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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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줄거리.


이병 홍진우는 악마 최우현에게 엄청난 괴롭힘을 당하다가

생각지도 못한 존재였던 병장 차유안의 도움을 받아 살아난다.


섬세하게 자신을 생각해주는 병장 차유안에게 설레게 되고..


자신을 믿고 따르는 홍진우에게 더욱 애틋한 마음이 생겨난

병장 차유안..


서로 좋아하는 감정을 느끼고 서로에게 더욱 다가가지만..


가을의 문턱에서 찾아온 차유안의 전역.


이제 남은건 헤어져야만 하는 이별...





.................................................................................................................................................................................






1. 그리움..




초 봄이라 그런지 아침부터 햇살이 따뜻했고

어제 내린 비로 흙냄새가 물씬 풍겨났다.


사박사박 흙밟는 소리가 조용한 산길에서 기분좋게 들려온다.


항상 걷던 길이었지만 오늘은 한걸음 한걸음 뗄때마다

수많은 기억들이 교차되어 온다.


한때는 세상에서 가장 힘들고 외로웠던 길이었고

또 어떤때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곳으로 가던 길이었다.


지옥으로 올라가는 입구이기도 했고

천국같이 아름다운곳으로 안내해주던 길이기도 했다.


그리고 ..


그동안 함께했던 내가 떠나는게 아쉽다는듯..

화사한 꽃들을 피워 산들바람과 함께 활짝 웃어주고 있는듯 했다.


이제...

내 마지막 근무이다.


지금 한걸음 한걸음 내 딛는것은

이곳으로 올라가는 마지막 걸음들 인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올라갈때마다 산너머로

광활하게 펼쳐져있는 바다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뒤에서 따라오고있는 녀석의 숨이 가쁘게 들려온다.


난 아무생각없이 힘들지 않냐고 물어보았고

그 물음에 뒤따라오던 녀석의 대답이 '아닙니다!!' 하며 우렁차다..


괜히.. 말시켜서 안그래도 힘든녀석을 더 힘들게 한것 같다.. ㅎㅎ


마지막 돌계단을 오르자 화창한 날씨에 시원한 바닷바람이 땀을 식혀준다.

아... 정말이지 ..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

근무지에 도착해 늘상 익숙한 풍경을 둘러보며
이슈가 될만한 사항이 있는지 살펴보며 수통을 꺼내들었다.


얼마나 오래 됬는지 모를정도로 낡은 수통..

얼마나 많은 선임들을 거쳐 왔을까.. 어쩌면... 나보다도 더 오래된 녀석일지도..


초소에서 벨이 울린다.


빠른 동작으로 수화기를 들자 박 중사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예전에 ,, 내게 멘소래담을 주었던 그 당직하사는 이제 중사로 진급되었던 것이다.



"필승. 652 op 근무자 병장 홍진우 입니다."

"어.. 진우 올라갔구나.. 너 제대 선물로 뭐 먹을래?..

선임하사님이 읍내에서 사온신다고 한다. "


"아.. ㅎㅎ 그럼 조각케익이랑 통닭 사오시라고 그러시지 말입니다. "

"ㅋㅋ 그래 알았다.. 수고!"


"넵 필승~"



통화내용을 듣고있던 이병 정은호가 부러운 눈치를 한다.

은호는 신병대기할때 내가 직접 데리고 다니며

부대를 보여주고

실무의 기초를 알려주면서 꽤나 친해진 녀석이다.


앞으로 힘든 군생활인 만큼

은호에게 내 앞에서만큼은 편하게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또 장난기가 발동한다..


"은호야.. 난 내일 전역하는데... 넌 어떡하니~~ ㅋㅋ"

"너무하시지 말입니다.. ㅠ"


"나도 당했던 건데 뭘.. 너도 나중에 써먹으면 되잖아~.. ㅋ"

"ㅠㅠ "



걷어올린 전투복에 내 팔이 구릿빛으로 빛나는걸

은호가 자신의 팔뚝과 비교하더니 한숨을 내쉰다.


"엇! 은호야.. 너 다른사람들 앞에서 한숨쉬면 안된다..

조심해야지...ㅎㅎㅎ. "


"앗!!. 그 . 그렇지 말입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란 말도 쓰면 안돼..

죄송한 일이 생겼을땐 필승 경례를 때려야 한다.. 알았지?.."


"넵 필승 ㅠ"

"그래,, 그렇게~ 잘하네 ㅎㅎ"



"홍진우 병장님은 좋으시겠습니다.

몸도 강하시고.. 마음도 강하시고.."


이병 정은호의 그말에 시선을 내 팔뚝으로 돌려봤다.


지난 1년반... 내 몸도 이제 조금은 강해졌다.

예전 이병때의 그 여린 몸이 고된 훈련과 체력 단련으로 조금은 탄탄하게 바뀐것이다.


"..... 은호야... 넌 여기에 왜 온거니?"

"저는.. 너무 약해서지 말입니다. 쫌더 강해지려고 왔는데.. "


"그거.. 나도 똑같은 말 했었어.. 너랑.."

"진짜 말입니다.?"


"그럼... 그리고 니가 힘든건.. 강해지고 있다는 뜻이야.


"네? "


"힘들고 힘든일이 너를 강해지게 만드는거라구..

그걸 하나씩 하나씩 고민하고 해결하다보면

조금씩 조금씩 강해지고 또 강해지는거야..


......


그 고통을 느낀다는건 니가 지금 강해지고 있다는거구..

내말 무슨 뜻인지 알겠니? "


"그렇지말입니다 ㅎㅎ."



"..... 라고... 내가 이병일때 어떤 병장님께서 말씀해주셨다 .. 바로 이 근무지에서.. ㅎㅎ"


"아... 이런, ㅎㅎ 좋은 선임이셨나 보네요."


"응... ㅎㅎㅎ"


...



"아이고야.. 뻐근하다~ ..

오늘 조업선들 많이 나갈것 같으니까 잘 지켜봐야 된다ㅎㅎ"


"넵!! 잘 지켜보겠습니다! "



​은호가 바다로 시선을 돌렸을때 한껏 기지개를 펴보았다.

​따사로운 아침 햇살에 눈이 부시다..


난 시선을 동쪽으로 향했다.

짙푸른 서해바다...

저 바다 끝에... 그가 있겠지....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언제나 그립고 그리운 사람..

정말 그립다... 너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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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병장 차유안의 과거..





