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전무협] 색로(色路) 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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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반응이 괜찮아서 막 힘이 솟네요.
댓글과 추천, 별점 주신 여러분께 정말정말 감사드립니다.
예서휘와 현수는 아공간(我空間)이라는 권능을 갖고 있어 따로 여장을 꾸리거나 할 일은 없다. 하지만, 평범한 인간인 주윤성은, 특히 마교의 습격으로 가진 모든 것을 잃었던 그로서는 제대로 된 속곳 하나 없어 이래저래 구입할 게 많았다.
객잔에 일러 대충 구한 옷은, 그래도 비단으로 짜인 고급스런 의상이었으나 천하제일가의 소가주인 주윤성이 평소에 걸치던 옷감에 비하면 다소 손색이 있었다.
그래도 주윤성은 그런 점을 까탈스럽게 느껴 남에게 티를 내는 성격이 아니었던 터라, 그저 예서휘와 현수에게 정중히 포권지례로 다시 한차례 예를 표할 따름이었다.
현수는 아미파에서 나올 환족 장로를 기다려야 했기에, 예서휘가 주윤성을 이끌고 객잔 밖을 나왔다.
소문만 무성했던 이들 중 하나가 대놓고 객잔 바깥으로 나타났지만, 사람들은 이상하게 예서휘를 쳐다보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그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 것처럼 평소처럼 아무렇지 않게 지나칠 뿐이었다.
예서휘가 딱히 그 찬란한 미모를 가린 것도 아님에도 말이다.
소문을 떠나, 예서휘의 하늘에 닿은 외모라면, 누구라도 지나치다 시선을 빼앗기기 마련이거늘, 그러한 낌새조차 보이질 않고 있으니, 실로 의아할 따름이었다.
“이 땅도 많이 평화로워졌군.”
사람으로 바글거리는 장터를 거닐며 예서휘는 손에 든 섭선을 팔랑였다.
은빛으로 화려하게 짜인 자수가 따스한 햇살을 받아 은은하게 빛을 발하는 새하얀 장포를 걸친 예서휘의 모습은, 그야말로 범상치 않았다. 이제는 나름대로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던 주윤성조차 가끔 넋을 놓고 저도 모르게 예서휘의 모습을 눈으로 쫓게 된다.
“일단, 자네 옷을 몇 벌 사야겠고… 또 필요한 건 없는가? 부담가질 것 없이 말해보게.”
“송구합니다. 구명지은도 모자라…… 제가 아둔하게 전낭마저 잃는 바람에….”
전낭뿐이랴, 목숨처럼 지니고 있던 검까지 마교도의 손에 잃었으니, 주윤성은 무인으로서 정말 부끄럽기 짝이 없을 따름이었다. 그 검도 북천제가의 소가주에 걸맞는 명검이었으니,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입이 썼다.
‘다른 건 다 잃어도 그 검은….’
명족 사내를 만났을 때만 해도 멀쩡했던 검은, 어째서인지 주윤성이 기절한 후 그 행방이 묘연해졌다. 단순히 예서휘와 현수가 챙기지 않았을 뿐이지만, 주윤성은 차마 두 은인을 향해 뻔뻔하게 자신이 지녔던 검의 행방을 묻고 따질 염두가 나질 않았다.
“그리고, 자네의 검은 내가 선물하고 싶은 게 있는데.”
“…예?”
마치 속을 엿보기라도 한 것처럼 예서휘가 검 이야기를 꺼냈다.
덕분에 주윤성은 괜히 죄지은 것도 없이 가슴이 철렁하여 대답이 늦어졌다.
“낙성진천. 그 이름에 걸맞는 검을 하나 갖고 있네. 기대해도 좋을 것이야.”
오히려 기대는 자신이 하고 있는 것처럼 눈을 빛내는 예서휘는 실로 즐거워 보였다.
주윤성은 잠시 넋이 나갔다가 재빨리 정신을 수습했다.
“이 은혜를 어찌 다 갚아야 할지….”
평소라면 마다했을 주윤성이었지만, 무인에게 무기는 목숨과도 같았다. 오히려 예서휘와 현수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려면, 하루라도 빨리 손에 무기를 쥐고 있는 게 차라리 낫겠다는 판단에, 그저 감사를 표할 따름이었다.
그렇게 시장을 활보하며 주윤성에게 이것저것 한가득 사서 떠안긴 예서휘는 만족스럽다는 얼굴로 섭선을 팔랑거렸다. 양손 가득 짐을 든 주윤성은 처음엔 송구함에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일관했으나, 지금은 어딘가 해탈한 듯한 모습이었다.
