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라 황석호 - 14

작성자 정보

  •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14>



  주말에도 늘 동아리 방에서 시간을 보냈었는데, 밴드 멤버들이 모두 군대에 가고, 하나 남았던 석호마저 군대로 떠나고 나니 아무 할 일이 없었다. 나는 어깨를 늘어뜨리고 털레털레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무료한 시간을 아르바이트나 하며 때워야겠다고 생각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주인집 아주머니가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불렀다. 표정도 심상치 않아 보였다. 석호랑 욕실에서 머리를 감고 나오다가 아주머니한테 들켰는데, 아마도 다른 사람을 데리고 온 것을 질책하려는 모양이었다.


  “영기 학생.... 내가 진짜 이런 말은 안 하려고 했는데....”


  나는 죄송하다고, 그 친구 이제 군대에 가서 데려오려고 해도 못 데려온다고 먼저 말을 할까 망설이던 차에 아주머니가 말을 이었다.


  “우리 애 공부 좀 봐줘. 이노무시키가 아는 게 없어서 공부를 하고 싶어도 못한다는 거야. 어려운 부탁인 건 아는데.... 쬐끔만 좀 봐줘. 며칠 있다가 시험치거든....”


  어려운 부탁이 아니었다. 뭐 할 일도 없던 차에 오히려 잘 된 일이었다. 주인집 아들 철주는 중학교 1학년이었으니 가르치는 데에도 부담이 없을 듯 했다. 이왕 가르치는 거 제대로 해보자는 생각으로 남는 시간을 모두 할애하여 공부를 시켰다. 중학교 2학년 때 자습위원을 했던 경험이 힘을 발휘했다.

  첫날은 하기 싫은 티가 역력하던 철주는 하루 이틀 핵심 내용을 암기하고 나서, 풀리지 않던 문제가 술술 풀리는 것에 재미를 느꼈는지 시험을 칠 때까지 불평을 하지 않고 잘 따라왔다. 다행이었다. 시험을 치르고 며칠 뒤, 철주의 성적표가 나왔을 때 주인집 아주머니가 나를 또 불렀다.


  “영기 학생.... 내가 진짜 이런 말은 안 하려고 했는데....”


  아주머니의 이어진 말은 나를 솔깃하게 만들었다. 철주의 공부를 계속 맡아달라는 부탁이었다. 앞선 부탁은 공짜였다면 이번에는 공짜가 아니었다. 정식으로 나에게 철주의 과외선생이 되어 달라는 제안이었다. 월세를 제하고, 10만원을 더 준다는 조건을 걸어왔다. 고민을 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바로 제안을 수락했다. 매일도 아니고, 일주일에 며칠, 한 번에 2시간 정도의 시간이었기에 부담스럽지도 않았다. 학교를 다니는 중에 커피숍 아르바이트를 매일 해야 벌 수 있는 금액이었다.


  철주와의 과외 공부가 결정이 된 다음날, 나는 편지 한 통을 받았다. 겉봉에 ‘군사우편’이라고 커다란 도장이 찍혀 있었다. 석호에게서 온 편지였다. 나는 하루 종일 틈이 날 때마다 읽고 또 읽었다. 그리 긴 내용이 아니어서 담배를 피우는 동안 읽기에 딱 알맞았다.

  훈련소에서 생활하는 몇 가지 에피소드와 동아리 방에서 합주를 하던 것이 그립다는 내용이 전부였다. 그래도 마지막 부분이 재미가 있어서 계속 읽게 만들었다.


이곳의 생활들이 낯설고 힘들어 너를 그리워하기 전에 잠이 들지만 어느 날 니가 이 편지를 받으면 며칠 동안 너는 잠도 자지 못하겠지 이런 생각만으로 너에게 편지를 쓴다 답장은 필요 없어 그 시간에 베이스 연습이나 더 해 나중에 얼마나 실력 늘었는지 검사할 거야


  노래 가사를 응용한 문장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잠을 못 잔 것은 아니었지만 며칠 동안 석호의 편지를 가슴에 안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매일 매일 동아리 방에서 석호가 선물한 빨간 베이스 기타를 잡고 줄을 퉁기고 뜯었다.