"홍진우!!... "

너 여기서 뭐해? 종교활동 안나가?"


병장 차유안이 중대 바깥 뒷산에 숨어있던 날 찾아내더니

뭘하고 있냐며 올라온다.


쪼그리고 앉아있던 난 얼른 담배를 뒤로 감추고 일어섰다.


"넵! 이병 홍진우! 잘 몰랐습니다.!! "



나의 큰 목소리에 병장 차유안이 주위를 살펴보더니

내게 다가오며 조용히 말한다..


"진우 너.. 어제 나랑 얘기했잖아..

나랑 단 둘이 있을땐 조용히 .. 편하게 하자고......"


어제..

맞다. 연고를 바르고 나서 자신은 곧 전역을 하니

내게 편한 선임이 되주고 싶다던...



그 생각에 이르자 괜히 장난기가 발동해 더욱 크게 소리를 쳤다.


"아닙니다.!!!!!! .."

"야야.. 쫌 조용히 하라구... "



"괜찮습니다!!!!!!!!!!!!!!!!!"


내가 빽빽 소릴 쳐대자

차유안이 내 목덜미를 잡고 으슥한곳으로 끌고간다.


"진우 너..

말 안들으면 최우현 한테 보내버린다. 그렇게 되구 싶어?? "


나보다 한참 키가 큰 이유로 허리를 숙이고 내 귓가에 속삭인다.


"조용히 하겠습니다."


난 순식간에 목소리를 내려 깔았다..

그제서야 차유안이 얼굴에 미소를 가득 담으며 허리를 핀다.


"흠.. 글구 담배좀 그만 피워라...

생긴건 무슨 기생년처럼 생겨가지구 담배를..."


"네?.. 기.. 기생년이라니....


"얼른 피우고 나랑 종교 활동 가자.. ㅎㅎ"

"네? 저도 가는지 말입니다?"


"오늘 일요일인데 당연히 갔다와야지.. ㅋ"

"아니.. 차유안 해병님과 저는 오후 말뚝 근무이지 말입니다."


"오후 2시부턴데 뭘..

종교활동갔다가 거기서 밥먹구 복귀해서 근무가는거야.. "


"아 그런가 말입니다..

다행입니다. 저는 성당에서 주는 조각케익 못먹는줄 알았습니다."



"조각케익??.. "



"저번주 일요일에 성당에서 조각케익을 나눠줬지 말입니다.

치즈맛... 정말 너무너무 맛있었지 말입니다."



"풋.. 바본가 보구나..

그거 매주 같은거 주는거 아니거든...

어떤날은 초코파이고 또 어떤날은 떡도 주고 그러는거야... ..

ㅋㅋ 성당에서 매주 조각케익 주는줄 알았나보지 ㅋ ? "



"아 아닌지 말입니다? ... 전 .. 그렇게 알았습니다.."



내가 눈을 동그랗게 떴던 눈을 내리며 실망한 기색을 보이자

병장 차유안이 재밌다는듯 날 쳐다본다.


"진우 너.. 조각케익 좋아해?"


"네 그렇지 말입니다.

저번주 성당에서 준 조각케익이 너무 맛있었지 말입니다."


"ㅋㅋㅋ 좋아.. 내가 오늘 하나 사줄께.. 얼른 나갈 준비하자.. "

"네? 정말인지 말입니다?"



"응.. 그거 사서 오후 근무 올라가서 먹자 ㅎㅎ"

"아... 정말 그래도 되는지 말입니다. "


"나만 믿어 .. 괜히 말년인지 아니? ㅎㅎ"

.....


종교활동은 성당, 교회, 불교로 나눠져 나가기 시작했다.

차유안은 내 종교가 가톨릭이란 얘기에도

고개를 가로젓더니 교회로 가자고 했다.


성당은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시켜서

잠을자기가 힘들다고 했다.. -.-


그냥 무시하고 엎어져 자도 문제는 없지만 ...

은근히 신경쓰인다고 해서 나도 어쩔수없이 차유안님을 따라교회로 향했다.


난 하늘을 보며 잠시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며


어차피 같은 분이시니 '괜찮죠?' 라고 물은다음

혼자서 '그럼' 하고 셀프 대답을 해본다.


하늘에 계신분에게 그렇게 허락 받은것으로

그렇게 내 자신을 쇠뇌했다.


유안 병장님과 함께간 교회는 그냥 다같이 '자자' 하는 분위기였다.


목사는 30분을 넘게 신나게 강연을 했지만

아무도 듣지를 않았고

수백명의 군인이 엎어져 자는 모습은 정말 장관이었다..


그 광경을 보고있던 난 미안스런 마음에

혼자 고개를 들고 듣는척을 하다가 나도 잠이 들어버렸다.

꿀잠이었다.



"말씀 감사합니다~


우리주 예수께서는 일찌감치 여기 있는 장병들에게

축복을 내리시라고 말씀하셔씁니다.

그래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



..... 이라는 목사님의 설교가 끝나자마자

모든 장병들이 벌떡이며 일어나기 시작했다.



난 뭔일인가 싶어 주변을 두리번 거렸는데

다들 밥을 먹으러 가는 것이었고

병장 차유안도 그렇게 잘자고 있더니

설교가 끝나는 시간에 기가막히게 일어난다.. ㅡ.ㅡ


그는 나를 데리고 식당으로 향했고

난 교회에서 생각지도 못한 맛있는 밥을 먹으며

성당의 치즈케익과 교회의 맛있는 집밥 둘을 놓고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매주.. 나에게 치즈케익을 쥐어주지 않을거면

난 굳이 성당에 갈 필요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음에도 교회로 와야지란 생각이 굳건하게 자리잡을때쯤...


난 속으로 흠칫 하고 놀라버렸다.

내 종교관이 이렇게나 빈약한 것이었나에 놀란것이다...

밥 하나때문에.. .... ㅜ


하지만.. 만약...

만약 불교에서..

스님들이 매주 통닭을 나눠준다고 하면 난 어찌할것인가..


난 주저없이 불교로 갈것이다.


뭐.. 어쩔수 없는거 아닌가... 통닭인데... ㅜ


하느님도 날 이해해줄거란 생각이 든다...




내가 그렇게 쓰잘데기 없는 생각에 빠져있는데

차유안님이 내 팔을 툭 건드리며 말한다.


"진우야.. 여기서 잠깐 기다려.

