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심리학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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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관 306

 

여기인가.”

 

벌컥. .

 

뒤로 갈수록 높아지는 계단 형태로 배열된 의자가 층층이 아치형 구조를 이루고 있어, 어느 부분에 앉더라도 정면 강단이 잘 보이게끔 설계된 소강의실. 수업 5분전인데 기대했던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강단으로부터 적당히 왼쪽 중간 정도 되는 부분에 자리를 잡고 앉아 가방을 열어 노트와 필기구를 꺼낸다. 나 말고 다른 학생들 또한 미리 도착해 있었는데, 놀랍게도 이 적은 머릿수의 학생들 중 눈에 익은 모습을 하고 있는 몇 명이... 딱 보인다. 나같이 흑심을 품고 이 강의실에 들어앉아 있는 게 뻔히 보이는 우리 친구들. 나름 은둔이고 외모 면에 있어서는 티를 내지 않으려 늘 의식하고 있다지만, 아마 그들도 내 겉모습과 눈빛을 보고 적당히 눈치 챘을 것이다. 하긴 태형주 교수는 이쪽에서 아주 인기 있을 법한 사람이니까.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당장 나부터도 그렇고. 웃긴 점이 있다면, 이미 이들 사이에 뭔가 묘한 기싸움 같은 게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 벌써부터 느껴진다는 것이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없을 텐데, 헛수고들 하면서 힘 빼기는. 강의 1분전. 그는 아직도 등장하지 않았다. 늦게 오려나. 서서히 만남에 대한 긴장 때문에 밀려들던 식곤증이 달아날 무렵.

 

벌컥.

 

“...!”

늦어서 미안합니다.”

 

아직 벽시계의 분침은 2시 정각을 가리키고 있었지만, 사과를 하며 들어오는 그의 모습에서 시간관념과 예의를 중시하는 사람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결국 여기서 이렇게 그를 다시 보게 됐구나. 떨리는 마음에 숨을 크게 내쉬며 흥분을 가라앉힌다. 뛰어온 건지, 빨리 걸어온 건지. 약간 숨을 몰아쉬던 그가 강의실 안이 더운지, 걸치고 있던 네이비색 맥코트를 빠르게 벗어 교단 책상 위에 휙 던져놓는다. 속에 입고 있던 은은한 하늘색 셔츠의 두 팔 소매를 걷어 올리자, 여실히 드러나는 그의 굵직한 팔뚝에 절로 시선을 빼앗긴다. 타이를 하지 않은 컬러의 맨 위 단추마저 하나 풀자, 과해서 느끼하지 않게 딱 갈라진 가슴 근육의 시작 지점까지만 슬쩍 보이는 모습. 그 절제된 섹시함에 또 다시 할 말을 잃는다. 교탁 위에 교재를 펼쳐 놓은 그가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한 뒤, 강의실 전체를 눈으로 죽 훑는다. 그러다가 나와 눈이 딱 마주친다. 그 눈빛에 압도당해 잠시 숨을 멈추고 그의 말을 기다린다. 그런데 그가 곧 다시 가운데로 시선을 돌려 학생들을 마주본다. 착각이었나. 뭔가 내게 할 말이 있는 듯 했는데.

 

오늘 제 수업에 처음 들어온 학생이 있어, 수업에 앞서 다시 한 번 간단히 오리엔테이션 하겠습니다.”

 

그의 말에 순간적으로 강의실 내 학생들의 이목이 모두 나에게 집중된다. 이로써 그 학생이 나를 가리키는 말임이 분명해진다. 민망함에 얼굴로 피가 몰리는 느낌. 그는 이미 이 수업을 미리 신청했던 학생들의 면면을 전부 기억하고 있는 듯했다.

 

아직은 청강 기간인 만큼 여러분 모두가 제 수업의 학생이 될지 여부를 모르기 때문에, 일단 당분간은 존댓말로 수업을 진행합니다. 허나 듣지 않으실 분들이 다 빠져나간 뒤, 본 커리큘럼을 진행할 때는 존칭 생략 후 반말로 강의할 겁니다. 그 점에 불만이 있으시다면 지금 미리 나가세요.”

