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번역소설) 필로스토지(Philostorgy)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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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죽은 말, 필로스토지(Philostorgy)
; 지금은 사어(死語)가 된 자연적인 애정, 부모의 사랑(Philostorgy).
“아직 집에 가지 마.” 록시가 말했다. “스트레스 때문에 면역력이 다 없어질 거야.”
“언젠가 엄마한테 말해야겠지.” 프레스턴이 말했다. “안 그러면 잔인할 것 같아.”
두 사람 모두 그가 12년 전에 어머니가 어떻게 반응했는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가 양부모에게 아우팅했다. 그의 양어머니는 그녀의 자연 가족에는 동성애자가 없었기 때문에 그것은 동성애가 유전적이라는 증거라고 냉담하고 싱거운 어조의 시카고 억양으로 말했다. 하지만 프레스턴의 양아버지는 따뜻하게 받아주었다. 그는 프레스턴에게 “우리는 애정이 가는 쪽으로 선택을 하지”라고 말한 뒤, 마치 총을 들고 있지 않다고 보여주려는 양 손바닥을 펴더니 프레스턴의 얼굴을 만졌다.
록시는 퇴근해서 집에 돌아온 그 날 밤을 기억했다. 왜냐하면 프레스턴이 어둠 속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그가 싸구려 루시라고 부르는 적포도주를 병째로 마시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괜찮아?” 그녀가 물었고, 그가 대답했다. “난 기분은 좋은데 마땅히 표출할 데가 없네.”
오늘 밤, 프레스턴 월리스는 사워 매시 (위스키 등의 증류에 쓰는 산성 맥아즙), 록시 애더튼은 맥주, 로나 페어웨더는 허브차를 마시고 있다. 이날은 세 사람의 11년 만에 첫 재회였다. 프레스턴은 최근 진단을 받은 것을 제외하면 모두 나이를 훌륭하게 잘 먹고 있다고 생각했다.
“엄마한테는 아무 말도 안 해도 돼. 치료제를 찾아낼 사람은 그들이 아니라 바로 너야.”
“과학이 뭐 그렇게 딱히 누굴 짚어서 가리고 남의 사정 봐주는 것이 아니라서....” 그는 이렇게 말하고는 로나의 반응에 대해 즉각적이고 무시하는듯한 낙관론을 보이며 미소를 지었다. 그가 아직 어머니에게 말하지 않았다는 건, 그가 어머니가 그 당시의 방식으로 자신의 병을 완화해 줄 거라고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않았다면 그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할는지도 모른다. “아, 내가 그 치료법을 찾았다는 걸 읽은 적 있지 않아?” 몇 년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는 프레스턴은 이런 순간에 가족들이 자신에게 우호적인 지원을 주는 것을 거의 기대하지 않았다.
“DHPG(Dartmouth-Hitchcock Privacy Group;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모임)에 갈 거야?”
“그게 뭔지 안다는 게 놀랍네.” 그가 말했다. 그녀가 울음을 터뜨렸을 때 그는 더욱 놀랐다.
“난 네가 걱정돼.” 록시가 외쳤다. 그의 약이 심장의 심방 정맥에 직접 주입되는 카테테르(catheter; 체내에 삽입하여 소변 등을 뽑아내는 도관)를 삽입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서 그 약은 그의 피로 퍼져서 몇 초 안에 그의 몸을 통해 빠르게 전달될 것이다. 그녀는 그 약이 아직 FDA의 승인을 받지 못했고 치료제가 없을 때 주어지는 마지막 보루(compassionate-use basis)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간호사들이 프레스턴에게 스스로 어떻게 주사해야 하는지 가르쳐 줄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혼자 정맥주사 밑에 앉아 혼자 할 수 있을 것이다. 집에다 수액 걸대를 놓고 일주일에 다섯 번, 한 시간씩 자신에게 주사를 놓고 누워있는 것이다. 그는 자당 자루와 의료 폐기물을 위한 커다란 빨간색 플라스틱 용기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녀는 이 병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모두 다 알고 있었다.
로나도 울기 시작했다. 그것은 프레스턴의 병명보다는 록시의 울음이 주요인이었다. 왜냐면 프레스턴은 자기 병명을 마치 저녁 뉴스 특파원이 뉴스를 말하듯 냉정하고 거리를 둔 채 얘기했기 때문이다. 로나는 그의 동정을 유심히 관찰했다. 그는 가슴 앞으로 팔짱을 끼고 두 손은 팔 아래로 내리고 발을 뻗고 앉아 있었다. 그의 머리는 전쟁터로 나가는 사람처럼 짧게 잘려져 있었다. 그녀가 알고 있던 연약하고 부드러운 남자는 어떻게 어디로 갔을까? 그는 공항 주류 판매점에서 위스키를 사는 사람처럼 온통 회색의 정장에, 넥타이에, 셔츠를 입고 양복바지를 차려입은 사람이었다. 귀에 은색 귀걸이도 그의 해병대 같은 남성적인 느낌을 완화하지 못했다.
프레스턴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마치 그가 줄 수 있는 소유물, 마치 유품처럼 그들의 슬픔의 순간을 허락했다. 그의 주치의가 그에게 진단을 내리는 동안, 프레스턴은 책상 뒤의 거울을 들여다보았고, 그 반사된 모습은 그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너는 아픈 사람이다. 어떻게 할 생각인 거죠? 그는 이런 것들을 아는 사람이라면 제 죽음이 빠른 죽음, 특히 감염, 그것을 치료하는 데 사용되는 가혹한 약이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몇 주째 심해져만 가는 팔 밑의 통증이 있었다. “내가 느껴지는 건 근육밖에 없네요.” 의사가 그의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심층검사에 들어가기 전에 좀 더 객관적인 증거를 기다려야겠어요. 가슴 운동을 잠시 중단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하지만 두 사람 모두 림프종을 두려워했다.