내가 얼른 조각케익 사올테니까.. 치즈맛이라구 했지?"


"넵!! 치즈케익입니다! "


난 차유안님이 조각케익을 사러 간 사이에

멀뚱한 차렷자세로 읍내를 둘러보았다.


다들 즐거워 보였지만 그중엔 나처럼 차렷자세로 서있는

이병들이 간간히 보였다.

다들 꾀죄죄하고 드러워 보인다.


엄마의 손을 잡고 지나가던 조그만 여자애가 걸어오면서

나를 위아래로 쳐다보더니 손을 잡고있는 엄마에게 말한다.


"엄마 이 아저씨 거지같애.. "


" ??? "


"어머 얘가..

호홓 죄송해요... 얘가 못하는 말이 읍엉.. 얼른 가자... "


엄마는 민망한듯 총총 걸음으로 아이를 데리고 사라진다.


뭐지.. 이 굴욕은..​ 쪼꼬만게...

난 옆 상점에 비친 거울로 나를 들여다봤다.


이런... 저게 사람의 몰골인가....


보기에도 이상하리만큼 찌질한 자세와 푹 눌린 팔각모..

정말 거지가 따로 없다는 생각에 풀이 죽는다..

이병이 원래 그런거지 뭘...

난 알수없는 자괴감에 빠져본다.



그렇게 얼마를 더 서 있는데 병장 차유안이 웃으며 날 부른다.


"진우야 가자.. 몇조각 사왔어..ㅎㅎ"


난 방금전 거지같은 외모는 싹 잊어버린채

치즈케익에 침을 흘리기 시작했고

병장 차유안은 그런 나를 겨우 진정시키며 부대로 복귀했다.


부대는 종교활동을 마치고 각자 자율시간으로

빨래나 독서, 또는 체력활동을 하기 시작한다.


난 유안님과의 근무 준비를 하며

내무실에서 전투복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진우야 물 가득 채워.. 더워서 물 많이 마셔야 하니까.. "

"넵!! 이병 홍진우! 물 꽉꽉 채우겠습니다. !!!!! "


병장 유안님의 말에 내가 냅다 대답을 하자

누워있던 상병 장진호가 놀라 일어나더니 버럭 소릴 지른다.



"아놔.. 이자식이 이거..

내 말은 귓등으로도 안듣나 보네..

내무실에선 쫌 조용히 하라고 !!! "


"필씅!! 조용히 하겠습니다."


그 모습에 또 다른선임들이 웃는다. ㅋㅋㅋ



"됬다.. 올라가자 "


병장 차유안이 준비가 끝났는지 자리에서 발걸음을 뗀다.


"넵! 필승! 이병 홍진우 652op 근무 다녀오겠습니다. "


난 내무실 선임들에게 힘차게 보고한후

서둘러 병장 차유안의 뒤를 따라 나섰다.


"어이~ 잘 다녀오시게 .. 더운데 수고하시고 ~ "


한 선임의 말을 뒤로하며 유안님과 난 중대를 떠나 산길로 접어들었다.



7월 끝자락의 날씨는 무척이나 더웠다.

난 앞서가는 병장 차유안의 넓은 어깨를 올려다 보았다.


다리도 길어서 그가 한걸음을 뗄때마다

난 한걸음 반은 움직여야 했다.


저런 몸을 가지고 있으면 정말 좋겠단 생각을 하다가

문득.. 어제 목욕탕에서 보았던 그의 알몸이 떠올랐다.


선명한 복근에 역삼각의 활배근을 주변으로

쫙 퍼져있는 얕은 근육들이 너무나 멋있었다.


그리고... 그.. 복근 아래의 거무잡잡한,,, 그곳에..... 헉!!


난 그의 그.. 생각에 혼자서 얼굴이 빨개지고 말았다.


아니.. 내가 대체 왜이러지...

무슨 생각을 하는거야 홍진우... 잊자잊어..

난 고개를 탈탈 털어대며 걸음을 재촉했다.



뜨거운 햇빛이 내리쬐는 근무지에 올라가

앞선 근무자와 교대를 하자마자

병장 차유안은 나무가 한그루 박혀있는 넓다란 바위에 걸터앉았다.


"휴,, 진짜 덥다 .. 그치? ... "


그는 나무 그늘에 앉아 물통을 꺼내 꿀꺽이며

반이 넘게 마시기 시작했다.


그의 목울대가 오르내리며 시원하게 물을 들이키고 있었다.


자신이 물을 마시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고만 있던 날 발견하더니

깜빡했다는듯 미안한 표정으로 내게도 물을 마시라고 해준다.


얼른 물통을 꺼내 꼴깍이며 마시자 한결 더움이 사라진다.



"진우야.. "

"넵 이병! 홍! 진! 우!!"


힘차게 대답을 하자 병장 차유안이 날 흘겨본다.


"네.. "


난 곧바로 편안 모드로 전환했다.


".... "


"진우 널 보면 예전 내 생각이 나서 그래..

대신 그만큼 다른 사람들앞에선 기합있게 하면 되잖아.."


"....그래도 제가 불편하지 말입니다."


"너말고 내가 불편해서 그래..

이것만큼은 내뜻대로 해줘.. 그렇게 할수 있겠지??. "


....


"...... 요게..아무말 없는거 보니..

감히... 중대 최고참인 내 말을 거역하는거니?? 개기는거야??"


병장 차유안이 근엄한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

"자.. 그럼 웃어봐.. 스마일..ㅋ"


그가 갑자기 이번엔 씩 웃으며 나에게 웃어보라고 한다.


"아닙니다!! 이병은 이빨을 보여선 안된다고 배웠습니다!"


"흠... 너 말 안들으면 나 전역할때까지 너 모른척 할거다....

너 괴롭히라고 인계사항도 내릴거구.."


"네??"


난 졸지에 겁먹은 토끼처럼 눈을 뜨고 말았다.

내 놀란 표정에 차유안님이 재밌다는듯 활짝 웃는다.​​


"와... 홍진우.. 너 표정이 왜그래.. 표정 무엇?? ㅋㅋㅋㅋ"


난 병장 차유안의 그 웃는 얼굴에 다시한번 놀랐다..

그렇게 말이 없다던 사람이...


"깜짝 놀랐지 말입니다. 너무 하시지 말입니다. "


"미안미안. ㅋ 그러니까....

나랑 있을때만이라도 편하게 있어..