“저기 저 다루에 들러 차나 한잔하고 이만 돌아가세나.”
“예, 은공.”
드디어 해방인가, 하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안도했다가 주윤성은 퍼뜩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런 은혜도 모르는 망종이 다 있나, 하고 속으로 자신을 탓한 그는, 벌써 저 앞에 나아가고 있는 예서휘의 뒤를 얼른 쫓아갔다.
성도(省都)인데다 봉황검문이 자리잡은 곳이라 그런지, 다루도 그 규모가 범상치 않았다.
예서휘는 일부러 자신의 존재감을 살짝 드러내어, 점소이가 자연스럽게 가장 좋은 자리로 안내하도록 유도했다. 덕분에 바깥 풍경이 가장 보기 좋게 드러난 곳에 자리를 잡은 예서휘와 주윤성이었다.
“활기가 가득한 게 참 좋구먼.”
이제 갓 약관을 넘겼을 법한 젊은 외모를 하고, 예서휘는 입만 열면 늙은이와 같은 말투였다. 하지만, 그것이 결코 어색하거나 이상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어쩌면 저 신비로운 보랏빛 눈동자에 가득 찬 현기(玄機)가 오히려 그에 대한 개연성을 부여하고 있었다.
“다루의 규모가 크다 싶었더니, 동정벽라춘(洞庭碧螺春)이 다 있군. 자네는 무얼 마시겠는가?”
“저도 같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주윤성은 여기서 가장 싼 차를 골랐다가는 예서휘의 체면을 오히려 손상시킨다는 걸 알고, 염치불구하고 비싼 차를 골랐다. 그리고 그런 주윤성의 속내를 짐작한 예서휘는 더더욱 그가 마음에 들었다는 듯 슬며시 미소를 짓고는 점소이를 불러 차와 다과를 이것저것 주문했다.
‘그나저나, 동정벽라춘이라니….’
벽라춘은 정말 고급차였다.
규모가 크고 꾸밈이 화려하기 짝이 없는 고급 다루인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그래도 고관대작이나 겨우 입에 댈만한 벽라춘을 팔고 있다니…. 벽라춘 자체가 십대명차로 그 위명이 자자한 고급 차이기도 하지만, 청명(淸明) 이전에 딴 찻잎으로 만든 동정벽라춘은 왕실이나 황실, 민간으로는 거대 세가에나 겨우 진상되는 최고 등급의 차인 것이다.
그런 차가 이런 시장바닥에서?
아무리 선하고 바른 주윤성이라 할지라도, 가짜는 아닐지 의심이 가는 것도 당연했다.
그러는 사이 다과 접시를 들고 온 점소이가 다탁 위에 즐비하게 늘어놓기 시작했다.
“…….”
주문한 것보다 많은 것 아닌가?
그런 의미의 시선으로 주윤성이 바라보자니, 점소이가 붉게 물든 얼굴로 예서휘를 힐끔 바라보더니,
“주인 어르신께서 대접하고 싶으시다 하여….”
하고 우물쭈물 대답했다.
주윤성은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존재감을 살짝 드러냈을 뿐이지만, 예서휘는 이미 이 안에 앉아있는 모든 이의 시선을 사로잡은 지 오래다. 이런 고급스러운 다루에 드나드는 사람들인 만큼 체면을 차리고는 있지만, 힐끔거리는 시선이 참으로 노골적이기 짝이 없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그들은 몰래 훔쳐볼 뿐, 그 이상의 행동으로 옮기지를 못했다.
보통 이쯤 되면 안하무인의 표본 같은 이가 하나둘 정도 나와도 이상할 것이 없을 터인데도 예서휘의 존재감에 짓눌려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고맙다고 주인장께 인사 전해다오.”
예서휘는 해사하게 웃으며 점소이에게 봉사료로 은자 하나를 건넸다.
봉사료는 가게와는 상관없는 오로지 점소이만의 추가 수당이다. 뜻밖의 거금에 점소이가 놀라 어쩔 줄 몰라 하자, 예서휘는 직접 아이의 손을 붙잡고 은자를 쥐여주었다.
푸짐한 다과 한 상에 기분이 좋아진 예서휘는 우아한 동작으로 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그리고는 어딘가 오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
그 모습에 주윤성은 역시나 가짜였나?! 싶은 마음에 차를 한 모금 입에 머금었다.
“……?”
허나, 놀랍게도 동정벽라춘은 진품이었다.
