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여우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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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예상치 못하게 매복하고 있던 적군에게 잡혀 영혼까지 탈탈 털린듯한 기분이었다.

 

그렇게 멘붕인 상태로 힘겹게 혜원과 약속한 카페로 재훈은 무거운 걸음을 옮겼다.

 

카페의 문을 열자 창가에 앉아있던 그녀가 그를 보고는 손을 들고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많이 피곤해 보이네.” 무거운 몸으로 자리에 앉는 그를 보면서 그녀가 입을 열었다.

주문한 음료가 준비되었다는 신호에 그녀가 부지런히 일어났다.

내가 가서 ....”

아냐.” 그녀가 그렇게 말을 꺼내는 그의 말을 막았다.

시럽도 좀 더 넣어야하고.. 내가 알아서 가져올게. 그냥 앉아 있어.”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총총걸음으로 카운터로 향했다.

 

그제서야 그는 큰 한숨을 내쉬고는 손가락으로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었다.

그리고 시선을 돌려 창 밖을 내다보았다.

 

아직까지 그렇게 하룻밤을 보내고 지나쳐 버린 상대중에서 종로가 아닌 곳에서 이렇게 마주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리고 혹시라도 길에서 자신도 모르게 마주쳤다 하더라도 아마 상대방쪽에서 모르는 척 지나갔을 듯 했다.

종로에서의 하룻밤은 어느 누구도 자신의 현실의 생활에 끌어들이고 싶지는 않아 할 것이라고 그는 믿고 있었다. 그렇게 우연히라도 다시 만나게 된 곳이 종로가 아니라면 말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자신의 그런 예상이 완전히 빗나가 버렸다.

 

황당하고 어이없는 표정으로 그렇게 앉아있는 그의 앞에 다시 혜원이 커피가 담겨있는 트레이를 들고 돌아왔다.

 

가끔 사람들이 말하는 그 상식이라는 것이 도대체 뭘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해.”

자리에 앉은 그녀가 자신의 커피잔을 손에 들고 뜬금없는 말을 꺼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오늘 아침에도 말야. 아침 식사중에 아빠가 날더러 그러시는 거야. ‘상식도 없다, ‘상식 선에서 인생을 살라....”

그녀가 두손으로 만지작 거리던 커피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그렇게 말하는 아빠의 상식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더라고....”

 

오빠....” 그렇게 재훈을 부르고 그녀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왜 학창 시절에 부모님 생각과는 다르게 내 멋대로 행동하고, 또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외국으로 나갔는지 알아?‘

”........“

중학교 2학년때인가? 명절날이었어.“ 그녀가 말을 잇기 전 목소리를 다듬었다.

가족, 친척들 다 와서 모여있는 자리에서 무엇이 못마땅하셨는지 할머니가 엄마의 뺨을 때리신거야.” 그렇게 말하고 그녀가 다시 어처구니 없다는 듯 어이없는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그게 너무 쇼크였어. 그런데 더 화가 난 것은.....” 그녀가 인상을 찌푸리고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옆에 같이 있던 아빠가 한마디도 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 버리시는 거 였어. 마치 자기 아내가 뺨을 맞는 것을 보지 못하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야.”

내가 울면서 할머니에게 대들었는데, 할머니는 , 끌고 나가라고 하셨어. 같이 있던 친척 남자들이 날 다른 방으로 끌고 갔고...”

“........”

그 다음부터 잊으려고 해도 자꾸 그 장면이 떠오르는데, 때리던 할머니보다 아무소리 못하고 외면하던 아빠가 너무 꼴 보기 싫어지고 원망스러운 거 였어.”

그녀가 자신의 가방을 열고 손수건을 꺼내 눈 아래를 눌러 눈물 흔적을 지워냈다.

그게 무슨 부부고 가족이야. 도대체.....”