  주인집 아들 철주와 본격적으로 공부도 시작했다. 중학교 첫 시험에서 제법 괜찮은 성적을 올린 철주는 한껏 고무되어 나에게 자신의 목표를 밝혔다. 1등이었다. 당장 이루겠다는 것은 아니고,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다음 학년에 올라갈 때까지 꼭 이루고야 말겠다고 스스로 다짐을 했다. 내가 공부를 했던 방식을 적용하여 철주를 가르쳤다. 개념을 이해하고 문제를 푸는 것뿐만 아니라 나는 설명을 요구했고, 철주는 자기가 이해한 것을 자기 방식대로 나에게 설명을 했다. 기특한 학생이었다.

  그렇게 베이스 연습을 하고, 철주를 가르치는 동안 싱그러운 5월이 지나갔다.


  6월의 첫날, 토요일 오후에 철주와 함께 공부를 하고 있었다. 아래층에서 아주머니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영기 학생~ 전화 왔어.”


  “철주야, 형 전화 받고 올게.”


  아래층으로 내려가 전화를 받았다. 내가 여보세요라는 말을 다 하기도 전에 수화기에서 말이 들렸다.


  “집에 있었네?”


  석호의 목소리였다. 나는 너무나 반가워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고 있던 때에 수화기에서 또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씨.발.... 연습하라니깐.”


  전화가 뚝 끊어졌다. 이게 뭔가 싶었다. 다짜고짜 욕을 하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리는 통에 반가움도 사라지고 어안이 벙벙했다. 내 입에서도 욕이 나왔다. 힘들지는 않느냐고, 보고 싶다고, 편지 받고 며칠 동안 품에 안고 잤다고, 나는 어떻게 하면 편지를 할 수 있느냐고, 이제 전화통화가 가능한 거냐고, 물을 것이 산더미이고, 듣고 싶은 대답도 그만큼이었는데, 일방적으로 전화가 끊어졌으니 욕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군대에 가도 여전히 독선적이고, 독단적이었다.

  다시 내 방으로 올라가 철주와 함께 공부를 했다. 내 말을 잘 듣는 철주가 있어서 아쉬움과 화를 누그러뜨릴 수 있었다. 하지만 30분이 채 못 되어 아래층에서 또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영기 학생~ 손님 왔어.”


  나를 찾아올 손님은 아무도 없었다. 내가 사는 곳을 아는 사람이라고는 나랑 석호뿐이었다. 나는 들어와 살고 있는 사람이고 또 집에 있었으니 손님일 수가 없고, 석호는 군대에 가서 전화까지 했으니 찾아올 수가 없었다. 도대체 누가 찾아왔는지 알아보기 위해 철주에게 양해를 구하고 방을 나서기도 전에 누군가 계단을 쿵쾅거리며 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노크도 없이 방문이 열렸다. 나는 귀신을 보는 것처럼 깜짝 놀랐다.


  “석호야....”


  “너 동아리방에 있을 줄 알고 갔는데 없어서 전화했어. 집에 있을 줄 알았으면 여기로 바로 왔을 거 아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어서 석호에게 자초지종을 들어야 했지만 먼저 철주와의 공부를 마무리해야 했다.


  “잠시만 앉아서 기다려. 곧 끝나.”


  철주가 내려간 뒤 무슨 일이냐고 내가 묻기 전에 석호가 나에게 먼저 물었다.


  “쟤 누구야?”


  “주인집 아들인데, 과외하고 있어.”


  “나가자.”


  “어디?”


  “밥 먹으러.”


  저녁을 먹기에는 좀 이르긴 했지만 어차피 먹기는 해야 하니 밖으로 나갔다. 석호는 대문을 나서자마자 담배를 피워 물었다. 나도 담배에 불을 붙이며 석호를 쳐다봤다. 커다란 덩치에 넙데데한 얼굴은 석호가 분명했는데, 많이 어색했다. 짧은 머리 때문이었다. 어색해진 짧은 머리를 보여주기 싫어서 훈련소에 따라오지 말라고 했던 말이 생각나 웃음이 나왔다.