그럼 도대체 어찌하여 저런 표정을?
의아해진 주윤성이 속내를 감추지 못했음인가, 예서휘가 싱긋 웃으며 자세를 낮추고 주윤성에게 속삭였다.
“수가 내려준 차에 비하면 좀 모자라지 않더냐.”
“아.”
주윤성은 그제서야 납득하고야 말았다.
그러나, 고작 두어 번 얻어 마셨을 뿐인 주윤성조차 예서휘의 말을 들어 보니, 그 고급스러운 동정벽라춘이 맛없게 느껴졌다. 결국, 그들은 다과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렇게 달콤한 다과를 맛보던 둘의 귓가로, 한 무리의 말소리가 흘러들어왔다.
“자네 그 소문 들었나? 세상에 그 천기신궁이 봉문을 깼다더군.”
“그것이 참인가? 헛소문은 아니고?”
천기신궁(天氣神宮).
천기를 읽어 시대의 흐름을 기록하고 가끔 커다란 재앙이나 복을 예언하기도 하는, 신녀(神女)들의 비처를 말함이다. 천주목과 환족의 강림 및 명족의 패퇴를 예언한 천기신궁은 대정제국이 건국하자 홀연히 봉문하여 세상에서 종적을 감춘 문파였다.
그녀들의 마지막 활동 기록은, 태조의 국혼 때 이후로 존재하질 않았다.
그것이 벌써 이백 년 정도 흘러 천기신궁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나 했거늘.
주윤성 또한 그들의 말을 듣고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을 정도였다.
다루가 순식간에 천기신궁의 일로 떠들썩해졌다.
그 소란스러운 와중에 예서휘만 담담하게 다과와 차를 맛볼 따름이었다.
주윤성은 다루에서 나와 객잔으로 돌아오는 와중에도 천기신궁의 소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천기신궁은 그저 전설 속의 문파인 줄 알았습니다. 그 옛날 도술로 이름을 떨친 모산파(茅山派)나 전진교(全眞敎)처럼 말입니다. 태조께서 현 태황태후 되시는 분과 국혼을 올리실 때 축언을 읊어 온 중원의 하늘이 채운(彩雲)으로 물들었다는 이야기도 사실일까요?”
“그래, 천기신궁의 신녀들은 대대로 하늘과 소통하는 여인들이 모여 그 맥을 이어왔지.”
“그렇군요! 그럼, 황궁에 계시는 태보(台輔)께서도 정말 전설 속의 신수(神獸) 기린(麒麟)이신 걸까요?”
예서휘는 그저 알쏭달쏭하게 의미 모를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대정제국이 건국한 이후로 태보의 자리는 쭉 한 명이 이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전설처럼 소문만 무성한 그의 정체는, 신수 기린이 인간의 모습으로 화한 것이 맞다.
나라가 건국하기 전 명족으로 인해 혼란스러울 때, 환족과 함께 한 마리의 신수가 강림했고, 그 신수는 천명을 받아 이 세상을 이롭게 할 군주를 찾아 모시기 위해 온 중원을 떠돌아다녔다.
그리하여 발견한 것이, 정태조(正太祖) 단엽각란 온 상륭(丹葉角欒 瑥 尙隆)이었다. 온가(瑥家)의 천덕꾸러기일 뿐이었던 하찮은 사내가 신수와 만나 하늘에서 강림한 환족과 우애를 나누고 결국에는 재앙인 명족을 이 땅에서 몰아내는 데에 앞장섰으니, 그야말로 대단한 전설이었다.
하지만, 이 나라가 세워진 지 벌써 이백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백성들의 의식 속에서 어느새 전설은 전설로만 남은 것이다.
설마, 그 전설 속의 신수 기린이 아직도 태보로써 조정에 남아 대대로 황제를 보필하고 있다는 것을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
그런데도 과연 천하제일세가의 소가주라 그런가, 주윤성은 아는 게 많았다.
그래도 주윤성은 짐작조차 못할 것이다.
명족도 환족도, 신수 기린도 모두 예서휘가 이 땅으로 내려보냈었다는 것을.
▣
자빠트리기 전에, 데이트를 좀 해봤습니다.
야한 장면 많이 쓰고 싶은데, 이 소설은 좀 제대로 각을 잡고 싶어서…
그래도 조만간 주윤성을 화끈하게 깔아보겠습니다!
근데, 섹스씬을 잘 쓸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제가 요즘 욕구불만과는 거리가 좀 멀어서…
그래도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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