금방이라도 터질듯한 울음을 참는 듯한 표정으로 그녀가 그를 한번 바라보고는 창밖으로 시선들 돌렸다.

그때부터 아빠가 말하는 반대로.... 내 멋대로 살기로 결심했어. 유학도 그런 가족들 너무 꼴보기 싫고 소름끼쳐서 같이 살기 싫어서 결정한 거였고...”

“.......”

그랬던 아빠가 나에게 상식을 들먹이더라고.... 날더러 인생을 상식적으로 살래.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기 와이프의 뺨을 때리던 할머니에게는 그 전에도 그랬고, 그 후에도 찍소리도 못하면서 살면서....”

“.......”

 

 

사실 나 조금 전에  여기 앉아서...” 잠시 침묵을 지키던 그녀가 그의 눈치를 살피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길 건너편에 서 있는 오빠를 봤어.”

“........”

 신호등이 바뀌고 이제 오빠가 횡단보도를 건너오겠네 하고 보고 있는데 뒤에서 어떤 남자가 오빠의 팔을 붙잡더라구....”

, 그런게 아니라...그거는.....” 그녀의 말에 당황해진 그가 머릿속으로 변명거리를 찾기 시작했다.

주머니에서 휴대폰까지 꺼내서 그 남자에게 건네주는 오빠를 보면서 도대체 무슨 상황일까. 대체 둘이 무슨 관계일까 하고......”

“......”

생각해보니 중고딩때 교회에서 오빠가 관심을 준 여학생이 없었잖아. 그때 남학생들 모두 윤아 좋아한다고 고백하고 흘끗거리고 다들 그랬는데 오빠는 전혀 눈길조차 주지 않았고....”

마치 입이 굳어버린 듯, 아무말도 못하고 그는 그렇게 말하는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 그런 그를 흘끗 보고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오빠를 내 멋대로, 내 보잘 것 없는 그 상식이라는 것으로 재단하고 판단하고 싶지는 않아. 난 그냥 오빠가 최소한 우리 아빠 같은 사람은 아니길 바래. 오빠가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이든, 보호해주고 지켜주는..... 최소한 그런 사람이길 바래.”

 

그래 네 추측이 맞아.”

잠시 침묵을 지키던 그가 힘들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본 그 남자애.... 걔는.....”

그가 쉽게 말을 잇지 못하고 그녀를 흘끗 보고는 창백한 표정으로 시선을 돌렸다.

 

 

침대에 누워 불꺼진 어두운 천장을 재훈은 올려다 보고 있었다.

 

계획도 없이 의도치 않게 혜원에게 자신의 성정체성을 말해버리고 말았다.

눈을 감고 그는 팔을 들어 자신의 이마위에 올려놓았다.

 

예전에 종로의 어느 술집앞의 야외 테이블에서 손하와 키스하는 사진을 찍은 적이 있었다.

적당하게 취기가 올라 발그레한 표정의 손하도 보기 좋았고, 주변에 흥이 올라 왁자지껄한 사람들 사이에서 있던 그런 분위기도 좋았다.

그런 상황에 행복에 도취되어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그들을 보고 있던 친구가 사진으로 남기자며 찍어준 것이었다.

 

 

휴대폰으로 저장만 하는 것이 아쉬워 일부러 현상소를 찾아 인화를 하고 사진으로 뽑아 지갑에 넣어 가지고 다니던 것이 화근이 되고 말았다.

 

아들의 사생활을 지켜주는 것은 1도 모르던 그의 어머니가 샤워를 하러 들어간 그의 방에 들어왔다가 책상위에 놓여있던 지갑을 우연히 열어보았다.

 

간신히 타올로 허리 아래만 가리고 나온 재훈에게 그의 어머니는 불같이 화를 내면서 사진 속의 그놈과 어떤 관계인지추궁하기 시작했다.

조각조각 찢겨진 사진을 밟고 서서 그녀는 재훈을 험악한 표정으로 노려보았다.

