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심리학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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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다 맞습니다...”

“......”

저도 교수님께 심리학 배우면 그렇게...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을 수 있게 되는 겁니까.”

생각을 읽는다라... 더 정확한 표현이 있긴 하지만 얼추 그렇지. 심리학이라는 게 애초에 그걸 목적으로 시작된 학문이니까.”

하하. 이런 유용한 학문인 줄 미리 알았다면 전공을 심리학으로 할 걸 그랬네요. 점수가 딸려 안 됐을라나.”

 

그 말에 날 바라보고 있던 그의 눈이 잠시 사선으로 내리 깔리며 다른 곳을 보다가, 차량 전방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한다.

 

심리학은 초능력이나 독심술이 아냐. 엄밀히 따지자면 일종의 과학에 가깝지. 또 과학이라는 것은 반증에 따라 얼마든지 미신이 될 수도 있는 거고. 물리학 같은 학문에서조차 새로운 가설이 현재의 지배적 정설을 뒤집는 일이 일어나는데. 하물며 인간이라는 복잡한 존재를 연구하는 학문인 심리학이라면 말 다 한 것 아니겠어? 절대 영원한 법칙 같은 것이란 없다. 예외도 부지기수고 변수가 개입될 확률도 크지. 그럼에도 내가 이 학문을 택한 이유가 있어.”

“......”

너무 흥미롭거든. 그렇잖아? 인간이 특정 상황에 처했을 때, 발현하는 심리나 행동 양태가 서로 비슷하게 나타난다니. 전혀 다른 환경 속에서 자라며, 각각의 독자적인 자아가 형성된 존재들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야.”

 

수염 난 40대 중년의 얼굴에도 이렇게 천진난만한 웃음이 걸릴 수가 있구나. 심리학을 이야기하는 그의 얼굴에서, 학문에 대한 순수한 흥미와 진심어린 열정이 느껴진다. 듬직하고 진중한 외모에서 뿐만 아니라 내면으로부터 빛이 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비록 교양일 뿐이지만, 진오 네가 내 수업을 통해 조금이나마 그 재미를 공감했으면 해.”

“...!”

 

잘못 들은 건가? 수업을... 계속 들었으면 한다고? 그가 네 마음은 알겠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냐정도로 에둘러 거절해 주기만 해도 감지덕지였다. 수업에 대한 아무런 언급이 없다 해도, 그가 불편해할까 내가 먼저 수강을 취소할 생각이었다. 헌데 수업을 계속 들어달라니.

 

교수님 불편하시지 않겠습니까.”

불편? 어떤 면에서?”

 

내 질문의 의도를 진짜로 모르겠다는 듯 의아해하는 얼굴. 설마 내 마음을 아직 제대로 눈치 채지 못 한 걸까. 그럴 리가 없는데.

 

...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던 제 강한 동기가... 어떤 마음에서였는지 지금 모르고 계신 건 아니시죠?”

당연히 알지. 설마 내가 그런 것도 모를까봐. 아주 오래 전 일이긴 하지만, 나도 연애 한 번 못해본 사람은 아니야.”

 

그가 그 여유로운 미소를 잃지 않은 채 나를 바라보며 말한다. 확실히 알고 있는 눈치. 그렇지만... 그렇다면 어째서...

 

, 아직 상황 파악이 잘 안 되는 모양이구나. 내 딴에는 그래도 꽤 적절히 신호를 줬다고 생각했는데, 어설펐나.”

“...!”

그럼 내가 몇 가지 단서를 줄 테니, 진오 네 스스로 한 번 지금 이 상황을 추론해볼래? 방금 내가 했던 것처럼. 잘 배웠는지 보마.”

 

꽈악.

 

“...?!”

 

그의 큼직한 오른손이 꽉 쥔 채로 무릎 위에서 바들바들 떨던 내 왼 주먹을 감싸 덮는다. 예상치 못한 돌발적인 그의 행동. 손이 맞닿은 부분이 불로 달구어지는 듯 뜨겁고 화끈거린다. 확 하고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자, 그가 나를 안심시키려는 듯 편안한 표정으로 웃어주며 천천히 말을 이어나간다.

 

왜 네가 내 수업을 꼭 들었으면 하는지.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던 내가, 굳이 학생을 차에 태우고 집에 가는 기행을 저질렀는지. 이야기하기 좋은 하고많은 장소들을 놔두고, 왜 굳이 비좁고 보는 눈 없는 내 차로 너를 데리고 왔는지. 그리고 다른 사람을 잘 믿지 않는 내가, 어째서 진오 너에게만큼은 이렇게 허울 없이 나란 사람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털어놓고 있는지...”

 

“...교수님?”

벌써 알아냈나보네. 생각대로 똑똑한 친구 맞구나.”

 

그가 싱긋 웃으며 말한다. 아무리 바보라도 이 정도로 힌트를 주면 눈치 챌 것이다. 다만 그 말도 안 되는 답안을 믿기가 너무 어려울 뿐.

 

근데 분명... 여자를 밝히신다고... !”

 

너무 충격을 받은 나머지 나도 모르게 새어나온 혼잣말에 순간 오른손으로 입을 가려보지만, 이미 늦었다. 엄청난 결례가 될 법한 실언. 서둘러 그의 눈치를 살피는데, 정작 그는 그를 만난 이후 처음 듣는 큰소리로 호탕한 웃음을 터뜨린다.

 

하하하하. 걱정할 것 없어. 그거 다 내가 낸 소문이니까.”

?”

 

자신을 욕보이는 내용인 그 소문을 본인이 직접 냈다니. 어째서? 그 이유가 궁금해 물어보려는 찰나, 그가 내 생각을 먼저 읽고 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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