  “너 황석호 맞아?”


  “당연히 황석호지.”


  석호는 내가 묻는 말을 뒤늦게 알아챘는지 짧은 머리를 흩뜨리며 욕을 했다.


  “씨.발.... 존.나 어색하고 적응 안 돼.”


  나는 석호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너 탈영했니?”


  “씨.발, 탈영은 무슨.... 어제 퇴소했어. 월요일부터 출근이야.”


  “너 방위야?”


  “응.”


  “어쩐지 따라오지 말라고 하더라....”


  저녁을 겸해 간단히 술을 마시면서 석호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방위라는 거 왜 말 안 했어?”


  “안 물어봤으니까.... 씨.발.... 방위도 안 갈 수 있었는데....”


  “어떻게?”


  “몸무게로 밀어붙이면 됐단 말야. 근데 하필 신검 받기 전에 심하게 앓아 누워가지고 잠깐 살이 빠져서 4급 받았어.... 에이 씨.발....”


  우리 세대는 신체검사를 할 때 1,2급이 현역이었고, 3,4급이 단기병 즉 방위였다. 신체에 이상이 있어서 진단서를 끊어가 5급을 받으면 면제였다. 89학번부터는 대학에서 교련 수업도 없어진 때라 감면을 받을 수도 없어서 만약 현역으로 가게 되면 2년 6개월을 만땅으로 채워야 했었다. 김민우가 불렀던 ‘입영열차 안에서’의 가사 중에 ‘3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대 나를 잊을까’가 얼추 맞는 셈이었다. 그런데 그 노래를 불렀던 가수 김민우도 30개월 현역이 아닌 18개월 방위로 군대에 가서 좀 웃긴 상황이 연출되었듯이 현역으로 가는 숫자가 그리 많지 않았다.

  내가 신체검사를 받으러 갔을 때, 내가 속해 있던 조 10명 중에 현역 대상인 1급과 2급을 받은 사람은 3명밖에 없었으니 어찌 보면 현역보다 방위가 더 흔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나는 석호가 당연히 현역일 줄 알았다. 신체 건강한 대한민국의 남자였기 때문이었다.


  “너는 몇 급인데?”


  “물어볼 게 뭐가 있어. 당연히 1급이지. 어디 걸릴 데가 하나도 없잖아.”


  “안 됐다....”


  “괜찮아. 남들 다 가는 군댄데 뭐....”


  석호는 군부대도 아니고, 자기 동네의 동사무소에 출퇴근을 했다. 방위 중에서도 가장 꿀을 빠는 방위인 셈이었다. 석호는 주말마다 동아리방에 와서 미친 듯이 기타를 치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석호뿐만이 아니었다.

  여름방학이 되면서 드럼을 치는 민구, 키보드를 치는 철우도 주말이 되면 동아리 방을 찾았다. 그러니까 민구와 철우도 방위였다. 왜 이제 왔느냐고 내가 물으니, 군생활에 적응을 하느라 학교에 올 수가 없었다고 대답했다. 민구와 철우는 사복을 입고 출근을 해서 잠시 군복을 입었다가, 퇴근을 하면서 다시 사복으로 갈아입고 퇴근하는 생활을 하는 주제에 그나마 군부대에 출퇴근을 한답시고 동사무소에서 생활을 하는 석호를 놀렸다.

  그래봐야 전쟁이 나면 적의 포로로 잡혀 적의 군량미를 축내야 하는 임무를 띤 방위병이라는 것은 모두 똑같았다. 나는 민간인 신분으로 방위병들을 모두 싸잡아서 놀렸다. 그때 당시 방위병들을 놀리는 말들이 참 많았다. 전쟁이 나서 총알이 빗발치다가도 방위병 출신들 앞에는 5시만 되면 총알이 딱 멈추는데 그 이유가 퇴근을 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둥, 방위병들은 적의 여군과 싸워서 최대한 비기는 것이 목적이라는 둥, 적에게 가벼운 찰과상을 입히고 장렬하게 전사해야 하는 신세가 방위병이라는 둥 사람들은 말을 참 잘도 지어냈다.