프레스턴은 여자들이 눈물을 흘리자 다이닝룸을 둘러보았다. 세 사람이 학부생으로 함께 살 때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방이었다. 남쪽 창문이 있어서 온종일 해가 들어왔다. 그 안에는 테이블과 의자, 식물, 12년 전에 그가 놓은 것과 같은 장소에 있는 필로덴드론(토란과(科)의 상록 덩굴 식물 (열대 아메리카산(産))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세 사람이 떨어져 산 10년 동안, 그것은 천장만큼 높이 자라서, 각각의 새로운 잎이 펼쳐지고 있었다. 필로덴드론의 이름은 나무라면 자기애를 내포하고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필로, 사랑; 덴드론, 나무를 사랑하는 나무 또는 나무에 대한 사랑. 뭔가 나르시시즘이 들어 있는 것 같다. 필하모닉은 음악에 대한 사랑, 철학, 지혜에 대한 사랑, 필로폴레믹(희귀), 전쟁이나 분쟁에 대한 사랑. 필터(Philter)는 사랑의 물약이었고, 바람둥이(philander)는 실제로 남자를 좋아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자연적인 애정을 뜻하는 필로스토지는 이제 다시는 쓰지 않는 말이 되어버렸다.
“내가 식중독에 걸린 날 밤 기억나?” 그가 갑자기 물었다. 로나와 록시는 동시에 그를 올려다보았다.
로나가 미소를 띠며 말했다. “네가 현관에 누워 있는 걸 발견했었지. 넌 유령처럼 하얗게 질렸어.”
“너희들이 내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가 듣지 못해서 들리는 데까지 난 바닥에서 엉금엉금 기어가야 했어.”
록시는 구겨진 종이 타월로 코를 닦았다. “너를 병원에 데려다 놓은 걸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 차 안에서 과호흡을 하고 계기판 아래로 미끄러졌잖아. 그러다가 네게 응급실에서 정맥주사를 손등에 놓을 때 로나가 기절했었어.”
“그렇게 아팠던 건 평생 처음이었어.” 그가 이렇게 말하고는 조금 망설였다. “여태까지는 말이야.”
“난 네 어머니가 병원에 오도록 허락하지 않았던 것도 기억해. 네가 건강할 때도 어머니가 찾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억지 부린 것 기억해?” 로나가 말했다.
“내 기준을 바꾸지 않으면 다시는 어머니가 내가 살아 있는 모습을 보지 못할 거야.” 그러고는 그는 웃음을 터뜨렸다.
록시는 필로덴드론에서 죽은 잎을 찢기 위해 일어났다. 그녀는 머리를 가슴에 대고 신음을 내며 나뭇잎을 뜯었는데 그것은 마치 나무에서 손톱을 뜯어내듯 보였다. 로나는 찻잔을 입에 대고 있었다. 프레스턴은 그것이 테두리를 따라 갈라진 것을 보았고, 박테리아가 갈라진 도자기에 살고 식기세척기의 열도 견뎌냈다고 생각했다, 그는 우리는 볼 수 없는 것에 가장 취약하며, 그녀가 임신한 아기는 거의 두 살이 될 때까지 자체 면역체계를 갖지 못할 것이며, 그녀 자신의 면역체계가 임신으로 인해 우울해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그녀에게 말하고 싶었다.
대신에 프레스턴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간염에 걸렸던 거 기억나?”
로나가 ‘아, 프레스턴’이라고만 말했지만, 록시는 이 오래된 농담에 좀 더 일반 남자인 것처럼 대꾸했다. “네가 있던 병실은 노란색이었어.” 그녀가 말했다. “노란색 목욕 가운에 노란 침대보를 깔고 있었는데, 내가 찾아왔을 때 바나나를 먹고 있었잖아. 그러다가 의사가 나타났어.”
프레스턴이 말했다. “로 박사님.”
“로 박사님이 온통 옐로우(노란색, 혹은 동양인에 대한 속어)군이라고 말씀하셨고 그러는데, 너는 ‘당신도 그래요’라고 했지.”
“오, 프레스턴, 너 진짜 그러지 않았지!”
“내가 그랬지, 록시? 내가 그랬다고 말해.”
“너한테 어울리는 색이었어.” 록시가 말했다. 그녀는 그의 가슴과 목을 바라보았다. 그가 아프다는 징후는 전혀 없었다. 셔츠는 넓은 어깨에 단단히 걸쳐져 있었다. 그는 뉴욕으로 이사한 후 체육관에 가입했었다. 그녀가 함께 살던 남자는 근육에 질식해 있는 것 같았다.
프레스턴은 얼음을 가지러 부엌으로 갔다. “일어나면서 맥주 한 잔 갖다줄까, 록시?”
“술을 마셔도 괜찮아?”.
“아니, 그래도 물어봐 줘서 고마워.” 그는 냉장고에 머리를 처박고 말했다. “여기 인테리어 정말 잘했다. 내 아파트도 이렇게 꾸미고 싶은데 임대라서."
“네가 있던 낡은 침실을 없애고 부엌을 확장하려고. 그러고 보니, 저녁 식사 준비는 한 30분 더 걸릴 것 같아. 기다릴 수 있겠어, 아니면 배고파 죽겠어?” 순간 그녀는 머리를 떨어뜨려 손안으로 모았다. “내가 어쩌자고 죽는다는 말을 했는지 몰라.”
그녀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 보면서, 그는 그녀가 부엌으로 그를 지나칠 때 그녀의 얼굴을 만졌다. “괜찮아, 친구.” 그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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