 대신 내 손목을 잡고 지하 연습실로 끌고 갔다. 나는 뿌리치며 안 가겠다고 했으나 석호의 힘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

  석호는 나를 소파에 앉혀 놓고, 내 빨간색 베이스 기타를 정성스레 닦았다. 그리고 조심조심 케이스에 넣어 나에게 건넸다.


  “이거 갖고 가야지. 니 꺼잖아....”


  석호가 나에게 선물을 한 것이었으니 내 것이 맞았다. 소파에서 일어나 석호가 건네는 베이스 기타를 어깨에 둘러맸다. 지난 10년 동안 돈을 그렇게 많이 벌었으면서 내가 받은 것만큼 석호에게 제대로 선물 하나 하지 못했던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어떻게서든 꼭 갚겠노라 다짐을 했다.

  석호가 나를 끌어안았다. 품이 너무 따뜻했다.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싶었다. 더 이상 연습실에서 석호가 노래하는 것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제대로 느껴졌다. 많이 보고 싶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나는 떠나야했다. 석호의 꿈을 위해서, 석호의 미래를 위해서 나는 떠나는 것이 마땅했다.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결국 눈물이 터져 나왔다. 옆에 서 있던 철우도 눈물을 글썽였다. 민구가 짜증을 냈다.


  “씨.발, 왜 처울고 지랄이야. 혼자 잘 먹고 잘 살겠다는 새끼가 울고 지랄이냐고....”


  민구의 목소리도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석호가 내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다시 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와. 아마 다시 하고 싶을 거야.... 밴드가 그런 거니까....”


  멤버들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에도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 따위는 아무 상관없었다. 잘한 결정이라고 내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그건 머릿속 생각일 뿐 가슴은,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다음날부터 본격적으로 공무원 시험 준비에 들어갔다. 비록 거짓말로 밴드에서 나오긴 했으나 그 거짓말을 사실로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별 생각 없이 나오는 대로 씨부린 것이었는데 오히려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당장 할 일이 없었던 내가 무언가 할 일이 생겼다는 것은 진짜 좋은 일이었다.

  몇 년 동안 돈을 안 벌어도 먹고 사는 데에는 지장이 없었으니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해보자는 마음으로 행정고시를 알아봤으나 몇 년 가지고 될 일이 아닌 것 같아 가뿐하게 포기를 했다. 7급 역시 포기했다. 7급을 준비하느니 행정고시를 준비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반면에 9급 시험은 정말 해볼 만했다. 과목도 그렇고, 문제 유형도 수능식이었다. 10년 가까이 수능 공부로 돈을 벌었으니 굳이 고시학원에 등록할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


  서점에 가서 시험 준비를 위한 책을 모조리 사들였다. 하나씩 하나씩 복습을 하듯 공부를 했다. 휴대폰도 꺼놓았다. 머리가 짧으니 감고 나서도 말릴 필요가 없어 공부를 하는 데에 도움이 많이 되었다.

  집에서 거의 나가지 않았다. 부식거리를 장만할 때나 담배가 떨어지면 바람을 쐬러 나갔다 왔을 뿐이었다. 그나마 가장 오래 나가 있을 때가 가끔 노래방에 가는 것이었다. 정말 노래는 끊을 수가 없었다.


  2000년의 해가 저물고 2001년이 되었다. 일기를 쓸 때마다 자동적으로 19부터 쓰던 것이 2001년이 되면서부터는 적응이 되었는지 잘 틀리지 않았다.

  새해가 되었어도 집 밖에 나가지 않는 날들이 이어졌다. 설날 연휴에 잠시 내려갔다 온 것을 제외하고는 계속 틀어박혀 공부를 했다. 게이 동네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석호가 보고 싶어서 한 번 놀러가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도 꾹 참았다. 그것이 석호를 위한 길이었다.


  시험 공고가 뜬 것을 보고 가장 첫 시험 일정에 맞춰 원서 접수를 했다. 붙든 안 붙든 상관이 없는 일이긴 했으나 이왕이면 붙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시험 당일, 학력고사를 치러가는 마음으로 가서 문제를 풀었다. 술술 풀렸다. 10년 동안 공부를 한 것이니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종합 패키지로 과외를 했던 것이 신의 한수였던 셈이었다. 합격자 발표가 날 때까지 거의 매일이다시피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불렀다.




-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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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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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싸..1등 추천..
인쟈 읽어야지..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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