  사람들이 방위병들을 놀리거나 말거나 석호를 비롯한 우리 밴드 멤버들은 주말이 되면 동아리방에 모여서 신나게 연주를 했다. 지난 1년 동안 내 베이스 실력도 많이 늘었기에 민폐를 끼치지 않을 정도는 되었다. 나 혼자만 민간인이고, 모두들 군바리들이라 다들 머리가 짧았던 탓에 나도 그들과 똑같이 머리를 짧게 깎았다. 멤버들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했지만 어차피 나도 군대에 가야하고, 공연을 할 일도 없었으니 머리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렇게 멤버들이 모여 합주를 하는 동안 합이 착착 맞아가는 경험을 하면서, 퇴근 시간을 잘 맞추면 축제 공연도 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피력하면서, 가을을 보내고 겨울을 맞이했다. 

  나는 2학기가 끝난 겨울방학에도 집으로 내려가지 않았다. 철주가 1학기 기말 시험에서 목표로 세웠던 1등을 바로 해버리는 바람에 철주뿐만이 아니라 내가 가르쳐야 할 학생들이 몇 명 더 늘었기 때문이었다. 일주일에 며칠 몇 시간의 투자만으로도, 하루 온종일 투자해서 쉬지 않고 한 달 내내 일을 해야 받는 노가다 임금보다 더 많이 벌었다. 철주가 알아서 영업을 한 덕분이었다.


  동아리방에서 합주를 하면서, 철주와 그의 친구들을 가르치는 동안 한 해가 기울고 새해가 왔다. 그리고 긴 겨울방학도 지나 3월이 다가왔다. 하지만 나는 새 학년으로 올라가지 않았다. 군대 때문이었다. 나도 대한민국의 남자였으니 그것을 피할 수가 없었다. 영장이 나오지 않았지만 먼저 휴학을 했다가 3월에 영장이 나오면서 군휴학으로 변경을 했다. 입대 날짜는 4월, 식목일 다음날이었다. 추운 겨울이나 더운 여름이 아니어서 정말 다행이라 생각했다.


  입대 일주일 전 주말에 밴드 멤버들끼리만의 술자리가 벌어졌다. 나는 군입대 송별회를 군바리들과 하는 셈이었다. 나도 그렇고, 멤버들도 그렇고 그저 술잔만 부딪칠 뿐 별 말이 없었다. 그래도 함께 있을 때 가장 말이 많은 드럼 치는 민구가 말을 꺼냈다.


  “야, 이영기 너는 어떻게.... 얼굴도 잘생긴 게 몸에도 이상이 하나도 없냐?”


  키보드를 치는 철우도 한 마디를 보탰다.


  “1급이 뭐야 1급이. KS 마크 찍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남자가 돼서 1급을 받을 수가 있냐고.”


  민구가 그 말을 받았다.


  “진짜 사람이면 어디 한 군데 좀 이상이 있어야 되는 거 아냐? 나처럼 눈이라도 나쁘던가, 석호처럼 살이라도 찌든가. 철우 좀 봐라. 특전사 갈 것처럼 생긴 놈이잖아. 근데 이런 놈도 혈압이 높다고 3급을 받는데, 그딴 1급 받아서 뭐하냐고. 알아주지도 않는데....”


  석호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나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석호가 왜 말을 하지 않는지는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내가 말이 없는 이유는 하나였다. 군대에 가 있는 동안 석호를 보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슬픔 때문이었다.


  밴드 멤버들의 전송을 받으며 특별시를 떠나는 기차에 올랐다. 기차가 출발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플랫폼까지 따라온 멤버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석호의 손에는 내가 치던 베이스 기타가 들려 있었다. 군대에 가 있는 동안 자기가 관리를 잘 해 놓겠다고 해서 맡겨둔 것이었다. 석호라면 믿을 만했다.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멤버들이 따라오면서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러나 나는 곧 고개를 돌렸다. 손 흔드는 사람들 속에 석호를 남겨둔 것이 미안했기 때문이었다. 석호에게 눈물을 보일 수가 없어서였다.