 

모른척 할테니 다시는 그놈하고 만나지 마라.” 자신이 게이라는 것을 고백한 아들의 면전에서 어머니는 차가운 목소리로 화를 내셨다.

네가 밖에 나가서 뭘하고 돌아다니던 신경쓰지 않겠지만....” 서늘한 눈초리로 재훈을 노려보면서 그렇게 그의 어머니는 말을 이었다.

이놈이 내 애인이니 뭐니 하면서 꼬리 늘어뜨리고 다닐 생각은 절대 하지마!” 새빨개진 얼굴로 입에 거품까지 물면서 그녀는 그렇게 소리를 쳤다.

그냥....”

여전히 젖은 머리카락에서 흘러내린 물이 바닥에 떨어져 흥건해지도록 멍하게 서있는 그녀의 아들의 가슴을 검지로 눌러대면서 그녀가 말을 이었다.

가끔 나가서 아무도 모르게 안면없는 놈하고 즐기고 들어와. 다른 애들 술집가서 하룻밤 즐기고 오는 것처럼!”

몸을 돌려 방을 나가는 것 같았던 그녀가 다시 고개를 돌리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를 쏘아보았다.

어느 누구한테도 너가 그렇다는 거 눈에 띄지 마라. 말도 하지 말고. 늬 아버지는 절대 안되고!”

 

그렇게 말하던 그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라 그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막연히 모호하게 안될 것이라고 여기고 있던 손하와의 미래가 현실적인 장벽에 부딪히는 순간이었다.

 

사진 잘 나왔네.” 흡족한 표정으로 친구의 휴대폰을 들여다 보던 손하가 손을 들어 휴대폰의 사진을 그의 눈 앞에 들이댔다.

그치?”

진짜 좋다. 이건 사진으로 인화해서 지갑에 넣고 맨날맨날 수시로 봐야지.” 그렇게 말하면서 그가 손을 뻗어 손하의 뒷통수를 쓰다듬었다.

우리 일년마다 이렇게 똑같은 포즈로 사진찍자.”

정말?” 재훈의 말에 기쁜 표정으로 눈을 똥그랗게 뜨고 손하가 그를 바라보았다.

그럼. 당연하지. 뭐가 어려운 일이라고....”

손하가 손을 들어 그렇게 말하는 재훈의 이마를 한번 쓰다듬었다.

그렇게 계속 매년 사진을 찍어 놓으면, 나중에 이삼십년 후에는 우리가 서로 같이 이쁘게 나이들어 가면서 변하는 모습을 볼 수도 있고 말야.”

그런 그의 말에 손하가 그의 머리를 당겨 그의 볼에 키스했다.

나중엔 강아지도 한 마리 키우자. 가족 숫자를 늘려야지.”

난 고양이가 좋은데....” 그렇게 말하며 재훈이 손하의 이마를 가린 머리카락을 손가락을 장난스럽게 흩뜨렸다.

너 닮은 귀여운 고양이. 누워있으면 야옹거리면서 내 가슴 위로 올라와서 날 내려다보는 귀여운 녀석....”

 

그런 손하의 잔상이 그의 머릿속에 남아 그를 보고 웃고 있었다.

 

 

휴우

한숨을 내쉬고 몸을 돌려 모로 누웠을 때 그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형 벌써 잠자고 있던 건 아니죠?”

귀에 대고 있는 휴대폰에서 하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전에 나한테 뭐든지 해주겠다고, 그 정도 능력은 된다고 말했잖아요?”

녀석이 능글스러운 말투로 말을 이었다.

이제 하나 생각났는데, 해 주실 거죠?”

 

그의 말에 재훈이 무거운 몸을 일으켜 앉아서 휴대폰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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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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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수록 좋다.
적당한 선에서 전환되는 장면들이
잔잔한 드라마임에도
시선을 빼앗는 느낌이다.
작가님의 겸양이 미울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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