나도.. 좀 편하게 있고싶어서 그래... "


하늘엔 뭉게구름이 웅장하게 피어오르고 있었고

짙은 녹음이 산 아래에까지 이어져 숲냄새를 내보내고 있었다.


"진우 넌 뭐하다 삼수까지 한거니?"


"네.. 저.. 저는.. 삼수했다기 보다는..

뮤지컬배우가 되고싶어서... 허송세월을.. ;;"


"뮤지컬?..

"네.. 부끄럽지만.. 그게 제 꿈이었습니다. ;; "


"오.. 대박. 한번 불러줄수 있겠니??"

"들려드려도 되는지 말입니다. "


"그럼그럼!... 얼른 해볼래?? "


병장 차유안이 기대 가득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고 난 무엇을 부를까 생각해보았다.


음음..

목소릴 가다듬고 예전에 연습했던 노래를 천천히 부르기 시작한다.


열심히 ..

아주 열심히 노래를 끝내고 나서 난 병장 차유안을 바라보았다.

나름대로 잘한것 같아서 내심 기대가 되어 초롱초롱하게 그의 평가를 기다려 보는데 아무말이 없다.


"....... "


"저.. 어떤지 말입니다??"


"...... . "


"왜... 왜그러시는지 말입니다.. "


병장 차유안이

아무말도 못하고 있다가 갈라지는 목소리로 대답을 한다.

아무래도 반응이 수상쩍다..


"어.. 자.. 잘들었어.. 정말 앙칼진 목소리구나.. 음... "

"이상한지 말입니다??"


"아니.. 뭐.. 나름 매력있었어... "

"어떤 매력인지 말입니다 ???"


"매력?... 음...... 아....목소리가.. .칼칼한 맛이었어... "


".... "


병장 차유안이 어설프게 대꾸하며 시선을 돌린다..


뭐지.. 저 어설픈 감상평은...

칫... 괜히 노래는 시켜가지고... 사람 무안하게......


난 바닥에 있는 뾰족한 돌멩이를 발로 톡톡 건드려본다.


내가 시무룩하게 된것을 본 차유안님은

괜히 내 기분을 띄워줄려고 애를 쓰기 시작했다.


"진우야... 생각보다는 괜찮았어..... "

"..... "


"음.. 진우야.. 노래는 좀 그렇다 쳐도...

넌 외모가 되잖아.. 그걸로 립싱크나..... "


"....... ㅜㅜ "


차유안님이 자신의 말 실수를 깨닫고 내 눈치를 살펴본다..


일부러 날 놀리는건가... -.-


"괜찮습니다.. 저도 제 분수를 잘 알지 말입니다.

저는 오늘부로 뮤지컬 깔끔하게 때려치웠지 말입니다!! . "


"흠.. 삐졌나 보구나.. 이걸 어떻게 풀어줄까... "

병장 차유안이 잠시 생각을 하더니 나를 보고 싱긋 웃는다.


"치즈.. 케익??"

"네? 치.. 치즈케익 어딨는지 말입니다.. "


"자.. 여기.. ㅋ"


"병장 차유안이 정말.. 정말 보기에도 샤르르 흘러내릴것만 같은 치즈케익 조각을 하나 꺼내 보인다.


"감사합니다 !! ㅜㅜ 오.. "

"와.. 홍진우.. 너 진짜 단순하구나.. 와.....


"얼른 주시지 말입니다.. 빨리 주시지 말입니다!! "

"한번 웃어주면 줄께.. "


고민할것도 없었다. 난 병장 차유안을 향해 씨~ 익 웃어주고 조각케익을 향해 손을 벌렸다.


"풉... "


차유안님이 나의 그런 모습에 웃음을 뿜어낸다..


"진우... 너 방금 쪼갠거 알지?..

이병 주제에....내무실에가서 일러야겠다..

고작 이따위 치즈케익에 홀라당 넘어가서 이병이 웃었다고..ㅋㅋ."


" ㅜ 아닙니다 ... 너무 잔인하시지 말입니다.. ㅜ "


난 케익을 우물거리며 아니라고 저항을 해본다.


"한번만 더 웃어봐.. 자.. 나 보구 스마일~~ "

"....ㅜㅜ.. 스 마 일~ ^^ "



어느새 난 이병의 신분을 잊을만큼...

병장 차유안과 친해져 있었다.


그 일요일 오후는 어제까지 암흑속에 있던 내 마음을

완전히 새로운곳으로 안내해주는 날이었다.



차유안 해병님도 저와 같은 때가 있었는지 말입니다."

"당연하지.....안그랬던 사람이 어딨겠어... . "


"어.. 땠는지 말입니다.."


잠시 먼곳을 바라보고 있던 차유안님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진다.


"비슷할거야.. 아마도... ... "

"믿기지가 않습니다.. 어떻게 유안님같은 분이.. .. "


"...... "


"나도 예전에 그런일이 있었거든.. "

"네?"


"나보다 4기수 위의 사람이었어... 2달먼저 들어온 사람인데 .."

".... "


"그사람이 그것도 권세라고 날 괴롭히는거야....

그땐 같은 쫄병끼리.... "


"아니 정말인지 말입니다. 왜그랬는지 말입니다."


"응... 내 외모가 맘에 안든다면서 ㅋ..."

"아니.. 유안병장님의 외모가 어때서 말입니다.... "


"부끄럽다.. 내가 말하기엔... 알구싶니?? ㅋ"


병장 차유안이 미소가 담긴 실눈을 뜨며 나를 쳐다본다.


"(흠칫)... 뭐..뭐라구 하실려구.. ... "



"흠.. 내입으로.. 이런말 하는건 처음인데..

내가.. 쫌.. 잘 생..겼........ ;;;"


병장 차유안님이..

말을 하면서 내 표정의 변화를 보더니 슬그머니 말을 흐린다.. ㅎ


.....잘.... 생.. 기진.. 않았겠지?, ;;..... ..흠흠..."


"....... ㅡㅡ ; "


"미안미안. ㅋㅋ

암튼 .. 그 놈은 자기 외모에 컴플렉스가 있었나봐...

내가 쫌... 멋지..게.. 생긴거..에.... 불만이...있었는지..... "


또다시 유안님이 내 표정을 살살 살펴가며 말을 이어가며

내 눈치를 본다.


"괜찮습니다. 말씀하시지 말입니다.. "


내가 괜찮다는 말에 에라 모르겠단 표정으로 쏟아낸다..