  기차를 타고 내려오는 동안 석호 생각만 했다. 기차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도 석호만 생각했다. 집에 도착해 일주일을 가족과 함께 보냈다. 그 일주일도 금세 지나가 버려 훈련소에 가는 날이 다가왔다. 


  집 떠나와 버스 타고 훈련소로 혼자서 가는 날, 엄마에게 큰절하고 대문 밖을 나서니 가슴 속엔 무엇인가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훈련소에 도착해 내 또래의 빡빡머리 남자들과 줄을 지어 걸어갈 때 석호 생각이 또 났다. 눈물이 날 것 같은 걸 이를 앙다물고 참았다.

  훈련소의 생활들은 낯설고 힘들었다. 진짜 노래 가사처럼 석호를 그리워하기 전에 잠이 들었다. 석호에게서 한 통의 편지도 오지 않았다. 힘든 훈련소 생활을 하면서도 나에게 편지를 보냈던 석호였으니 당연히 나에게 편지를 보낼 법도 했지만 석호는 그러지 않았다. 내가 석호에게 편지를 보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석호에게 편지를 보내서 답장을 받으면 정말 며칠 동안 잠도 못 자고 눈물을 떨구다가 무슨 사고라도 칠 것 같아서였다.

  힘든 훈련소에서 퇴소를 하고, 자대 배치를 받고, 경계근무를 섰다. 지루하고 갑갑한 생활이었다. 그나마 군가를 부르는 때에 큰소리로 부르면서 스트레스를 날렸다.

  그렇게 하루하루 시간을 보냈다. 국방부의 시계도 째깍째깍 흘러 내가 쓰고 있던 군모에 붙은 작대기 하나가 떨어지는 때가 왔다. 중대장에게 신고를 하고, 위병소를 나왔다. 부대 정문을 나오자마자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곧바로 집으로 돌아와 이틀 동안 주변을 정리했다. 그리고 바로 특별시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모든 것이 급했다.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학교로 향했다. 특별시에서 내가 갈 곳이라고는 학교밖에 없었다.

  1년 동안 머물렀던 자취방으로 갔다. 주인 아주머니가 엄청 반겨주었다. 내가 쓰던 방은 내가 나갔던 그대로 비어 있었다. 다시 나와서 동아리방으로 올라갔다. 미리 연락을 해두었으니 멤버들이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떨리는 마음으로 동아리방 문을 열었다. 역시나 덩치 큰 석호가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내가 안으로 들어서자 멤버들은 모두 나에게 달려 들어 나를 엎어 놓고 두드려 패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를 격하게 껴안고 반가움을 표했다. 민구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씨.발, 왜 말 안 했어?”


  “안 물어봤잖아. 니들도 나한테 말 안 했잖아.”


  석호가 나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그럼 진짜 다 끝난 거야?”


  “응.”


  철우가 감탄을 하며 나에게 물었다.


  “와~ 진짜 내가 신의 아들 6개월 방위를 보게 되다니.... 그럼 너 2대 독자였던 거야?”


  “아니. 부사망 독자.”


  석호가 물었다.


  “부사망 독자? 그럼 아버지....”


  “응.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어. 애.비 없는 외아들이라서 6개월 방위야. 씨.발 지겨워 죽는 줄 알았네.”


  멤버들은 말없이 나를 바라봤다. 표정이 심상치 않아 보여서 나는 짐짓 웃어 보였다. 멤버들도 내 어깨를 툭 치고는 함께 웃었다. 3월에 훈련소 입소를 했던 민구와 철우는 나보다 한 달 먼저 소집해제가 되어 같은 민간인 신분이었지만 5월에 입소를 했던 석호는 아직 한 달을 더 남겨 두고 있었다.




-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관련자료

댓글 1

<span class="sv_wrap"> <a href="https://ivancity.com/bbs/profile.php?mb_id=ldj1999" data-toggle="dropdown" title="사십초 자기소개" target="_blank" rel="nofollow" onclick="return false;"> 사십초</a> <ul class="sv dropdown-menu" role="menu"> <li><a href="h님의 댓글

  • <spa…
  • 작성일
재미있어요.
생생하고  정말 흥미진진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