 

어떤 사람인지 전혀 몰랐다면 아마 오만해 보였을 텐데, 실력이라는 후광이 있기 때문인지, 자신감과 확신에 찬 말투로 포장되어 거부감 없이 들린다. 사람 자체가 별로 없어 강의실 안 목소리가 다소 울리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겠지만, 그의 중저음 목소리는 마치 마이크를 대고 말하는 것처럼 힘이 실려 있어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저절로 집중하게 하는 면이 있었다.

 

또한 출석하지 않거나, 수업에 집중하지 않아 강의 내용을 놓친다거나, 시험에 대비하지 않아 중간 및 기말고사의 점수를 일정부분 이상 획득하지 못한다면... 절대평가임에도 학점에 대한 기대는 하지 마세요. 미리 말씀드립니다. 편지로 호소하셔도 학점 정정은 절대 없습니다.”

 

그의 표정도, 오리엔테이션의 내용도 아주 살벌하다. 요약 정리하자면 한 마디로 엄청 빡센 수업이라는 말이네. 역시 기범이가 한 말이 전혀 틀린 말은 아니었구나. 여기 남은 학생들은 그럼 저 말을 이미 듣고도 아직까지 이 자리에 남아있는 사람들이라는 이야기인데. 다들 참 독하다. 잠시 말을 멈춘 그가 갑자기 다시 한 번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기 시작한다. ? 방금 웃은 것 같은데. 마치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처럼 시종일관 무표정이던 그가 나를 향해 처음으로 살짝 눈웃음을 보이자, 믿을 수 없는 그 모습에 또 다시 심장이 미친 듯 팔딱대기 시작한다.

 

두근두근.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본 강의는 교양수업인 만큼 심화된 내용의 심리학을 다루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아마 제 수업만 잘 따라와 준다면, 분명 심리학 분야 전반에 걸친 의미 있는 지식과 정보를 얻어갈 수 있을 겁니다.”

 

꽤 긴 시간동안 정확히 내 쪽만을 바라보며 말하는 그의 행동에, 또 다시 강의실 내 몇몇 학생의 따가운 눈빛이 몸에 꽂힌다. ? 쳐다보면 어쩔 건데. 내 잘못이 아니라고. 눈으로 말하며 그들에게 맞대응한다. 방금 전 희미한 태형주 교수의 눈웃음과 의미심장한 말에 뭔가 큰 의미를 두면 나만 바보가 될 것 같아 설레발 치고 싶진 않지만, 마치 꼭... 나더러 계속 이 수업을 들으라고 말하고 있는 듯했다.

 

마지막으로, 이 수업의 교재는 후문사에 제본 형태로 맡겨놓았습니다. 비용은 교수인 제가 전적으로 부담하니까, 강의명과 본인 이름만 직원에게 말씀하시고 받아오시면 됩니다.”

“......”

수업 시작합니다. 교재 17페이지...”

 

어느새 다시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온 그의 모습. 무료 교재라니. 아무리 수강생의 수가 많지 않다고는 하지만, 보통 교재비용을 교수 본인이 부담하는 경우가 흔치 않은데. 돈 없는 대학생에 대한 배려가 아니라면, 교수가 굳이 그럴 이유가 없었다. 생각보다 따뜻한 사람인 걸까. 그나저나 오늘은 교재도 없으니 시선을 둘 다른 곳이 마땅치 않아, 수업 내내 저절로 강의하고 있는 그의 모습만을 뚫어져라 바라보게 된다. 그렇다고 수업 내용에 집중한다는 것은 아니었다. 정확히는 그럴 수가 없다고 보는 게 맞았다. 그가 가끔씩 화이트보드 칠판을 향해 등을 보이며 돌아설 때마다 드러나는 그의 두툼한 엉덩이와 허벅지 라인을 보며 멋대로 그의 벗은 몸을 상상한다. 그러다 앞을 향해 돌아서면 또 다시 불룩 튀어나온 그의 앞섶이 눈에 확 들어온다. 그렇게 수업 도중에도 몇 번 씩이나 내 물건이 성을 냈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한다. 보면 볼수록 그는 내가 항상 그려왔던 이상적인 중년의 외모에 완벽히 부합했다. 게다가 아까 그 그윽한 눈빛이란. 언뜻 학생들에게 한없이 엄격한 사람처럼 보이면서도, 또 어떤 면에서는 참 괜찮은 사람인 것 같기도 하고.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확실히 별종이 맞긴 맞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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