"암튼!! 못생긴 그놈이 잘생긴 나를 괴롭히는거였어.

희롱도 하고...

뭐 그냥 그렇다고.!!

그냥 그놈도 짜증났겠지 . 내가 잘생겼으니까!!!!!!!!! "


ㅡ.ㅡ ;;

.......

아주 멀리 ..

바다에 있는 바위섬에 물개 한마리가 앉아있다.



"가자!!! "


갑자기 무안해진 유안님이 몸을 홱 돌리더니 어딘가로 걸어간다.


"어.. 어디 가시는지 말입니다.."


막상 걸음을 옮겼지만..

조그만 근무지에서 갈곳이 없었다...

그가 제자리를 멤돌더니 허리에 손을 걸친채 하늘을 올려다본다


"몰라.. 모른다구. 아.. 목말라.. 아.. "



난 무안해 하는 유안님께 잽싸게 물통을 꺼내 뚜껑을 열어서

가져다 주었다.

그가 여전히 자신의 입으로 그런말을 한것에

시선을 어디에 둬야할지 몰라한다.



"잘생기셨지 말입니다.. 유안님은..."

"...... "


"정말이지 말입니다.."

"..... 뭐.. 그냥 그런말 억지로 안해줘도 돼... "


"아닙니다. 정말입니다.. 정말 잘생기셨지 말입니다.. ㅎㅎ"

내 말에 병장 차유안이 헛기침을 하며 딴청을 부린다.


"흠..... 음..... "


"저를 믿으시지 말입니다. "


"흠흠... 치즈케익 마저 먹을래??"


"헥헥헥.. "



내가 치즈케익을 맛있게 먹는걸 지켜보던

차유안이 나즈막히 자신의 과거를 얘기한다.


"사실... 아까한말은 농담이고...

나도 희롱을 좀 당하긴 했었어.. 육체적인건 아니었지만...

말로 쫌 심하게 희롱당하는 정도.. 쫌 심하게..."




"........ "


"그.. 그래서 어떻게... 어떻게 됬는지 말입니다..."

"하지말라구 했지... 그놈한테... 둘다 죽고싶지 않으면.."


"와...... 대.. 대단하시지 말입니다.. "


"뭘.... 그 후로 몇달 고생좀 했다...

그래도 다행인건.. 다른사람들한테 얘기는 안했더라.

자기도 쪽팔린지...."


"...... "


"저로서는 상상도 안됩니다... 저처럼 약한사람은.."



"진우야.."

"넵.."



"앞으로 힘들더라도 잘 참아내고 이겨내야돼.

그걸 고민하며 하나씩 이겨내다 보면 ..

넌 정말 강해져 있을거야.

내말 무슨뜻인지 알겠지?.. 넌 잘할수 있을거아.."


"넵..​"



대답은 그렇게 하면서도 솔직히 자신은 없었다.

내가 저 사람처럼 강해질수 있다니..

상상이 잘 안간다..

하지만 병장 차유안도 그런 힘든일들을 다 겪고

이겨낸것이다..​


그러고보니..

날 처음 본 그날..

내가 보내는 간절한 요청을 알아준 유일한 사람인것이다.


자신도 당했기에..

자신도 나처럼 힘든날들을 겪어왔기에..


그래서 내 눈만을 보고도 알았던건가...


...


내가 남은 조각케익을 다 먹고나서 물을 마실때쯤

다음 근무 교대자가 산을 올라오고 있는것이 보였다.


최고참 선임을 위해 정해진 시간보다 20분이나 빨리 온것이다.


그걸 본 병장 차유안은 빨리 오지 말라고 하는것을

깜빡했다고 자신을 자책했다.


후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그는 나와 조금이라도 더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것이다.


암튼.. 그 일요일..


그 일요일은 정말 군 입대후 처음으로 행복한 날이었다.


하지만..

그런 차유안님과의 행복이 클수록..


그만큼..​

나에게 다가오는 슬픔의 크기는 더욱 커져만가고 있었다.







......................................................................................................................................................







3. 다가오는 전역..





어느날..

내무실로 들어가는데 유안병장님이 홀로 무언가를 보고있었다.

마침 아무도 없길래 뭘 그렇게 보는지 궁금해 다가가자 살짝 놀라는 얼굴이다.


"어?.. 진.. 진우구나.. "

"뭘 그렇게 보구 계신지 말입니다.."


"어.. 아냐.. 아무것도... "


병장 차유안의 얼굴에 드리워져 있던 그림자가 날 보더니 어색하게 사라진다.

그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내무실을 나간다.


무슨일 있나... 왜저러시지..

난 무심코 그가 보던곳으로 시선을 돌려보았다.


그건 한여름 휴양지가 배경으로 있는 탁상 달력이었다.


뭐지.. 여기 뭐가 있는건가...

난 유심히 그 달력을 보다가 문득 떠오르는것이 있었다.


전역...


아.. 벌써..

벌써 그렇게 된건가... 벌써 2주가 지났구나..


차유안님을 만난지가 벌써 2주가 지났다면 ...

그럼.. 전역까지 앞으로 2주도 안남았다는 얘기?....


갑자기.. 내 가슴이 울렁거린다..

차유안님이 전역을 하고 가버리신다니.. 아....


평소 가슴 졸이며 걱정하던 그것이..

어느새 2주 앞으로 성큼 다가온것이다.... 차유안님과의 작별이... 아.. ㅜ




병장 차유안...

내가 겪어왔던 고민과 고통을 말끔하게 없애주었고

앞으로의 화근도 제거해준 나에겐 신이나 다름없는 사람..

그와 함께 이름이 적혀있는 근무표는 마치 천상으로 가는 티켓같았고

그와 함께 받는 화기훈련은 아무리 힘들어도 재미가 있었다.


그런 그가.. 이제 떠날날이 얼마 안남은것이다.. ㅜ


뭔가 가슴속이 텅 비는듯한 느낌이다.

그와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에 가슴이 시려왔고

일을 하면서도 멍한 상태가 지속되었다..


날 지켜주시던 유안님께서 떠나게 된다니..


아.. 생각만 해도 슬퍼지려 했고 다시 두려움이 찾아오는듯 했다.



수호신..

나의 수호신이었는데...

그가 사라지고나면...


그와중에 내일부턴 일주일간의 IBS 기습훈련이다.

검정색 고무보트를 타고 바다에서 진행되는..


