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코어 ㅎ빠 [2]-군시절 ‘아버지’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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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렇듯 생활고로 하드코어 업소로 인입된 보디빌더/트레이너들은 그 절박함으로 인하여, 돈이면 무어든 했다. 이에 난, 얼마든 쓸 형편조차 못 되는 사람임에도 수십 수백의 지출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 않을 수 없었다.
보디빌더. 탁구공마냥 맨질대는 두툼한 귀두에 왕란만한 불알 두 짝을 단, 수염자국은 물론이요 겨드랑이에 난 털마저 사내다운 보디빌더와,

트레이너 놈, 해외 사이트에서 딸캠 조회수가 수 만을 넘긴 트레이너,

이 둘이 상호 ㅆㅜ셔대는 광경을 보기 위하여라면 어지간한 직장인 월급 정도 돈은 하룻밤에도 기꺼이 지출이 가능하였다.

2.
아쉽게도 ‘동생 트레이너’ 놈은 다음에 갔을 땐 없었다.
hu장을 털린 충격이 어지간했던 모양이다. 이성애자임을 근거로 거절하다 결국엔 합의하였으나, 그럼에도 심리적인 충격은 여전하였던 게다.

아니, 단순히 hu장이 털린 그 자체가 전부가 아니었을 게다.
자기가 형이라며 따랐던 자가 테이블에 몸을 고정하는 일을 도왔으니 마음이 더 복잡했을 게다.
그리고, 여자친구가 있다면서도 쇠보다 단단히 발기하는 자지 때문에 복잡한 맘 더 복잡했을 터이고.

난 그저 좋았다. hu장에 무언가 들어오는 경험 자체가 처음인, 태권도 선수 출신의 트레이너.
맞다. 후에 안 사실로 그는 태권도장 관장이었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목에 핏대가 벌겋게 서도록 따먹히는 중에도, 어깨 근육과, 해병 문신이 새겨진 가슴 근육은 마치 굴할 수 없다는 듯 부풀었던 그 놈은, 타고난 보지였다.

저 자신을 사내로 알고, 여학생들의 체벌을 대신 맞아주고, 없는 돈을 쪼개여 여자 친구에게 목걸이를 선물했을 놈이지만, hu장의 쫄깃함은 여대생보다도 강렬하였다. 다시 볼 일이 없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3.
그렇게 두어 달 시간이 가고, 나는 터미널역에서 군시절 알게 된 군무원 형님을 만났다.
군시절 내 아버지같았던 존재. 아버지가 없는 내게 아버지 이상 포근하였던 그런 자상하신 큰형님이다.


이제는 사회인으로서 십 수년째 그 인연을 함께 하고 있다.

군시절에 알았고, 거기서 부자지간같은 진한 관계를 일구었고, 이후 다시 사회에 복귀하여 십 수년을 아는 사이라니 그 자체로 특별하다.

하지만 정말 특별한 것은 그가 나의 남색을 일깨웠다는 것이다.

나는 90년대에 군생활을 했다.
지금 놈들은 상상 못할 일들이 허다했다.
구타는 당연한 것이었고, 구타와 가혹행위를 없애자는 캠페인에 반대하는 자들이 공중파에 나와 본인의 의견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 휴가를 다녀온 후엔 성병검사를 한다며, 여자 간호원 앞에서 장병들이 팬티를 내리는 일이 자연스러운 시대였다.
그런 가운데 벌어진 가혹행위 중에는 물론 고추와 불알을 이용한 것들도 있었다.
후임병 ㅈ구멍에 성냥 하나를 끼운 뒤 불을 붙여, 남자답게 오래 버티도록 명령한 일도 있었고,
도색잡지를 보다 걸린 놈들은 열중쉬어 자세에서 군화로 불알을 걷어차였다. 물론, 여군에게.

그런 환경이어서일까.
이제는 형님으로 부르는 내 현역 당시 부대의 공무원이었던 그, 내 나이 스무살 적에 이미 마흔이 넘은 나이의 자상한 큰형이었던 이 형님은, ‘군무원이 주도하고, 장병들이 삽질하는’ 부대 내 각종 공사 등등을 마친 후 나와 함께 세신을 할 일들이 흔했고, 그 때마다 내 자지를 손으로 툭툭 건드리곤 하였다.

물론 장난이었다.
하지만 오랜 복싱으로 다져진 형님이 어린 내 눈엔 그저 근사했고,
그가 내 자지를 만질때면 나는 그 더듬는 짓거리가 좀 더 길기를 바랐다.

​4.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소변을 보는 내 옆에 그가 나란히 섰다.

“물줄기 소리 한번 시원타 인마.”

또 다른 ‘농담’에 나는 겸연쩍게 웃으며 ‘감사합니다.’ 라고 답했다.

‘우리 ○○이, 빤쓰에 자지 바로 옇지 말고 꼬치 함 바 보자.’

난 역시 유쾌한 투로, 못이기는 척, 소변을 보기 위해 내렸던 팬티와 바지의 차림 그대로 몸을 살짝 틀어 열중쉬어 자세를 취했다.

그는 평상시처럼 나의 자지를 툭툭 치는가 싶더니, 이내 자지를 손아귀에 가득 쥐곤 앞뒤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 때 깨달았다.
‘아, 세신장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있었지. 단 둘이 이런 상황은 처음이군.’

깨달았을 땐 늦었다. 손동작이 빨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오랜 운동으로 단련된 그의 팔근육이 덜컥대며 움직인다.
남자답게, 정자세로 열중 쉬어를 하려던 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다리에 힘이 풀리기 시작하였다.

한참을 만지던 그는 손아귀가 프리컴으로 축축해지자, 그것을 입으로 핥더니,
사정은 시키지 아니한 채 돌아갔다. 귀엽다는 듯 따귀를 손바닥으로 가볍게 착, 치고는 말이다.

5.
그와 군시절에 수도 없이 쳐댄 떡메질에 대하여는 다시 이야기하기로 한다.
그런 추억을 지나 다시 만난 그는 이제 종종 만나 술을 먹는 사이다.

물론, 이성애자 사내들이 만나면 룸살롱에 가듯 우리의 술자리는 ‘이 곳’이다.
다만, 그는 나보다 선수들을 다루는 방식이 훨씬 가혹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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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한 다음편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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