원래는 2~3주간의 훈련이었지만

올해는 1주간으로 훈련기간이 감소 되었다는것을 위안아닌 위안으로 삼아야했다.


고무보트를 머리에 이고 가야되서 키가 비슷한 사람끼리 조가 짜여졌는데

병장 차유안은 나와 함께 같은조를 짜보려고 했지만 곧바로 무산되었다.


같은 내무실 이었지만 키크고 체격이 큰 사람들의 조장이 된것이다..

처음 받게되는 훈련에 내심 긴장이 되었고.. 물에 빠지면 어떡하나란 걱정도 된다.




"미안하다 진우야. 너랑 같은조 되긴 글렀다 ㅋ "


병장 차유안이 웃음띈 얼굴로 내게 다가왔다.

"괜찮지 말입니다.. "


"그러게 뭐하느라 키도 자라다 말았니.. 바보같이..."

"제가 작은거 아니지 말입니다.. 유안님께서 너무 큰거지 말입니다.."


"ㅋ.. 암튼 내일부터 훈련 열심히하고.. 그래도 몸조심 해라.. 거친 훈련이니까.."

"네네 열심히 할꺼지 말입니다..... "


"처음하는 훈련이라 좀 힘들거야.. 조심하구.. 노질 할때 박자도 잘 맞춰야 한다.

선착순할땐 목뼈 조심하구...

혹시라도 물에빠지면 구명조끼 입고있으니까 당황하지 말구...

보트옆에 줄 잘 잡구... 아무래도 .... "


​병장 차유안이 주의 사항을 끝없이 말하는데 문득 그의 전역이 생각난다.

가고나면 나에게 이렇게 얘기해줄 사람도 없을텐데...


.....


"근데... 이제.. 전역이 얼마 남지 않으셨지 말입니다... "

"뭐 아직 2주나 남았는데.. . "


"그동안... 저를 보살펴 주셔서 감사하지 말입니다..

"뭐야.. 왜 벌써 그런말을....."


"그래도... 이제 안계실거라 생각하니 .. 미리 말씀드려 보는겁니다..."

".... "




"진우야..."

"넵... "


"우리.. 헤어지기전까진 웃고 힘내면서 지내자....ㅎㅎㅎ. "

"그럼... 헤어지고 나선 펑펑 울면 되는지 말입니다??... "


"자식아..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말이야... "

"걱정이 되지 말입니다. 왜 걱정이 안되는지 말입니다..."


"여기까지 왔으면.. 이제부턴 혼자 할줄도 알아야지..

니가 나한테 너무 기대는것같아 걱정이 된다...."


"걱정 왕창 드리고 싶지 말입니다.

저를 놔두고 떠나시니 맘이 편하신지 말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 요것 봐라.. 요거.ㅋㅋㅋ. "

"ㅎㅎㅎ 가시더라도 편지는 꼭 해주시지 말입니다. 전화도 해주시고 말입니다. "


"그래. 꼭.. 그렇게 할테니까 걱정말구.. ㅋ"


.......


"그래도,,, 슬픈건 어쩔수 없지 말입니다.... "


"아직 많이 남아있잖니.. 슬픈건 그때가서 다시 생각해도 되니까..

앞으로 남은 시간.. 우리 더 재밌게 지내보자. 알았지?"



"네....ㅎㅎ 역시 저의 수호신 이십니다. ㅎㅎㅎ "

"뭐라는거냐 ㅋㅋ 내일부터 훈련 하려면 빡세겠다. 얼른 준비하자. "



"넵!! 준비하겠습니다!! ㅎㅎ"



병장 차유안이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난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며 다시한번 되뇌어 보았다.


나의 수호신. 차유안...








.....................................................................................................................







4. 숨겨진 감정.





" 쌍!! 늠의 새끼들아 패다링(노질) 잘해라.. 처 맞기 전에.~ "


다음날 새벽부터 시작된 IBS 기습특공 훈련은

바닷가에서 보트를 머리에 메고 선착순부터 오지게 하다가

6인 1조로 바다에 뛰어들었다.

짙은 바다위를 6명이 노를 일정하게 잘 저어야

고무보트가 속력을 낼수있어 팀웍이 정말 중요했다.


처음 해변가에서 기초적인 노 젓는 연습을 하고 들어가긴 했지만...


난 뭐..

처음 해보는거라 여기저기 노를 젓다가

뒤에 선임에게 노로 머리통을 후드려 맞았다.


"홍진우!! 하나둘 하나둘에 한번씩 젓는거 몰라?? 정신 똑바로 차려!!"

"넵 이병 홍진우! 하나둘 하나둘에 젓겠습니다!!"


우리 앞에 가는조는 해류에 말려들어 엉뚱한곳으로 떠내려가고 있었다.

저곳에서 팀웍이 맞지 않다면 졸지에 죄다 저 아랫쪽으로 빨려나가는 것이다..

긴장한 선임들의 목소리가 더욱 커지기 시작했다.


"자자.. 저 앞에 조류 존나 빠른거 있다..

한번에 못지나가면 씨,발 다 뒤질줄 알아라들!!! "


난 있는대로 긴장을 하기 시작했다.

바다인데도 물살이 쭉쭉 흘러가는것이 보이는 것이다.

물이 썰물이면서 빠질때라 그런지 그 속력이 대단했다.


"니들 저기 잘못 빨려가면 뒈지는거야.

하나~ 둘 하나 ~ 둘! 자.. 이제부터 하낫둘 하낫둘!!!!!!"


나와 우리 소대원들은 정말 미친듯이 노를 젓기 시작했다.


우와.. 팔다리에 마비가...

내가 조금 늦어지려하자 선임하사의 고함이 작렬한다.




그날.. 머리통에 혹이 생겼다.. ㅜ

그 다음날도 머리통에 혹이생겼고.. 또 다음날도 .... ㅜㅠ


훈련이 끝나고 밤마다 병장 차유안은

내 머리를 보며 열받아했고 바셀린과 연고를 열심히 구해다 주었다.


고된 훈련에 지친 우리 중대는 훈련을 마치고 오자마자

다들 대충 씻고 순검도 얼른 끝내고 잠에 든다.



난 취침등 아래에서 일기장을 꺼내들었다.




.....




oooo년 oo월 oo일..

난 오늘도 머리통을 맞았다.
정말 짜증이 난다..
이러다 머리가 나빠지는건 아닌지 모르겠다.
안그래도 단순한데..



그 힘든 와중에도 일기를 꼬박꼬박 써내려간 이유는

나중에 병장이 되면 이 순간들을 읽으며 자기행복에 빠지기 위해서다. ㅡㅡv

그렇게 나름 열심히 쓰고있는데

일기장 틈에서 무언가가 툭 하고 내 무릎으로 떨어진다.



빵그림이 그려진 쿠폰 묶음이었다.


런던바게뜨 ?.. 뭐지 이게...


그 옆에 같이 흐른 메모를 보니 삐뚤빼뚤한 글이 쓰여져 있었다.


잘좀 먹고 키좀 커라.. 난쟁이놈아..

나중에 이 쿠폰들고 빵집에가면 먹고싶은 빵이랑 바꿔준다.

난쟁이가 좋아하는 치즈케익도.



칫.. 말을해도...

고개를 돌려 병장 차유안의 자리를 보니

그는 이미 잠에 빠져 있었고 다른 선임들도 자려고 눕는 중이었다.

글씨는 디게 못쓰네.. 이게 글씨야 그림이야... 칫,,,



다음날 ...



그 고단했던 일주일간의 훈련이 종료됬을때..

중대 연병장 옆 전봇대엔 돼지가 한마리 묶여져 있었다.

그 돼지는 81미리 박격포장이 내려친 오함마에

맞아 죽었고 그 즉시 해체되기 시작했다.


난 뜨거운 물을 돼지 몸에 끼얹어

칼로 피부를 박박 문질러 털을 제거하는 일을 했는데..


돼지 냄새가... ㅜㅠ 우웩... 도저히 ... 우웩.....

난 연신 헛구역을 참아가며 털을 제거했다.


살면서 그런 돼지같은 냄새는 정말 처음이었다... 우웩..;;

우웩스럽던 그 돼지는 곧바로 삶아져 나왔고 그날 중대내에선 술도 마실수가 있었다.

모든 중대원들이 즐겁게 술과 돼지고기를 뜯으며 신나게 취해갔다.


나도 눈치를 봐가며 술을 홀짝이며 마시며

조금씩 취해가는데 누군가가 큰 목소리로 이병들에게 고함을 친다.



"야!! 소대별 이병 소주 원샷걸고 장기자랑 준비하자!!"

"오~ 꼴등하는 소대. 소주 병나발로 원샷이여 원샷 !! ㅋㅋ"

"야야. 우리 k4 정이병 먼저 나가라 나가!! "


"뭔소리냐 우리 81 박격포 박상덕이 먼저 ... 얼래?

어디갔어 이새끼!!! 야!! 박상덕이 어디갔어!!!! "


"오줌싸러 갔습니다.!!!! "

"이런 쌍!!! 당장 잡아왓!!!! "


서로 자신들 소대의 장기자랑에 능한 쫄병을 내보내려 안달이났고

그 소대별 자존심 싸움에 상병 장진호가 벌개진 얼굴로 나를 찾는다.



"야!! 홍진우!!! 뭐하냐!!!!!!! 나가서 다 조져버렷!!!!!"


술취한 상병 장진호의 말에

병장 차유안이 급해진 얼굴로 장진호를 말린다.


"야야.. 진호야 . 홍진우 노래 개판이다.. 큰일난다 우리... "



병장 차유안이 말리기도 전에
난 누구보다 잽싸게 자리를 박차고 나가 관등성명을 외쳤다.


"이병 홍진우!!! 노래일발 장전!!!!


"올~~ 이쁜이 나왔다 이쁜이... 야. 빨리 해봐라!!! ㅋㅋㅋㅋ"

"ㅋㅋㅋㅋㅋ "


난 중대전체의 환호를 받으며

잠시 고민을하다 그나마 자신있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꽃~ 피이는 ~ 동~ 백섬에~~ "



내가 한구절 부르자 말자 쓰레빠가 날라왔다.


"야이~ 90미리 너네 소주 완샷 해라잉~ 장난까냐~~ ㅋ "

"뭐여 저게 ㅋㅋ 빨리 원샷 ㄱㄱㄱ "



상병 장진호가 얼굴이 빨개져서 내게 버럭버럭 소리를 지른다.



"야이~ 미친놈아! 그런거 말고 섹시 댄스 해봐라 섹시댄스!!"

"그래 홍진우!! 요즘꺼 여자 아이돌꺼 해봐라!! ㅋㅋㅋㅋ"





여기저기서 울려퍼지는 야유에...

상병 장진호의 버럭버럭에....

병장 차유안은 이미 모든걸 포기한 상태로 술병을 따고 있었다..

원샷을 준비중인건가... ㅜ


그래... 이번 기회에 내 매력을 한번 보여줘??,,

차유안님을 위해... 내 매력을??...


난 갑자기 그에게 잘보이고 싶었다..

나도 뭔가 하나쯤은 잘하는게 있다는걸 보여주고 싶었다.


나름... 난 뮤지컬배우를 꿈꾸던 지망생이었다.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2년동안 클럽에서 이름좀 날렸던 내가 아닌가..


난 정말로 섹시 댄스를 추기 시작했다..

처음엔 뭔가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던 선임들이 내 요염한 모습에 조용해 지기 시작했다.

술에 취한 내가 상의를 탈의하고

더욱 관능적으로 추기 시작하자 그때부터 난리가 나기 시작했다.


화기중대 전부가 모였있던 그곳에

마침 중대장이 중대선임하사와 같이 술자리에 합석하려고 들어왔다가

내 춤을 보더니 둘도 그 자리에 멈춰선다.

중대장에 대한 경례고 뭐고 없었다.


한창 유행하던 걸그룹의 노래를 누군가가 시작하자 떼창으로 흘러나왔고

난 그 노래에 맞춰 아예 내 자신이 걸그룹이 된듯 빠져들고 있었다.


넋이 빠져있던 중대장이 오디오를 켜라고 지시했고

중대 선임하사가 불을 소등하고 각자 랜턴을 잡으라고 지시한다.



오디오에서 커다란 걸그룹 음악이 터져나왔고

모두가 하나같이 랜턴을 키고 뒤흔들자 관광나이트 아수라장이 되버린다.

중대전체에 내가 입을 여자옷을 찾아오라고 여기저기서 고성이 오갔고

내 머리를 때리던 선임하사가 다음부턴 안때리겠다고도 한다.



"앵콜 씨.발!! 야!! 홍진우 무조건 앵콜이야 씨.발것!!!!

"야야!! 우리부터 소주 원샷하자!!! 이야.. 홍진우 한번 더 춰라!! !!!! "




우리 소대가 모여있는곳으로 달려와

한번씩 더 해달라고 아우성이었고

난 그렇게 스타가 되었다. 군대에서... ;;



"와.. 차행님.. 좋으시겠습니다. 이노마 물건이었네 물건.. ㅋ"

"그라게 말입니다. 뭐 저딴게 다 있노.. 와따.. 불끈불끈 하네.!! "



쏟아지는 선임들의 칭찬에 난 기분이 우쭐해진다.

병장 차유안 앞에서 뭔가 대단한 일을 한 기분이 들어서였다.



"홍진우.. 너.. 너무 심한거 아니니?? ㅋㅋ "


차유안은 정말 놀랐다는 표정으로 내게 술을 따라준다.

"네?...."


"그렇게 하면 어떡해..

이거 최우현같은 녀석들 꽤나 나오겠는걸 ㅋㅋㅋㅋ"


"헉.... "


"나도 반할뻔 했잖아..

이 나쁜 녀석아...도대체 그런 춤은 어디서 .."



"저도 잘하는거 하나는 있지 말입니다 ㅎㅎ"

"ㅋㅋㅋㅋ ;; "


,,,,,,


"나도 춤좀 가르쳐 줄래??"


"키큰 사람은 허우적대기만 하지 말입니다..

이런 춤은 난쟁이만 추는거지 말입니다.. "


"하.. 정말... 무슨 이병이 이런 이병이 다 있지 ㅋㅋ"



병장 차유안이 정말 즐겁다는듯 웃음을 지어보이며 내 머리를 콩콩 때려준다.


"아야.. 혹난데 아프지 말입니다. .."

"어.. 미안미안 ^^ 콩콩 "





오랜만의 중대 뒷풀이가 그렇게 끝나고

​내가 자주가는 뒷산에 유안님과 올랐다.

오랜만에 마신 술로 인해 취기가 많이 올라와 있었다.

높게 떠오른 달이 차유안님의 얼굴을 화사하게 비춘다..




생각해보니 난.. 그의 얼굴을 제대로 본적이 없었다.

같이 근무를 하면서도 전방이나 후방을 보다보니.....

내무실에선 아예 그럴 기회도 없었고 말이다...


오늘 아니면... 언제 그렇게 볼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

난 천천히 고갤들어 그의 얼굴을 보기 시작했다.

술기운도 한몫 단단히 한것이다.


".... 응?? 왜... 왜 진우야... "

의외의 내 행동에 유안님도 나를 쳐다본다.

그도 술을 좀 마셨는지 얼굴이 발그스름 하다..


"저.. 정말 죄송한데 말입니다...

유안님 얼굴을 한번 보게해주면 안되는지 말입니다..

제대로 본적이 없어서..

제 기억에 남지 않을까봐 걱정이 되지 말입니다."



"그래서.. 지금.. 하늘같은 선임의 얼굴을 보겠다 그말이니?? ㅎㅎ"

"흥... 싫으면 그만두시지 말입니다.. "

"으이그,, 이 자식.. 그래... 봐라.. 실컷 .. ㅋ "


병장 차유안이 고개를 들어 자신의 얼굴을 내게로 향하게 해준다.

난 처음으로 그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잠에 빠진 그의 얼굴과는 또 다른 그의 모습..


윤곽이 뚜렷한 얼굴선에 곧게 솟은 콧날이 중심을 잡았고

깨끗하고 까만 눈동자와 선명한 입술이 매혹적이기까지 하다.


헤어라인이 짙게 그려져있는 이마는 그의 얼굴을 강한 남성으로 보이게 만들었고

길게 뻗은 눈썹은 그를 아름답게까지 보이게 만들었다.


나도 모르게 그의 얼굴에 손을 가져다대 어루만져 본다..

의외로 피부도 곱고 고결한 느낌이 들었고 마치 귀족과도 같은 느낌이다.


내 손에 그의 숨이 느껴졌고

자신의 눈 앞에서 천천히 움직이는 내 손에

그의 깊은 눈꺼풀이 살며시 내려가며 감긴다..

그리고 다시 부드럽게... 스치듯 올라갔다.

아...




가슴이 콩닥거린다.

뭐지... 왜.. 이런 기분이......

뭘까... 이건...



환상에 빠진듯 멍해져 버린 내 눈을

깊숙하게 들여다보고있는 그의 시선



난 뒤늦게 화들짝 놀라 손을 내리고 고개를 떨구었다.

"..... "



병장 차유안이 미소를 담아 묻는다.


"어때.. 이제 기억에 남을수 있겠니?"

"아... 네... 네 그. 그렇지 말입니다.... "

"...... "


"그럼... 나에게도 기회를 줄래?.... "

"....... 네? "


"나도 니 얼굴.. 기억하고 싶거든.... "

"네?... ;; .. "






아무래도 그도 나만큼 술에 젖어있는듯 했다..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던 유안님이

자신도 내가 한것처럼 내 얼굴을 어루만져 본다.

그의 따뜻한 손에 내 가슴도 벌떡이며 뛰기 시작했고

난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정말 알수가 없었다.


그의 얼굴이 너무나 가까웠고

그의 숨결이 너무나 따뜻했다.



어느새..난

그의 시선을 그대로 받아내고 있었고

그의 살짝 벌어진 입술을 보며 몽환적인 상상을 해본다.


​나즈막한 숨소리속에서 ..



하지만..

내 뺨을 어루만지던 그가 어느 순간 가느다란 한숨을 내쉬더니

얼굴에 그림자가 지기 시작했다.


힘없이 고개를 돌린 그의 시선이 닿은곳엔 별이 촘촘히 박혀있었고

달은 조각구름에 차분하게 걸려있었다.


하지만 내 가슴은 두근거림을 멈추지 않는다.



그 적막속에서..

난 지금 시작된 이 두근거림이..

절대 멈추지 않는 시작임을 알수있었다.







...........................................................................................................................





슬프지만 아름다운..  짧지만 끝이없을 만남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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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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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pa…
  • 작성일
아련한 추억이였겐네요
설마 그날이후 얼마 남지 않은기간 썸탄건 아니겠죠
마지막화에 밝겨지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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